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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 이야기
오피니언 칼럼

[걸공(乞空)의 음식칼럼] 콩잎 이야기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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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1285(충렬왕 11)년에 불승(佛僧) 일연(一然)이 지은 5권 3책의 역사책 ‘삼국유사(三國遺事)’ 제3권 탑상 제4편에는 ‘신라 승려 조신이 콩잎이나 명아주국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도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 후에 지은 ‘고운집(孤雲集)’에 ‘관곡(館穀)을 후하게 지급해 여곽(藜藿)의 식사를 탄식하지 않게 하시고, 매양 궤손(簋飧)의 대접을 받게 하며 그저 염매(鹽梅)의 맛을 포식하게 했으니, 이는 모두 담적(啗炙)의 은혜가 지극한 것으로서 식어(食魚)의 고사를 연상하게 하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서 여곽은 명아주잎과 콩잎으로 끓인 국을 말한다. 

비록 ‘고운집’에 콩잎을 먹은 기록이 최초로 나온다 해도 콩잎은 오래 전부터 식용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중국 서한(西漢) 성제(成帝) 때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는 “張儀가 秦나라를 위하여 韓王에게 連橫說을 유세하였다. ‘韓나라 땅은 험악한 산중에 있어서 五穀이 난다고 해야 고작 보리 아니면 콩 정도요, 백성이 먹는 것은 그저 콩밥 아니면 콩잎국 정도이며, 한 해만 농사가 시원찮아도 백성은 糟糠도 배불리 못 먹는 형편이다’”라고 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에서는 “자로가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옛날에 부모를 봉양할 적에 저는 항상 콩잎을 먹었으나 어버이를 위해 100리 밖에서 쌀을 져다가 봉양했습니다”라고 했다. 이렇듯 중국은 콩잎 식용 역사가 오래 됐다.

옛날 조조(祖朝)라는 백성이 진헌공(晉獻公)에게 글을 올려 나라 다스리는 계책을 듣기를 요청하자, 헌공이 사자(使者)를 시켜 “고기 먹는 자가 이미 다 염려하고 있는데, 콩잎 먹는 자가 정사에 참견할 것이 뭐 있느냐”라고 했던 말이 ‘설원(說苑)’ 선설(善說)에 보인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장공(莊公) 10년 조에도 “肉食者謀之 又何間焉(육식자모지, 우하간언). 고기 먹는 자들이 꾀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또 참견하려 하는가”라는 표현이 보인다. 이는 ‘콩잎 먹는 자’는 야인(野人), ‘고기 먹는 자’는 관리를 비유한 말이다.

고려 말 문신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도 그의 한시집 ‘목은시고(牧隱詩藁)’에서 ‘藿食鄙肉食(곽식비육식) 곽식자가 육식자 비루하게 여기는 至性終不違(지성종부위) 지극한 성정 끝내 어기지 않노니 -이하 생략-’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곽식자는 ‘콩잎을 먹는 사람’이란 뜻으로 인민(人民)을 가리키고, 육식자는 관리(官吏)를 가리킨다.

명아주잎이나 콩잎은 빈천한 사람의 거친 음식을 상징하게 됐다.

조선 중기 문신 차천로(車天輅, 1556~1615) 선생의 문집 ‘오산집(五山集)’에서 ‘ 꿩고기는 먹을 만하니 콩잎국만 먹은 창자가 윤택해질 것이고, 어채(魚采)는 논할 것도 없으니 주거(邾莒)의 찬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고, 조선 중기의 문신 이응희(李應禧, 1579~1651)가 쓴‘옥담시집(玉潭詩集)’에서 ‘은어(銀魚)’를 읊으며 ‘宜餤藜藿子(의담여곽자) 여곽을 먹는 사람이 먹기 좋지만 難盡厭膏粱(란진염고량) 고량진미 먹는 이도 실컷 먹긴 어려워라.’고 했다. 물론 이 시의 의미는 맛이 담백해 가난한 선비가 먹기에 좋지만 귀한 것이라 부자들도 실컷 먹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은어(銀魚)를 말하는 것이지만 콩잎은 일반 백성이나 가난한 선비들이 먹던 음식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은어는 동북 지방의 해안에서 나는 것으로 말려서 구워먹거나 간장에 졸여서 먹기도 하고 콩잎과 함께 먹으면 천하의 진미라 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단종실록(端宗實錄)의 단종 2년(1454) 3월 12일 자를 보면 ‘충청도와 강원도 두 도는 지금 봄철을 당해 농사일이 바야흐로 한창인데, 전야(田野)의 백성들이 명아주의 잎과 콩잎도 이어 가지 못한다고 하니,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조선중기 문신이며 청백리였던 안현(安玹, 1501년~1560년)은 ‘허술한 의복과 간소한 음식으로 평생을 지냈는데 그 반찬은 오직 콩잎국이었다. 국을 맛보지도 않고 밥을 말기에 손이 “만약 국맛이 좋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묻자 대답하기를 “비록 국맛이 좋지 않더라도 안 먹을 수가 있는가?”라고 했다.

