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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보다 더 가혹한 현실… ‘반지하 퇴출’ 실효성 의문
사회 사건·사고

영화 기생충보다 더 가혹한 현실… ‘반지하 퇴출’ 실효성 의문

반지하 32만 가구·70여만명
서울·수도권, 전국 96% 차지
‘반지하(banjiha)’ 외신 보도도
 
건축 불허토록 법 뜯어고친다
기존 20만호 유예·순차 시행
원희룡 “재발 방지 역량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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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등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 인근 빌라촌에서 한 주민이 침수피해로 어지럽혀진 반지하 방을 정리하다가 잠시 앉아 당시의 상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08.10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현실은 영화 ‘기생충’보다 더 혹독했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 좁고 습한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이 다급히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물이 순식간에 차오르면서 손쓸 방도가 없었다. 지면보다 아래에 있는 반지하 주택 구조로 인해서다.

지난 8일부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많은 비가 퍼부으면서 11일 오전 6시 기준 주택과 상가 3755동이 침수되고 사망자 11명, 실종자 8명이 발생하는 등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주택침수는 3453동이 잠긴 서울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도권에 쏟아진 115년 만의 역대급 폭우로 서울 관악구·동작구 반지하 주택에서는 애꿎은 취약계층 주민들이 죽어 나갔다. 침수 피해를 본 반지하 주민들을 비롯해 처참한 피해 상황을 마주한 인근 주민들은 치를 떨었다.

그중에서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발달장애 가족 3명이 반지하에 갇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자매들의 모친이 사고 당시 병원 진료를 위해 집을 비웠을 때 벌어진 일이다. 

이날 작은딸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살에 현관문이 닫혀버렸는데 수압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울먹였고, 그게 두 사람의 마지막 통화였다.

인근 주민들도 갇혀 있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방범창을 뜯어내는 등 사투를 벌였지만 지면보다 아래에 있는 반지하 구조 탓에 물이 순식간에 차오르면서 손쓸 방도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지하 발달장애인 사망은 또 있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주택 반지하에서는 이곳에 살던 50대 여성이 지난 8일 밤 물이 차오른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익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집에 함께 있던 노모는 간신히 탈출했지만 A씨는 키우던 반려동물을 구하려다 미처 나오지 못했다. 이처럼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서는 저지대에 쏠린 수압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다거나 지면과 맞닿은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을 온몸으로 뜯어냈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전해졌다.

국내 저지대 거주 취약계층 피해가 속출하자 외신도 영화 ‘기생충’을 들어 한국의 반지하를 보도했다. 특히 ‘반지하(banjiha)’라는 한글 발음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예방 대책의 부재가 키운 인재라고 꼬집었다. 이번 신림동 반지하 일가족 사망 사건을 두고 “‘기생충’에 등장하는 아파트와 거의 똑같다”며 “이곳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은 주인공 가족이 집 밖으로 물을 퍼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AFP통신도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강남이 자연재해에 너무 취약한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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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스틸컷

◆“반지하 건축 전면불허 추진”

통계청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의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은 32만 7320가구다. 서울에만 전체의 60%가 넘는 20만 849가구가 몰려있다. 참사가 벌어진 관악구에 가장 많은 2만여 가구가 있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이 전국의 95.9%를 차지한다. 평균 가구원이 지난해 기준 2.3명인 점을 고려하면 70만명이 넘는 이들이 반지하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서울에서 이러한 지하·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서울 시내 기존 지하·반지하 주택도 사라진다.

서울시는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마련했다고 1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우선 시는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하기 위해 정부와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반면 대안이 부족한 상태여서 실효성 논란도 일고 있다. 실제 성과를 내려면 기존 세입자의 대체 주거지 마련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거상향 사업과 주거 바우처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반지하만큼 저렴한 주거비용이 나와야 하는 데다 비주거용으로 전환한다는 집주인의 유인도 이뤄져야 하기에 추진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게다가 공공임대주택 물량 확보 상황, 주거 바우처 예산 규모 등 세부계획이 전무하다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특히 2010년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를 경험하고 2012년부터 반지하 건축 불허 조항이 시행 중임에도 반지하 주택이 4만호 이상 건설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건축법 11조에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축하려는 건축물의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거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면’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법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4만호 이상의 반지하가 우후죽순 들어섰다는 점에서 불허 규정이 무용지물에 불과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참사가 벌어지자 시는 부랴부랴 상습 침수나 침수 우려 지역을 떠나 지하층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키로 했다. 법 개정에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이번주 내로 건축허가 시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각 자치구에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할 계획이다.

또 차츰 반지하 주택을 줄여나가는 ‘반지하 주택 일몰제’도 추진한다. 이는 기존에 허가된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을 순차적으로 없애는 제도다.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에 더는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비주거용 용도 전환을 이끌고, 참여하는 건축주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아울러 시는 이달 내 주택의 2/3 이상이 지하에 묻힌 반지하 주택 약 1만 7000호에 대해 현황 파악을 진행한다. 이후 시내 전체 지하·반지하 주택 20만호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위험단계(1∼3단계)를 구분해 관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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