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문 국제자원봉사총연합회장 “서로 배려하면 세상은 바뀌어요”

황종문 국제자원봉사총연합회장 인터뷰 48년간 봉사 위해 헌신… 전국 봉사자 시상 환경보전, 자원정화 활동도 발벗고 ‘앞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봉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시나 ‘마음’이겠다. 남을 돕고자 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우러나와야 진정한 봉사가 된다. 그런 진심은 또 다른 이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 마음의 빛이 모이고 모이면 사회 속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치유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을 배려하고 봉사로 세상과 소통해 가는 이가 있다. 바로 ‘황종문(68) 국제자원봉사총연합회장’이다. 48년을 오직 봉사를 위해 헌신해 온 그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봉사하는 마음 함께 모아야” 황 회장이 활동하는 국제자원봉사총연합회는 2013년 전국 100여개 봉사단체와 동남아시아 14개국 회원으로 설립된 봉사단체다. 휴머니즘을 갖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설립됐다. 국제자원봉사총연합회는 34년간 전국 77개 미용건강단체가 모인 ‘국제미용건강총연합회 올림픽대회’의 종주국으로, 국제적 봉사활동과 각자의 재능기부로 봉사해 매년 전국의 봉사자들에게 부분별로 나눠 시상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녹색환경운동연합 명예회장, 국제생활건강괄사협회 회장, 국제자원봉사총연합회 회장, 국제휴머니티총연맹 부총재, 대한민국 최고기록인증(청혈괄사 최고기록), 도전월드봉사단 회장 등 그에겐 다양한 직함이 있다. 특히 ‘자연환경보전’과 ‘자연정화활동’에 주목한다. 대구권에서 환경운동을 할 정도로 이 시대에 얼마나 환경보전이 중요한지를 알려왔다. 황 회장은 “지금은 지구온난화 시대다. 쓰레기 분리수거 등 꾸준한 정화 활동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갖게 하려고 우리는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며 힘줘 말했다. 실제로 한국도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꿀벌 개체 감소를 들 수 있다. 양봉농가에 따르면, 전국에서 77억 마리 이상의 꿀벌이 사라졌다고 한다. 환경오염으로 기후 변화가 찾아왔고, 개화 시기 불안정으로 꿀벌의 활동기간이 줄면서 생존 위협까지 받는 것이다. 현재 단체의 활동으로 시민들이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아직은 부족하다. 황 회장은 “갈수록 자연이 오염되어 가지만, 현실 체감은 적은 편이다. 환경이 더 파괴되면 되돌릴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함께 마음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골 촌놈, 도시 상경 후 신심(身心) 단련 황 회장이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75년부터다. 어느덧 48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부모님의 투철한 교육철학으로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 그는 경상도 말투를 썼고, 학교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또래 아이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시골 촌놈’이었다. 그래서 놀림도 잘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건강해져 가니, 스트레스도 날릴 수 있었다. 훗날 그는 태권도 체육관을 운영했다. 체육관이라보니 종종 아이들이 부상당기도 했다. 지압도, 치료도 그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대체의학인 ‘침술’에 관심을 갖고 배웠다. 어느새 그의 실력은 입소문을 탔다. 몸이 약한 동네 어르신들도 그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그의 인생에서 재능기부가 시작됐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봉사자들이 힘을 합치면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황 회장과 뜻을 모으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현재 그가 활동하는 단체는 소속 회원들의 순수 자비로 운영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회원들이 있기에, 상생과 배려가 무엇인지 주위에 본이 되고 있다. ◆‘78 대 22’ 법칙 외치다 과거 그는 섬유 계통 분야에서 사업을 크게 했다. 하지만 직원에 의해 불미스러운 일이 휩싸였고, 사업이 실패해 심적 고통을 받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 그는 사람의 마음이 돈보다 훨씬 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현시대에서는 사익(私益)이 중요시된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이도 많다. 황 회장은 이런 시대일수록 ‘78 대 22’ 법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법칙은 세상 곳곳에서 적용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바다와 육지의 면적 비율이 ‘78 대 22’이고, 사람의 인체도 수분과 수분을 제외한 비율이 ‘78 대 22’다. 가로•세로 각각 10㎝ 정사각형 안에 원을 그려도 비율이 ‘78 대 22’가 된다. 황 회장은 “세상의 이치와 같이, 삶 속에도 78%는 자신을 위해, 22%는 남을 위해 산다면 밝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흔히들 ‘돈이 있어야 봉사를 할 수 있지 않냐’고 그에게 물어오고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지닌 재능이 다르며, 재능기부로 얼마든지 봉사가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예컨대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도 봉사인 것이다. 이처럼 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황 회장도 서울, 원주, 대구 등을 다니며 수시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괄사(刮痧) 봉사’ 시술로 도전한국인운동본부가 공식 인증한 대한민국 괄사 명인이기도 하다. 괄사란 우리 몸 안에 쌓인 독소를 배출하고 막힌 혈을 뚫어 순환시켜 질병을 예방하는 가정요법이다. 그는 앞으로도 봉사와 함께하는 삶을 꿈꾼다.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농어촌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봉사를 하길 원했다. 이처럼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고 미래를 계획하는 그는 참된 봉사인이었다.

[인터뷰] ‘버즈 라이트이어’ 음악, 드라마에 이어 애니메이션까지 정복한 한국인들

최근 한국문화(K-Culture)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관심도가 높다. K-POP부터 시작해 영화, 드라마, 역사까지 다양한 곳에서 재능있는 한국인들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가운데 세계적인 영화사 디즈니-픽사에서 애니메이터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만났다. 바로 전성욱 레이아웃 아티스트와 이채연 애니메이터다. 8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이들은 오는 15일에 개봉하는 디즈니-픽사의 버즈 라이트이어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이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토이 스토리의 첫 번째 스핀오프 작품으로 무려 5년 6개월에 걸쳐 제작됐다. 조금 더 사실적인 우주 공간을 담기 위해 NASA(나사, 미합중국 항공우주국)와 협력했고 스타워즈 스타트렉과 같은 8090시대의 SF 작품을 오마주한 내용도 함께 담겼다. 이 가운데 전성욱 레이아웃 아티스트는 영화 촬영을 담당했고 이채연 애니메이터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전성욱은 루카 이터널스 샹치 등에 참여했으며 이채연은 스퍼이더맨: 뉴 유니버스 앵그리버드2 등에 참여했다. 또 내년 개봉 예정인 한국계 피터 손 감독의 굿 다이노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번 작품 과정에 대해 전성욱은 이번에 영화 촬영을 담당하면서 SF 장르의 영화이기 때문에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애니메이션 최초로 가상 카메라를 개발해 액션 장면에 사용했다. 박진감 넘치고 광활한 우주를 표현하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채연은 스페이스 슈트를 캐릭터들이 항상 입고 있어서 무게감이 표현되도록 신경썼다면서 심플하지만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에일리언 스타워즈 등을 분석하면서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닌 실사 영화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해 전성욱은 너무 많다면서도 예고편에 등장하는 버즈와 저그 로봇이 싸우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작은 버즈와 큰 로봇이 싸울 때 어떻게 박진감 넘치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이채연은 고양이 캐릭터 삭스가 나오는 장면을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애니메이터들, 디자인 팀 모두 노력해서 정말 사랑스럽게 잘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토이 스토리의 스핀오프로 나온 이번 작품에 참여한 소감에 전성욱은 첫 토이 스토리를 극장에서 봤다. 그때부터 3D 애니메이션 장르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 참여할 때 남달랐다. 버즈의 특별한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스타워즈 같은 1980~90년대 SF 영화를 참고하면서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한 해를 다 쏟아부으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굉장히 많이 성장했다. 모두가 수평적으로 일하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면서 많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이채연 역시 비현실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회사에 들어오기 전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을 때 큰 서프라이즈로 다가왔다. 버즈를 애니메이션하고 있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토이 스토리를 맡았던 감독님과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영화에 참여한다는 것에 큰 영광이었고 토론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디즈니-픽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이들은 이번 작품에 더 많은 한국인들이 함께했다고 말했다. 전성욱은 디즈니-픽사에 활동하고 있는 한국분들이 여럿 있다. 픽사는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곳으로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잘 모르겠지라고 보는 것보다 우리의 문화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면서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도 혹시 우리는 이런 것들이 있는데 너희는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등의 질문을 받으면서 소통했다. 지금 준비 중인 피터 손이라는 한국계 감독님도 함께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채연은 픽사에 활동하는 한국인들이 정확하게 몇 명 있는지 모르겠지만 10명은 훨씬 넘는다면서 이번 작품에도 3~5명 정도 참여했다. 한국인들을 보면 서로 모르더라도 동지애가 느껴져 자랑스럽고 더욱 책임감도 느낀다. 또 커리어를 잘 쌓고 있는 선배님들을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고 뿌듯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회사의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을 향한 조언도 이어졌다. 전성욱은 꿈을 이루지 못할까 해서 주저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한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 따로 준비해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애니메이션 외 다양한 장르의 영화도 많이 보고 애니메이터로서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고민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애니메이터 역할로 이채연 역시 항상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애니메이터는 남녀노소, 직업에 상관없이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을 축적해놓으면 나중에 어떤 작업을 해도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꿈이 있다면 도전을 많이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도전해도 후회하고 도전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라면 도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목포 근대역사관 탄생시킨 주역 정성길… “죽은 동네 살려놨더니, 난데없이 손혜원이 구들목 차지”

