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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화 여행(한국편)> 아기 낳는 일을 돕는 삼신 할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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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화 여행(한국편)] 아기 낳는 일을 돕는 삼신 할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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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배 시인, 칼럼니스트

오랜 옛날, 동해 용왕이 장가를 들었다. 신부는 서해 용왕의 딸 용녀였다. 동해 용왕 부부는 금슬이 좋았지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서른을 지나 마흔이 가깝도록 아이가 없는 것이었다. 

용왕 부부는 아이를 갖고 싶어 관음사라는 유명한 절을 찾아가 100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용왕 부인에게 아기가 생겼는데, 낳고 보니 어여쁜 딸이었다. 용왕 부부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귀하게 얻은 딸이 어찌나 귀여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귀엽다고 오냐, 오냐 하며 키운 탓인지, 딸아이는 커가면서 버릇이 없어졌다. 어른에게 함부로 대하고, 고약한 짓만 골라 가며 했다. 한 살 때는 어머니 젖가슴을 때리고, 두 살 때는 아버지에게 덤벼들어 수염을 뽑았다. 또 세 살 때는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흩뜨렸으며, 네 살 때는 조상에게 불효를 저지르고, 다섯 살 때는 친척들과 싸워 원수처럼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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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용왕은 딸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죄를 짓기에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용왕이 딸을 죽이려 하자, 부인이 울면서 매달렸다.

“우리가 낳은 귀한 자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일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딸아이를 멀리 쫓아 버리세요.”

용왕도 께름칙한 마음이었기에 부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대장장이를 시켜 무쇠 상자를 만들게 했다. 용왕은 딸아이를 무쇠 상자에 넣어 바닷물에 띄워 보낼 생각을 한 것이었다. 무쇠 상자가 만들어지자 용왕은 딸아이를 불러 말했다.

“어서 이 상자 속에 들어가거라.”

용왕의 딸은 깜짝 놀라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상자 속에 들어가라니요?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머니가 대답했다.

“무쇠 상자가 바닷물에 띄워지면 인간 세상에 닿게 될 거야.”

“인간 세상에 가면 저는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요? 농사도 지을 줄 모르고, 장사도 할 줄 모르는데요.”

“걱정 마라. 인간 세상에는 아기 낳는 일을 돕는 삼신이 없으니, 네가 그 일을 하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거다.”

“어떻게 해야 아기를 낳죠?”

“아기는 어머니 몸을 통해 낳는데, 그 전에 아버지 어머니의 피를 섞어야 한단다. 이렇게 해서 열 달을 채우면 뼈와 살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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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삼승할망본풀이(EBS 영상 캡처)

어머니는 딸에게 삼신이 해야 할 일을 자세히 알려 주려고 했다. 하지만 용왕의 호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빨리 상자 속에 들어가지 않고 뭐 하느냐? 부인은 멀리 떠나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물러서시오.”

그리하여 용왕의 딸은 무쇠 상자 속에 갇히고, 무쇠 상자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무쇠 상자는 용궁 밖으로 던져져 이리저리 떠다녔다. 바다 밑에서 3년, 바다 위에서 3년, 그리고 동해 바닷가에 닿아서 3년을 보냈다. 

무쇠 상자를 발견한 것은 임박사라는 사람이었다. 임박사가 자물쇠를 따고 뚜껑을 열자, 상자 속에서 아리따운 모습의 처녀가 나왔다. 임박사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네 정체를 밝혀라.”

처녀가 입을 열었다.

“저는 동해 용왕의 딸입니다. 인간 세상에 아기 낳는 일을 돕는 삼신이 없다고 해서 용궁에서 왔습니다.”

“마침 잘 오셨소.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아직 자식이 없소. 아내가 아기를 낳게 해 주시오.”

“알겠어요.”

용왕의 딸은 임박사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하여 그녀에게 임신을 시켰다. 

임박사의 아내는 점점 배가 불러 왔다. 열 달이 되자 배는 남산만 해졌다. 

그러나 용왕의 딸은 손도 못 쓰고 있었다. 사람에게 자식이 생기게 해 주는 일만 배워 알 뿐, 아이를 낳는 법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열 달이 지나 열두 달이 되었다. 임박사의 아내는 몸이 무거워 죽을 지경이었다. 

용왕의 딸은 아이 낳는 것을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은가위를 손에 쥐고 아기 어머니 앞에 섰다. 

