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별똥 - 정지용

별똥 정지용(1902 ~ 1950) 별똥 떠러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시평] 정지용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시인이다. 납북인사들이 해금이 되면서 정지용의 시 역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고, 그의 시인 ‘향수’에 곡을 붙여, 박인수와 이동원이 멋지게 불러, 화제를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널리 애송되는 노래가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밤하늘엔 참으로 별들이 많았다. 서울이라고 해봐야 지금같이 높은 건물도 없었고, 불빛도 많지 않아 밤하늘은 깜깜했다. 그래서 그런가, 밤하늘에 별들은 마치 촘촘히 박혀 있듯 떠있었다. 이런 밤하늘에서 문득 긴 빛을 발하며 별똥이 떨어지면, 우리들은 모두 신기해서, 저 별똥이 떨어지는 지평선 저 너머를 찾아가고 싶어 했다. 그 별똥과 별똥이 떨어진 자리에 관해 막연한 동경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면 조금 큰 아이가 어른스럽게 저 별똥이 떨어진 곳은 우리가 사는 곳과는 다른 번쩍이는 금도 있고, 그런 세상이라고 가본 듯이 말을 한다. 그러면 우리들 모두는 그 별똥이 떨어진 곳에 나이가 들면 꼭 찾아가보리라 마음으로 새겨둔다. 마치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이상향이 바로 별똥이 떨어진 그 자리인 양,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 별똥이 떨어진 자리를 고이 간직하며 자라간다. 별똥이 떨어진 그 자리, 우리 모두 가보고 싶어 하던 그곳,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마음에 두고 다음날에 가보려고, 벼르고 벼르다가, 우리들의 삶 속에 묻어버린 그곳. 아마도 그곳은 우리 어린 시절의 꿈이 깃든 곳인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그래서 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어린 시절의 그 꿈, 꿈의 세계이었으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기고] 77주년 8.15 광복절을 맞이하여

8.15일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이다.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하여 한반도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은 문자 그대로는 “빛을 되찾음”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이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경축 행사를 시행한 지 벌써 77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35년간의 기나긴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여 국권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매년 8월 15일을 ‘빛을 되찾다’는 뜻의 ‘광복절’이라 명명하여 잃었던 국권을 회복한 것을 국가에서 경축하는 국경일로 지정하였다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웃 나라인 일본과의 갈등과 앙금의 역사 속에서 지금도 그들은 반성하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우리의 가슴 아픈 상처를 아랑곳 하지 않고 한일관계를 적대관계로 지속해오고 있는 현실 속에 참담하고 암울했던 35년이란 역사를 절대 잊지 말고 광복절(光復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영토와 국민은 있으나 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잠시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일본의 잔악성에 대해 용서는 하되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후손들에게 되새길 수 있도록 민족의 정체성을 가르치고 다시는 나라를 잃는 슬픔을 물려줘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빼앗긴 나라와 주권을 되찾기 위해 이 나라와 이 계례를 자신보다 사랑하신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광복이라는 빛을 맞이할 수 있었고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 뜻깊은 광복절을 맞아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의 숭고한 역사를 통해 국민들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라 사랑 정신을 계승하는 계기가 되길 제안해본다. 올해 광복절에는 전 국민이 스스로 태극기를 달고 경축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튼튼한 국가안보의 첨병으로 새로운 세대들에게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주고 새로 출범한 새 정부와 함께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대통합을 통해 우리의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뜻 깊은 77주년 8.15 광복절이 되었으면 한다.

[마음이 머무는 詩] 나는 닭 - 조석구

나는 닭 조석구(1940 ~ )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우리 모임은 연례행사로 보신탕과 삼계탕을 같이하는 재래시장 할매집을 찾아간다. 똥댕이 아줌마가 주문을 받는다 다 개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개 아닌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닭 [시평]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다. 연일 33도 그 이상을 웃도는 기온으로 움쩍달싹 하기가 힘이 든다. 엊그제가 중복이니 이제 말복 지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더위를 견디며. 사람들은 더위에 흘린 땀으로 소진된 체력을 보강한다는 명분으로 보신탕을 먹는다. 그러나 요즘 차츰 삼계탕이 유행을 한다. 보신탕은 ‘개’에 대한 생각과 ‘개고기 논란’으로 인해 퇴조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어디 사람의 식욕이나 욕망이 그런가. 고집해서 필히 개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복날 사람들은 보신탕집을 찾는다. 그러나 개중에는 개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꼭 한두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지만, 삼계탕을 주문하려 한다. 그러면 보신탕집 주인은 이런 사정을 눈치채고, “다 개죠? 혹시 개 아닌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다. 그러면 왠지 자신이 닭이나 된 듯, 조금은 망설이다가 힘을 내서 손을 번쩍 든다. ‘닭대가리’ 라는 속어가 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을 흔히 일컫는 말이다. 머리가 나쁘다는 말에서 확대돼, 신통치 않은 사람, 머저리 같은 사람이라는 말로도 흔히 쓰인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기랄! 오늘은 보신탕집에서 그만 ‘개 대신 신통치 않은 닭’이 돼버리고 말았구나. 대책 없이 비적비적 흘러내리는 삼복더위의 비지땀과 함께, “나는 닭” 하며 손은 번쩍 들었지만, 왠지 뒤끝이 씁쓸하기만 하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기고] 소상공인 직접대출 신청 시 제출서류 간소화해야

