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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중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다
오피니언 칼럼

[정치평론] 자유 중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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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정의 구각을 깨고 자유와 평등을 표방했던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은 민주주의 정치가 금세 꽃을 피울 것만 같았다. 급성장한 부르주아지가 시대정신을 일깨우고 있었으며, 정치참여가 본격화 된 노동자 계급의 급속한 팽창은 민주주의 정치의 동력이 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은 반혁명의 뒤통수를 맞기 일쑤였으며, 부르주아지는 노동자 계급의 진출을 오히려 두려워했다. 도처에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이 있었지만 피를 동반한 억압과 전쟁의 광기는 민주주의 정치의 길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혁명의 깃발이 내세웠던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오히려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워 냈다. 미국 민주주의 정치의 시작이었다.

미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들은 ‘미국 헌법(수정헌법)’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특히 수정헌법 제1조는 오늘날까지 근대 민주주의 정치의 상징처럼 언급되고 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신앙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권리와 불만의 구제를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는 수정헌법 제1조의 압권이다. 수정헌법 제1조가 비준된 것이 1791년 12월 15일이니까 230여년 전에 이미 표현의 자유를 헌법에 보장해 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 어느 나라든 표현의 자유 얘기만 나오면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언급하는 이유다.

미국 헌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도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 즉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담아냈다(헌법 제21조). 비록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짓밟히고 훼손되기도 했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의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이미 현실이 됐다.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발전이 이뤄낸 성과다. 아니 어쩌면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발전이 언론과 출판의 자유 위에서 구현됐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대한민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즉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민주주의 정치의 역정(歷程)에도 크고 작은 시련이 있다고 했던가.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서 갑자기 ‘표현의 자유’ 논란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3일 폐막한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시장에 한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그림이 전시됐다. 금상을 받은 이 그림을 보면 윤 대통령 얼굴을 한 기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고 있고, 이에 놀란 시민들이 피하는 모습이다. 기차의 기관사 자리엔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인물이 앉아서 윤 대통령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 그 뒤로는 검사들이 줄지어 칼을 치켜든 채 달려드는 모습이다. 최근의 윤 정부를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구도로 정치를 풍자한 그림이 적지 않지만, 고등학생 작품 치고는 메시지가 남다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윤 정부에 대한 찬반을 넘어서 누구든지 한번 씨익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번 행사를 공동 개최한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섰다. 문체부는 “행사 취지에 어긋난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심지어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해당 학생을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문체부의 지적은 매우 아프다. 날카로워서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접근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풍자만화는 언제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특히 찬반이 엇갈리는 ‘정치 풍자’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권력자의 눈에는 불편하고 불쾌하더라도 국민의 눈에 간명하고 통쾌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치 풍자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다. 단순한 비아냥이나 조소가 아니다. 건강한 정치담론의 한 영역이다. 세계 유수 언론들이 정치를 소재로 풍자만화를 싣는 이유다. 민주주의 정치가 표현의 자유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도 결국 권력을 향한 비판을 국민의 권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판이 연설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선거 때의 투표든 다를 것이 없다. 민주주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거기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행사를 개최한 문체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했는데도 정작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그림이 버젓이 금상 수상작으로 전시돼 있는데도 마냥 침묵만 지키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관을 비롯해 문체부는 어느 기관보다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불편하지만 학생의 작품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국민의 박수 소리는 더 컸을 것이다. 더욱이 ‘자유’를 신주처럼 받드는 윤 정부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문체부의 이번 경고성 발언은 ‘과유불급’이다. 권력이 칼을 들고 덤빌수록 그 저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윤석열 정부의 상처만 더 커질 뿐이다. 지금 고등학생의 풍자 만화 한 장을 놓고 민심을 잃을 때가 아니다. 문체부는 문화, 예술,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켜야 할 기관이지, 권력의 이름으로 이를 응징하는 곳이 아니다. 전국시사만화협회가 지난 5일 ‘<윤석열차> 외압 논란에 대한 성명서’를 공개했다. 5열 7행으로 구성한 성명서에는 ‘자유!’라는 단어만 33차례 반복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빗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어떤 경우에도 권력이 나서서 표현의 자유를 향해 ‘정치 딱지’를 붙일 일은 아니다. 문화예술인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모독케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겐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문체부의 일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풍자는 풍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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