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이야기<14>] 정몽구의 엄격한 ‘품질경영’으로 달라진 현대차의 글로벌 위상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4>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의 품질경영 J.D 파워사 품질 테스트 결과 ‘충격’ 현대자동차 품질평가서 ‘꼴찌’ 차지 자동차 품질강화에 직접 나선 정몽구 품질상황실 설치 및 24시간 운영 고객의 불만사항 일일이 접수 처리 품질목표 관리로 ‘품질패스제’ 시행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1938년 3월 18일 부친 정주영 회장과 모친 변중석 사이의 8남 3녀 중 이남으로 강원도 통천에서 출생했다. 신장이 부친을 닮아 177cm에 75kg의 건장한 체격으로 서울 경복고 재학시절 운동을 좋아해서 과격한 운동인 럭비팀 주장으로 활동했다. 경복고 재학 시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과 동기로 공부만 하던 가냘픈 체구의 친구인 그를 불량서클 학생들로부터 보호했고, 거구에 강골을 자랑하며 팔순 고령인 지금도 어깨가 떡 벌어질 정도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한양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를 1967년 졸업했다. ◆‘갤로퍼 신화’로 부친에게 경영능력 인정받아 정몽구 회장은 1970년 2월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1974년 2월까지 현대자동차 이사로 근무했다. 1977년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을 설립하고 당시에 다소 생소하지만 SUV의 원조인 4륜구동의 현대 갤로퍼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출시 두 달 만에 33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공전의 히트차가 됐다. 현대 갤로퍼가 단숨에 쌍용자동차의 코란도를 시장에서 앞지르면서 갤로퍼 신화를 일으키자, 부친 정주영 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경영능력을 비로소 인정했다. 갤로퍼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유명 4WD 모델인 1세대 구형 파제로를 1990년 3월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라이센스로 받아 1991년 9월 16일 갤로퍼(1991~1997)로 모델명을 변경하고 출시했다. 디젤 롱버디를 먼저 선보이고 11월 자동변속기모델, 12월에는 V6 3.0 가솔린 엔진 롱버디와 터보디젤엔진 모델을 연달아 출시했다. 출시 첫해 3000대 판매실적을 올렸고, 1992년에는 2만 4000대를 판매하며 국내 4WD 시장의 52% 시장 점유율을 보였으며, 출시 3년간 10만 여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유라시아 7만㎞를 고장 없이 완주하면서 고객들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았다. 또한 신사업으로 추진한 컨테이너사업은 1981년 1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고, 1983년에는 일본기업을 이기고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그리고 사실상 장자인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자동차 경영을 인계하고자, 정주영 회장이 현대 포니의 명성을 불러일으킨 동생 정세영 회장을 불러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 정세영 회장은 별다른 불협화음 없이 당시 세계 11위까지 성장한 현대차를 1999년 정몽구 회장에게 미련 없이 넘기고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을 인수했다.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 벤치마킹 정몽구 회장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표방한 ‘품질경영’을 벤치마킹하면서, 향후 현대차는 품질을 향상시켜야 진정한 자동차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98년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J.D 파워사가 평가한 자동차 품질 테스트에서 현대자동차가 품질평가 꼴찌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품질강화에 직접 나섰고, 향후 현대차의 운명은 품질향상에 있다고 굳게 결심하고 자금이 많이 들어가도 좋으니 품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2001년 서울 양재동 신사옥으로 이사한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 지시로 1층 로비에 ‘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을 설치했다. 당시 품질상황실이 24시간 운영되면서 세계 각국 주요 지역에 펴져 있는 자동차 딜러들과 치밀한 에프터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품질과 관련된 고객의 불만사항을 일일이 접수 처리했다. 여기서 수집된 품질정보보고서(QIR)로 작성한 데이터를 생산 현장 임직원들이 100% 정보를 공유하면서 현대차는 점진적인 개선을 해나갔다. 품질회의실과 품질확보실에서는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업계 차종을 모조리 가져다 비교분석했고, 관련 품질회의를 월 평균 2회 이상씩 진행시켰다. 그리고 정몽구 회장이 품질 및 연구개발, 생산담당 임원들을 수시로 소집해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결과로 나온 것이 현대차의 ‘품질패스제’이다. ‘품질패스제’는 정몽구 회장이 확실한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품 개발과 생산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지시한 제도이다. 현대자동차의 대표적 베스트 셀링카인 ‘NF소나타’도 이런 엄격한 품질과정을 통과해서 출시했다. 이외에도 정몽구 회장은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각국의 생산 공장마다 전수검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현대차 제품의 제품 불량을 대대적으로 줄여 가는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성과는 기술혁신과 전사적인 협력사 관리를 통해 가시적으로 가능해졌다. ◆협력업체 기술개발 지원 등 품질개선 앞장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기 전인 1996년 정몽구 회장은 현대종합기획실(삼성의 비서실 기능과 동일)에 ‘현대기술의 날’을 선언하고 ‘현대기술상’을 제정했다. 이와 함께 그룹 차원의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인재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확대 지원하기 위해 ‘현대기술상’ 수여 대상을 협력회사로까지 확대시켰다. 특히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자동차부품산업재단’을 설립하고, ‘5스타제도’를 도입해 협력업체의 품질개선에 앞장섰다. 이런 시행의 결과로 2004년 J.D파워사가 선정하는 자동차 초기품질지수조사에서 일본 도요타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냈으며, 정몽구 회장은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자동차 부문 세계 최고 CEO로 선정됐다. 2009년에는 미국자동차 매체인 모터트렌드가 선정하는 ‘자동차회사 파워리스트 50’서 6위까지 올랐다. 한때 현대기아차가 미국 등 주요국가에서 리콜(쏘올과 쏘렌토 3만 5000대)과 국내에서 쏘올,쏘렌토, 모하비, K7 등 1만 8272대가 리콜문제로 홍역을 치르지만, 이 원인은 모두가 배선용접 불량으로 실내등이 켜지지 않고 화재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밝혀졌다. 그러면서 기존에 판매된 자동차에 대해 전수 리콜조치를 즉각 실시하고, 소비자 불만을 단숨에 잠재우는 놀라운 순발력과 기치를 발휘하며 경영위기에서 벗어났다. 또한 다시 한 번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불량 없고 가치 있는 자동차 생산에 주력했다. ◆품질개선 대표작 ‘현대 제네시스’ 탄생 현대차는 마침내 품질개선의 대표작인 최고급 승용차인 ‘현대 제네시스’를 출시했다. 현대 제네시스는 일관제철소인 현대제철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전문용 초고강력 강판이 대거 적용되고 현대자동차 최초로 4륜 구동(H-Trac) 기술을 접목한 것과 방청기능이 한 단계 더 강화된 LF소나타의 듀얼 로어암 등의 채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2014년 J.D파워가 발표한 신차품질조사(IQS, Initial Quality Study)에서 현대자동차가 일반 브랜드부문 20개 브랜드 중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1위에, 기아자동차는 도요타와 근소한 차이로 3위에 선정되는 쾌거는 지난 30년간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몽구 회장의 집념의 결과물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런 결과 현대자동차는 2010년 미국 포드자동차를 제치고, 현대·기아차그룹을 글로벌 누적 판매대수 5위를 기록하는데 이 결과도 정몽구 회장이 강조한 ‘품질경영’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리고 1999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처리 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성공적으로 회생시켰고, 부도 처리된 한보철강을 2004년에 인수한 뒤 사명을 현대제철로 변경하고 글로벌 철강 일괄생산 체제를 구축했으며, 부친 정주영 회장의 숙원사업(쇳물에서 자동차 철강 생산 확대)을 마무리했다. 2011년 4월 유동성 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 모기업 현대건설을 인수해 세계적인 회사로 다시 육성했다. 2009년 9월 기준 현대자동차를 포함 10개 계열사의 자산규모는 14조 400억에 불구했으나, 2018년 기준으로 54개의 계열사와 총 356조 5823억원의 자산과 254조 7976억원 매출액을 달성하며 당시 기준 국내 2위의 재벌기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런 현대기아차의 발전은 미국 포춘지에서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속도위반 딱지를 부여 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2년 6개월 만에 필자가 2022년 7월 유럽출장 중 주차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벤츠, 도요타, 아우디, 폭스바겐 자동차들 틈에 자주 보이는 현대자동차들을 발견하고, 세계 5위의 현대기아차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가슴속 깊이 간직하는 느낌을 누릴 수 있었다. 주야로 노력한 정몽구 회장의 집념이 오늘의 현대·기아차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판단한다. 끝으로 현대·기아자동차가 대폭적인 해외투자로 조만간에 자동차 1위 회사인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세계 1위 자동차회사가 되길 소망해 본다.

[현대이야기<13>] 아산의 정신 깃든 현대차… 세계 5위 자동차회사로 ‘우뚝’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3>아산 정주영 회장의 현대차 鄭회장, 일제때 자동차 수리회사 설립 성실함과 근면성으로 엄청난 부 축적 첫 국산기술로 만든 포니 1976년 출시 기아자동차 인수 후 다양한 차종 보유 정몽구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등재 바이든 방한때 정의선 회장 50분 독대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0년 3월 합자회사 형태의 자동차 수리회사인 아도서비스를 설립해 성실함과 근면성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우연히 발생한 화재로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날리게 됐지만, 신용이 높은 정주영 회장에게 또다시 담보 없이 자금을 빌려준 사업가인 오윤근 사장 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정 회장은 세월이 흘러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무자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운행할 수 있는 자동차,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로 순수 국산 기술을 활용해 만든 포니 승용차를 1976년 출시했다. 이는 본격적인 독자개발 한국산 자동차 사업의 시대를 열어가는 계기가 됐다. 포니는 국산 말로 ‘조랑말’이라고 표현되기도 했고, 1차 고객은 주로 택시를 운용하는 택시회사였다. 택시는 1979년 기본요금이 300원 정도였고, 주행 요금은 400미터당 40원 정도로 당시 대중교통인 버스요금이 9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일반 서민들은 급한 일이 아니면 이용이 다소 부담스럽던 시절이었다. 포니의 최대 약점은 에어컨이 미장착 돼 여름에는 승객들이 더위를 참고 타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승차감이 향상되고 에어컨이 장착된 중형차인 2000cc 택시가 운행되면서 포니는 점차 시장에서 사라졌다. ◆최장수 모델 ‘쏘나타’ 8세대까지 출시 그리고 1994년 개발된 소형차인 액센트(Accent)는 6세대인 현재까지 변형 모델을 출시하면서 젊은 세대가 처음 구매하는 차로 인기를 얻었다. 이 차종은 소형차에 맞게 작고 프론트 범퍼 폭이 비교적 넓게 설계돼 컴팩트한 차량의 인상을 줬고, 현대차 특유의 심플한 실내 기능 활용성을 주고 있으며, 적당한 크기의 중앙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쾌적한 영상을 전했다. 특히 직관적인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 계기판을 클러스터에 삽입해 아주 편하게 주행 정보를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특징을 주면서도 손에 잡기 쉬운 도어 인사이드 핸들을 통해 실용적인 실내 인테리어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또한 액센트는 디스크 브레이크를 통해 높은 제동력을 연출하며, 후방카메라 ECM Room Mirror를 통해 사각지대 완벽 커버를 구현시킨 승용차였다. 현대차는 현재 국민차로 불리는 쏘나타 개발 이전에 중형차 고유모델인 스텔라를 개발, 생산 출시했다. 스텔라는 당시 미국 포드와 제휴를 통해 생산하던 코티나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활용하고,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이아로의 디자인과 미쓰비시의 엔진 등이 합쳐져 5년간 개발 끝에 출시됐다. 이 모델은 현재 8세대 쏘나타(SONATA) DN8까지 이어지며 누적 판매 대수가 무려 160만대로 현대차의 최장수 모델이다. 현대차는 1995년 ‘마르샤’를 출시하는데 쏘나타 2세대와 3세대 플랫폼을 공유해 개발했다. 차량 크기는 쏘나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형차인 그랜저의 파워트레인과 옵션이 탑재된 최고급 승용차로서 최고 출력 173마력을 발휘하는 2500cc V6 가솔린 엔진이 채택됐고 오토에어컨, 우드그레인 마감재 등이 적용된 준대형 승용차였다. 그리고 현대차는 1996년 국내 최초의 준중형 RV 차량인 싼타모를 출시했고, 당시 국내에 생소한 7인승 MPV(Multi-Purpose Vehicle)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며 지금의 7인승 RV & SUV 모델의 원조모델로 판매되다가 2002년에 단종됐다. 2001년 테라칸이라는 프레임 바디 기반의 정통 SUV를 출시하고 2500cc 디젤엔진과 에쿠스에 탑재된 3500cc 가솔린엔진이 채택면서 이후 베라쿠르즈, 맥스크루즈 차종 모델로 이어졌으나 현재는 초대형 팰리세이드로 변경돼 판매 중이다. ◆대표 세단 그랜저, 6세대까지 ‘36년 역사’ 현대차는 대형자동차의 원조인 1세대 각 그랜저(1986년 7월~1992년 9월)를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와 합작해 개발 출시했다. 초기는 2000cc에 5단 수동변속만 출시하다가 2400cc에 전자제어식 4단 자동변속기를 채택한 그랜저를 시장에 판매한다. 이어 1989년 9월 164마력 V6 3000cc 그랜저를 출시하는데 이 모델은 6기통 타입 승용차이다. 2세대 그랜저 LX(1992년 9월 18일~1998년 9월)는 뉴그랜저라는 모델로 2000cc, 2400cc, 3000cc급 3종류가 출시되는데 곡선형 타입이며, 실내 공간도 종전보다 커져서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3세대 그랜저 XG(1998년 10월~2005년 8월)는 현대차가 미쓰비시와 협업하지 않고 단독으로 개발 출시했고, 2세대 약점인 프레임리스 도어누수, 미션 변속충격 등 몇 가지의 잔고장 원인을 개선했다. 4세대 그랜저 TG(2005년 5월~2010년 12월)는 에쿠스와 패밀리룩을 이뤘던 XG와는 차별화한 모델로 소나타와 패밀리룩을 형성했다. 본넷 엠블럼이 사라지면서 급이 낮아진 게 아니냐는 논란이 초반에 발생했지만, XG에 비교해 차체와 쾌적한 주행 성능을 높인 장점이 있으며, 곡선 위주의 차체를 디자인해 고객들의 파격적인 인기를 끌면서 판매 대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5세대 그랜저 HG(2011년 13일~2016년 11월)는 당시 판매가격 기본이 3000만원이 넘는 차로 주행 시 부드럽기만 했던 특유의 승차감에 단단함이 가미돼 출시됐다. 6세대 그랜저 IG(2016년 11월 22일~2019년 11월)는 개발기간 만 5년이 걸린 모델로 조금 더 젊고 스포티한 감각과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디자인으로 변경됐고, 벤츠 E클래스나 S90와 비교해 주행 성능이 큰 차이가 안 나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게 출시됐다는 평가를 고객들로부터 받았다. 페이스리프트 돼 출시한 6세대 그랜저 IG(2019년 11월 19일~현재)는 12.3인치 컬러 LCD 클러스터와 터치식 공조 컨트롤러를 전체 트림에 장착했고, 스웨이드 내장재와 뒷좌석 수동커튼 등을 기본사양으로 추가했다. ◆미쓰비시와 공동개발 초대형 승용차 ‘에쿠스’ 현대차는 초대형 승용차인 에쿠스를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해 1999년 4월 28일에 출시했고 2015년 12월까지 생산 판매했다. 에쿠스는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과 천마를 상징하며, 영어로는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독창적인 명품 자동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외수출은 현대차브랜드로만 수출됐고, 수출국에 따라 센터니얼이라는 브랜드도 사용됐다. 차체가 각이 지어져서 1세대 차는 ‘각쿠스’라는 애칭도 불렸다. 2003년 11월 페이스리프트 한 모델이 출시되는데 전면부의 그릴 형상이 완전히 바뀌고 방향지시등이 호박색에서 하얀색으로 변경돼서, 기존의 벌브타입에서 LED 등을 탑재시키어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나게 해줬다. 후면부는 넓은 삼각형 형태의 리어리프트로 변경시키고 번호판을 범퍼에서 트렁크자리로 옮겨 신차느낌을 주게 됐으며, 실내도 최고급 냉난방 통풍시트가 적용됐다. 2015년 2월에 V6 3800cc 람다엔진(JS380)이 추가되면서 V6 3000cc 시그마엔진 차종을 단종시켰고 그해 2월 6일 3300cc 람다엔진이 추가되면서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브로드캐스팅)기능이 채택된 차를 출시하지만 재고 소진 후 단종시켰다. ◆현대차 럭셔리 글로벌 브랜드 ‘제네시스’ 그리고 현대차는 2015년 11월 4일 제네시스(Genesis) 브랜드를 자사의 최고급 독립 브랜드로 발표하고, 독일의 러셀하임, 한국의 현대차 남양연구소, 미국 얼바인에서 설계 및 디자인된 제네시스를 울산공장에서 생산하고 출시했다. 제네시스는 2020년까지 6종의 제품라인업 모델을 출시하면서 에쿠스라고 불리었던 현대차의 플래그쉽 럭셔리 세단은 Genesis Brand란 명칭으로 ‘EQ900’를 2015년 개발 판매했다. 현대차는 지난 10년간 누적시킨 소재와 설계, 시험, 파워트레인, 전자화된 12.3인치 클러스터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가 조합된 자체 기술을 활용해서 2013년 11월 제네시스 2세대 모델인 G80(2016년 7월)을 출시하게 된다. 제네시스 2세대 차종은 탄탄한 차체를 기본으로 동력성능과 안전성, 승차감 및 핸들링, 정숙성, 내구성 등 5대 기본성능과 디자인을 글로벌 명차인 독일 벤츠, 아우디 수준으로 끌어올린 승용차다. 브랜드 명칭을 제네시스로 결정한 이유는 성능,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진보와 혁신을 지속해 대한민국 최고급 승용차의 신기원을 열어 간다는 의미가 있으며, 글로벌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향상된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2018년 1월에 강남 부자들인 고객을 대상으로 강남구 대치동에 독립매장인 ‘제네시스 강남’을 개설하고 수도권 갑부들에 대한 영업을 강화했다. 그리고 후속 모델인 초대형 럭셔리 모델인 G90을 2015년 12월 9일 출시하면서 고객들의 선택 폭을 다양화시켰다. 또한 현대차는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고 더욱 단단해진 승용차 및 SUV 차종을 보유하게 되면서 소형부터, 중형, 대형, 초대형 차종에 이르는 세계 5위권 안에 들어가는 진정한 글러벌 자동차회사로 발전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2020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1939년에 설립된 기구로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성과와 업적을 토대로 자동차산업과 모빌리티 발전에 중대한 역할과 기여를 한 인물을 엄선함)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어 새로 선임된 정의선 회장은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시 단독으로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면담한 바 있다. 현대차가 미국과 약속한 파격적인 투자(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자동차 년 30만대 규모 공장 및 배터리셀 공장 100억불 투자 등)를 통해 이른 시일 내로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세계 1위 자동차회사로 등극 되기를 앙망한다. (정리 = 유영선 기자)

