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3>] “작은 변화가 큰 평화 만든다… HWPL에 배운 교훈”

[천지일보=이솜 기자] 평화에 관심이 있고, 이를 실천하려고 마음먹는다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HWPL은 전 세계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노력하는 단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단체 가운데 HWPL과 같은 규모와 열정을 가진 곳은 흔하지 않다. 나이지리아 오웨리 기술 국립대학교 부총장인 에메카 오구지에(51)도 자연스럽게 HWPL과 손을 잡게 된 교육자다. 이 학교의 화학과 교수이자 비정부기구(NGO)인 국제가족재단(IFF)의 단체장을 겸임하고 있는 에메카 부총장은 “사회의 평화, 정의, 안정을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IFF는 개발도상국과 고통에 놓인 지역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이로 인한 공동체와 지역,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고질적인 빈곤을 해결하려는 단체다. 이처럼 평소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나선 에메카 부총장은 인터넷을 통해 HWPL의 활동을 접하게 됐고 세계평화를 외치는 HWPL의 미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평화교육 통해 사회 임무수행 성취감 느껴” 교육자인 에메카 부총장은 HWPL과의 협력 중 평화교육에도 참여하게 됐다. 에메카 부총장은 “HWPL의 평화교육 프로그램이 사회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나의 역량을 강화하고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교육에 참가한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이는 내가 최근에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중요하게 내린 결정은 그 값을 톡톡히 했다. 에메카 부총장은 곧 평화교육에 빠져들게 됐다. 그는 “(HWPL의) 모든 교육에 참여했다”며 “각 교육 후에 진행되는 문제를 푸는 시간도 즐거웠다. 이런 퀴즈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자체가 나에겐 가치 있는 일이었다. 교육을 받을 때는 사회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며 얻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교육 프로그램도 에메카 부총장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무엇보다 HWPL과 이만희 대표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에메카 부총장은 “HWPL 아프리카 팀의 노력과 에너지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아프리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졌다”며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보기에도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HWPL과 이 대표를 매우 진실하고 용기 있는 평화의 사자라고 생각한다”며 “격변하는 세계에서 모두가 평화를 원하지만 사회와 세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념하는 자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동료들도 회원들도 HWPL 평화교육 참여 HWPL의 평화교육에 감명을 받은 에메카 부총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재단 구성원들에게도 평화의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그가 센터장으로 있는 아프리카 미래 에너지 및 전기화학 시스템 우수 센터(ACE-FUELS)에서도 작년 6명이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HWPL의 평화교사로 임명돼 지역 중학교에서 평화 교사로 활동 중이다. IFF 회원들도 평화교육에 참여했다고 에메카 부총장은 전했다. 에메카 부총장은 왜 이렇게 평화교육에 열정적으로 임했을까. 먼저는 그가 평화교육에 참여하며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에메카 부총장은 “평화교육 프로그램은 우리의 행동과 태도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평화교육을 통해) 우리가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과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평화의 사자가 돼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과 재단 회원들이 평화교육을 받은 데 대해 “이는 우리 사회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동료와 회원들이) 전하기 시작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해줬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가 평화를 갈망하는 배경에는 나이지리아의 불안한 안보 상황도 빼놓을 수 없다. 에메카 부총장은 나이지리아의 평화를 위한 우선순위를 묻자 “다양성 안에서 하나 됨이 매우 중요하다”고 꼽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고 분단과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씨가 심기게 하는 행동과 태도를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에메카 부총장이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일까. “제게 평화란 편견과 오해와 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줄 준비가 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린 마음과 진심으로 다양한 생각과 태도를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할 때, 갈등과 오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개개인을 또 모두를 존중합시다.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향한 길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6>] ‘민다나오 평화’ 목도한 필리핀 학교, 앞다퉈 ‘HWPL 평화학교’ 동참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HWPL 평화교육’ 유치원서 고등학교까지 적용[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때가 되면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지구촌에도 평화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장래의 주인이 될 여러분! 다 함께 평화의 사자가 돼 하늘의 뜻과 인류의 소망을 위해 평화의 세계를 함께 이뤄가도록 합시다.” 5천여명의 필리핀 현지 학생들과 교육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가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2016년 1월 25일 1만여명이 재학 중인 필리핀 코타바토 폴리테크닉 시립대학교(CCSPC, 총장 담망 반탈라)에서 열린 ‘HWPL 평화학교 선정식’에 참석했다. 행사 전 학생들은 대한민국 국기와 HWPL 산하 국제청년평화그룹(IPYG)의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흔들며 차량을 타고 학교에 들어서는 이만희 대표와 평화사절단을 맞았다. 환호와 박수 속에 현장은 금새 축제 분위기가 됐다. HWPL의 설립자이자 6.25 참전용사인 이만희 대표는 “전쟁 없는 평화세계를 이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자”면서 직접 세계를 31바퀴나 돌며 전 세계 모든 학생들이 평화를 만들어가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평화교육 사업을 추진했다. 세계 곳곳에 세워진 HWPL 평화학교의 학생들은 평화교육을 통해 생명의 중요성과 가치를 내면화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양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합당하고 평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 국적과 민족, 종교, 문화, 이념의 차이로 인한 갈등 상황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HWPL 평화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역사회 내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범을 가르치고 평화로운 사고방식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조화로운 공존의 방법을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평화롭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HWPL의 평화교육이 이같이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이유는 말로만 평화를 외치는 것이 아닌 이 대표가 직접 나서서 실현시킨 HWPL의 평화 행보를 교육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대표적으로 이 대표가 직접 중재에 나서 이뤄낸 필리핀 민다나오의 40년 종교 무력 분쟁의 평화적 해결 사례가 있다. 2014년 1월 24일 HWPL 이만희 대표의 중재로 이뤄진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HWPL과 현지 주민들은 평화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평화교육 사업을 기획·진행했다. 그 첫 결실로 2016년 1월 25일 필리핀 코타바토 폴리테크닉 시립대학교(CCSPC)가 필리핀의 고등교육기관 중 최초로 HWPL 평화학교가 됐다. 담망 반탈라 CCSPC 총장은 이듬해인 2017년 9월 18일 평화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 대표에게 표창패를 전달했다. 이 표창패에서 반탈라 총장은 “HWPL 이만희 대표께서 미래에 영원한 업적을 남기시고 세계 평화 건설을 위해 평생 헌신하셨기에 이 표창패를 드립니다”라고 명시했다. 또 “코타바토시 기능 대학은 HWPL의 평화 증진을 위한 노력에 협력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강조했다. 반탈라 총장과의 대담에서 이만희 대표는 “평화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며, 청년들도 평화의 사자가 돼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에서 반탈라 총장은 로날드 아다맛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HED) 위원을 HWPL에 소개하기도 했다. 아다맛 위원은 이 자리에서 이 대표가 ‘지구촌에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이루어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자’며 시작한 평화운동에 감동해 자신도 필리핀에서 평화의 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4개월 후인 2018년 1월 이만희 대표는 HWPL 평화 사절단과 함께 제26차 세계 평화순방을 위해 필리핀을 방문했다. 이 일정 중 CHED와 HWPL 간의 MOA가 이뤄졌다. 이후 CHED는 같은 해 8월 7일 평화연구 통합 승인에 관한 결의안(제435호-2018호)을 냈고, 이듬해인 2019년 4월 2일 발행된 CHED 행정명령 1호 공문을 통해 관련 고등교육 커리큘럼에 평화교육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행정적인 뒷받침 속에서 필리핀에서의 평화교육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HWPL 평화교육은 CHED가 관장하는 필리핀 고등교육(주립 대학, 전문 대학)을 비롯해 기본 교육 과정(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에 확장 및 적용돼 가고 있다. CHED와 HWPL의 파트너십은 이후 3개의 고등 교육기관과의 MOU가 진행됐고, 29개의 기초 교육과정 학교 현장에서 평화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15건의 MOU와 3건의 MOA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2>] 평화 메신저 나선 언론인 “신념 달라도 HWPL서 하나 된 모습 감명”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팔라 데 파파가이오 편집장 페스투스 이제히 예리 [천지일보=이솜 기자] “HWPL과 이만희 대표가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평화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지금의 위험한 시기에 매우 필요한 평화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HWPL의 평화교육과 세계평화 국제법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온라인 매체 팔라 데 파파가이오(Fala de papagaio)의 설립자이자 편집장인 페스투스 이제히 예리(53)는 평소 평화에 관심이 많았다. 우연히 접하게 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의 활동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세계평화를 위한 페스투스와 HWPL의 협력은 시작됐다. 다음은 지난달 본지가 이메일로 진행한 페스투스와의 인터뷰. ◆“HWPL 행사 특별… 다양한 참석자 한 자리에” 페스투스가 세계 평화에 관심을 가진 데에는 팔라 데 파파가이오의 본사가 있는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의 불안정한 정국 상황도 맞물려있다. 인구 150만~200만명의 전 포르투갈 식민지 기니비사우는 1974년 독립한 이래 네 차례의 군사 쿠데타와 10여 차례의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2014년 이후 기니비사우는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으나 군부의 영향력이 여전히 커 현재 우마로 시소코 엠발로 대통령 정권에서도 지난 2월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쿠데타 당시 정부청사 주변에서 총격전이 발생해 11명이 사망했지만 청사 안에서 내각회의를 주재하던 엠발로 대통령은 무사했고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기니비사우뿐만 아니라 말리, 기니, 차드, 부르키나파소 등 주변국에서도 군사정변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등 불안과 위험이 상존해있다. 이 때문에 페스투스는 자신만의 평화의 정의가 있다. “평화는 전쟁, 갈등, 공동체에서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폭력이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자유 또는 공공의 소란이나 전쟁으로부터의 자유롭고, 조용하고 차분한 마음의 상태, 더 나아가 사람들 사이의 합의와 화합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평화를 갈망해오던 페스투스에게는 HWPL의 평화행사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페스투스는 HWPL의 포럼과 컨퍼런스 등 공식 행사에 온라인으로 수차례 참석했다며 “행사를 통해 항상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동기부여를 받았다”며 “사는 곳과 피부색 그리고 언어에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라는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페스투스는 “HWPL의 평화행사는 다른 행사들과 달리 서로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신념이 있는 종교 지도자들,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며 다르게 보이는 참석자들이 하나 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표했다. 무엇보다 페스투스를 감동 시킨 인물은 이 대표다. 그는 “이 대표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으며 HWPL은 우리 세대가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대표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 당사자들과의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실질적으로 다양한 분쟁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평했다. ◆“HWPL과 이만희 대표의 연설 세상에 전해” 페스투스는 직업이 언론인인 만큼 언론 매체를 통해 평화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데에도 관심이 크다. HWPL과 팔라 데 파파가이오는 MOU를 체결했으며 페스투스는 HWPL 활동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또한 일부 언론행사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스투스는 “(기사를 통해) 이 대표가 주최하는 다양한 평화 컨퍼런스 및 온라인 포럼에 직접 참석하게 돼 영광스러웠다고 전했고 HWPL이 진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구체적인 평화 활동을 펼치는 단체라고 보도했다”며 “평화로운 세상의 중요성과 이를 이루기 위한 교육 활동 그리고 분쟁에 관련된 여러 만남, 단합 등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이 대표의 연설도 전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인으로서 그가 가장 감명 깊었던 HWPL 취재는 지난 1월 24일 HWPL 평화의 날 8주년 행사였다고 한다. 페스투스는 “모든 시민사회 대표들이 강제개종 상황을 재검토하고 국제사회의 규범이 된 ‘신앙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해결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페스투스와 같은 언론인의 역할도 크다. 페스투스는 “언론은 위기 상황에서 보다 효과적인 대처를 가능하게 하도록 미리 경보를 울려주고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를 제공한다”며 “사람과 집단 사이의 다리를 만들고 폭력적인 갈등을 예방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의 전달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행동의 동기부여자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1>] “이만희 HWPL 대표와 같은 분이 있어 한국은 행운이다”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동티모르 호세 투르꿸 수석 고문[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400년이 넘도록 식민지 생활을 이어가던 나라에서 태어나 8살 때 전쟁을 경험했고 극도의 혼돈 속에서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성장해 현재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한 국가의 내무부 수석 고문으로 활동하는 이가 있다. 바로 동티모르의 호세 투르꿸 수석 고문이다. 그는 2007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돼 동티모르의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호르타를 보좌하기도 했다. 직접 전쟁을 겪었던 만큼 평화에 대한 중요성을 가슴에 새기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투르꿸 수석 고문은 세계적인 민간 평화단체인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의 협력자이기도 하다. 