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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역사 (2)
기획 문화기획 이정은 역사

[역사칼럼] 판문점의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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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12.06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 판문점 휴전회담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 연락장교단은 10월 22일 지금의 휴전선 북방 800m 지점의 콩밭 옆에 초가집 3채와 주막을 겸한 가게 1채가 있는 널문리를 중심으로 직경 1㎞의 원형지역에 천막을 세워 회담 장소를 정하고, 그 위치를 지도 위에 표시하여 서로 교환하였다. 

양측은 휴전회담이 결렬될 때를 대비하여 최종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군사작전을 계속한다는 전제 하에 휴전회담을 시작하였다. 양측은 회담을 압박하기 위해, 또한 휴전 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회담장에서는 설전(舌戰)이, 전선에서는 혈전(血戰)이 전개되었다.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 등이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시기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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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광경. 왼쪽 책상에 앉은 사람이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William K. Harrison Jr.) 중장, 오른쪽 책상에 앉은 사람이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천지일보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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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제공: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천지일보 2022.12.06

쌍방의 군사분계선으로 공산군 측은 38도선을 주장했고, 유엔군 측은 현재의 전선으로 할 것을 주장했는데, 유엔군 측의 주장이 관철됨으로써 현재와 같이 동부 강원도 쪽이 북으로 올라간 휴전선이 되었다. 1951년 11월 27일 군사분계선 설정 협정에 조인하였다. 이에 따라 휴전선 남북 양쪽 2㎞씩 4㎞의 비무장지대를 두는 등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다 포로교환 방식에서 제동이 걸렸다. 공산군 측은 전원 맞교환을, 유엔군 측은 포로의 자유 선택에 의한 희망자 교환으로 대립하여 2년을 끌었다. 본회의 159회를 비롯하여 총 765회에 이르는 각종 회의를 거쳐 드디어 1953년 7월 27일 10시 휴전협정 조인식을 갖게 되었다. 

조인식을 위해 현재의 휴전선 북방 약 800m 비무장지대에 약 200평의 목조건물을 세웠다. 이 건물은 현재 북한이 ‘평화의 전당’이라고 하여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협정 조인은 유엔군 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조선)군사정전 협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휴전협정을 조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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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건물. 지금은 북한의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제공: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천지일보 2022.12.06

◆ 그 후의 판문점 

휴전을 관리하기 위하여 판문점에 중립국감독위원회 본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중립국인 스웨덴·스위스(유엔군 측 지명)와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공산군 측 지명) 등 4개국의 감시위원이 상주하고 있다.

휴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과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이 항구적인 건물로 바뀌었고, ‘자유의 집(1965)’과 ‘판문각(1968)’ 등 콘크리트 건물도 들어섰으며, 1971년 9월 20일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시작된 것을 계기로, 판문점은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 장소만이 아니라 남북한 간의 직접적인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남북대화의 빈도가 잦아지자 ‘평화의 집(남쪽)’과 ‘통일각(북쪽)’ 등 남북대화용 건물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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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은 중립지대였기 때문에 모든 전투행위가 금지됐다. 중립지대임을 알리기 위해 눈에 잘 띄는 열기구를 띄워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자 했다. 1951년 11월 16일 미군이 촬영 (제공: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천지일보 2022.12.06

원래 판문점 구역은 유엔군과 공산군, 즉 적대하는 쌍방군대가 공점공유(共占共有)하는 공동관리 구역으로 특이한 구역이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미루나무 절단 작업을 하던 유엔군 측 경비병에 대한 북한 경비병의 도끼살인 만행을 계기로 쌍방 경비병을 휴전선을 경계로 분리시켜 공동관리업무 가운데 경비업무는 분할경비를 하게 되었다.

남북이 철조망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에서 남북으로 오가는 통로가 되기도 하는 판문점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의 위장 자수 사건(1967. 3. 22), 푸에블로호 미군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 송환(1968. 12. 23), 남북적십자 예비회담(1971. 9. 20), 7․4 남북공동성명을 하게 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비밀방북(1972. 5. 2)과 북한의 박성철 부주석 내방(5. 29),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전대협 대표 임수경의 육로 귀환(1989. 8. 15), 남북고위급회담(1990),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의 소떼 방북(1998. 6. 16), 비전향장기수 66명의 송환(2000. 9. 2) 등이 있다.

이런 판문점에서 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65년간 이어온 판문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미국과 북한의 수교,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들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가시화될 수 있는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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