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판문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 북한군 탈북자의 용감한 행동이 사람들의 시선을 판문점으로 모으고 있다. 이를 계기로 판문점의 역사를 다시 쓸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오늘의 통일논단 문을 열고자 한다. 한반도의 허리에 자리 잡은 판문점은 전쟁과 분단의 마지막 상징이다. 특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아직 미군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년이면 남과 북 모두 정권을 세운 지 70년이 되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아직 이 땅에 우리 주권을 우리의 뜻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구역이 남아 있다면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물론 북한 땅 전체가 3대 세습의 봉건정치로 온 나라가 인간생지옥으로 변해가는 참상을 목도하면서 유엔군의 부분적인 무력행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2004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미군 전용은 한국군 경비대대의 부분적 공동경비로 전환되면서 경비구역 시야에서 미군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 때도 논란이 많았지만 그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왜? 무장한 미군이 판문점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북한 당국자들에게 ‘미제침략군’을 선동케 한 좋은 반미교양의 ‘학습교재’가 되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 이상 미군은 침략자가 아닌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준다는 점에서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결정이었는지 오늘 우리는 그 결단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번 북한군 탈북 사건을 보며 무력사용권은 오직 미군에게만 있다는 등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의 주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만약 13일 당일 우리 공공경비대대 대대장의 용감한 행동이 없었다면 탈북 군인은 시간의 지체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려 벌써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엔사 측은 아직도 당시 촬영된 CCTV 동영상 공개를 미루고 있다. 다만 유엔사 측의 소식을 전해들은 한 관계자는 “북한군의 권총과 AK 자동소총 총탄을 JSA 남쪽 구역 초소 인근의 나무 등에서 여러 발을 찾아냈다. 유엔사 측이 귀순 북한군 몸에서 빼낸 총탄과 대조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시 북한군 추격조 4명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가는 귀순 북한군에게 권총과 AK 자동소총으로 40여발을 쐈다.

귀순 북한군이 MDL을 넘은 뒤 쓰러진 상황에서도 북한군 추격조가 계속 총을 쐈기 때문에 JSA 남쪽에서 북한군 총탄이 발견됐다는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 북한군 추격조가 엎드려쏴 자세로 조준사격을 한 점으로 미뤄 귀순 북한군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군이 MDL을 넘어서고 총을 남쪽 지역으로 쏜 것은 정전협정 중대위반 행위다. 정전협정은 JSA를 포함한 비무장지대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북한군이 사격하는 데 JSA 경비대대는 대응사격은커녕 경고사격이 없었다. JSA 경비대대가 귀순 과정에서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교전수칙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전수칙(Rule of Engagement)은 군대가 무력을 사용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조건·정도·방식 등을 정의하는 규칙이다. JSA는 유엔사가 관할하기 때문에 JSA 경비대대의 작전통제권도 유엔사가 갖고 있다. 그래서 최전방 지역에서 한국군의 교전수칙인 ‘선조치 후보고’는 JSA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회의에서 “유엔사는 초병이 대응을 잘했다고 평가했지만, 우리를 조준해 사격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쪽으로 총알이 넘어왔다면 경고사격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국민이 생각하는 평균적 교전수칙일 것”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교전수칙을 논의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논란이 커졌다.

청와대는 다음날인 16일 “한국 정부가 JSA 교전수칙을 수정할 권한이 없다”며 “대통령의 발언은 지시가 아니라 국민 감정적 측면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군 당국은 유엔사와 협의해 JSA 교전수칙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방이라는 우리 군의 역량이 제 나라 안에서 미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 이건 비극이다.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군이 사라진 것이 13년 전의 일이다. 북한군은 1994년 5월 군사정전위원회를 박차고 나가 인민군판문점대표부를 만들었다. 분단의 비극을 제 뜻대로 해소할 수 없는 운명을 안고 건국 70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다. 과연 언제까지 우리의 안보와 평화를 유엔의 힘에 의존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국력은 북한의 힘에 비해 45배에 달한다.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은 모두 대한민국을 동경하고 있다. 다가오는 통일을 위해서라도 유엔사의 권한이 지배하는 판문점의 역사는 다시 쓸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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