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살> 출연진들 (사진제공: 남산공연예술센터)

욕망의 불꽃에 선 현대인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연극 <살>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경험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질문한다.

작가 이해성은 지진피해를 입은 아이티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진흙으로 구운 과자를 먹는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브라운관 밖 세상에서는 다이어트를 위해 러닝머신을 뛴다. 작가는 같은 세상이지만 너무도 다른 현실에 의아해 한다. 그리고 체제 속에 길들여져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고 폭주기관차처럼 달려만 가는 현대인들을 모습을 진단했다.

작가는 주인공 최신우를 ‘하버드 천재’ 천부적인 감각의 ‘그레이트 딜러’란 칭호와 함께 신화 속의 영웅 ‘프로메테우스’의 성격까지 부여했다. 그는 외환딜러로서 하루 동안 12억의 돈을 땄다가도 한 순간에 140억을 날리는 딜링룸에서 살아간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해 뜨겁고 목마른 ‘욕망의 불꽃’ 속에서 매일매일 지옥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현대인들의 결핍과 허기, 외로움은 결국 물욕·식욕·성욕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타인을 가학하고 자신을 자해하며 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안경모 연출은 이러한 삶의 환경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냈다고 진단한다. 역설적이게도 극의 주인공들은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에서 멋지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최신우는 일반인들은 꿈도 꾸기 어려운 억대 연봉자이며, 비싼 관리비의 펜트하우스를 소유하고 있고 아내와 애인 사이에서 적당한 안정감과 쾌락을 동시에 즐기는 등 자본주의에서 최상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의 정점에 선 사람들 또한, 충족되지 않은 결핍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가진 그들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장인물도 있다.

신우의 직장동료이자 오랜 연인인 안나는 신우가 성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밖에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신우의 돈을 빼돌려 그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다. 이뿐만 아니라 신우가 먼저 제안 받은 외환딜러들에게 꿈의 직장 ‘탱고’의 자리도 자신이 가로챈다.

신우는 그런 안나에게 “꼭대기에 올라가면 다른 세상이 있을 줄 알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만류하지만, 안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꼭대기를 향한 길을 선택한다. 신우는 결국 직장, 애인, 가족 모두에게 버림받는다. 러닝머신 코드를 뽑아 목에 감아보지만 전기가 갑자기 나가버려 자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를 사는 극 속의 주인공들은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거나 경쟁자를 동정하는 순간 뒤쳐진다고 생각한다. 신우를 몰락으로 이끈 것은 그의 마지막 대사 “요즘 같은 시대에, 때가 어느 땐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질문일수도 있다. 어느새 진지한 질문을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연극 <살>은 멈춰 서서 그러한 질문을 하는 신우를 통해 희망을 보게 한다.

신화 속 ‘생간이 쪼이는 고통’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상황에 처한 신우처럼 삶에 대한 지독한 질문을 마주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