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자인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모실 수 없는 것은 부당”

[천지일보=조성민 기자] 현충원에 위패가 있을 시 국립묘지 간 이장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봉안된 고인의 위패를 취소하고 고인을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할 것을 국가보훈처에 시정권고했다고 9일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A씨의 아버지는 6·25전쟁 중 전사한 국가유공자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A씨는 전사통지서와 유해를 인계받아 70년 넘게 A씨 유족이 부친의 묘를 관리했다. 이후 국립제주호국원이 개원되면서 지난 1월 아버지 묘를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에 이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훈처 측은 “A씨의 부친은 지난 2003년 6월부터 이미 국립대전현충원에 위패(유골·시신이 없는 경우 사망자의 이름을 기록한 석판이나 나무)가 봉안돼 있다”며 국립묘지에 이장해달라는 A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A씨는 권익위에 진정을 냈고, 권익위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보훈처와 A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권익위는 지난 2001년 육군본부가 ‘6·25전쟁 제50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훈처가 미봉안 된 6·25 전사자 전원 5만 8591명을 위패봉안 대상자로 판단한 것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A씨의 부친도 유가족 동의 없이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권익위가 내세운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7조 제2항’을 살펴보면 국립묘지 간 이장은 불가하지만 그 대상은 ‘안장된 사람의 시신이나 유골’로 돼 있을 뿐 ‘위패’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이에 더해 국립묘지에 위패가 봉안됐더라도 유골이 있어 현충원에 이장 신청을 한 경우 승인된 비슷한 사례도 찾아냈다. 아울러 보훈처에 문의해 고인의 유해 존재 여부가 명확히 확인되는 경우 국립묘지에 유골을 안장하려면 현충원에 있는 위패봉안을 취소할 수 있다는 보훈처의 회신도 받았다. 위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고인의 위패가 봉안됐다는 이유로 보훈처가 A씨에게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안준호 권익위 고충처리국장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당연히 보훈 혜택을 받아야 한다”며 “앞으로도 국민 권익이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고충민원 해결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중수교 30주년’ 독립기념관-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국제교류전 개최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관장 뤄춘캉)과 공동으로 오는 11일~10월 10일까지 국제교류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항일투쟁’이라는 주제로 양 기관이 각자 기획한 전시를 상대 기관에 교차 전시하는 방식으로 추진한다. 먼저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기획한 항일전쟁 시기 미술작품 100점을 독립기념관 특별기획전시실 Ⅱ(제7관 내)에 전시한다. 이번 국제교류전은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항일투쟁사를 주제로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기념관인 독립기념관과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공동으로 추진하게 됐다. 두 기관은 2007년 상호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MOU)를 체결한 이래 지난 15년간 학술연구·전시·인적교류 등 다방면에서 협업을 진행해 왔다. 전시는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하며 2012년 상호 교류전시 개최에 이어 10년 만에 양 기관이 함께 추진하는 두 번째 국제교류전이다. 중국의 항일전쟁 시기 많은 중국의 화가들은 총 대신 붓을 들고, 그림을 무기로 삼아 대일항전에 나섰다. 작가들의 그림에는 당시 항전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고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함께 저항할 것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4부로 구성하고 중국 화가들이 남긴 판화, 만화 등 미술작품 100점이 전시된다. 제1부는 일본군의 침략 고발, 제2부는 중국군의 대일항전, 제3부는 중국군의 대일항전을 지원하는 민간인, 마지막 제4부는 일제의 침략을 물리치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그림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20세기 전반기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아시아 지역, 미국 등으로 세력을 팽창하면서 아시아와 태평양 전 지역을 침략했다. 이에 맞서 일제의 침략을 받은 나라들이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했고, 한국도 이들과 함께했다. 그중 한중과 중국은 공통적으로 20세기 전반기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침략을 받았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항전했다. 