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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1000채 살 동안 ‘뭐했나’… “제도개선 없이 수사 無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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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사이드] 빌라 1000채 살 동안 ‘뭐했나’… “제도개선 없이 수사 無의미”

갭투자에 세입자들 ‘살얼음판’
보증금 돌려주는 전세 ‘한계’
떼인 보증금만 8천억원 육박
정부, 전세사기범 수사 의뢰
‘무자본 갭투자’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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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본 갭투자 전세사기 이미지. (출처: 갭투자)

◆용어정리◆

전세

전세보증금을 내면 2년 간 주택을 임대할 수 있는 제도. 월세가 매달 임대료를 내는 것과 달리 전세는 임대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주기 때문에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로 꼽힌다. 다만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갖고 잠적할 경우 전세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갭투자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전세가 끝난 시점에 집값이 올랐다면 전세금을 돌려주고도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무자본 갭투자란 전세보증금과 신용대출을 통해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을 말한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세입자들에게 씁쓸한 연말을 안겨줬던 ‘빌라왕 사태’와 관련해 이목이 집중된다. 빌라왕이 무자본 갭투자를 통해 주택을 1000여채나 사들일 동안 이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전세사기범 수사를 두고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세’ 제도가 집주인(임대인)의 재테크 및 투자를 전제로 하는 만큼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에서다.

◆30명이 떼먹은 전세금만 ‘7000억’

지난해 10월 돌연 숨진 김모(40대)씨는 서울 서남부와 인천과 부천 등에 다세대·연립주택인 ‘빌라’를 1139채 소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사망하면서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임대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김모씨가 반환해야 하는 전세보증금은 약 334억원(246건)이다.

빌라왕 사태로 전세보증금을 임의로 반환화지 않는 ‘악성 임대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현재 빌라왕은 한둘이 아니며 상위 30명의 미반환 액수만 7000억원을 웃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 자료에 따르면 상위 30위 악성 임대인들의 보증사고 건수는 7584억원(3630건)이다.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란 HUG가 전세금을 3번 이상 대신 갚아준 임대인 중 연락이 두절되거나 최근 1년간 보증 채무를 갚지 않은 이들을 말한다.

특히 악성 임대인 상위 10인은 인당 250억원이 넘는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이 중 1위는 박모씨로 미반환 액수만 646억원(293건)이다. 빌라왕 김씨는 8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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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0명 악성 임대인 전세금 미반환 액수. (출처: HUG)

◆임대인 갭투자에 세입자 ‘등 터져’

빌라왕이 1천여건이 넘는 빌라를 사들이는 동안 ‘법과 제도는 무엇을 했나’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다만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현행 제도가 ‘갭투자’를 허용하고 있는 한 막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인이 갭투자를 할 경우 위험부담을 세입자가 지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갭투자란 전세를 내준 임대인이 전세보증금과 차액을 내고 집을 매수하는 방식이다.

통상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는 갭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 일단 새 주택을 마련한 후 전세가 끝난 시점에 이를 매각하더라도 차익이 남기 때문이다. 이는 갭투자를 하는 임대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원인으로도 꼽힌다.

다만 갭투자가 ‘전세보증금 미반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세입자들 입장에선 없어져야 할 투자 방식이다. 갭투자 시 주택을 매입하는 비용은 본인 부담보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집값이 하락할 경우 매입한 주택을 팔더라도 손해를 보기 쉽고, 통상 이 피해는 세입자들에게 돌아가기 일쑤다. ‘깡통전세’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또 깡통전세의 대다수는 집주인들이 잠적하는 전세사기로 이어지기 쉽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전세제도의 부작용으로 꼽히기도 한다. 

◆보증금 돌려받는 전세, 무엇이 문제?

하지만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어떻게 활용할지 막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세란 매매가격의 일부를 2년간 무이자로 빌려주고 주택을 임대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제도는 월세보다 보증금이 크지만 임대 종료 시점에 이를 돌려받을 수 있고, 매달 지출되는 임대료가 적어 목돈을 모으는 데 유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얼핏 보면 전세는 보증금만 있으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주택을 임대할 수 있어 장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전세에도 단점이 있다. 전세 자체가 임대인에게 목돈을 쥐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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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 앞을 지나고 있다.ⓒ천지일보DB

전세 제도를 통해 임대인은 2~4년 간 주택을 빌려주고 전세보증금을 받는다. 임대 종료 후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을 받았다고 임대인에게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임대인이 이를 재테크 및 투자에 활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갭투자가 이뤄지게 되는 대목이다.

국내 기준금리가 10%대를 웃돌던 과거에는 목돈을 은행에 예치시키기만 해도 돈을 모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금리가 5%대 이하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0%대로 떨어졌다. 즉 은행에 목돈을 맡기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다.

저금리가 이어지게 되면 기업이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쉬운 만큼 경제를 성장시키기 유리하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 성장을 위해 저금리 기조를 본격화했고,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했을 때는 제로 금리를 통해 경제를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저금리의 부작용으로 갭투자도 활성화됐고,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집값 하락이 본격화하면서 깡통전세와 전세사기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매매가가 크게 떨어진 곳은 전세가율이 높아짐에 따라 깡통전세가 되기 쉬워졌다. 또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 갭투자 대상이었던 빌라도 전세사기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졌다. 빌라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편 서울의 전세 보증금이 ‘억 단위’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미반환사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HUG가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으로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고 있지만 피해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 HUG에 따르면 미반환 사고액수는 2016년 34억원을 시작으로 2017년 74억원, 2018년 792억원, 2019년 3442억원, 2020년 5790억원, 지난해(10월까지) 7992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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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사기꾼 잡아도 빌라왕 또 나올 수”

빌라왕 사태 여파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피해자가 속출하자 정부도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다만 전세보증금을 통한 갭투자 자체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을 경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0일 사기로 의심되는 전세거래를 경찰청에 수사의뢰했다. 무자본 갭투자와 고의적 보증금 편취 행각을 샅샅이 뜯어보겠다는 것이다. 남영우 국토부 토지주택관은 “현재 진행 중인 전세사기 단속뿐만 아니라 임대차 거래정보 분석과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앞으로 발생 가능한 사기도 예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사기꾼들을 아무리 잡아도 새로운 빌라왕의 탄생을 막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갭투자 등 전세금을 활용한 투자 자체가 불법이 되지 않는 한 이를 막을 방법이 없고, 전세금을 투자에 활용하는 게 불법이 될 경우 임대인이 전세를 내놓을 이유가 없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금리를 올려 예금 이자를 키우는 방법도 있지만 빚으로 키워왔던 산업 구조의 개선과 병행돼야 해 사실상 어렵고 ‘손해를 보지 않는 투자’라는 개념자체가 모순인 만큼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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