문 승 권(다산경영정보연구원장, 경영학박사) 최근 경기 악화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자금 압박으로 더욱 늪에 빠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에 대해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인건비, 임차료, 구매대금 지급 등 사업운영비를 지원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서울시 등에서 무담보와 무이자 프로그램을 운영했거나 운영하고 있다. 소상공인은 1인 창업자나 소기업이 많은데다 자금종류도 많아 정책자금 등 신청시 행정인력도 부족해 포기하거나 신청하다라도 20여 종류 이상에 이르는 제출서류에 대한 부담으로 하소연을 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시의 행정상 불편을 줄이고 신속한 대출이 가능하도록 공공 마이데이터 서비스와 비대면 전자약정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2020년 상반기부터 비대면 자금신청 서비스를 도입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제출서류의 축소 등 소상공인들을 위해 대출시 이용상 편리하게 개선하도록 시도해왔다. 하지만 현장에 체감하는 소상공인들에게 주요 애로사항으로 제출서류에 대한 불만이 많은 편이다. 의당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지불능력, 미래 가치를 심사해야 하므로 충분하게 제출서를 확인하려함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실제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은 금융 업무 프로세스상 1차 서류 통과 후 추가서류를 받고, 융자 신청서 작성 후 심사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소상공인진흥공단 금융의 경우 소상공인 특화자금은 제조업을 영위하고 있는 소상공인이 필요로 하는 운영자금과 기계 도입 등의 시설자금 지원을 통해 경영안정 도모하고자 하고, 재도전특별자금은 사업성은 우수하나 저신용으로 민간 자금조달이 어려워 경영애로를 겪는 소상공인을 위한 자금 지원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금융 신청시 서류 탈락률이 제조자금인 특화자금의 경우 약 30% 이상, 저신용자 자금인 재도전자금의 경우 50% 이상이 되고 있다. 즉 첫째, 50세 이상의 시니어 계층은 전산 신청이 어렵거나, 둘째, 신청서 작성이 미흡하거나 2~3일 내 단기간에 20가지 이상 서류를 제출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 시기를 놓쳐 서류를 미제출하기도 한다. 특화자금이나 재도전특별자금에 필요한 서류는 대출 신청서, 신청 자가진단, 윤리 준수 약속, 사업계획서, 공공부문 마이데이터 서비스 이용 동의서, 개인이나 기업 정보의 활용 동의서, 주민등록증, 사업자등록증 사본, 표준재무제표 증명, 보험자격득실확인서 또는 소상공인 확인서, 월별 원천징수이행상황신고서, 국세와 지방세납세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주된 사업장 토지 및 건물 등기부등본, 거주주택 토지 및 건물 등기부등본, 주된 사업장 또는 거주 주택 임대차계약서 사본, 최근 3년 표준재무제표증명, 최근 1년간 부가가치과세표준증명이다. 추가로 법인 인감증명서, 법인 등가시항전부증명서, 주주명부, 사업장 4대보험완납증명서, 법인이사회 입보결의서, 최근 1개월 이내 상시근로자수 확인서류, 공제부금 납부내역확인서, 산업재산권 또는 저작권의 등록원부, 녹색제품 또는 환경성적표지제품 인증서 사본, 특허와 인증 등 서류를 제출할 수도 있다. 전자행정시대에 위와 같은 과다한 서류 제출 요구로 소상공인들은 행정 과부하가 걸려 정책 정책자금 등이 긴급하게 필요시 정작 수혈을 받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업체들이 많은 실정에 있다. 이에 1차적으로 전산 신청서, 정보 동의서 등 기본서류만 받음이 필요하다. 개인의 경우 사업자등록증사본, 최근 3년 부가세 증명, 최근 3년 재무제표,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법인의 경우 주주명부, 법인등기부등본(말소 포함)을 받고, 1차 통과시 2차 서류를 받아 통과 후 융자 신청서를 받거나 추가 서류를 받아 심사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20여 가지 이상에 이르는 서류를 2~3일 내에 제출함으로써 2~3개의 서류가 빠져 탈락되는 경우가 많아, 단계적으로 서류를 보완하고 확인하여 금융기관과 고객인 소상공인 상호 편리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즉 소상공인이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대출 신청시 탈락률이 높아 행정 간소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소상공인정책자금 사이트에서 서류 작성 등과 관련하여 24시간 원격 상담창구 개설과 행정서비스 지원 제출기간을 분산하여 대폭 늘려주고, 결국 마이데이터 범위를 확장하고자 활용 서류 정보에서 현재 13종에서 더욱 늘리고, 행정안전부ㆍ고용노동부ㆍ국민건강보험공단ㆍ국세청ㆍ금융기관ㆍ신용정보회사 등과 협력하여 업체 정보를 공유하여 불필요한 서류 제출을 줄이도록 하여, 결국 소상공인에게는 편리성을 도모하고 공급기관은 금융 원스톱서비스 혁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머무는 詩] 줄장미 - 이화은

