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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묻다
오피니언 천지시론

[천지일보 시론] 귀천(歸天)…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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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땅을 보면 온통 천지다. 거미줄같이 많은 길에 대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길은 시작과 끝이 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첫발을 내딛고 가다 보면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길이고 길의 사명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충고와 같은 속담도 있으며, 길은 길인데 곁길도 있다.

그런데 모든 것엔 표면적인 것과 이면적인 것이 있다. 다시 말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태초의 말씀에 대해 난하주에 보면 ()’이라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세상의 길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필요한 길 즉, 표면적 길이라면 신앙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자 인류가 소망하는 천국과 영생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에 이르기 위한 또 다른 차원의 이면적 길 즉, 참 길도 있으니 곧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며 나아가 약속이 기록된 성경이다.

따라서 성경 곧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천국 가는 길이며 나침반과도 같은 생명의 길임을 발견하는 데 어렵지 않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늘 바쁘게 움직이는 이 세상의 길도 중하지만, 이보다 더 중한 또 다른 차원의 참 길 곧 성경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에 대해 일명 천재 시인으로 회자되고 있는 시인 천상병님의 귀천(歸天)’이라는 시 귀가 떠오른다.

 

歸天

.(1연 생략)

.(2연 생략)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의 생전에 인사동 골목에서 부인과 함께 귀천이란 찻집을 운영할 때 필자도 젊은 날 찾아가 모과차 한 잔을 마시며 구석 한켠에 부끄럽고 촌스럽게 붙어 있던 그의 시를 읽던 일도 이젠 한 장의 추억으로 남게 됐다. 그때는 그 시귀의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시인은 자신의 육체의 죽음을 앞두고 나 하늘로 돌아간다고 하니, 원래의 곳으로 간다는 의미며, 이 세상은 잠시 소풍구경한 것에 비유했을 뿐이니 이래서 본향(本鄕)’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며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시인이 생전에 그 의미를 알았던 몰랐던 그 시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상당하다.

이제 앞서 언급한 과 또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고 깨달아야 할 게 분명히 있다.

그것은 일장춘몽과도 같은 이 세상의 짧은 삶은 마치 본향을 찾아가 누리게 될 영원한 삶을 위한 하나의 예행연습과도 같이 지극히 짧은 찰나(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차원의 높고 높은 이 길에 대해 대략을 살펴보자.

육천년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을 보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이 있었고, 여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돕는 배필을 붙여 그 동산을 지키고 다스리게 했으니 역사의 시작이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고 결국 하나님 대신 사단 마귀의 소속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이 지키고 다스리라고 맡겼던 지구촌마저 가지고 갔으니 세상은 하나님 대신 마귀의 소유물이 되었고,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고 영생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 생명나무로 나아오는 길을 막아 버렸으니 지구촌의 현실이며, 사망권세 아래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하나님은 긴긴 세월 죄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지만 범죄한 아담의 유전자로는 죄만 가중할 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이룰 수가 없었다.

이에 하나님은 새 일을 설계해야 했고, 예수님이 그 새 일의 주인공으로 오심으로 이 땅엔 하나님(생명나무)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잠시 열렸다.

하지만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왔지만 그 시대는 오늘날과 같이 범죄자 아담의 유전자로 난 자들로서 역시 영접하지 않았고 대신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돌아가시며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해야 했으니 곧 새 언약 계시록이다.

이제 이천년이 지나 새 언약 계시록은 성취시대를 맞아 약속대로 다시 오신 예수님은 계시록을 다 이루셨다.

새 언약 계시록을 이루신 예수님은 약속한 목자와 하나되어 성취된 계시록의 사건을 증거하고 있으니 아담 범죄로 막혔던 길은 비로소 육천년 만에 완전히 열리게 된 것이다.

이천년 전 하나님에게로 나아오는 길이 예수님이었듯이, 오늘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완성되는 이때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길은 곧 이 시대 약속한 목자(이긴 자 새요한, : ).

인류는 지금까지 길을 잃고 방황하며 살아왔지만, 이젠 거리마다 표목이 서고 안내하는 길표가 나부끼고 있으니 길을 모른다 핑계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오늘도 길을 물어 본향을 찾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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