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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SF 신파 모델 영화 정이(Jung_E)의 가치
오피니언 칼럼

[대중문화칼럼] 한국형 SF 신파 모델 영화 정이(Jung_E)의 가치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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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충분히 엇갈릴 수 있었다. 예컨대,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는 수현 역의 강수연 모습은 답답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자신의 어머니 윤정이를 뇌 복제 로봇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그렇게 열성으로 참여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SF 콘텐츠에서 수현처럼 단아하고 이지적이면서도 절제된 캐릭터는 보기 드물다. 하지만, 엄마(김현주)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전투 수행 가운데 죽음에 이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소리를 지를 수 없이 오열할 때 왜 강수연 배우가 필요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극단적 감정의 절제, 엄마의 목숨으로 살아난 딸의 감정을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마땅히 없어 보인다. 이 지점에서 ‘신파’라는 비판에 관한 레퍼토리가 나올 수 있었다.

일단 영화 ‘정이(Jung_E)’는 전투형 인공지능(A.I) 로봇 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의 스토리다. 전설적인 영웅 윤정이의 뇌 복제를 통해 최고의 전투 로봇을 대량으로 복제하려 하지만, 그 개발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애 때문에 항상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만다. 연구진은 왜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지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 원인을 마침내 발견하며 몇 가지 화두를 던져 준다.

SF물을 표방한 데다가 처음에 화려한 전투 장면을 통해 뭔가 대단한 결말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중심은 여성성에 관한 재인식이다. 다만, 그 공간이 미래의 디스토피아 상황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눈에 띄는 점은 전투 영웅으로 여성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 여성 캐릭터는 딸아이의 엄마였다. 대개 SF물에서 영웅은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이 등장해도 미혼이라는 점과 달랐다. 그 엄마는 또한 정규군이나 저항군도 아니었다. 아이의 수술비를 위해 목숨을 건 용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단지 생계나 부에 대한 욕망이 아닌 모성애가 그 동기였다. 안타깝게도 그 모성애 때문에 엄마는 희생됐다. 출발은 바로 그 지점부터였다.

다만, 그 모성애는 헛되지 않았다.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받고 인공지능 로봇 개발 조직의 팀장으로 활약하게 됐다. 단지 어머니가 영웅 로봇의 기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소망에 따랐다. 평화를 위해 싸우는 전투 로봇으로 엄마를 영원히 보전하는 방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곧 전쟁이 아닌 평화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상황의 변화는 갑자기 프로젝트의 종료 결정 소식을 전해온다. 더구나 그러자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복제된 엄마 캐릭터는 순간 성적 도구로 전락한다. 뇌 복제에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 이유 면에서 나름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연상호 감독은 이를 통해 자본 중심의 상품 이윤 논리가 여전히 미래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대입했다. 결국, 딸 수현은 엄마 윤정이가 자신 때문에 전쟁 영웅이라는 허울 속에서 사라져갔고, 목숨을 잃은 이후에도 복제돼 성적 도구로 쓰이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전투 로봇도 성적 인형도 돈을 벌기 위한 도구였다.

전쟁 영웅이어도 오히려 그 명성 때문에 도구화되는 상황은 인공지능과 인간 복제 기술이 가난한 이들, 여성에게 자칫 행복한 미래를 선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22세기에도 여전히 가족의 정체성은 존재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모든 소스를 공여하는 C형에 동의했던 유가족의 선택, 그 가운데 정작 엄마의 목숨값으로 목숨을 구한 딸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마침내 딸은 어머니를 해방해 주기로 한다. 비록 복제된 엄마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영화 ‘정이(Jung_E)’는 SF 물에 흔하지 않은 여성성에 모성애 그리고 신파 요소까지 버무려 내고 있다. 수현은 엄마의 복제 로봇 18호를 진짜 엄마처럼 대하고 연구소에서 탈출시키려 한다. 가족과 모성의 신화에서 여성을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 해방 의도는 가족과 모성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엄마와 딸이라는 주인공이 그래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비록 신파라 불려 비난을 당할지라도 절제된 SF에 감정의 폭발을 일으켜 낼 수 있는 가족과 모성의 설정은 익숙한 한국적 정서의 결합이었다. SF에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시도였다. 이전의 SF물에 없던 점이기 때문에 신성불가침의 룰을 어긴 듯이 대할 것이 아니라 대중적 감응을 어떻게 끌어내고 있는지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쨌든 세계인들의 반응이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현재 한국의 콘텐츠 모델이 세계 무대에서 이바지할 수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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