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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다나오의 기적, 세계평화의 신호탄
기획 특별기획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4>] 필리핀 민다나오의 기적, 세계평화의 신호탄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체결을 이끈 이만희 HWPL 대표와 협약서에 서명한 가톨릭 이슬람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체결을 이끈 이만희 HWPL 대표와 협약서에 서명한 가톨릭 이슬람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HWPL 재조명&인터뷰<4> 민다나오 평화협정 재조명

분쟁의 땅에서 평화의 산실로

가톨릭-이슬람 민간 평화협정

국제기구·정부도 못한 분쟁 종식

HWPL, 평화 문화 정착도 힘써

[천지일보=이솜 기자] “민다나오에 평화가 오면 세계평화가 온다.”

40여년 유혈분쟁으로 12만명이 넘게 숨진 죽음의 땅을 보며 세계인들이 한 말이다. 모두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평화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1월 한국인 평화운동가 이만희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는 오직 평화를 위해 민다나오를 찾았고 목숨 건 그의 여정에 신(神)은 평화를 선물했다. 이만희 대표와 HWPL 평화사절단이 극적인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HWPL은 민간 평화협정 이후에도 평화교육과 평화문화 활동 등 민다나오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아시아 최대 유혈 분쟁지역인 민다나오에 뿌린 평화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은 모습이다.

2020년 2월 필리핀 민다나오 코타바토시 광장에서 열린 HWPL 평화의 날 5주년 기념식. ⓒ천지일보 2022.5.17 (제공:HWPL)
2020년 2월 필리핀 민다나오 코타바토시 광장에서 열린 HWPL 평화의 날 5주년 기념식. ⓒ천지일보 2022.5.17 (제공:HWPL)

◆수차례 중재에도 충돌 계속된 지역

필리핀 남부 지역의 섬인 민다나오는 필리핀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섬으로 알려졌다. 면적은 9만 4630㎢로 대한민국의 영토와 비슷하다. 인구는 약 2200만명이며 가톨릭교도(63%)와 이슬람교도(32%)가 대부분이다. 특히 필리핀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약 400만명은 모로인이다. ‘모로(Moro)인’은 필리핀 무슬림 원주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1946년 필리핀은 독립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으나 과거 식민 지배의 유산과 제도의 급진적인 변화, 상이한 언어와 종교·문화 등 민족 간 갈등의 요소를 안게 됐다. 이로 인해 모로인들은 종족적, 종교적 소수자 입장에 놓이게 됐다. 이 가운데 1960년대 후반 시작된 정부와 모로인 간의 군사적 충돌로 12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집과 터전을 잃은 난민들은 350만명에 달했다.

1972년 모로인들은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을 결성했다. 1976년 필리핀 정부와 MNLF는 첫 번째 평화협정으로 ‘트리폴리 평화협정’을 체결해 민다나오와 술루 제도의 14개 주에 무슬림 자치 지역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협정 이행 단계에서 자치 실현이 어려워졌고, 이에 불만을 품은 MNLF 내 파벌들이 이탈해 다시 정부군과 대치했다. 결국 1977년 MNLF의 부의장으로 있던 하심 살라맛을 중심으로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을 조직해 모로인의 투쟁을 지속하게 됐다. 이후 필리핀 정부와 MILF는 국제사회의 중재로 여러 차례 평화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후 수차례 국제사회의 중재와 협상으로 필리핀 정부와 MILF는 2012년 10월, 방사모로기본협정(FAB)을 맺었다. 이때 방사모로 지역이 민다나오무슬림자치구(ARMM)로 선정되면서 민다나오는 무슬림의 자치를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모로인과 주변 간 뿌리 깊은 갈등은 해결되지 못했다.

마긴다나오주 블루밍 체육관 앞에 설치된 평화기념비.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5.5
마긴다나오주 블루밍 체육관 앞에 설치된 평화기념비.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5.5

◆“평화 원하는가? 그럼 협약서 서명하라”

이만희 대표와 민다나오의 인연은 이 대표가 ‘지구촌 전쟁종식·평화를 이루라’는 천명(天命)을 받고 세계평화순방에 나선 지 1년 만인 2013년부터다. 이 대표는 당시 필리핀에서 안토니오 레데스마 카가얀데오로 가톨릭 대주교를 만났고, 그는 민다나오 분쟁 종식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민다나오는 유혈분쟁이 반복되는 전쟁터였고, 방문 자체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듬해 1월 이 대표는 84세의 나이로 이역만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오직 ‘평화’를 위해 평화사절단과 함께 방문했다. 이 대표는 당시 이곳을 찾은 이유로 “평화를 위해 와 달라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실 것을 믿고 향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민다나오 현지 방문 후 일련의 과정은 믿기 어려운 기적의 연속이었다.