줄장미 이화은 입술이 새빨간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손톱이 긴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아슬아슬 건너고 있는 아버지의 무수한 여자들 [시평] 지금은 다르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이었던, 6.25 전쟁이 막 끝난 직후의 풍경은 많이 달랐다. 시골은 말할 것도 없었고, 서울에서도 동네에 빨간 루주를 바른 여성이 나타나면 모두 수군거렸다. 어디 루주를 바른 것뿐이었겠는가, 뾰족구두만을 신고 돌아다녀도 그렇고, 더더구나 손톱을 기른 모습은 기상천외의 일인 양 생각을 했었다. 그런 여자는 평범한 여염집 아낙이나, 여염집 딸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입술이 새빨간 여자나, 손톱이 긴 여자나,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는 다 첩이거나, 그런 유의 여자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여인들이 시대를 앞서가던, 그래서 다른 여성들이 용기가 없어 엄두도 못 내던 자신에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던 선구적인 여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또 자신을 치장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존재이니까 말이다. 오뉴월 담장 위 녹이 슨 철조망을 붙잡고 피어 있는 붉은 장미들을 바라보며, 그 옛날, 우리의 어린 시절 용기 있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던, 입술이 빨간, 그래서 폐쇄적인 인식의 세상으로부터 수군거림을 당하던 그 여인들을 생각한다. 세상의 이목을 견디며, 그 여인들 녹이 슨 오래된 시간의 철조망에 매달려 아슬아슬 시대를 건너오고 있음을 본다. 그 누군가의, 아니 우리 아버지들의 여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그 여인들. 그 여인들의 처연한 모습을 바라본다.

[기고] 7대 국가상징물 선양 ‘자유평화통일’ 이룬다

김원길 7대 국가상징물연구소장 한국정신문화는 충효사상·호국문화·국적교육(역사·국가상징물·기타) 등이 있다. 이중 정신문화 발판인 국적교육 국가상징물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국가상징물은 ‘한나라의 역사·문화·사상 따위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물체’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국기·국가·국장 등이 있으며 국가이미지 개선, 국민통합 등의 기능을 한다. 이는 국가정체성과 민족 정통성에 대한 상징적인 물건이다. 구현방안은 국민과 밀접하고 친근함에서 찾을 수 있다. 올바른 지정과 효율적인 선양이 이뤄질 때 국가이미지 개선, 국민통합 등에 기여한다. 인간의 자유본능은 좋아하고 생각하고 노래하고 겨루고 즐기고 그리며 이루는 존재이다. 이는 생물·철학·음악·체육·문화·미술·건축 등 7가지 학문이다. 민족화·건국화·산업화·세계화·국격화·민주화·선진화 등 7단계 최종목표는 ‘잘사는 자유평화통일국가의 건설’이다. 그 예로 올림픽·월드컵의 마스코트, 올림픽·월드컵기, 찬·주제가, 종목·축구, 성화·응원, 엠블럼, 메달·우승컵에 이룬다. 국가상징물 지정과 선양은 7개 학문의 이미지 3가지, 정체성이 되는 숭고한 뜻 3가지, 정통성이 되는 내력 7가지 등 ‘7-337론’이 능률적이다. 대한민국 7대 국가상징물은 국화무궁화, 국기태극기, 국가애국가, 국기(技) 태권도, 국어한국어, 국장해륙국, 국물우주로 정립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무궁화는 단군신화 이전부터 문헌에 해양대륙국 자생과 통꽃은 ‘민족하나의 상징’이다. ②태극기는 국민, 흰색바탕에 태극의 천지창조, 4괘, 우주만물 중 ‘자유민주의 상징’이다. ③애국가는 무궁화와 살기 좋은 화려강산을 담은 노래로 잘 사는 ‘나라사랑의 상징’이다. ④태권도는 모든 운동기초로 건전한 정신과 심신단련으로 호국은 ‘국가방어의 상징’이다. ⑤한국어는 충효예정신 기반의 한식, 한복, 한옥, 한류 등 한글은 ‘최고문화의 상징’이다. ⑥해륙국은 동북아에 위치한 동서중앙의 해양대륙 대한민국 그림 ‘세계중심의 상징’이다. ⑦우주로는 해양대륙 넘어 사대주의극복 선진자유평화통일국가상 ‘자유통일의 상징’이다. 자유통일상, IT타이거는 한반도 모양을 아시아 대표동물 호랑이로 그려 ‘통일국가’를 표현한다. 밑받침은 세계 전자산업을 선도하는 IT강국의 ‘자유’, 중앙 위로 유무형의 전통문화 ‘융합’과 한반도형태 호랑이가 ‘국화무궁화 꽃’을 물고 해양대륙을 넘어 우주로 웅비하는 독창적 디자인의 대한민국 상징물이다. 이러한 ‘IT타이거 우주로’를 만들어 세우면 어떨까? 이는 세종시에 ‘무궁화공원’ 예정지, 수도서울 국가상징물거리 ‘한가온’ 등과 함께 미래 대한민국은 사대주의극복 해양대륙 넘어 ‘우주로 웅비’라는 국가목표를 갖는다. ‘잘사는 자유평화통일의 IT타이거상’은 민족의 영원한 희망을 이룰 것이다.

