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곽길에서 내려다 본 마을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판소리 ‘동편제’ 부흥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절대적인 신분사회 속에서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쳐났던 조선 전라민초들의 삶과 숨결을 지켜온 낙안읍성(樂安邑城).

조선 제1대 임금인 태조 6년(1397년)에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고자 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고, 인조 4년(1626년)에 임경업 장군이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해 5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흐트러짐 없이 보존돼 왔다.

전북 고창읍성과 충남 해미읍성과 함께 원형 그대로 보존된 우리나라 3대 읍성에는 전남 낙안읍성이 속해 있다.

그저 돌로 쌓은 성곽일 뿐인데도 읍성을 찾았을 때 느껴지는 그 견고함의 역사적 가치는 한반도의 뿌리가 흔들림 없이 지켜지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낙안읍성 성곽에 오르면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른 지역의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지대에 축조된 이 읍성은 평야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 자연석을 이용해 높이 4m, 너비 3~4m, 총 길이 1410m의 네모꼴이다.

현재 낙안읍성은 조선조 때 모습이지만 사람들이 낙안에 터를 잡고 삶을 개간한 시기는 읍성 주변과 관내 여러 곳에 분포된 고인돌로 미루어 보건데 마한시대로 추정된다. 

삼국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고 사람이 살기 시작한 낙안은 백제 때는 파지성, 고려 때는 낙안군으로 불렸다.

현재의 마을은 1983년 6월 14일 사적 제302호로 지정돼 민속 학술 자료 보존과 전통적인 옛 고을로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며 120세대(성안 82, 성밖 32) 288명이 거주하고 있다. 

낙안읍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중에 있다. 문화재청(청장 최광식)은 지난 3일 순천 낙안읍성과 함께 전통 농촌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충남 아산 외암마을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 신청했다고 밝혔다.

 

▲ 조선시대 초가집에 장독들이 줄지어 햇빛을 받고 있는 모습이 매우 정겹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주말을 맞아 이른 오전에 낙안읍성을 찾았을 때 읍성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쉬는 날인데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구수한 전라도 말로 살갑게 기자를 반겨주었다. 그러던 중 새벽부터 마을의 무고를 챙기러 읍성을 둘러보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강윤효 읍성장을 만났다. 

 

강 읍성장은 “새벽 일찍부터 마을을 둘러보는 게 오랜 습관”이라며 “항상 마을의 애로점과 문화재 보호를 위해 출근할 때와 업무 중에 수시로 마을을 점검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사무실에 도착한 시각에도 마을 구석구석을 보살피고 있던 참이였다.

매주 5000~6000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낙안읍성에는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외국인들은 조선 옛 지방도시가 그대로 보존된 낙안읍성을 관광하고 난 후에는 ‘원더풀(wonderful), 뷰티풀(beautiful)’이라는 단어를 연발한다고 한다.

흔히들 고궁이나 화려한 고미술 등에 더 큰 박수를 보내던 것과 달리 외국인의 눈에는 초가집에 소 키우며 농사짓는 민초들의 삶이 더 각별해 보인다는데, 그 이유는 그야말로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 속 민초들의 삶을 담은 낙안읍성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마을주민들의 마음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서민들의 삶, 문화와 역사가 되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 등의 마을이 동시에 사적으로 지정된 최초의 사례다.

성곽은 사적 제302호에 지정됐고 중요가옥 9채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객사는 지방 유형문화재 제170호, 노거수는 도기념물 제133호에, 임경업장군 비각은 문화재자료 제47호에 지정됐다.

이 밖에도 동헌과 내아, 낙민루와 낙민고, 낙풍루, 쌍청루, 옥사, 우물, 장승과 솟대, 장터난전, 해자, 고인돌과 3.1운동탑 등의 유적과 유물이 보존돼 있다.

이는 마을 주민을 보호하고 행정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읍성의 역할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돼 문화재로 지정된 것인데 어떻게 보면 조선 서민들의 삶이 문화·역사적 가치로 높이 평가받게 된 경우로 볼 수 있다.

 

▲ 낙안읍성 이모저모. ⓒ천지일보(뉴스천지)

 

낙안 출신인 송갑득(낙안읍성 관광가이드 겸) 씨는 타 민속마을과 다른 낙안읍성의 특이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마을은 최근 유네스코에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처럼 양반마을이 아닌 일반 서민들이 살아온 마을이기 때문에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는 곳입니다. 또 용인민속촌이나 제주민속마을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람이 직접 살고 있어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느낌을 안겨줍니다.”

실제로 점심 때 마을 곳곳 아궁이에서 밥냄새 풀풀 풍기며 피어나는 연기를 보고 있자면 정감어린 향수와 함께 포근함을 만끽할 수 있다.

낙안읍성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소리’다. 한국 판소리의 가왕 송흥록의 손자인 국창 송만갑 명창이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그의 자서전에 기록된 동편제 판소리의 부흥지가 이곳이다. 

국창 송만갑 명창이 그의 가족과 함께 마을에 거주하면서 소리꾼뿐만 아니라 가야금 산조 명인 등 전국의 수많은 명인 명창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현재 성내 마련된 국악교실에서 송락 김양남 선생이 그 맥을 잇고 있다.

낙안읍성은 타 지역의 성과 달리 낙안만의 특색을 살려 짚물공예, 길쌈시연 등의 일일상시체험행사와 수문장교대식, 낙안서당, 읍성군악놀이 등의 주말공연을 통해 전통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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