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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매각한 현대의 반도체사업, SK그룹 효자로 환골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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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야기<20>] 우여곡절 끝 매각한 현대의 반도체사업, SK그룹 효자로 환골탈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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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09.23

 

<20>현대전자의 반도체 사업 성장과정  

1984년 정주영 회장 주도로 설립

군림 대신 직원과 ‘소통’한 정몽헌

16MDRAM 개발 등 많은 성과 내

 

LG반도체 흡수 이후 경영환경 악화  

‘왕자의 난’ 영향도… 결국 SK에 매각

세계 2위 메모리반도체회사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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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집무실에서 정몽헌 회장의 모습. (제공: 현대그룹)

1983년 정주영 회장 주도로 설립된 현대전자는 설립 초기 반도체인 메모리 개발에 집중했다. 그 다음해인 1984년 삼성전자보다는 늦었지만 드디어 64K SRAM(Static Random Access Memory)개발에 성공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당시 SRAM은 기술적으로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보다 어려운 기술이어서 반도체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참고로 DRAM은 1966년 IBM연구소의 로버트 데나드 박사가 개발한 기술이다. SRAM은 중앙처리장치(CPU)의 캐시(임시) 메모리로 사용되는 제품으로 DRAM과 비교해서 속도는 빠르지만 용량이 적고 값이 비싸며, 설계와 생산도 까다로워 수율이 잘 안 나오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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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자가 국내 최초로 양산에 돌입한 CMOS 256K D램. (제공: 현대그룹)

◆국내 최초 CMOS 256KDRAM 양산

이런 판단 하에 현대전자의 최고경영진은 우선 생산 공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강조하며 삼성전자가 개발한 DRAM 분야로도 관심을 갖고 추진했다.

하지만 자체개발은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고 판단한 현대전자는 반도체 신제품 설계도입과 하청 생산(텍사스인스투루먼트사 등)으로 몰입했다. 

따라서 현대전자는 1985년 2월 영국 인모스사에 600만 달러를 제공하고 256KDRAM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인모스와의 기술협력마저도 처참한 실패로 마감했다.

왜냐하면 당시 인모스는 SRAM 생산에 주력했던 회사였기 때문에 256KDRAM 제조기술력이 상당이 부족했다. 큰 손실을 보며 수업료를 지불했던 현대전자는 결국 1985년 8월에 인모스와 기술제휴 계약을 파기하는 동시에 은밀하게 ‘바이텔릭’사와 기술 도입계약을 체결했다. 바이텔릭사가 16KSRAM, 64KDRAM, 256KDRAM, 1MDRAM 제조기술을 제공하면서 현대전자는 살아났다. 이후 반도체사업은 시장순리에 맞춰 순차적으로 개발되면서 현대전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로 탈바꿈했다.

현대전자는 1985년 미국 텍사스인스투루먼트사와 64KDRAM 위탁 파운드리 생산을 하면서 매출액을 늘려갔으며, 1986년 8월 15일까지 100일 동안 ‘150작전’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1은 100일, 50은 수율 50%를 각각 의미했다. 150작전은 1986년 7월 8일 52%의 수율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조기에 완료했다.

따라서 1986년 5월 8일경 현대전자는 CMOS 공정으로 256KDRAM 양산을 시작했다. 그 당시 국내 DRAM 생산회사는 CMOS가 아닌 NMOS 공정을 활용해 양산 중이었다.

CMOS는 NMOS 대비 전력 소비가 적고 처리속도가 탁월하다는 장점을 가진 기술이다.

현대전자의 CMOS 256KDRAM 양산사례는 국내에서는 최초이며, 세계적으로 확대해도 일본 히타치에 이어서 두 번째로 양산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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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정부 경제연수단 일행이 1991년 4월 2일 현대전자를 방문해 컴퓨터 기증식을 진행하는 모습. 오른편 앞쪽이 정몽헌 회장. (제공: 현대그룹)

◆16년간 현대전자 최고경영자 지낸 정몽헌 

기술개발에 대한 신념은 정몽헌 회장이 부친 정주영 회장보다 두 배 이상으로 강한 경영철학을 보유하고 있었다. 즉 최고경영자는 반도체 기술자들의 개발의지를 북돋아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정몽헌 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했다.

정 회장은 “기술이 핵심이며, 기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기술 확보를 위해 얼마만큼 최고경영자 입장에서 소속사 임직원들이 일에 대한 만족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느냐, 이것이 경영자들의 최우선적인 1차 의무”라고 말했다.