그는 “호세 라모스 호르타의 평화행동은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화해를 낳았고, 이만희 대표와 HWPL의 평화행보는 민다나오의 긴장을 완화했다”면서 “HWPL에 가입하는 것은 평화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투르꿸 수석 고문이 겪었던 전쟁의 아픔과 평화를 이루는 과정을 비롯해 그가 HWPL에 협력하는 이유에 대해 서면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 어두웠던 동티모르의 모습투르꿸 수석 고문에 따르면 동티모르가 현재와 같이 민주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데까지는 많은 희생이 있었다. 동티모르는 1514년부터 1975년까지 4세기가 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1975년 12월 7일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포르투갈-티모르 침공이 있었는데 당시 투르꿸 수석 고문은 8살이었다. 전쟁 속에서 그의 어린시절은 생존이 신조였다. 그는 “오늘날 남수단, 기니비사우, 리비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후 국가의 아이들이 겪는 끔찍한 현실에서 내가 본 것은 어두웠던 그 옛날 우리 동티모르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동티모르는 1999년 8월 30일 유엔 주관의 국제회의와 시민투표를 통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전까지 약 20만명의 희생자들을 발생시키며 24년간의 독립과정을 겪게 됐다. 시민투표를 통해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점령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러나 동티모르는 투표 결과에 불복한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저지른 또 다른 학살을 감수해야 했다. 투르꿸 수석 고문은 당시 동티모르의 상황에 대해 “사회기반의 95%가 무너지면서 동티모르는 거의 석기시대로 돌아간 듯 했다”고 회상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유엔은 2002년 5월 20일 티모르인들을 보호하고 완전한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파견대가 포함된 다국적 동티모르국제군(INTERFET)을 창설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동티모르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번영하고 있으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HWPL로 전세계 평화 네트워크 형성”투르꿸 수석 고문이 이만희 대표와 HWPL에 대해 알게 된 시기는 2018년이다. 그는 이 대표와 HWPL의 평화행보를 접하고 난 뒤 “이만희 대표는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분”이라며 “이 대표의 평화행보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의 공헌은 동티모르에서도 국제적인 평화 노력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 대표와 같은 분이 있다니 한국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HWPL의 평화 활동들과 평화 지지자들은 북한의 군비경쟁과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내전과 붕괴의 위기에서 남아프리카를 안전하게 지켜준 넬슨 만델라와 같은 지도자의 평화 활동처럼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호세 라모스 호르타의 평화 행동은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화해를 낳았고, 이만희 대표와 HWPL의 평화행보는 민다나오의 긴장을 완화했습니다. HWPL에 가입하는 것은 평화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HWPL의 평화활동에 참여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한 투르꿸 수석 고문은 “HWPL은 한국의 성공과 화합, 근면 정신을 대표하는 NGO”라며 HWPL이 추구하는 ‘지구촌 전쟁종식’에 대해서도 “가장 공감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도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HWPL과 협력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에 대해선 “전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지지자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토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며 “전 세계 평화 지지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투르꿸 수석 고문은 HWPL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법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의 유엔 상정을 지지하는 서신을 2019년 9월에 작성한 바 있다. 또한 같은 시기에 HWPL이 주최한 제5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해 발제하기도 했다. 그는 2022년 온라인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HWPL과의 꾸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 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누구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2007년 동티모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돼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호르타를 보좌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대통령 외교 및 국제관계 고문으로 일했다. 또한 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동티모르가 회원국으로 소속된 서아프리카의 포르투갈어권 국가(CPLP)의 일원으로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서 유엔과 협력해 국가 헌법 질서를 회복하는 팀의 부대표를 맡아 일하기도 했다. 기니비사우는 1974년에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이후 정치적 갈등에 휩싸인 바 있다. 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대화와 토론, 회의를 조직하고 기니비사우 전국을 다니며 평화의 일에 적극 참여했다. 또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2014년초 평화적인 선거를 이끌었고 평화 통일 조약의 체결을 도왔다. 그는 이 일로 유엔으로부터 감사장을 수여받았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5>] 필리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기관, HWPL 평화교육 도입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HWPL-CHED 공동 교육 추진 필리핀 2천개 대학·대학교 적용 “학생부터 시작, 전국에 평화 전파”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40년 동안 벌어진 이슬람-가톨릭 간 종교 유혈분쟁이 2014년 1월 24일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의 중재로 종식됐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필리핀에서의 평화문화는 급속도로 확산했다. 이는 그 자체로 ‘평화의 사자’들을 양성하는 최고의 교과서가 됐고, 필리핀에서의 HWPL 평화교육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협정 체결 이후 이만희 HWPL 대표는 2018년 1월 23일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로날드 아다맛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HED) 위원과의 만남을 가졌다. CHED는 필리핀 대통령실 직속 국가기관으로 2000개 이상의 고등교육기관(대학·대학교)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이 대표는 로날드 아다맛 위원과 평화교육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큰 힘이 될 중요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이는 고등교육위가 2019년 모든 공·사립 고등교육기관이 다루는 교육과정에서 평화 연구·교육을 제공하도록 명령하는 ‘행정명령 1호’를 발행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각 국·공립대학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 과정 도입이 추진됐고, 주립 대학 및 지방 대학에서의 평화 활동을 확대함으로써 평화 의식 성장을 위한 국가 및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MOA에 따르면 HWPL은 평화를 위한 논의가 가능한 종교 지도자, 정치 지도자, 여성 및 청년 단체들로 이뤄진 플랫폼을 갖고 있다. 전쟁종식과 평화를 위해 정책 입안자, 시민사회 및 언론 간의 네트워크 및 연대도 형성하고 있다. 평화교육의 다양한 교과내용을 개발·검토·확립하는 등 평화교육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 CHED는 필리핀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개발 계획, 정책, 우선권 및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권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에 대한 개발 계획·정책·우선권 및 프로그램을 구성을 권장하며, 행정 및 사법 기관에 연구에 대한 우선권과 프로그램도 추천하고 있다. 또 세계 정상급 학자의 발굴, 국가 건설 및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센터를 지정하고 지원하며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 및 프로그램 개발 보조금, 학자금, 기타 유사한 프로그램처럼 추가적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기준을 개발한다. 이 같은 양 단체의 특성을 고려해 세부적인 역할도 명시했다. HWPL의 역할은 ▲HWPL 평화교육의 기본 교육과정 추천 ▲HWPL 및 CHED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평화교육 프로젝트 및 평화 계획 전 세계적으로 홍보 ▲필리핀에서의 평화교육을 모범 사례로 전 세계 고등교육기관으로 평화교육 실시 확대 ▲평화 및 개발 프로그램을 위한 장거리 교육 제공에 관심이 있는 고등교육기관과의 연계 구축 ▲HWPL의 연례 평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권을 CHED에 제공 ▲뉴스레터, 서신, 전단지 등 평화교육에 관한 HWPL 독서 자료 제공 등이다. CHED는 필리핀의 각 고등교육기관에 적합하도록 HWPL이 제안한 평화교육 커리큘럼을 수정 및 보완하기로 했다. 또 필리핀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이 각각의 커리큘럼에 평화교육에 대한 하나 이상의 과정·과목 제공을 포함하도록 장려하기로 했다. 필리핀의 고등교육기관은 최소 1년에 1번 평화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고, 필리핀 고등교육기관이 평화교육 및 평화 계획을 하도록 촉진키로 했다. 이 대표는 “교육 쪽에 변화해야 할 점은 전쟁을 위한 과학적 무기보다도 평화를 이루는 연구와 지도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평화를 이루는 데 한 동반자가 생겼으니 너무나 반갑고 기쁘다”고 밝혔다. 로날드 아다맛 위원 역시 “CHED와 HWPL은 평화를 함께 촉구하는 동반자”라며 “학생들 사이에서 평화에 대한 촉구가 시작되면 결국 온 지역사회와 전국으로 뻗어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오늘 맺은 MOA는 정말 알맞은 시기에 대단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를 통해 HWPL의 평화교육을 육성하는 것은 필리핀 교육기관에 영향을 줄 것이고, 평화를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로 필리핀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HWPL과 DHED의 평화교육 MOA 체결이 이뤄진 때는 이만희 대표가 평화순방 26차 시기였다. 이때 이 대표는 20개 이상 분교와 약 7만명의 학생을 보유한 필리핀 내 최대 학교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를 방문해 평화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행사에는 평화의 사자 방문 소식을 듣고 그의 평화 메시지를 듣기 위해 800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청년들도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를 위해서라면 모두 평화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말에 학생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날 로날드 아다맛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 위원장과 엠마누엘 데 구즈만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 총장은 HWPL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0>] “HWPL 이만희 대표의 평화 행보, 함께하는 게 양심적 의무”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북키프로스 유수프 수이즈메즈 근동대학교 교수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서아시아 지중해 동부에 있는 키프로스섬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부에는 국제사회로부터 미인증된 북키프로스가 있다. 키프로스섬 남부에는 키프로스 공화국이 있다. 북키프로스는 1974년 군사 쿠데타 이후 튀르키예(터키)가 개입해 튀르키예군이 승리하면서 1983년 정치적 독립을 선언하고 탄생했다. 작은 섬이 정치적인 이유로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이다. 이곳에서 종교학자로서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 유수프 수이즈메즈 근동대학교 교수이다. 그는 최근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과의 평화를 이루는 사업에 고무돼 있다. HWPL이 평화를 이룰 답으로 추진 중인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의 국제법 제정 캠페인과 종교연합사무실(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의 플랫폼을 접하고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그가 HWPL과 함께한 이유를 서면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평화,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 중 하나” 수이즈메즈 교수는 자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키프로스는 정치적 위기를 경험한 국가 중 하나”라면서 “저는 학자로서 국가와 지역의 평화를 위한 정치적 견해의 기여를 분석하고 평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남키프로스에서 조직된 일부 학술 연구에 참여했다. 세계평화연구소(PRIO)에서 주최한 튀르키예와 그리스 역사 교사 모임이었고, 그는 행정관으로 참여했다. 그는 “그리스 키프로스 쪽의 친구들을 사귀면서 상호 이해를 발전시키고 일반적인 인간의 감수성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수이즈메즈 교수가 HWPL의 평화운동에 관심을 쏟고 지지를 표한 이유는 간단했다. “평화는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인류의 가장 신성한 의무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문화적 차이는 삶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그들을 보호하는 평화로운 방법은 대화의 길을 열어두는 데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HWPL의 활동은 중요하며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가 HWPL의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이자 동기부여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HWPL의 평화활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HWPL이 진행하는 평화 사업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참여하는 것을 ‘양심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언론에서 HWPL과 이만희 대표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이메일로 보낸 초청 메일을 받았지요. HWPL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컨퍼런스였습니다. 참석을 해봤지요. 7개월 동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이만희 대표의 평화를 위한 활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HWPL의 이러한 노력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인도주의적이며 양심적인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위한 행사에 감동 수이즈메즈 교수에게 최근 인상이 깊었던 프로그램은 올해 3월 13일에 진행된 우크라이나 전쟁종식 평화 마라톤 라이브행사였다. 그는 이날 발제를 맡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다양한 문화와 신념을 가진 전문가들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평화로운 길을 열어 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나날이 갈등이 증가하는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행사를 조직하는 것은 인류에게 특히 중요한 봉사였다는 소회이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평화는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지난 2016년 3월 14일 오후 3시 14분 대한민국 서울에서 선포된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에 주목했다. 그는 “선언문의 주요 목적은 평화의 시대를 위해 오늘날 지구촌이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 즉 인권 정의 자유와 같은 가치를 증진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DPCW는 제1조부터 제7조까지는 무력의 위협이나 사용 금지, 군축, 국제법 존중, 다른 국가들과의 우호 관계를 포함해 세계에서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제8조에서 제10조는 종교의 자유, 시민의 참여, 평화교육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평화운동을 추진하는 HWPL에 대해 “HWPL은 문화 간 상호 이해의 발전, 평화 환경의 보전과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구는 우리의 공동 집이다. 그것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신성한 의무”라면서 “우리 모두는 국가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선의와 소원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 운명은 하나, 전쟁 그치고 평화 이뤄야” 수이즈메즈 교수는 2021년 9월부터 HWPL 종연사 패널로 참석했다. 