[경제인사이드] 성큼 다가온 전기차 시대… 비중 1% 찍고 판매 확대 가속화

-핵심요약- ◆전기차 시장, 브레이크 없는 성장세 전기차 시장이 브레이크 없는 성장세로 고속 성장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자동차 판매량의 전기차 비중이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1%를 넘어선 1.2%를 기록해 작년 상반기(0.7%)보다 0.5%포인트(p) 올랐다. 자동차 판매 100대 중 1대는 전기차인 셈이다. 6월까지 누적 전기차 보급 대수는 30만대에 육박했으며 확산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업체는 전기차 선봬… 정부는 가격↓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이 올해 하반기 전기차 새 모델들을 쏟아낼 예정이다. 현대차는 아이오닉6를, 기아는 EV6 GT,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EQE 350+’, BMW코리아 ‘i7’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도입을 위해 관련 법규 완화에 나섰다. 구독서비스로 배터리 가격이 빠지면 전기차 가격이 기존보다 저렴해질 전망이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전기차 시장이 브레이크 없는 고속 성장세에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국내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30만대를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에는 전체 자동차 판매 중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1%를 돌파했다. 하반기도 전기차 새 모델들이 대거 출시될 예정으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며, 정부도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위해 배터리 구독서비스 도입 등에 나서면서 전기차 시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가속화 하는 전기차 판매 3일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은 6만 8528대로 전년 동기(3만 9495대) 대비 73.5% 증가했다. 이를 업체별로 보면 현대차가 3만 1672대로 지난해 동기(1만 5684대) 대비 101.9% 증가해 가장 많았고, 작년 동기(8863대)보다 161.7% 증가해 2만 3192대를 기록한 기아가 뒤를 이었다. 수입 전기차는 올해 상반기 1만 2959대가 팔려 전년 같은 기간(1만 1431대) 대비 13% 늘었다. 수입차 업체 중에선 테슬라가 6746대를 판매해 작년 동기(1만 1629대) 대비 42% 감소했다. 이어 메르세데스 벤츠 1395대, BMW 1238대, 폴스타 936대 등의 순이다. 모델별로 보면 상위 전기차 모델은 아이오닉5가 3만 6740대(12.3%)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포터Ⅱ 3만 3934대(11.4%), 코나 일렉트릭 3만 2341대(10.8%), 테슬라 모델3 2만 6143대(8.7%), 봉고Ⅲ 2만 3404대(7.8%)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상반기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처음으로 1%를 넘어선 1.2%를 기록했다. 1년 전(0.7%)보다 0.5%포인트(p) 올랐다. 자동차 판매 100대 중 1대는 전기차인 셈이다. 비중 1%가 시사하는 바는 주목해볼 만하다. 전기차 판매량이 전체의 1%를 차지하기까지 2012년부터 10여년이 걸렸다. 아울러 기후 위기, 친환경 규제 등으로 경유(디젤)차와 휘발유(가솔린)차 등 내연기관차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반면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는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확산 속도가 더 가속화하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는 29만 8633대로 지난해 상반기(17만 3147대)보다 12만 5486대가 늘어나 72.4%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간 매달 1만대 이상씩 판매된 것으로 이 추세를 볼 때 집계되진 않았지만 이날 기준으로는 이미 누적 30만대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860대에 그쳤던 전기차 보급 대수는 최근 들어 확산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연도별 누적 대수를 보면 2018년 5만 5756대, 2020년 13만 4952대, 2021년 말 23만1443대로 집계됐다. 5만대에서 10만대를 넘어서는 데 2년이 걸렸다면, 10만대에서 20만대를 넘어서는 덴 1년이 걸렸고, 30만대를 넘어서는 덴 6개월여가 걸린 셈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계속해서 새 모델들이 나오고 있으며 2025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수요는 20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내연기관차는 회복되기 굉장히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2017년에 전 세계 자동차 판매가 9700만대를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하락했다가 작년에 반등했지만 8200만대 수준으로 1500만대 차이가 난다”며 “올해도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반기 전기차 쏟아진다 완성차 업체들은 올해 하반기 다양한 전기차를 쏟아낼 예정이다. 먼저 현대차는 지난달 14일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아이오닉6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아이오닉6는 당초 지난달 28일 사전계약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 100%를 받을 수 있도록 가격 조정에 나서면서 이달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6의 가격을 모든 트림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5400만원대부터 시작할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오닉6는 77.4㎾h 배터리가 장착된 롱레인지와 53.0㎾h 배터리가 탑재된 스탠다드 두 가지 모델로 운영되며, 1회 충전으로 주행가능거리는 524㎞다. 전기소비효율(전비)은 6.2㎞/㎾h로 이는 현존하는 전용전기차 중 세계 최고수치다. 후륜에 기본 탑재되는 모터는 최대 출력 168㎾, 최대 토크 350Nm이며 트림에 따라 74㎾ 전륜 모터를 추가해 사륜구동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사륜구동 방식을 선택하면 최대 239㎾ 출력과 605Nm 토크를 기반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h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1초로 역동적인 주행 성능을 체험할 수 있다. 아이오닉6는 9월 출시 예정이며 올해 판매목표는 1만 2000대, 내년 목표는 5만대로 잡았다. 기아는 오는 9월 E-GMP 기반 첫 전용 전기차 EV6의 최상위 트림인 ‘EV6 GT’를 선보일 예정이다. EV6 GT는 최고출력 584마력, 최대토크 75.5㎏·m의 동력성능을 바탕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5초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유럽 WLTP 기준 405㎞다. 수입차 중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가 ‘EQE 350+’와 ‘메르세데스-AMG EQS 53’, BMW코리아 ‘i7’, 아우디코리아 ‘Q4 e-트론’, 폭스바겐코리아 ‘ID.4’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벤츠 EQE 350+는 벤츠 E클래스 기반 전기차로, EQS에 이어 벤츠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개발한 두 번째 모델이다. EQE 350+는 90㎾h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WLTP 기준 660㎞를 달릴 수 있다. 가격은 9000만~1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BMW는 7시리즈 최초의 순수전기차 i7를 선보인다. BMW의 5세대 이드라이브 시스템이 적용된 2개의 전기모터를 장착해 최고출력 544마력을 낸다. 101.7㎾h 고전압 배터리를 장착해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최대 625㎞다. 가격대는 1억 7000만~1억 8000만원대로 전해진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콤팩트 SUV 시장을 정조준 한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각각 브랜드 첫 콤팩트 전기 SUV인 Q4 e-트론, ID.4를 하반기 출시한다. Q4 e-트론과 ID.4는 1회 충전 시 WLTP 기준 520㎞ 수준을 달릴 수 있다. ◆정부,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시대 연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도입에 나섰다.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전기차에서 배터리 가격이 빠지면 전기차 구매 시 기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예를 들면 니로EV의 경우 판매가 4530만원에 보조금 1000만원(국비 700만원+지방비 평균 300만원)과 배터리값 2100만원을 빼면 실제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은 1430만원 수준이 된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달 28일 제2회 국토교통규제개혁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의 국토교통 분야 규제개선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국토부는 연내 자동차등록령을 개정해 배터리 소유자가 자동차 소유자와 다른 경우 그 사실을 등록원부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배터리 구독서비스가 출시될 경우 전기차 구매자가 부담하게 될 초기 구입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짐에 따라 전기차 보급 확산 및 배터리 관련 신산업 육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심층취재-입찰㉚] 서울시교육청, 스마트기기 ‘렌탈 사업’ 추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디지털 전환(DX)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교육 기관에 ‘1인 1스마트기기’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천지일보는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취재하고 교육청의 편파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심층 보도를 기획했다. 제30보에서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의 2차 스마트기기 지원 사업인 렌탈 사업에 대해 알아본다. 기기 16만 5000여대 계약 전망 ‘AJ·한국·롯데렌탈’ 참여 유력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하반기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을 렌탈(임대) 사업으로 추진한다. 이전에는 교육청이 스마트기기를 직접 구입해 교육 기관에 제공했다면 이제는 렌탈 사업자를 선정해 사용 권한을 교육 기관이 갖고 소유권은 사업자가 갖는 방식으로 바뀐다. 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이 교육청은 이달 말 또는 9월 스마트기기 렌탈 사업 공고를 올린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의 관리적인 측면의 부담을 줄이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목적으로 교육청 내부 검토를 거쳐 렌탈 사업으로 전환하게 됐다”고 밝혔다. 수요 기관이 사용 권한만을 갖게 됐지만 분실·파손에 대한 책임은 사안에 따라 달라질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사용자의 과실인지, 자체적인 결함인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사안별로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고 관리 정책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며 “기본적으로는 고의성이 없는 파손에 대해서는 1차 사업 때 적용했던 방식(수리비의 20% 정도 부담)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 개인의 사정, 취약계층 지원 부분을 고려해 기준을 더 세밀하게 정해서 계약에 넣을 생각”이라며 “그런데도 사각지대에 있는 부분은 학교 내부 위원회를 통해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기기 총수는 16만 5000여대가 될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16만 5000여대, 17만대 이하로 예상한다”며 “기종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행되는 예산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존 사업보다는 예산이 더 많이 들 예정이다. 그는 “이번 사업의 예산을 추경에 넣었는데 전체적인 예산 심의가 의회에서 보류됐다”고 전했다. 참여가 예상되는 사업자로는 AJ렌탈(AJ네트웍스), 한국렌탈, 롯데렌탈 등이다. 이들은 사업에 참여할 준비(컨소시엄 구성 등)를 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두 번째로 큰 변화는 사업의 주 계약자가 렌탈 사업자로 바뀐다는 것이다. 1차 사업에서는 SI 업체인 KT가 계약을 맺고 컨소시엄와 사업 수행 역할을 배분했다면 이번에는 렌탈 사업자가 주 계약자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교육청 사업을 수주한 사업자들을 살펴보면 AJ렌탈은 삼성전자와, 롯데렌탈은 KT와 관련이 있는 사업자”라면서도 “이익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이번 사업에 참여할지 아직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참여 사업자들에게는 목돈이 필요하다. 최소한 교육청 예산의 80% 이상은 유동 자산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렌탈 사업으로 바뀌면 계약 후 일괄 정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만큼이나 교육청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부작용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학교의 관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분실·파손에 대한 부담은 그대로인데 최소 1.3배에서 최대 1.8배까지 사업 수행 필요 예산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이야기<12>] 하청 취급한 포드에 ‘독자 모델 개발’로 저력 과시한 정주영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2> 한국자동차산업의 발자취 1967년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설립 당시 미국의 포드와 기술제휴 계약 포드, 기술개발 노하우 전수 안 해줘 정주영, 자신이 건설한 고속도로에 주행할 車 개발·생산할 큰 뜻 품어 비밀리에 독자적인 ‘車 생산’ 준비 자동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설이 나오는데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벽시계에 태엽을 감다가 태엽의 풀어지는 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한 태엽자동차가 오늘날 자동차의 기원이 됐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자동차의 원조는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조셉퀴노가 개발한 증기자동차로 판단되며, 이 차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으로 주행한 차로 알려진다. 그리고 1824년 최초의 전기자동차가 개발됐으나 상용화는 1886년이 돼서야 성공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는 가솔린 내연기관의 개발로 인해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1886년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의 공동 설립자 칼 벤츠가 최초로 가솔린엔진을 탑재시킨 자동차모델인 ‘벤츠 페이턴트 모토바겐’을 개발함으로써 현대 자동차산업의 초석을 놓게 됐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 연 포도의 ‘모델T’ 1894년에 다임러가 아내의 생일날 250cc 회전식 핸들자동차 타입인 가솔린엔진을 장착한 시속 16㎞의 4륜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했다. 독일보다 20여년 늦게 1908년경 미국의 자동차왕국의 황제라고 불리는 헨리 포드가 켄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저렴한 모델인 포드T(통칭 T형 포드) 자동차를 양산하며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개척했고, 이 차종은 1500만대 이상이 판매되면서 가솔린 자동차시장을 열었다. 1921년 뉴욕모터쇼에 클라이슬러 자동차회사는 배기량 3000cc의 6기통 엔진을 적용하고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에어클리너, 교환 가능한 오일필터, 4바퀴 유압브레이크 등을 장착한 획기적인 승용차를 출시했다. 1936년에 독일의 루돌프 디젤은 디젤 엔진을 개발하고 디젤자동차를 최초로 출시했다. 이후 1940년대 독일의 국민들을 위해 만든 국민차 타입의 ‘비틀’이 큰 인기를 끌면서 자동차시장을 주도해갔으며, ‘비틀’은 군용차 타입인 ‘퀴벨바겐’으로 변경하고 2차 세계대전 전쟁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1950년대 들어 세계 시장의 1위로 올라선 미국은 차량이 급속도로 보급되며, 미국 경제를 이끌어 가게 됐다. 1960년대에 연비가 좋은 차를 선호하면서 미니, 피아트500, BMW 이세타, 스바루 등의 자동차가 큰 인기를 끌게 됐다. 1970년대를 맞아서 화려하고 날렵하게 디자인된 자동차인 미국의 포드머스탱, 쉐보레, 카마로, 유럽의 페라리, 람보니, 포르쉐 모델이 출시되자 슈퍼카가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 부호들은 부의 상징으로 이런 차들을 너도나도 구매해 타고 다녔다. 중동전쟁 종전 후 1980년대는 연비가 좋은 작은 크기의 쿠페나 헤치백 스타일의 차량들이 대량으로 출시돼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차를 구입하게 됐다. 이후 자동차산업은 연비절감을 위해 가볍고도 안전성이 높은 자동차가 출시됐다. 최근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가솔린 겸용 자동차와 수소차, 전기차가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사업경쟁이 전 세계국가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첫 독자개발 모델 ‘포니’ 탄생 대한민국에 자동차가 처음으로 도입된 시기는 1903년 고종황제의 의전용 차량으로, 미국공사의 협조로 포드사가 리무진타입으로 제작해서 들어왔다. 또 1911년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부임한 ‘데라우찌’가 순종황제의 전용차와 조선총독부의 관용차로 캐딜락 타입의 다임러 리무진 차 2대를 수입해 업무용으로 타고 다녔다. 국내 자동차 대수는 미비하지만 1918년 212대, 1931년 4331대, 1932년 4800대, 1940년에는 1만대로 늘어갔다. 6.25전쟁 이후 1956년 서울에는 5335대의 자동차가 있었고, 이 중에 승용차는 1439대, 트럭이 1248대, 지프차가 1031대, 버스가 810대 정도로 집계됐다. 2022년 기준으로 보면 자동차 등록대수는 대략 2507만 180대로 가구당 2대 정도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그룹을 창설한 정주영 회장이 1940년 3월경 경기도 경성부 아현정(현 서을 아현동)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설립한 게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근원이며, 1967년 12월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자동차 최강국인 미국의 포드 자동차와 기술제휴를 계약하고, 현대포드 코티나(1968~1971)와 왜건스타일의 현대포드20M(1969~1973), 현대 포드 뉴 코티나(1971~1977)를 생산 판매했다. 하지만 포드는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현대자동차가 자국의 부품을 수입해 하청으로 단순 생산을 하게 만들었고, 실질적인 자동차 개발기술에 대한 노하우 전수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다른 루트로 1973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와 손을 잡고 트랜스미션, 엔진, 후차 축 등에 대한 기술제휴를 하며 자동차를 생산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본인이 주도해 건설한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 7월 7일 개통되면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는 신종어가 탄생됐고, 이를 계기로 고속도로를 주행할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해 세계에 판매하겠다는 원대한 뜻을 안고 있었다. 이 목적을 달성키 위해 독자적인 자동차 모델의 생산을 준비하면서 외부로 정보 노출을 하지 않고 자체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에 걸맞게 영국의 최대 자동차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 부사장으로 근무 중인 조지 턴불을 스카웃했고, 1973년 9월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와 계약했다. 이후 4도어에 일본 미츠비시의 4단 수동변속기와 4기통 1238cc의 새턴 엔진을 탑재한 대한민국 최초 독자개발 모델인 ‘포니(1976~1982)’를 1976년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출시했다. 이후 디자인을 조금 변경시킨 트럭 타입 현대포니 픽업과 현대포니 왜건도 출시했다. 한국 최초로 1976년 7월 에콰도르에 5대의 포니가 수출되면서 현대자동차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포니는 현대자동차라는 브랜드와 한국의 독자개발 자동차라는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한국자동차 역사의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드디어 1974년 7월에는 1억 달러의 공사비를 투자해 연산 5만 6000대 규모의 자동차공장이 울산시에 건설되며 자동차 대량 생산이 본격화됐다. ◆한국 자동차의 태동과 발전과정 현대자동차가 생산되기 이전에 판매된 자동차의 원조는 1955년 8월 국내에서 제작된 첫 국산차인 ‘시발’이다. 이 차는 ‘국제차량공업사’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최무성과 그의 3형제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지프엔진, 변속기 등의 자동차 부속품을 활용했고, 차체는 드럼통을 잘라 수작업으로 망치를 두들겨 펴서 차량을 열악한 환경의 천막공장에서 제작한 게 시초였다. 이 차종은 1955년 10월 경복궁에서 개최된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차로, 시발이라는 모델 명칭은 처음 시작한다는 뜻인 ‘시발점’에서 유래됐다. 이 차의 국산 부품 비율은 50%로 알려졌고, 최고 시속 80㎞ 주행이 가능한 지프타입 자동차로 알려졌다. 이 차종은 1962년까지 판매됐고, 이후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 제휴한 ‘새나라자동차공업㈜’는 자사 차종인 ‘새나라’ 자동차를 생산 판매했다. 대형 상용차 생산의 경우 1954년 ‘하동환 자동차제작소’라고 하는 버스제작 전문회사가 1960년대까지 버스를 대량 생산해 국내에서 버스제조사로 큰 성장을 이뤘다. 1967년 8월에는 베트남으로 버스 20대를 수출하고, 1984년 9월 미국시장에 고속버스를 수출했다. 하동환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1986년 11월 쌍용그룹에 인수돼 1988년 3월 쌍용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고 최대 히트작인 대형승용차 체어맨과 SUV 렉스톤, 뉴카이런, 코란도 등을 생산하다가 경영난으로 대우그룹에 인수됐다. 하지만 대우그룹 부도로 2004년 대우그룹에서 분리됐으며, 2004년 10월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매각됐다. 또다시 2011년 3월 인도의 대표적인 유틸리티 차량 제조회사인 마힌드라&마힌드라(Mahindra&Mahindra Limited)가 쌍용차동차를 인수했고, 2014년 생산된 뉴코란도C는 대한민국 그린카 어워드를 수상했다. 또한 2018년 출시된 소형 SUV인 티볼리가 올해의 SUV로 선정돼 인기리에 판매됐고, 최근 전기차 코란도 E-모션이 출시돼 판매중이다. 이 회사의 2021년 기준 매출액은 2조 4293억원, 당기순이익은 2579억원, 자산총액은 1조8630억원, 자본금은 7492억원, 종업원은 4517명 정도이다. 또한 승용차 시장의 경우 신진공업이 1965년 11월에 새나라자동차공업㈜를 인수하면서 회사명도 ‘신진자동차㈜’로 변경했다. 신진자동차는 일본 도요다자동차와 기술제휴 계약을 통해 ‘코로나’라는 승용차를 생산 판매했다. 당시 ‘코로나’ 차종은 라디오와 히터가 탑재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1964년 호남연고 기업가인 문인환은, 프랑스의 Simca 등과 차관 협정을 맺고 ‘아세아자동차’를 설립해 광주광역시에 자동차공장을 건설하고 1970년부터 ‘피아트124’라고 불리는 1200cc급 소형승용차를 라이선스로 생산 판매했다. 당시 피아트124 차종은 깔끔한 디자인에 뛰어난 품질, 경제성 등을 앞세워서 자동차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피아트와 라이선스 연장계약 문제로 큰 마찰을 빚었고, 이런 이유로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높은 인기도에도 불구하고 3년 만에 차종이 단종됐으며, 그 기간에 피아트124 자동차는 6800여대를 판매했고 현재는 2대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아세아자동차 피아트124는 현대 코티나, 신진 코로나 등과 더불어 1970년대 태동기였던 대한민국 중형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또한 아세아자동차를 인수한 기아산업은 정부정책 권장에 따라 1974년 10월 소형차종인 ‘브리사’를 생산 판매했다. 브리사는 배기량 985cc로 국산엔진을 탑재했고, 1975년 국산화율이 80% 정도로 국산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로 기록되나 독자개발 차종은 아니었다. 현재는 법인이 기아자동차로 흡수됐으나, 자동차 전문가들은 피아트124가 현재 기아가 생산 판매중인 K5의 원조라고도 한다. 여기까지 한국자동차 태동기와 발전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봤다. (정리 = 유영선 기자)

