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조선왕조의 성군(聖君) 세종의 생애 고찰(8)
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조선왕조의 성군(聖君) 세종의 생애 고찰(8)

image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세종(世宗)은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에서 가장 음악을 사랑한 임금이라 할 수 있는데 1424(세종 6)년 악기도감(樂器都監)을 설치했다. 이는 조선 시대 악기(樂器)와 제복(祭服)을 만드는 업무를 관장하는 관청이었다. 

거슬러 올라가서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입으로 악공(樂工)들이 죽거나 피해를 보고 악기들이 불에 타고 없어진 것이 많아 음악의 발전이 위축되었다. 그러한 영향으로 인하여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악기의 종류가 변변치 않았으며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세종이 악기도감을 설치하였으나 그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책임 있게 활동하는 신하가 없었으므로 처음에는 큰 성과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악에 대하여 관심을 보인 신하가 박연(朴堧)이었는데 그는 1378(우왕 4)년 태종(太宗) 대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하였던 박천석(朴天錫)의 아들로 충북 영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관직 진출은 비교적 늦었는데 34세에 진사(進士)에 등과해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를 지냈으며 주로 사헌부(司憲府)에서 근무하였다. 한편 봉상판관(奉常判官) 시절에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악학별좌(樂學別坐)를 겸하게 되면서 음악과 관련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박연은 국가 제례 행사 때, 중요한 분야인 아악(雅樂)이 시간이 갈수록 쇠퇴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아악을 개량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이와 관련해 박연이 상소를 올리게 된 아악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아악은 1116(고려 예종 11)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도입된 대성 아악(大晟雅樂)으로부터 그 연원(淵源)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대성 아악은 도입된 이후 제례 악무(祭禮樂舞)로 사용되었고 그 전통이 조선시대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에서 전래된 조선 초기의 아악은 문제가 많았는데 구체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기본적인 악기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고 소리도 조화롭지 않았으며 연주되는 음악 또한 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채널: 천지일보
  • 전화: 1644-7533
  • 이메일: newscj@newscj.com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지면구독신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