이후 그는 종교계의 평화 및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개별토론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종연사가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해답이라고 믿으며 종교인사뿐 아닌 정계인사들도 더 많은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모든 종교가 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종교=과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는 삶 전체와 관련된 질문과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종교의 역할에 대해 “본질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내면의 평화를 보장하고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조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각각 다른 종교에 속한 전문가들은 그들의 종교적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 인류 공동의 미래 건설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먼저 공통의 가치를 결정하고, 이러한 공통의 가치를 관계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충족시킨 플랫폼이 HWPL 종연사였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HWPL과 함께 종교 평화의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HWPL 종연사가 각 종교의 경서를 중심으로 경서비교토론회를 진행하는 장면은 그에게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그는 종연사 모임과 관련해 “다름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철학을 갖고, 이를 위해 서로 다른 신념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평화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이는 인간의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에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지구촌 시민들을 향해서 자국의 평화와 세계평화가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모두는 평화를 확립하고 유지할 책임이 있다”면서 “상호관용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이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을 지원함으로써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HWPL과 같은 단체를 지원하고 평화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함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종연사가 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전하는 무기 기술은 오늘날 전 세계를 위협하는 수준입니다. 국가는 건강과 교육보다 무기에 더 많이 투자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체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를 해롭게 하는 이 사회적, 정치적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라는 것을 잊지 않고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내일 전쟁에서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유수프 수이즈메즈 교수는 누구 근동대학교(NEU: Near East University, 튀르키예어 YDÜ: Yakın Doğu Üniversitesi)는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에 위치한 사립 대학이다. NEU의 100% 소유주인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 아투 곤셀(Suat Günsel)에 의해 1988년 북 니코시아서 설립됐다. 이사회 의장은 그의 아들 이르판 곤셀(Irfan Günsel)이다. NEU에는 현재 많은 학부가 있으며 그 중 신학학부가 있다. 총 98개 학과, 4개의 직업 학교와 고등학교 및 4개의 대학원에서 학부 및 대학원 수준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만 50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인 북부 키프로스에서 가장 큰 대학이다. 유수프 수이즈메즈 교수는 신학학부에서 하디스와 하디스의 방법론에 대해 가르친다. 그는 카라데니즈 공과대학 신학부 석사, 앙카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03~2005년까지 동부 지중해 대학에서 교양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북키프로스에서 종교부서를 담당했으며, 지난 2011년부터 근동신학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 중이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9>] 케냐 언론인 “HWPL, 모든 대륙‧국가 지원 받는 단체 될 것 기대”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루바오 FM 찰스 오두올 운영이사 내년 케냐 대선 앞두고 평화‧인권 문제에 관심 가진 오두올 운영이사 HWPL 홈페이지서 평화 소식 접한 후 지속적 보도‧온라인 행사 참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아프리카의 주요 경제국 중 하나인 케냐는 오는 8월 9일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누가 당선 되든 최근 3년여간 지속된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인한 심각한 식량문제와 경제난은 숙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케냐의 국민들은 생계를 위해 전쟁을 치르듯 살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해답을 인권과 평화의 문제에서 찾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이가 있다. 루바오(Lubao) FM의 찰스 오두올(Charles Oduor) 운영이사이다. 그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보도와 캠페인 활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인권과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을 알게 된 후 더욱 적극적으로 평화의 일을 하는 이유다. 본지는 그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론, 평화와 혁명 위한 최고의 도구” “저는 평화와 혁명을 위한 최고의 도구가 언론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구촌이 언론의 자유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함으로써, 공동체가 토론 플랫폼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봅니다. 이 토론 플랫폼을 통해 우려 사항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개선돼 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고도 믿습니다. 평화는 전 세계의 문제이며 우리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전파하기 위해 우리의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두올 운영이사는 평화로운 국가를 먼저 이뤄야 그 안에서 국민들이 평화를 누리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평화로운 국가와 환경은 성장의 발판이며 발전을 이루고 희망을 바라며 가정을 꾸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모두는 평화를 원하며 이것이 내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HWPL과의 평화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 매체에 종사하는 이로서 누구보다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케냐의 언론 상황은 어떠할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케냐에서 언론은 시민들에게 정보를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대체로 모든 국민들이 정보를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기간 동안 언론은 정치 부분에 있어 편향성 문제에 직면한다. 이것은 케냐 언론이 풀어야 할 큰 과제라는 지적이다. 정치계의 부정 부패를 알리는 데도 케냐 언론 매체가 큰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 규제와 입법자들에 의한 정책 입안 또한 보도가 이뤄지지만, 가해자들이 정부의 주요 인사이다 보니 기소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언론이 부패, GBVS(게임), 10대 임신, 교육에 대한 권리, 안보를 포함한 인권을 위한 투쟁과 실천이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로운 편이라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8년 8월 15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유엔(UN)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 ECA)에서 ‘에티오피아 평화 콘퍼런스’가 진행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만희 HWPL 대표는 아프리카 지역에 평 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07.28◆아시아‧인권‧평화 화두로 HWPL과 손잡아 오두올 운영이사는 몇 년 전 HWPL의 홈페이지를 통해 HWPL의 평화 활동을 알게 됐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평화 메시지와 HWPL 회원들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긴 게시글에서 그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은 이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후로 오두올 운영이사는 HWPL뉴스레터를 구독하며 HWPL의 소식을 루바오 FM을 통해 케냐에 전했다. 그는 이러한 보도를 하면서 평화 목표를 향한 HWPL과 자신과의 관계가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발전은 교류로 이어졌다. 그는 2022년 3월 지부 인권세미나 중 발제를 진행했고, 같은 달 3.14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HWPL 기사 8건을 보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의 문화와 인권에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HWPL에서의 활동은 더 큰 시야를 갖게 했다. HWPL을 통해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 등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배우게 됐기 때문이다. 또 그는 온라인 HWPL의 행사를 통해 평화 기념식에서 이만희 대표를 볼 수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오두올 운영이사는 “이만희 대표의 메시지를 통해 희망과 평화로 가득 찬 그의 신념을 알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루바오 FM은 HWPL의 평화 메시지를 플랫폼을 통해 게시하고 있다. 오두올 운영이사는 HWPL이 인도주의적 목적을 위해 지속적으로 평화의 활동을 해온 것처럼 그가 HWPL 관련 콘텐츠를 계속해서 공유하고 홍보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그는 HWPL과 정기적인 라디오 토크쇼를 계획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대선을 앞두고 인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 진전이 있도록 평화 파트너들이 원격으로 대화하며 파트너십을 맺고 해결점을 찾아가길 원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HWPL과 활동하며 가장 공감이 갔던 것으로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약자를 지지하고 법치주의를 지지하고자 하는 HWPL의 의지를 꼽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온라인 비대면 행사로 개최된 3.14 DPCW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운이 좋게 참석하게 됐다”면서 “세계 지도자들이 평화라는 가치 있는 뜻을 위해 모였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HWPL은 모든 대륙과 국가의 지원을 받는 전 세계에 영향력이 있는 단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루바오 FM 찰스 오두올 운영이사는 누구 찰스 오두올이 운영이사로 근무하는 루바오 FM은 케냐 서부의 도시 카카메가의 라디오 방송국이다. FM주파수 102.2MHz에서 영어를 포함한 4개 언어로 방송할 수 있도록 케냐 통신 당국(CA)와 케냐 미디어 위원회(MCK)의 인증을 받았다. 약 10개 이상의 카운티에 지부를 두고 약 500만명의 청취자를 보유하고 있다. 언론매체로서 루바오 FM은 케냐 국민(청취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며 무료로 인도주의적 캠페인도 진행한다. 잘못된 리더십으로 인해 발생되는 분쟁과 갈등, 케냐 북부에서 일어났던 강도로 인해 지역사회 내의 분쟁 해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 젠더 기반의 폭력 증가 등의 사안들을 보도한다. 아울러 고용, 기초교육, 공공자원의 균등 배분 등을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오두올 운영이사는 컴퓨터를 기반으로 정보 및 정보 시스템을 제공하고 이용하는 기술인 ICT와 미디어 전문가 및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루바오 FM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보편적 교육에 대한 접근을 돕고 케냐 어린이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증진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규제기관을 통해 어린이들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찾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4>] 민다나오 주민, 분쟁 40년 만에 함께 걷다… “HWPL 중재”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HWPL, 매년 5월 25일 세계평화선언기념 평화걷기대회 진행 필리핀 민다나오 시민들에게도 전파… 자발적 참여 이끌어내 2014년 민다나오 주민·학생 1만 2천명 거리서 ‘평화의 행진’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평화 걷기 대회, 출발!” 2013년 5월 25일 3만여명의 국내외 청년들이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앞에 모였다. 이들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의 힘찬 외침과 함께 전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평화를 촉구하는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다. 이만희 대표는 평화를 바라는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계평화선언문’을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세계 청년과 여성들은 매년 5월 25일에 세계평화선언 기념 평화 걷기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구촌의 주인공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하나가 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것이다. 3만여명이 동참한 이 거대한 움직임은 바다를 건너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며 또 하나의 ‘평화의 기적’을 이뤄냈다. 2014년 1월 24일 HWPL과 민다나오 주립대 학생들, 청년 단체, 종교 지도자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평화 걷기 대회를 진행했다. 이는 평화를 향한 민다나오 시민들의 의지를 보여 주는 계기가 됐다. 필리핀 언론은 이 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평화로운 민다나오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는 민다나오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졌다. 평화협정 이후에도 HWPL은 민다나오 현지의 평화정착을 위해 행진을 지속했다. 민다나오 평화협정 체결 6개월여가 지난 2014년 8월 11일 민다나오 주민 1만 2000명이 잠보앙가시에서 열린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 걷기 대회’에 참여했다. 잠보앙가시는 2013년 9월 이슬람단체와 정부군과의 충돌로 민간인 12명을 포함해 138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이슬람-가톨릭 종교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이슬람-가톨릭 주민들이 함께 평화 걷기 대회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걷기 대회 이후 이만희 대표는 이사벨라 잠보앙가 시장, 눌버트 사하리 따위따위주 주지사 등 정부 인사, 펜다툼 라하 밧자오 원주민 대표, 민간단체 대표, 각 종단 대표와 함께 전쟁을 끝내고 영구적 평화를 이루겠다는 평화협약식을 진행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5년 5월 25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제2주년 세계평화선언 기념 평화 걷기 대회’가 마긴다나오 주 불루안에서 HWPL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지역 내 가톨릭 및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주요 인사를 비롯해 정치인, 군인, 경찰 등 민다나오의 주요 지도자들과 시민까지 30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평화의 메시지를 든 정부 관계자와 MILF 대표단이 함께 평화의 행진에 동참해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한 조화로운 발전 양상을 보여줬다. 2017년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 국가(ISIS) 산하의 마우테 그룹이 마라위 시를 공격해 점령했고, 약 5개월간 정부군과의 교전 끝에 도시를 되찾았지만 1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픔과 고통으로 인해 절망에 빠질만한 상황이었지만, 평화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이들의 열정과 HWPL의 평화 사업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18년 5월 25일 HWPL은 민다나오 마라위 시의 사회적, 정서적 치유를 위한 ‘평화를 위한 연대 걷기’를 진행했다. 민다나오 거리에선 전통의상을 입은 시민들과 청바지를 입고 책가방을 둘러멘 학생, 티셔츠를 입고 깃발을 든 시민들이 질서 있는 모습으로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다. 군복을 입고 ‘Peace(평화)’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흥겨운 타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은 차량 위에서 대열을 이끌었고, 그 앞에선 치어리더들이 분홍색 옷을 맞춰 입고 행진했다.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고,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이들도 있었다. 