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남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지진 피해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흥해체육관·흥해공고·남산초체육관 현황]
‘사용가능’ 주택에 피해 아파트 적용 논란
점검 결과 ‘안전’에도… “불안 여전, 귀가못해”
“주택완파 보상기준 9백만원? 몇십년전 얘기”
세입자 무시하는 절차에 눈물쏟는 이재민

[천지일보 포항=김가현 기자] 지진 발생 닷새째인 19일 경북 포항은 올가을 최저기온인 –3도를 기록했다. 저녁께 제법 쌀쌀한 날씨를 체감하며 위생 등의 이유로 재정비에 들어간 포항 흥해체육관을 먼저 찾았다. 체육관 주변은 가로등이 거의 없어 깜깜했다. 출입구를 지키는 경찰들의 야광봉이 유독 선명하게 깜빡거렸다.

◆[흥해체육관] 市 “시설 이용은 이재민들 우선순위”

그나마 불빛이 새어나오는 흥해체육관을 찾아 들어갔다. 체육관은 포항시 공무원들의 손길로 분주했다. 체육관 전체는 소독 작업이 진행됐다. 딱딱한 바닥엔 쿠션매트가 2~3겹으로 깔렸다. 가로 2m, 세로 1.4m로 성인 3인용 ‘실내용 난방텐트’가 1층 216개, 2층 38개가 가지런히 배치됐다.

포항시는 이번 지진으로 집이 폐쇄된 이재민에게 흥해체육관 시설 이용을 우선순위로 준다는 계획이다. 장숙경 포항시 주민복지과장은 “내일(20일) 오전에 각 난방텐트마다 아파트 동, 호수를 붙이고 개인용 자리매트와 모포가 지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흥해공고체육관] “벽체 떨어지고 기울었는데 귀가 가능? 못 가!”

이후 흥해공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는 포항시청 공무원들이 “신발을 넣으라”며 검은 비닐봉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실내로 들어서니 온풍기 덕에 온기가 돌고 있었다. 그러나 흥해공고 체육관에서 며칠간 지내며 보도진 카메라 세례에 지친 이재민들의 냉담한 반응은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조심스레 주민들에게 지금 상황을 물었다. 만서1차 아파트 거주자인 한 주민은 “방금 전 시청 공무원들이 안내방송을 통해 ‘만서1차 아파트와 대성빌라 주민들은 점검 결과 안전하니 집으로 귀가해도 된다’고 했다”며 안도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아파트라도 조기 귀가를 꺼리는 주민들은 “1, 2층은 거의 전파됐고 실금 정도가 아닌 벽체가 떨어져 나가고 집이 기울었는데 집에 가라니 우리는 귀가 못 한다. 여진이 계속되는데 무너지면 어쩔꺼냐”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만서1차 아파트 손병도(61, 남)씨는 “안전 진단할 때 직접 같이 갔지만 눈으로만 둘러보고 와 놓고 무슨 안전을 말하냐”며 “낮에 잠깐 집에 가서 간단한 옷가지만 겨우 챙겨서 나오는데 기울어진 집에서 어떻게 잠이 오냐”고 지적했다.

체육관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서 주민들은 “노숙도 이런 노숙이 없다”며 “모르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자리서 입은 채로 자고 입은 채로 일어나서 씻는 건 생각도 못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 남성은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여기서 지내는데 남자보다 여자분들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말문을 닫고 있던 주위 주민들도 옆에서 말을 보탰다. 주민들은 경주지진 때 주택 보상기준을 언급하며 “주택완파 보상 기준이 900만원이라고 하지만 지금 시세가 얼마인데, 그건 몇 십년 전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사정으로 전입신고도 못한 상황에서 지진이 났다는 한혜주(39)씨는 세입자라고 명찰하나 담요하나 받기도 어려웠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씨는 “가게를 개업한 지 15일 만에 지진으로 가게와 집을 둘 다 잃었는데도 홀어머니 쓰러질까봐 지진이 빗겨갔다고 말하고 모포 한 장 덮고 바닥에 앉아 있는 신세가 너무 서럽기만 하다”며 이날 낮에도 무너진 집에 잠깐 들러 옷가지를 챙겨왔고 죽을 것 같은 압박감에 심리치료까지 받았다고 토로했다.

또 “생계가 달린 가게도 집도 잃었는데 읍사무소에 10번을 전화해도 무조건 ‘기다리세요’만하고 안전진단 한 번 안 나왔다”며 “대성아파트 피해가 심한 만큼 그 인근 주택이나 빌라도 피해가 심한데 방송에서 너무 대성아파트만 보여주니까 대성아파트 아니면 공무원들도 일단 무시한다”며 억울해 했다.