그 결과 1945년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고, 중국은 일제의 침략을 물리치고 승전을 거뒀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중국도 일제침략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을 소개함으로써 제국주의 투쟁을 위한 노력은 한국뿐 아니라, 인류 보편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리고자 한다”며 “중국인의 항일투쟁과 한국 독립운동을 비교해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울러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전시가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섰던 양국의 역사적 경험을 이해하고 향후 한중 양국의 우호와 협력을 마련하는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오는 11일 오전 제7관 내 특별기획전시실 로비에서 팡쿤 주한중국대사관 공사 등 한중 양국의 관계 인사를 모시고 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독립기념관이 기획·주관하는 ‘한중공동항전’ 전시도 금년 중 중국 베이징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 열려 중국인들에게 일제에 항거했던 한국 독립운동과 한중공동 항일투쟁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독립기념관, 8월의 독립운동가 강제하·이웅해·백남준·최명수 선정… 전시회 개최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한 강제하·이웅해·백남준·최명수 선생을 2022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8월 한달간(1일~31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대한통의부 발행 어음’ 등 9점을 전시한다. 1920년 전후 중국 동북지역(만주)을 거점으로 결성된 한인 독립군 단체가 일제를 상대로 독립전쟁에 나서 승리를 거두자 일제는 이른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자행하며 한인사회와 독립군 기지를 초토화했다. 참변을 극복하고자 모인 남만주의 독립운동 단체 대표들은 남만한족통일회의(南滿韓族統一會議)를 열고 1922년 8월 30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했다. 통의부는 중앙조직을 구성하고 의용군을 편성해 한인 자치와 군사활동을 전개하며 남만주 지역 통합 독립운동 단체로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2022년 8월의 독립운동가는 결성 100년이 된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한 인물 4분이다. 그중 강제하는 1891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태어나 1919년 창성지역 3.1운동을 주도하다 남만주로 망명했다. 대한독립청년단을 결성해 단장 등으로 활동한 그는 1922년 8월 결성된 통의부에 가담하고 권업부장, 재무부장 등을 맡아 남만주 한인 사회와 독립군 생계유지에 힘을 쏟았다. 이후 정의부 중앙위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을 역임하며 남만주 지역 세력 통합에 매진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웅해는 1878년 함경남도 상기천면에서 태어나 의병으로 활동하다 경술국치 후 서간도로 망명했다. 1919년 대한독립단 사법부장을 역임했으며, 1922년 남만한족통일회의에 대한독립군 대표로 참가해 통의부를 탄생시켰다. 통의부 결성 후에는 민사부장으로 호구조사, 구휼・징병활동 등을 수행하며 이주 한인과 독립군 생존을 책임졌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백남준은 1885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 중 이른바 ‘데라우치 암살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풀려나 남만주로 망명했다. 1920년 결성된 광복군총영 군사 겸 참모부장으로 활동한 그는 1922년 남만한족통일회의에 광복군총영 대표로 참가해 통의부 탄생에 기여했다. 1923년부터 통의부 중앙행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정의부 검판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4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최명수는 1881년 12월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나 경술국치 후 서간도로 망명, 신민회 인사들과 함께 한인단체인 부민단, 한족회 등에서 검무국장 등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1922년 8월 결성된 통의부에서도 검무국장을 맡았다. 통의부에 이어 1924년 남만주 통합 독립운동 단체로 탄생한 정의부 결성과 조직 운영에도 적극 동참하며 검리장 등을 역임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독립기념관, 7월의 독립운동가 김갑·민제호·한흥교 선정… 전시회 개최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동제사에서 활동한 김갑·민제호·한흥교 선생을 2022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7월 한달간(1일~30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김갑 사진’ 등 10점을 전시한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국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1912년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식을 중심으로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 등은 독립운동 뜻을 함께 하며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했다. 상하이 최초 한국인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임시정부의 여러 직책을 역임하거나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김갑은 1891년 부산 동래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김진원(金瑨源)이다. 