[현대이야기<11>] ‘주베일 항만공사’로 韓경제 구하고 글로벌 건설사로 우뚝 선 현대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1> 중동진출의 드라마 쓴 정주영세계가 주목한 20세기 최대 공사 공사금액 9억 6천만 달러 투입 당시 세계서 가장 큰 규모 공사 중동서 막대한 달러 번 현대건설 국내는 물론 세계서 인정받게 돼 주베일 공사 후 중동서 승승장구 아산 정주영 회장이 현대건설의 사운을 걸고 전력을 다해 도전해서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공사를 잠시 자세하게 서술해본다. 주베일 항만공사는 수심 10m의 바다를 길이 8㎞, 폭 2㎞로 매립해 항구와 기반 시설을 만드는 공사로, 300m 높이의 산 하나를 부셔서 나온 자재를 바다에 메우는 분량이었다고 한다. 매립 공사 후에 공사 성패를 좌우하는 30만톤 유조선 4대를 동시에 댈 수 있는 20세기 최대의 유조선 접안시설(OSST)을 바다 위에 세워야 했다. 특히 유조선 정박시설의 기초가 된 철근 구조물(대형재킷)만도 500톤짜리 89개로 직경 1~2m의 파이프를 가로 18m, 세로 20m, 높이 36m로 높이로만도 10층 빌딩과 비슷했다. ◆주베일 계기로 중동 대형공사 100% 수주 이 공사는 앞서 설명한 대로 30만톤 유조선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항만공사로 350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투입된 공사이고, 한국 건설사로는 최대 규모였다. 현지 인건비와 재료비를 최대로 절약하고자 항만공사에 필요한 대형재킷(1억 달러 상당)들을 울산의 현대중공업에서 제조해 19번이나 바지선으로 연결했다. 또 악명 높은 태풍이 부는 필리핀해역을 거쳐 중동의 걸프만까지 1만 2000㎞의 바닷길을 무사고로 안전하게 운반했다. 또한 바닷속 바닥을 종 모양으로 굴착해 철근을 삽입하고 콘크리트로 타설한 후 거기에 거대한 대형재킷을 페르시아만에 세워 주베일 항만공사를 건설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전설로 건설업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이것을 계기로 현대건설은 1977년 ‘라스 알가르’ 항만과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공사, 1978년 1월 ‘두바이 발전소’ 수주 등 중동지역의 대형공사를 100% 수주했다. 70년대 석유파동으로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면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대한민국을 구원하고 오일머니로 달러가 넘치는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들인 1등 공신 현대건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경제는 다시 한번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주영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로 세운 공” 현대건설이 주베일 산업항만공사를 무사히 마치자 박정희 대통령은 정중하게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초대해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도 하면서 중동건설에서 성공한 이유를 질문했다. 이에 정주영 회장은 “각하 제가 공부를 제대로 했습니까, 대학을 나왔습니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를 할 수 있나요. 현대건설의 임직원들이 세계 초일류 외국회사와 비교해 기술이나 경영면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공로는 전적으로 현대건설 근로자들이 대한민국과 현대건설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면서 땀과 눈물로 세운 공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모든 공로를 근로자들에게 돌리는 멋진 한마디의 답변을 정 회장은 남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정주영 회장의 통 큰 답변에 전적인 동감을 표하면서 샴페인 술잔을 맞추고 브라보를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그만큼 정주영 회장은 모든 중동에서의 건설신화를 함께 일한 근로자들에게 돌리면서 자신은 한 것도 별로 없이, 그저 열심히 현대건설을 위해 밤낮으로 24시간 일하는 임직원들의 급여를 하루도 늦추지 않고 지불한 것이라고 했다. 타 대기업 회장들과 전혀 다르게 임직원들에게 이익이 발생하면 조금이라도 더 배려(추가 보너스 지급)하는 아량 있는 경영자의 배포를 보여준 것이다. ◆중동진출 ‘50여년’ 현대건설, 약 170조원 수주 현대건설의 근로자들이 중동에 진출한 지 50여 년이 된 가운데, 같은 기간 한국의 건설사는 해외에서 약 900억 달러(1110조원)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현대건설이 수주한 공사 건은 총 842건이며, 수주 금액은 1361억 달러(약 170조원)다. 2위인 삼성물산(750억 달러, 세계 1위 초고층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 건물건축 등)과 3위인 삼성엔지니어링(716억 달러)의 합친 수주 금액과 비슷하다. 현대건설은 정주영 회장의 창업정신을 잘 이어받아 임직원들이 상부상조하면서 현대건설을 키우는데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또 해외공사 수주 1위 회사인 만큼 적극적인 시장개척(남미지역 국가 건설시장 신규진출 등)으로 해외 수주 누적 금액이 2000억 달러 돌파도 조만간 달성할 것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건설회사가 될 것으로 본다. ◆순발력 발휘해 메카궁전 향해 절한 아산 끝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축공사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나와프 왕자로부터 정식 초청을 받고 국제공항에 도착한 정주영 회장은 사우디 왕자가 보낸 왕자 전용차를 탔다. 최고급 승용차가 왕실로 향하던 오후 3시경 왕자 전용차가 갑자기 도로에 멈췄고, 운전자가 마포와 같은 한국의 멍석과 비슷한 것을 도로에 깔고 메카궁전 방향을 향해 절을 했다. 그 뒤를 쫒아오던 모든 차들도 한순간에 멈췄고, 차에서 내린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일제히 길에 엎드려 메카궁전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순발력을 발휘한 정주영 회장은 그 시간(오후 3시)이 이슬람교도들이 메카궁전을 향해 예배를 올리는 ‘싸라’ 시간임을 알아차리고 얼른 승용차에서 내린 다음 운전자가 깔아둔 멍석으로 가서 메카궁전을 향해 이슬람교도처럼 넙죽 절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깔개도 없이 입은 양복 그대로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정 회장은 아랍인들이 절을 다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절을 올렸다고 한다. 보다 못한 왕자 승용차 운전자가 “고만하고 일어나라”고 강하게 말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절을 올렸다. 절을 나름대로 다 마치고 일어선 정주영 회장의 이마에는 무더위 속에 녹아내린 아스팔트에서 검은 칠이 이마에 묻어나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얼굴이고 목과 팔은 줄줄 흘러내린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틀 후 사우디의 메카궁전에 들어가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국왕이 정주영 회장에게 질문을 했다. 파이잘 국왕이 정 회장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당신은 무슨 종교를 믿으십니까?”라고 한 말이었다. 정 회장은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서 저는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 신은 전지전능하시고 무한 자비한 신이므로 그 신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게 저의 신앙”이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파이잘 국왕이 “그 신이 바로 알라신입니다”라고 말하자 정주영 회장은 “그 신을 가리켜 대한민국에서는 애국가에 나오는 말대로 하나님이라고 하고 중국은 천주님, 서양에서는 여호와라고 합니다”라는 멋진 답변을 했다. 이어 정 회장은 “하지만 저는 그 창조신을 호칭할 만한 단어를 이 땅에서 발견하지 못해 감히 무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이 그 신의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이후 평지에 살던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하늘 꼭대기에 오르려던 교만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영 회장의 대답은 마치 사전에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것처럼 일사천리였다고 한다. ◆鄭회장, ‘타종교 존중심’으로 국왕 신임 얻어 파이잘 국왕은 “당신이 공항에서 왕실로 오는 길에 아랍인들과 똑같이 ‘싸라’ 시간에 메카궁전을 향해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때까지 절을 올렸다는 것을 보고 받았다. 무슨 사유로 절을 했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정주영 회장은 “신의 이름이 다르고 믿는 방법이 다를 뿐 아랍인들이 믿는 알라신이나 제가 믿는 신이나 똑같은 신입니다. 그러니 남들이 자기 신을 경배하는 시간에 그 자리에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은 현지의 알라신을 무시하는 것입니다”라는 멋진 순발력을 보여줬다. 파이잘 국왕은 큰 만족감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한국에서 온 정주영 회장은 남의 나라 종교도 존귀하게 여기는 덕망 있는 귀한 건설 경영자라고 칭찬하면서 정 회장에게 전적인 신임을 실어줬다. 그 이후의 사우디아라비아 주택공사(알코바와 제다지역 및 리야드 공공주택) 관련 건설회사 선정 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주택성 장관이 직접 나서서 현대건설이 높은 입찰가격을 제시했어도 반드시 현대건설에 공사 수주를 주라고 지시했다. 당시 총공사액으로 무려 12억 달러나 되는 큰 주택공사로 알려졌다. 정주영 회장의 종교는 무신교 혹은 개신교라고 알려졌다. 그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면 신도들과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했으며, 절에 가서는 부처님 앞에 겸허한 태도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백팔번뇌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주영 회장은 모든 업무에 어려움이 닥쳐와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을 추진하면 어느 순간에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또 모든 사업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 빠르게 하면서 언제든지 미래에 대해 항상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사업을 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 외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작금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국내 물가 및 기름값이 거의 2배까지 상승한 것을 봐도 정주영 회장의 명확한 예견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리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유명한 말의 자서전을 남기고 “개천에서 용이 된” 정주영 회장을 다시 한번 더 회고한다. 끝으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고인이 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누구보다도 강한 배짱과 뚝심, 순간적인 상황에 여유롭게 대처하는 재치와 유모를 겸비한 정신을 가진 위대한 사업가 ‘정주영’이라는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아호가 ‘아산’인 그를 21세기를 풍족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평생 마음속 깊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정리 = 유영선 기자)

