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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광주광역시의원 “고려인 우크라 전쟁 위험에 노출… 국내 송환 지원해야”
전국 광주/전남/전북 인터뷰

[인터뷰] 명진 광주광역시의원 “고려인 우크라 전쟁 위험에 노출… 국내 송환 지원해야”

제9대 광주시 초선 의원 당선
‘고려인 현안·과제’ 관심 촉구
정착한 피난민 지원방안·활동
“일자리·보육문제도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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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명진 광주광역시의원이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으로 인해 광주로 피난 온 고려인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0.25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로 한국에 정착하길 원하는 고려인이 많고 인접국에서 대기하던 피난민들이 한국 입국을 위해 상당수 대기하고 있습니다. 국내로 원활하게 송환할 수 있도록 지원이 돼야 합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에 남달리 관심이 많은 광주광역시의회 명진(明眞) 의원이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고려인 국내 귀환 항공권 지원자는 771명에 이른다. 항공권 대기자는 400여명으로 추산된다. 출발지는 바르샤바, 모스크바,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이스탄불 등 다양하다.

명 의원은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은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말”이라며 “전쟁은 종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9대 광주광역시의회 초선 의원으로 당선된 후 지난 8월 국내 고려인 사회의 ‘현안과 과제’라는 주제로 국내 전문가 토론회를 진행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8개월째인 현재 본지는 지난날 처참한 전쟁의 참상을 피해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고려인 마을)에 정착한 피난민 지원방안 활동은 어떠한지 명 의원을 통해 들어봤다. 

다음은 명진 의원과의 일문일답.

- 입국한 우크라이나 교포 상황은.

국내에 입국한 우크라이나 교포는 주로 연고자가 거주하는 안산, 인천, 광주 등 고려인 동포 밀집 거주지역에 체류하고 있다. 긴급생계비, 생필품 및 긴급 의료를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인력 부족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너머의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2001년 우크라이나 자료 기준 1만 2711명)과 다른 국적, 무국적 고려인을 포함해 약 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인 주 거주지역인 크림반도와 오데사, 헤르손, 드니프로 등 동남부 지역 약 7000명이 서부지역이나 주변국으로 피난 생활을 하거나 한국으로 입국한 상태다. 최근 입국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동포 인터뷰에서는 한국에 정착을 원하는 고려인이 많으며 인접국에서 대기하던 피난민들이 전쟁이 길어지면서 돌아갈 희망을 포기하고 한국으로의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광주 거주 고려인 마을주민들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고통받고 있을 가족·친지의 대한민국 입국 과정을 돕기 위해 지속적인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광주시 NGO 단체 중에는 현재 이주민종합지원센터와 ㈔고려인마을이 활동 중이다.

- 피난민들의 애로사항과 해결할 과제는.

피난민들은 대부분 한 달에서 수개월로 절대 짧지 않은 피난 과정의 여정을 겪어야 한다. 전쟁에서 집과 터전을 잃어버린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국내 정착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들의 조속한 입국과 정착지원을 위해 ㈔너머를 중심으로 전국 14개 단체가 연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는 항공권 지원, 주거 보증금, 월세 지원을 하고 있다.

대부분 난민은 폴란드, 루마니아, 러시아, 독일, 슬로베니아 등 복잡한 입국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지난 7월 9일 입국한 김나탈리아는 우크라이나(카흐브카)-크름-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를 거쳤다. 주거환경도 어려운 상황인데다 광주 고려인 마을 입국자들은 연고자의 집에서 자녀와 가족들이 함께 피난 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기본 생활에 필요한 물품 지원도 하고 있다. 입국자들은 피난 후 마음 추스를 사이도 없이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여성들은 육아와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적당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들(우크라이나 피난민)의 안정된 생활을 돕기 위한 지역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광주은행(은행장 송종욱)에서는 지난 16일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 난민 정착 지원금으로 1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이주민지원센터에서는 지역 병·의원과 협약을 맺고 전쟁 트라우마 증상 치료 프로그램 운영을 하고 있다. 아울러 피난민 아동 한국어 학습지원도 하고 있다.

피난민에 대해 향후 지자체가 도와야 할 영역은 피난민에 대한 정확한 전수조사(실제 피난민의 수, 질병, 문제점 등), 아동의 학교 등록과 교육 문제, 질병 치료와 국민건강보험 관련 문제, 주거 문제 지원 등이 있다. 현재 광산구 월곡동에 집이나 방이 부족한 현실이다. 일자리 연결과 유아 보육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일제강점기에 만주로 간 사람들은 조선족이고 연해주로 간 사람들은 고려인이다. 고려인 동포는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시기에 농업 이민, 항일 독립운동, 강제 동원 등으로 러시아(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고려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등 독립국가연합 내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들의 총체적 용어로 러시아어로는 ‘카례이츠이’라고 하며 고려인 또는 고려족이라고 부른다. 이들(고려인)은 연해주 땅에 씨앗을 뿌리고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강 유역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이어 1865년(고종 2년)에 60가구, 그다음 해에 100여 가구 등 점차 늘어나 1869년에는 약 4500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했다. 이후로도 이민은 계속됐다. 대부분이 농업 이민으로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의 근거지가 됐다.

고려인은 일제강점기 ‘국권을 회복하겠다’라는 일념으로 가산을 정리한 후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피눈물을 흘리며 정든 고향을 뒤로한 체 러시아 연해주와 북간도로 떠났던 여러분의 소중한 핏줄이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하면 100년이 유복하고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에 뛰어들면 가문이 멸족한다는 옛말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황무지를 개척했던 조상들의 피가 흐르는 고려인들은 조상의 땅 광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회 #명진 #고려인 #우크라이나 #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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