[마음이 머무는 詩] 노을이 질 때면 - 양순복

노을이 질 때면 양순복 고향집 지붕 위로 낮게 내려앉은 달빛에 박꽃도 새하얗게 웃던 날 처마 끝에 등불 밝혀 놓고 마루 끝에 앉아 자식들 기다리시던 어머니 어서 가거라 해 저물기 전 어서 가 식구들 잘 건사하라 서쪽 하늘 노을 속에서 그날의 쓸쓸한 어머니가 자꾸만 손짓하신다. [시평] 박꽃은 7월에서 9월 사이에 핀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시골집 초가지붕 위에 화려하지 않으면서, 소박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을 지닌 하얀 박꽃이 핀 모습은 그 풍경을 더욱 단아하게 만든다. 박꽃은 그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과 같이 꽃말이 ‘기다림’이다. 달밤에 하얗게 핀 박꽃을 바라보며, 집 떠난 사람이 무사하게 돌아오길 마음으로 빌었기 때문에 ‘기다림’이라는 꽃말이 붙었던 모양이다. 고향 시골집에 자손들이 찾아와 하루나 이틀 묵고는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처마 끝에 등불 밝혀 놓고, 마루 끝에 앉아, 얼마나 기다리던 자식들인가. 고향의 어머니야 떠나가는 자식들 며칠 더 머무르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그래도 어머니는 손을 휘여휘여 저으시며, 해 저물기 전 어서 가서는 식구들 잘 건사하라고 하신다. 이런 어머니를 뒤를 하고 자식들 고향집을 떠난다. 지금은 어머니도 안 계시고 고향도 사라진, 그래서 더욱 뵙고 싶은 어머니. 박꽃이 하얗게 피는 계절이 오면, 고향집 지붕 위로, 달빛을 받으면 새하얗게 웃고 있을 그 박꽃 생각이 절로난다. 서쪽 하늘 노을 속에서, 자꾸만 손짓하시는 그날의 쓸쓸한 표정의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기고] 이젠, 한국정신문화의 날 제정해 ‘국가지표’ 삼자

김원길 국가상징물연구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78.6.30.) 개원 44년, 한국학중앙연구원 변경 18년이 지난다. 박정희 대통령은 개원사를 통해 유명한 말을 남긴다. ‘물질문명과 정신문화 관계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상호보완과 균형이 유지될 때 국가는 참다운 발전’을 한다.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오스만제국 등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은 국가정신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신 선구자 박종홍 서울대 철학교수는 ‘한국의 사상적 방향(1968)’에서 한국정신문화를 충효사상, 국적교육(역사 국가상징물 기타), 호국문화유적 발굴 등 3가지로 제시하며 국민교육헌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10.26사태 이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개원 1년 4개월 만에 뜻을 펼치지 못한다. 이후 국가정신문화의 중요성은 잊힌다. 그렇게 국민통합 초석이자 국가정체성의 구심점 국가상징물은 기본법(의전뿐)조차 없이 70년을 보낸다. 세계 각국은 헌법 50%(북한포함), 법률로 40% 이상 정한다. 국가상징물 기본법을 신속히 제정해 개원일인 6월 30일이나 무궁화가 만발한 8월 8일을 한국정신문화의 날로 정해 행사를 통해 국가정신문화의 중요성을 알리자. 기본법의 효율적 실천은 정부조직 행정안전부를 각국처럼 내무부로 변경 자유민주국이 추가돼야 한다. 자유민주국 예하는 헌법 정체성의 자유민주과, 전통 호국문화의 민족정통과, 국가관의 국가상징물과, 윤리도덕의 윤리복무과, 국민통합의 사회통합과 등 최소 5개과로 운영될 때 국민통합에 효율적이다. 이의 뒷받침은 수도서울에 국가상징물거리 ‘한가온’ 조성과 한강대교·동작대교 사이 한강에 대륙해양 넘어 사대주의 극복, 우주로 ‘자유통일상’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 세종특별시 동편 전월산 무궁화동산 예정지에 세계 각국 7대 국가상징물관, 서울·평창 하·동계올림픽, 한·일월드컵 7대 상징물관 추가설치는 세계관광자원화다. 대한민국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국가위상과 함께 국민의 자부심으로 국민통합의 영원한 구심점이다. 이는 국가지표가 되는 국가이미지, 국민통합, 나라사랑, 일자리 창출(국제관광), 국가경제 등 1석 5조의 효과를 발휘한다.