96년전 전남 목포에 설립(1926년)된 호남은행 건물이 근대역사문화공간 관광거점이자 목포의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있다. 목포시는 이곳 호남은행 목포지점 옛 건물을 2014년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이곳은 근대역사의 보물창고라고 불릴 만큼 근대역사를 사진으로 한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으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주변 상권도 형성돼 점점 근대역사문화 특화거리로 변모하며 지금의 목포시를 대표하는 장소가 됐다. 이같이 되도록 그 역할을 톡톡히 한 주역이 바로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다. 그는 지난 2013년 이 역사전시관에 구한말과 1900년대 초 우리나라의 역사는 물론 목포의 역사까지도 볼 수 있는 120여점의 근대사진을 무료로 기증하며 지금의 목포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가 있는 인물이다. 대구 출신인 정 연구가가 영호남의 화합과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이 뜻깊은 사업에 기꺼이 헌신했으나 이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이곳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되면서 손혜원 전 의원이 사업구역에 포함된 14억원 상당의 부동산(토지 26필지, 건물 21채)을 지인과 재단 등이 매입하도록 한 투기혐의를 받고 있다. 그중 일부(토지 3필지, 건물 2채)는 손 전 의원이 조카 명의를 빌려 사들인 것으로 검찰은 밝혔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손 전 의원은 제2의 고향이 된 목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목포를 최고의 관광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손 의원의 행보에 정 연구가는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목포를 근대역사관 특화지역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은 자신인데, 투기 의혹이 짙은 손 의원이 마치 자신이 목포를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진실은 밝혀야 할 것 같다며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정 연구가는 정종득 전 목포시장이 시장 시절 자신을 찾아와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 문화행사를 하자며 근대역사관을 만드는 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좋은 취지라 희생하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정 전 목포시장은 삼고초려 이상으로 대구에 있는 정 연구가를 계속 찾아와 간곡하게 요청했고, 정 연구가도 끝내 마음이 움직이며 돕게 됐다. 정 연구가는 당시 대구에서 목포까지 교통이 지금처럼 좋지 않음에도 계속 수십번을 오가며 전시할 수 있도록 귀중한 근대사진을 기증했다. 이 사진들은 정 연구가가 30년 넘게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의 사재를 다 팔아가며 모은 귀중한 사진들이다. 정 연구가가 이같이 평생 모은 기록사진은 7만여점이다. 이런 사진을 대가없이 정 연구가가 목포시를 위해 아낌없이 기증했고, 전시 모든 준비과정까지 직접 신경쓰며 근대역사관이 개관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 근대역사관 주변에는 식당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죽은 동네나 다름없었다고 정 연구가는 회상했다. 정 연구가 덕분에 목포시는 2014년 근대역사관을 개관했고, 개관식에서 정 전 시장은 정 연구가에게 문화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에 감사패를 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후 정 연구가는 목포시민회관에서도 120여년전 기록사진 전시를 열었고, 더불어 900여점의 기록사진이 담긴 책자 일제침략시대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도 정 전 시장은 정 연구가에게 감사패를 주며 거듭 목포시를 위해 헌신하는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근대역사관을 중심으로 볼거리가 생기자 지역이 활력이 생겼고 지금의 목포시 랜드마크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정 연구가가 돕지 않았다면 사실상 지금 같은 발전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 연구가의 공로는 오간데 없고, 이를 손 전 의원이 마치 자신이 발전시킬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불거지는 장소가 됐다고 정 연구가는 분개했다. 그는 영호남 화합 취지로 목포시에 죽어 있는 동네를 살려주고 활력소를 불어넣어줬는데, 그런 참뜻이 손혜원씨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희석됐다. 손씨가 마치 자신도 박물관을 한다면서 사실상 권력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는데, 내가 그렇게 활성화 시키지 않았다면 투기도 못했을 것이라면서 영호남 화합을 위해 교류하면서 바람을 불어넣으니 난데없이 손씨가 갑자기 나타나서 구들목(온돌방에서 아궁이 가까운 쪽의 방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 연구가는 과연 손혜원씨가 목포시를 위해 나무 한그루라도 심었는가, 전혀 목포시를 위해 한 것이 없다. 목포시를 위한다면 나무 한그루라도 심던가, 건물에 페인트칠이라도 해야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거다면서 말만 앞세우고 부동산 투기 의혹만 있을 뿐이지, 목포시를 위해 전혀 한 게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한손혜원씨가 기자회견을 할 때도 목포 이곳이 전에는 죽어있는 곳이었으나 어떤 사연으로 인해 이제는 활성화돼 다행이라는 말을 먼저 해준다음 자신이 이제는 어떻게 해결을 하도록 하겠다라는 그런 내용들을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땅을 사게 된 동기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이것은 타당성에도 안맞고 정치적으로 이용을 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정성길 사진연구가가 영호남 교류의 교두보를 놓은 이후 대구 중구와 목포시는 자매도시가 되기도 했다. 정 연구가의 행보는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도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한편 2014년 목포 근대역사관 개관 이후 2년 뒤 전남 함평군에서도 소식을 듣고 정 연구가에게 부탁이 왔다. 함평나비축제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이석현 당시 함평군수도 정 연구가가 있는 대구로 몇 번을 찾아와 자기지역도 목포처럼 도와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번에도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정 연구가는 함평군에도 100여점의 근대사진을 무상 기증하며 박물관 조성에 도움을 줘 나비축제가 큰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함평군의 브랜드 이미지를 올리는 데도 역시나 정 연구가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함평군은 정 연구가의 기증사진을 직접 운반하러 대구시 자택에 방문했을 때 야외에서 풍물놀이와 굿 등을 펼치며 감사함을 표했다.

[인터뷰] 인문학에서 종교란?… “의식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십자군 전쟁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관람객의 뇌리를 파고든 의미심장한 대사가 있다. 20만 대군을 끌고 쳐들어온 이슬람 살라딘과 예루살렘성을 지키는 발리안의 최후 협상에서 발리안이 살라딘에게 묻는 예루살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살라딘은 nothing and everything(아무것도 아니야. 모든 것이기도 하고)라고 답한다. 예루살렘의 의미에 대해 모호한 답으로 의미를 포괄해버린 살라딘의 말처럼, 사람들은 인문학에 대해 좀처럼 정의 내리기 어려워했다. 수학공식처럼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기도하고,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으로 인문학의 시류를 만들었다. 작가이자 독서 경영 전문가로 알려진 안계환문명연구소 안계환 소장은 과연 인문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3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안 소장을 만났다. 먼저 안 소장은 인문학에 대해 리더가 될 수 있는 공부이자, 자기 생각이 홀로 설 수 있는 공부라고 말했다. 그는 곧잘 한 단어에 꽂힌다든지 냄비근성이라든지 어느 한쪽으로 생각이 쏠리거나 치우치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것은 어른의 공부를 하지 못해서라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해온 안 소장은 한때 벤처 창업인이었다. 회사를 박차고 나오게 된 이유는 공부를 안 하는 상사를 공부하는 부하가 섬기기 어렵더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는 공부가 재밌었다. 게다가 강사로 뛰어보니 의외로 떨리지 않았고, 오히려 무대체질이었다. 대학 강단에서 강의도 하고 독서코칭 전문가로서 10여 년을 보낸 후 지금은 동서양의 인류문명을 종횡무진 탐구하며 다양한 콘텐츠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 사이 낸 책이 벌써 10여권이 넘는다. 안 소장이 말하는 어른의 공부란 무엇일까. 이는 영어 수학 등 학교 공부가 아닌, 자기 생각이 홀로 설 수 있는 모든 공부를 뜻했다. 흔히 인문학 공부는 무엇이며, 무엇을 공부하는 것이 인문학이냐고 묻지만, 안 대표는 인문학 공부는 타인에 의해 주제가 정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디서 출발하든 그게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정해질 필요가 없다면서 책, 여행, 유튜브, 사람 가릴 것 없이 자기만의 주제를 찾아서 깊이 공부하면 그것이 인문학이라고 강조했다. 안계환문명연구소 안계환 소장이 인문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6.14 -그렇다면 종교도 인문학인가? 그렇다. 나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인간이 아니다. 종교적 인간의 전형은 우리 어머니 같은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젊어서 토속신앙을 가까이하시다가 마흔 넘어서는 교회를 가시더라. 깊이 무언가를 추구한다. 나는 귀신을 무서워해본 적도 없고 교회 정식 등록 교인이지만 무신론에 가깝다. 역사나 종교를 들여다보면 오류가 보이고 장단점이 보여서 생각과 마음이 어딘가에 빠지질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종교도 이론을 주로 탐구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나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게 종교다. 종교는 그 민족의 문화다. 때문에 문화는 종교이다. 유럽과 중동은 사실 그들의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을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알려고 할 때 도교와 유교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철학자들 니체, 칸트, 데카르트 등 그들의 문법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다 느낄 것이다. 신이라는 관용구를 빼버리고 인문철학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19세기 이전에는 다 기독교적 사고관 안에서 살았다. 20세기에 와서 강제로 그 주어인 '신'을 빼고 글을 보니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철학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종교적 사고관이 그 바탕에 있다. 종교가 없다고 해도 그 문화권 안의 종교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그렇다. -종교는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가? 나는 동서양 문명사를 가르쳐왔다. 그 공부를 바탕 해서 볼 때, 유럽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그 수명을 다했고 경쟁력이 없다. 그들이 이때껏 잘 먹고 잘 살아 왔던 이유는 식민제국주의 아래 착취하고 약탈한 자원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유럽여행에서 보는 이질적인 풍경은 오후 서너시면 문 닫는 회사와 상점들이다. 그사이 우리 동아시아 민족들은 부지런히 살았다. 제조업, 자동차, IT 기술 할 것 없이 많은 기술에서 그들을 앞선 지 오래다. 그런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아쉬운 게 글로벌 마인드다. 제국이 돼 본 적이 없는 나라여서인지 뉴스부터가 다 한반도에 머물러 있다. 선진국 국민으로서 필요한 사고는 지구촌 전체이다. 지구촌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선도해 나가야 하는데, 넓은 시각 자체가 부족하다. 한류 콘텐츠? 그 분야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좁은 안목을 넓히는데 가장 필요한 콘텐츠가 무엇인가. 다른 나라와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큰 키워드가 종교라는 얘기다. 때문에 나는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의 탄생 배경 등 그 본질에 대해 가르치고 논하려는 것이다. 종교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중동을 특히 잘 모른다. 손해인가? 큰 손해이다. 중동을 우리는 모를뿐더러 잘 못 보고 있다. 중립적이지 못하고 서구적 시각에서 치우쳐 봐왔다. 16억명의 이슬람을 다 테러범으로 보고 있는 이 상황은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래도 최근에는 유튜브와 SNS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경험한 덕분인지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 못 보고 있나?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교과서에는 유럽의 세계관이 담겼다. 일본에서 유럽의 지식을 번역해 교과서를 만들었고 그것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그대로 들여왔다. 해방 후에는 미국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대학교수 70~80% 이상이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유학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사람들의 행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행했던 모든 것이다. 이 사고방식에서 보면 이슬람 아랍 국가는 적국이다. 세상을 왜곡해서 보고 있다. 기독교인은 세계관에 더해 종교까지 가세해서 그 편협함이 더 심각하다. 서양문명은 이슬람 문명과 1000년 이상 전쟁해왔고, 기독교는 19세기 이전 피해를 많이 입었다. 20세기부터 역전이 된 것인데, 우리는 기독교와 서양문명의 가진 자의 입장에서 우리 생각과 관점이 정리된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미국인처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 내 이단 분쟁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경서에 대한 각자의 해석에 따라 교단과 교파가 나뉘는 것인데,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 종교개혁 이후 즉 개신교는 다 같은 입장이라고 본다. 인간은 종교를 버릴 수가 없고 생각이 하나가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싸우는 본질적인 이유는 정치적 헤게모니와 밥그릇 싸움이다. 인문학도 그렇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70억 개의 자기 생각이 생긴다. 다 자기 생각이 있다. 패권이 생기는 것도 사실 뚜렷한 해법은 없다. -인문학의 푯대와 방향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인문학은 앞서 말했지만 자기의 주관을 세우고 생각을 갖기 위한 도구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게 아니라 주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다. 특히 인문학적 가치관이 없이 리더가 되면 큰 문제다. 편향되고 단절되고 소외되기 때문이다. -안계환의 인문학 도구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계열의 학자도 아니고 공대생 출신이다. 그렇지만 학자가 하지 못하는 인문학을 한다. 자기 전공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 학자들의 특유의 경계가 없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는 철학 수학 과학을 한 사람이 다 했다. 19세기 이후 학문이 서로의 담장을 넘지 못한다. 학자로서는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의 입장은 다르다. 대중들에게 전달할 때는 칸을 넘어야 한다. 그 담장을 넘게 만드는 좋은 도구가 나에게는 지도와 현장이었다. 지도를 통해 문명의 발전과 쇠퇴를 들여다보니 정말 재미가 있다. 일차원적인 지도와 현장을 조합하면 정확한 시각이 생기게 된다. 언택트 시대가 와서 온라인 강연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온라인 강연은 이점이 확실히 있다. 하지만 인간은 비이성적인 존재기 때문에 지금 코로나 시대가 지나면 오프라인 문화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 본다. 온 오프의 적절한 조합이 될 것 같다.