경상도 지역의 첫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단에 참여하기도 했던 김갑은 상하이로 망명 후 동제사 회원이 됐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세워지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경상도 대표의원(1919년), 노동총판(1925년), 재무장(1927년) 등을 역임했다. 1930년에는 김구, 조완구, 엄항섭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상하이 도착 후 임시정부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한 김갑은 1933년 44세의 나이로 서거했으며, 정부는 김갑의 공적을 기려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민제호는 1890년생 서울 종로에서 출생했으며, 민우명(閔禹明)이라 불리기도 했다. 1913년 상하이로 망명한 민제호는 동제사에 참여했다. 1919년부터 1929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대한적십자회, 상하이 대한인 거류민단을 통해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같이 항저우로 피신했다. 그러던 중 병을 얻어 1932년 42세의 나이로 서거했으며, 정부는 민제호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한흥교는 1885년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한진산(韓震山, 韓辰山)또는 한생(恨生)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일본 오카야마岡山 의학전문학교를 졸업 후 1911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한흥교는 1912년 신규식, 조성환 등과 함께 동제사 조직에 참여하면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의료를 도맡았다. 1935년부터 광복될 때까지 산시성 타이위안太原에서 대동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와 의료활동을 이어나간 한흥교는 1967년 82세로 서거했으며, 정부는 한흥교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인추협 “6.25참전호국영웅에 대한 합당한 예우 촉구”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대표 고진광)가 6.25참전호국영웅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5일 인추협에 따르면 인추협은 다가오는 6일은 67회 현충일이라며 현충일의 의미는 나라에 충성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고, 우리 또한 국가에 대한 충렬을 다짐해 보는 날이란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충성을 다하고 희생한 이들을 위해 당연히 국가는 모든 예우를 갖춰 보살펴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지만,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하기 힘든 지원을 받는 6.25참전호국영웅들의 삶은 현충일의 취지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분들에게는 정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890대가 대부분인 6.25참전호국영웅은 5년이 지나면 생존 6.25참전호국영웅의 수는 급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추협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 생존 6.25참전용사의 수는 5만 9376명이다. 인추협은 ▲월 35만원인 참전명예수당을 2022년 최저생계비 116만 6887원과 같은 수준인 100만원으로 인상 ▲국가보훈병원국가보훈처보훈위탁지정병원 진료비약제비 등 본인 전액 무료 지원 및 배우자와 직계가족 의료비 60% 지급, 손자녀 30% 지급 ▲6.25참전호국영웅 직계후손에게 명예 승계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새로운 정부와 국회는 참전유공자법이 생존한 분들에게 실용적으로 필요한 예우 상향조정, 주거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후손들에 대한 혜택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하고, 잘못된 심사로 인해 유공자로 인정되지 못한 분들에 대한 재심사 등을 추진하도록 조속히 법 개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6.25전쟁에 참전했지만 참전 기록이 없거나 홍보 부족으로 6.25참전유공자 등록을 못하고 있는 유공자를 발굴하는 사업과, 6.25전쟁에 참전해 부상했지만 진료 기록이 없거나 홍보 부족으로 6.25참전상이용사로 등록하지 못하고 있는 참전상이용사를 발굴하는 사업에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독립기념관, 6월의 독립운동가 이덕주·최흥식·안경근 선정… 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한인애국단 단원 이덕주최흥식안경근 선생을 2022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전시회는 6월 한달간(1일~30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한민 제15호 등 8점을 전시한다. 1930년대 일제의 침략전쟁에 맞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1년 말 국무회의에서 특무대를 통해 의열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단체 조직운영의 전권을 위임받은 김구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결성하고 청년들을 단원으로 모아 일련의 특공작전을 계획준비했다. 한인애국단은 1932년 1월부터 5월까지 도쿄(東京), 상하이(上海), 다롄(大連) 등지에서 일제 침략기구와 침략자 처단 의거를 결행했다. 이덕주는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태어나 과수업, 재목상 등을 하다가 20세때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에서 의경대원 등으로 활동하며 김구와 교류하다가 한인애국단에 입단했으며, 1932년 3월 단장 김구에게 의거 자금과 무기 등을 받고 조선총독 처단을 위해 국내로 파견됐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신천에서 같은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된 유진식(兪鎭軾)과 함께 의거를 준비하던 중 일경에 피체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이덕주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최흥식은 서울에서 태어나 인쇄소 견습생 등으로 일하다가 20세 때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2년 이봉창 의거 등을 접한 후 한인애국단에 입단했고 일제 고위관료 처단을 위해 다롄으로 향했다. 