[현대이야기<10>] 오일쇼크 위기를 기회로… 중동서 달러 벌어들인 아산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0> 중동진출의 드라마 쓴 정주영 오일쇼크로 韓 ‘경제적 타격’ 위기 박정희, 중동진출 모색 적극 지시 정주영 “중동은 건설 최적의 지역” 朴 “鄭의 생각은 비상하고 위대해” 위기를 넘어 극적인 반전의 입찰 당시 ‘수주액’ 정부예산 1/4 수준 박정희 대통령의 3공화국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착실한 시행으로 대한민국은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과 비교되는 ‘한강의 기적’이란 수식어를 달면서 매년 20% 이상의 고도성장을 해갔다. 이런 가운데 갑자기 1973년 10월 6일 중동지역에서 ‘제4차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 아메드 자키 야마니(1962~1896년 장관)가 주도한 아랍산유국(참여국가: 리비아, 이라크, 이란, 시리아, 튀니지)들은 석유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해 갑자기 석유 공급가를 4배(1배럴당 2.9달러였던 원가를 한 달 만에 14.5달러로 인상)이상 인상하는 조치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아랍지역 산유국은 국제적인 정치력을 높이고,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서방국가들에 압박을 가하며 미국 중심의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벗어나 친아랍 중동 정책(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 철수 권고 등)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회장에 중동건설 지시 OPEC(Organization of the Petroieum Exporting Countries: 석유수출국기구)는 국제석유자본이 독점하고 있던 원유가격의 결정권을 자연스럽게 장악하게 됐으며, 석유의 정치적 무기화 및 자원민족주의(Resource Nationalism)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석유수입국인 서방 측 선진국들은 석유의 대외의존도에 유래하는 경제적인 취약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안전보장상의 문제로까지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오일쇼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지속된 세계적인 고도성장을 종식하고 정전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를 맞게 했다. 또한 재생산이 불가능한 자원의 제약이라는 환경문제를 강하게 인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1979년 산유국 이란에서 혁명이 발생하면서 석유생산이 감산되며 석유 가격의 폭등도 발생했다.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대한민국은 이런 오일쇼크로 적지 않은 경제적인 타격을 받으며 두 자릿수 경제성장이 한 자릿수 이하로 내려가는 경제위기를 맞게 된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오일머니로 달러가 넘쳐나는 중동의 아랍국가들이 오일머니를 사용하기에 척박한 환경이지만 국가의 변화를 위한 인프라건설에 적극적인 투자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국내 건설사 대표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중동진출 방향을 찾아보라고 적극적으로 지시했다. 하지만 중동 현지를 답사하고 온 건설사와 관리들은 그곳의 무더운 날씨와 척박한 환경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동지역 건설시장 진출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박 대통령은 평소 상호 간에 맘보가 딱 들어맞는 정주영 회장을 1975년 여름 단독으로 청와대로 호출했다. 박 대통령은 “중동지역 건설에 진출해 오일머니로 달러가 넘쳐나는 중동국가들로부터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현장 답사를 다녀온 건설사들이 일관되게 그곳에서는 일할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역으로 달러를 대한민국으로 유입시켜야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면서 “정주영 회장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유일한 사람”이라며 각오에 찬 강한 어조로 중동지역 건설을 지시했다. ◆“각하,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지시받은 정 회장은 즉시 중동으로 답사차 출장을 가게 됐다. 일주일 만에 귀국해 박정희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난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뚝심과 모든 일은 하기 나름이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각하 저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을 알라신이 돕는 것 같다”고 보고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무슨 엉뚱한 말이냐고 되받아쳤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은 “중동은 이 세계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다. 1년 12달 비가 내리지 않아서 하루도 안 쉬고 공사를 지속할 수 있다.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지천으로 넘쳐나서 자재 조달이 쉽다. 까짓거 한낮에 50도가 넘어가는 날씨 환경은 더운 낮에 근로자들에게 천막에서 잠을 재우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밤에 횃불이라도 켜서 일을 하면 능률도 오르고 한국인들 특유의 신바람 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또 정 회장은 “모래바람과 싸워서 이겨낼 자신도 있고 부족한 물은 바닷물을 정수해 민물처럼 마시면 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부족하면 오일을 가득 싣고 대한민국에 오일을 팔면서 떼돈을 번 아랍국가의 유조선이 빈 탱크로 중동으로 가게 된다”며 “탱크를 청소하고 한국산 물을 가득 싣고 무상으로 중동으로 보내면 수십만명의 근로자들이 1년 이상 먹고 마실 물이 된다”고 역설했다. 이 말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역시 “정주영 회장의 생각은 비상하고 위대하다”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당장 중동시장 건설업에 진출해 달러를 벌어오라고 말하고 건설부 장관에게 현대건설이 중동에 진출하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소스를 총동원해서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드라마틱한 주베일 항만공사 입찰 그리고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시 20세기 최대의 공사로 불리어지는 주베일 산업항 공사의 입찰이 있었다. 현대건설로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써 내려가듯 아주 드라마틱한 입찰 결과를 가져왔다. 그해 7월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최소금액 기준으로 약 10억 달러 규모의 항만 공사를 계획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이미 서구의 대형 건설사들이 몇 년 전부터 입찰을 준비해온 시점이라서 다들 준비과정도 이미 늦었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지금 시작해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가 대한민국이 해외에서 대형 프로젝트도 수주하고 오일머니로 번 중동국가들의 달러를 한국으로 유입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서 정 회장은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 전쟁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현대건설의 목표는 이 대형 수주전에서 승리하는 것뿐”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말은 나에게는 없다.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안 보이는 길도 보이게 된다. 즉 길이 없다면 뚫고 나가다 보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된다”라는 정 회장의 긍정적인 신조를 엿볼 수 있다. 정 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현대건설의 사운을 걸다시피 전력을 다해 주베일 산업항 공사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입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입찰 예정 10여개 업체 중 9개 회사를 선정해 놓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뒤늦게나마 입찰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됐다. 당시 입찰보증금이 공사 예정액의 2%나 됐기에 현대건설은 입찰에 참여하려면 2000만 달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돈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몰라서 자금 담당 임원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당시 현대건설은 그만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건설에 알라신의 도움인지 모르나 행운이 계속 따라주게 됐다.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 관계로 거래 중이던 바레인 국립은행에 입찰보증금 지원을 요청했는데 극적으로 입찰 마감 나흘 전에 지급보증을 해주게 되면서 현대건설은 기사회생을 했다. 현대건설이 주베일 산업항 건설을 위해 2640만 달러 한도 내에서 무조건 지급보증을 받아야 했는데, 바레인 은행이 이를 해결해 줌으로써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한 것이다. 입찰 수주전은 전쟁하는 듯 상호 간에 숨 막히는 암투의 현장 전이었다. 현대건설을 포함한 세계 굴지의 10대 건설회사(미국의 브라운 앤 루트, 산타폐, 레이몬드 인터내셔날, 영국의 코스테인 타막, 서독의 보스, 네델란드 스티브, 프랑스 스피베타놀 등)들이 모두 참여했다. 또한 어느 회사가 얼마를 입찰가로 적어 넣는지가 최대의 관심사로써, 이것은 극비에 붙여졌기 때문에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졌고 입찰 당사자들 사이엔 극도의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처음에 공사액을 15억 달러로 예상했지만, 너무 금액이 많다고 판단해서 12억 달러 정도로 낮췄다. 그러다가 정 회장은 반드시 공사 수주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자 약 9억 달러 이하라도 적자입찰이 아니라는 다소 무모하지만, 저돌적이고 파격적인 가격으로 입찰하겠다고 1차 판단했다. 그런데 9억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너무 억울하다고 당시 현대건설의 전갑원 입찰 담당 상무는 정주영 회장의 최종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우리 현대건설은 반드시 이번 입찰에 성공해야 해. 입찰에서 2등은 꼴찌나 마찬가지라고. 8억 7000만 달러라도 현대건설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고집했다. ◆지옥→천국 오간 전갑원 상무의 선택 드디어 1976년 2월 16일 마침내 현대건설의 운명이 걸린 입찰의 순간이 다가오자 정주영 회장이 지시한 입찰가에 이의를 제기했던 전갑원 상무가 현대건설을 대표해 입찰실로 입장했다. 그런데 입찰을 마치고 나온 전갑원 상무는 죄인 같은 표정으로 정주영 회장에게 보고했다. 전 상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8억 7000만 달러는 너무 싼 금액 같아서 9억 3114만 달러로 변경해서 써넣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정 회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고 말았다. 사실은 ‘현대가 떨어지면 어찌하나’ 하고 속이 쓰린 상황이지만, 정 회장은 불같이 화를 내지 않고 “전 상무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 입찰 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는 호텔에 가서 푹 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어젯밤 꿈속에 부모님 얼굴이 오랜만에 보였다”며 “아마도 알라신이 우리를 돕는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대범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줬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입찰 결과를 조용히 호텔에서 쉬면서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현대건설 손을 안 들어 줬는지 미국 건설사가 적어낸 9억 444만 달러에 공사가 낙찰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입찰에 임했던 현대건설 전갑원 상무의 얼굴은 사색이 돼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상황이 연출됐다. 정주영 회장이 지시한 8억 7000만 달러로 적어 넣었다면 현대건설로 낙찰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늘도 현대건설을 도왔는지 나중에 확인해 보니 미국 건설사가 써넣은 투찰액은 유조선 정박시절 부문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는 9억 3114만 달러를 써넣은 현대건설의 손을 들어 주면서 부연설명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측은 “현대건설의 모든 서류는 완벽했다”며 “특히 44개월의 공사기간을 조건없이 8개월 단축하겠다는 제의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낙찰의 사유였다. 정 회장의 지시를 어기고 9억 3114만 달러를 적어서 낸 고집불통의 전갑원 상무는 한순간에 전화위복 돼 현대건설의 영웅이 됐고, 정주영 회장이 제시한 금액과 비교해 약 6114만 달러를 더 벌게 해줬다. 이 금액은 당시 대한민국 정부예산의 4분에 1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숫자로서 한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리 = 유영선 기자)

[비즈라이프-건설] ‘도시정비사업’ 뛰어든 건설업계들… 왕좌 노린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건설업계에서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도시정비사업’을 들 수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100일 내로 ‘250만호+α’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고, 서울 도심 내 주택공급을 위해 정비사업의 걸림돌로 꼽혔던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등 제도를 손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은 정비사업 이슈에 대해 모아봤다. ◆현대건설, 창사 최초 도정사업 ‘7兆 수주’ 목전 현대건설이 산본 무궁화주공1단지 리모델링사업과 부산 서금사6구역 재개발사업을 연이어 수주하며, 올해 도시정비 수주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수주로 현대건설은 6개월 만에 누적 수주액 6조 9544억원을 달성하며, 창사 이래 최초로 도시정비사업부문 ‘7조 클럽’ 달성을 기정사실화 했다. 현대건설은 연초부터 대어급 사업지를 연달아 수주하며 빠른 수주고를 올려 상반기만에 7조원 수주 달성을 앞두고 있다. 또 하반기에 예정된 대규모 도시정비사업 입찰 참여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어 4년 연속 업계 1위 달성은 물론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최고기록 경신을 목표하고 있다. 먼저 산본 무궁화주공1단지 리모델링 사업을 보면 해당 단지는 경기도 군포시 산본로 296 일원 공동주택 1329세대 규모의 노후 단지다. 현대건설은 수평․별동 증축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 지하 4층, 지상 25층(신축부 25층, 기존주동 16층) 공동주택 1444규모로, 세대당 16.5~26.4㎡ 늘어난 69.4~122.3㎡의 중형평형 단지로 탈바꿈 될 예정이다. 또 부산 서금사6구역 재개발 사업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서동 302-1204번지 일원 13만7429㎡ 부지에 지하 4층, 지상 40층 규모의 공동주택 2615세대와 부대복리시설을 신축하는 사업이다. 지난 주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조기에 경신하며 저력을 보여준 현대건설은 ▲대구 봉덕1동 우리재개발 ▲이촌 강촌 리모델링 ▲대전 장대B구역 재개발 ▲강동 선사현대 리모델링 ▲과천 주공8․9단지 재건축 ▲광주 광천동 재개발 사업 ▲대전 도마․변동5구역 재개발 ▲이문4구역 재개발에 이어 ▲산본 무궁화주공1단지 리모델링 사업 ▲부산 서금사6구역 재개발사업까지 연이어 수주하며 누적 수주액 6조 9544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초로 도시정비사업부문 ‘7조 클럽’ 달성을 기정사실화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업계 최초 3년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도시정비 선도기업의 입지를 다졌고 올해도 하반기에 예정된 사업지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서 조합원들의 사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선택에 보답하고 내년에도 주요 랜드마크 등 현대건설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곳에는 언제든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GS건설, 도시정비 ‘3兆’에 리모델링 연구소까지 GS건설이 최근 부산 부곡2구역 재개발 사업을 수주하며 도시정비 올해 수주액 3조원을 돌파했다. 또 국내 건설사 최초로 리모델링 연구 조직을 만들어 아파트 리모델링 기술 개발에도 나섰다. GS건설은 지난 6월 26일 열린 부산 부곡2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선정 총회에서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금정구 부곡동 279 일대를 재개발해 지하 2층~지상 35층 아파트 19개 동 2008세대로 탈바꿈하는 사업으로 공사금액은 6438억원이다. 앞서 지난 1월 6224억원 규모의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이촌한강맨션 재건축사업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어 부산 구서5구역, 불광5구역, 광주 산수3구역 등 전국 각지에서 총 8건의 도시정비 사업을 수주하며, 총 3조 2107억원이라는 수주액을 기록하게 됐다. GS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5조원이 넘는 도시정비 수주액을 기록하며, 도시정비 강자로서 입지를 한번 더 확인했다”며 “올 상반기에만 벌써 3조의 수주액을 달성하게 됐는데, 하반기에도 순수 도시정비사업 외 리모델링 사업까지 적극적으로 수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GS건설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리모델링Lab’을 신설해 선제적인 기술·공법 검토와 요소기술 연구 및 성능 검증을 통해 리모델링 사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재건축보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아파트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공사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건물 구조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고 고객의 주거성능 확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GS건설의 ‘리모델링Lab’은 리모델링의 설계 단계부터 현장 여건과 기존 건물의 구조안전성 및 시공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사전 기술 검토를 바탕으로 리모델링에 최적화된 공법을 개발해 구조 안전성과 주거성능 확보 문제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철거와 보강공사를 하는 리모델링의 특성상 시공전 사전 기술 검토는 리모델링의 사업성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다. GS건설은 리모델링Lab을 통해 사전 기술검토 지원과 최적화 공법을 제안함으로써 추후 사업 추진 시 불필요한 설계변경을 줄여 공사비 증액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수직증축, 철거안전성 및 주거성능 확보 등 리모델링 관련 요소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구 및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DL이앤씨, 정비사업 1兆 돌파… “수익성 사업 집중” DL이앤씨가 올해 상반기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 1조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DL이앤씨는 지난달 4일 대우건설과 함께 총 사업비 7255억원 규모의 ‘대전 도마 변동13구역 재개발 사업’을 수주했다. DL이앤씨 지분은 45%로, 수주금액은 3265억원이다. 이 사업은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317-139번지 일대에 공동주택(지하 3층~지상 32층, 총 25개동) 2715세대 및 부대복리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오는 2026년 7월 착공에 들어가 2029년 9월 준공 예정이다. 이번 수주로 DL이앤씨의 올해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은 총 1조 2,543억원을 기록하며 5개월 만에 1조원을 돌파하게 됐다. 앞서 DL이앤씨는 지난 1월 서울 금천구 시흥동 109-1번지 일대에 위치한 ‘남서울 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사업’ 시공사로 선정되며 도시정비사업 시장에서 기지개를 켰다. 이 사업의 수주액은 2444억원 규모다. 이어 지난 2월 도급액이 6183억원에 달하는 ‘대구 수성1지구 재개발 사업’을 따냈다. 지난달에는 651억원 규모의 ‘서울 영등포 당산 현대2차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확보하며 분위기를 탔다. DL이앤씨 관계자는 “건설 업계에서 가장 탄탄한 재무건전성을 바탕으로 수익성이 담보되는 도시정비사업 수주에 꾸준히 나설 계획”이라며 “도시정비사업뿐만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인근의 개발 가능 부지를 발굴해 디벨로퍼 사업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DL이앤씨는 옛 대림산업의 건설사업부다. 지난해 1월 1일부로 지주사 DL을 중심으로 체제를 전환하면서 건설 부문 인적 분할 과정을 통해 설립됐다. 마창민 대표는 기업분할 당시 초대 수장으로 낙점된 바 있다. 마 대표는 취임 첫해인 2021년 목표했던 영업이익을 초과 달성할 가운데 신사업을 확장하며 디벨로퍼로 도약하기 위해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답게 DL이앤씨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드림하우스’가 대표적이다. DL이앤씨는 마 대표의 리더십에 힘입어 도시정비사업에서 수주를 늘려가고 있으며 작년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은 3조 816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포스코건설, 압도적 역량으로 리모델링 업계 선도 각종 규제로 재건축사업이 더뎌진 오늘날 상대적으로 빠른 추진이 가능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단지들이 점점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은 주요 골조를 유지하면서도 구조, 기능, 미관, 거주 환경의 개선을 위해 건축물을 개량하거나 새로운 성능을 추가 또는 변경하는 사업이다. 특히 아파트 리모델링 분야에서 국내 건설사 중 포스코건설의 선전이 돋보인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2014년부터 지금까지 총 25개 단지, 약 4조 6000억원을 수주해 업계 최다 수주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송파 가락쌍용 1차(2085억원), 수원 삼성태영(2858억원), 용인 수지동부(1778억원), 용인 광교상현마을 현대아파트(1927억원)에 이어 신도림 우성 3·5차에 이어 산본개나리 13단지까지 수주함으로써 공사금액 기준 총 1조 3923억원의 수주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성복역 리버파크아파트(2385억원)를 수주했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2014년 2월 국토교통부 산하 그린리모델링 창조센터에서 주관하는 ‘그린리모델링 예비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선정에 따라 건축주는 그린리모델링 사업자로 선정된 회사와 사업을 하게 되면 금융혜택의 장점이 있다. 층간소음 기술 개발에도 포스코건설의 노력이 엿보인다. 지난해 3월 석·박사급 전문인력 16명이 참여하는 ‘층간소음 해결 TF’를 신설해 리모델링의 분야에서 층간소음을 저감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올해 초부터 ‘1기 신도시 수주 추진반’을 신설해 분당, 일산, 평촌 등 입주 30년이 도래하는 1기 신도시에서 추진되는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영업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더샵 브랜드가 리모델링 사업분야에서도 대표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축적한 설계·시공기술력과 재무건전성을 바탕으로 고객의 신뢰를 구축하고 리모델링 시장을 선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대형건설사들의 리모델링 사업 수주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리모델링사업의 특성상 시공사의 역량과 수행경험이 사업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만큼 서울, 수도권지역을 중심으로 포스코건설만의 차별화된 역량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현대이야기<9>] ‘우리 자원으로 짓자’ 추진력·뚝심으로 소양강댐 건설신화 쓰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9> 아산 정주영 회장과 소양강댐 박정희, 댐 건설 경제발전 초석 인식 소양강댐 건설에 4122만 달러 투입 日공영, 콘크리트 중력댐 건설 제안 鄭회장, 소양강 주변 일주일간 관찰 콘크리트에서 사력식으로 변경 주장 공사비 절감하고 공사기간 단축시켜 댐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 최초의 댐 건설은 기원전 2900년 전 이집트 나일강에서 높이 l5m, 길이 100m로 만들어진 석조댐으로 알려지며, 현재까지 사용 중인 가장 오래된 댐은 기원전 1300년경 시리아에 건설된 사력댐이다. 동양에서는 중국 은나라 시절 쓰찬성에 기원전 3세기경 댐이 만들어져서 당시 시대상인 농경사회에 물을 적절하게 이용한 농사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왜냐하면 쓰찬성 산에 눈이 녹으면서 녹은 물이 홍수를 일으켜 그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설계됐다고 한다. 유럽지역은 1594년 스페인 알라칸데 디버댐이 최초이며, 19세기 이후 전 세계 국가는 농업과 공업용수에 필요한 다목적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사례로서 1850년대 스코틀랜드 토목기술자 월리엄 J.M 랭컨의 기술로 토목공학의 방향이 기본기술이 돼 이후 100년간 뉴턴, 라이프니츠, 후크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발전으로부터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 현대식 댐 건설의 토대가 됐다. ◆세계 최대 규모 수력발전 댐 中 ‘싼샤댐’ 지금은 북한지역이지만 1941년 압록강 본류에 일본인들이 건설한 중력식 콘크리트 댐인 수풍댐은 높이 106m, 총저수량 112억t, 발전출력 70만㎾로 이는 댐 건설기술과 규모에서 당시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댐으로 기록됐다. 미국은 남서부 콜로라도강 유역의 종합개발을 위해 건설된 높이 221m, 기저부 너비 200m, 저수량 320억t의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댐이 유명하다. 이 댐은 1936년에 완공됐으며, ‘볼더댐’이라 불리어지다 미국 제 31대 대통령 후버를 기념해서 ‘후버댐’으로 변경됐다. 중국 동부와 서부를 연결시키는 양쯔강 지역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댐인 싼샤댐은 1994년 착공돼 2009년에 완공시킨 높이 185m, 길이 2335m, 넓이 135m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댐은 김제 벽골제로 알려졌으며, 백제 11대 비류왕 27년(서기 330년)에 4.3m의 높이에 둑의 길이 1800보(3240m)로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이는 대규모의 토목공사였다. 수준 측량의 정밀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처음 축조됐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이런 기술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둑 건축의 주춧돌 역할을 한 것으로 필자는 판단되며, 일본 나라현에 가면 ‘백제지’라는 호칭을 아직도 사용 중이다. 이 둑은 통일신라 원성왕 6년(서기 790년) 중축 이후 11세기 초 고려 현종, 12세기 인종, 15세기 초 조선 태종을 포함해 4차례 개축했으며, 세종 2년(서기 1420년)에 홍수로 무너졌다. 1925년 동진수리조합이 농지관개용 간선수로를 설치하는 과정에 일부 훼손됐으나, 1975년에 재복원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현재는 둑의 길이는 2.53㎞로 확인됐고, 둑의 길이가 북으로 김제 장화동에서 남으로 월승리 사이 3.8㎞에 달해 이곳이 수문지임을 증명하는 석주가 아직도 남아있다. ◆‘육사 출신’ 박정희, 댐 관련 해박한 지식 보유 소양강댐 건설을 지시한 박정희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의 포병장교 출신으로 댐 건설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보유했다. 1960년대 한국은 미세하지만 경공업의 걸음마를 시작한 시대로 아직은 농경 중심의 사회로서 벼농사가 풍작이냐 흉작이냐가 우리 경제에 큰 이슈가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한국지형상 여름철 장마가 내리면 서울지역인 뚝섬, 잠원동, 압구정동, 잠실지역은 해마다 홍수로 인해 배수가 안 되고 주변지역의 주택들이 50% 이상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반복됐다. 오죽하면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이 수재민들을 돕자고 수재민 구호기금을 십시일반 작은 쌈짓돈을 걷어서 국가에 헌납했으며, 공무원과 직업군인들을 포함 일반회사원들도 급여에서 자발적으로 성금을 걷어서 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국토개발이 시작됐고, 이와 더불어 수자원개발이 국토개발의 중심사업으로 추진됐다. 반복되는 수해와 한해의 악순환을 막고 수력발전을 통한 전기 공급, 생활용수, 공업용수, 양어, 하천유지용수, 관광업, 수상운송 등 수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한 다목적댐 건설의 중요성이 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지는 사업이라고 박정희 대통령은 판단했다. ◆鄭회장, 건설부에 설계변경 강력 제안 섬진강댐과 남강댐이 1965년과 1970년에 각각 완공됐다. 이후 1972년 10월 높이 123m, 만수위 198m, 제방길이 530m, 총 가용 저수량 29억t에 이르는 당시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이며, 현재도 세계 5위권 사력댐 소양강댐을 우리의 기술로 현대건설이 단독으로 건설했다. 수도권지역의 홍수방지 및 12억t의 수돗물공급과 연간 353GWh의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지역을 포함 농촌지역에 전기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주게 됐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국교 정상화 협정체결로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받은 박정희 정권은 이 자금을 이용해 춘천시 북쪽에 위치한 곳에 소양강댐을 건축하라고 지시했다. 2억 달러의 차관 중 20.6%인 4122만 달러가 소양강댐 건설에 투입됐다. 1965년 11월 건설부는 일본 정부가 자금을 내어서 만드는 댐이므로 설계사인 일본공영과 소양강댐 기술조사 및 설계용역을 체결했다. 당시 일본공영은 콘크리트 중력식 122m 높이의 댐이 무난하다고 제안했다. 콘크리트 중력댐은 건설기간 중 돌발 사태에 안전을 기할 수 있고, 댐 완공 전에라도 수력발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있으며, 국산 시멘트 사용은 국가 경제에 호경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시공사로 결정된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은 건설 예정인 소양강 주변을 일주일간 치밀하게 살펴본 후 건설부에 사력식이면 총 공사비 203억 규모에서 약 34억원의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으며, 건설 공기도 5년에서 4년으로 1년 단축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설계변경을 제안했다. 또 정 회장은 콘크리트 방식의 중력댐은 한국의 철근(일본에서 100% 수입), 시멘트 등 건설자재 생산능력의 부족과 자재 수송비와 건설기자재, 장비를 일본에서 들여와서 사용함으로서 댐 건설 자금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재유출되는 등으로 막대한 건설비가 소요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鄭회장의 뚝심에 朴대통령 ‘사력식’ 변경 지시 그리고 정 회장은 콘크리트 댐은 적의 폭탄에 공격을 당하면 구조가 파괴되지만, 사력식 댐(모레와 자갈, 흙 등으로 건설)은 그러한 충격에 강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당시 6.25 전쟁이 발생한 지 10여년 밖에 안 되던 시기이므로 전쟁이 발생되면 이런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정주영 회장의 강력한 제안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여 중력식 댐에서 사력식 댐(현장에 널려 있는 바위, 자갈과 모래 사용으로 건설비 절감 가능)으로 변경해 건설하라고 최종적인 지시를 1968년 8월 중반에 한다. 당시 에피소드로 인기작이던 ‘나바론요새’라는 영화수입 방영에 현대건설은 적극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전쟁 시 폭탄에 약한 콘크리트 방식의 약점을 직·간접적으로 국민들에게 홍보도 했다. 1967년에 착공에 들어간 소양강댐의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정주영 회장의 저돌적인 뚝심으로 무장하고 댐 건설에 매진해 밤에는 횃불과 자동차 라이트를 사용해서 쉴 틈 없이 밤샘공사 끝에 1972년 10월에 공기를 단축하며 완공했다. 건설 완공 시 현장에 도착해 테이프커팅을 한 박정희 대통령은 대만족을 하면서 현대건설의 근로자들과 현장책임자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소양강댐은 가능한 최대한의 물을 댐에 가둬 놓아 홍수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었으며, 홍수 시 부득이하게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는 시설인 여수로에는 총 9개의 수문이 장착됐다. 또한 댐 건설로 인해 춘천시 북산면과 동면, 양구군 양구읍과 남면, 인제군 남면일대의 4600여 세대가 고향을 떠나 타지역으로 이주해 살게 됐고, 약 2700ha의 논과 밭이 수몰되기도 했다. 끝으로 소양강댐은 매우 중요한 국가중요시설로서 웬만한 폭탄과 미사일의 공격에도 방호가 가능하고 ‘가급’ 국가중요시설이라 무기고와 경비인력들도 배치돼 있다. 육군 제2군단에서도 소양강댐에 대한 방호훈련도 틈틈이 실시하고 있다. (정리 = 유영선)