민다나오 분쟁의 본질이 가톨릭-이슬람 간 종교 갈등임을 간파한 이 대표는 2014년 1월 24일 필리핀 제너럴 산토스에서 민다나오 지역 처음으로 각 종단과 민다나오 주립대 학생, 국제청년단체 회원 등 1000여명과 평화걷기대회를 진행했다.

걷기대회를 마친 후 이 대표는 종교의 이름으로 분쟁을 조장하는 행위를 강하게 질타하며 “창조주의 뜻은 전쟁이 아닌 평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참석자들에게 “평화를 원하는가 전쟁을 원하는가” 묻고 평화를 원한다면 손을 들도록 했다. 모두가 평화에 손을 들자 이 대표는 “그렇다면 평화협약서에 서명하라”며 현장에 있는 가톨릭-이슬람 측 인사를 앞으로 불렀다.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이 지역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이 자리잡게 됐다. HWPL 평화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는 민다나오 학교 학생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이 지역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이 자리잡게 됐다. HWPL 평화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는 민다나오 학교 학생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필리핀 대통령도 법도 교황도 하지 못했던 민다나오 유혈분쟁 종식의 서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평화협정 소식을 접한 라모스 필리핀 전 대통령은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나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감사를 전했다.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소식을 접한 정부군과 MILF 측은 바로 다음날인 1월 25일 예비평화협정서의 마지막 부속문서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내용은 민다나오 남부 방사모로 지역에서 무슬림 자치권을 인정하고 MILF를 점진적으로 무장해제한다는 것으로, 18년간 진행한 양측의 협상과정 중 가장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그해 5월 필리핀 의회에서 이른바 방사모로기본법이 입법 절차에 돌입했고, 지난 2018년 8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 법안에 최종 서명하면서 민다나오 내전은 사실상 종식됐다. 이 대표의 중재로 실현된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확실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DPCW 각 조항은 HWPL의 평화활동으로 실현되고 있으며 특히 10조 평화문화 전파는 평화교육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8년 1월 23일 이만희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HED) 관계자가 ‘평화교육’ MOA를 맺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5.12
DPCW 각 조항은 HWPL의 평화활동으로 실현되고 있으며 특히 10조 평화문화 전파는 평화교육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8년 1월 23일 이만희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HED) 관계자가 ‘평화교육’ MOA를 맺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5.12

◆교육·종교 등에 평화문화 정착

민다나오 평화협정 이후에도 HWPL은 수십년간 전쟁 속에 있던 이 지역에 ‘평화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민다나오 평화협정 체결 6개월여가 지난 2014년 8월 11일 민다나오 주민 1만 2000명이 잠보앙가시에서 열린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걷기대회에 참여했다. 이듬해 5월 25일 민다나오 주 정부는 이만희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리기 위한 ‘HWPL 평화기념비’를 세웠고 협정 날인 1월 24일을 ‘HWPL의 날’로 지정했다.

2016년 1월 24일에는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민다나오 이슬람 무장투쟁을 이끌어 온 MILF 주둔지인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에도 ‘HWPL 평화기념비’가 세워졌다. 민다나오 평화가 HWPL을 통해 이뤄졌음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3년 후 MILF 의장 무라드 에브라힘을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하는 자치 정부가 출범했고, MILF 전투원의 무장 해제를 통해 민간으로의 편입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평화 무드가 진행되고 있다.

평화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평화협정 후 필리핀의 수많은 초중교 학교가 HWPL의 평화교육을 받는 평화학교로 지정됐다. 또 민다나오 내에 평화박물관이 건립된 것을 비롯해 종교간 대화의 장이 활성화되고, 필리핀 국가교육부와 HWPL은 평화교육 MOA(합의각서)를 체결했다.

민다나오의 평화는 이제 세계 평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2016년 1월 다시 필리핀을 찾았던 이 대표는 HWPL 평화학교 선정식에 참여해 이같이 말했다. “때가 되면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지구촌도 평화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하늘의 뜻과 인류의 소망을 위해 평화의 세계를 함께 이뤄갑시다.”

2018년 5월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시 코타바토시에서 열린 세계평화선언 4주년 걷기대회. ⓒ천지일보 2022.5.17 (제공: HWPL)
2018년 5월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시 코타바토시에서 열린 세계평화선언 4주년 걷기대회. ⓒ천지일보 2022.5.17 (제공: HW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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