‘아기를 어디로 꺼내지? 배일까, 겨드랑이일까?’

용왕의 딸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에라, 모르겠다. 아기가 나오나 안 나오나 겨드랑이부터 갈라 보자.’

하고는 은가위로 아기 어머니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갈라 아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기는 나오지 않고, 아기 어머니는 죽어라 비명을 질렀다. 용왕의 딸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러다가 아기도 아기 어머니도 모두 죽을 것 같았다. 

‘아, 이를 어쩌지? 큰일 났네.’

용왕의 딸은 겁이 나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곧바로 임박사의 집에서 뛰쳐나와 바닷가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나 때문에 아기와 아기 어머니가 죽게 생겼어. 어떡하면 좋지?’

용왕의 딸은 수양버들 아래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고 눈물만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임박사는 결국 그 날을 못 넘기고 아기와 아내를 모두 잃고 말았다. 

그는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억울하고 분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옥황상제님도 너무하십니다. 낳지도 못할 아기와 사랑하는 아내를 한꺼번에 거두어 가시다니요.”

임박사는 너무도 원통한 나머지 금백산에 제단을 차려 놓고 옥황상제 천지왕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천지왕은 사연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인간 세상에 제대로 된 삼신이 없어 아까운 목숨들만 이승을 뜨는구나. 삼신을 새로 정해 인간 세상에 내려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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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삼승할망본풀이(EBS 영상 캡처)

천지왕은 부모를 정성스레 모시고 남을 잘 돕는 명진국 따님아기를 삼신으로 뽑았다. 그리고는 명진국 따님아기에게 삼신의 할 일을 빠짐없이 가르쳤다. 사람에게 자식이 생기게 해 주는 법을 비롯하여 아기 낳는 일, 아기 키우는 일까지 모든 것을 낱낱이 전했다. 

이리하여 명진국 따님아기는 삼신으로 일하려고 사월 초파일에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명진국 따님아기가 인간 세상에서 처음 만난 것은 용왕의 딸이었다. 날마다 바닷가 수양버들 아래에 와 울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그녀가 가엾고 딱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상냥스럽게 물었다. 

“왜 울고 계세요?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으셨나요?”

용왕의 딸은 울음을 그치고 입을 열었다.

“저는 동해 용왕의 딸이에요. 인간 세상에 삼신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삼신으로 왔어요. 그런데 아기 낳는 법을 몰라, 얼마 전에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지 뭐예요. 그 일이 가슴 아파 이렇게 울고 있답니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이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도 삼신이라고요? 말도 안 돼! 인간 세상에 삼신은 나 하나뿐이에요. 옥황상제 천지왕께 삼신으로 일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용왕의 딸은 화를 벌컥 냈다.

“뭐 어쩌고 어째? 네가 삼신이라고? 너는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냐! 왜 뒤늦게 나타나 남의 일을 가로채려는 거야?”

용왕의 딸은 명진국 따님아기에게 악을 쓰며 덤벼들었다. 나중에는 화를 못 이겨 명진국 따님아기를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명진국 따님아기도 화가 나서 천지왕에게 기도를 올렸다. 

“옥황상제님, 인간 세상에 삼신이 버젓이 있는데 어째서 저를 또 보내셨습니까? 삼신은 둘씩 필요 없으니 누구를 택할지 정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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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용왕의 딸도 천지왕에게 기도를 올렸다.

“옥황상제님, 저는 동해 용왕의 딸로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삼신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속셈으로 또 다른 삼신을 보내어 나를 바보로 만드십니까? 삼신은 둘씩이나 필요 없으니 누구를 택할지 정해 주십시오.”

천지왕은 명진국 따님아기와 용왕 딸의 기도를 듣고 이들을 옥황궁으로 불러들였다. 둘의 재주를 시험하여 나은 쪽을 인간 세상의 삼신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천지왕은 꽃씨를 하나씩 나눠 주며 말했다. 

“꽃씨를 가지고 서천 서역국에 가서 모래밭에 심어라. 꽃을 더 많이 피우는 이에게 인간 세상의 삼신을 맡기겠다.”

명진국 따님아기와 용왕의 딸은 나란히 서천 서역국에 가서 모래밭에 꽃씨를 심었다. 그리고 저마다 물을 주며 온갖 정성으로 꽃을 가꾸었다. 

