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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나오 40년 유혈분쟁 불러온 가톨릭-이슬람 종교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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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2>] 민다나오 40년 유혈분쟁 불러온 가톨릭-이슬람 종교갈등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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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9일 이만희 대표가 피델 발데스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과 만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라모스 전 대통령은 민다나오 평화협정에 대해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이라고 평했다. (제공: HWPL)

‘모로인 학살사건’ 계기로 내전, 12만명 죽고 난민만 350만명 발생

 이만희 HWPL 대표, 평화중재… “대통령도 못한 일 해내” 찬사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 피델 발데스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지난 2014년 1월 24일. 무려 40년간 분쟁과 피로 얼룩졌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극적으로 평화의 물결을 일으킨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에 대해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이같이 극찬했다. 대체 어떤 갈등이었기에 이와 같은 평가가 나오는 것일까. 과거 아시아 최대 유혈 분쟁지역으로 꼽혔던 필리핀 민다나오에서의 갈등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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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07.13

필리핀 남부의 섬인 민다나오는 필리핀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섬으로 알려졌다. 면적은 9만 4630㎢으로 한국의 영토와 비슷하다. 인구는 약 2200만명으로 가톨릭교도(63%), 이슬람교도(32%)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개신교도는 5%이다. 

필리핀에 이슬람교가 전파된 것은 14세기로, 남부 말레이계 사람들에 의해 전파됐다. 이슬람교는 1380년경 민다나오섬을 시작으로 필리핀 각지에 퍼지긴 했으나 16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의 가톨릭화 정책으로 현재는 민다나오 지역에서만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가톨릭교는 327년간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 전파됐으며, 17세기 중반부터 주민들 사이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개신교의 경우 스페인에 이어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부터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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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07.13

민다나오에는 필리핀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약 400만명의 모로인(무어인이라는 의미로 ‘무슬림’을 뜻함)이 살고 있다. 필리핀 군도는 16세기 스페인과의 전쟁을 겪었고,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은 미국에 필리핀 지배권을 양도했다. 이때 식민 정책에 저항하는 필리핀 민중에 의한 투쟁이 시작됐다.

1946년 필리핀은 공식적인 독립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거 식민 지배의 유산과 정치, 경제, 사회 제도의 급진적인 변화, 상이한 언어, 종교, 문화 등 종족 정체성으로 인해 갈등이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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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독립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의 폭력적 갈등은 1968년 모로인에 대한 학살사건에서 촉발됐다. 이를 계기로 1970년대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이 결성됐다. 이들은 민다나오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을 개시했다. 이후에도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Moro Islamic Liberation Front)이 창설되는 등 크게 4개의 조직이 생겼다.

갈등은 40년 넘게 해결되지 못했다. MILF는 민다나오 최대 무장 단체로 부상하면서 모로인의 민족자결을 위한 투쟁을 지속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이 같은 투쟁은 대규모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돼 많은 피해를 초래했다. 12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난민은 350만명에 달했다. 이후 수차례 국제 사회의 중재와 협상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필리핀 정부와 MILF는 2012년 10월 방사모로기본협정(FAB)을 체결했다. 그러나 모로인과 주변 간 뿌리 깊은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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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8일 무슬림들이 필리핀 남부 도시 코타바코의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Xinhua)

이러한 과정 가운데 2014년 1월 24일 이만희 HWPL 대표의 중재로 가톨릭 대표자인 페르난도 카펠라(Fernando R. Capalla, 민다나오 다바오) 전 대주교와 이슬람 대표자인 이스마엘 망구다다투(Esmael G. Mangudadatu)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 마귄다나오 주지사가 이 대표가 준비한 평화 협정문에 서명하면서 전쟁종식과 세계평화 협약에 합의했다.

이후 2014년 3월 방사모로포괄협정(CAB)이 체결됐다. 해당 협정은 외교·국방 등 중앙정부의 핵심 권한을 제외하고 민다나오 내 지도자 선출, 행정 구역 편성, 경제 개발과 부의 분배 등 민다나오 자치를 인정했다. 평화 협정에 담긴 합의 사항이 필리핀의 입법·사법·행정부의 민주적인 법적 절차를 거쳐 이행됐고, 그 결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됐다.

현재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국제기구, 정부 및 비정부 기구로 구성된 국제 사회가 참여해 민다나오의 평화 프로세스가 이뤄지고 있다. 2019년 2월 전 MILF 의장이자 현 자치 임시 정부의 수반인 무라드 에브라힘은 MILF 전투원의 무장해제와 함께 사회 복귀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평화 협정 합의 사항에 따라 2021년 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무장해제를 이행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국제 사회의 건설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민다나오에는 평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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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체결을 이끈 이만희 HWPL 대표와 협약서에 서명한 가톨릭 이슬람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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