[기고] 용산 대통령실을 ‘우와대’로 부르면 어떨까

김원길 국가상징물연구가 윤석열 20대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고 용산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개조해 사용한다. 국민공모를 거쳤으나 새 이름 못 찾아 ‘용산 대통령실’을 그대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지난달 3일 위원회는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로 새 이름을 압축, 온라인 선호도 조사결과 5개 후보작 가운데 과반을 득표한 명칭이 없었다. 1, 2위인 ‘이태원로22’와 ‘국민청사’ 등도 국민에게 상징성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합당한 명칭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한다. 종전의 대통령 집무실은 조선시대의 지명에 따라 초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경무대(景武臺)’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윤보선 4대 대통령 시절에 청기와 지붕에서 착안해 ‘청와대(靑瓦臺)’로 명칭이 변경해 지금에 이른다. 노태우 13대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에 익숙한 청기와 본관을 신축하기에 이른다. 국민에게 우선적으로 낯익은 말은 ‘세 글자’와 ‘대’다. 대(臺)는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을 의미한다. 청와대는 60년 넘도록 언론을 통해 수 없이 들어 국민 모두가 익숙해 이해가 쉽다는 점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럼 두 글자를 무엇으로 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국가정체성 ‘자유’, 국가의 희망 ‘통일’, 국가의 미래 ‘원전’, 국가의 웅비 ‘우주’, 국민의 하나 ‘우와!’, 등 5개 용어를 도출해 볼 수 있다. ‘자유대’ ‘통일대’ ‘원전대’ ‘우주대’ 등 4개 용어는 흔하고 어색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와대’는 어떨까? 흔하지 않고, 감탄과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 ‘우’는 국가의 웅비 우주시대로 윤석열 정부의 성공적인 ‘누리호’ 시험발사를 연상시킨다. ‘와’는 ‘우아’의 준말, 우리 한글의 자모 ‘ㅘ’의 이름이다. 따라서 감탄사! 우와는 감탄이나 놀라움 따위를 나타낼 때 내는 순수한글 우수성의 우리말이다. 결론은 국가미래의 웅비 우주시대와 우리 한글 창제의 우수성이 국민 하나로 세계에 길이길이 영원하다는 취지에서 용산 대통령실을 ‘우와대’로 부르자고 제안해 본다.

[마음이 머무는 詩] 벼락 - 홍일선

벼락 홍일선(1950 ∼ ) 먹구름 속 쿠르릉 번쩍……희디흰 섬광 벼락꽃께서 야만의 마을에 심방 나오셨습니다 세상은 순식간 무명으로 가득 차 아직 거짓을 모르는 보랏빛 도라지꽃만 오롯하셨는데 시를 써서 세상을 숱하게 기망한 나는 숨을 데를 찾는 것이지만 사방에서 끈달아 쿠르릉 번쩍! 번쩍! 이놈 고얀 놈 벼락 맞아 죽을 놈 그래도 사무사(思無邪)냐고 아직도 사무사냐고 일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시평] 흔히 우리는 감당이 안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벼락 맞을 소리니, 벼락 맞을 일이니, 하고 말들을 한다. 다시 말해서 벼락은 하늘이 뭔가 크게 잘못한 우리들 인간에게 내려주는 천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갑자기 하늘이 껌껌해지더니, 쿠르릉 번쩍…… 하며 희디흰 섬광과 함께 벼락꽃이 하늘에서 번쩍인다. 이 벼락꽃을 보며, 사람들은 대부분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놀란다. 자신이 혹은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가, 마음 한 구석이 찔리기도 한다. ‘벼락이 인간들에게 내리는 천벌’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은연중에 지배하고, 또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늘에서 쿠르릉 번쩍…… 하며 희디흰 섬광과 함께 치는 벼락에 온몸을 움츠리며, 숨을 곳을 찾는다. 자신이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쓴답시고, 시로서 세상을 기망한 죄가 자신에게는 있기 때문에 이 벼락에 맞아 싸다는 생각을 한다. ‘이놈 고얀 놈 벼락 맞아 죽을 놈’, 스스로 스스로에게 죄를 묻는다. 죄명은 다른 무엇도 아니다. 사악함이 없는 생각이 바로 시라는 공자님의 말씀인 ‘사무사(思無邪)’이다. 그렇다. 과연 내가 사악함이 없는 생각으로 살고, 또 시를 쓴 시인인가?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물어본다. 천둥 치는 하늘 아래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마음이 머무는 詩] 종점 - 김종호