같은 시간, 마라위 시 민다나오 주립 대학교에서도 ‘마라위 평화 연대 걷기’ 행사가 진행됐다. ‘Peace(평화)’ 알파벳 모양의 풍선을 손에 든 청년들이 행진을 진행했고 그 뒤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또 다른 청년들이 대열을 이뤄 행진했다. 히잡을 쓰고 행진에 참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같은 날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시와 코타바토 시에서는 ‘제4주년 세계평화선언 기념 평화 걷기 대회’가 열렸다. ‘We Love PEACE(우리는 평화를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든 시민과 평화를 상징하는 새인 비둘기를 형상화한 피켓을 든 아이들도 걷기 대회에 동참해 평화의 열기를 더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8>]“종교 화합과 평화, HWPL 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가 답”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우리 모두는 정치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유엔 평화유지군 연방이사회 부의장과 태국 종교간평화위원회 고문을 역임한 사딧 쿠마르(Sathit Kumar) 라마크리쉬나베단타연합 대표의 말이다. 그는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위해 태국에서 일해왔다. 그는 2015년 태국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 종교연합사무실(종연사) 패널로 섭외돼 현재까지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나이로 76세인 쿠마르 대표는 젊은 시절을 경영계에서 보냈고, 현재도 ㈜사이어미즈 경영책임자를 맡고 있다. 하지만 그가 관심이 있는 분야는 종교다. 그는 힌두교 단체 라마크리쉬나베단타연합(Remakrishana Vedanta Association of Thialand)의 대표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슈리 라마크리샤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종교 간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설립됐다. 사딧 쿠마르 대표는 태국 당국의 종교부서에서 22년 이상 일해왔다. 태국 힌두교 신앙을 대표하는 종교 간 대화와 관련해 국가‧지역 및 국제적 기반에서 마련된 종교 간 회의에 참석해왔다. 그는 산스크리트 학술 협회 설립 멤버였으며 태국 남부종교간평화의회 고문과 탐마삿대학교 인도학술센터 고문을 맡았다. 인도 태국 상공협회 전무이사와 인도 네팔 상업의회 전무이사, 힌두교 지식발전 위원회 고문을 지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HWPL과 인연을 맺으며 직함이 하나 더 늘었다. 그는 HWPL 홍보대사가 됐다. 한국에서 열린 9.18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는 온오프라인으로 6회나 참석했다. 지난 2019년에는 동남아시아 평화포럼에 참석했고, 부산경남동부 대륙 종교평화 캠프에 참석했다. 태국 방콕 종연사에서는 초대 패널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는 힌두교 대표 발제자로 참여해오고 있으며, 경서를 근거로 하는 종연사의 목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딧 쿠마르 라마크리쉬나베단타연합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 2016년 9월 16일 9.18 평화 만국회의 2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종교세션 콘퍼런스에 참석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07.25◆종연사에 매력 느낀 태국 힌두교 지도자 그는 종교 간 대화 모임이 많지만, HWPL의 종연사는 경서를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으며 이 방법이 옳다고 여겨서 누구보다 종연사 모임에 열성을 내고 있다. 또 종연사 참석 인사들에게 종연사의 목적과 취지를 설명해줄 정도로 공감하고 있다. 그는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에 대해 “모든 경서는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존중하도록 가르치고, 어떤 경서든 서로 싸우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분쟁은 단지 비참한 슬픔과 고통과 파괴를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또 힌두교에서는 모든 개개인의 영혼은 잠재적으로 신성하며,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서 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는 정치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쿠마르 대표는 다른 종교 간 교류 모임과 종연사 모임이 갖는 차이를 ‘경서’라고 콕 짚었다. “제가 종연사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매 모임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경서에 근거하고 인용해 답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제 경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 모임은 제가 제 종교의 경서에 대해 더 읽고 배우도록 독려를 해줍니다.” 종연사에서는 참석 패널들이 답변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경서에 근거해 답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일테면 음식을 주제로 발제를 할 때 패널들은 자신의 경서에서 말하는 음식의 내용을 찾아야 한다. 먹어도 되는 음식,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 피해야 할 음식, 그 음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 등이다. 경서 어느 페이지 어느 구절에 나오는지를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HWPL은 각 주제들을 통해 제가 제 경전으로 돌아가서 자세한 내용을 읽고 알아볼 시간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가서 경전을 읽어야 했습니다. 일상으로 하는 신앙생활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경서로 가서 그것이 어디에 써져 있고, 어떻게 써져 있는지를 알아내야 했습니다.” 힌두교에는 적어도 1240권의 책이 있다. 쿠마르 대표는 자신이 제시하는 경서의 내용을 알게 하기 위해 경서의 근거를 확실히 해야 했다. 청중들이 종연사 모임에서 쿠마르 대표의 발제를 듣고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HWPL의 평화활동, 돈보다 가치 있어” 쿠마르 대표는 HWPL과 인연이 닿고 평화의 일에 공감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열린 9.18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도 수차례 참석했다. HWPL 캄보디아 행사에 참석해 이만희 대표를 만나 유대감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HWPL의 평화 행보에 대해 “매우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이라며 “모두가 매우 열심히 일했고, 특히 HWPL은 일을 하면서 국가나 단체에 돈을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만희 HWPL 대표와 회원들의 사랑과, 그들의 존경심, 내면의 감정 등 이유로 자신도 보수를 바라지 않고 함께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마음으로 자주 모이고 논의를 하면서 먼 나라라도 간다는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면 모임을 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일하는 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태국에서 일하는 HWPL 회원 로라씨와 아직도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같은 마음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HWPL의 평화 활동이 더욱 성장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몇 년 간 HWPL은 여러 영역에서 많은 평화 활동들을 넓혀왔다”면서 “그 이유는 청년과 여성 등 모든 영역에서 함께 했고 이 힘든 시기에 전역에 걸쳐 영향력 있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이 대표와 그의 팀이 이끌어오고 있는 모든 평화계획과 활동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기에 차후 몇 년간 적어도 3~5개의 회의(종연사 모임)가 지역적, 국내외적으로 있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종연사 모임과 청년, 여성 모임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평화를 가져오는 활동에 있어서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DPCW 태국어로 번역해 보급 또 그는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을 태국어로 번역해 관련 부서에 배포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그는 “HWPL은 항상 좋은 일을 해왔고, 저는 DPCW가 (국제법으로) 승인되고 수용되면, 법안이 실행돼 모든 관련자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DPCW가 태국어로 번역이 돼 태국인들이 이 법이 무엇인지, DPCW의 조항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리고 종교에 대해 8·9·10 조항 또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을 향해 “국제적인 문제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DPCW를 채택해 세계에 평화가 있어지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DPCW가 태국에 채택되길 바란다고 희망하며 “만약 이 조항들이 유엔연합에 채택 된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는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며 “전쟁은 비참함,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난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어떤 형태의 전쟁도 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전쟁은 고통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며 “몇몇은 전쟁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다. 우리가 표면적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없지만, DPCW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을 때 다른 문제들 또한 해결된다는 말에 정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구촌 시민들을 향해서는 “마음에 의가 있을 때 성품에 아름다움이 있고, 성품에 아름다움이 있어야 가정에 화목이 있고, 가정에 화목이 있을 때 나라에 질서가 있으며 나라에 질서가 있어야 세계에 평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든 생명은 신성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죽일 수도 없고 죽여서도 안 된다”면서 “폭력이 없을 때에 우리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7>] 피지 언론인 “언행일치 이만희 대표, 위대한 평화의 사자”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피지TV 파트타임 프로듀서 에펠리 바카타와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세미나·포럼 HWPL 각종 평화행사에 적극 참석 “세계가 더욱 관심 갖는다는 것 느껴 HWPL 통합된 노력, 긍정적인 영향”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분쟁이 없는 국가에 사는 국민들은 평화를 열망하는 마음이 없을까. 되려 현재 누리는 자유와 평화를 모든 이와 함께하고 싶은 긍휼함으로 사명감을 불태우는 이들이 있다. 피지TV에서 파트타임 프로듀서와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 중인 에펠리 바카타와도 평화의 메신저가 되고픈 인사다. 그는 평화로운 남태평양 서부 섬나라 피지에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을 알게 됐고, 이후 팔을 걷어붙이고 평화의 일에 동참했다. 본지는 바카타와와 HWPL의 인연을 서면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평화 만국회의 1주년 기념식에서의 만난 ‘빛’ 그는 2015년 HWPL을 알고 난 후 이만희 대표의 평화행보에 항상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2015년 8월 22일 피지 수바에서 열린 ‘하이비스커스 축제’의 IPYG 행사 참여했고, 다음달인 9월 한국에서 열린 평화 만국회의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같은해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피지의 수도 수바에 설치된 종교연합사무실(종연사) 사회자로 참여했다. 2017년 8월 열린 피지 언론포럼해 참석해 발제를 했고, 같은해 9월 평화 만국회의 3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다. 2018년 3월에는 피지에서 ‘3.14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 선포 기념행사에 언론 대표로 참석해 발제했다. 2019년 9월에는 평화 만국회의 5주년 기념행사에 직접 발걸음을 했고, 2020년 이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HWPL 세미나와 언론포럼 등 각종행사에 참여했다. 바카타와와 HWPL의 인연에는 에피소드가 있다. 2015년 HWPL 지부 담당자가 그를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였다. 그는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가 수신자가 다른 전화인 것을 알았다. 피지에 자신과 이름이 같은 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HWPL 담당자의 설명이 너무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설명을 중간에 끊지 못했다. 언론인의 촉을 발휘해 그는 HWPL을 알아봤고, 이만희 대표와 HWPL의 행적을 살폈다. “HWPL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 친구를 통해서였고 저는 처음 이 대표를 종교연합사무실 모임에서 뵙게 됐습니다. 그는 어조에 사랑과 진심을 가득 담고 세계평화를 이루겠다는 결의까지 담아서 말했습니다. 그는 말한 대로 지켰고 평화를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행동까지 했기에 위대한 평화의 사자였습니다.” 이후 HWPL 초청으로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했다. 평화연수원에서 들은 이 대표의 연설은 그를 감동하게 했다. 이는 그가 계속해서 HWPL과 평화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 됐다. “제가 평화 만국회의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자 처음 한국 서울에 왔을 때, 저는 평화연수원에 가서 이 대표를 만났습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 대표와 함께 한 방에 모였죠. 사실 저는 이 대표께 드리고자 선물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선물 뒷면에 세계평화를 위해 그가 해온 일을 언급하며 이렇게 썼어요. ‘자기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누군가,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라고 말이에요. 이 대표께서는 제게 ‘내 아들아’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나를 그렇게 불러준 것은 그가 제 삶의 작은 것, 심지어 태도까지 인정해준 것이기 때문에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바카타와는 매년 열렸던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해 큰 행복감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 행사가 점점 발전해가는 것과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우리의 통합된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좋은 일은 바로 평화에서 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HWPL과 이만희 대표 평화의 일 적극 지지 이 때문에 바카타와는 자국이 이미 평화롭고 분쟁과 거리가 먼 섬나라이지만, 평화를 이루는 데에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피고 다른 차원에서 증오 범죄, 전쟁, 인종 차별 행위 등을 보면서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 일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 이런 미래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적어도 다른 무언가, 평화로운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남겨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그는 HWPL의 평화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HWPL 행사에 참석해 발제할 때에는 특히 이 대표의 평화행보 지지와 평화를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호소해왔다. 그는 HWPL과 협력해 이뤄가는 평화의 일에 대해 “먼저는 제 안에서 평화를 이루고 피지의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평화에 대한 HWPL의 노력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람들이 먼저 세계평화 실현이 HWPL과 같은 어떤 단체나 이 대표와 같은 어떤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것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를 기대한다”면서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다. 전쟁이나 다른 증오 행위에서는 오직 소수만 이익을 얻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평화는 종교, 인종, 빈부 또는 그런 종류에 관한 것이 아니다”며 “HWPL은 이들을 인정하지만 이들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는 순전히 평화의 일이며, 이 대표 또는 다른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전 세계를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솔선수범해서 피지와 관련된 모든 HWPL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그의 참여는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HWPL 행사들은 비대면으로 전환했기에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됐다. 그가 HWPL과 손잡고 함께하면서 제작했던 HWPL 관련 다큐멘터리는 그를 보람되게 만들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가 태평양 지역에서 방영됐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저널리즘은 세계평화를 촉진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정보는 힘이며, 저널리즘은 사람들에게 정보의 원천이다. 