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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상 한국전쟁유족회장 “학살 진상규명, 갈 길 멀지만 중단 없어”
사회 노동·인권·여성 인터뷰

[인터뷰] 윤호상 한국전쟁유족회장 “학살 진상규명, 갈 길 멀지만 중단 없어”

진실화해위 진상규명 촉구
“조국 있는 한 진실규명될 것”
전쟁 없는 평화 통일 이뤄지면
‘한국전쟁 추모공원’ 조성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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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조성민 기자] 윤호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회장이 28일 유족회 사무실에서 아버지가 당한 학살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천지일보 2022.07.29

[천지일보=조성민 기자]  “한국전쟁 직후 아버지를 잃고 여태까지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이후 저와 같이 학살 피해를 경험했지만 글도 몰라 피해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유가족을 만나면서 학살 진상규명에 발 벗고 나서게 됐습니다.” 

윤호상(75)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장은 28일 서울 봉은사로의 한 허름한 5층 유족회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 이같이 토로했다.

방문한 유족회 사무실에는 그 흔한 에어컨도 없이 낡은 선풍기 2대만 ‘다닥 다닥’ 소리를 내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벽에 걸린 게시판은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내용이 빼곡히 나열돼 있어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그간 유족회의 노력이 느껴졌다.

이날 윤 회장은 수많은 세월의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증언했다.

◆남한 단독정부 반대한 아버지

“아버지는 학교를 운영하면서 월사금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필 공책 같은 학용품을 학생들에게 나눠줬으며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같은 일제의 황국 신민화 정책에 적극 반대했습니다.”

윤 회장은 먼저 아버지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학산 윤윤기 선생이었다. 아버지는 일찍이 신학문을 배워 전남 공립 사범학교 입학해 교육가의 길을 걸었고 고향으로 내려와 양정원이라는 사설 학교를 설립했다. 

윤 회장의 아버지는 일제 말기 독립운동 단체였던 건국동맹에 가입해 독립운동자금도 지원했다. 이어 해방 후에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동참했고 단독정부 노선에 반대하며 좌우합작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여운형이 암살되고 다음 해 남한 내 단독정부가 들어서자 이에 실망한 아버지는 고향으로 낙향했다. 

“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 달 뒤 경찰이 아버지를 경찰서로 소환해 고문했고 철사 줄을 온몸에 묶어 총탄 3방으로 아버지를 학살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고작 6살 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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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조성민 기자] 윤 회장은 아버지 ‘학산 윤윤기 선생’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천지일보 2022.07.29

◆‘빨갱이’ 꼬리표와 차별

박정희 정권 시절 윤 회장은 식품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입사 동기들은 승진을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만년 대리에 머물렀다. 이에 회사 총무과에 그 이유를 따지니 경찰 정보과에서 윤 회장의 동태를 살피고 중요한 자리는 절대로 주지 말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 길로 회사에서 나왔다. 당시 그는 본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자신과 똑같이 학살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재가해 길러줄 사람이 없어 고아원과 남의 집 머슴살이를 전전하며 살아온 유족들을 만났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은 글을 몰라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학살 피해 신청서조차 적지 못했다. 윤 회장의 나이 60세가 됐을 때 이들을 위해 남은 일생을 봉사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윤 회장과 같은 피해자들이 모여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가 만들어졌다. 유족회는 한국전쟁 전후에 자행된 학살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모인 단체다. 지난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뒤 전국유족회를 결성하고 피해자들의 진상 규명·명예 회복과 가해자 처벌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유해 발굴과 위령제도 지냈다. 하지만 군사정부는 유족회 활동을 ‘반국가사범’ 이른바 ‘빨갱이’로 탄압하기 시작했고 유족회는 이후 긴 시간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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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조성민 기자]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회원들이 2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한여름 뜨거운 태양빛 아래 한국전쟁 기간 학살 피해자에 대한 빠른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천지일보 2022.07.29

◆진실화해위 시작, 난관은 아직도 많아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 마침내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했다. 1기 진실화해위는 6년간 활동했다. 이들은 전쟁과 독재 속에서 발생한 인권유린의 진상들을 파헤쳤다. 하지만 수십 년 사건의 세월에 비해 5년의 활동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그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10년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2020년 진실화해위 2기가 시작됐다.

반면 유족회에 따르면 현재 2기 진실화해위는 유족회와 하나 되지 못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유족회는 진실화해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아 진상 규명에 시간을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확한 법정 조사기간도 유족회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2기 진실화해위가 언제까지 조사하는지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또 출범한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사 의뢰 약 8500건 중에 102건을 해결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조사를 못 한다는 진실화해위 측 설명에 윤 회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60명인 진실화해위 조사관 수도 너무 적습니다. 조사관 1명이 희생자 100명을 찾아야 하는데 과도한 업무로 하나둘씩 퇴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경찰·국방부·국정원 등 그 당시 학살 가해 국가단체가 아직도 정확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학살 희생자들은 빨갱이며, 죽일 사람 죽은 일’이라고 말하는 일부 극우 성향 여론도 진실규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유족회가 1961년도 집계한 당시 학살 희생자 수는 약 137만명, 유족 숫자는 약 500만명, 60년 후 지금 남아 있는 유족은 겨우 20만명이 채 안 되고 이마저도 점점 고령으로 유족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윤 회장은  “늑장을 부리는 정부 관련 단체, 고령으로 수가 줄어드는 회원들, 점점 잊혀가는 국민들의 관심이 유족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얼굴에서 포기나 절망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우리는 나이 들어 이 땅에 없어져도 조국이 있는 한 결국 진실은 밝혀집니다. 우리가 겪었던 아픔이 후대에 되풀이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한국전쟁 추모공원을 DMZ에 조성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평화를 기원하길 원합니다. 유족회의 바람은 우리 민족이 남북통일을 이뤄 단군의 자손이 가장 훌륭한 민족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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