종점 김종호(1939 ~ ) 270번 버스는제주대학과 애월을 오가는 유일한 노선이다.정기적으로 대학병원을 찾아야 하는 내게는 고마운 일떠날 시간과 도착할 곳이 확실한 버스는 행복하다버스야 고뇌 없이 무장 달리기만 하면 그만이지만대학병원을 오가는 길에 내 인생은 끝날 것이다그 사~오십 분의 길에 내 팔십삼 년이 지나갈 것이다종점에 내려서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본다.종점이 시점이 되는 것은 참 묘하다매번 후회하는 인생, 다시 시작하면,두 번 살게 되면 후회가 없을는지종점에서는 돌아보는 길이 된다.한낮 볕이 좋더니 하늘에 별빛이 찬란하다오늘도 덤으로 받은 하루가 슬며시 간다.어디서 한 줌 바람이 따뜻하다 [시평]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시내버스의 종점은 시골의 모습이 풍기는, 그런 변두리였다. 그런 버스종점에 내리면, 도시가 지닌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듯하여,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했다. 아마도 제주도의 애월은 그런대로 시골풍을 지닌 마을이리라. 이곳 애월에서 제주대학까지 가는 버스 노선은 시인이 제주대학교 대학병원을 가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버스가 다니는 노선인 모양이다. 이제 나이가 들고, 그래서 생긴 병은 일종의 노환이다. 그래서 생애가 다 하는 그날까지 지니고 함께 살아야 한다. 왠지 서글프기까지 하다. 시인을 실어 나르는 버스야 아무런 고뇌 없이 종점에서 종점으로 달리기만 하면 그만이겠지만, 어쩜 삶이란 이렇듯 대학병원이나 오가며, 그 길에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병원을 다녀와 애월 종점에 내려, ‘종점’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을 한다. 종점인 애월에서 떠나 다시 이곳으로 오듯이 인생을 두 번 다시 산다면 후회가 없을까. 덧없는 생각을 한다. 오늘이라는 삶이 있어 볕이 좋은 한낮도 만났고, 또 별빛 찬란한 밤하늘도 만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오늘의 한 줌 바람, 더욱 따뜻하게 전신을 감싼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마음이 머무는 詩] 사랑의 길 - 윤후명

사랑의 길 윤후명(1946 ~ ) 먼 길을 가야만 한다. 말하자면 어젯밤에도 은하수를 건너온 것이다. 갈 길은 늘 아득하다. 몸에 별똥별을 맞으며 우주를 건너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언젠가 사라질 때까지 그게 사랑이다. [시평] 사랑이라는 말 같이 위대한 말이 더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사랑이 없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은 내가 다른 존재로부터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다른 존재에게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그 이상 감미로운 것은 없겠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존재에게 사랑을 준다면, 그 힘은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연인이 연인에게 주는 사랑, 예술에게 주는 사랑, 학문에게 주는 사랑 등등의 그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하겠다. 그래서 흔히 사랑을 하는 그 길은 결코 수월한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먼 길을 가야만 한다. 그리하여 매일 밤 은하수를 건너야 하고, 온몸으로 별똥별을 맞으며, 아 아 우주를 건너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언젠가 사라질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 이가 진정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이 지닌 진정 위대함이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온몸을 다 해 줄 수 있는 데에서 진정한 사랑의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사랑의 길, 힘들고 멀고 먼 길이지만, 그러나 한 생애를 걸고 한 번쯤 걸을 수 있는, 참으로 행복한 길이기도 하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마음이 머무는 詩] 굴원(屈原)을 읽으며 - 유재영

굴원(屈原)을 읽으며 유재영(1948 ~ ) 일용할 이슬 몇 병, 악기 대용 귀뚜라미 울음 몇 섬, 언제고 타고 떠날 추녀 끝 초승달, 책 대신 읽어도 좋을 저녁 어스름 아, 그 집에도 밥 먹는 사람이 있어 하늘 한 귀퉁이 빌려 구름 농사짓는다. [시평] 한 생애를 잘 산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재력을 갖추고 권력을 쥐고, 떵떵거리고 사는 것만 잘 사는 삶인가. 나이가 어지간히 들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그런 시간을 맞이하게 되면, 가끔은 이와 같은 생각과 부딪치곤 한다. 진정 내가 이 생애를 잘 살았는지, 참으로 정답을 찾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굴원(屈原)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국 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이다. 초나라에서 형성돼 발전한 시가인 초사(楚辭)의 대표적인 작가로도 많이 알려졌다. 굴원은 초나라 왕족이다. 그러나 참소(讒訴)에 쫓겨 강가나 떠돌며 살다 죽은 인물이다. 일용할 이슬 몇 병과 하늘 한 귀퉁이 빌려 구름 농사나 지으며, 그렇게 살았다. 굴원이 초나라 조정에서 벼슬을 하며 호의호식하던 시절이 더 나은 삶이었던가, 아니면 시나 읊고 노래나 흥얼거리며 강가나 떠돌며 살던 그 시절이 더 좋은 삶이었던가. 강가를 떠도는 굴원에게 어부가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온 세상이 더러운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술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어, 그렇구려라며 답했다고 한다. 흙탕물 같은 세상, 온통 술에 취해버린 세상에 한데 어우러져 엉클어져 사는 삶이 좋은 삶인가, 아니면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귀뚜라미 울음이나 들으며, 저녁 어스름에 기대어 뉘엿뉘엿 지는 석양이나 바라보고, 초승달이나 벗하며 사는 삶이 좋은 삶인가. 굴원에게는 어느 삶이 더 가치가 있는 삶이었던가. 굴원은 마침내 강에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 날이 5월 5일이다. 그래서 대만(臺灣)에서는 이 날이 시인의 날이다. 굴원이라는 이름을 남긴 생애는 벼슬을 하던 그 삶이었던가. 아니면 강가나 떠돌며 살던 삶이었던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독자기고] 6.25전쟁의 아픔과 상처, 그날을 잊지말아야