[집중분석-5G①] 28㎓ 정책 두고 과기부와 통신사 ‘동상이몽’

정부와 이동통신사가 ‘LTE의 20배 빠른 5G’를 상용화하겠다고 홍보한 지 어느덧 4년 차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가 세운 정책대로 해당 서비스를 구현하는 게 시장 환경상 불가능해지면서 정책 자체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소비자들은 과대광고에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주파수 재할당이 다가오는 시점에 정부와 업계, 소비자의 측면에서 5G를 집중 조명해본다. 3사, 5G 28㎓ 수요 없어 손상차손 처리 투자 대비 효율성 떨어져 사실상 포기 정부, 심폐소생 나섰지만 통신사는 ‘글쎄’ 28㎓ 기술·장비 개발한 삼성도 ‘난감’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정부와 이동통신 3사가 ‘진짜 5G(LTE의 20배 빠른 5G)’라 불리는 28㎓ 대역 5G를 지하철에 깔고 있지만 28㎓ 정책 방향성에 대한 의문이 업계 안팎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적인 상용화는 물 건너간 분위기지만 지하철에만이라도 구축하라고 사업자들에게 독려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해당 기술의 ‘실질적인 쓸모’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통신사는 이미 손 털었지만 정부는 수습 중 5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5G 28㎓ 투자 비용에 대해 회계상 손상차손 처리했다. 이는 이미 손실을 봤고 사업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더는 투자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다. 28㎓는 이론상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장점이 있어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기지국을 구축해야 하는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투자 비용이 크게 든다는 부담이 있었다. 또한 28㎓를 활용해 소비할 콘텐츠도 부족하고 이를 인식할 단말기도 국내에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초 전국적인 상용화를 목표로 3사에 기지국 구축 의무가 부과됐지만 차츰 정부도 정책을 선회했다. 최기영·임혜숙 전(前) 과기정통부 장관은 해당 주파수가 ‘전국망에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를 국정감사장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이후 ▲농어촌 공동망 구축 허용 ▲지하철 와이파이 구축 ▲통신사 외 사업자에게도 5G 28㎓ 주파수를 할당해주는 정책이 신설됐다. 하지만 5G가 상용화된 지 4년 차인 현재 여전히 시장 환경과 동 떨어진 추진 상황에 주파수 재할당을 앞두고 5G 28㎓ 정책 방향이 이대로 가도 괜찮은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과기부, 활용 사례 찾아 ‘꺼진 불씨 살리기’ 3사가 투자 의지를 잃자 과기정통부는 수습에 나섰다. 그래서 나온 것이 ‘5G 특화망(이음5G)’이다. 3사 외에도 28㎓ 주파수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정책으로 혁신 서비스를 발굴하고 수익성이 있다는 걸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주최한 5G 28㎓ 정책 방향 토론회에서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미국의 통신사 버라이즌을 언급하며 미국과 일본의 상용화 현황을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라본 바 있다. 어느 나라도 28㎓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기술이 발전하면 그에 맞는 서비스도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반면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발제자로 나섰던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은 한국보다 먼저 28㎓ 대역에 투자를 진행한 미국과 일본 역시 해당 대역에 대한 투자가 부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 상태로 투자를 독려하기보다는 ‘전국망’이 아닌 ‘공간망’으로 정의하거나 특화망으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정책 방향 전환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신 업계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땅이 넓어서 주파수의 특성상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우리나라보다 상용화가 유리한 편인데도 사실상 28㎓를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통신사들은 다른 망 사업자가 생기는 걸 반기지 않지만 28㎓ 대역 주파수만큼은 정부가 다른 사업자에게 나눠준다고 해도 반발하지 않았다. 수익성이 없다는 걸 확인한 상태고 만약 다른 사업자가 하는 걸 보고 수익성이 확인되면 뒤늦게 들어가도 괜찮다는 판단에서다. 과기정통부는 이음5G를 기반으로 한 융합서비스 확산 실증사업에 착수했다. 이음5G 인프라를 활용해 의료, 물류, 에너지,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 서비스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공공의료, 물류, 에너지 등 공공부문 실증에 총 400억원이, 민간부분 실증에는 80억원이 투입된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28㎓를 놓치 못하는 사업자도 있다. 바로 28㎓ 장비에 경쟁력을 가진 삼성전자다. 5G 처음 도입 시 3.5㎓와 28㎓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화웨이는 3.5㎓에, 삼성전자는 28㎓에 집중 투자했다.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을 거쳐 28㎓ 장비를 만들어냈지만 통신사들의 수요가 없어져 판매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현대이야기<8>] 박정희·정주영의 합작품 ‘경부고속도로’ 2년 5개월 만에 ‘초고속’ 건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박정희 대통령, 1961년 美 방문시 미국 전역에 놓인 고속도로에 놀라 대한민국 고속도로 건설의 ‘시발점’ 朴대통령, 정 회장 불러 직접 지시 “고속도로 건설 가능한 유일한 회사” 공사로 총 77명의 고귀한 목숨 잃어 한반도의 대동맥과 핏줄(젖줄)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고속도로는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 후 정권을 잡고 1961년 11월 11일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이 성사돼 공화당 당의장 자격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하면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전역에 놓인 고속도로를 보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언젠가 대한민국도 경제발전을 하면 미국처럼 산업화의 기본 인프라인 고속도로를 반드시 대한민국 전역에 건설하겠다고 판단을 한 게 시발점이었다. 그 후 1963년 10월 15일 합법적인 선거로 3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 정부의 국빈자격으로 초청을 받아서 1964년 12월 6일 국가원수로서 최초로 9박 10일간 서독 방문길에 올랐다. 그 시점에 대한민국은 대통령 전용비행기가 없었다. 서독 정부는 우리나라에 전세기(루프트한자 소속)를 보내줬고, 박 대통령은 그것을 타고 어렵게 서독에 갈 수 있었다. ◆서독 아우토반 보고 고속도로 구상 착수 당시 서독으로부터 차관(4000만 달러)을 빌리러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는 방직공장 정도만 가동하던 비참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절박한 마음으로 하인리치 뤼프케 서독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대한민국은 당시 산업화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외화벌이용으로 꽃다운 20대 초반의 미혼 간호사를 모집해 서독 병원으로 파견했고, 직업이 없어서 백수로 지내는 대학을 졸업한 우수 청년들을 서독 탄광의 광부로 파견해 외화를 벌었다. 그래도 부족한 외화는 월남전을 통해 벌어들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월남에서 전쟁이 발생하자 미국의 요청으로 군대(맹호, 백마, 청룡, 비들기부대 등)를 1965년 월남전선으로 파견했다. 극단적으로 보면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미국 달러로 급여를 받아 한국으로 송금해 외화를 벌어들인 것이다. 서독 방문 당시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빠르게 경제를 발전시키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을 서구에서는 ‘라인강의 기적’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승용차로 달리면서 다시 한 번 고속도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본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대한민국 경제부흥의 시발점인 서울에서 대전, 대구, 울산을 거쳐서 부산에 이르는 고속도로 지도를 직접 그린 일화도 유명한 전설이 됐다. ◆독일 다녀온 뒤 경부고속도로 건설 발표 독일 정부의 직·간접적인 경제 부흥에 대한 아이디어를 획득한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도 독일처럼 ‘한강의 기적’을 이루려면 중화학공업, 조선산업, 자동차산업, 전자산업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구미지역에 전자단지, 울산지역에 중화학(철강산업 포함)과 자동차 단지를 구축하려면 사회간접자본을 확대시켜 대한민국을 수출형 공업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는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 꼬박 걸리는 물류시스템을 반나절로 줄이고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편하는데 주요 역할을 하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 방문 시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서 눈물을 흘리면서 반드시 한국의 경제를 개발시키고 대한민국도 독일처럼 잘사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약속대로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화의 산업기반을 구축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행으로 혁혁한 성과를 냈다. 방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한 명연설이 아직도 회자된다. 그는 연설에서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서독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서독에 와서 일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연설했다. 그는 연설 말미에 “여러분 난 지금도 몹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을 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다. ◆朴대통령, 정 회장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지시 하지만 당시 일반 국민들과 야당 정치인들은 자동차도 몇 대 안되는 국가에서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한다며 고속도로 건설을 적극 반대했다. 또 그 돈으로 국민들 생활복지 향상 및 공장을 건설하는데 사용하라고 역설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먼 미래를 내다본 안목으로 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했다. 당시 1966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1인당 국민 총생산(GNP)은 142 USD, 수출 3억 2000만 USD로 북한의 절반 수준으로 고속도로보다는 벼농사 기술 개발이 더 시급성을 느끼던 시절이었기에 야당의 반대가 일리는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폐허가 된 남한지역의 복구(한강대교 복구, 고령대교 복구, 소양강댐 건설 등)에 전력을 다한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직접 청와대로 불렀다. 박 대통령은 정 회장에 “임자, 당신만이 태국의 고속도로 건설을 성공리에 완공했으니, 그 경험을 살려 대한민국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해달라”라며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했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현대건설을 경영하던 정주영 회장은 주변의 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축회사로 참여했다. 1968년 2월 1일 한남동에서 첫 삽을 뜨면서 착공에 들어간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수원 간을 1차로 완공했다. 이때 수원시 중동에서 출발해 한남대교를 건너서 서울 중심지인 백병원 부근 저동까지 운행하는 유신고속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생이고 수원에서 살던 필자도 신기해서 수차례 친구 누이가 안내원으로 고속버스에서 근무하던 시절 무료로 버스를 승차하고 처음으로 서울을 왕복으로 오간 기억이 생생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최대 난공사 ‘당재터널’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쉽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부족한 건축자재는 현재 남태령고개 부근에 있던 야산에서 돌산을 캐서 나온 자재를 사용했고, 시멘트는 현대시멘트회사에서 생산한 시멘트를 저렴하게 이용하기도 하면서 지금처럼 콘크리트 방식이 아닌 아스팔트 방식으로 건설했다. 공사기간 중 정주영 회장은 현장 인부들과 같이 야외 숙소에서 숙식하면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사원으로 근무 중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두뇌가 뛰어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모습을 본 정주영 회장은 건설자재 총괄관리 및 현대건설의 중요 임원으로 발탁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최소 나이에 현대건설의 회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하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런 현대건설이 최초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대전에서 경상북도 추풍령 공사구간 중 부득이하게 터널 하나를 뚫어야 하는데 당시 터널공사 경험이 없던 현대건설은 양방향에서 동시에 건설하면서 중간에 만나 개통하는 방식으로 시공을 하게 됐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가는 다른 구간과는 달리 당재터널(현재 옥천터널)은 공사 진행이 더뎠다. 대전과 대구를 연결하려면 반드시 뚫어야 하는 곳이었다. 당재터널 공사 중 낙반 사고로 3명 순직할 정도로 공포의 구간이었다. 이들을 포함해 총 77명의 고귀한 목숨이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 과정에서 희생됐다. 당재터널의 경우 갑자기 수맥이 터져 나와서 무너지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낀 현장 근로자들은 일터를 도망치거나, 퇴직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사를 더 이상 추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계서 가장 저비용으로 최단기간에 건설 현장의 보고를 들은 정주영 회장은 특유의 앞만 보고 가는 돌격 대장처럼 직접 착암기를 들고 당재터널 공사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생명위험을 감지하면서도 터널안의 단단한 돌덩어리 등을 제거해 나갔다. 현대건설 오너인 정 회장이 직접 나서자 작업자들은 위험하다고 공사를 피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강조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면서 똘똘 뭉쳐 공사를 강행했다. 그 결과 당재터널이 뚫렸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최대 위기를 넘겼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70년 7월 7일 전장 429km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부산 간을 4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게 되면서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가능해졌다. 또한 경부고속도로 공사비는 429억 7300만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싼 비용과 최단기간(2년 5개월)에 고속도로를 건설했으며, 1967년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 국가예산의 23.6%에 달하는 자금이었다. 1966년 말 기준으로 국도 및 지방도로 포장률은 5.6%, 자동차 등록대수는 갑부들의 상징으로 고작 5만대 정도로 알려졌다. 정주영 회장의 현대건설은 경부간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확보된 기술력과 경험을 토대로 중동지역 국가들의 건설에 앞장섰다. 한때 해외에서 벌어들인 오일 달러의 절반을 현대에서 벌어오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 대한민국 산업 현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끝으로 추풍령에 세워진 준공기념탑에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의 길”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휘호가 새겨져 동판에 새겨져 있다. 또한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부득이한 사고로 고인이 된 77명의 근로자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리 = 유영선 기자)