[피플&포커스] “시대적 사명 갖고 세계가 인정한 전통무예 널리 알릴 것”

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 김동희 대표 휙휙~.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안개에 둘러싸인 숲에서 키 큰 한 무사가 제 키를 훌쩍 넘는 장검을 들고 휘두를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난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절도 있는 동작과 깊이 있는 눈빛은 마치 무협영화에서나 볼법한 호위무사를 연상케 한다. 무사의 동작 하나하나가 보는 이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이 무사는 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을 이끄는 김동희 대표(52)다. 김 대표가 무술의 세계에 입문한 지도 어느덧 30여년이 됐다. 고등학생 시절 태권도 7단, 검도 7단 도합 14단 유단자가 된 후 검을 잡으면서 전통무예에 매료됐다. 이후 창, 활까지 다루게 됐다. 그는 지난 2017년 남한산성 전통무예 수련원 사업자를 내고 다음 해 남한산성 무예촌 법인과 체험학습장 사업자를 냈다. 28일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남한산성에서 김동희 대표를 만났다. -무예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한국 고유의 전통 검법 본국검법을 25년 정도 수련했다. 주특기는 진검베기다. 스승은 본국검의 전승자 (사)대한본국검협회 이대산 회장이다. 현재 대한전통무예진흥회경기도 지부장, 대한본국검협회 운영 위원장을 맡고 있다. -남한산성 전통무예 설립 목적은. 우리 민족의 가치와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모든 전통무예(본국검, 택견, 국궁 등)를 한 곳에서 배우고 시연할 수 있도록 설립한 단체다. 우리 전통무예가 타문화의 무예와 섞여 점점 그 고유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전통성을 잃어가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이에 10여명의 무사들이 시대적 사명을 갖고 남한산성에서 뜻을 같이 했다. 또한 북한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병서이자, 한중일 삼국의 서적 145종을 정리한 종합 무예교범서 무예도보통지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에 대한민국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 필요하기에 무예도보통지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 활동은. 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이라고 하는 10여명의 무사단이 있다. 이들 무사들은 세계적인 무술인들이 모여 실력을 뽐내는 충주세계무술축제에서 여러 번 입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무사들과 함께 설립 목적에 따라 후손들뿐만 아니라 세계에 우리 전통무예를 전하고 있다. 충주세계무술축제 출전 준비를 위해 연습 중이다. 또한 성남시 예술인총연합회, 재향군인회, 만해기념관 등 20여 단체와 협약식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 등 전통무예에 관심을 갖고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중에는 외국인도 전통무예에 흥미를 갖고 배우러 오고 있다.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 있다면. 광주시교육청에 소속돼 전통무예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100명이 이쪽으로 수학여행을 왔다. 그 학교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색다른 것을 체험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광주의 유명한 한 도자기공원에서 글램핑체험장을 만들고 장군복, 곤룡포, 관복 등 수십 벌의 전통의상과 활, 검, 창 등을 준비해 갔다. 학생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활, 검, 창을 들고 무술체험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 과정에서 단지 무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도 배워가도록 했다. 반응이 너무 좋았다. 이후 여기저기서 체험학습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터졌다. 지금 몇 개가 예약 중이다. -남한산성에 오면 이순신 장군 검이 있다고 들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장 이순신 장군님의 정신을 최고로 생각한다. 이에 상징적인 의미로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쌍수도와 아주 흡사한 검을 만들었다. 남한산성에 와서 이 검을 들어보고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앞으로 목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은 시대의 아픔이 깃든 민족의 수호 산성이다. 수도권에 위치하고, 역사적 의의가 있는 이곳 남한산성에서 세계의 고수들이 모여서 무예대전을 펼쳐, 우리 무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무예인들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다. 이를 위해 무사들과 함께 숨은 무예인들을 찾고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전통무예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받았을 때, 나라를 지키고 민족을 단합시킨 호국정신과 민족정기가 깃든 전통문화다. 그럼에도 전통무예는 서양에서 들어온 스포츠문화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다. 시, 도 등 지자체를 비롯해 국가적 차원에서 전통무예가 발전 계승해 나가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미학 스캔들’ 펴낸 진중권 “예술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이 책을 읽어라”

이 책을 읽기 전에 현대미술에 대해 말하지 말라. 최근 진중권 교수가 펴낸 미학 스캔들의 표지에 적힌 글이다. 진 교수가 굳이 넣어달라고 요구한 문장이라고 한다. 그는 왜 현대미술에 대해 말하게 됐는가. 이는 지난 2016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조영남 대작 사건과 연결된다. 진 교수는 당시 사건을 한국 미술계의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소극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건이 던진 교훈만은 놓치지 말라는 의미에서 현대미술을 논하고, 대작 사건의 1심 판결 이후 쏟아진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을 담아 미학 스캔들을 펴냈다. 현재 조영남은 1심에서 유죄, 2심은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의 선고만을 남겨놓고 있다. 지난달 27일 진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진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출판 후 반응은 어떤가. 아직 반응은 없다.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라 반박할 것이 없을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뒤샹이 개념 혁명을 일으켰는데, 지금 한국 미술계는 개념 혁명의 의미를 모른 채 현대미술을 논하고, 논문을 쓰고, 작업하고 있다.이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 역학에 대한 이해도 없이 물리학 교수를 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어처구니가 없다. 반박이 나왔으면 좋겠다. - 한국미술의 현대미술의 지식에 대한 부재는 어디서 온다고 보나. 교수들이 교수직을 기능이 아니라 신분으로 본다. 이론가들은 연구와 현실을 연결하는 감각이 없다. 서구에서는 여러 가지 예술적 실천과 비평, 문제 제기를 통한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이론이 나온다. 그런데 한국의 소위 말하는 이론가나 교수들은 이런 과정이 부족하다 보니 이론과 현실이 연결이 안 된다. 반면 예술가들은 이론을 모른 채 외국의 예술을 따라 한다. 그러다 보니 그림만 예뻐지고, 예술이 노동 집약적으로 변한다. - 현대미술의 부재를 허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미술사를 안 배우는데 어떻게 현대미술을 알겠는가. (예술가들은) 외부에서 하는 것을 보니 깊이는 없는 상태에서 겉멋만 든다. (교수들은 실행과 이론이) 연결된다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논문 쓰고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이런 상태가 코미디다. - 대중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대중들은 화가가 직접 모든 작품을 그린 시기는 인상주의 시대로 아주 짧은 기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역할을 비평가들이 해줘야 한다. 예술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작가는 발신자, 작품이 메시지, 해독자가 관중이라면 해독자의 상층부가 비평가다. 이들이 나서서 말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 쓴소리를 도맡아 오고 있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오나.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친구들이 에베레스트를 에레베스트라고 한다거나 배의 스크루를 프로펠러라고 하면 고쳐줘야 성이 찼다. 또 우리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라고 이론가가 있는 거다. 정작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안 하면 안 된다. 아닌 건 아니다. 거기 맞춰줄 생각도 없다. - 출판 이후 행보는. 감각론, 감각으로 본 미술사, 감각의 사회학으로 구성된 감각 3부작을 준비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예술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이 책을 읽어라. 고전에 관심이 있든, 현대에 관심이 있든 이 책을 읽고 나서 뭐든 쌓아라. 지금은 정리가 안 된 난장판 상태다. 강력히 권한다. 읽고 나서 무엇을 읽을지, 미술이 어떤 논리로 발전해왔는지 알면 미술사에 대한 체계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피플&포커스] “주52시간 성공하려면 역할·책임 중심으로 기업 문화 바뀌어야”

