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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이어지는 회식·카톡… “‘괴롭힘 인지능력’ 높여야”
기획 사회기획

[여전한 ‘K-갑질’①] 퇴근 후 이어지는 회식·카톡… “‘괴롭힘 인지능력’ 높여야”

업무와 사생활 구분 모호 ‘비일비재’
‘재택 끝나자 갑질 돌아와’ 외신 보도
최근 3년간 ‘갑질’ 인지 설문결과 발표
 
폭언·사적 지시·음주 인지도는 높지만
근로법 금지 해당 항목도 여전히 많아
“‘카톡 금지법’·노동부 사례명시 절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이달로 4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불합리한 지시에도 ‘까라면 까’야 하는 한국형 갑질인 일명 ‘K-갑질’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모습이다. 그로 인해 직장 내 경직되고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각종 부작용과 폐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직장 내 괴롭힘 설문조사 결과와 다양한 판례·사례들을 소개하고 각 분야에서 놓치거나 마련하지 못한 부분을 점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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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천지일보 2022.07.15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나고 회식이 더 많아졌습니다. 가족 병간호 때문에 회식에 못 갔는데 부장님이 새벽에 카톡으로 저를 비난하며 ‘회식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2차·3차까지 이어지는 회식에다가 업무 후 카톡까지 하는데 너무 괴롭습니다.

#2. 쉬는 날 업무 관련 카톡이 왔는데 제가 업무지시는 일과시간 중에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고, 저의 소관 업무이기 때문에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사가 10분 넘게 욕설을 퍼부었고 전 신변의 위협을 느껴 다음날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불합리한 지시에도 ‘까라면 까’야 하는 한국형 갑질인 일명 ‘K-갑질’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업무의 연장선’으로 여겨지는 회식을 비롯해 퇴근 후 업무와 관련한 문자까지 직장 갑질이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는 CNN이 ‘한국, 재택근무 끝나자 갑질도 돌아와’라는 제목으로 갑질을 ‘그 나라의 악습 직장문화’라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한국 기업들의 갑질 문화를 다루면서 한국 발음 그대로의 ‘Gapjil’을 사용하는 등 K-갑질은 해외까지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반면 해외 선진국들의 사정은 우리나라와 차이를 보인다. 1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일명 ‘로그오프 법’을 시행한 프랑스의 경우 노사는 근무시간 외 연락에 대한 사내 규칙을 협의해야 하고 근무시간 외 연락할 경우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또 유럽의회 고용위원회에서는 지난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EU법에 명시할 것을 요청했고, 미국·독일·이탈리아에서도 퇴근 후 연락을 제재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하루 8시간 근무가 끝나면 회사를 떠나 개인의 자유를 마음껏 느껴야 한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확산 중이다.

그러나 한국의 직장은 여전히 퇴근 후에도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2차·3차 술자리가 이어질 뿐 아니라 카톡으로 연락하고 응답하지 않으면 괴롭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휴일과 명절에도 출근을 강요하고 휴일에 체육대회나 MT를 열며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커녕 ‘가족 같은 회사’를 이유로 24시간 365일 회사와 연결될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육아직원편의’ 감수성 하위

직장갑질119와 (재)공공상생연대기금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년간 직장 내 괴롭힘과 감수성에 대해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그 결과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는 평균 73.8점으로 나타났는데 2020년 69.2점, 2021년 71.0점에 비해 소폭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는 갑질 상황을 인식하고 불합리한 요소를 감지하는 정도를 말한다.

응답자 특성별로 보면 감수성 지수는 여성(77.1점), 공공기관(76.8점), 20대(76.2점)에서 높았고, 상위관리자(70.9점), 중간관리자(71.2점), 남성(71.3점) 순으로 낮았다. 점수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하는 정도가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여성과 남성의 감수성 점수 차이는 5.8점이었는데, 여성을 배제하는 논리인 이른바 ‘펜스룰’(12.7점)을 비롯해 반말(9.9점), 여직원근무(9.9점), 음주강요(9.7점), 휴일명절근무(9.4점), 회식문화(9.1점), SNS(8.5점), 폭언(8.3점)에서 남녀 간 차이가 큰 편이었다.

감수성이 높게 나타난 항목은 폭언(86.1점), 모욕(85.6점), 사적용무지시(82.5점), 따돌림(80.6점), 음주강요(80.6점)로 나타났다. 반면 감수성이 낮게 나타난 항목은 육아직원 편의(53.7점), 저성과자 해고(57.6점), 퇴사직원 책임(58.8점), 맡긴 일 야근(59.6점), 채용공고 과장(61.0점) 순이었다.

나이별로 보면 20대는 76.2점으로 50대(73.9점)과 2.3점밖에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펜스룰(18.2점), 퇴근 후 SNS(11.9점), 장기자랑(11.1점), 회식·노래방(8.4점), 휴일명절근무(8.3점), 휴일 체육행사·MT(7.9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직급별로 보면 일반사원의 감수성은 74.3점으로 상위 관리자(70.9점)에 비해 3.4점 높았다. 반면 이들은 휴가사용 제한(15.5점), 맡겨진 일 야근(14.8점), 휴일·명절근무(12.8점), 퇴사직원 책임(11.6점), 펜스룰(11.2점), 퇴근 후 SNS(10.6점)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직장갑질 감수성이 가장 많이 높아진 항목은 음주문화(16.3점), 위압적 교육(10.9점), 퇴사직원 책임(10.8점), 맡겨진 일 야근(8.7점), CCTV 감시(8.6점) 순이었다.

30개 문항 중 16개 문항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해당한다. 또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현행법 위반 소지가 큰 내용도 포함됐다. 갑질 감수성이 가장 낮게 나타난 육아직원 편의(어린아이를 키우는 직원의 편의는 봐줘야 한다)는 남녀고용평등법(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과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다. ‘저성과자 해고’(일을 못 하는 직원에 권고사직은 필요하다)는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에 해당된다. 갑자기 그만둔 직원에 대해서도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시간 외 근무를 했으면 수당을 지급해야 하며, ‘채용공고 과장’은 채용절차법에 금지돼 있다.

◆“직장인 ‘갑질 인지능력’ 높여야”

이에 대해 전은주 노무사는 “음주문화 지표 점수가 눈에 띄게 높아졌는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회식문화를 축소시키면서 원하지 않는 회식문화에 대한 갑질 감수성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윤수 노무사는 “폭언·모욕·사적용무지시 등에 대해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식하고 이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데, 정작 노동관계법 위반에 해당하는 채용공고 과장, 퇴사직원 책임, 저성과자 해고, 육아직원 편의 등에 대해서는 인식하는 수준이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체 평균 대비 하위 지표들에 해당하는 괴롭힘의 유형과 사례에 대해서도 노동부의 매뉴얼에 반영하고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통해 직장인들의 인식과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 고질병처럼 자리 잡은 ‘갑질’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20년에는 퇴근 이후 카카오톡 등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시간을 근로시간 범위에 포함하는 개정안이 발의됐고, 문재인 정부는 ‘업무시간 외 카톡금지법’을 공약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변두섭 변호사는 “정부와 국회는 ‘퇴근 후 카톡금지법’을 제정해 세계적 수치인 ‘K-갑질’을 근절해야 한다”며 “노동부가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힘 유형에 ‘K-갑질’ 사례를 명시하고 이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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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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