대전제일고등학교 배움터지킴이 여준 김천섭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 벌써 6.25가 발발한 지 72주년이 되었다. 우리에게 6월은 너무나 가슴 아픈 달이고 동족상잔이란 전쟁으로 깊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의 달로 기억되고 있다. 신록의 계절 6월 25일 시체가 산을 이루고 젊은 피는 하천을 이루었다는 '시산혈하(屍山血河)'라는 말은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6.25 그날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먼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름 모를 산하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채 오늘의 한국을 지키다 산화한 참전 UN 16개국의 수많은 젊은 영령들에게 넋을 기리고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추모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우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엄숙한 날인 6월 6일과 6.25일을 맞아 6월의 왜곡된 시대적 진실을 바로 잡고 이념적인 갈등에서 남침을 북침이라고 하는 웃지 못할 논쟁을 절대로 후손들에게 거짓 역사를 다시 물려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총성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강자가 약자를 침략하는 세계정세 속에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과 미국의 불편한 관계, 서방(나토)과 러시아와의 관계 등 복잡한 국제 정세속에서 우리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미 공조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우리의 안보태세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과거 박근혜 정권에서도 피했던 공산세력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등 대북 경고 메시지를 한층 고조시키면서 지난 정권과는 다르게 6.25는 남침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이젠 우리는 지난 정권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북한 공산 사회주의 사상에 세뇌된 젊은이들이 그들의 허무맹랑한 사상에 고무돼 대한민국의 체제를 전복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된다는 정치적 목적하에 6.25의 노래까지가사를 바꾸고 10년간 금지곡으로 지정하는가 하면 우리 자녀들이 지금 6.25노래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국가유공자 가족의 한사람으로서 정말로 마음이 아프다. 또 한 가지는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피비릿내 나는 전쟁이었고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으로 얼룩진 한국사에 잊지 못할 비극의 전쟁이었는데 이들을 추모하는 날로 지정하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넋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6.25일을 전쟁기념일로 표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에 더욱 화가 난다. 이제는 역사의 흐름 속에 지난 과거의 잘못된 정쟁 속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 고치고 되돌려서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것이며, 나라를 위해 내 한목숨 아낌없이 초계와 같이 던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그분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손들이 이어받아 지켜 줄 수 있도록 6.25전쟁의 참상을 바로 알리고 왜곡된 내용을 바로 잡는 원년이 되길 간곡히 바란다.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은 아직도 그 전쟁이 남긴 상흔을 간직한 채, 그날의 참혹한 전쟁의 비극이 끝나지 않은 소리 없는 전쟁 속에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멈추지 않는 북한의 도발에 또다시 우리 앞에 전쟁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한반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더 이상은 북한의 전쟁놀이에 휘말리지 말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바로 세계 평화를 지키는 초석이라는 안보정신을 재정립하고 국가안보를 다시 한번 챙겨 보는 날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머무는 詩] 월요일 가방 - 김혜자

월요일 가방 김혜자 학교 가방 놓고 피아노 가방 든다. 피아노 가방 놓고 미술 가방 든다. 미술 가방 놓고 글쓰기 가방 든다. 영어 가방 놓고 꾸벅 졸면서 저녁밥 먹었다. 휴! 힘든 월요일 놀이터 가방은 왜 없을까. [시평] 예전에는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어깨에 둘러메거나, 들고 다녔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가방이 사용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대략 1883년 민영익(閔泳翊)을 대사로 해 11명이 미국에 다녀올 때 가방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방의 어원은 네덜란드 말인 가바스에서 왔다고 한다. 이 가바스의 일본식 발음이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오늘 가방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가방을 대부분 서너개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피아노, 미술, 영어, 태권도 등 많은 과외를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아이들은 과외에 조금도 쉴 여유가 없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대로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던 학원 차를 타고는 과외를 하러 간다. 이것이 끝나면 다음 과외를 하고, 또 다음 과외를 하고. 그래서 꾸벅꾸벅 졸면서 저녁밥을 먹는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휴! 힘든 월요일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아이들은 힘이 든다. 어린아이들이 이 과외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재미있게 뛰어놀고, 그래서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한 아이들이 되는, 그런 시대가 빨리 와야 하리라. 어린 시절부터 과외라는 과열된 삶을 살아야 하고, 또 경쟁을 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관념이 아이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오늘 우리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닌지. 오늘의 이런 어린아이들은 가끔 자신의 이런 모습을 돌아보고는 놀이터 가방은 왜 없는 거야? 혼자 쓸쓸히 생각을 하곤 할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마음이 머무는 詩] 수박 - 이은채