모든 뉴스는 전쟁, 범죄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든 언론사에 평화 이야기가 실린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구촌 시민들을 향해 “우리 모두의 문제에는 평화를 제외하고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면서 “우리는 평화를 찾고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단지 HWPL만이 아니라, HWPL의 회원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 각각 평화를 함께 찾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피지TV 에펠리 바카타와는 누구? 에펠리 바카타와는 피지에서 오랜 기간 방송국에서 일한 언론인이다. 2013~2014년까지 피지 FBC 국영방송국에서 근무했고, 2014년 2월부터 2016년 8월까지 피지TV 민영방송국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피지TV 파트타임 프로듀서와 프리랜서 언론인으로서 활약 중이다. 라디오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한다. 그가 근무하는 ㈜피지TV는 24시간 무료 송출 TV채널인 피지원TV를 운영한다. 이 채널에서는 영어, 피지어, 힌두스탄어의 3가지 주요 언어로 어린이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및 뉴스를 서비스한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3>] ‘40년 분쟁종식·평화’ 서막이 된 ‘민다나오 평화협정’ 순간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민다나오 가톨릭-이슬람 양측 대표 ‘분쟁 행위 중단’ 약속 이만희 HWPL 대표 중재 이후 무기 버리고 평화 되찾아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저는 대중에게 ‘분쟁’을 후대의 유산으로 남길 것인지, ‘평화’를 후대의 유산으로 남길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사람들의) 답은 모두 ‘평화’였습니다.” - 이만희 HWPL 대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는 40년간 이뤄졌던 가톨릭교와 이슬람교의 유혈분쟁을 종식 짓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2014년 1월 24일의 기억을 이같이 떠올렸다. 정치인도, 권력가도 해결할 수 없었던 두 종교간 갈등은 오직 ‘평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필리핀 민다나오 땅을 밟은 이 대표의 행보를 통해 극적인 해결을 맞았다.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한 ‘평화 협정식’은 2014년 1월 24일 제너럴 산토스 시에서 진행됐다. HWPL과 세계여성평화그룹(IWPG)과 국제청년평화그룹(IPYG)이 주최·주관해 진행된 행사에는 민다나오 지역의 정치인, 대학교수, 종교 지도자 및 학생을 비롯한 3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민다나오 분쟁의 본질이 가톨릭-이슬람 간 종교분쟁임을 간파한 이만희 대표는 가톨릭교와 이슬람교의 두 대표에게 ‘분쟁’과 ‘평화’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물었다. 또 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종교의 주인인 하나님이 시킨 행동이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분쟁과 죽이는 것은 선인가, 악인가? 이는 스스로 자기 종교가 악의 집단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하며 악을 버리고 평화를 택할 것을 권유했다. 또한 이 대표는 참석자들에게 “평화를 원하는지, 전쟁을 원하는지” 묻고 평화를 원한다면 손을 들도록 했다. 참석자 전원이 손을 들자, 이 대표는 “그렇다면 평화협약서에 서명하라”며 현장에 참석한 가톨릭-이슬람 측 인사를 불렀다. 이에 당시 페르난도 카펠라(Fernando R. Capalla) 전 다바오 대주교와 이스마엘 망구다다투(Esmael G. Mangudadatu) 이슬람 자치구 마긴다나오 주지사는 대중 앞에 나와 ‘평화 협정 체결서’에 서명했고, 앞으로 분쟁 행위를 중단할 것과 평화에 협력할 것을 약속하게 됐다. 이스마엘 망구다다투 주지사는 “경서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고, 우리는 같은 형제라고 한다”며 “우리는 하나다. 결코 서로 싸워서는 안 되며 함께 세계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르난도 카펠라 전 다바오 대주교는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의 질서를 원하고, 이 질서 속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정한 ‘샬롬(shalom, 히브리어로 평화)’과 ‘살람(salaam, 아랍어로 평화)’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오신 이만희 HWPL 대표에 감사하고, 민다나오 주립 대학과 이곳 민다나오 섬에 평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우리는 세계와 민다나오에 평화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친구이자 파트너”라고 말했다. ‘평화’의 시작을 알린 이 협정식을 계기로 민다나오에선 급격한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24일 이만희 대표에 의한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소식을 접한 정부군과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측은 바로 다음날인 1월 25일 예비평화협정서의 마지막 부속 문서에 최종 합의했다. 이후 2014년 3월 방사모로포괄협정(CAB)이 체결됐다. 합의내용은 18년간 진행한 양측의 협상과정 중 가장 큰 진전으로 평가됐다. 이에 기초해 그해 5월 필리핀 의회에서는 민다나오의 이슬람자치구를 인정하는 ‘방사모로기본법’에 대한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이어 2018년 8월 대통령이 방사모로기본법에 최종 서명하면서 민다나오 내전은 사실상 종식됐다. 한국인 평화운동가 이만희 대표에 의한 민다나오 평화협정 후 4년 6개월여만이었다. 방사모로기본법이 통과된 이후 두 달여가 지난 2018년 10월 7일 SBS 일요다큐멘터리는 ‘평화, 멀지만 가야할 길’을 통해 협정 이후 평화로워진 민다나오 현지의 모습을 전했다. “총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줄 알았다”던 현지인들은 ‘총’을 버렸고, 적으로 여겼던 이웃의 집을 자연스럽게 드나들면서 그간 경험하지 못한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6>]인도 언론인 “이만희 대표 메시지 옳다고 여겨 HWPL과 하나됐다”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인도 부디스트타임즈 이-뉴스 샤말 신하 편집장 7년 동안 HWPL 행사 정기적 보도 코로나 팬데믹 후 온라인 모임 참여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인상적” “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 보람돼”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과 평화의 일을 하는 이들은 HWPL이 평화를 향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접근하는지를 알게 된다. 인도 부디스트타임즈 이-뉴스 샤말 신하 편집장도 처음에는 HWPL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HWPL을 이끄는 이만희 대표의 메시지를 점차 들으면서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HWPL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약 7년 동안 꾸준하게 HWPL 주요 행사를 뉴스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정기보도했고,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에서 비대면 온라인 콘퍼런스로 전환된 후에도 참석을 꾸준히 해왔다. 그의 이야기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가장 인상 깊은 것, 필리핀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HWPL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펼쳐왔던 과정을 듣는 이들이 어김없이 놀라는 부분이 있다. 2014년 1월 24일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진행됐던 민간 평화협정이다. 샤말 신하 편집장도 가장 기억에 남는 HWPL 행사로 이날 진행됐던 평화걷기 대회와 두 종교의 대표가 만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 협정한 행사를 꼽았다.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필리핀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은 HWPL이 이뤄낸 괄목할만한 결과물 중 하나다. “HWPL은 2014년 1월 24일 필리핀 제너럴 산토스 민다나오에서 첫 번째 평화 걷기 축제를 개최했습니다. 두 종교의 성도, 민다나오 주립대학교 학생, 국제평화청년회 회원 등 1000여명이 참석했죠. 같은 날, 마긴다나오 주지사와 가톨릭 대주교를 포함한 대표들은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한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입니다. 왜냐면 HWPL에 따르면 민다나오 평화협정은 ‘시민 중심의 인식 개선과 행동’ 기반의 평화 접근을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인, 경서비교토론회 참석해야” 그는 인도의 마타 순다리 대학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이만희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 대표는 아주 마음씨가 부드럽고 밝은 얼굴의 종교적인 평화 지도자였다”면서 “그에게 은혜를 받음으로써 저는 평화 활동가이자 문인(文人)으로서의 생활로 전환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대표를 통해 자신도 다시 평화를 이뤄가는 주체적인 모습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샤말 신하 편집장은 HWPL과 협력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에 대한 질문에 HWPL의 종교연합사무실과 경서비교토론회를 꼽았다. 그는 “세계 갈등의 원인이 80%이기에 종교 간 화합을 위한 평화사업은 지속되고 있다”면서 “인도의 구루고빈드싱 교육연구소(GGSSC, 소장 자틴더팔 싱)를 비롯한 4개 종교단체가 9.18 HWPL 평화 만국회의 5주년을 맞아 HWPL과 MOU를 체결했다. 화합의 방향으로 제시한 성경비교토론회에 모든 종교인의 참여를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참된 경전의 가르침을 전해 바른 믿음으로 인도해, 대화와 화평을 통해 종교의 화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 종교계와 HWPL의 MOU 신하 편집장이 언급한 인도의 GGSSC와 HWPL 간 MOU는 의미가 컸다. 지난 2019년 9월 19일 GGSSC와 HWPL 간 MOU가 평화 만국회의 5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된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체결됐다. 평화 만국회의 5주년 기념식을 겸해 방한한 구루밋 싱 운영위원장이 자틴더팔 싱 대표의 대리자로 MOU 체결에 나섰다. 당시 구루밋 싱 운영위원장은 시크교 최고자도자인 할프릿 싱과 함께 방한했다. 이들은 이 대표에게 인도 황금사원 기념품을 전달했다. GGSSC는 사회적, 종교적, 학술적, 문화적 기관이다. 시크교 경전이 말하는 ‘모두를 위한 복지(Sarbat Da Bhala)’의 문화를 양성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며, 세계적인 사회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인도 펀자브 루이디에나에 1972년 설립됐고, 5개의 위원회와 54개의 지부로 구성돼 있으며 캐나다 등 11개국에 분포한다. 인도 내 펀자브‧아데쉬‧이터널‧펀자브농업‧구르앵가브데브 등 5개 대학 및 시크교 단체들과 협력하고 있다. GGSSC는 유네스코에 의해 2000년에서 2010년까지 끊임없는 자선적 노력을 기울인 ‘평화의 메신저’ 기관으로 공인받았다. 이날 맺은 양해각서에서 양 단체는 여성, 청년, 종교지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 사이의 평화, 화합, 발전, 즉 평화 문화의 촉진을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이를 위해 두 단체는 양측에서 지구촌 전쟁종식 및 평화를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라고 제시하는 활동들을 실행하기 위해 함께 일할 것에 동의했다. HWPL 활동들은 학교에서의 평화 교육 실시, 정기적인 종교평화캠프 개최, 평화 기념비 설립, HWPL이 주최하는 종교연합사무실 행사를 위한 종교지도자, 여성, 청년들의 모임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도록 했다. 양측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함께 일할 것에 동의했다. ◆평화 위한 언론의 조건 “공정‧균형‧정확해야”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인도의 언론 상황은 썩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지난해 4월 마지막 주에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이끄는 바라티야 자나타당(BJP) 정부가 인도에서의 코로나19 두 번째 확산을 저지하지 못하고 실패하자 이를 비판하는 대중의 논평과 보고서가 잇따랐고, 정부 측이 이에 반박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목격했는데 그 과정에서 언론 통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는 다양한 메커니즘과 권한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다른 부분에서는 미디어 기관을 비롯한 국제 기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인도 언론계가 평화를 지향하는 언론계가 되기 위해서는 평화를 위한 국제법 제정, 종교 간 대화모임, 평화 교육 등 HWPL과 다양한 평화 구축 활동을 펼쳐 평화로운 세상을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국제사회의 언론을 향해 평화 저널리스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 저널리스트에 대해 “갈등 분석하고 통찰력을 발휘해 공정하고 균형감 있고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실제 보도를 함에 있어 비폭력과 창의성에 대한 인식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부디스트 타임즈 샤말 신하 편집장은 누구 1996년 ANZ 그린들레이즈 은행 마케팅팀 인원을 맡은 샤말신하는 1998년 아웃룩(Outlook) 인도 뉴델리 지사에서 홍보실에 근무했다. 이후 2002~2006년까지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2007~2009년까지는 ICFAI 대학교 대외협력실에서 근무했다. 2009년 7월 ~ 2014년 7월까지 아발론 항공 연수원의 센터장이었으며, 이후 부디스트 타임즈 편집장을 맡고 있다. 부디스트 타임즈 이-뉴스는 부처의 출생지인 인도에서 불교를 되살리고자 불교계의 최신 소식을 다룬다. 남아시아 불교인들과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의 삶에서 부처의 가르침에 중점을 둔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5>] 네덜란드 박티요가 스승 “HWPL 만남 통해 특별한 예감 느껴”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네덜란드 박티요가 스승 인두부잔 다스 마음의 평화 이룰 방법 찾아 수행해 2016년 6월 HWPL과 운명적인 만남 만국회의 기념식 참석 위해 방한도 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에 큰 감명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사람의 영혼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박티요가의 ‘니티야 다르마(박티요가에서 힌두교인을 가리키는 말)’들은 영혼은 영적이고 영원하며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기능은 영혼과 분리될 수 없고 항상 존재하지만 물질‧육체적 상황에 따라 가려질 수 있다고 본다. 반면 기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소가 있는데, 이게 바로 마음의 평화라는 설명이다. 네덜란드에서 이러한 박티요가 스승으로 사역하는 인두부잔 다스는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과 함께한다면 놀랄만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가 왜 HWPL과 함께하게 됐는지 사연을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HWPL과의 만남 미리 알린 기묘한 꿈 그와 HWPL의 만남은 기이한 체험 속에서 이뤄졌다. 그는 HWPL 회원들을 처음 만난 날 아침에 꿨던 묘한 꿈을 잊을 수 없었다. 때는 2017년 6월 25일이다. 인두부잔 다스가 거주하던 네덜란드 로테르담 중심가에서 요가 축제가 열렸던 날이다. 아침에 다스는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났다. 꿈의 내용은 어떤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자신이 한국에 있는 것을 다스 스스로가 바라보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한국과 인연이 없고, 가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랬기에 그는 꿈을 잠시 잊고 축제에 갔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인연을 만났다. HWPL의 회원 세 사람이 그를 만난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했을 때 다스는 아침에 꾼 꿈을 바로 떠올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신탁(신이 주는 메시지)으로 이해했다. 다스는 그 주 후반에 HWPL 회원들을 집에 초대했다. 그곳에서 HWPL 회원들은 네덜란드에서 진행하는 HWPL 평화 프로그램에 다스를 초대했고, 그 해 9월에 서울에서 열린 평화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에도 초대했다. 그가 한국과 HWPL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였다. “저는 우리의 만남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많은 사람들을 사귀는 것에 대한 영감을 느낍니다. HWPL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많은 회원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단체입니다. 뭔가 특별한 게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는 2017년 9월 18일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평화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규모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듬해 열린 평화 만국회의 4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처음 한국에 갔을 때 HWPL 회원 수를 보고 너무 감명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대단한 열정과 평화에 대한 큰 열망을 갖고 있었고, 제게 매우 강한 인상을 줬죠. 