[심층취재-입찰㉘] 삼성전자를 향한 강원도교육청의 ‘러브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디지털 전환(DX)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교육 기관에 ‘1인 1스마트기기’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천지일보는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취재하고 교육청의 편파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심층 보도를 기획했다. 제28보에서는 강원도교육청의 사전 규격에 담긴 의미를 분석해본다. 2차 사업 추진 속 숨겨진 의미 레노버와 中企 다 배제할 ‘묘수’ 협상 계약에 스펙 알박기 더해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강원도교육청이 지난 1차 사업과 달리 400여억원의 큰 예산을 가지고 2차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입찰 방식과 규격을 모두 1차 때와 다르게 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30일 최근 강원도교육청이 올린 사전 규격 공고에 따르면 해당 교육청은 입찰 방식을 ‘다수공급자(MAS) 계약(1차 때)’에서 ‘협상에 의한 입찰’로 변경했으며 스마트기기 중 태블릿PC의 해상도를 2560×1600으로 올렸다. ◆레노버와의 사업에서 얻은 교훈 강원도교육청이 이같이 선택한 이유로는 1차 때 낙찰된 사업자가 레노버(Lenovo)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시 입찰에는 삼성전자, 레노버, 중소기업 포유디지탈이 참여했고 가격 경쟁을 통해 1위로 포유디지탈이 낙찰됐다. 하지만 강원도교육청은 포유디지탈을 규격 미달로 떨어트렸는데 이 과정에서 2위였던 레노버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문제는 사업 수행 과정에서 생겼다. 레노버는 중국의 유명한 전자 대기업이지만 현재 한국 조달 시장에 들어온 레노버는 레노버 본사도, 한국레노버도 아니다.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라는 기업이 대리점 형태의 유통 사업자로서 레노버 제품을 조달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는 레노버의 태블릿PC를 수리할 수 없다. 교육청과 계약 당시 일정 기간의 유·무상 A/S를 약속하지만 사실상 온전히 지킬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한국레노버가 수리할 수 있지만 계약과는 완전 무관하다. 때문에 학교는 제품이 고장 나면 일일이 수리 가능한 곳을 찾아 유상 A/S를 해야 하는데 학생이 하기도, 교사가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에 강원도교육청은 입찰 방식을 가격 경쟁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레노버와 포유디지탈 모두 참여하기 힘든 방식으로 바꿨다. 기존의 입찰이 중소기업에 가장 유리한 구조였다면 이번 계약 방식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삼성전자가 낙찰되는 방식이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1차 때의 경험을 토대로 불편 사항을 개선하고 스마트기기·충전함 보급 및 하자 보수까지 포함하기 위해 계약 방식을 바꿨다”고 말했다. ◆해상도 스펙으로 한층 높인 문턱 강원도교육청은 계약 방식만 바꿨을 뿐 아니라 사업자 간 경쟁도 최소화했다. 해상도를 2560×1600으로 정하면서 삼성전자와 레노버만 참여할 수 있는 규격으로 만든 것이다. 포유디지탈에만 참여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실감형콘텐츠 구동을 위해 그에 맞는 디바이스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해상도를 높게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원도교육청은 지난해 동일한 사업을 진행할 때 2000×1200 스펙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2560×1600 수준의 해상도가 꼭 필요한 게 아닌 셈이다. 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실감형콘텐츠는 1920×1200 해상도에서도 구동되며 초고화질의 몇몇 콘텐츠만 2560×1600이 필요하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만약 실감형콘텐츠 구동을 위해 2560×1600의 해상도가 있어야 한다면 (강원도교육청이) 1차 사업 때 사들인 태블릿PC는 못 쓰게 되는 게 아니냐”며 “그렇다면 전부 2000×1200으로 사업을 진행한 경기도교육청 등은 큰일 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실감형콘텐츠의 99%는 1920×1200에 맞춰져 있다”고 짚었다.

[경제인사이드] “쿠팡 없이 못 살게”… 김범석 ‘혁신’으로 정상 오른 쿠팡 파헤치기

와우 멤버십, 제대로 ‘락인’ 고객 편의 혁신으로 ‘급성장’ 문제는 ESG 리스크와 재정 “판매 창구 증대 노력해야” 김범석, 28일 전 직원 미팅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요즘 플랫폼 기업의 핵심 전략은 ‘구독’이다. 그중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파격적인 전략으로 유료 구독자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나간 쿠팡의 사례를 분석해본다. 쿠팡은 각종 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물류센터 화재’ ‘쿠팡이츠 갑질’ ‘아이템위너 갑질’ ‘리뷰 조작 논란’ 등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국내 이커머스로서 압도적인 입지와 위상을 자랑한다. ◆쿠팡, 빠른 ‘배송문화’ 시대 선도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해 처음으로 쿠팡에 국내 최대 이커머스 지위를 내줬다. 네이버 커머스 거래액은 32조 4000억원이었으나 쿠팡의 연간 거래액은 37조 8000억원으로 추정되면서다. ‘쿠팡’이라는 두 글자를 보면 ‘쿠팡맨’ ‘쿠팡이츠’ ‘로켓배송’ 등 친숙한 연관 키워드까지 떠오를 정도로 쿠팡은 우리 삶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이는 쿠팡의 성공을 이뤄낸 ‘로켓배송’ 서비스부터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와우 멤버십’ 덕이다. 로켓배송은 오늘 주문한 상품을 내일 받아볼 수 있도록 쿠팡이 선도적으로 도입한 배송 전략이다. 로켓배송 상품을 묶어서 1만 9800원 이상 결제하면 무료 배송으로 다음날 바로 받아볼 수 있는데 쿠팡은 이를 통해 초기 시장 장악을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지난 2018년 출시된 와우 멤버십은 월 2900원의 회비만 내면 한 달간 로켓배송의 모든 상품을 하나만 사도 무료배송으로 받아볼 수 있는 혜택을 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30일간 무료 교환 및 반품 서비스도 누릴 수 있다. ‘제품이 나에게 맞을지 걱정할 필요 없이 주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튼 한 번으로 간편하게 반품하라’는 게 취지다. 와우 회원은 신선 식품도 더욱 빠르게 배달받을 수 있다. ‘로켓프레시’는 식재료부터 과일, 베이커리, 아이스크림까지 8500여종에 달하는 다양한 신선 식품을 새벽배송, 당일배송으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오전 10시 이전에 주문하면 당일 오후 6시까지, 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해준다. 주문 최소 금액도 1만 5000원에 불과하다. 직구 상품마저 무료배송이다. 일반회원은 국가별 2만 9800원 미만 구매 시 배송비 2500원을 내야 하지만 와우회원은 구매금액 제한 없이 무료로 배송받는다. 쿠팡은 이 외에도 회원만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쿠팡의 논란 규모를 보면 불매운동까지 일어날 법한 수준이지만 이 같은 쿠팡의 편의성은 가입자 이탈을 막아 왔다. 쿠팡이 싫다고 해서 포기하기엔 ‘바로 다음날 받아보는’ 서비스가 너무나 편리하다는 것이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의 “사람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이 쿠팡의 미션이다”라는 발언이 허언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쿠팡도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해 와우 멤버십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OTT ‘쿠팡플레이’ 등에 업고 질주 2020년에는 와우 멤버십에 혁신적인 서비스를 추가했다. 바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쿠팡플레이’를 회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출시 당시 “볼 게 뭐가 있겠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쿠팡은 부가서비스인 OTT에도 대충 투자하지 않았다. OTT와 콘텐츠가 비대면 추세로 흥행 가도를 달릴 때 그 흐름에 제대로 편승한 결정이었다. 쿠팡플레이는 화제가 된 신동엽, 안영미, 주현영 출연 ‘SNL 코리아’, 김수현과 차승원 주연 ‘어느 날’ 등 독점 오리지널 프로그램부터 무한도전 레전드편,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EPL 토트넘 경기 생중계, 콜드플레이 콘서트, 유아동 영어교육 콘텐츠까지 영화, 드라마, TV 프로그램, 스포츠 생중계, 콘서트,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추가했다. 그 결과 쿠팡플레이는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지난 4월 기준 만 10세 이상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OTT앱 사용량에서 약 321만명으로 넷플릭스, 티빙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락인 효과(고객을 묶어두는 전략)’를 확인한 쿠팡은 이달 월 회비를 4990원으로 인상했다. 무려 70% 이상의 인상률이지만 4990원은 이 모든 혜택을 종합해봤을 때 ‘낼만 하다’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쿠팡의 유료 회원은 지난 1분기 기준 900만명 이상이다. 쿠팡에서 물건을 한 번이라도 산 활성고객 1812만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매달 회비를 내는 유료 가입자라는 뜻이다. 지난 2018년 10월 멤버십 서비스를 런칭하고 2년 반 만에 거둔 성과다. 와우 멤버 유료 회원은 2020년 600만명에서 2년 만에 50% 증가했다. 국내 인터넷 쇼핑 인구(3700만명) 가운데 유료 와우 가입자는 25%에 이른다. 때문에 멤버십 가입자 증가 추이 속에 ‘1000만 유료 멤버십’ 시대를 눈앞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본래의 상품 구매와 관련해 회원 1명이 쓰는 소비 금액 자체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발표에 따르면 와우 회원을 포함한 쿠팡 활성고객의 1인당 구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이상 증가한 283달러(약 34만원)였다. ◆‘급부상’에 뒤따른 문제와 혁신의 이면 다만 이 같은 쿠팡의 혁신에는 노동자들과 하청업체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리뷰 조작 등 서비스와 관련된 논란도 잠잠해질만 하면 나타난다. 배송문화의 혁신으로 평가받는 ‘로켓배송’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있었다는 게 드러난 바 있다. 지난해 발생한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는 같은 해 2월 소방시설 점검에서 277건의 지적을 받았었다. 이 때문에 이 사고가 인재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이템위너’ 제도를 통해 소비자에게 제시된 합리적인 가격에 쿠팡의 ‘갑질’이 숨겨져 있다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조달가보다 낮은 가격 책정으로 공급사의 매출은 늘었지만 과도한 할인으로 쿠팡의 마진이 적어지자 이를 공급사에 손실을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자율적인 경쟁 속에서 출혈 경쟁이 발생하면 매출액·판매수 대비 쿠팡의 마진이 떨어지는 구조인데 이를 공급사가 메우게끔 하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쿠팡과 거래를 해온 A씨는 점층적으로 매출 상승을 달성 중이었다. 그러던 중 작년 동월 대비 예상치 못한 매출의 상승을 이뤘는데 이후 쿠팡 측의 갑질이 더욱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A씨는 “쿠팡은 아이템위너라는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오직 최저가로 대응하고 있다. 그들이 제품을 가져가는 순간 더는 그 제품의 가격에 대해 협력사는 논할 수 없다”며 “그런데 본인들이 따라간 가격으로 인한 손실액을 우리에게 부담하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광고료, 리베이트, 성장장려금이라는 이름으로 마진 손실을 보상하라고 한다”며 “실제로 광고가 집행되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겠다. 이를 따르지 않는 업체는 당장 발주를 하지 않겠다는 엄포도 여러 차례 듣는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쿠팡은 큰 점유율을 가진 플랫폼 중 하나다. 공급사 입장에서는 입점하지 않기엔 너무 손해고 잠자코 있자니 억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논란은 대형마트 등 몸집이 있는 중개사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공급사들이 다양한 판매 창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플랫폼의 독점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며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독점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여러 판매 창구를 마련하는 등 공급사만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재정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멤버십 가격 인상으로 빠른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올해로 창업 12주년을 맞는 쿠팡은 1분기에도 2억 570만 달러(약 2648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오는 28일 쿠팡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상장 후 처음으로 전 직원 앞에 나선다. 전 직원이 대상인 만큼 중요한 발표는 없겠지만 올해 1분기 핵심사업 부문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전 순이익) 흑자를 달성하는데 노력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신사업에 속도를 내줄 것을 주문할 전망이다.