내년 1월부터 50~299명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정부는 지난 18일 해당 기업들에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나 기관에서는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업무 생산성에 대한 고민이 많다. 때문에 이러한 변화된 업무환경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업장을 위해 성과코칭을 하고 있는 ㈜성과코칭의 류랑도 대표를 만났다. 류 대표는 지난 23년간 조직과 개인이 원하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개념을 정의하고 핵심프로세스와 템플릿을 고안하며 방법론을 전파해 왔다. 그는 주 52시간제 시대를 맞아 상사 중심의 관리의 시대가 끝나고 실무자 중심의 자율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더 이상 상사가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역할(Role)과 책임(Responsibility)을 통해서 일하는 방식으로의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류 대표는 개인의 자율책임경영 방식과 리더의 성과코칭을 바탕으로 한 권한위임 방식이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핵심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 연장근로 한도 12시간 내에서 추가적으로 1주 최대 52시간을 일할 수 있는 제도다. 이를 초과해 근로한 경우 법을 위반하게 된다. 때문에 기업이나 기관 입장에서는 줄어든 근무 시간에 올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심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근무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업무량도 비례해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 대표는 이러한 변화에 일하는 방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일하는 프로세스, 업무양식, 일에 대한 정의 등이 명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주관 업무 회의가 아니라 주간 성과 회의, 업무 계획서가 아니라 성과 기획서라고 하는 등 회의의 명칭, 서류의 명칭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일을 하기 전에 역할과 책임(R&R), 전략, 자원을 기획하고 시작해야 주 40시간을 효율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과는 고객의 니즈(needs)와 원츠(wants)를 사전에 합의하고, 그것을 통해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사전에 정의하고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며 성과에서는 항상 수요자 사전합의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했다. R&R을 효과적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항상 팀의 연간 성과목표와 달성전략, 그리고 팀원들의 R&R이 모두 전략적으로 연계되도록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류 대표는 팀장, 임원들은 일을 실행하는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해 주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간 관리자들은 실행하는 사람의 역할에 대해 코칭하고 일에 대한 결과를 피드백 등 일련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대표가 말하는 성과코칭은 무엇일까. 그는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이 자신의 성과목표를 주도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며 평가, 피드백 과정 등을 거쳐 실질적인 성과향상을 위한 방법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일상생활이나 개인 자질에 관해 관계지향적인 관점에서 행하는 피플 코칭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때문에 성과코칭에는 권한위임이 전제가 된다. 그는 성과코칭은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역할과 책임을 권한위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의무사항이라며 기간별 역할인 과제를 부여하고 원하는 결과물인 목표를 합의하고 목표와 전략을 설정하는 플랜(plan) 단계에서 성과코칭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분기, 월간, 주간, 일일 과제와 목표가 제대로 됐는지, 환경변화에 따라 롤링플랜은 제대로 적용됐는지 수시로 성과코칭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지난 20여년간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 보급해 왔다. 이런 부분에 대해 기업들은 잘 갖추고 있지만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류 대표는 시스템 보다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조직을 운영하는 당사자의 매니지먼트 스킬과 일하는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좋은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류 대표는 시스템을 제도화 하는 것에서 사람을 코칭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그는 미래의 이상적인 조직의 문화에 대해 리더는 리더답게 조직의 혁신을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리더에 기대지 않고 자기 스스로가 주어진 일들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자기완결적으로 일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대표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외부 환경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했다. 류 대표는 기업의 성과가 창출되지 않는 원인은 외부 환경보다는 조직 내 문제가 더 크다며 실무자에게 어떻게 일하는 방식을 훈련시킬지, 일 잘 하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평가해주고 보상해 줄지 등의 메커니즘을 잘 만들면 문제없다고 말했다. 일하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물질적인 결과물에 대한 견해도 언급했다. 류 대표는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비전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매니지먼트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통해 자신 스스로가 일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플&포커스] ‘믿고 보는 연극 연출가’ 강봉훈 … “호기심이 내 원동력… 경험하고 부딪혀라”

보통 연극의 3요소라 하면 희곡, 배우 그리고 관객을 꼽는다. 희곡(대본)이란 도화지 위에 배우의 연기로 그림이 그려지면 관객들은 희곡의 흐름에 집중해 사건을 따라가고 배우의 숨소리를 느끼며 함께 호흡한다. 특히 관객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배우와 더불어 공연 기획자, 연출가, 작가 등 수 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하다. 그 중 연출가는 관객에게 있어 시각적인 요소를 만드는 데 총괄적인 역할을 한다. 연출에 대한 애정으로 연극과 뮤지컬 등을 넘나들며 30년째 다양한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연극연출가 강봉훈 플레이커뮤니티 대표를 지난 7일 만났다. 고향이 전주라는 강 연출가는 어렸을 적부터명량한 성격이었다고 소개했다. 처음 공연에 눈을 뜬 건 고등학생 때였다. 공부도, 학교도 재미없게 느껴졌던 찰나에 우연히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학예회를 하게 됐다.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것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신세계를 느낀 강 연출가는 그 후부터 남들과 다른 연극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강 연출가는 학예회서 배우를 하다 보니, 연극을 이뤄가는 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배우는 단순 연기만 하면 됐지만, 연출 같은 경우 조명, 음향 등 재밌는 요소들을 다룰 수 있다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 그 때부터 강 연출가는 연출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살을 맞은 강 연출가는 진로를 앞두고 공부를 안하고 연극만 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생각해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생각했던 대로 학교생활은 무탈했지만 연극 연출의 전문가가 되기에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22살, 전공을 바꿔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시한번 입학했고, 이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 협동과정을 밟으며 연출가에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됐다. 연출가로서 포부를 품은 강 연출가는 30년간 닥치는 대로 연출 작업을 해왔다. 2007년 뮤지컬 쉬어 매드니스 2008년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 2009년 Cj청소년 연극 페스티벌 연 공동연출 2011년 아동극 마농의 오르골 가게 2013년 개방형 토론연극 시비노자 등 연극뿐 아니라 현대무용부터 뮤지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공연이 부르면 달려갔다.더욱이 그는 연출에 국한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대본까지 쓰는 극작가로서도 활동했다. 현재는 연출뿐 아니라 아마추어 배우들의 연기코칭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정말 누구보다 열일(열심히 일하는 중)을 해온 셈이다. 그가 연출한 많은 작품 중 쉬어 매드니스는 국내에서 관객 참여형 연극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많은 국내 관람객의 호평을 받았다. 쉬어 매드니스는 미국 시카고 초연으로 국내에선 강 연출가의 손을 거쳐 재탄생했다. 연극은 살인사건 용의자를 찾는 과정을 그리는데, 관객은 각 인물의 알리바이를 들으며 범인을 추리해나간다. 정해진 결말이 없는, 관객이 어떤 결론을 지었건 전부 정답이 될 수 있는 멀티엔딩이다. 강 연출가는 쉬어 매드니스연출의 경험이시비노자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쉬어 매드니스의 특징이 추리라면 시비노자는 토론이라고 할 수 있다며 같은 관객 참여 연극이지만 참여 방식에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시비노자는 강 연출가가 대본을 집필하고 연출까지 나선 작품으로 2003년 초연했다. 새아버지를 살해한 소녀의 유무죄를 국민배심원단이 다투는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시비노자는 연극을 통해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묻고 관객들이 내린 결론에 따라 극을 마무리한다. 이에 따라 시비노자 2부는 배우가 무대에서 객석에 토론을 요청하는 것까지가 대본의 끝이다. 이후 관객과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연극을 스토리가 결정된다. 강 연출가는 작품에 메시지를 담을 때 주로 키워드부터 떠올려서 이어간다. 희생 진실 정의 등이 그 키워드다. 이러한 키워드는 그가 살아왔던 배경과 연관됐다. 비슷한 배경에서 살아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그의 뜻이 담긴 셈이다. 일례로 그의 작품 중 아동극 마농의 오르골 가게는 희생이란 의미에 관점을 맞췄다. 주인공 눈사람 마농이 지구 온난화가 찾아온 마을에 더 이상 눈이 오지 않게 되자 본인을 희생해서 눈을 내리게 한다는 다소 슬프고도 감동적인 내용이다. 강 연출가는 희생엔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주제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시비노자의 경우 토론을 통해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라는 메시지를 주고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강 연출가가 연출가의 길을 걸어오는 데에는 즐겁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준비하면서 1년에 고작 200만원을 번적도 있었고, 중국 현지에서 연극을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무산돼 연출비를 다 날린 적도 있었다. 힘겨웠지만 작품은 또 살아갈 에너지를 주곤 했다. 연출가로서의 힘든 길에도 연출가의 길을 고집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연출만큼 재밌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는 연출의 원동력이 호기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궁금한 게 생기면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도서관이나 전시회장을 찾기 일쑤였다고 했다. 재밌는 것을 찾기 위한 강 연출가의 도전은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그는 각분야에서 오랜기간 경력을 쌓아온 스탭들로 구성된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룹인 플레이 커뮤니티의 대표로문화예술의 발전과 창조적인 콘텐츠 생산을 목표로 또 다른 획기적인 공연을 준비중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연출가를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강 연출가는 단순이 연출가라는 직업이 주는 겉모습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진정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했다.

