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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중의사 유원 “의술로 아픈 사람에게 힘이 되고파”
사회 사회일반 인터뷰

[피플&포커스] 한국인 중의사 유원 “의술로 아픈 사람에게 힘이 되고파”

침술·쑥뜸 통해 건강 회복돼
특허받은 의료기기 발명 힘써
해외 의료활동 통해 봉사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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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유원 중의사가 최근 천지일보와 침술과 쑥뜸의 효능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07.06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저 역시 오랫동안 아파봤기 때문에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해요. 제가 침술·쑥뜸으로 효과를 봤기 때문에 환자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CGV 피가디리극장 2층 상가에는 남다른 이력을 가진 중의사가 있다. 학창시절 축구 국가대표 선수를 시작으로 공무원, 유학원 원장, 천호식품 본부장, 감리원, 발명특허가, 작가 등 20여 가지 직업을 거친 유원 중의사(65)가 그 주인공이다.

중국, 필리핀, 캐나다, 호주 등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한 그를 최근 만나 중의사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상가의 한쪽에 자리 잡은 그의 일터에는 금색으로 된 끝이 조금은 뾰족한 도구, 생소한 모양의 쑥뜸 도구, 그리고 마네킹에 걸려 있는 흰색 옷 등 다소 생소한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그가 8여년에 걸쳐 발명한 의료기기 특허발명품들이다.

전기 관련 자격증을 무려 7개나 소유한 유 중의사는 마네킹에 걸려 있는 옷을 가리키며 “이 제품은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침을 맞는 것이 전기가 통하는 원리인 것처럼 복부와 등의 혈 자리에 집중적인 통전으로 세포의 전기를 살리는 발명특허출원 기능성 반도체 옷”이라며 “전기가 내부적으로 통하기 때문에 통증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특허품 10여개는 대부분 건강을 위한 의료기기들이다. 이는 자신이 가진 침술과 쑥뜸 재능을 살려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결과물이다. 그가 침의술, 쑥뜸, 건강식품을 주요 내용으로 쓴 책도 웬만한 작가 못지않게 10여권이나 된다.

이렇게 그가 건강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에는 학창시절이 있다. 그는 운동선수 집안 출신이다. 유 중의사도, 그의 아들도 학창시절 축구 국가대표를 지냈다. 그의 조카는 한일월드컵의 전설로 불리는 고(故) 유상철 선수다. 하지만 학창시절 무기력증 등 몸이 안 좋았는데, 병원을 찾아가도 병명을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20대 후반 나이에 천호식품 본부장을 지낼 당시에도 누구보다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몸소 체험해 자연스럽게 건강식품에 관심을 쏟게 됐다. 그 당시 달팽이 엑기스가 건강식품으로 인기였다고 유 중의사는 회상했다.

이후 30대 초반 나이에 유학원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에 있는 상해중의학원에 입학해 중의학을 공부했다. 침질과 뜸질, 지압 등 중의학을 적용한 의술을 배우면서 자기 몸에 직접 해보는 열정도 불태웠다.

이 시간은 그에게 삶의 중요한 변환점이 됐다. 침술, 쑥뜸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침술, 쑥뜸, 단식 등의 치료를 통해 오랫동안 병명 없이 안 좋았던 몸이 많이 치유됐습니다. 제가 그 효능을 직접 겪고 나니 침술, 쑥뜸 치유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어요.”

유 중의사는 “침술의 고수, 쑥뜸의 고수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며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열심히 배웠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에 와서 침학원을 차려 침 놓는 방법을 가르쳤다. 한의사들도 자신에게 배움을 청하러 왔다고 한다. 그는 “학원을 차릴 정도면 제가 얼마나 침에 꽂혀 있었겠어요?”라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환자에 대한 질문에 “한 번은 직장암에 걸린 사람이 찾아왔는데, 직장암에 걸리면 대변이 잘 안 나온다”며 “그런데 침을 맞고 난 후 대변이 나와서 그 환자가 정말 감사해했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의료 봉사를 자주 다녔다. 필리핀, 캐나다, 호주, 베트남 등 현지에서 침술 등 의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이때 임상을 통해서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았다고 말했다. 그간 침을 통해 번 돈을 대부분 해외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해외에 나가면 의료에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많아요. 저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많이 옵니다. 그중 대부분은 부모 없이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이, 병든 부모와 사는 자녀 등 가슴 아픈 사연의 사람들이 많아요. 의료 활동도 해주고 용돈도 주고 했어요. 너무 가난하니깐요. 다음 날이 되면 그들은 과일 등으로 감사의 표시를 해 와요. 그들에겐 그것이 전부인 것이죠.”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술로 해외 봉사활동을 하던 때가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침 넣는 실력 등은 여러 지역에까지 소문이 나서 그를 영입해 가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강원도에서 유명한 조양병원과 부산에 있는 성신병원에서 한방센터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현재 유 중의사는 전기기술, 침술, 쑥뜸 재능을 이용해 의료기기를 개발해 아픈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그가 특허를 낸 의료기기 발명품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수십 번의 실패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특허를 낸 의료기기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유 중의사는 “10여년 가까이하는 것을 보면 어떤지 모르겠냐? 단골도 꽤 있다”며 웃어보였다.

이제 그는 또 다시 해외 의료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가 발명한 의료기기와 함께 다시 해외에 나가 소외되고 가난하고 아픈 환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달란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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