또한 정 회장은 “장기적으로 사람을 키우고 기술개발의 능력을 조기에 확보해야 하며, 중단기적으로는 기술개발보다는 기술 소화력을 키우는 것이 더 소중하다”며 “소화를 해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고 점진적으로 사람을 키워 기술개발 능력을 키우는 것이 순서다”라고 주장했다. 정몽헌 회장은 위에서 군림하면서 지시만 내리는 경영자가 아니라 반도체조직 구성원들과 대화로 소통하고 포용하면서 함께 힘을 합쳐 전진시키는 진정한 리더였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1984년 현대전자 대표로 선임돼 부친이 강조한 반도체사업을 정상적으로 올려놓은 정몽헌 회장은 그 공을 인정받아 1992년 현대전자 회장으로 승진했으며, 2000년 현대전자가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될 때까지 16년간 회사의 최고경영자였다.

이 기록은 현대그룹 계열사 중에서 최장수 재임기간으로 기록됐다. 

이 기간 중 중요업적을 기술하면 카오디오 국내 최초 개발 생산 및 캐나다 수출(1986년),카폰 판매 1위 달성(1987년), 1MDRAM 생산 출시(1990년), 16MDRAM 개발 출시(1991년), 64MDRAM 개발 출시(1992년), 세계 최초 256MSRAM 생산개발(1995년), SOI 기술이용 1GBSRAM 개발(1997년), 국내 최초 디지털 HDTV 방송시스템 개발(1997년), 자동차용 비메모리 반도체개발(1998년) 등의 수많은 성과를 냈다.

정몽헌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은 다른 대기업 오너들보다 한수 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현대그룹이 문화일보를 창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몽헌 회장이 문화일보사 주요 간부들과 식사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1990년대 초반이라서 인터넷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식사 자리에서 정몽헌 회장은 휴대폰을 꺼내면서 “앞으로 미래시대의 사람들은 종이신문이 아니라 이 휴대폰으로 모든 중요 기사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식사장소에 참석한 간부들은 아무도 귀담아 경청하지 않았다. 현재 세상눈으로 바라보면 정몽헌 회장의 멀리 내다보는 경제생활문화 정보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파악할 수 있다.

과거 지하철을 타면 탑승객 중 일부가 신문을 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가 있었으나, 요즘은 누구나 자리에 착석하면 거의 80% 이상이 스마트폰으로 본인들이 원하는 기사를 클릭해 보고 있다. 이메일도 수신, 발신도 하고, 전자상거래를 이용해 은행업무도 은행에 내방하지 않고 처리하는 참으로 편안한 정보통신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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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 변경. (출처: SK하이닉스 홈페이지)

◆정부 강요로 LG반도체 인수 후 경영난

정몽헌 회장의 헌신으로 일궈낸 현대전자 반도체사업은 창립 6년 만인 1989년 세계 20위권 전자회사로 진입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IMF 구제금융 사태가 발생하자 국내 반도체산업이 일시에 위기를 맞으면서 현대전자의 불행은 시작됐다.

1990년대 들어 막힘없이 승승장구를 거듭했던 한국의 DRAM 반도체 산업은 이때부터 적자산업으로 추락했다. 수출효자 최대 성과를 내는 제품에서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사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1998년부터 김대중 정부는 본격적으로 정부 차원의 반도체산업 구조조정을 논의했다. 

김대중 정부는 반도체 과잉 중복투자를 줄이고 자국 기업들 간 경쟁을 줄이자는 좋은 의미로 대기업간 사업품목 조정했다. 이 조치로 반도체사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억울하지만, 정부가 제안한 현대전자 중심의 반도체 빅딜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1999년 4월 현대전자는 LG반도체의 청주공장을 포함 모든 시설을 2조 5600억원에 인수키로 합의되면서 거대 공룡기업 현대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발족됐다.

1998년 기준 세계 DRAM 메모리 반도체 2위인 현대전자와 5위인 LG반도체가 통합됐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했음에도 정부의 강요로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한 현대전자는 이때부터 자금난을 겪었다. 경영환경의 악화로 인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고, 현대전자의 재무구조는 최악의 경영상황으로 돌입했다. 더구나 2001년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혼란스러웠던 점도 반도체사업의 후속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현대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하고 다른 사업은 분사키로 했고, 반도체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채권단에서 결정한 SK그룹으로 넘겼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명도 SK하이닉스로 변경하면서 반도체사업에 사운을 걸고 매달린 결과 적자경영의 터널을 빠른 시일에 벗어났다. 현재는 SK그룹 매출의 거의 80%를 차지하는 전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회사로 변신해 SK그룹의 효자회사로 탈바꿈했다.

가정이지만 당시 현대그룹이 원만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연출돼 IMF위기에서 벗어났다면 현대전자는 현재 기준으로 보면 세계 3위권에 들어가는 반도체 통신전자회사로 성장됐을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정리=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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