[피플&포커스] “한복의 멋, 원단에도 있습니다”… 젊은 디자이너, 상식을 깨다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갓을 쓴 흑인 남성이 보인다. 섬세한 수를 놓은 검은 색 한복 정장과 붉은 배경이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한복 원단으로는 정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김리을(27, 본명 김종원)의 한복이다. 한복의 멋은 원단과 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름다운 한복 원단에 집중해 옷을 만듭니다. 브랜드 김리을은 한복 정장을 입은 흑인 화보로 SNS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전통한복을 새롭게 계승한 젊은 디자이너의 행보는 꾸준한 러브콜을 받았다.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제이블랙, 가수 타이거JK, 모델 한현민 등 셀럽들이 그의 한복을 찾았고, 광복절을 맞아 최초로 한복 농구복을 디자인해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열린 BY대한민국 팝업스토어의 메인 전시를 맡은 디자이너 김리을을 만나 한복에 대해 들어봤다. - 상당히 젊다. 한복 디자인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3년 전인 25살에 디자인을 시작했다. 한복 원단은 바느질이나 수선 등 다루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장을 만들 때 사용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기에 한복 정장을 만들 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3~4개월간 많은 분을 만나 부탁한 끝에 한 한복 장인의 도움을 받아 첫 의상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한복 정장을 만들게 된 이유는. 21살에 해외 여행을 갔을 때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는 외국인들을 보며 자부심을 가졌는데, 한편으로는 아이폰을 쓰고 있는 스스로에게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한 외국인 친구에게서 한복 원단은 예쁜데 불편해서 너도 안 입는구나라는 말을 듣게 됐다. 21세기 사람들에게 19세기 전통 한복을 입히니 불편하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예쁜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브랜드명을 왜 김리을이라고 지었나. 브랜드명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우리 훈민정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외국인에게 리을(ㄹ)을 보여주면 외국인들은 숫자 2라고 읽는다. 그러면 ㄹ이라고 고쳐주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 김리을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3년 전에는 문화에 한복을 입히다. 21세기 한복을 만들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면, 올해는 한국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한복을 만듭니다에 초점을 맞췄다. 한복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중국산 원단을 사용해 옷을 많이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이 들더라도 한국 원단을 사용해 한복을 제대로 만들려고 한다. - 한복 정장을 내놨을 때 한복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말이 많았을 것 같다. 한복의 멋은 원단과 선, 두 가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개량한복은 선을 살리되 일상생활에서 입기 편하게 소재를 바꾼 것이라면, 우리는 원단을 살린 것이다. 선이 다른데 한복 정장이 한복이 맞는가 라고 말한다면 반대로 원단이 다른데 개량한복은 한복이 맞는가 라고 반문해볼 수 있다. - 김리을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올해의 목표가 항상 새로운 한복을 만든다이다. 한 원단으로 한 벌만 만들다 보니 그동안 작업한 작품들도 모두 갖고 있다. - 제작했던 작품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여자 의상을 만들었는데 좀 크게 제작이 된 일이 있다. 댄서 제이블랙이 걸리쉬(girlish) 댄스를 출 때 제이핑크라는 이름을 쓰는데, 마침 제작된 의상도 핑크 색상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옷을 드린 것이라 기억이 난다. - 한국을 알리는 분들에게 옷을 선물한다고 들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이종배 작가에게도 연락을 받고 한복을 드린 적이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 우리 독립운동가 대형 벽화를 그려 화제가 된 분인데 한복을 입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렇게 한복을 입고 한국을 알릴 분들께는 옷을 드릴 의지가 있다. - 앞으로 행보는. 처음 시작할 때는 스스로 한복 디자이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MBC 1919-2019, 기억록 작업을 통해 옷을 제작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느꼈고, 계속 한복을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 BY대한민국 팝업스토어도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많은 분이 구매요청을 주셔서 내년부터는 판매를 진행하려고 한다. 또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일을 시작할 때 자본금 하나 없이 오로지 한복으로 정장을 만들자라는 생각만 갖고 뛰어들었다. Just do it 이라는 말처럼 청년들이 어렵더라도 뭐든지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또한 많은 분들이 김리을의 한복을 입고 해외에 나가 한글과 한복,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릴 수 있게 돕고 싶다. 김리을의 한복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문화 국가대표가 많아지길 바란다.

[피플&포커스] 가도현 대표, 무일푼서 멀티사업가로 우뚝 선 전직 복싱선수

복싱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목표가 확실하면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과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요. 패전의 아픔을 딛고 도전하는 배짱도 복싱에서 배웠습니다. 무일푼에서 멀티사업가로 변신한 전직 복싱선수 가도현 대표를 3일 서울시 마포구 도향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포함한 멀티사업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화려해보였지만 그의 과거는 투박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가 대표는 복싱을 통해 얻은 경험이 인생에 가장 큰 자산이라고 했다. 첫 만남에서 그는 두 개의 명함을 건넸다. 도향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무일영화사 부대표. 각각의 명함 앞면에는 행동은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강점을 영업과 친화력이라면서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필요할 때는 들이댄다고 말했다. - 복싱을 시작한 배경은? 어린 시절 가난이 지독히도 싫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빨리 성공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내게 있는 것은 건강한 육체뿐이었다. 당시 홍수환 선수가 명성을 날리는 것을 보고 그처럼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자 세계챔피언을 꿈꿨다.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일요일에는 경북방송통신고등학교 학업을 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다. - 복싱으로 성공했나? 5년 프로선수 생활 동안 주니어페더급 랭킹 2위로 한국타이틀전에 도전했다. 하지만 판정패 이후 군에 입대했다. 복싱선수로 명성은 얻지 못했지만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세계챔피언을 목표로 운동할 때 취미나 다이어트를 목표로 복싱을 시작한 다른 사람들보다 단기간에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면서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터득했다. 또 최선을 다 했을 때 후회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패전의 아픔을 딛고 다시 도전하는 배짱도 이때 배웠다. - 전역 후 사회생활은 어땠나? 보안경비업체에서 안정적으로 일했지만 무료했다. 이후 어학교재 판매회사에 취직해 출근 1등, 퇴근 꼴찌 라는 말처럼 잠자는 것만 빼고 일에 미친 삶을 보냈다. 사장한테도 인정받아 부산지사장으로 독립도 했다. 월 1억에 달하는 수입도 올렸다. 그러나 술 문화를 알면서 삶은 출근 꼴지, 퇴근 1등으로 바뀌고 나태해졌다. 곧 시련이 닥쳤다. 사기를 당해 집과 땅 등을 전부 잃고 무일푼이 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 하루아침에 망했다. 이유를 찾았나? 실패하고 망한 이유를 3년 동안 고생하면서 찾아냈다. 열심히 살 때는 좋은 사람 만나고 사업도 잘 됐다. 그러나 내가 안주하고 일을 소홀히 하면서 나쁜 사람을 만나서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장수 연극 당신이 주인공은 어떻게 탄생했나? 알고 지내온 개그맨 김학도씨에게 내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다. 하객들 반응은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이를 계기로 개그맨 결혼식 사회자 에이전트 전문기업 레드펌킨을 차렸다. 개그맨 섭외를 하다보니 직접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 김대범의 연출 하에 다른 연극과 차별화한 연극 당신이 주인공이 탄생했다. - 다양한 사업을 하게 된 배경은? 레드펌킨 사업과 김대범소극장이 활성화되면서 한 달에 최하 500만원에서 최고 2000만원 이상의 수익이 났다. 그러다가 한 달에 1억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결과 소사장 시스템을 기획했다. 면접을 통해 선발된 소사장에게는 마케팅교육비를 지원해서 마케팅 능력을 향상시켰다. 소사장의 운영 결과가 피드백 되면서 빠른 성장이 가능했고 다른 사업도 추진할 수 있었다. - 남다른 삶을 산다. 특별한 목표가 있나? 2030 CEO 사관학교 만드는 거다. 사업을 하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자금도 투자해 주고, 노하우도 알려주고, 좋은 인맥도 연결시켜주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열심히 달려 성공을 해야 한다. 가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청년들이여! 행동으로 옮기세요. 실천하고 경험하세요. 그 속에서 자신이 잘 하는 것도 찾을 수 있습니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로즈박 작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명 탄생의 아름다움 표현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한지조형 장미로 표현하는 작가 로즈박. 그가 4.2m 이상의 초대형 한지조형 장미를 통해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는 과정을 선보였다. 양평군립미술관이 기획해 오는 9월 1일까지 선보이는 종이 충격전(Paper Shock)에서 만난 로즈박 작가의 작품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 세계 어느 작가도 시도한 적이 없는 4.2m 이상의 초대형 한지조형 장미다. 독창적이고도 독립적인 이 초대형 장미 위에 영상이 덮여지고, 또 그 위에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이 입혀지니 마치 생명의 탄생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임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의 흰 작품(초대형 한지조형 장미)만 봐도 아름답지만 그 위에 생명의 불씨가 지펴지고, 영상(작가의 작품으로 구성한)이 입혀집니다. 그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태아가 되지요. 여기서 나비는 영혼의 안내자이자 탄생의 안내자가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생명을 구성하는 첫 번째 원소인 물속에서 자라나는 과정이 진행이 되지요. 이 한지 위로 번져가는 색깔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해야 하는 것들 즉 예시된 만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탄생의 순간은 꽃이 사방으로 터지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꽃 한 송이가 탄생한 것입니다. 로즈박 작가는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생명의 탄생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중심에는 여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여성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우주입니다. 그 우주 안에 또 다른 우주가 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 이 생명의 불꽃을 피워내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경이로운 것인지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생명의 작가로 불리는 로즈박 작가의 철학과 생각이 한눈에 보이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고도 명확하다. 한지와 장미는 동양과 서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그 안에 또한 우리네 설화와 서양의 신화가 어우러진다. 또한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까지 다 보여주고, 보는 이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힘. 바로 로즈박 작가가 가진 힘이자 매력이다.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 시간과 영원한 생명, 풍요를 상징합니다. 또한 동서고금의 역사와 문학과 예술을 대변하는 사랑의 대명사로 작품 속의 모든 장미는 의인화된 여성으로, 겹겹의 꽃잎과 내밀한 감성, 사랑의 기쁨, 생명 잉태와 탄생으로 그 존재를 분출하며 여성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지요. 한지의 물성과 장미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작가 로즈박. 그의 작품에 입혀진 사운드는 대상의 감정을 확장시키며 작품에서 순환의 여정을 안내하는 시간 이동자이자 생명 탄생의 비밀을 예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편 생명의 작가로 불리는 로즈박 작가는 생명의 순환을 꽃의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 꽃들은 모두 의인화된 여성들이다. 작가가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생명에 대한 가치와 사랑은 그의 작품 속에서 생명의 근원인 사랑으로 화면과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여성의 사랑으로 세상에 생태 의식을 전하고 있다.