‘승정원일기(承宣院日記)’ 영조 10년(1734) 1월 11일 자에는 ‘옛사람이 질그릇에 콩잎을 먹은 까닭은 좋은 술과 고깃국을 좋게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치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 해서였습니다’라고 나온다. 이렇듯 콩잎은 청빈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 인조 때 문신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谿谷集)’에 ‘ 하늘에서 양고기를 비로 내려 준다면 콩잎을 먹는 백성들이 고기 맛을 실컷 볼 것이요’라고 나오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도 그의 시문집인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 ‘生憎豆葉羹(생증두엽갱) 의외로 싫은 게 콩잎국이지만 衆嗜如淫羊(중기여음양) 많은 사람들 양고기처럼 즐기는데’라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콩잎은 일반 백성이 흔히 먹던 음식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며 성리학자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불천위제례 때 쇠고기에는 콩잎을 넣고 국을 끓이는 우곽(牛藿)을 제사상에 올렸다.

조선 후기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문집인 ‘농암집(農巖集)’에서는 ‘藜藿不盈槃(여곽불영반) 명아주잎과 콩잎무침 아욱국 조촐한 밥상’이라고 했으며, 조선 후기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 1642~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제3권 구황(救荒)편에 ‘대두엽(大豆葉) 즉 콩잎을 깨끗이 씻은 다음 삶아서 즙이 진하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항아리에 가득하게 넣고 분량에 맞게 소금을 넣으면 청장(淸醬)이 만들어진다고 기록돼 있고, 목맥화(木麥花: 메밀느쟁이 : 나깨 : 메밀속껍질)·대두엽(大豆葉: 콩잎)과 각(殼: 깍지)을 가루로 만들어 곡식가루와 섞어 삼을 만들어 쪄먹으면 아주 좋다. 만약 이와 같은 물건이 없으면 곡식 뿌리를 세말(細末)해 삼(糝)을 만들어 먹어도 부황(浮黃) 없이 흉년을 넘길 수 있다. 여기서 삼(糝)은 나물죽을 뜻한다.

18세기 경상도 고성(固城)지방 사대부 구상덕(具尙德, 1706~1761)이 수십 년 동안 쓴 일기 ‘승총명록(勝聰明錄)’2책에 “콩잎 5동 (同)을 도회에 보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 순조 때 김경선(金景善, 1788~1853)은 ‘연원직지(燕轅直指)’제5권 회정록(回程錄)에서 ‘중국 심양에서 콩잎을 간장에 담아서 말렸다가 이를 국을 끓이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성록(日省錄)’ 순조 7년(1807) 8월 10일 자에는 제주 목사 한정운(韓鼎運)이 표류해 온 유구(琉球: 현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는데, 반찬으로 닭, 물고기, 나물, 소금, 장, 기름 등과 함께  콩잎을 제공했다.

우리 조상들은 콩잎을 재료로 국을 끓였는데, 특히 재미있는 것은 콩잎을 간장에 담갔다가 말려 가지고 다니며, 국(羹)여 먹기도 했고, 청장(淸醬)을 다릴 때 콩잎을 넣었다.

콩잎은 콩잎 김치나 곽저(藿菹, 콩잎 장아찌), 콩잎 쌈 등으로 조리한다. 또는 콩잎을 따서 잘 말려 보관하다가 겨울에 묵은 나물로 먹거나, 묽게 쑨 찹쌀 풀에 소금 간을 하고 깨를 넣은 것을 콩잎에 발라 말려서 부각을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동아일보(東亞日報) 1975년 7월 28일자를 보면 ‘콩잎이 푸를 때 많이 잎을 따버리면 콩의 수확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콩잎은 주로 누렇게 변한 다음에 따서 식용한다.’ 경상북도에서는 누렇게 변한 콩잎을 노랗게 단풍이 들었다 해 ‘단풍콩잎’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된장에 박거나 항아리에 넣은 후 소금물을 부어 1달 정도 삭혀뒀다가 양념장에 버무려 먹는다. 또는 체에 거른 된장을 밀가루 풀에 섞은 것을 콩잎에 끼얹어 만드는 곽침채(藿沈菜, 콩잎김치)도 만든다.

한편 경남지방에서는 콩잎물김치를 만들어 먹지만 소금으로 간을 하고, 콩잎을 삭혀 장아찌를 만들 때도 경상북도와 달리 멸치액젓을 이용하기도 한다.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를 음양곽(淫羊藿)이라고 부른다. 음양곽(淫羊藿)은 “콩잎을 먹고 자란 양이 음란해 진다”라는 뜻으로 콩잎이 정력에 좋다는 의미도 되지만 이는  중국 남부 쓰촨성의 산양들이 콩잎 모양과 비슷한 잎을 가진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를 뜯어먹은 후 음탕하게 변했다는 설에서 음양곽(淫羊藿)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사실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와 콩잎은 다른 식물이다. 그렇지만 콩에는  일반적으로 콩 종자에는 기능성물질인 이소플라본과 식물스테롤인 사포닌만 존재한다.

그러나​ 콩잎에서는 이소플라본류 5종, 플라본류 3종, 플라보놀 1종, 테로카판류 2종, 페놀성 화합물 2종, 소야사포닌 2종, 당알콜 1종 등 총 16종의 생리활성 물질들이 확인됐다.

이소플라본은 주로 콩과 식물에만 함유돼 있으며 유방암·전립선암·골다공증·심장병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플라본과 플라보놀은 강력한 항산화 효능을 기반으로 고지혈증, 동맥경화, 폐암 등에 뛰어난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즉 콩잎은 콩보다 오히려 영양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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