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순국 90주년 추모 (15)
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순국 90주년 추모 (15)

image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고종황제(高宗皇帝) 망명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으니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덕수궁(德壽宮) 함녕전(咸寧殿)에서 식혜를 마신 이후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괴로워하다가 30분 만에 붕어(崩御)하는 불행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하여 이회영(李會榮)이 추진했던 고종황제의 베이징(北京) 망명사건이 실패로 끝나면서 국내 체류 6년 만에 다시 베이징으로 망명했으니 1919년 2월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회영이 거처하였던 곳은 베이징 자금성 북쪽 후고루원에서 살았는데 우당(友堂)의 처소는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가  베이징을 방문하게 되면 필히 찾게 되는 장소로서 독립운동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한편 이회영은 3월에 상하이(上海)에 도착하였으며 4월에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가 수립되었으나 평소 황실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우당은 독립운동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정부라는 조직 형태를 구성하게 되면 구성원 간에 자리다툼으로 인한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독립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우당은 정부라는 행정조직보다는 독립운동을 총괄하는 본부를 조직하자고 주장하였으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수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이회영은 상해임정에 참여하지 않고 1920년 3월에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바로 이 무렵을 전후해 독립운동의 방략과 독립운동 단체의 조직론 그리고 장차 광복을 대비하여 건설할 국가상에 대하여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회영은 아나키즘(無政府主義)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우당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소개한다.

1923년 당시 베이징 대학에 재학중이던 이정규(李正奎)는 ‘이상농촌(理想農村) 양타오촌 건설계획’과 관련해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이회영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하여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여기서 이상촌 건설 계획이란 구체적으로 후난성 한게이현 둥팅호 호반에 위치한 양타오촌의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중국인 아나키스트가 자신의 땅을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공동경작, 공동소비, 공동소유하는 협동체를 조직해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중국인 아나키스트의 계획이 재중한인들에게 인삼을 재배케 하고 농부를 이주시켜 촌락을 건설하면 장차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이회영의 처소를 방문하였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지면구독신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