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HWPL을 매우 특별한 조직으로 만들고, 신이 그들의 열망을 달성하기 위한 준비를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 가장 가치 있어” 다스는 HWPL 종교연합사무실(종연사) 활동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그는 2017년 7월 21~22일 열린 네덜란드 종교평화캠프에서 발제자로 참석했다. HWPL 종연사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부에서 10회, 암스테르담 지부에서 37회를 참석했다. 2018년엔 한국 종연사 프로그램에 직접 참석해 성경 토론을 진행했고, 2021년에는 서울경기서부지부 종교평화캠프 종교지도자로 참석해 발제했다. 그는 “HWPL과 협력하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종교가 모여서 그들의 경서에 대한 의견을 듣고, 그들의 경서의 각각 다른 측면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각 종교가 갖고 있는 경서를 비교‧토의하는 대화의 장이다. 그는 “종교 간 더 많은 협력과 서로의 경서에 더 나은 이해를 기대한다”며 “이로써 궁극적으로는 세계에 평화가 있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모든 종교가 화합해 하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도 봤다. 다스는 “우리는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면서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신을 섬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의 이름은 각각 다를지도 모르지만, 이는 같은 신일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모든 종교가 하나라고 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연사 프로그램에 대해 “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가 서로를 더 존중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만들어 줄 것”이라며 “타 종교가 만남을 더 많이 가질수록 세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우정 관계는 더 발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각 종교, 사랑의 본보기가 돼야” 다스는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도 조언했다. 그는 “각 종교들은 평화와 사랑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면서 “만약 종교가 서로 싸우면서, 어떤 존경심도 보이지도 않고, 신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까지 죽인다면, 이것이 세상에 어떤 본보기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오늘날 불행하게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곧 하나님이시다’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다는 점을 들어 “만일 우리가 다른 종교나 생명체에 대해 공격적이거나 혐오감을 느낀다면, 아직 우리가 하나님이나 또는 그의 보낸 사자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단언했다. 아울러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아름다움과 그의 본성을 더 많이 깨달을수록,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기를 원하더라도 말이다”며 예수님이 그 본보기가 됐다고 상기시켰다. 다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며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지만 내면은 너무나도 어지럽다. 우리가 상대방을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지구촌의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제가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음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삶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항상 기도하라는 조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우실 것이고,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내면에서부터 영감을 주실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 박티요가는 어떤 곳? 인두부잔 다스가 몸담고 있는 박티요가(Bhakti Yoga, 헌신 요가로 해석됨)는 신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수행을 하는 단체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한 것에서 착안한다. 하나님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연결을 위해 수행을 해나간다. 박티요가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변화하는 사람의 의식 과정을 5단계로 나눈다. 먼저 ‘아차디타 카이타냐’로 완전히 가려진 의식이다. 그다음은 ‘산쿠키타 카이타냐’로 위축돼 있는 상태이다. 경미하게 싹트는 다음 단계의 의식은 ‘무쿨리타 카이타냐’로 부른다. 그다음은 ‘비카시타 카이타냐’인데 발달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신과 만나기 위해서는 이 단계를 지나 ‘푸나 비카시타 카이타냐’에 이르러야 한다고 한다. 이는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키워온 사람들로서 신과 인간의 영원한 관계를 깨닫게 된다는 설명이다. 박티요가는 ‘마음이 영혼의 거주지’라는 인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영원한 영적 정체성과 주님과의 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하고자 노력한다. 인두부잔 다스는 네덜란드에서 박티요가에 대한 강의와 베다 지식, 자아실현의 과학에 대한 책을 배포한다. 그는 타의 모범이 되려고 박티요가를 연습하며, 채식주의 생활방식을 홍보한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2>] 민다나오 40년 유혈분쟁 불러온 가톨릭-이슬람 종교갈등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모로인 학살사건’ 계기로 내전, 12만명 죽고 난민만 350만명 발생 이만희 HWPL 대표, 평화중재… “대통령도 못한 일 해내” 찬사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 피델 발데스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지난 2014년 1월 24일. 무려 40년간 분쟁과 피로 얼룩졌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극적으로 평화의 물결을 일으킨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에 대해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이같이 극찬했다. 대체 어떤 갈등이었기에 이와 같은 평가가 나오는 것일까. 과거 아시아 최대 유혈 분쟁지역으로 꼽혔던 필리핀 민다나오에서의 갈등을 살펴봤다. 필리핀 남부의 섬인 민다나오는 필리핀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섬으로 알려졌다. 면적은 9만 4630㎢으로 한국의 영토와 비슷하다. 인구는 약 2200만명으로 가톨릭교도(63%), 이슬람교도(32%)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개신교도는 5%이다. 필리핀에 이슬람교가 전파된 것은 14세기로, 남부 말레이계 사람들에 의해 전파됐다. 이슬람교는 1380년경 민다나오섬을 시작으로 필리핀 각지에 퍼지긴 했으나 16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의 가톨릭화 정책으로 현재는 민다나오 지역에서만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가톨릭교는 327년간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 전파됐으며, 17세기 중반부터 주민들 사이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개신교의 경우 스페인에 이어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부터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다나오에는 필리핀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약 400만명의 모로인(무어인이라는 의미로 ‘무슬림’을 뜻함)이 살고 있다. 필리핀 군도는 16세기 스페인과의 전쟁을 겪었고,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은 미국에 필리핀 지배권을 양도했다. 이때 식민 정책에 저항하는 필리핀 민중에 의한 투쟁이 시작됐다. 1946년 필리핀은 공식적인 독립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거 식민 지배의 유산과 정치, 경제, 사회 제도의 급진적인 변화, 상이한 언어, 종교, 문화 등 종족 정체성으로 인해 갈등이 악화됐다. 민다나오에서의 폭력적 갈등은 1968년 모로인에 대한 학살사건에서 촉발됐다. 이를 계기로 1970년대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이 결성됐다. 이들은 민다나오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을 개시했다. 이후에도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Moro Islamic Liberation Front)이 창설되는 등 크게 4개의 조직이 생겼다. 갈등은 40년 넘게 해결되지 못했다. MILF는 민다나오 최대 무장 단체로 부상하면서 모로인의 민족자결을 위한 투쟁을 지속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이 같은 투쟁은 대규모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돼 많은 피해를 초래했다. 12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난민은 350만명에 달했다. 이후 수차례 국제 사회의 중재와 협상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필리핀 정부와 MILF는 2012년 10월 방사모로기본협정(FAB)을 체결했다. 그러나 모로인과 주변 간 뿌리 깊은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2014년 1월 24일 이만희 HWPL 대표의 중재로 가톨릭 대표자인 페르난도 카펠라(Fernando R. Capalla, 민다나오 다바오) 전 대주교와 이슬람 대표자인 이스마엘 망구다다투(Esmael G. Mangudadatu)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 마귄다나오 주지사가 이 대표가 준비한 평화 협정문에 서명하면서 전쟁종식과 세계평화 협약에 합의했다. 이후 2014년 3월 방사모로포괄협정(CAB)이 체결됐다. 해당 협정은 외교·국방 등 중앙정부의 핵심 권한을 제외하고 민다나오 내 지도자 선출, 행정 구역 편성, 경제 개발과 부의 분배 등 민다나오 자치를 인정했다. 평화 협정에 담긴 합의 사항이 필리핀의 입법·사법·행정부의 민주적인 법적 절차를 거쳐 이행됐고, 그 결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됐다. 현재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국제기구, 정부 및 비정부 기구로 구성된 국제 사회가 참여해 민다나오의 평화 프로세스가 이뤄지고 있다. 2019년 2월 전 MILF 의장이자 현 자치 임시 정부의 수반인 무라드 에브라힘은 MILF 전투원의 무장해제와 함께 사회 복귀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평화 협정 합의 사항에 따라 2021년 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무장해제를 이행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국제 사회의 건설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민다나오에는 평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민다나오 르포한 한국기자의 증언] “내전 끝났고 평화가 왔다… 현지인, 이만희 대표에 진심 감사”

7박 8일 필리핀 현지 르포 화제 민다나오 분쟁논란 확인차 현지로 “더이상 살육현장 아닌 평화의 땅” 정치‧교육‧종교 현지 인사 14명 HWPL 중재 증언‧지지 한목소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민다니오섬은 40년간의 분쟁으로 약 12만명이 희생됐다. 잇따른 유혈 분쟁과 정치인들의 표심을 노린 쇼맨십으로 평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민다나오에 평화가 찾아왔고, 그 기점을 현지 주민들은 2014년 1월 24일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한국인 기자가 직접 현지를 방문해 평화의 현장을 증언해 눈길을 끈다. 지난 4일 ‘기자들의 눈’의 김양훈 기자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3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찾아 나선 민다나오는 더 이상 혈흔이 낭자한 살육의 현장이 아니고 평화가 뿌리내린 생명의 땅이었다”며 현지 취재 내용을 보도했다. 김 기자는 민다나오 40년 내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민간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현지 취재에 나섰다. 그는 ‘민다나오는 아직도 분쟁 중’이라는 국내 논란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김 기자는 기사 말미에 “이제 민다나오에 내전은 끝났고 평화가 찾아왔다”며 “한반도를 포함한 지구촌 곳곳에는 아직 종교와 이념·인종·문화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은) 한국에서 태동한 민간 평화단체에 의해 갈등을 해결한 독특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민다나오는 전쟁 중?… 평화정착 중 보도에 따르면 민다나오 현지를 직접 방문해 확인한 결과, 평화를 추구하는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역(BARMM)이라는 자치정부가 세워져 필리핀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자유를 만끽하는 안전한 지역이 됐다.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 기념비를 세운 민다나오는 현재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평화를 가르치고 있었다. 민다나오 자치정부 교육부는 제1호 법령을 공포하고 평화교육을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다. 민다나오 어디를 가더라도 ‘위아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고 있다는 증언이다. 민다나오 내전 종식에 HWPL이 앞장섰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부터 민다나오 박물관과 도서관 등에는 HWPL의 평화 활동을 입증하는 전시물이 즐비했다는 설명이다. ◆HWPL 증언한 14명의 현지 유력 인사들 김 기자는 민다나오 평화를 위해 활동한 현지인 14인을 만나 민다나오의 내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HWPL이 한 역할과 현지인들의 평가를 들어봤다. 먼저 아홋 이브라힘 BARMM 수석장관은 이 대표와 찍은 사진을 들고 환영을 하며 “이 대표가 2014년 1월 24일 우리 캠프에 처음 온 날을 ‘평화의 날’로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캠프에 평화 기념비를 세우도록 동의했다. 이는 세계 평화를 위한 협력을 상징한다. 평화가 방사모로뿐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망구다다투 타위안 망구다다투 지방자치단체 부시장은 “이 대표의 평화 활동은 우리에게 그리고 저에게 지도자로서 큰 영감을 주었다. 한국뿐 아니라 필리핀 민다나오를 포함한 전 세계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일해 온 이 대표의 노력을 치하한다”고 강조했다. 다닐로 모크신 쿠타와토 그린랜드 단체 창립자 및 방사모로시민사회협력단 재정 및 행정관리자는 “HWPL이 이곳에 와서 평화에 대한 계획과 혁신, 접근 방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며 “필리핀 정부 문을 두드리고, MILF(모로이슬람해방전선) 그룹과 모여 앉아 우리가 평화를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지 이야기했다. 이것이 민다나오에서 HWPL이 이룩한 중요한 역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스마엘 망구다다투 마긴다나오주 전 국회의원 및 마긴다나오주 전 주지사는 “저희는 하나님께 우리 지역에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드렸고, 전 세계에 저희의 상황을 알려서 도움을 주실 분을 찾고 있었다”며 “이때 우리를 도우러 나타난 분이 바로 이 대표”라고 증언했다. 이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대표는 평화를 한시도 놓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며 “저뿐만 아니라 가족과 모든 주민도 HWPL이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도록 돕고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절대적 신뢰감을 표현했다. ◆HWPL과 평화교육 실천, 교육계 인사들 교육계 인사들은 HWPL의 평화교육을 현장에서 실천하며 HWPL의 진정성을 공감했다. 필리핀 교육부 차관급에 해당하는 로날드 아다맛 필리핀고등교육위원회 위원은 민다나오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매우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이만희 HWPL 대표의 결단력을 칭송했다. 아울러 “2014년부터 민다나오 지역에 가톨릭을 포함한 범 기독교인과 무슬림,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끼리 적대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확언했다. 줄리에타 파라스 필리핀고등교육위원회 수도권교육감은 “민다나오 내전 종식의 무게감은 놀라울 뿐이다. HWPL과 민다나오 지역 학교의 반 이상이 MOU(업무협약)를 체결하고 평화교육을 도입해 나가고 있다. 평화교육은 말보다 행동이다”고 단언했다. 세마 들리나 코타바토주립대학교 총장은 “코타바토시 민다나오는 HWPL 없이는 완전한 평화를 이룰 수 없었다”고 HWPL의 진정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민다나오 평화를 자축하면서 함께 ‘위아원’을 외쳤다. 인권변호사이자 필리핀공립학교교사협회 관리위원인 나썰 아담 마로홈살릭 필리핀 전 인권위원회 위원은 “DPCW(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 10조 38항은 유엔 평화에 대한 해답으로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HWPL에 신뢰를 표했다. 그는 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고 “DPCW 내용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며 “이만희 대표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식된다. 필리핀 국민은 그를 민중의 사람으로 여기고, 저는 하나님의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리넬 피뇽 필리핀 파라냐케시립도서관 사서는 도서관 내에 설치된 HWPL 이 대표의 민다나오 내전 종식 코너를 소개했다. 그는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HWPL의 자문위원이란 사실도 전했다. ◆이슬람‧힌두교‧기독교 하나 된 민다나오 종교계에서는 특히 HWPL의 종교 화합과 평화에 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했다. 무슬림 지도자인 에브라 목시어 필리핀 이맘위원회 대표 또한 “세계 평화를 이룩해야 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에 이 대표를 내가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며 MOU 체결 사실을 밝혔다. 