▲ 한국종교문화연구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비교문화연구소’가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약사신협 5층 대회의실에서 ‘종교문화로 보는 한국 기독교’를 주제로 정기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군부정권, 진보진영엔 “정교분리해야”
보수 측은 ‘조찬기도회’ 통해 정치활동
정권 입맛에 따라 이중 잣대 적용돼

[천지일보=강수경·이지솔 기자] 한국 개신교의 고질화된 정교유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종교학계가 개항이후 일제강점기,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화를 맞기까지 권력과 유착관계를 가져왔던 한국교회의 정교분리 담론을 재조명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비교문화연구소’는 1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약사신협 5층 대회의실에서 ‘종교문화로 보는 한국 기독교’ 정기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개신교가 한국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두드러진 행태를 되짚었다. 종교학자들은 ‘혐오’ ‘혼합현상’ ‘한국 개신교의 민속신앙론’ ‘정교분리 담론’ 등 개신교 내 병폐의 근원이 되는 고질적인 문제를 진단했다.

이 중 ‘한국 개신교와 정교분리 담론’을 주제로 발제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원은 군사정권 시대의 산업선교와 인권운동에서부터 ‘민주화 시대의 종교인 납세’ ‘이슬람 채권 도입’ ‘할랄 단지 조성’ ‘국가조찬기도회’ ‘공직자의 종교편향 동성결혼 합법화 논쟁’ 등을 거론하며 “이 모든 사안은 정교분리와 관련돼 있으며, 여기에는 개신교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2항에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종교권력은 한국사회에 뿌리내려 정치권력과 하나 돼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신교 초기엔 ‘정교일치’

이 연구원의 발제에 따르면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정교분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와 종교는 하나가 돼 움직였다. 국가가 은총에 관한 거짓 가르침을 금지하고 참된 기독교 도덕 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그 당시에는 우상숭배자나 신성모독자, 이단자에 대한 국가의 처벌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개항을 계기로 한불조약(1886) 이후 등장한 교민조약(1899), 교민화의약정(1901), 선교조약(1904) 등과 같은 협약들을 통해 정치와 종교의 영역을 구별하는 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협약들은 천주교와 국가의 관계만을 다루고 있었기에 천주교의 선교 및 신앙 자유만을 언급했지만, 개신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에게도 점차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1901년 장로교공의회에서 채택한 결의문에 따르면 개신교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정교분리 원칙은 교회의 정치활동 금지와 교인들의 국가에 대한 복종에 초점을 뒀기에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60대 군사정권은 헌법에 천명된 정교분리원칙을 무기로 산업선교 종사자들의 시국선언이나 시위를 비난했다. 이때 군사정권의 정교분리 담론은 국가의 종교간섭 금지가 아니라 종교의 정치참여 금지에 초점을 두는 담론이었다. 이 때문에 개신교 진보진영의 정치권에 대한 반발은 ‘정교분리’라는 담론으로 번번이 제지를 당했다.

◆군사정권의 ‘정교분리’ 이중 해석

하지만 이 담론은 개신교 보수진영에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됐다. 한국예수교협의회(KCCC), 대한기독교연합회 등 보수 개신교 진영은 국가권력에 대한 복종을 정교분리 정신으로 이해했다. 정교분리를 한다고 외치면서도 이들이 조찬기도회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다양한 ‘정치활동’을 했던 이유다.

이 연구원은 “이들은(개신교 보수진영은) 국가정권의 비민주성을 공격하는 진보진영의 활동을 ‘정교준리원칙의 위반’으로 간주하면서도 군사정권을 적극 옹호하는 자신들의 활동은 ‘정교분리원칙의 준수’로 이해했다”면서 “개신교 보수진영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표방한 ‘종교유착의 현실’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정교유착은 ‘10월 유신’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났다. 당시 김준곤 목사는 조찬기도회 석상에서 설교를 통해 10월 유신을 ‘정신혁명’으로 예찬했다. 군사정권 시절 보수진영과 국가권력을 매개시킨 제도적 장치의 하나가 바로 조찬기도회다. 1976년부터는 ‘국가조찬기도회’로 이름을 바꿔 진행됐다. 이 연구원은 “이 행사(국가조찬기도회)가 ‘국가’를 위한 기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권’을 위한 기도로 전이될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80년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의 장도를 축복하기 위해 조찬기도회가 열렸다. 김준곤 목사 등 보수진영 목회자들은 신군부의 정권찬탈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다. 이듬해 열린 제1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두환이 “교회는 국가적 생존권 확보와 국리민복의 증진, 그리고 사회의 올바른 정신문화의 배양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 기대된다”며 한국교회에 협조를 당부했다.

한국 개신교 보수진영의 정교유착은 한미관계에 대한 보수진영의 개입에서도 잘 나타난다. 군사정권 시절 한미 간 갈등이 나타날 때 개신교 보수진영의 인사들은 해결사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장환 목사다. 1974년 오글 목사 강제추방 때에는 도미해 방송대담과 순회 강연 등을 통해 미국 내 반한 여론을 잠재웠고, 카터 행정부 당시에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정계 이수로 떠오르자 미국 침례교계와 종교 방송계에 인맥을 동원해 반대 로비에 나섰다.

이 연구원은 “위기에 몰린 유신정권의 홍보대사 노릇을 하며 권력자 주변을 맴도는 ‘여당 목사’라는 꼬리표를 달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개신교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의 반독재투쟁과 인권운동을 정교분리 원칙의 위반이라고 비판하면서 군사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은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진영의 전략과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정교유착 1번지 ‘한기총’

이번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개신교 보수진영의 정교유착의 모습은 한국교회 보수교단연합기구를 대표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태생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기총은 5공화국 종교대책반이 만들어낸 최대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최한 제140차 월례포럼에서 남오성 목사(당시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는 “당시 전두환 정권 초기부터 5공화국 세력이 진보적 종교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종교대책반을 운영하고 보수세력의 조직화를 지원했다”며 “한기총은 한국교회 구성원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은 대표성을 무단 발휘해 왔다. 복음단체를 가장한 정치단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한기총 창립위원장을 맡았던 한경직 목사는 수많은 봉사활동 등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시대마다 권력에 굴복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따르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제 천황신에게 경배하는 신사참배를 했고, 1980년 전두환 국보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전 위원장에 대한 칭송에 앞장서는 등 새로운 권력 앞에는 늘 고개 숙였다.

한기총의 이런 태생적 배경은 역대 정권의 주요현안과 발맞추기를 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전(前) 대통령 탄핵 전까지는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등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박근혜 정권을 옹호해왔다. 그러다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유력 대선주자로 지목되자 한기총 이영훈 회장 등 일부 인사들은 친 더불어민주당 행보를 보여, 권력 따라 움직이는 한기총의 모습을 또 한 번 확인시킨 바 있다.

이 같은 한국 개신교 정교유착 행태를 토대로 최근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시민단체들은 공적 영역에서의 종교집단의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연구원은 “이러한 담론은 자칫 공적 공간을 ‘세속주의’로 채워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종교의 공적 역할 혹은 종교의 공공성 실현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며 지속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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