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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붉은악마, 안전하게 ‘대~한민국’ 외칠 수 있을까
오피니언 칼럼

[스포츠 속으로] 그 많던 붉은악마, 안전하게 ‘대~한민국’ 외칠 수 있을까

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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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붉은악마는 어디로 갔는가? 이 의문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패러디해 붙여 본 것이다.

싱아는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지역에 따라 수엉, 수영, 시엉이라 부른다. 줄기의 질긴 껍질을 벗기면 부드러운 속살이 나오며 이를 생식한다. 맛은 새콤하고 시원하다고 한다. 아직도 산에 가면 있지만,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박완서는 자신의 삶 속에 내재된 한국 현대사의 편린들을 메타포화해 사라져간 것들의 추억을 소환한다.

6.25 전쟁으로 인해 개성에서 서울로 이사 온 박완서는 인근 야산에서 수많은 싱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싱아를 비롯한 많은 풀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산과 들에 자라나던 온갖 풀이 나물이라는 이름으로 상에 올랐지만 이제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낸 채소만 상에 오를 뿐이다.

박완서의 소설을 떠올린 것은 이태원 참사 이후 우여곡절 끝에 붉은악마 응원단이 2022 카타르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대표팀을 위한 광화문 길거리 응원을 서울 시청의 허가를 받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는 거리응원을 추진한 이유에 대해 “안전한 대한민국이라고 다시 한번 국민 스스로 자부할 수 있도록 우리만의 응원과 문화로 위로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해서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호태 붉은악마 서울지부장은 “이번 거리응원은 대한축구협회가 아닌 붉은악마가 주최한다”며 이같이 전했다. 

당초 이번 거리응원은 축구협회와 서울시가 공동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이태원 참사로 협회 측이 광장 사용 신청을 취소하며 무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17일 붉은악마 측이 서울시에 24일(우루과이), 28일(가나), 다음 달 3일(포트루갈) 광화문 광장 사용허가를 조건부로 받았다. 조 지부장은 “서울 같은 경우 붉은악마가 하는 것은 광화문 한 군데”라며 “나머지 지방 같은 곳은 지자체가 협회로 연락하거나 붉은악마한테 연락이 오면 지자체와 협조하에 길거리 응원이 배치될 수 있는 곳은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7년 8월 공식 이름이 결정된 붉은악마가 본격적으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은 때는 2002 한일월드컵이다. 당시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예상을 깨고 16강, 8강, 4강까지 오르자 경기장 관중석에 머물렀던 붉은악마 응원단은 광화문, 강남 사거리, 삼성동 무역센터 광장 등 서울과 전국 주요 도시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국민적인 응원단으로 확산했다. 이후 월드컵 때마다 거리는 붉은악마 응원단의 물결로 넘쳐났다.

지난 10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도 붉은악마 응원단은 거리 곳곳에서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국민들은 월드컵 때면 자연스럽게 붉은악마 응원단을 떠올리곤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로 인해 붉은악마 응원 얘기가 국민의 기억 한켠으로 물러날 뻔했다. 그동안 여러 월드컵 대회에서 적게는 수만명, 많게는 수십만명이 서울 시청이나 광화문 광장 등에 모여 집단 응원전을 전개했지만 아무런 인사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외국 언론들은 붉은악마의 길거리 응원을 전 세계에서 드문 사회적 현상으로 큰 관심을 보이며 역동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대한민국의 안전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붉은악마는 잠재돼 있던 국민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붙이며 거리 응원을 펼쳐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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