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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 서울 시가지 모습… 북악산 소나무 ‘굴곡진 한국史’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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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사진으로 보는 역사] 1920년대 후반 서울 시가지 모습… 북악산 소나무 ‘굴곡진 한국史’ 대변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프랑스서 입수
조선총독부 청사 일대 전경 모습
日, 1926년 식민지배 더 완고히 해
사진 한 장에 담긴 의미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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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 북악산에서 바라본 세종로, 태평로 일대 서울 시가지 모습. 경복궁 내에 지어진 조선총독부 청사(빨강색 원)와 절벽 낭떠러지 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대치하고 있다. 휘어지고 구부러진 소나무의 모습이 일제 식민지의 수난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 잘 이겨내길 바라는 메시지를 담은 듯하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7.12

절벽 끝에 휘어진 소나무 인상적

끈질긴 생명력 한민족 상징하는 듯

소나무처럼 역경 이겨내길 기원하는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본지가 1920년대 후반 북악산에서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 전신)를 중심으로 바라보이는 서울시가지 전경을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로부터 제공받아 단독 공개한다.

절벽 위에 굴곡진 소나무 뒤로 총독부 청사부터 태평로, 세종로 일대와 한양도성 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멀리 용산구 일대와 한강, 그 너머까지 보인다. 이 사진은 정 기록연구가가 프랑스에서 구했다. 특이한 점은 절벽 낭떠러지 바로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 소나무 한 그루의 모습을 촬영자가 포커스로 잡아서 그 뒤로 경성(서울) 중심지역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일제는 1926년 경복궁 내에 그 일부를 헐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완공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더욱 완고히 했다. 소나무는 굴곡진 한국사를 대변하듯 여기저기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가지를 길게 뻗어 마치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소나무의 모습과 바로 뒤에 보이는 조선총독부 청사,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서울 한강 중심일대가 사진 한 장에 담겼다.

소나무와 조선총독부 건물이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데, 그럼 이 둘을 같이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조선총독부 건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은 당시 식민지배를 받는 조선인에 대한 고통과 안타까움을 표현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절벽 바로 위에 자라고 있는 굴곡진 소나무를 함께 보여준 것은 이런 모진 상황 속에서도 그래도 한민족이 꿋꿋이 이겨나가길 바라는 ‘희망’을 불어넣어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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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김현진 기자] 9일 북악산 탐방로 청와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청와대와 경복궁이 보이며, 그 뒤로 세종로, 태평로, 신문로 일대가 보인다. ⓒ천지일보 2022.07.12

지난 4월 6일부터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북악산 탐방로가 54년 만에 개방됐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특수 부대원이 침투한 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폐쇄됐던 북악산 탐방로다. 굳게 닫혔던 이곳 탐방로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과 함께 54년 만에 개방됐다.

실제 북악산 탐방로를 통해 가본 결과 청와대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복궁 일대가 약 100년 전 사진과 가장 흡사한 위치로 보인다. 현재는 많은 소나무들로 무성하고 굴곡진 소나무들도 여럿 보인다. 옛 사진에 등장한 실제 주인공 소나무가 어떤 것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굴곡진 소나무들이 조선총독부 청사가 헐리고 복원된 경복궁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또 회복되고 많은 발전을 이룬 서울의 모습을 뿌듯하게 내다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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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사진으로 경성일보 사옥(현 서울도서관 터) 모습. 광화문 뒤로 조선총독부 청사가 아직 들어서기 전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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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일보 별관(현 프레스센터 터)과 조선총독부 청사(1926년 건립)가 있어 1926년 이후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2.07.12

나머지 사진은 경성일보 사옥(옛 서울시청사, 현 서울도서관)과 경성일보 별관(현 프레스센터)의 모습이다. 옛 서울시청사 터에 있는 경성일보 사옥 뒤로 광화문이 보이는데 조선총독부 청사가 없어 1910년대 찍은 사진이다. 경성일보 별관이 있는 사진에는 멀리 광화문 뒤로 조선총독부 청사가 보여 1926년 이후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다.

경성일보사는 초창기 경성부 대화정에 있다가 1914년 대한제국 경위원 터(현 서울도서관)로 옮겼다. 1923년 사옥이 화재로 절반 소실되자 신세계백화점 본점 터에 위치했던 경성부청(서울시청)을 이곳으로 옮기고 경성일보사는 지금의 프레스센터 터에 기존 건물을 철거한 후 1924년에 별관을 완공한다.

1926년은 일제가 식민지배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일제는 1910년 강제병합 후 1년 만인 1911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계획했고, 1912년 경복궁을 개조해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을 본격화했다. 이 때문에 경복궁에서 흥례문과 주변 행각, 영제교 등이 철거됐다. 그리고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완공했다. 이 시기에 일제는 경성역(1925년, 현 서울역), 조선신궁(1925년, 남산 중턱에 세움), 경성부청(1926년, 현 서울시청) 등의 서울의 식민지 경관을 완성하는 핵심 건축물을 완공해 식민지배를 더욱 견고히 했던 것이다.

이같이 조선총독부 청사를 기준으로 경성부청, 경성역까지 연결되는 식민지 상징 건물들과 조선신궁이 있는 남산의 일부가 사진에 원경으로 담긴 것은 곧 일제강점기의 아픈 시절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사진 속 소나무처럼 절벽 끝에 매달려 이리저리 휘어졌으나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잘 이겨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뤄냈다. 이 사진을 남긴 당시 외국인은 조선 곧 대한민국이 역경을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같은 구도로 사진 촬영한 것이 아닐까. 익명의 그가 남긴 사진에서 오늘날 우리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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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김현진 기자] 9일 북악산 탐방로 청와대전망대에서 바라본 경복궁 일대 ⓒ천지일보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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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김현진 기자] 9일 북악산 탐방로 청와대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와대, 경복궁 주변 일대 ⓒ천지일보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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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김현진 기자] 9일 북악산 탐방로 청와대전망대에서 바라본 경복궁 일대. 1996년 옛 조선총독부 청사가 헐리고 이후 복원돼 현재의 모습이다. ⓒ천지일보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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