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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피리는 우리 민속 음악이자 국악기의 한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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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포커스] “풀피리는 우리 민속 음악이자 국악기의 한 종류”

▲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초적 예능보유자 박찬범 명인이 풀피리를 불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초적 예능보유자 박찬범 명인

연 맺은 지 62년… 초적 알리는 데 한평생
“상놈들이나 한다”는 부친 반대에도 선택
풀피리 편견 많이 사라져… 이젠 알아준다
끊어질 뻔한 도피피리 명맥 유일하게 이어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풀잎 한 장으로 자연의 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 그는 별도의 악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아도 신명나는 공연을 청중에게 선보인다. 시간과 공간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풀잎 한 장만 있으면.

풀피리 연주가 박찬범 명인이 바로 그다. 박 명인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초적(草笛) 예능보유자다. 지난 24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박 명인을 만나 풀피리 연주의 진수를 엿볼 수 있었다. 풀피리는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연주해온 민속음악의 하나다. 나무의 껍질이나 잎사귀를 악기로 삼아 소리를 내어 부는 음악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풀피리를 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와서 고구려와 백제에서 도피필률(桃皮觱)이라 하여 연주되고 있었다. 중국문헌인 ‘구당서(舊唐書)’에도 도피필률이 고구려와 백제음악으로 존재했다고 기록돼 있어 고구려와 백제의 고유음악인 풀피리가 중국에서도 통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 명인이 풀피리와 연을 맺은 지 어느덧 62년. 평생을 풀피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처음 풀피리를 접하게 된 것은 여덟 살 정도 되는 해 아버지를 따라 산에 자주 오르면서다. 무속인이던 아버지는 풀피리를 굉장히 잘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가 시나위도 곧잘 연주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 명인의 아버지는 “너는 배우지 마라. 상놈들이나 한다. 뱀 나오고 재수 없다”고 풀피리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들을 꾸짖었다. 당시만 해도 풀피를 불면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던 때였다.

하지만 풀피리에 대한 그의 호기심과 재능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무형문화재 초적 예능보유자라는 영광에 이르렀다. 박 명인은 일제강점기에 유성기 음반으로 초적 연주를 취입한 고(故) 강춘섭 명인의 음반을 구해 독학으로 그의 초적 연주 음 하나하나를 연구했다.

조선시대 높은 위상을 차지했던 풀피리는 일제강점기에 살짝 빛을 봤다가 해방 후 거의 자취를 감추듯 했다. 하지만 박 명인은 묻혀있던 고 강춘섭의 음악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를 발굴하고 해독했을 뿐 아니라, 새소리 흉내에 만족했던 문제점과 한계점을 극복했다.

또한 오랜 전통에서 계승된 초석을 민속음악의 틀 속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개혁하는 등 풀피리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 박찬범 명인이 도피피리를 채취하는 모습

박 명인은 “풀피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회복됐다”며 “풀피리와 관련 책도 쓰고 중학교 역사부도에도 실리면서 이제는 많이 알아준다”고 뿌듯해했다.

이전에는 “풀피리는 어린애 장난감”이라는 치부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박 명인은 풀피리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풀피리가 우리네 민속 음악이자 국악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도 많이 팔았다”면서 “고액의 돈을 들여 필요한 자료들을 사들이기도 했고, 책을 낸 뒤에는 문화재 관련 정부 부처에도 보냈다. 초적에 대해 확실히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피리가 국악기의 한 종류이자 우리네 민속음악과 함께해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풀피리에 대한 그의 애정과 초적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2011년 3월부터 중학교 역사부도(성지문화사)에 풀피리가 등재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시는 풀피리 전통을 잇기 위해 애쓰는 박 명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지난 2월 29일 “서울시 무형문화재의 보존과 선양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특히 투철한 사명감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는 초적의 공연과 교육 등에 헌신하여 기여한 공이 크다”며 표창장을 수여했다.

또 박 명인은 지난 2월 16일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로부터 “국내 음악 발전의 뿌리가 되어주어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공로한 바가 크다”며 공로상을 받았다.

박 명인은 현재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그가 직접 작사·작곡·편집한 초적 연주 99곡을 등록하고 있다.

오는 31일에는 광진국악관현악단과 광진문화회관 나루아트 대공연장에서 풀피리 공연을 펼친다. 광진국악관현악단 단장을 맡고 있는 박 명인은 “지난해부터 역사 속에 묻힌 기록들을 찾아 단막극으로 구성해 구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며 “이번에는 연산군편”이라고 말했다.

연산군은 재위 12년간 풀피리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명인에 따르면 연산군은 궁궐 후원회에서 스스로 풀피리를 연주하기도 했으며, 풀피리 실력 또한 대단했다.

▲ 박찬범 명인이 도피피리를 연주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연산군역을 맡은 박 명인은 도피피리로 신명나면서도 구슬픈 초적소리를 관객들에게 들려줄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도피피리를 찾았다. 이것을 찾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생을 했다”며 “대단한 발견”이라고 강조했다. 도피피리(도피필률)는 복숭아나무 껍질을 이용해 피리를 부는 것으로, 연주방법은 나뭇잎 끝을 말아 입술에 대고 부는 우리나라 전통 풀피리 방식과 같다.

박 명인은 “한국의 도피피리는 초적과 같은 방식의 풀피리”라며 “전통적으로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한국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끊어질 뻔한 도피피리의 명맥을 유일하게 잇고 있다”고 말했다.

박 명인은 1991년 3월 국내 최초로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을 통해 풀피리로 시나위를 연주했다. 1997년 9월에는 세계 풀피리축제에서 한국대표로 풀피리를 연주했으며, 1998년에는 정동극장에서 초적연주회를 열었다.

그는 이러한 노력으로 2000년 4월 20일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후 2012년에는 ‘2012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보호 국제회의’에 초청돼 초적 연주를 선보여 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도피피리(도피필률)

복숭아 껍질을 벗겨서 풀잎 모양으로 부는 것. 한국의 도피피리는 초적과 같은 방식의 풀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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