마헨드라 다스 힌두교 스리 리 라다마드하바 만디르 사원 대표는 “종교 간 대화는 정말 멋진 일로서 우리는 각자의 철학을 공유하면서 RPA(종교평화아카데미)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며 자신은 힌두교 대표이지만 성경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준 아타구안 에윅 새생명복음주의교회 담임목사는 “종교 간 대화의 광장을 통해 새로운 종교 친구들을 만날 뿐 아니라 우리의 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모두 평화를 사랑하고 원한다는 공통 목적을 발견하게 됐다”고 호평했다. 아드자르 마드지드 무슬림청년의회 필리핀 지부장은 “평화 기념비 제막식은 필리핀 민다나오에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MILF 다라파난 캠프에까지 평화가 찾아왔다는 상징이 됐다”고 증언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4>] 파키스탄 언론인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 메시지, 매우 정직했다”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파키스탄 국영방송국 PTV 월드 자베드 알리 칼호로 PD 자국 내 종교적 갈등‧테러 보며 평화 향한 염원 키워왔던 석학 HWPL과 평화 운동하며 화색 “파키스탄 HWPL행사 주최할 것”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지난 2020년 10월 27일 파키스탄의 한 신학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어린이 등 최소 7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상자도 70여명에 달했다. 장소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시의 마드라사 신학교였고, 이 지역은 이슬람주의 폭력으로 오랫동안 몸살을 앓아 왔다. 종교 때문에 폭력과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파키스탄에서 평화는 요원한 것일까. 파키스탄의 평화를 염원하며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다. 자베드 알리 칼호로 PD이다. 그는 파키스탄 국영방송국 PTV 월드(PTV World: Pakistan Television Corporation) 수석 프로듀서이자 국립현대언어대학교(NUML: National Institute of Modern Languages)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본지는 그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과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종교 문제로 관심 갖게 된 ‘평화’ 칼호로 PD가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종교 문제 때문이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종교 간 갈등으로 인한 테러 상황 등을 목도할 때마다 평화를 주장하는 종교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 때문에 각종 논문 연구와 뉴스 취재, 단체 활동 등을 통해 그 원인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종교 간 화합의 개념에도 집중하고 있다. 칼호로 PD 자신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파키스탄의 사회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종교는 이슬람교다. 정식 명칭도 파키스탄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Pakistan)이며, 이슬람 법(샤리아)에 따라 판결하는 연방 샤리아 재판소가 세워져 법률 기준이 종교적 기준이 될 정도로 절대적이다. 파키스탄은 무슬림들이 탄생시킨 국가다. 영국 식민통치하 인도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인도 내 무슬림들은 독립 후 힌두문화의 지배를 두려워해 1930년대 초부터 이슬람교국가의 분리독립을 시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파키스탄의 국부로 숭앙받고 있는 지너(Jinnah, M. A.)의 파키스탄분리독립정책에 따라 1947년 8월 14일 영국으로부터 파키스탄으로 독립했다. 파키스탄은 대외적으로는 중도중립의 입장을 취하며 1947년 유엔, 1979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이슬람교화정책을 표방하며 건국이념 실현을 목표로 한다. 대외적으로는 이슬람교권지도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저는 모든 종교가 우리에게 삶에서 규율을 지키라고 가르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서 오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봉사하기 위해 총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사회적(종교적) 금기를 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종교 간의 화합을 추구해달라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종교보다 인류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칼호로 PD가 HWPL과 함께 평화 활동을 하는 것도 종교 화합 노력의 일환이다. 2018년 HWPL과 인연이 닿은 칼호로 PD는 PTV 월드에 HWPL 관련 영상을 현재까지 17건 보도했다. 2020년 6월에는 HWPL 지부에서 주최한 제2회 남아시아 온라인 미디어 포럼 파키스탄 대표로 발제를 했다. 이듬해인 지난해 2월에는 ‘평화의 목소리: 코로나19와 사회 변화에 대한 미디어 관점 언론 포럼’에 참가했고, ‘남아시아 사회 변화, 포스트 코로나19’ 발제에 나섰다. ◆“이만희 대표, 평화 일에 매우 정직해”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HWPL이 추구하는 평화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그는 HWPL 회원들과 교류하면서 HWPL의 비전을 알게 됐고,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이만희 대표를 주목했다. “세계 평화와 관련된 이 대표님의 메시지를 지켜봐오며, 이 대표께서 그 대의에 대해 매우 정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HWPL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HWPL 이만희 대표와 회원들의 진심을 느낀 그는 자신도 HWPL에 가입해 회원이 됐다. “HWPL의 회원이 되는 것 자체가 저에게 뿌듯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는 HWPL의 평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보도에 심혈을 기울였고, HWPL을 지지했다. 언론인이자 학술 위원으로서 칼호로 PD는 HWPL에 인류의 발전을 위한 제안과 권고 등을 나누고 있다. 특히 그는 HWPL이 전 세계적으로 연락망을 구축하고 평화의 대의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더 나은 사람들과 접촉해 평화의 사업을 진행하는 데 호평했다. 그는 HWPL의 모든 행사가 그 자체로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세계 발전과 관련한 제 견해와 분석을 공유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제공한 HWPL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파키스탄에서 HWPL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자신이 나서서 주최하겠다고 다짐했다. “파키스탄에 HWPL 메시지가 전파돼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언론, 지금 당장 평화의 중요성 알려야” 칼호로 PD의 언론인 경력은 화려하다. 그는 PTV 월드에서 안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고위 관리인‧외교관 등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콘텐츠를 제작한다. PTV 월드는 파키스탄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텔레비전 방송국이다. PTV는 주로 국가 정책을 홍보하고 파키스탄 대중들에게 사회적 관심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한다. 칼호로 PD는 파키스탄 및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국방 및 테러에 관한 칼럼, 기고문 등을 영국 일간지에 게재한 바 있다. 미국 워싱턴 D.C. 중동연구소과 지상파(ATV) 뉴스 채널에서도 근무했으며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Voice of America)’ 라디오 보도 및 시사 연구원으로도 지냈다. 각종 언론에서의 다양한 보도경험으로 2014년 미국 국무부 저널리즘 펠로우십에서 수상했고, 2015년에는 미국 세계평화연합 평화대사상을 받았다. 2016년에는 미국 워싱턴 연구 수행 IRSIP 펠로우십에서 수상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칼호로 PD는 파키스탄의 언론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는 “파키스탄 언론은 보안 측면에서 뛰어넘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자성의 목소리도 냈다. 칼호로 PD는 “파키스탄의 일부 언론사들이 그들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다양한 유명인사, 정치인 등을 협박하기 위해 매체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세계평화를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는 “모든 언론사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은 전 지구촌의 대중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라며 “평화는 사람의 영혼을 더 낫게 해주는 것이지, 갈등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언론은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의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줘야 한다”며 “인간은 평등하고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대우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칼호로 PD는 경제학 박사 학위와, 평화 및 분쟁연구로 파키스탄 국방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석학이기도 하다. 국립현대언어대학교에서는 파키스탄의 역사와 국제 분쟁‧정치 등 세계사와 관련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고, 일부 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한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1>] 민다나오 평화의 기적…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드시오”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평화 위해 전쟁터 찾은 84세 이만희 대표 가톨릭-이슬람, 현장에서 평화협정서 서명 민다나오 40년 유혈분쟁종식 ‘역사적 순간’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평화를 위해 와 달라는데, 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답을 듣고 민다나오를 향했다.” 2014년 1월 24일 84세의 한국인 평화운동가를 통해 40년 유혈분쟁의 고리를 끊는 민다나오 평화협정이 이뤄졌다. 그는 훗날 민다나오 평화협정에 대한 소감을 밝히며 “민다나오 평화협정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해도 너무나 큰 일”이라고 표현했다. 6.25 참전용사이기도 한 이만희 대표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 “전쟁종식 세계평화를 이루라”는 천명(天命)을 받고, 2013년 평화단체인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을 설립했다. 2012년부터 ‘전쟁 종식’과 ‘세계 평화’를 이룰 답을 들고 본격적인 세계평화 순방에 나섰다. 2013년 9월 필리핀 순방 중 만난 카가얀 데 오로의 안토니오 레데스마 가톨릭 전 대주교는 이만희 대표에게 민다나오의 분쟁 상황을 설명했고, 민다나오 분쟁 해결을 위한 중재자의 역할을 제안했다. 민다나오는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필리핀 정부와 이슬람 무장군 간의 군사적 충돌로 12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350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난민이 발생하는 등 악명 높은 아시아 최대 유혈분쟁터였다. 필리핀 정부와 이슬람 무장군과의 협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84세의 나이로 악명 높은 분쟁터에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함께하겠다”는 답을 들은 이만희 대표는 민다나오를 향했다. 그렇게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에 도착했다. 이 대표는 민다나오 가톨릭, 이슬람 지도자들이 참석한 평화세미나의 마지막 발제자로 나서 “신의 뜻은 전쟁이 아닌 평화”임을 일깨웠다. 이어 참석자들에게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모두가 손을 들자 현장에 있던 가톨릭, 이슬람 지도자를 불러 바로 평화협정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민다나오 가톨릭과 이슬람 간 민간 평화협정은 이렇게 기적처럼 체결됐다. 필리핀 정부군과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은 바로 다음날인 1월 25일 남부 방사모로 지역의 이슬람 자치권 인정과 1만여명에 이르는 MILF 무장해제 부속문서에 서명했다. 이를 토대로 2014년 3월 27일 필리핀 정부와 MILF 간 방사모로포괄협정(CAB)이 체결됐다. 필리핀 언론은 “그동안 수많은 평화협약을 통해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으나 또 다른 분쟁은 늘 있어 왔다”면서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활동했지만 실질적인 열매를 맺은 것은 한국에 본부를 둔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뿐”이라고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HWPL은 현재까지 민다나오에서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의 지도자들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평화 구축의 장을 열고 있다. 민다나오에서는 자치 정부 수립, 전투원의 무장 해제 등 국제 사회의 지원과 함께 이뤄지는 협정의 이행으로 분쟁 종식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HWPL은 민다나오의 사회 지도자들과 체결한 평화 협정으로 2014년 1월부터 상호 이해, 존중, 조화의 보편적인 평화 원칙을 바탕으로 민다나오 지역을 포함한 필리핀 시민들의 평화 의식을 고양하는 대중적인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래 세대의 완전한 평화 구축을 위한 평화교육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본지는 평화의 산실로 거듭난 민다나오를 과거 분쟁부터 평화협정과 현재까지 주제별로 분류해 재조명한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3>] 방글라데시 언론인 “HWPL 평화활동 지지하는 건 위대한 특권”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340만여명 희생된 독립전쟁 겪으며 어린시절 평화 소중함 뼈저리게 느껴 “이만희 대표의 ‘위아원’ 가장 좋아해 공평한 사회 세단어로 표현, 놀라워” 2019년부터 꾸준히 HWPL 알려 “HWPL과 함께 평화 일하는 것 중요” 방글라데시 언론 라이징비디 부편집장 입눌 콰욤 소니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전쟁은 언제나 파괴적이며 결코 건설적이지 않죠. 방글라데시는 9개월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 후에야 독립을 얻었습니다. 그 전쟁으로 많은 국민들이 죽었고, 그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 공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전쟁이 일어날 때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과 같이 슬픔을 느낍니다. 이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방글라데시 온라인 매체 라이징비디의 부편집장 입눌 콰욤 소니의 고백이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방글라데시를 피로 물들였던 전쟁의 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340만여명이 전쟁에 희생을 당한 것으로 기록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었다. 평화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을 만나 평화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다. 본지는 소니 부편집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HWPL과 평화의 사자들의 활동에 대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피비린내 났던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소니 부편집장이 어린 시절 체험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은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으로도 불린다.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 문제를 놓고 방글라데시의 분리독립을 주창하는 묵티바히니 독립군과 이들을 지원하는 인도군, 서파키스탄군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이다. 1971년 3월 26일~1971년 12월 16일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과 벵골만, 서파키스탄(현 파키스탄), 아라비아 해, 인도 북부 일부 등에서 발발했다. 방글라데시와 인도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은 종결됐고, 방글라데시가 건국됐다. 이 전쟁에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양측의 군대를 도합하면 약 104만명의 병력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방글라데시군은 최소 30만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학살을 포함하면 최대 300만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군은 1426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3611명이 발생했다. 파키스탄 측에서는 육군 5만 5000여명, 해군 1381명, 공군 833명, 경찰을 포함한 준군사조직 2만 2000여명, 민간인 1만 2000여명이 사망했다. 파키스탄은 당초 인도의 무슬림들이 종교적 이유로 분리돼 형성된 국가였다. 종교는 같지만 지리적으로 동떨어진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은 문화와 역사, 인종, 언어가 달라서 하나가 되기 어려웠다. 여기에 서파키스탄이 경제적으로 동파키스탄을 지배하는 구조가 됐고, 동파키스탄의 벵골인이 사용하는 벵골어까지 없애려 하자 벵골인들은 분노했고 벵골인들은 아와미 연맹이라는 정당을 결성했다. 아와미 연맹은 1969년 아유브 칸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낸 후 동파키스탄 지역 선거구를 석권해 단독집권이 가능했지만, 서파키스탄 출신 아히야 칸 대통령이 총선 결과를 무효처리하면서 소요가 발생했다. 칸 대통령은 부랴부랴 아와미 연맹의 라흐만 당수와 회담을 진행했지만 실패로 끝났고, 긴장이 고조됐다. 