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순국 90주년 추모 (16)
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순국 90주년 추모 (16)

image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에 최종적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회영(李會榮)은 1920년 3월 베이징(北京)의 거처가 있는 후루고원으로 다시 왔는데 그 이후 베이징 대학에 재학 중인 이정규(李正奎)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15회에서 소개하였듯 이정규가 이회영을 만난 이유는 “이상농촌(理想農村) 양타오촌 건설계획”과 관련해 조언을 구하고 지도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우당(友堂)은 이정규에게 아나키즘에 대하여 자세히 문의를 하였는데 사실 아나키즘에 대하여 이정규를 만나기 전에 유자명을 만나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이정규와 오랜 시간 문답 형식으로 대화를 한 이후 아나키스트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1924년 4월 말, 이회영은 베이징에서 이을규(李乙奎), 이정규 형제, 백정기(白貞基) 등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결성하였다. 아울러 그가 주선하여 약간의 자금을 마련하여 ‘정의공보’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는데 ‘정의공보’는 그의 편집 방침에 따라 독립운동(獨立運動)에 이론을 제공하고 아울러 공산주의(共産主義)를 이론적으로 비판하였다.

1927년 김종진(金宗鎭)이 이회영의 거처를 방문하였는데 그는 김좌진(金佐鎭)의 사촌동생으로서 3·1운동 당시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베이징으로 망명하였는데 여기서 이회영을 만났던 것이다.

김종진은 우당과의 대화를 통하여 감화를 받았으며 독립운동은 무장투쟁(武裝鬪爭)을 원칙으로 해야 하고 만주가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선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의미에서 당장 만주로 가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관련 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러한 뜻을 이회영에게 말하니 우당은 김종진에게 대한제국(大韓帝國)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 출신인 신규식(申圭植)을 소개하였다. 이와 관련해 신규식은 김종진을 운남군관학교(雲南軍官學校)에 입교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김종진은 7년 만에 톈진(天津)에 거주하고 있었던 이회영을 다시 만났다.

한편 김종진을 7년 만에 다시 만난 이회영은 그에게 아나키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으며 결국 그를 아나키스트로 전향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지면구독신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