수박 이은채 통통 두드리니, 아직 덜 익었다. 다 때가 있다. 언젠가는 익는다. [시평] 여름이다. 각종 과일이 나온다. 특히 여름철 수박은 빼놓을 수 없는 과일이다. 지금은 마트에 가서 계절과 상관없이 이런저런 과일들을 사지만, 예전에는 과일 장수 구루마가 동네를 지나다니며, 그 계절에 나는 과일을 팔았다. 그러면 어머니들이 이들 과일 행상을 불러 세워 놓고는 과일을 고른다. 잘 익은 과일을 고르는 법이 어머니들에게는 나름 있었던 모양이다. 수박은 통통 두드려 그 소리를 듣고 수박이 잘 익었는지 어쩐지 안다고 한다. 어머니들은 수박을 두드려보고는 이 수박은 아직 덜 익었네 하며 다른 수박을 두드려본다. 두드려보면 무슨 꿀맛이라도 풍기는,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일까.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궁금해 하곤 했었다. 모든 것은 때가 돼야 만이 된다. 모든 것은 그것이 이룩되는 때가 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이룩되기를 바라는 것은, 실은 실패를 자초하는 길이다. 보름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차야만이 달은 둥근달이 되고, 아무리 봄 햇살이 따사로워도 어느 시간이 흐르고 또 돼야 꽃이 벙글고 피어나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어른스러운 생각을 기대할 수 없듯이, 아직 익지도 않은 수박의 속이 빨갛게 익어 단물이 흐를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다. 이 세상의 만물 모두 그 각자가 지닌 때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스스로 익어서 제 모습을 갖추리라. 이것이 바로 세상 이치이다. 이치를 알고 이치에 따라 사는 것이 참으로 현명한 삶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기고] 원주 법천사지 ‘1000년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지정해야

김원길 국가상징물연구가 강원도 보호수 수령 1000년 느티나무가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거돈사지 입구 도로인접 축대에 있다. 지정번호 강원-원주-9호, 수령 1000년(지정일자 기준), 지정일자 1982.11.13. 수고 20.8m, 소재지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41-1, 나무둘레 759㎝, 관리자 원주시장(마을공동)로 적혀있다. 1000년의 가치로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거돈사지는 사적 제168호, 면적 25.339㎡, 지정일 1968.12.19. 소재지 부론면 정산리 189, 시대 신라말 고려 초기로 적혀있다. 위치한 곳은 강원 원주, 충북 충주 도계의 남한강 지역으로 부론면 법천과 소태면 청룡 등 3개 사지가 인접해 있다.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는 박물관을 준비 중이다. 법천사지는 사적 제466호, 면적 14만 2122㎡, 소재지 법천리 629번지 외로 방대해 보인다. 국보, 지광국사 현모탑과 탑비 등 임진왜란 때 소실과 화재로 용산 중앙박물관에 뜰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약 400년 후 조선 초기의 청룡사지는 해설사와 홍보물을 비치해 관광객을 맞는다. 문화유적의 관리는 지자체 간에 관심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찾아오는 관광객은 주로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거나 인터넷에서 보고서 찾는다. 인터넷에 방문객들이 남기는 글과 사진 등이 흥미로워 읽는 독자들이다. 이들 3개 사지를 둘러보며 가장 아쉬운 것은, 법천사지 중앙의 천연기념물 원조 상징이 되는 1000년 느티나무를 왜 천연기념 물로 현재까지도 지정하지 않았을까? 시대가 통일신라에서 고려, 조선, 현재에 이루는 1000년 세월을 겪은 느티나무이다. 1000년의 모진 풍파에 시달려 썩고 태워져 구멍이 나서 몇 사람이 들어설 정도로 속이 비어 있다. 천년의 세월의 풍파를 겪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필자의 눈으로 이거야말로 1000년을 겪은 천연기념물의 원조 상징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로 평가된다. 현재 우뚝 서 있는 위치와 1000년 느티나무의 가치를 지니고 서 있다. 이는 법천사지 유물과 같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천연기념물의 원조상징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 법천사지 등 3개의 사지들과 함께 후손들의 자랑스러운 영원한 관광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