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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30년, 中 ‘삼십이립’에 韓 ‘화이부동’ 화답의 동상이몽 해석
국제 기자수첩

[기자수첩] 한중수교 30년, 中 ‘삼십이립’에 韓 ‘화이부동’ 화답의 동상이몽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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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중국 동부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외교장관 회담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양측은 칩4동맹, 사드 등의 현안에 대해 확연한 입장차를 확인했다. (출처: 연합뉴스)

양국이 즐겨 쓰는 화이부동

같은 한자성어 해석 정반대

서방에 좌지우지 말아야

, 한미동맹 숙명 우회 표현

정권 따라 중국 정책 달라져

국제 위상 걸맞는 언행 요구돼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24일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삼십 이립(三十 而立)’이라고 했다. 유교 사상을 걷어낸 지 오래인 중국이지만 만나 교분을 다져온 지 30년째 되는 날, 하필 공자(孔子)의 경험담을 덕담의 소재로 꺼낸 것이다.

당대 최고 중국 외교관의 덕담 화법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이 덕담이 갖는 형식논리다. 사십 세 불혹(不惑), 오십 세 지천명(知天命), 육십 세 이순(耳順) 등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하다.

앞서 중국은 공자사상을 비하하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유교 사상이 사회주의사상을 좀 먹는 봉건주의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진핑 집권 이후 그의 통치 철학인 조화사회건설과 중국몽실현, 사회주의가치관, ‘부정부패 근절청렴등을 강조할 때 자주 공자사상을 인용했다고 중국 전문가들이 소개하고 있다. 이념적 불순함을 정치지도자 눈높이에서 학술적으로 재단하는 대신, 어쩔 수 없이 봉건시대를 살았지만 보편적으로 현명한 언행과 지혜를 설파한 선현의 말을 정치선전의 수단으로 사용해 국민 눈높이에 맞춘 측면이 뚜렷하다.

가까운 이웃나라, 어쩌면 아직도 자국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은, 특수관계의 한국과 맺고 있는 외교관계를 표현하는 데 국내정치의 기법과 논리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이 덕담이 갖는 내용적 의미다. 공자는 나이 30세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일에도 움직이지 않는 신념이 서게 됐다고 스스로의 경험담을 제자들에게 들려줬다.

주변의 어떤 풍파가 닥쳐도 30년지기 한중관계 만큼은 절대 흔들리지 말고 영원히 지켜나가자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으로는 자국 최대 맞수인 미국과 특수관계(동맹, ally)를 맺고 있는 한국에 대한 뼈 있는 충고로도 들린다. 쉽게 말해 우리는 나이 서른에 스스로 확고한 신념에 이르렀는데, 너희도 좀 스스로 중심을 잡고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중국의 덕담에 한국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군자는 남과 화목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남의 의견에 동의해 무리를 지어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지난 89일 중국 청도 한 호텔에서 왕이 외교부장관을 만난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이 말을 했다. 서로의 공통적인 이익을 찾되, 차이점은 인정하자는 취지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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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일인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 겸 공동보고서 제출식이 열린 가운데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오른쪽 다섯번째),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오른쪽 여섯번째) 등 양국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그런데 이 사자성어는 지난 몇 년간 왕이 부장이 한국 측에 되풀이했던 말이기도 하다.