[뉴 스페이스 시대⑪] ‘미완’의 설움 씻은 누리호… 여기서 끝 아니다

국내 순수 기술로 제작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2차 발사가 21일 오후 4시 진행된 지 16여분 만에 정상 궤도에 올라 성능검증위성과 위성모사체를 모두 성공적으로 분리해냈다. 지난해 1차 발사 때 위성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투입하지 못한 설움을 씻어낸 결과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프레스센터에서 누리호 발사 후 최종 브리핑에서 누리호가 성능검증위성을 무사히 궤도에 투입했다며 누리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KARI)이 발사체 비행 정보를 담고 있는 누리호 원격수신정보(텔레메트리)를 초기 분석한 결과 누리호가 목표 궤도(700㎞)에 투입돼 성능검증위성을 성공적으로 분리‧안착시켰음을 확인했다. 남극 세종기지 안테나를 통해 성능검증위성의 초기 지상국 교신을 성공하고 위성의 위치를 확인했으며 22일 오전 3시경부터 대전 항우연 지상국과의 양방향 교신을 실시해 위성의 상태를 세부적으로 확인 중이다. 이번 발사를 통해 우주발사체 누리호 개발이 완료된 만큼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신뢰성 향상을 위해 4차례의 추가적인 반복 발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종호 장관은 정부는 앞으로 누리호 개발의 경험과 기술을 토대로 성능이 향상된 우주발사체 개발을 추진해 우리나라의 위성 발사 능력을 더욱 향상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尹 우주로 가는 길 열렸다 체계적 지원 약속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소식에 이제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우주로 가는 길이 열렸다며 기뻐했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영상회의실에서 TV 생중계를 통해 누리호 발사 성공을 참모들과 지켜본 후 30년간의 지난한 도전의 산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우리 청년들의 꿈과 희망이 우주로 뻗어나갈 것이라며 그동안 애써 주신 우리 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진 여러분, 항우연과 함께 이 과제를 진행해준 많은 기업과 산업체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여러분의 노고에 대해서 국민을 대표해서 치하드린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의 항공우주 산업이 이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국가로서 더욱 우주 강국으로서 발전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며 정부도 제가 공약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항공우주청을 설치해서 항공우주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누리호 발사 외신도 집중 보도 핵심 기술 확보 증명 외신들도 누리호의 성과를조명했다. AP통신은 21일 누리호 발사 전한국의 첫 국산 우주발사체인 누리호가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발사에 성공하면 커지고 있는 한국의 우주 야망을 촉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적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주 기반 감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이 말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한국이 자체 생산한 우주발사체 누리호 두 번째 발사를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항우연이 오는 2027년까지 최소한 네 번의 우주발사체 시험 발사를 더 실시할 계획이라며 누리호는 궁극적으로 한국 위성 기반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6G 통신망을 구축하는 계획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한국이 1톤 이상의 실용 위성 발사에 성공한다면 미국이스라엘중국유럽연합(EU)일본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라고 전했다. ◆누리호 발사 성공, 국민에 큰 희망 됐다 시민들도 손에 땀을 쥐며 누리호 발사 장면을 지켜봤다.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자 이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쟁 등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지만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넘어 다시 도약하리라 믿습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누리호 발사 생중계를 지켜본 박필규(79, 남)씨는 국민에게 큰 희망이 됐다며 본지 취재팀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번 누리호 발사를 지켜보기 위해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점심도 굶고 나온 박씨는 크게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1차 발사 때 센서 고장으로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투입하지 못한 것처럼 혹여나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하늘이 도왔다고 안도하며 말했다. 그러면서 몇 차례 연기돼 계속 걱정했었다. 마침 오늘 기상에 따라 발사하는 데는 크게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날씨가 얼마나 좋냐.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서 정말 하늘이 도와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한 번 성공했으니 이제는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을 해냈다. 과학자들이 정말 대단하다. 이에 따라 북한도 기가 팍 죽을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최민호(38, 대구)씨도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해 발사 성공을 이뤄 가슴 벅차고 더욱 뜻깊은 것 같다며 이제 우리나라도 우주시대를 열었고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열강들과 견줄만한 과학기술력을 갖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용히 시청하던 대학생 고은빛(21, 여)씨도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이 이뤄지면서 국가 경쟁력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제위성 성능 검증만 남았다 남은 건 성능검증위성이 궤도에 자리를 잘 잡고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궤도에 안착한 성능검증위성은한국형발사체 궤도 투입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서 개발된 무게 180㎏, 크기 가로세로 1m 이내의 실험 위성이다. 이번 발사의 첫 번째 목표는 누리호가 우주 공간상에서 얼마만큼 정확하게 위성체를 분리해줄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이는 완벽히 수행됐다. 두 번째 목표는발열 전지, S-BAND 안테나 등 그동안 개발된 우주 핵심 기술들의 부품들을 우주 공간상에서 시험하는 것인데 이를 발사 후 일주일에 걸쳐 확인한다. 성능검증위성은 우주 공간에서 큐브위성을 사출한다. 이를 위해 국내 대학이 개발한 4기의 큐브위성이 탑재된다. 이 위성들은 성능검증위성이 무사히 궤도에 안착한 후 일주일 뒤부터 이틀 간격으로 하나씩 사출된다.조선대학교KAIST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 순으로 큐브위성이 사출된다. 조선대학교는 EO/IR 카메라로 백두산 천지 등 한반도의 지구 관측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의 위성은 우주에서 GPS 신호를 받아서 지구 대기 관측을 수행한다. 연세대학교는 한반도 서해 상공에 있는 미세먼지의 흐름을 관측하기 위한 위성을 발사한다. 위성 안에는 넓은 영역(400㎞400㎞)을 찍는 카메라가 탑재돼 있다. 카이스트(KAIST)의 위성은 초분광 카메라를 통해 지구를 촬영하고 촬영된 이미지 데이터를 지상국으로 송신한다. 4개 대학의 학생들은 우주전문인력양성의 일환으로 지난 2년 동안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 한편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은 지난 2011년 7월 12일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착수 후 지난해 10월 1차 시도에 거쳐 2번째 도전의 결실이다. 누리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위성 발사용 로켓이다. 누리호 발사는 우리 손으로 개발한 로켓에 우리 위성을 실어 발사하겠다는 30년간의 꿈을 이뤄낸 의미를 갖고 있다.

[뉴 스페이스 시대⑩] 누리호, 오늘 2차 발사… 우주 강국 향한 역사적 순간

오늘(21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두 번째로 우주로 향한다. 300여개 기업과 250여명의 연구 인력, 약 2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누리호 개발 사업의 결실을 보는 날이다. 이날 누리호가 완벽한 결과를 선보이면 우리나라가 1.5톤(t)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발사체를 자체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증거가 된다. ◆오로지 우리 기술만으로 힘겹게 탄생한 누리호 누리호는 길이 47.2m, 중량 200톤의 우주발사체로 탑재중량은 1.5톤, 투입궤도는 600~800㎞다. 총 3단으로 나눌 수 있으며 1단과 2단은 75톤급 액체엔진이 각각 41기씩, 3단은 7톤급 액체엔진 1기로 구성돼 있다. 누리호 개발은 지난 2010년 3월부터 오는 2023년 6월까지 진행되는 사업으로 우주발사체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한다. 발사체 개발 기술은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분야다. 때문에 누리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나라 연구진이 국내 기술만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낸발사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누리호의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은 국내 기술로 진행됐으며 발사체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데까지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로 중대형 액체로켓엔진을 개발보유하게 됐으며 ▲우주발사체 엔진개발 설비 구축 ▲대형 추진제 탱크 제작 기술 보유 ▲독자 기술로 발사대 구축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독자 우주 수송 능력을 확보하고 국가 우주개발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자력 발사 능력 보유국은 9개로 실용급(무게 1톤 이상) 위성 발사가 가능한 국가는 러시아미국유럽중국일본인도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실용급은 아니지만 300㎏ 이하의 위성을 자력 발사할 수 있는 나라로는 이스라엘이란북한이 있다. ◆1차 때 아쉬움보강 위성과의 교신도 기대 앞서 진행된 지난해 1차 발사에서 누리호는 1단 분리, 페어링 분리, 2단 분리 등에 성공하며 많은 기술적 난제를 극복한 성과를 냈지만 위성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안착시키진 못했다. 목표 궤도인 고도 700㎞에는 도달했으나 3단 엔진의 조기 연소 종료로 7.5㎞/s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 부분을 보완하고 위성모사체뿐만 아니라 실제 위성을 함께 실어 우주를 향한 도전을 이어간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KARI)은 3단 산화제탱크 내부의 고압헬륨탱크가 이탈하지 않도록 헬륨탱크하부고정부를 보강하고 산화제탱크 맨홀덮개의 두께를 강화하는 등 기술적 조치를 실시했다. 이번에 발사되는 누리호에는 성능검증위성이 탑재된다. 이는 한국형발사체 궤도 투입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서 개발된 무게 180㎏, 크기 가로세로 1m 이내의 실험 위성이다. 이번 발사의 첫 번째 목표는 누리호가 우주 공간상에서 얼마만큼 정확하게 위성체를 분리해줄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발열 전지, S-BAND 안테나 등 그동안 개발된 우주 핵심 기술들의 부품들을 우주 공간상에서 시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에서 개발한 우주 기술을 우리 발사체에 실어 우주 공간에서 검증하는 것이다. 성능검증위성은 우주 공간에서 큐브위성을 사출한다. 이를 위해 국내 대학이 개발한 4기의 큐브위성이 탑재된다. 이 위성들은 성능검증위성이 무사히 궤도에 안착한 후 일주일 뒤부터 이틀 간격으로 하나씩 사출된다. 모든 발사 과정이 수월하게만 진행된다면 24일부터 조선대학교KAIST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 순으로 큐브위성이 사출되며 지상과 교신할 수 있다. ◆항우연, 누리호 통해 자생적 산업 생태계 만든다 항우연은 누리호 개발을 통해 산업 생태계 조성과 산업체 역량 강화를 지원한다. 누리호 체계총조립, 엔진조립, 각종 구성품 제작 등 기술 협력을 통해 산업체 역량을 강화하고 점진적으로 기업의 역할을 확대해 향후 발사 서비스 주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누리호 개발에는 300여개 기업이 참여해 독자 개발에 필요한 핵심부품 개발과 제작을 수행하고 있다. 항우연은 향후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을 통해 한국형발사체의 신뢰성을 축적하면서 국내 산업체를 육성지원하고 한국형발사체 기술의 지속 고도화 과정을 통해 우주 수송 능력 확장을 추진한다. 아울러 국내에 체계종합기업을 발굴육성하고 참여 기업들이 함께 성장하게 해 국내에 자생적인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또 한국형발사체 개발 이후에도 75톤급 엔진의 성능을 개량하고 클러스터링을 통해 대형소형 발사체 개발에 지속해서 활용할 예정이다. 미국 스페이스X는 팰콘(Falcon) 발사체의 멀린(Merlin) 엔진을 기본으로 성능 향상과 클러스터링 등을 통해 확장한 바 있다. 한편 우주발사체는 개발 과정도 어렵지만 성공이라는 결과를 보여주는 건 더 어렵다. 세계발사체 발사 성공 후 실패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 최초의 위성발사체 Vanguard(1957년)는 총 11번의 시험에서 8번의 실패를 기록했다. 이후 Atlas I(1990년)도 첫 발사 성공 후 245번째 발사에서 실패했다. 중국의 CZ-1(1969년), CZ-3(1984년)도 총 발사 시도 중 각각 50%, 28%의 실패율을 보였다. 일본의 발사체 Lambda 4(1966년)도 총 9번의 발사 시험 중 4번의 실패를 기록했다. 인도의 PSLV(1993년)도 첫 발사와 4번째 발사에 실패했다.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주발사체는 특성상 늘 발사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어제 잘 날아간 발사체가 오늘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성공을 예단하긴 이르다고 당부한 바 있다. 그는누리호는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번에 잘 (발사)됐다고 이번에도 잘 된다는 보장은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며 2차 발사 준비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가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중분석-UAM⑥] 언제쯤 택시보다 싸게 하늘길을 이용할 수 있을까

정부의 목표인 2025년 UAM 상용화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작해 2035년까지 전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상용화 초기에는 모두가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울 만큼 요금이 비싸겠지만 2030년대에는 택시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격전지 된 K-UAM 너도나도 해외 기업과 맞손 애초 국내 기업들의 항공기 개발 속도만 가지고는 2025년 상용화가 어렵다는 전망도 있었으나 해외기업과의 초협력으로 상용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러 기업이 상용화 선도를 꿈꾸는 만큼 국내 첫 UAM 기체가 무엇이 될지 주목된다. 국내 기업의 경우 한화시스템과 현대차그룹이 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Landing, 이비톨)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2025년에 미국 FAA(FederalAviationAdministration, 연방항공청)의 형식인증을 마치고 2026년부터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가 공동 출자해 미국에 설립한 슈퍼널(Supernal)을 통해 eVTOL을 개발하고 있는데 2024년에 FAA에 형식증명을 신청하고 2028년에 기체를 공개할 계획이다. 국내만 보면 이렇지만 해외 기업의 eVTOL을 먼저 도입해서 상용화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11월 볼로콥터와 MOU를 맺은 바 있다. SK텔레콤도 조비 에비에이션과 손을 잡았다. 한화시스템은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무인 시제기 비행을 목표로 오버에어에 투자했다. 상용화 초기에는 서울에서 먼저 운영될 것이고 용도는 공항 셔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서울 도심 지역과 인천김포공항을 연결하는 노선이 국내 첫 UAM 서비스가 되는 셈이다. ◆규제기술수용성 박자 맞을수록 요금 그렇다면 이용 요금은 어떻게 될까. 한국형 도심항공교통 기술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상용화 초기 UAM 이용 가격은 ㎞당 3000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후 2030년에는 2000원 수준으로 내려가고 2035년에는 500원이 된다. 상용화 초기를 기준으로 보면UAM 이용 요금은 일반 택시비의 약 2배가 비싼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잠실까지 이동한다고 가정했을 때 택시비는 약 7만원, UAM으로는 약 15만원이 든다. 하지만 속도는 택시보다 최대 6배 빠르다. 택시를 통해서는 최소 1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UAM으로는 10~15분이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금은 점점 저렴해진다. 2030년대에는 노선 수가 많아져 대중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버티포트 24개, 노선 수 22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시기 UAM 이용 가격은 ㎞당 2000원 수준으로 상용화 초기보다 약 33% 저렴해진 수준이다. 요금 인하에는 항공기 생산 대수의 증가도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주요 VTOL 업체들은 2030년 이후에는 업체별로 연간 1000~2000대 수준의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저궤도 통신위성의 발전으로 UATM이 고도화되는 등 기술 발달 효과로 인한 요금 인하도 기대해볼 수 있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2035년은 UAM이 필수 모빌리티가 되는 때다. 자율비행이 얼마나 완벽히 구현되는지가 관건이다.일반 시민이 현재 일반 택시 가격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UAM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완전한 자율비행이 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 2040년대에는 완전 자율비행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서비스 질은 높아지고요금은 ㎞당 500원인 수준까지 내려가게 된다. 이때 예상되는 UAM 노선 수는 203개로 5년 전보다 약 10배 증가한 수준이다. 버티포트 수도 52개로 크게 증가해 전국적인 UAM 서비스가 이뤄지게 된다. 자유로운 운항이 가능해지고 서비스 이용 범위도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항공기와 버티포트의 종류도 다양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이 모든 건 사회적 수용성, 기술의 발달, 사업자들의 관심 등 여러 변수로 앞당겨질 수 있는 영역이다. 감항과 관련된 규제나 항공, 위성통신, 배터리 등 필요한 기술들이 발맞춰 발전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집중분석-UAM⑤] 자율비행, 초공간 ‘우주인터넷’ 필수… 저궤도 위성통신

UAM 항공기의 원활한 운항을 위해서는 우주인터넷이라고 알려진 저궤도 위성통신이 필요하다. 저궤도 위성통신은 약 300~1200㎞의 지구 저궤도에 위성을 띄워서 통신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저궤도 위성통신이 뭐길래? 저궤도 위성통신은 공간을 초월하며 빠르게 대용량의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게 해주는 통신 인프라다. 우리에게 친숙한 통신 인프라로는 4G와 5G가 있다. 이 둘은 지상 통신망으로서 빠르고 안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 통신망의 한계가 있다면 바로 공간 제약이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면 스마트폰의 통신이 끊기듯이 공간을 초월하지는 못한다. 땅이 넓은 큰 국가의 경우 통신 인프라가 미흡하면 인터넷이 잘 안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정 고도, 거리 이상은 통신망이 닿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UAM은 상용화 초기에는 사람이 조종하는 비중이 크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율비행의 영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초공간을 지원하는 통신 인프라다.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지상의 통신망은 UAM에 쓰이기에 적합하지 않다. 초공간이 가능한 위성에는 정지궤도 위성도 있는데 지연 시간이 길어서 UAM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보통 정지궤도 위성통신의 지연 시간은 0.5초 정도다. 안전한 자율비행에는 사용하기 힘든 지연 시간이다. 통신 속도가 느린 점도 마찬가지다. 많은 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Landing, 이비톨)을 통제하려면 대용량의 데이터가 송수신돼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저궤도 위성통신은 초공간 통신 서비스가 가능하며 지상 통신망보다는 느리지만 정지궤도 위성통신보다는 빠르다. 지연 시간도 정지궤도 위성통신보다 5~10배 정도 짧다. 저궤도 통신 위성은 6G 시대의 핵심 통신 인프라로 UAM의 자율비행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학연 선제적 기술 확보해야 한목소리 우주개발과 궤를 같이하는 저궤도 위성사업은 정부도 큰 관심을 두는 분야다. 정부는 민간의 우주개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6G 통신위성 서비스 확대도 노린다. 2031년까지 4단계로 구분해 14기의 5G6G 위성을 발사하고 이와 함께 지상과 공중을 연계한 통신 서비스와 단말을 실증할 방침이다.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 확보를 향한 국내 학계의 목소리도 큰 상황이다. 지난 13일 서울 노보텔 엠베서더 동대문에서 개최된 2022 위성통신 콘퍼런스에서 산학연 관계자들은 6G 시대의 위성통신 발전 방향을 공유하고 선제적 기술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재현 아주대학교 교수는 저궤도 위성통신은 지상 이동통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라며 위성통신 발전 동향이 단일 정지궤도 위성통신에서 군집 저궤도 위성통신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단일 정제궤도 위성통신은 긴 지연 시간과 높은 개발 및 발사 비용이 드는 반면 저궤도 위성통신은 지연시간이 짧고 소형위성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과 재사용 가능한 로켓 개발로 발사 비용도 더욱 낮다고 말했다. 이어 저궤도 위성통신을 위한 지능형 네트워크 인프라 설계 및 관리기술과 저궤도 군집 위성 협력 전송 및 간섭 제어기법 등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계에서는 저궤도 위성통신 관련 제품을 개발하고 유통망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박성균 한화시스템 소장은 저궤도 위성 분야 핵심 구성품인 디지털신호처리장치와 위성간통신모듈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며 국내 쎄트렉아이, 인텔리안테크 등과 협력한 통신탑재체, 전자식빔조향 안테나 라인업과 판매망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까지 저궤도 위성통신을 통해 지상 단말 간 위치정보 송수신이 가능한 초소형 통신위성 항재밍저피탐 웨이브폼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라며 원격 재구성이 가능한 위성관제링크 기술 등은 오는 2024년까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경민 위성통신포럼 의장(KT SAT 사장)은 위성통신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과 인력, 기초과학부터 전기전자, 부품, 에너지, 신소재까지 다양한 분야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민관이 함께 위성통신 기술 발전과 산업육성 토대를 탄탄히 구축한다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우주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뉴 스페이스 시대⑨] 누리호, 오늘 발사대로 이동… 2차 발사까지 D-1