그는 5월 만주국 수립 문제 조사를 위해 파견된 국제연맹조사단을 접견하는 일제 고위관료 처단을 준비하던 중 김구에게 보내는 전보가 발각돼 유상근(柳相根)등과 함께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최흥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안경근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921년 중국 상하이 망명 후 윈난육군강무학교(雲南陸軍講武學校)에서 수학하였고 1926년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5기생 교관으로 활동했다. 1931년 말 한인애국단이 결성되자 단원이 되었다. 1932년 4월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의 결실로 1934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洛陽) 분교 내에 한인특별반이 설립되자 생도계를 맡았다. 한국특무대독립군(韓國特務隊獨立軍)에서는 조사부원을 담당해 군사인재 양성에 힘썼다. 1937년 임시정부 군사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임시정부 활동도 이어나갔다. 정부는 안경근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광복 77주년’ 독립기념관-SKT, ‘우리가 그려갈 미래’ 대국민 그림 공모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 및 광복 77주년을 맞아 SKT(대표이사 사장 유영상)와 공동으로 우리가 그려갈 미래라는 주제로 대국민 그림 공모를 실시한다. 공모목적은 순위부여 형식의 작품 공모가 아니라, 그림으로 표현된 국민들의 생각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기 위한 것으로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접수기간은 오는 5월 2일 오전 9시~31일 오후 6시이다. 그림을 디지털 파일(스캔 혹은 촬영)로 변환해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신청서, 작품 제목과 설명서 등을 등록하면 된다. 이번 공모는 독립기념관이 201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제3차 상설전시관 교체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8월 15일 재개관을 앞두고 새 단장 중인 제6관 새로운 나라(가제)의 국민 참여 전시콘텐츠 제작을 위해 추진하는 것이다. 공모취지는 독립기념관의 마지막 상설전시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광복,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제6관의 에필로그에 우리가 그려온 역사, 우리가 그려갈 미래(가제)라는 코너를 마련하고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며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데 있다. 참가 희망자는 독립운동으로 되찾은 나라에서 우리가 꿈꾸고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라는 대주제로 나의 꿈, 가족의 소망,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을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 그림은 기존 핸드 드로잉 방식 이외에 디지털 드로잉도 가능하며 그림과 함께 반드시 작품 설명도 작성제출해야 한다. 당선작은 그림과 작품설명을 토대로 제6관 새로운 나라(가제)에필로그 우리가 그려온 역사, 우리가 그려갈 미래(가제) 코너에 적합한 작품 총 77점을 선정할 예정이다. 77명에게는 소정의 상품 증정과 함께 제6관 재개관 후 학예사와 함께 즐기는 특별관람행사에 초청할 계획이다. 선정된 작품은 SKT가 보유한 ICT 기술을 활용, 최첨단 영상 전시콘텐츠로 구현해 오는 8월 15일 제6관 재개관 때 대국민 공개한다. SKT는 2020년 독립기념관과 5개년 MOU를 체결한 이래 지금까지 2개년에 걸쳐 독립운동사 주제 실감형 콘텐츠를 공동 개발해왔으며,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국민과 함께 나누는 이번 전시 콘텐츠 개발도 함께 추진하게 됐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과 광복 77주년을 맞아 SKT와 함께 진행하는 이번 그림 공모가 ICT 기술을 접목한 국민공감형 전시 콘텐츠 제작의 새로운 시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으로 되찾은 나라에서 국민들이 만들어 나가고 싶은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남기고 첨단 전시 콘텐츠로 새롭게 탄생된다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기회가 될 이번 공모전에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충남서부보훈지청, 서해수호의 날… 故 한상국 상사 추모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충남서부보훈지청이 25일 제7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서해수호 영웅 故 한상국 상사의 모교인 홍성군 광천읍 소재 충남드론항공고등학교에 건립된 흉상 앞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올해는 쏟아지는 적군의 포탄 속에 끝까지 조타석을 지키고 산화한 우리고장 호국영웅인 고(故 )한상국 상사가 영원한 서해의 별이 된 제 2연평해전이 일어난 지 20주년이 되는 해로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이날 추모행사는 故 한상국 상사의 후배인 충남드론항공고 학생들과 김주호 광천제일장학회 이사장, 보훈지청의 새내기 공무원 등 관계자들이 한송이 국화꽃을 바치며 거룩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고자 마련했다. 홍경화 지청장은 이번 참배 행사를 통해 미래세대인 학생들과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보훈지청 새내기 공무원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故 한상국 상사를 비롯한 서해 영웅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고 보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등 북한의 도발에 맞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서해수호 용사를 추모하고, 범국민 안보의식을 고양해 국토수호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정부기념일(매년 3월 넷째 금요일)로 제정됐다.