라흐만 당수는 1971년 동파키스탄 최대 도시인 다카에서 뱅골인의 나라를 뜻하는 방글라데시를 국호로 삼고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놀란 파키스탄 당국은 군대를 동원해 라흐만 당수를 체포해 감옥에 가뒀다. 서파키스탄의 지배와 차별에 감정의 골이 깊었던 동파키스탄이 독립군을 결성해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먼저 동파키스탄 내 서파키스탄 관리와 군인 경찰이 학살을 당했다. 이에 전쟁이 발발했고, 파키스탄군은 전차와 기관총으로 무장해 동파키스탄인들에게 총탄을 퍼붓고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동파키스탄의 대학에서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사살됐고, 농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학살과 강간 등에 목숨을 잃은 이가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됐으며 600만명의 뱅골인들이 인도로 피난했다. 밀어닥치는 수백만명의 난민으로 인도도 난감한 입장이 됐다. 이 상황에서 파키스탄 정부군이 인도 국경에 위치한 동파키스탄 독립군 기지에 폭격을 가하자 인도는 방글라데시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전쟁은 인도-독립군(묵티바히니 연합)과 파키스탄군 간의 전쟁으로 번졌다. 1971년 12월 2일 인도군이 개입해 약 2주간 전쟁을 벌여 서파키스탄군이 패했고, 방글라데시가 건국됐다. ◆“HWPL 러-우크라 전쟁 반대 성명 놀라워” 전쟁을 겪은 소니 부편집장은 HWPL의 평화를 위한 캠페인에 적극 동참했다. 그는 “HWPL 평화의 사자들의 활동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것이다. 어린이와 환경을 위해 일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HWPL의 목적과 활동이 멋지다면, 그들을 지지한다는 것은 크고 위대한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HWPL의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은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고 저는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다시 말해서 저 또한 그들의 평화 활동의 일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HWPL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재차 ‘특권’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소니 부편집장은 이만희 대표 명의로 발표한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성명에 놀라워 했다. 지난 2월 28일, 이만희 HWPL 대표는 앞서 20일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가 발발하자 성명을 내고 전쟁상황에 대해 규탄 목소리를 냈다. 성명에는 전쟁의 피해에 대한 우려와 침공 당사국의 철수는 물론 UN, 청년, 지구촌을 향한 메시지가 담겼다. 이 대표는 “주권 국가의 영토에 대한 무력 침공은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으며, 이런 전쟁과 폭력적 갈등 속에서 가장 큰 피해는 여성, 청년, 아이들과 같은 무고한 시민을 향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희생된 생명은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일순간 난민이 되는 이 처참한 현실은 전쟁의 종식과 평화 이외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 대표는 “HWPL은 국제평화 NGO로서 UN 및 국제사회와 함께 무력 사용으로 지구촌에 위기를 초래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HWPL은 러시아를 향해 군대 철수와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와 노력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전세계 청년들을 향해서는 전쟁종식과 평화요구 외침에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UN에는 현 러-우크라 사태에 대한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신속한 행동을 촉구했고, 지구촌에는 인류애를 갖고 난민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만희 대표의 ‘위아원’ 구호 가장 좋아해” 소니 부편집장은 지난 2020년 HWPL이 주최하는 콘퍼런스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그는 언론인으로서 해야 하는 평화의 일과 리스크에 대한 보고를 발표했다. 그는 “이 행사는 모든 참석자들에게 매우 좋았고 제게도 매우 의미가 있었다”면서 “그 후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발생했다”고 대면 행사가 제한 된 데 안타까움을 표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정기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이만희 대표의 리더십을 극찬했다. “이만희 대표께서는 멋진 분입니다. 그의 말씀 중 ‘위아원(We are one)’ 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공평한 사회를 이 세 단어로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소니 부편집장은 HWPL 회원들의 활동력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HWPL의 언론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면서 “HWPL은 조직의 모든 활동을 매우 훌륭하게 다룬다. 또한 언론과 관련된 모든 업무에서 많은 국가의 언론인과 훌륭한 접촉을 구축했다. 이것은 정말 감탄할 일”이라고 호평했다. 라이징비디 뉴스 포털을 통해 HWPL 평화 활동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한 그는 “미디어 종사자로서 어떤 사안이든 대중에게 알리고 뉴스를 통해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부터 약 4년 동안 꾸준하게 HWPL 주요 행사를 약 50건에 걸쳐 정기보도했다. 아울러 소니 부편집장은 세계평화를 위해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도 언급했다. 그는 “언론은 폭넓은 세계적인 문제들을 다룰 책임이 있다”면서 “어떤 뉴스가 보도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적절한 소통 플랫폼을 알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정부와 비정부기관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념과 접근 방식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언론도 앞에 나서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협력할 수 있다”고 가치를 부여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제 시민사회를 향해서 “세계화 시대에 우리는 모두 지구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과 악을 이해해야 한다”며 “전쟁이 아닌 평화를 통해 세계의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작은 관심으로 더 큰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라이징비디의 입눌 콰욤 소니 부편집장 라이징비디(Rising BD)는 무료로 배포되는 방글라데시 인터넷 신문이다. 현지에서는 진실성과 신뢰성, 진위성에 가치를 둔 기사를 보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눌 콰욤 소니 부편집장는 이 매체에 대해 “정보 전달의 속도만을 중요시 하지 않고 진위 여부를 더욱 우선시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사건이 발생하면 적절히 문맥과 관련된 배경을 설명하며 사건을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주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며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매체를 소개했다. 그는 선임 부편집장겸 비디오 파트 책임자를 함께 맡고 있다. 국가적인 중요한 뉴스들을 편집하고 발행한다. 온라인에서는 사진을 편집하고 뉴스포털의 판을 교체한다. 다양한 영상으로 짧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텍스트 뉴스와 함께 배포하기도 한다. 소니 부편집장의 설명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신문, 잡지, TV, 라디오, 온라인 뉴스 포털 등 다양한 대중매체가 독자들과 호응한다. 소니 부편집장은 자국 매체 환경에 대해 “방글라데시의 대중 매체는 그 나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며 “이기적인 세력들은 언론이 진실을 퍼트리는 것을 막고자 할 것이지만 방글라데시 언론은 매우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또 방글라데시 내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언론은 여전히 국내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진실은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고 범죄자들이 잡히며 부당함을 방지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다만 그는 사회 일부의 부정직성, 디지털 보완법 등의 방해요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2>] 코트디부아르 교사 “HWPL 평화교육,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영어 국제학교 교사 오예레케 무잠밀 오예고크 평소 세계평화 관심있던 오예레케 평화교사 양성 프로그램 지원해 “평화 이루기 위한 기여하고 싶어” “교육 통해 갈등 근본 원인 이해 평화교육,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 [천지일보=이솜 기자]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이루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석에 끌리듯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과 손을 잡는다. 최근 본지와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한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영어 국제학교 교사인 오예레케 무잠밀 오예고크(34)도 마찬가지다. 평소 세계 평화에 관심이 있고 자신이 역할이 있다고 믿어 온 오예레케 교사는 동료를 통해 HWPL의 평화교육을 소개받았을 때 ‘국제적인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HWPL의 평화교사 양성 교육을 수료한 오예레케 교사는 학교에서도 평화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평화교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고 세계평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전했다. ◆“평화교사,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 오예레케 교사는 아비장 국제학교 교장을 통해 HWPL을 알게 됐다. 교장은 당시 HWPL 평화교사 양성 교육 프로그램 자원 교사 신청을 받았는데, 평소에도 평화에 관심이 있었던 오예레케 교사가 여기에 참가한 것이다. 그는 “평화교육에 참여한 주된 이유는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세계 평화를 위해 내 역할을 다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오예레케 교사는 평화교사 양성 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그는 “(평화교육 프로그램이) 매우 교육적이었으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며 “먼저는 나에게 평화교육을 가르쳐 준 훌륭한 교사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에 대한 수업을 통해 갈등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게 돼서 정말 좋았다”며 “평화교육 사업에 감사하며, 양성교육에 참여해 평화교사가 돼 기쁘다”고 강조했다. 오예레케 교사는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에 대해서는 “평화교육이 내 마음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과 어떻게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됐는지 알게 된 것”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HWPL의 평화교육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2년째 HWPL의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그는 HWPL과 이만희 대표에게서도 큰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오예레케 교사는 “HWPL 세계평화선언문 9주년 기념식은 제가 최근에 참여한 프로그램 중 최고였다”며 “행사의 조직, 내용, 핵심 모두가 완벽했다”며 경의를 표했다. 또 이 대표에 대해서도 “유머가 넘치고 항상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1>] 케냐 교육부 부국장 “평화의사자 이만희 대표 열정에 고취돼”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 평화사업의 목표 중 하나는 지속 가능한 평화다. 문제와 갈등은 폭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고 현지 주민들이 실제 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평화 문화를 정착유지시키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바솔로메 룸바시 와니키나(44) 케냐 교육부 부국장은 HWPL의 평화교육이 케냐 사회에 있어 지속 가능한 평화의 토대를 마련해준다고 평했다. HWPL의 평화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앞서 교육정책수학농업기술경제학 등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케냐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유아교육 코디네이터로 재직했던 그야말로 교육 전문가다. 지금도 케냐 교육부에서 교육 정책 수립, 전략 기획, 교육 자금 지원 프로젝트 모니터링 및 교육 활동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본지는 2019년부터 HWPL과 협력해 평화교육을 추진 중인 바솔로메 부국장과 최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자신의 직책을 설명하며 나는 케냐 내 지역사회와 사회 곳곳의 평화를 외치는 평화의 사자라고 소개했다. 그와 HWPL과의 인연은 그가 케냐 유네스코 국가위원회에서 일할 때부터였다. 바솔로메 부국장에 따르면 당시 HWPL은 케냐 유네스코 국가위원회와 MOA(합의각서) 및 MOU(양해각서) 체결을 모색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공존 증진을 목표로 하는 유네스코의 활동 목적과 HWPL의 사업 역시 일치했기에 유네스코는 교육자들을 위해 HWPL의 평화교육을 실시했다. 앞서 평화 활동을 추진해왔던 바솔로메 부국장도 당시 유네스코와 함께 시행한 HWPL 평화교육 행사에 참여한 이후 뜻이 맞아 HWPL과 평화사업 논의를 이어가게 됐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HWPL의 평화교육을 진행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학교 차원으로 평화 교육자와 평화의 사자를 양성했던 교육을 꼽았다. 이는 케냐 사회의 지속 가능한 평화의 토대를 마련해준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HWPL 평화교육을 통해 케냐 지역사회의 문화가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문화가 되는 상황이 가장 인상 깊다며 HWPL에서 개최하는 연례 기념회의컨퍼런스는 전 세계의 평화 활동을 공유하며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고 개인적으로 내가 평화 정책을 추진하는 데 큰 영감을 준다고 강조했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특히 HWPL의 평화교육 이후 케냐 지역사회에서의 큰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HWPL의 평화교육 이후 아마니(평화) 클럽 소속의 케냐 학교에서는 학교에 대한 불만이나 파업이 없어졌고 학교의 규칙 위반 사례에 대한 보고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안정되니 이들 학교에서의 학생들의 국가시험 점수도 크게 향상돼 최고점을 보고 있다고 바솔로메 부국장은 덧붙였다. 그는 그래서 저와 케냐의 교육자들은 예전과 달리 평화 활동에 더욱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3년 전부터 HWPL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는 HWPL의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 연례 기념행사를 포함해 웨비나(웹 세미나)에도 다섯 차례 이상 참석했다며 HWPL의 행사는 항상 최고이며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또한 HWPL의 평화 증진 추진에 영감을 받았고 기분이 대단히 좋았다며 우리는 HWPL의 평화 가족이 됐는데, HWPL과 하나가 됐기에 많은 만족감과 소속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HWPL 평화사업의 목표와 방향은 그에게 평화교육에 대한 동기부여와 영감을 제시했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HWPL은 전 세계적으로 평화를 촉진하는 훌륭한 단체라며 HWPL에서 말하는 평화는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뿐만 아니라 신과 자연 그리고 개인 자신의 화합에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종교인종사회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를 포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평화에 접근하도록 하는 매우 색다른 방향을 제시한다고 평했다. 무엇보다 이만희 대표의 열정은 바솔로메 부국장의 평화 의지를 북돋아줬다. 그는 평화를 향한 이만희 대표의 열정은 내 인생에서 이제까지 받은 것 중 가장 큰 영감을 줬다며 이는 내가 평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큰 성취감을 주며 국제적인 (평화)운동을 보고 평화 가족으로부터 소속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대표가 이 세상 끝까지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바솔로메 부국장은 케냐에서 평화를 위해 가장 시급히 달성해야할 목표로는 부패 및 성 기반 폭력의 근절을 꼽았다. 이를 위해 케냐 교육부와 HWPL은 MOU 체결을 논의 중이며 HWPL 평화교육 자료와 핵심 메시지가 교육 과정에 주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이번 MOU가 제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케냐뿐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HWPL의 교육 자료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바솔로메 부국장은 제안했다. 그는 이런 활동들은 아프리카 국가 원수들과 정책 입안자들을 위한 지역 컨퍼런스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생 교육이라는 한 길을 걸어온 바솔로메 부국장. 지속가능한 평화를 케냐와 아프리카에 정착시키기 위해 HWPL과 평화교육 협력을 계속할 예정이다. 평화는 삶을 진보시킬 어머니입니다. 평화 없이 인류는 번영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