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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 신용의 반석 위에 현대그룹 터 세워
기획

[현대이야기<5>] 아산 정주영, 신용의 반석 위에 현대그룹 터 세워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전자 등에서 40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기업경영 컨설턴트, 기업초빙강의 전문가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천지일보 2022.6.10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전자 등에서 40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기업경영 컨설턴트, 기업초빙강의 전문가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천지일보 2022.6.10

 

1982년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아산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1982년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아산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5> 아산 정주영 회장의 신용경영

대기업 회장답지 않은 검소한 삶

20년 넘은 소파·10년 넘은 TV

세상 떠날 때까지도 절약 생활

 

빚 얻어 시작한 사업 화재사고 당해

신용으로 담보 없이 자금 빌려 재기

“인간은 한번 신용 잃으면 그걸로 끝”

대한민국 근래 백 년 기업 역사의 큰 족적을 남긴 정주영 회장은 현재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위대한 기업인과 부자로 추앙받고 있다. 정 회장은 미국 타임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 기업인’으로 기록돼 있으며, 1970년대 후반 세계 부자 9위에도 기록될 정도지만 생활은 소박하고 검소했다. 살면서 한번 신은 구두와 양복을 10년 이상 신고 입고 다닐 정도였다. 또한 20년 넘게 소파를 사용하고 10년이 넘은 17인치 TV를 본 뚝심의 경영인으로 2001년 3월 21일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도 이런 절약 생활을 유지한 인물이다. 

◆‘신용 잃으면 안 된다’는 철학 몸속에 배
현대그룹의 사훈을 보면 누구라도 정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해할 수가 있을 정도로 ‘근면·검소·친애’로 돼 있다. 그는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보통 사람같이 알뜰하고 평범하게 살며 한국 사회에 크게 기여했다. 정 회장은 현재 북한땅 통천면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본인의 머리와 몸 하나만 믿고 가출을 4번이나 강행했다. 또 그는 인천과 서울에서 막노동하면서도 제일 먼저 기상해 일했고 가장 늦게 남아서 일을 마무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실하게 일하고 신용을 잃으면 안 된다는 자신만의 철학이 몸속에 배어 있었기에 이런 습관이 가능했다고 본다.

이후 서울의 조그만 쌀가게 점원으로 취업해 성실하고 근면하게 쌀 배달부터 시작했다. 자전거를 못 타던 정주영 회장은 손수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서 처음에는 쌀 한 가마니를 싣고 배달했다. 신체가 건강했던 정 회장은 자전거에 쌀 3가마니를 한 번에 싣고 고객에게 신속하게 배달하면서 주인의 믿음을 얻었고, 그를 눈여겨본 주변의 고객들로부터도 전적인 신용을 얻게 됐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쌀가게 주인의 아들을 보던 쌀가게 주인은 경리와 부기도 잘하던 정 회장의 장래를 예측해 그에게 쌀가게를 넘겨줬다. 정 회장은 이를 토대로 돈을 벌어서 자금을 축적했다.

평소 정 회장은 “나는 정직과 성실로 주인의 신뢰를 얻어 쌀가게를 물려받았고 믿을 만한 청년이라는 신용 하나로 자금을 담보 없이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며 “상품에 있어서의 신뢰,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서의 신뢰, 공사의 질에 있어서도 신뢰, 그 밖의 모든 부문에 걸친 신용의 총합체로 오늘날의 현대그룹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말만 보아도 신용을 중요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킨 정 회장의 삶을 엿볼 수 있다. 

1934년 아산 정주영 회장이 일하던 복흥상회서 아주머니와 함께.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1934년 아산 정주영 회장이 일하던 복흥상회서 아주머니와 함께.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신용하지 않는다”
정 회장이 27세 되던 해 조금 모은 자금과 신용을 담보로 쌀가게 단골이던 오윤근이라는 자로부터 거금을 빌려서 아도서비스(현대자동차 공업사)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차렸으나 화재로 전 재산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빚을 얻어 시작한 사업이 망했으나, 정 회장에게 돈을 빌려준 오윤근은 정 회장의 신용과 믿음을 보고 재차 담보 없이 자금 3500원을 빌려줬다. 이후 착실하게 돈을 번 정 회장은 빚을 이른 시일 내로 다 갚고 재기에 성공했다.

정주영 회장은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면 헤쳐 나갈 길이 없다고 바로 체념한다”면서 “그러나 찾지 않으니까 길이 없지, 필사적으로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면 해결 방법이 다 나오게 된다”고 역설했다. 즉 긍정적인 사고는 일을 성공시키는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만 연구, 노력하게 만든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특히 정 회장은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 부지런함으로 신용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정 회장은 “부지런함은 자기 인생에 대한 성실성이므로 나는 부지런하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용하지 않는다”며 “일상생활에서부터 아주 작은 일까지 올바른 생각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일생을 운영해 나가다 보면 신용은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싹이 터 자라기 시작해서 부쩍부쩍 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말하는 대로 의심 없이 믿어주는 커다란 신용을 갖게 된다. 이것은 개인과 기업, 국가 모두에 해당한다. 신용은 명예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복구된 한강인도교. (제공: 현대건설)
복구된 한강인도교. (제공: 현대건설)

◆“돈보다 소중한 것은 고객과의 신용”
정주영 회장이 1947년 현대토건을 설립한 동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군부대에 수리한 자동차를 가져다주고 수리비를 받으러 갔는데, 당시 한 건설업자가 큰돈을 받는 걸 보고 ‘건설업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구나’ 해서 시작했다는 설과 은행에서 큰돈을 빌리는 사람들을 보니 건설업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를 목격한 정 회장이 곧바로 건설사를 차리게 됐다는 설이다. 

