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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조선소 건립 11년 만에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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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야기<17>] 현대중공업, 조선소 건립 11년 만에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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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전자 등에서 40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기업경영 컨설턴트, 기업초빙강의 전문가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천지일보 2022.09.02

<17>조선업 세계 1위 현대중공업

조선소공사·선박건조 동시 추진

전세계 조선업계 “놀라운 일” 평가

 

日과 합작 시도… ‘경영간섭’에 결렬

韓, 日보다 생산능력 큰 도크 설계

수출주도형 조선사업화 채택에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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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전경. (출처: 뉴시스)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의 영국은행으로부터 4300만불 차관 도입 성공으로 시작된 조선 사업에 대한 상세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갈음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상 현대의 조선 사업은 1970년에 현대건설 내부에 조선사업부를 신설하면서 시작됐다.

선박의 첫 수주는 1971년 그리스 리바노스로부터 받은 26만톤급 원유운반선 2척으로 시작했다. 당시 화제거리가 된 것은 정주영 회장만의 경영방식인 조선소공사와 선박건조를 동시에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1974년 2월 조선소 1단계 준공을 마무리했고 그해 11월에 그리스 리바노스에 1호선을 인도하면서 전 세계 조선업계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고, 현대는 조선 사업을 가장 빨리 성공한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했다.

◆긴장과 감동의 역사적인 첫 ‘진수식’

현대그룹은 원유선을 제조하기 위해서 영국의 Appledore Shipping 회사로부터 새로운 조선소를 건설할 인원과 기술을 전수받았다. 기타 부분은 덴마크의 선박전문 기술자들과 일본의 설계기술자들을 울산으로 스카웃해 부족한 국내기술을 보강했고, 마침내 현대 고유의 기술로 26만톤의 원유운반선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74년 2월 15일 오전 조선소의 수문이 열리면서 바닷물이 한순간에 도크(dock)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크 안에는 길이 345미터, 높이 27미터, 상갑판 넓이가 서울운동장 축구장의 3배에 이르는 26만톤급 초대형 유조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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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해양 엑슨자켓작업 중에 정주영 회장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저 거대한 무쇳덩이 배가 과연 뜰 것인가” 하는 우려 속에 정주영 회장도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고 전해졌다. 이날은 현대중공업의 역사적인 첫 진수식 날이기도 했고, 한국 조선업 역사상 최초로 초대형 원유운반선이 실제로 바닷물 위에 뜨는 날이었다.

항만청 관계자들은 “엔진 시동 없이 배를 띄우는 것은 항해규칙 위반”이라는 웃지 못 할 이유로 허가에 뜸을 들였고, 선장들은 방파제 입구가 좁아서 배가 못 빠져 나갈 것이라고 우려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배가 망가지면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질 것이다”라고 하면서 선장 대신 배 위로 올라가 지휘봉을 잡았고 드디어 거대한 유조선은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도크에서 벗어나 바다로 나아갔다. 당시 현장에 모인 종사자들은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고 울며,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회장도 콧등이 시큰둥했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선박제조에 투입된 기능공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1991년 정주영 회장은 동아일보에 연재한 ‘나의 기업 나의 인생’ 에세이에서 현대중공업의 첫 진수식에 대해 이같이 기억했다. 당시 울산의 미포만 일대가 세계 1위 조선강국의 대표 제조 중심지로 떠오르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새옹지마’도리어 기회 된 일본과의 합작결렬

정주영 회장의 또 다른 회고에서는 “조선업도 1996년 처음으로 시도했을 때 일본 기업과 합작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현대의 기업경영에 간섭했고, 또 생산 규모도 한국의 경제여건을 봐서 5만톤급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시설 정도면 충분하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은 오기가 나서 일본의 어느 조선소(미쓰비시 중공업)보다도 더 큰, 세계 1위의 생산능력을 갖춘 도크를 설계해 큰 리스크를 안았지만 세계 조선업 사상 처음으로 배와 도크를 동시에 완공했다고 회고했다.