[인터뷰] 독도가수 서희가 ‘끝까지 간다-NO 아베 귀하’ 부른 이유

일본이 한국 백색국가 제외를 공포한 지난 7일 지인이 일본 경제보복 규탄 노래라며 유튜브 사이트를 보내왔다.바로 하루 전날 발표된 곡이었다. 끝까지 간다(부제: NO 아베 귀하). 노래가 나온 타이밍이 절묘했다.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고 일본의 속내를 꼬집는 가사에 공감이 갔다. 밝고 경쾌한 리듬이지만 충무공 후예 대한국민이라는 가사에선 무게감도 느껴졌다. 영상 마지막 자막은 서희 장군 32손 가수 서희 올림. 독도가수로 더 알려진 서희씨를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인근에서 만났다. - 신곡 반응이 어떻습니까?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반응입니다. 평소 연락 오지 않던 지인 수천 명으로부터 격려 문자를 받았습니다. 노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여러 방송사와 언론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작곡가 박문영씨는 자신이 써도 그렇게 못 쓸 만큼 가사가 절묘하다고 하더군요. 일반인 중에는 자꾸 들으니 뭉클해진다고 하는 분이 많습니다. - 뭉클하다니요? 충무공 후예 대한국민이라는 가사가 일제 이후 알게 모르게 일본에 주눅 든 우리 민족의 혼을 깨우는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충무공 이순신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한국인입니다. 충무공의 후예가 대한국민이라는 걸 우리 국민에게도 일깨워주고 싶었습니다. - 절묘하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선을 지켰다는 의미죠. 할 말은 하고 나무랄 건 나무라면서도 선, 곧 품격을 지켰다는 겁니다. 일본이 싫은 게 아니고 아베가 싫은 거고, 안사고 안 가지만 좋은 이웃 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걸었으니 여지도 둔거죠. - 노래를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7월말 미국 오렌지카운티에서 심바람 청춘극장 공연 도중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 제외 소식을 접했습니다. 평생 우리나라와 관련된 노래를 만들고 부른 저로선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어떤 노래를 만들지 고민했습니다. -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콘셉트를 잡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면서도 선을 지키기 위해 품격 있는 비폭력 저항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작사이후 모든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이미 만들어둔 곡이 있어서 거기에 가사를 넣었는데 딱 들어맞았습니다. 보통은 작곡해도 편곡 기간만 한 달씩 걸립니다. - 일본이 저러는 이유는 뭘까요? 두려움 때문이죠. 한 때는 G2였던 일본이 어느새 중국에 자리를 내주고, 상대도 하지 않던 한국이 몇 년 뒤엔 전자분야에서 일본을 완전히 압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니 두려울 수밖에요. - 대중가수가 독도를 비롯해 역사와 나라와 관련된 노래를 주로 부르는데 특이합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대중가요 99%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합니다. 한명쯤은 이런 가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나라를 위한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는? 1990년대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위인이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노래 속 위인에게 관심을 갖게 됐죠. 제가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노래가 의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도 알게 됐습니다. 가수 인생이 노래대로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나라를 위한 노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노래를 부르자 마음먹었습니다. 웃음치료 대표곡으로 꼽히는 웃다보니 역시 제 노래입니다. - 바람이 있다면? 온 국민이 끝까지 간다-NO 아베 귀하를 부르면서 하나 되면 좋겠습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처럼 우리 국민이 이 노래로 하나 될 때 일본은 싸울 의지를 접을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부품 국산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피는 못 속이는 걸까. 고려 문신 서희 장군은 세치 혀로 거란과 여진을 몰아내고 지금의 평북 일대 국토를 완전히 회복한 영웅이다. 가수 서희는 세치 혀로 독도 도발에 이어 경제 침략을 해온 일본을 나무라며 대동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가수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고마웠다.

[피플&포커스] “자연과 현대의 조화 ‘아프리카’, 인생에서 꼭 한번쯤 여행해봐야”

아프리카는 높은 건물도, 잘 사는 사람도 많았어요. 제가 알았던 가난하고 황폐한 나라라서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180도 달랐어요. 아프리카 전문 여행컨설팅사 트래블두의 윤준성 대표는 20대 때 처음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그때부터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려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포토그래퍼 아프리카를 만나다 윤 대표를 처음 본 날 그는 늠름한 사자 사진이 크게 인쇄된 가방을 갖고 있었다.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명함에는 포토그래퍼라고 별도로 적혀 있었다. 대학 시절 조선일보 사진부 인턴을 계기로 사진기자로서 정치부와 연예부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전문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자 사진도 아프리카 여행 중 바로 코앞에서 찍은 것이다. 쿠바를 가려다가 아이티 대지진으로 못 가고 월드컵을 하는 아프리카로 향했어요. 축구를 좋아했거든요. 아프리카에 가면 TV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자극적인 사진들을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막상 도착하니 아프리카는 180도 달랐어요. 높은 건물도 많고 잘 사는 사람도 많고. 아프리카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어요. 한 달 여행을 계획했다가 3개월 넘게 있었어요.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려야하겠다고 생각했고 아프리카 여행 관련 책도 만들고 전시회도 하고 지금의 트래블두도 창업했어요. 윤 대표는 아프리카 여행 후 10개월 있다가 2011년에 다시 북아프리카를 갔다. 이집트와 모로코를 갔고 남아프리카공화국부터 케냐까지 이동했다. 이집트는 못가서 나중에 다시 기회를 마련했다. 때마침 카이로에서 중동의 봄 사태가 일어나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과 같은 시위 모습이 연출됐다. 그는 시위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또 그의 저서 동남 아프리카 여행백서(윤준성박예원 공저, 나무자전거)를 함께 만든 작가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서아프리카만 빼고 북동남 아프리카를 두루 여행할 수 있었다. ◆질병테러는 일부분만 본 편견 그의 책은 초기엔 한 달에 5권도 안 팔릴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이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2016년 tvN 방송프로그램 꽃보다청춘 아프리카편(연출 나영석, 이진주)에서 출연자들이 그의 책을 들고 여행을 다니면서 책이 알려졌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그만큼 컸다. 최근에는 한국인 여성이 아프리카 여행 중 피랍됐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TV를 통해서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질병문제, 유엔난민기구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금 홍보 등은 오히려 나쁜 선입견을 더했다. 미국에서 총격사건이 나면 어느 지역을 언급하지 전체를 싸잡아서 말하지 않잖아요. 아프리카는 특정 지역을 얘기하지 않고 전체를 싸잡아서 아프리카에서 납치됐다고 말해요. 편견입니다. 질병 문제도 말라리아의 경우 모기를 조심하면 됩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진 지역에서 케냐까지는 거리가 우리나라에서 괌 거리만큼 멀기 때문에 영향이 없어요. ◆삼성K-POP 좋아해정부, 교류해야 윤 대표는 편견 때문에 아프리카 여행을 꺼리고 직항로도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직접 현지에 가보면 대자연의 모습에 놀랄 것이라고 했다. 또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다고 했다. 유럽과 같이 여행 가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 풍광은 사진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또 이곳은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지역이며, 5000~6000미터의 높은 산들이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한류 열풍이 일고 있다고 했다. K-POP 문화뿐 아니라 삼성과 현대차 등 한국기업들의 제품이 아프리카 전역에 퍼져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도 적고 직항 라인도 없어서 더 여행을 안 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친구들을 신혼여행이나 일반 여행을 가도록 해주면 처음에 편견을 가졌던 것과 달리 다녀와서 다들 좋아해요. 제가 처음 아프리카를 갔을 때 그 느낌이에요. 남아공 케이프타운, 요하네스, 케냐 같은 곳은 우리나라 여의도와 같은 높은 건물과 금융회사도 많아요. 또 아프리카에는 삼성과 같은 한국 제품이 널리 퍼져 있고, 방탄소년단 등 K-POP 문화도 잘 알려져 있어요.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라서 손흥민과 박지성 선수도 좋아해요. 이렇게 한국에 대한 인식도 좋기 때문에 여행 가기에 최적의 나라라고 생각해요. 윤 대표는 요하네스에 직항라인이 생기면 남아프리카나 중부 아프리카로 쉽게 갈 수 있어서 우리 기업인이나 여행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중국의 경우 몇십년 전부터 아프리카와 교류를 하고 있지만 인식이 좋지를 않아서 중국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틈을 타서 기업들이 아프리카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한번은 가볼만한 여행지 윤 대표는 유치원 아이들이 아프리카는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그림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프리카에 대해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그림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 그는 앞으로 아프리카를 국내에 많이 알릴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많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첫 번째 목표에요. 유튜브를 통해서도 아프리카를 알리려고 해요. 내년 초에 여행백서를 개정해서 3권의 책으로 준비하고 있고요. 여행사나 정부기관을 상대로 아프리카 설명회도 열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아프리카는 인생에서 한 번쯤 가볼만한 여행지에요.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천재윤 작가 “격정적인 내면의 소리… 그림으로 분출했어요”