오는 16일 우주를 향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두 번째 결실이 나타난다. 누리호가 목표 궤도에 정확히 성능검증위성을 투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1차 발사 때의 아쉬움을 지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공위성 자체 제작 능력을 보유한 한국이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면 우주 탐사에 나설 기반이 마련된다. 정부는 당초 15일을 발사일로 계획했지만 강풍 등 날씨의 영향으로 하루 연기를 결정했다. 대신 이날누리호를 발사대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한다. ◆지상 떠나고 15분 성능검증위성 분리 발사 당일누리호의 상태와 날씨우주 환경 등 모든 조건이 정상임이 확인되면 발사가 시작된다. 누리호 1단 엔진부터 자동으로 점화되고 단 몇초 만에 최대 추력에 이른다. 최대 추력 300톤(t)에 도달하면 누리호 하부를 잡고 있던 고정장치 4개에 해제 명령이 떨어지고 누리호가 이륙하면서 마지막까지 연결돼 있던 엄빌리칼이 자동 회수된다. 발사된 누리호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짧다. 누리호는 3단형 우주발사체로 3개의 로켓을 합친 것과 같은데 누리호 1단은 발사 후 23단을 싣고 지구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1단의 연소 시간은 약 127초다. 누리호는 약 2분 만에 대기권을 벗어나 공기가 희박한 성층권에 도달한다. 연소를 마친 1단은 본체에서 떨어져 나가고 2단 로켓에 바통을 넘긴다. 이때부터 절반 이상의 무게를 덜어낸 누리호의 가속 구간이 시작된다. 2단 로켓 비행은 1단보다 속도와 고도가 2배 이상 증가한다. 이때 공기 마찰이 거의 없는 약 200㎞ 고도에 이르면 페이로드 페어링(누리호의 보호 덮개) 분리가 이뤄진다. 누리호가 달성해야 하는 최종속도는 초속 7.5㎞다. 누리호 2단은 초속 4.3㎞ 속도를 내며 날아간다. 2단마저 연소를 마치면 마지막 3단 엔진이 켜지는데 연소 시간은 약 9분(521초)으로 가장 길다. 이때가 전 비행 구간 중 누리호가 가장 멀리 빠르게 높이 날아가는 시간이다. 3단 점화 후 이동 거리는 약 4000㎞고 2단보다 속도가 약 2배 증가한다. 비행 속도가 초속 7.5㎞에 이르고 인공위성 투입 고도인 700㎞에 도달하면 누리호는 3단 엔진을 정지한다. 마지막 궤도비행을 하다가 지상에서 이륙한 지 약 15분(897초), 16분(967초)에 성능검증위성과 위성 모사체가 각각 분리된다. 위성이 분리되고 약 30분 후 발사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상에 최종 발사 성공 소식이 전해진다. 성능검증위성의 첫 교신은 발사 후 42분 23초에 남극 세종기지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발사 1시간 40분 6초가 지나면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KARI) 지상국에서 다시 한번 교신을 시도한다. 발사 약 4시간 뒤에는 세종기지에서 비콘 신호를 확인해 성능검증 위성의 자세가 안정화됐는지를 확인한다. 발사 다음날부터는 대전 지상국에서 지속해서 교신하며 위성의 상태를 더욱 자세하게 파악한다. 큐브위성은 발사 일주일 뒤 사출된다. 성능검증위성이 목표 궤도에 안착한 후 지상국 교신에 성공하면 발사 일주일 뒤부터 이틀 간격으로 큐브위성을 하나씩 사출한다. 이번 발사에서는 발사 일주일 뒤부터 큐브위성과의 교신 소식을 들을 수 있다. ◆페이로드 페어링 동시 분리 관건 날아오른 상태의 누리호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페이로드 페어링(Payload Fairing) 분리다. 이는 누리호 가장 상단에서 외부 환경으로부터 위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유선형 덮개다. 두 개의 동일한 모형이 합체한 구조물로 누리호가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두 모형이 정확한 타이밍에 동시에 누리호에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 페이로드 페어링의 분리 방법으로는 화약과 스프링이 쓰인다. 좌우 페어링은 일종의 화약 분리 장치로 연결돼 있다. 우선 화약의 폭발력으로 이 좌우 페어링을 구조적으로 절단한 다음에 압축된 분리 스프링이 양쪽 페어링을 좌우로 벌리며 완전히 분리된다. 제대로 분리되지 않으면 발사는 실패한다. 그래서 이 분리 기술은 발사체 선진국에서도 특급보안으로 관리한다. 해외로부터 도입할 수 있는 기술이 하나도 없었기에 우리나라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의 자체 기술만으로 해당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후 발사체 고도화 사업 진행 항우연은 이번 2차 발사 이후에는 누리호 후속 사업으로 착수한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여기엔 우리나라가 개발한 위성을 누리호를 통해 발사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총 4회의 발사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만든 우주발사체의 신뢰성을 높여가는 과정을 거친다. 투입되는 사업비는 6873억여원이다. 내년 상반기 차세대 소형위성 2호 등, 2024년 초소형위성 1호 등, 2026년 초소형 위성 26호, 2027년 초소형 위성 711호 등을 발사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정부는 고도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발사체 기술을 민간에 이전해 우주발사체 분야의 체계종합기업을 육성할 예정이다. 항우연은 이미 다음 누리호 발사를 대비해 예비 호기로 세 번째 누리호를 제작하고 있다. 아울러 항우연은 향후 독자적인 우주탐사까지 실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한편 앞서 우리나라는 지난 5월 세계에서 10번째로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함으로써 아르테미스 달 탐사에 함께할 수 있게 됐다. 향후 후속 우주탐사 과정 등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누리호 후속 사업을 비롯해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목표인 ▲2024년 우주인 달 착륙 ▲2028년 사람 상주 기지 건설 등이 예정돼 있다.

[집중분석-UAM④] 2025년 상용화는 수도권부터… 거점에 구축될 ‘버티포트’

UAM은 단순히 고층빌딩에서 타고 내리는 개념의 교통 수단이 아니다. 여러 대의 UAM용 항공기(eVTOL 등)가 뜨고 내릴 수 있어야 하며 충전정비도 가능해야 한다. 즉 별도의 이착륙 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에어포트+헬리포트=버티포트 UAM을 실현할 착륙 시설을 버티포트라고 한다. 이는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속성을 조금씩 닮은 신개념 항공기인 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Landing, 이비톨)의 착륙 시설로 Airport와 Heliport의 혼합 용어다. 버티포트의 핵심은 접근성이다. 택시나 버스 같은 경우 교통체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도어 투 도어(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데에 추가 통행이 없는 것)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UAM은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특정 시설에서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여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항공기버티포트 수가 있어야 하며 특히 버티포트는 적합한위치에 설치돼야 향후 일반 교통수단과 요금이 비슷하거나 그보다 저렴해져 대중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설치 기준조차 아직 미정립 상태다. 명확한 기준과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항공기 산업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한 미국과 유럽의 감항 당국인 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와 EASA(European Union Aviation Safety Agency)가헬리포트를 기반으로 이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공항공사가 버티허브(VertiHub)와 버티포트 구축을 준비 중이다. 버티포트가항공기가 이착륙만 할 수 있는 시설이라면버티허브는 이착륙을 포함해 기체 관리 기능(충전정비)까지 겸비한 착륙 시설이다. 때문에 버티허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버티포트보다 훨씬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 서울 3대 도심인 사대문, 여의도, 강남 등 수요가 밀집된 곳에는 큰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워 버티포트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며 현재 확정적인 곳으로는 서울 잠실운동장부지다. 한화 컨소시엄이 개발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있으며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버티포트가 지어질 것이다. 또한현대건설은 이지스자산운용과 공동개발 중인 밀레니엄 힐튼호텔 부지 개발 사업에 버티포트 설치 및 운영을 추진키로 협의했다.이 외에도 여의도공원 혹은 용산에 지어질 현대자동차 UAM 연구시설이 버티포트 구축 후보지다. ◆버티포트로 연결된 하늘길,어떻게 운항되나 착륙 시설까지 만들어지면 항공기들은 이를 기반으로 운항을 시작한다. 충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음에는 교차로 없이 정해진 하늘길만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UATM(UAM 교통관리체계, Urban Air Traffic Management)이 운항을 관리통제한다. 이 시스템 한가운데에는 PSU(Provider of Service for UAM, 교통 관리 서비스 제공자)가 있다. ▲UAM 운항 안전정보 공유 ▲교통흐름관리 ▲비행계획승인 ▲eVTOL의 항로 이탈 여부 모니터링을 담당하며 일정 지역의 UAM 흐름을 관리한다. 각 지역의 PSU가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다. 상용화 초기에는 UAM이 평균 고도 450m 수준에서 비행할 예정이며 허가된 회랑만을 따라 운항된다. 도로로 치면 교차로가 없는 고정형 회랑에 해당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중첩된 영역(교차로)이 존재하는 고정령 회랑망으로 발전한다. 궁극적으로는 회랑이 수시로 변화하는 동적 회랑망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UAM 초기에는 조종사가 관여하는 비중이 높을 것이다. 다만 점차 오토파일럿 기술이 발달하면서 나아질 전망이다. 종국에는 컴퓨터가 이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된다. 다만eVTOL 등 신개념 항공기의감항 인증 문제와 마찬가지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항공기, 착륙 시설 등 상용화를 위한 국내외 연구와 기준 마련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기술적 난제와 사회적 수용성이 아직 많이 필요하다. 상용화 직후 요금의 문제도 있다. 항공기 대수가 증가하고배터리 기술이 발전할수록운항 시간(가동률)이 많아져 점점 저렴해지겠지만 시간이 꽤나 걸린다. 선두 사업자인 조비는UAM의 상용화 초기 요금을 택시보다 비싸고 헬리콥터보다는 저렴하게 하는 수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가발표한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운용개념서 1.0에 따르면 오는 2025년부터는 수도권 중심의 버티포트를 설치해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여의도, 잠실 등에서 UAM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한다. 2030년에는 수도권 및 광역권 중심의 버티포트를 설치해 수도권 지역에서 광역권 지역으로 UAM 운행을 본격화한다. 2035년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해 택시처럼 어느 곳이든 날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뉴 스페이스 시대⑧] 재도전 D-3 누리호, 최종 점검 중… ‘날씨’가 관건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 2차 발사까지 사흘 남은 가운데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의 모든 기체 조립과 123단 결합을 마치고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항우연)은 지난달 12일 누리호의 12단을 결합했고이달 89일에는 성능검증위성이 탑재된 3단까지 붙여 누리호의 최종 결합을 완료했다. 이후 항우연은 10일 온라인 설명회를 통해 최종 마무리 작업만이 남았다고 전했다. ◆2차 발사, 외부 환경 변수주목 모든 기술적 점검이 끝난 누리호 계획에서 이제 남은 변수는 발사 예정일 전날의 날씨, 당일 기상 조건과 우주 환경 조건이다. 발사 예정일 전날인 14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20분까지 누리호를 조립동에서 발사대로 이송해 세우는 기립 작업이 예정돼 있다. 만약 이때 비가 계속 많이 내리면 발사일이 연기될 수도 있다. 발사체 자체는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돼 있지만 이송 작업 중에 비가 계속 많이 내리거나 노면에 물기가 많으면 발사체를 옮기는 이송 차량이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는 등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 중기예보(12일 오전 기준)에 따르면 나로우주센터의 14일 오후 37시 강수확률은 60%다. 또 발사 당일인 15일의 기상 조건과 우주 환경도 지켜봐야 한다. 발사 시간은오후 4시가 가장 유력하다. 장영순 항우연 발사체책임개발부장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발사가 지상에서 가능한지를 따지는 지상풍 조건 ▲발사체가 올라가며 바람에 의한 하중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고층풍 조건 ▲비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낙뢰를 꼽았다. ◆D-1, 우주로 가는만반의 준비 시작 발사 준비의 시작은 총조립을 마친 누리호를 발사일 전날 오전 발사대로 옮기는 것부터다. 누리호는 추진제를 채우지 않은 빈 상태에서 눕혀서 트랜스포터에 탑재하고 안전을 위해 사람이 걷는 속도만큼 느린 속도(1.5㎞/h)로 이동한다. 조립동에서 발사대까지 약 1.8㎞의 거리를 1시간여에 걸쳐서 이동한 뒤 발사대 위에 누리호를 수직으로 세우는 기립 절차가 이어진다. 이후 기립 장치인 이렉터(erector)에 실려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추진제가 충전되지 않아 아직은 가벼운 누리호가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발사체 지상고정장치(VHD)가 하단을 단단하게 고정한다. 발사 전날 오후에는 누리호의 탯줄인 엄빌리칼 연결 작업이 시작된다. 엄빌리칼은 누리호에 추진제와 전기를 공급하는 시설이다. 11층 건물 높이로 누리호 길이와 비슷한 이 시설을 미리 연결해 둬야 발사 당일 바로 충전을 시작할 수 있다. 엄빌리칼 연결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발사대 시스템 준비가 진행된다.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지하 탱크 점검, 발사대 지하에서 화염을 식혀주는 물탱크 수압 테스트, 화재 등에 대비한 소화장치 점검 등 해가 질 때까지 준비는 계속된다. ◆부품상태환경 3요소 모두 완벽해야 발사 당일 오전에는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누리호 발사 과정에는 각종 변수가 있다. 누리호 발사에 쓰이는 부품은 37만개로 자동차(2만개), 항공기(20만개)보다 훨씬 많이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적 변수 또한 많다. 누리호를 발사대에 옮기고 세우고 연결하고 고정하는 모든 장치는 기계다. 신뢰도 높은 기술이 적용됐다 해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바람, 낙뢰, 우주물체 등의 환경적인 변수도 있다. 특히 이는 발사 당일에 발사 여부와 시간 등을 결정한다. 때문에 세심한 관측이 필요하다. 15층 건물 높이인 누리호의 발사에서 바람은 중요한 요소다. 안정적인 이륙, 정확한 비행 제어를 위해서는 바람이 발사와 비행을 도와줘야 한다. 순간 최대 풍속이 21㎧ 이하일 때 발사할 수 있다. 또 낙뢰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누리호 안에는 수많은 전장품이 탑재된다. 전기적인 손상을 입으면 오작동, 통신 방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물체도 위협 요소다. 유인 우주선과의 충돌 가능성이 없어야 발사할 수 있다. 누리호가 위성을 투입하는 지구 저궤도는 우주물체가 가장 많은 구간이다. 우주물체는 초속 7.8㎞로 지구를 공전하고 있다. 개발진은 누리호 비행궤적을 중심으로 충돌 가능성을 실시간 분석해서 위험성이 낮은 발사 시간대를 결정한다. 이같이 우주물체와의 충돌 가능성과 당일 기상 여건 등을 고려해 발사 시각은 당일 오후에야 비로소 확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누리호의 상태다. 발사 당일 상태가 정상이어야 한다. 아주 사소한 문제도 발사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륙 직전까지 누리호 점검이 이뤄진다. 단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누리호는 발사 연기 혹은 취소되거나 복구 후 발사 재시도를 하게 된다. 10여년 전 나로호도 발사 10분 전 소화장치 오작동으로 계획이 불발됐다. 이 때문에 누리호는 15일 발사예정일 이후 16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을 발사예비일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