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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전투(東垣戰鬪)
오피니언 칼럼

[고전 속 정치이야기] 동원전투(東垣戰鬪)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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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 진희(陳豨)의 반란을 평정한다는 구실로 일으킨 동원전투는 사실상 공신제거가 목적이었다. 진희의 반란은 사소한 일이었고, 진짜 목적은 그 과정에서 전쟁의 신 한신과 유격전의 명수 팽월이라는 최고 군사실력자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전국시대 무인의 기풍을 마지막으로 발산했던 항우를 제거하고 이룩한 한의 위업은 유방 부부의 잔혹함으로 큰 손상을 입었다. 처음부터 기획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유방은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었다. 한신과 팽월은 부하의 밀고로 모반죄에 걸려들었다. 공교롭다고 하기에는 음모의 냄새가 짙다.

팽월은 진희의 반란 진압에 참전하라는 명을 어겼다고 하나 실제로 중병에 걸렸을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유방이 진희를 평정한 후 스스로 찾아가 사죄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장 호첩이 가도 죽고 가지 않아도 죽을 것이라면 무력으로 항거하자는 건의를 듣고 망설이고 있었다.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면 진희의 반란에 동조했을 것이다. 한신은 초왕으로 있다가 밀고에 걸려 회음후로 강등됐다. 정치의 냉혹함을 비로소 느낀 그는 조용히 자숙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미 정권을 위협할 인물을 제거하려는 유방의 생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유방은 한신에게 진희 평정에 참전하라고 명했다. 한신은 병을 핑계로 따라가지 않았다.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심이었다면 가장 군사적 능력이 뛰어난 한신에게 그에 상당하는 책임을 맡겼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대로 그가 진희를 평정하는 유방을 따라서 참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진희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누명을 씌워 죽였을 것이다.

유방이 왜 한신에게 참전명령을 내렸을까? 자신이 자리를 비운 수도에 위험인물인 그를 두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진희 평정에는 두문불출하던 장량마저 별동대 책임자로 참전했다. 한신은 참전을 거부했다. 유방은 명분 하나를 확보했다. 여후가 그것을 이용했다. 마침 한신의 사인이 죽을죄를 짓고 감금됐다. 여후는 그를 협박해 한신을 밀고하라고 사주했다. 한신은 싱겁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기 회음후열전’에서 한신이 진희에게 반란을 사주했다는 기록도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진희와 한신은 목숨을 건 반란을 상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둘의 은밀한 대화를 사마천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록에는 한신과 진희가 정원을 거닐면서 밀담을 나눴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후에 조작됐다는 사실을 행간에 숨기려는 사마천의 의도가 숨어 있거나, 사건 조작이 매우 서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에서 진희가 반란을 일으킨 곳까지는 엄청나게 먼 거리다. 게다가 이미 유방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 상황에서 먼 거리를 오가며 연락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수시로 변하는 전쟁터에서 진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한신이 아녀자의 속임수에 걸렸다고 한탄한 것은 한신답지 않은 후회였다. 유방이 한신을 가장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그렇다면 명수잔도, 암도진창, 배수진, 수공 등의 다양한 작전으로 연전연승한 한신이 자신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촉으로 좌천되던 길에 여후를 만난 팽월은 구명해달라고 애원했다. 여후는 그를 안심시키고 수도로 데려와서는 유방의 온건한 조치에 항의했다. 그녀는 팽월과 같은 위험한 인물은 지금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신 제거에는 유방보다 여후가 더 적극적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던 유방에 비해, 여후는 유방 사후를 걱정하고 더 강경했을 것이다. 이미 한신을 제거했던 여후는 팽월을 죽이지 않고 촉으로 좌천한 유방이 못마땅했다. 팽월과 한신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한신이 윗길이다. 유방은 한신이 죽은 이상 팽월은 그리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후의 지적을 받고나서 후환을 남기는 것보다 뿌리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역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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