[천지일보 전주=이영지 기자] 나의 그림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자유로움을 담고 있어요. 하지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삶에 대한 깊은 사유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못했던 내면의 세계를 이제는 마음껏 표출하고 싶습니다. 1일부터 23일까지 전주영화제작소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천재윤 화가의 개인전 삶에 외로움이 묻어날 때를 앞두고 천재윤 작가가 한 말이다. 올해 세 번째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일반 시민들에게 예술,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기획된 2019 전주영화제작소 무료대관 공모 전시에 당선돼 마련됐다. 천재윤 작가는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꽃과 나무를 등장시켜 자유롭고 강렬한 붓놀림이 특징인 80여점의 작품을 통해 시원하게 풀어낼 예정이다. 지난 30일 천재윤 작가를 만나 작품 탄생 배경과 특징,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봤다. 천재윤 작가는 영문학 박사로 영어교육자, 영어교재 집필자, 시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하루 10~12시간을 꼬박 그림에 매달려 있는 천생 화가다. 내성적이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그가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2017년 어느 날 새벽,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가운데 강한 영감이 떠오르면서다. 그는 어린 시절, 꽃과 나무로 가득한 대지에서 자랐다. 저녁이 되면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동화 속 세상을 꿈꾸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 동화 속 세상은 많이 변해버렸지만, 오늘도 나는 하얀 캔버스 위에 내면의 꿈을 그리고 있다며 처음에는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그림도 점점 역동적이고 강렬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천재윤 작가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해 내면에 충실을 기하고 있으며 감성을 담아 붓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있다며 예술은 어렵지 않으며 누구나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고, 마음을 열면 예술 작품을 공감향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이번 주제인 외로움에 대해 시나 그림은 내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강한 슬픔의 돌파구라며 현대인들은 모두 외롭다. 모든 것이 기계화현대화디지털화되면서 인간이란 존재는 보이지 않는 셀(사회규칙, 바쁜 시간)에 갇혀 관심 대상 밖으로 밀려나 희미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예술이든 어떤 자기만의 몰입(중독)이든 모든 기저엔 외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많은 분들이 그림을 통해 나의 내면의 세계를 쉽게 공감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회를 통해 보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아픔을 치유 받으실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의 내면세계는 아직 강하게 분출 중이며 언제 끝날지 모른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나의 작품 세계도 어디로 뻗어나갈지 알 수 없다며 하지만 지역을 넘어 앞으로 언젠가는 세계무대에 서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서 천재윤 작가는 1월 덕진구청 덕진갤러리 36.5에서 첫 개인전 삶의 깊이가 느껴질 때 그림을 그리다와 2월 전북도청 기획전시실에서 두 번째 개인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를 열었다. 오는 7월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 교육홍보관에서 열리는 네 번째 개인전 내 마음속 깊은 울림도 앞두고 있다. 분수처럼 자유로운 붓질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시민들과 기존화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롭고 강력한 붓질로써 표현의 해방구를 찾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마루人] 박양화 주얼리 디자이너, 주얼리를 넘어 예술로 ‘오름’

운명적 만남, 주얼리 디자인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며 반복적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단조로움이 싫었고 회의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가슴 뛰게 하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바로 보석 디자인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고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오름 아트 젬 디자인연구소 박양화 대표는 과감히 주얼리 디자이너의 삶을 택하고 27년을 묵묵히 걸어왔다. 1992년이에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주얼리 디자인이었죠. 선진국으로 갈수록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발전 가능성이 있고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의상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인과 같은 전문직 쪽으로 일을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았죠. 그래도 보석 디자인은 적성에 잘 맞아서 지금도 판단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석 박 대표의 마음을 빼앗은 보석의 매력은 무엇일까. 모두가 알고 있는 빛나고 아름답다는 것 외에 분명 무언가 더 있을 듯하다. 역시나 그가 말한 보석의 가치는 무한하다는 것에 있었다. 보석의 가치는 무한해요. 무한한 가치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 생명을 불어 넣으면 그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환희와 매력을 느껴요. 창조 작업을 즐겨하고 좋아하는 박 대표다운 답변이었다. 디자인을 하여 다듬고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서 내손 안에서 하나하나 탄생하는 순간이 최고의 선물로 다가온다는 박 대표. 이러한 매력 때문에 주얼리 디자이너가 평생 직업이 되었고 디자인에 의해 살고 디자인에 미쳤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어릴 때부터 그는 뭔가 남들과 달랐다. 또 그러한 것을 좋아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들보다 독특하고 튀는 것을 좋아했다.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유년시절 직접 디자인해서 종이 인형을 그릴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났다.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평소 사물을 바라볼 때 그냥 보지 않고 다각적으로 상상하며 내외적인 디자인적 요소를 찾는 방식으로 그만의 시각적인 훈련을 항상 습관처럼 하는데 이런 요소는 오늘날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표현된다. 박 대표의 작품은 자연이 담고 있는 순수성을 잃지 않으면서 이들의 존재 의미와 아름다움을 입체감과 선을 이용해 모던하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모든 사물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셈이다. 전통과 현대의 독특한 조화 그는 건축물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 건축물엔 조형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주얼리에 접목한다. 공간감 있고 조형적인 부분과 선을 표현한 디자인은 입체적이고 모던한 형태를 가진 박 대표만의 디자인이 나온다. 그는 또 선이 굵고 큰 볼륨감 있는 작품도 선호하고 작고 차가운 금속 면에 무수한 선들로 수놓아 큰 틀 안에서도 자연의 작은 떨림과 움직임들을 작품에 반영하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주얼리를 넘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다. 2000년 누 미 반지를 디자인했는데 한국 전통 가옥의 기와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했어요. 그 당시 궁의 기와 같은 한국 전통 건축양식 자료를 보면서 디자인적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2013년 청와대 사랑채 주얼리 문화전에 한국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전시에 참가하면서 한글 주얼리를 제작하게 되었어요.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기와를 모티브로 한 누 미 반지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표현한 한글 주얼리는 박양화 대표의 주얼리 디자이너로서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한글 자료를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글에 관한 소재를 보았는데 자음과 모음의 글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적인 요소가 많은 우리 문자에 매료돼 한동안 심취해있었죠. 이때 나온 작품이 오름이라는 한글 주얼리 였어요.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죠. 오름 한글 주얼리는 저에게 많은 것을 선사해주었고 비전을 제시해 주었어요. 저의 디자인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의 컬렉션이 되었고 저의 브랜드명으로 오름 을 사용하게 된 중요한 작품이었지요. 열정과 인내로 걸어온 디자이너의 삶 창조활동은 늘 고되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표현해야 하는 디자이너의 삶이 쉽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박 대표는 열정과 인내로 버텼다. 2014년은 그에게 특별한 해이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버틴 결과로 수확의 기쁨을 안겨다 준 해이기 때문이다. 그해 1년 가까이 공들인 작품 회오리 세트가 그에게 제49회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공예부문에서 대상인 국무총리상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2015년에는 연이서 제18회 세계평화미술대전 공예부문에서 대상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공로부문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박 대표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이 순간이 진정으로 보람을 느꼈고 감동의 순간이었으며 그 어느 상보다도 더 값진 상으로 평생 좋은 기억으로 머물 것 같다고 회상했다. 힘들어도 현실에 조급해하지 않고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에 묵묵히 작업에 몰두했어요. 그러면서 시야를 넓히고 미래를 생각하며 초석을 다지는 데 노력하다 보니 오늘까지 온 것 같아요. 디자인하는 즐거움과 행복감에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활동하려고 합니다. 박양화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황갑주 귀금속 전통공예 장인에게 투각과 조각을 배우고 있다. 한문을 디자인해 그대로 투각하는 데 매력을 느껴 시작했다. 또 전통공예에 근현대적인 디자인을 접목해 한국의 맥과 멋이 살아있는 문자를 투각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선두주자로서 일조하는 게 그의 목표이다. 그러면서 디자인적 요소가 많은 한글을 다른 분야와 접목해 다양한 디자인 작품으로 제작하는 새로운 시도도 해볼 계획이다. 그의 바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보석에 디자인으로 수놓아 무수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창조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평생 함께할 것이고 주얼리 디자인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이끌어줄 수 있는 디자이너이고 싶습니다.

[피플&포커스] 조주희 겸임교수 “한국이 사랑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음미하세요”

무라카미 하루키를 아는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전 세계 40개 이상 언어로 50편이 넘는 작품을 펴내며 소설번역물에세이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온 그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1987)는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내에서 200만부가 넘게 판매됐다. 이렇게 작품으로는 익숙한 하루키지만 작가 개인으로서는 문학 행사는 고사하고 언론 인터뷰도 잘 하지 않는 등 외부 접촉을 꺼리는 신비주의 작가로 알려졌다. 유독 한국과 중국에 야속한 하루키는 방한은커녕, 한국인이나 중국인과는 만나지도 않는다고 하니 의아해진다. 우리는 진짜 하루키를 알고 있나. 우리나라에 하루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어떤 작가인지는 잘 몰라요. 언뜻 승승장구했을 것 같지만 굴곡이 많은 작가입니다. 지난 10일 무라카미 하루키 전문가인 조주희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겸임교수를 만났다. 국내 하루키 1호 박사인 조 교수는, 본토인 일본에서도 문학박사를 학위 취득한 하루키 전문가다. 책을 좋아했던 조 교수는 문학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 상황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일본 문학가의 길을 택하게 됐다. 조 교수가 박사를 준비할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붐이 불었다. 그때 많은 하루키 소설을 접하며 조 교수는 하루키 연구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2005년 당시 생존작가 연구는 금기시되고 있었다. 조 교수는 하루키의 영향력을 강조하며, 사후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고 학교 측을 설득했다. 마침 일본에서 하루키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 점이 조 교수의 연구 허가를 도왔다. 이후 한국뿐 아니라 본토인 일본에서도 하루키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국내외에서 하루키 전문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루키에게 인세를 가장 많이 주는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1Q84(문학동네, 2010)부터 13억원이 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전 세계에서 1100만부 팔렸는데 그 중 250만부가 국내에서 팔렸어요. 2명 중 1명은 읽었다고 볼 수 있죠. 다른 버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이런 우리나라를 오히려 세계는 신기하게 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하루키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무국적성과 공감이 쉬운 부분을 꼽았다. 조 교수는 초기 하루키 작품에는 이름이 없다. 나 너 쥐 양 귀 모델 등 대명사나 캐릭터로 인물들을 부른다며 장소를 설명할 때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강변 마을이라고 표현하면 읽는 독자에 따라 그 장소는 한강 변이 될 수도 있고, 암스테르담이 될 수도 있어 공감이 쉽다고 설명했다. 하루키 하면 언급되는 부분 중 하나는 노벨문학상이다. 하루키는 2006년 이후로 매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언급이 불편한지 하루키 자신도 지난해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을 앞두고 미국에서 열린 행사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세 가지 중 하나를 노벨문학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루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조 교수는 받을 시기를 좀 놓쳤다고 생각한다며 노벨문학상은 시대성을 반영하기에 당시 이슈가 된 작가가 받는 경우가 많다. 또 하루키는 노벨상에서 꺼리는 다작 성향을 가지고 있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받는다면 70살이자 데뷔 40주년을 맞는 올해가 마지막 수상 기회라고 본다. 노벨문학상 측이 하루키의 체면을 세워준다면 올해가 적기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하루키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작가를 이해함으로써 작품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장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3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3음 콘서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음미 음악 음식을 주제로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10월 강남시어터에서 열린 무라카미 하루 3음 콘서트-하루키 소설을 음미하다 행사에서는 조 교수와 허희 문학평론가가 나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하루키의 삶과 그의 작품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올해도 용인, 양평, 대구 지역에서 강연 행사를 계획 중이다. 또한 음악을 주제로 하루키의 작품을 이야기해보는 북케스트라도 기획 단계에 있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나오는 곡을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음미해보는 시간으로 꾸며지며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하루키 연구와 함께 일본 문화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조 교수는 국내 번역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문학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소설을 번역가가 쓴다고도 볼 수 있다. 다양한 문체가 있듯 다양한 번역가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는 안정성을 추구하다보니 번역이나 통역이 특정인들에게 편중된다. 그러면 같은 문체가 반복된다며 문학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다시 쓰는 것이다. 그 문체에 맞는 번역을 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판권을 출판사가 갖고 있다 보니, 번역가 선임 권한이 출판사에 있어 번역시장이 커지기 어렵다며 정부가 번역협회를 세워 우리 작품의 판권을 사고, 여러 번역가들을 등록시켜 다양한 작품을 번역하게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주희 교수는 일본근현대문학을 전공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일본 간사이(關西)대학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로 문학박사를 학위 취득했다. 서경대학교, 한양여자대학교, 상명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의 연구교수,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연구(2010, J&C, 201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공저로 世界文学としての村上春樹(東京外國語大學出版會, 2015), 역서로는 하루키, 하루키(2012)가 있다.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 3음 콘서트를 진행하며 일반인에게 일본문학을 소개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하루키, 인생 70년, 데뷔 40년을 기념한 평전을 집필 중이다.