아산 정주영 회장은 건설사를 경영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사업가에게 신용은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신용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익과 신용이 맞부딪칠 때 이익에 솔깃해져서 부실 공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용을 잃고 나서야 우리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고객과의 신용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신용을 쌓는 것은 힘들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리고 쌓았던 신용을 잃었다면 다시 쌓는 데에는 처음보다 몇 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을 하면서 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튼튼한 금고에 넣어 두었다면 신용은 이중삼중의 금고에 단단하게 보관하고 더 잘 지켜야 합니다.”

즉 신뢰는 신용이고 신용은 곧 자본이라는 ‘신용창출 및 부창출’의 기본 인식이 정주영 회장의 몸속 뼈까지 침투돼 오늘날의 현대그룹을 세웠다고 판단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용은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고, 매일 정성을 들여서 가꾸면 시간이 흘러서 큰 나무가 되고 모진 바람과 같은 시련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고 기업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수호신이 된다는 게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1952년,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1952년,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아이젠하워 숙소 공사로 미군 신용 얻어
현대건설을 세운 뒤 북한의 침공으로 한국전쟁인 6.25가 벌어지자 정 회장은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갔다. 1952년 12월 방한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부산의 미군 전사자들을 위해 세운 유엔군 묘지 참배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 당시 미군 통역장교로 일하던 동생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정 회장은 유엔군 묘지에 푸른 잔디를 깔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문제는 이때가 한겨울이었는데 겨울철에도 묘지가 파릇파릇해야 한다는 미군정의 말을 듣고 모든 국내 건설사 등이 포기한 겨울철 잔디 공사를 정 회장은 공사비 3배를 달라고 하며 추진했다.

낙동강 주변에 겨울철 보리를 떠다가 트럭 30대에 싣고서 유엔군 묘지에 심어 잔디 대신 보리로 푸른 광장을 만들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흐뭇한 감정으로 참배하고 떠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미군이 건설하는 현장 수주는 현대건설이 단독으로 차지하면서 현대건설은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됐다. 

또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 시에는 전쟁으로 미국 대통령이 숙박할 곳이 없는 게 정부의 큰 고민거리였다. 마침 운현궁을 숙소로 정하긴 했지만, 운현궁에는 서양식 거실이 없었다. 화장실 공사와 난방공사를 급하게 실시해야 하는데 이 공사도 현대건설이 따냈다.

공사 수주는 했으나 문제는 한국에 태어나서 한 번도 양변기를 본 적이 없었기에 정 회장은 국내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양변기를 만들 수 있는 모든 물품과 정보를 찾아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방한까지 15일밖에 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12일간 밤낮의 생고생 끝에 공사를 조기에 무사히 마치면서 미군들의 신용을 얻게 됐다.

고령교 복구공사. (제공: 고령군청)
고령교 복구공사. (제공: 현대건설)

◆정부와의 신용 지키기 위해 적자도 감수 
그리고 적자를 크게 보면서도 정부와의 신용을 지킨 사례를 들어보면 정주영 회장만의 신용경영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6.25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1953년 4월 정 회장은 그 당시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1935년 개통)를 복구하며 전쟁의 화염 속에 현대건설의 깃발을 꽂았다. 물자 수송과 지리산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복구가 시급했던 고령교는 총길이 195m로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장대교량공사(공사 낙찰금액 5475만환)였다. 

기초만 겨우 남고 거의 100% 완파된 상태인데다 계절별로 가늠할 수 없는 낙동강 수심, 극심한 인플레이션(예: 쌀 한 가마니가 40환에서 4000환으로 100배 폭등)으로 자재비와 인건비들이 대폭 올라서 공사 중단의 위기에 처했다. 대한민국에서 발주한 공사 중 최대 규모였던 고령교 복구는 건설 환경도 열악하고 장비도 없었다. 당시 말이 복구공사지 신축공사나 다름없었다. 애써 박아 놓은 교각은 급류에 휘말려 금방 사라져 버리기도 한 난 공사였다. 그래도 정 회장은 사업하는 사람은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이라고 강조했다.

동생 정순영의 20평짜리 기와집과 매제 김영주의 20평짜리 집, 남아 있던 자동차 수리공장까지 팔아가면서 1955년 6500만환이 넘는 적자를 보고도 정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신용으로 고령교 복구를 완공했다. 이 같은 뒷배경에는 정주영식 신용경영이 빛을 봤다.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목숨이 끊어지는 것처럼 그것으로 끝이다”라는 정 회장이 남긴 명언에서도 그의 ‘신용경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정주영 저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맡은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마무리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 회장에게 일거리를 몰아줬고, 이는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지는 기회가 됐다. 

정부의 신용을 얻은 정 회장은 1957년 9월 당시 대한민국 최대의 단일공사였던 한강인도교 복구공사를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또 1959년 주한미군의 인천 제1도크 건설공사, 오산 미군비행장 활주로공사, 소양강댐공사 등을 수주하고 더욱더 발전하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된 현대건설 번창의 기반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한강 인도교 공사. (제공: 현대건설)
한강 인도교 공사. (제공: 현대건설)

끝으로 정주영 회장의 애창곡은 ‘이거야 정말(김란영)’ ‘쨍하고 해뜰날(송대관)’ ‘가는세월(서유석)’ ‘만남(노사연)’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들은 정 회장이 기분이 고조되면 현대그룹 신입사원 환영 만찬이나 송년회 때 자주 부른 노래로 그의 성격과 인생을 살펴볼 수가 있다.

(정리 = 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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