며칠이 지나자 용왕의 딸이 피운 꽃은 뿌리도 하나요, 가지도 하나였다. 하지만 명진국 따님아기가 피운 꽃은 4만 5600가지마다 풍성하게 달려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 세상의 삼신, 즉 이승의 삼신은 명진국 따님아기로 정해졌다. 

천지왕이 용왕의 딸에게 말했다.

“실망하지 마라. 너한테도 일을 맡길 테니. 너는 저승으로 가서 죽은 아이들의 영혼을 돌보아라.”

그러나 용왕의 딸은 이승의 삼신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심술이 났다. 명진국 따님아기를 노려보더니 따님아기가 가꾼 꽃가지 하나를 꺾었다. 

“흥, 이승의 삼신이 되었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아기가 새로 태어나면 100일 안에 병들게 해 저승으로 데려갈 테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이 말했다.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아기가 태어나면 네게도 좋은 음식을 차려 줄게.”

“정말?”

명진국 따님아기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용왕 딸의 차가운 마음이 봄눈 녹듯 풀렸다. 두 처녀는 그 자리에서 화해하고 이승과 저승으로 각각 떠났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이승의 삼신으로 맡은 일을 열심히 했다. 앉아서 1000리, 서서 만 리를 보며 하루에 만 명의 아이가 태어나도록 도와주었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어린 처녀였지만 늙어서 할머니가 되었다. 이때부터 따님아기를 ‘삼신 할멈’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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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신화 이야기 해설]

오늘 이야기는 제주도 무당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 <삼승할망 본풀이>다. 제주도에서는 삼신할머니를 ‘삼승할망’이라 부르니 삼신할머니 신화를 소개한 것이다. 

삼신할머니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을 맡고 있다는 여신이다. 흔히 ‘삼신(三神)’ ‘산신(産神)’ ‘삼승할망’이라고 하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제석(三神帝釋)’ ‘삼신제왕(三神帝王)’이라고도 불린다.

삼신할머니는 아기를 점지해 주는 일뿐 아니라 아기를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잘 키워 안전하게 낳게 해 주고, 아무 탈 없이 15세까지 돌봐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아기를 기다리거나 낳을 사람들에게는 아기의 수호신으로서 극진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 신화는 삼신할머니가 어떻게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을 맡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서해 용왕의 딸과 명진국 따님아기가 나온다. 용왕의 딸은 버릇이 없고 고약한 짓만 골라가며 하자, 아버지 용왕에게 쫓겨나 인간 세상으로 보내진다. 이 때 어머니는 딸에게 “인간 세상에는 아기 낳는 일을 돕는 삼신이 없으니 그 일을 하며 살아라”며 삼신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려 한다. 그러나 용왕에게 급히 쫓겨 오느라 아이 낳는 법을 자세히 전해 듣지 못하고 인간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하여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죽게 만든다.

하지만 명진국 따님아기는 천지왕 옥황상제에게 삼신으로 뽑혀 삼신의 할 일을 빠짐없이 배웠다. 사람에게 자식이 생기게 해 주는 법을 비롯하여 아기 낳는 일, 아기 키우는 일까지 모든 것을 말이다. 

용왕의 딸은 인간 세상에서 명진국 따님아기와 만난다. 그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명진국 따님아기도 삼신임을 알고는 옥황상제 천지왕에게 “삼신은 둘씩 필요 없으니 누구를 택할지 정해 주십시오”라고 청한다. 그리하여 둘은 재주를 겨루는 시합을 벌여 이승의 삼신은 명진국 따님아기, 저승의 삼신은 용왕의 딸로 뽑힌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부모를 정성스레 모시고 남을 잘 돕는 처녀였다. 그래서 어린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에 적합해 이승의 삼신으로 삼은 것이다. 그에 반해 용왕의 딸은 조상에게 불효를 저지르고, 친척들과 싸워 원수처럼 대하는 처녀였다. 그러니 어린 생명에게 병을 주고 죽음을 주는 일에 적합해 저승의 삼신으로 삼은 것이다.

삼신이 처녀라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그것은 아기를 낳는 일이 그만큼 어렵고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기를 낳는 일이 매우 순결하고 신성한 것이며, 생명 넘치는 젊은 여신만이 아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본문 기사 내용의 저작권은 신현배 작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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