1991년 5월 정주영 회장은 소비에트연방의 칼미크 자치국을 방문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연설을 하며 현대중공업이 왜 처음부터 초대형 26만톤급 유조선 건조로 시작했는지에 대한 상세 설명을 했다. 사실 처음에 현대중공업은 일본과 합작회사가 될 뻔 했었다. 당시 한국의 전체 산업군이 그랬지만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과 합작하는 게 조선업 진입에 유리했고, 마침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현대의 조선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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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년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 도 입 서명을 마치고 악수를 나누는 정주영 회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하지만 미쓰비시의 최고 경영자는 처음부터 현대를 견제하기 위해서 한국경제 규모에 적합한 사업이나 하라는 미지근한 자세를 보였다. 그리고 1970년 중국이 미국에 우호적인 한국 및 대만 정부와 거래하는 기업들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주 4원칙’을 발표했다. 그러자 일본 미쓰비시는 중국 눈치를 보며 현대중공업과 합작을 못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중공업은 1993년 발간한 현대중공업 20주년 사사에서 이 사건을 ‘새옹지마’라고 표현했고, 일본이 정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어렵더라도 처음부터 세계 수준에 맞서는 수출주도형 조선사업화를 채택하는 큰 동기가 돼 오늘의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 조선회사로 성장 했다고 적혀 있다. 

◆현대중공업, 세계 선박 건조량 1위 우뚝

정주영 회장은 사실 현대중공업의 조선 사업을 처음부터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기에 타 경쟁회사들보다 빠르게 급속 성장을 하고 1972년 조선소 기공식 이후 11년 만인 1983년에는 건조량 기준 조선사업부문 세계 1위의 기업이 됐다. 

그리고 창업 40년 만인 2012년에는 세계 조선업계에서 최초로 선박인도 누적톤수가 1억GT(총톤수)를 넘기는 기적을 올렸다. 특히 1994년 국내 최초로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을 인도하는 등 신기술 개발로 만든 LNG 선박이 급성장하면서 경영실적도 호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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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년 울산조선소 기공식.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이런 수요의 증가는 세계적인 LNG선박 기술력을 보유한 현대중공업에게 수주 물량이 한꺼번에 쏠렸다. 통계에 따르면 LNG선박 수요는 2030년까지 대폭적인 증가가 예상된다고 나오고 있어 향후 현대중공업의 성장 자금줄이 될 것으로 본다.

현대는 LNG선박의 엔진인 LNG DF(디젤가스 이중연료 추진) 엔진시장을 선점했고, 2020년 기준 MAN사의 DF엔진인 ME-G1엔진 점유율은 46.2%, WinGD의 X-DF 점유율은 45.2%로 거의 50%를 독점 공급중이다.

따라서 국내 조선 사업 회사인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도 DF엔진만은 품질이 보증되고, 안정성이 입증된 현대중공업 엔진을 이용해서 선박을 건조중이며 엔진 채택률은 대우가 46.2%, 삼성이 38% 정도이다.

2015년 기준 세계 선박 건조량 순위에 1위에서 4위까지 한국회사들이 차지했는데, 1위는 현대중공업 626만톤, 2위는 대우조선해양 365만톤, 3위는 현대삼호중공업 328만톤, 4위는 삼성중공업 307만톤으로 나왔다. 일본 조선회사인 오시마조선은 겨우 131만톤, 나무라조선 62만톤, 미쓰비시 중공업 20만톤으로 한국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조선업은 종합엔지니어링사업으로 불리어지는데 하기와 같이 6가지가 잘 맞아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다. 

첫째는 노동집약적 사업으로 선박건조의 다양성, 대형구조물의 제작상 자동화의 한계(대규모의 기능/설계인력투입 필요)극복이다. 둘째는 자본집약적 사업으로 넓은 공장부지와 지반시설, 도크, 크레인 등의 대형설비가 하고, 선박건조 기간의 장기화로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셋째는 전방사업으로 해운산업, 에너지산업, 레저산업, 방위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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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현대중공업에서 정주영 회장(오른쪽)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출처: 아산정주영닷컴)

넷째는 후방사업으로 기계산업, 철강 및 비철금속산업, 화학산업, 건축 및 인테리어산업이다. 다섯째는 기술집약적 사업으로 기계, 전기, 전자, 건축기술 등의 융합기술이며 IT, ET, 로봇기술 등 응용기술의 확보가 필요하다. 여섯째는 글로벌 경쟁사업으로 세계 단일시장화와 한정된 고객(선사)으로 시장경쟁력이 확보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대중공업의 조선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 집념(광범위한 제철의 이용가능)과 정주영 회장의 개척정신의 추진력이 잘 융화돼 성공화 시킨 사업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정리=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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