독립기념관, 가정에서 체험하는 온라인 독도교육… ‘내 손안의 독도’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초등학생 가족을 대상으로 SNS(네이버밴드) 기반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내 손안의 독도를 오는 4월~10월 총 10회에 걸쳐 운영한다. 18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4월 첫 교육(12차) 접수 시작은 오는 3월 22일 오전 9시부터 선착순 각 200명이다. 자세한 내용과 일정은 독립기념관홈페이지-교육행사-교육프로그램 신청-내 손안의 독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손안의 독도는 독도의 역사와 자연 독도 지킴이 동화 전시관 라이브로 구성했다. 사전에 가정으로 배부한 교재와 체험교구를 활용해 네이버밴드로 독도 교육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독도의 자연과 역사는 초등 5~6학년 교과과정과 연계한 교육프로그램이다. 독도의 자연환경을 알아보고, 고문헌과 사료를 통해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 증거를 알아볼 수 있다. 독도지킴이 동화는 초등학생들이 독도를 지킨 사람들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한 인물학습 콘텐츠로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성우로 참여해 만들었다. '전시관 라이브는 학예사의 해설을 통해 독립기념관 제2전시관의 핵심 전시물을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교육프로그램은 초등 저고학년 수준별로 구성했다. 초등 저학년은 독도의 사계절에 담긴 자연환경을 살펴보며 독도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초등 고학년은 독도의 역사를 사료탐구학습으로 심화해서 살펴보며 독도가 우리 땅인 증거를 학습한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온라인 교육을 보며 활용할 수 있는 체험활동지는 교육 참가자에 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며 교육 기간 제공하는 영상을 보며 풀어보며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차별로 우수참가 5가족을 선정해 독립기념관 독도학교 체험 교구재 세트도 증정한다며 앞으로도 독립운동사와 독도 수호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독립기념관, 2월 독립운동가 강기덕 선정… 전시회 개최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강기덕(1886~미상) 선생을 2022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전시회는 2월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신간회 강령 등 8점을 전시한다. 188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강기덕은 1919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학생 대표로 3.1운동에 앞장섰다. 학생들에게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배포하고 1919년 3월 5일 남대문역에서 인력거를 타고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주도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첫 번째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온 강기덕은 원산덕원지역 청년운동의 지도자로서 활동을 전개했다. 1923년 1월 원산교풍회(元山矯風會)를 조직해 폐습(弊習) 철폐에 앞장섰으며, 8월에는 함남도민대회를 개최해 지역민의 열악한 생활환경 개선에 힘썼다. 1926년에는 덕원청년동맹(德源靑年同盟) 창립에도 적극 참여해 농촌문화 향상을 위한 순회강연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다시 한 번 옥고를 치러야 했다. 강기덕은 출옥 직후 1927년 창립된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해 원산지회 설립준비위원 등을 맡았다. 당시 함남기자연맹에도 소속돼 언론 자유를 위해 힘쓰다 8개월간 옥고를 치렀지만, 출옥 후 1930년 신간회 원산지회 회장에 선임되고 1931년에는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신간회 활동을 이끌었다. 신간회 해소 후 1933년 원산노동조합의 재건 등에 힘쓰던 중 네 번째 옥고를 치루는 등 거듭된 옥고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그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90년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