만서1차 아파트와 대성빌라 그 외 주택에 지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신경이 예민해진 데다 앞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아 힘들다고 호소했다.

지진 피해를 입은 아버지를 찾아뵙고 가는 길이라는 한 남성(52)은 “처음에는 위험해서 폴리스라인을 치고 못 들어가게 했는데 오늘은 괜찮다고 집에 들어가라고 방송을 하니 그 진단을 어떻게 믿느냐. 너희가 들어가 살아보라”면서 “시간이 좀 걸려도 세심한 진단을 한 결정이면 몰라도 오늘 안내방송은 못 믿는다”고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 19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남산초등학교에 마련된 지진 피해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남산초체육관] ‘안전점검결과’ 통보에 뿔난 이재민

마지막으로 대성아파트와 한미장관아파트 주민들이 있는 남산초등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흥해공고 체육관과는 달리 이곳은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게 했다.

포항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남산초교 체육관은 380여명의 이재민이 있다. 특히 그동안 잘 씻지 못해 불편했던 주민들에게 인근 목욕탕 18곳을 지정해 무료로 씻을 수 있도록 목욕티켓을 배분했다.

시 관계자는 “오늘(19일) 아침 여기로 옮겨 올 때는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오후 들면서 주민들도 차츰 안정을 찾았다”며 “지진이 무서워 체육관으로 오시는 분들이 계신데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곳은 집에 들어갈 수 없는 분들 우선으로 일일이 명단을 대조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내일(20일) 오전에 조식 후에 남산초교 체육관 이재민들은 흥해체육관으로 다시 옮겨간다고 말했다.

체육관 중간에 모여 있는 주민들에게 말을 걸자마자 한 주민이 거세게 거부하기도 했지만 대신 대답을 해주겠다고 거들어주는 주민들도 있었다.

한미장관아파트 거주자 김홍제(58, 남)씨는 이날 오후 2시 30분쯤 포항시에서 국장이란 분이 와서 ‘이주희망 신청서’를 설명하고 조사해 갔다고 전했다.

‘이주희망 신청서’에는 LH소유 주택인 임대아파트 109세대와 다세대, 원룸, 전세임대(융자지원)목록에서 먼저 선택하고 임대아파트 경우는 평수를 선택해 신청 본인을 적고 포항시에 제출하는 설문지다. 그런데 이후 ‘포항시의 공문’ 하나가 흥해공고, 남산초등 체육관에 거주하는 주민들 사이에 돌면서 주민들의 공분을 샀다.

공문 제목은 ‘안전점검결과 통보’였다. 공문 아래 공동주택에 대한 안전점검(17.11.15~11.18) 실시결과 ‘사용가능’을 통보하며 해당아파트 이재민에게 안내 후 빠른 시일 내 입주를 권장하는 내용과 입주 시 전기(한국전력공사), 가스(한국가스안전공사, 영남에너지) 등에 사전 점검을 받도록 안내해 달라는 내용이다.

‘사용가능’ 공동주택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한미장관맨션을 포함해 만서세화1차, 대흥온천맨션, 한동맨션, 대성A,B,C동 등 총 10곳이 포함됐다.

이에 주민들은 즉각 ‘주민 대책위’를 구성하기 위해 체육관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는데 이를 시청 공무원들이 방해하며 마이크를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내일까지 아파트 각 동마다 대책위에 위원을 구성하고 위원장을 뽑겠다고 말했다.

남산초교 체육관에 대피중인 주민들은 “지금까지 행정절차 등의 결정을 할 때 주민 목소리를 반영해 달라는 것인데 어느 것 하나 반영된 것이 없다”며 “지인이나 가족 등이 걱정돼서 여기까지 찾아와도 이름 하나하나 체크하며 도시락도 같이 못 먹게 갑질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대책위가 구성되고 주민 요구사항이 많아지면 시에서 행정절차가 복잡해지고 장기체류가 등이 될까 해서 대책위 구성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대피 주민 정현규(58, 남)씨는 “지진 피해를 입은 흥해읍 일대 지역이 지방문화재로 묶였고 개발행위제한도 걸려서 5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는 고도제한에도 걸려 있다”면서 “이번에 이 제한을 해제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진으로 이 지역의 매매가 힘들어질 것인데 정부에서 재건축 사업을 LH공사에 맡겨 수입과 주민 부담을 최소화시켜서 공영개발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19일 오후 11시 45분 47초 거의 같은 위치인 북위 36.12도, 동경 129.36도에서 규모 3.6 여진이 일어났다. 이튿날 20일 오전 6시 5분 15초에도 경북 포항에서 규모 3.6의 여진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 15일 본진 발생 이후 58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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