요약해 보자면 양국은 같은 사자성어를 놓고 인과관계 혹은 논리적 선후 맥락을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박진 장관은 지난 30년 동안 무려 72배 증가한 경제 교역 규모의 상호 혜택을 침해하지 말고 유지하자면서도 우리는 한미동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니, 이를 잘 헤아려 외교안보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안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반면 왕이 부장이 한국에 즐겨 써온 화이부동한국이 미국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무턱대고 미국 의견에 휘둘려 무리(동맹)를 지어 어울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사자성어 본연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맥락을 이해해 보자. 지난 201593일 오전 10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베이징 천안문 광장 성루 맨 앞줄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관람했다. 중국에서 반파시스트전쟁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이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과 북한 측 인사들은 3국 정상의 자리 뒷줄에 앉았었다. 그 해 122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공식 발효돼 고주파 의료기기, 항공기 등유 등 958개 품목에 대해 관세가 즉시 철폐됐다. 한중 교역은 중국식 표현으로 가속기를 밟는다는 의미의 가유(加油)’ 그 자체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한국 정가에서는 이런 한중관계와 전혀 다른 방향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압력으로 종말 고고도 지역 방어 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THAAD, 사드)’라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무기체계가 도입된 것이다. 겉으로는 북한 미사일을 방어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수천 킬로미터 밖의 군사적 움직임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를 갖춘 이 무기체계의 특성상 북한용이 아닌 중국이나 러시아용으로 해석됐다. 그러니까 중러 양국의 전략적 군사안보 이익을 침해하는 조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FTA 발효 며칠 뒤 미국 요청을 받아들여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한다. 물론 수차례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어느 날 아주 상기된 표정으로 사드 도입 방침이 발표했다. 중국은 충격에 빠졌고 극심하게 반발했다. 어찌된 일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탄핵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소위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를 추가 배치를 하지 않는다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되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 등 이른 바 ‘3에 합의한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사드는 지금 배치 단계이고, 정상 가동 되려면 멀었다는 식으로 물밑에서 중국을 달랬지만, 중국은 음으로 양으로 한국에 대한 중국식 경제제재를 이어왔다.

그런데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바로 다음 날인 810일 윤석열 정부의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사드를 정상화하겠다는 얘기가 공개됐다. 곧바로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겠다는 정정 발표가 있었지만, 중국 외교가는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중국 조야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한국의 학자들을 찾아와 따지듯 물었고, 한국 학자들은 그런 게 아니라라며 해명을 하다가 삿대질까지 하며 다퉜다는 소리도 들린다. 윤석열 정부 역시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 이후 미중 갈등의 대리지점인 사드로 시달리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대중국 포위 전략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최근 몇년간 미국 주도로 나온 인도태평양전략과 그 구체적인 동맹체인 쿼드(미국, 인도, 일본, 호주), 파이브아이즈(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은 모두 직간접 한국과 닿아있다. 중국과 큰 규모의 교역으로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큰 경제성장을 구가해 온 한국으로서는 다른 편으로 미국과의 한미동맹 관계 때문에, 이런 미국의 반중국 포위 전략은 매우 곤혹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한중은 한국전쟁 이후 40년간 적성국 지위를 유지하다가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따라 수교를 맺었다. 이 당시 러시아와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대거 수교를 맺었다.

그런데 한중수교 30년에 양국 외교 수장이 주고 받은 사자성어 화이부동은 불가피하게 동상이몽이다. 중국 탓만 할 수 없다.

한국은 30년 전보다 확실히 성장했다.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군사적, 문화적으로 지구촌에 미치는 영향력 면에서 확실히 그렇다. 이제는 외교도 그래야 할 때다. 확실한 외교적 시장조성자는 아니더라도 이제 숱한 종속변수 중에서 중요한 몇개의 변수는 독립변수화 해야 한다.

그러려면 외교 개념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동맹(ally)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동맹은 누군가에 맞서기 위해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과 부쩍 우의를 과시하는 러시아이지만, 해외에서 중러 동맹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단호히 손사래를 친다.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국과 맞선 미국에 함께 맞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화이부동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국도 가끔 북한과의 관계에서 북중동맹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이 역시 아시아적 화법일 뿐이다. 동맹이라는 말은 어쩌면 한국 사람들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언제든 친구를 위해 나의 이익을 송두리째 버리고 거래처 사람을 죽여야 하는 거래조건이 바로 동맹인데 말이다.

한국 외교는 동맹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해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는 사고와 언행을 보여줘야 한다. 박진 장관의 화이부동은 여전히 힘없는 약소국이 대국에 양해를 구하는 논리로 사용됐다.

한국 외교가 왕이 부장의 화이부동을 올곧이 실천할 날을 한국인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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