[人이 문화다] 박상진 사기장 “광주 흙으로 빚은 조선백자, 생기 담겼죠”

광주 흙으로 빚어낸 조선 백자에서는 생기가 느껴집니다. 광주 백토사랑추진위원회 위원장인 박상진 경기무형문화재(제41호) 분청사기장은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아트홀에서 전시된 분청사기와 조선백자를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4일 개막한 광주 흙으로 빚은 도자의 미(美) 전시에는 15명의 광주 도예인이 손수 제작한 작품이 공개돼 있었다. 특히 이 도자는 모두 광주 지역에서 발견된 백토(白土)와 분청토로 제작한 작품이어서 주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 왕실로 가는 조선백자를 굽던 땅인 경기도 광주. 그 맥이 끊긴 지 135년 만에 광주 흙으로 빚은 조선 백자의 탄생은 이곳 광주 도예가들에게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조선 왕실 진상하던 도자 굽던 땅 광주는 질 좋은 광주토와 풍부함 땔감을 갖춘 조건으로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하던 도자기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제품의 주공급지인 서울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한강을 이용한 제품의 운반도 편리했다. 이에 1467년 조선왕조는 사옹원의 사기제작소 분원을 설치하면서 조선도자산업의 영광과 번영을 이곳 광주에 맡겼다. 사옹원 사기장들의 손길에 의해 조선의 백토는 단아하고 아름다움을 지닌 백토로 탄생했다. 청백색 조화로 빚은 분청사기와 고혹한 성형을 뽐낸 조선백자는 세계인을 감탄시켰으며, 이는 광주 분원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1884년 분원이 해체된 이후, 화려했던 대한민국 도자산업은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 흙으로 우리 도자기를 만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광주 땅에서 역시 이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 한 농장주로부터 점토와 백토가 발견됐다. 기나긴 시간을 깨고 발견된 이 흙에 대해 주변의 궁금증은 커져갔다. 박 사기장도 이 흙이 궁금했다. 14살에 도자를 접해 지금은 흙을 만져만 보아도 어떤 색의 도자가 나올 지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깊은 내공을 지닌 그 역시도 직접 도자를 구워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후 광주 도예가들은 이 흙으로 도자를 구워내는 과정을 반복했고, 이를 통해 광주 흙만이 갖는 점성과 빛깔을 비로소 찾게 됐다. 박 사기장은 이 흙에 대해 과학적인 실험과 경험적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왕실도자의 근원인 사웅원의 주된 원토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백토는 선조 왕조로부터 맥을 이어온 우리 전통도자의 기원인 조선백자 원토라고 설명했다. ◆전세계인에게 우수성 알려가야 조선백자의 부활은 그동안 사용해온 수입토와 다른 우리 흙이 갖는 강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박 사기장은 수입토는 하얗지만 어두운 느낌의 백자가 빚어진다며 하지만 우리의 백토는 굉장히 부드럽고, 빛깔도 마치 과거에 만들어진 조선백자와 같이 깊음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사기장은 도예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는 우리 것의 현대화와 대중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왕실에서 사용하던 흙으로 135년만에 조선백자를 만들어냈다며 전통적인 기법을 지켜나가면서 현대적으로 변형시켜 도자의 맥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전 세계인이 깜짝 놀랄 도자를 탄생시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조선시대 왕실도자가 세계적인 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도예인이 더 좋은 도자를 만들 수 있도록 시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도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정하근 대표 “올해 이방자 여사 타계 30주기… 한국에 기념관 세워져야”

지난해 10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작품전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일주일 간 열렸다. 전시는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의 정하근 대표가 그간 수집한 이방자 여사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 오프닝 당일에만 450여명의 관람객이 참여하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관람객은 이방자 여사의 삶과 혼이 담긴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정 대표는 올해는 이방자 여사가 타계한 지 30년이 되는 해라며 작년에 이방자 여사의 혼이 깃든 작품을 전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역사적으로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가 낙선재에서 나온 이후 역사적으로 잊히고 있다라며 한국에 기념관을 세워 한국인으로 살길 바랐고 봉사의 삶을 살았던 이방자 여사의 업적을 기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방자 여사의 삶과 시각 이방자 여사의 일본 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다. 1901년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열여섯에 조선 황태자 이은과 결혼을 신문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한일의 민감한 시대에 정략결혼을 하게 된 이방자는 두 나라의 관계와 왕족 간의 관계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내조를 하며 살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11세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조선 황태자 이은에게는 일본에서 황족대우를 받으며 살게 된 것이 매우 불편했다. 이방자 여사는 이러한 남편 이은에게 조용하고 세심하게 내조를 했다. 그는 몇 번의 유산의 슬픔과 고통에서 10년만에 둘째 아들 구를 출산했다. 이후 진주만공격과 일본 패전으로 이은과 이방자는 한국과 일본에게 모두 버림받는 아픔을 겪는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과의 회동으로 마침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됐다. 하지만 이은은 한국에 돌아와 병마와 싸우다가 7년 만에 서거했다. 이후 이방자 여사는 온전히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평소 이들은 한국에 돌아가면 봉사활동과 선행을 하고 살자며 다짐을 해왔으며 일본에서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신체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시설 자행회와 명휘원을 설립해 봉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보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한국에서는 국민훈장 문화장을 수상했다. 귀국 초 이방자 여사는 일본인이라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으나 꾸준한 복지활동으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가 아니라 복지의 어머니로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 대표는 한일 두 나라의 관계 속에서 이방자 여사는 남은 생애를 낙선재에 머무르며 한국인으로, 그리고 후회 없는 봉사인으로 지냈다며 그는 한국 근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으며 인간애를 보여주고자 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방자 여사 작품 전박물관 세워져야 정 대표는 이방자 역사의 삶이 우리 국민에게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살아생전 남긴 작품을 전시하는 기념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방자 여사는 어려서부터 예능에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칠보, 서예, 그림, 도예 등 다방면에서 직접 작품을 제작해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수익금 전액은 지체장애자들의 재활과 사회적 역량 강화를 위한 학교 명휘원과 복지재단을 설립하고 평생 복지 사업에 헌신했다. 정 대표는 영친왕비가 생전에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다양한 예술 활동과 칠보 작품을 통해 평생 봉사의 삶을 살다 간 발자취와 따뜻한 선행, 덕목을 되새기기 위해 기념관이 설립돼야하며, 이를 통해 한일 문화의 교류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의 위치는 전주이씨의 본향인 전주를 꼽았다. 그는 전주는 지역성,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의 균형발전 교통 등 여러 가지 여건을 통해 원활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에는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어진(국보 제317호)뿐 아니라 이를 보관하던 경기전(사적 제339호), 전주 전동성당(사적 제288호), 전주 풍남문(보물 제308호) 등 주요 문화재가 있다. 또한 10여개의 주요 박물관도 위치해 있어 역사를 둘러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전주를 찾고 있다. 최근 역사계도 일제강점기에 대해 빼앗긴 시간 혹은 외세에 억압된 시간으로만 보지 않고 정치적 혼돈기 근대화가 시작된 격변기로 재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방자 여사는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한국인으로 늘 천명했던 이방자 여사가 지역사회 발전과 소외계층에 사용되는 기금 마련을 위해 한 작품 또한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보호해야하며 기념관 설립을 통해 우리 유산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념관이 한일 두 나라 관계의 교류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이수동 대표 “비빔밥·경복궁에 인포그래픽 옷 입히고 싶어요”

우리나라와 인포그래픽을 비슷하게 시작한 일본과 미국은 아이콘 포털 등의 대규모 디자인 비즈니스 시장이 커졌고, 후발 주자였던 중국도 급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인포그래픽 등 문화적 기호는 없습니다. 1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인포그래픽 전문가로 알려진 이수동 한국인포그래픽협회 대표 겸 브이랩인포그래픽연구소장은 우리나라의 인포그래픽 현실을 이같이 진단했다. 인포그래픽이란 정보를 나타내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그래픽(Graphic)의 합성어로 정보데이터지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쉽게 이해를 돕는 것을 말한다. 옆 나라인 일본은 포털에서 스시 등 주요 음식을 포털에 검색하면 다양한 디자인 아이콘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은 독립기념관이나 연방은행 등 건물 디자인이 잘 돼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비빔밥 등 음식이나, 경복궁 등 건축물을 디자인화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디자이너들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표현물이 없다며 디자이너 대부분이 해외 디자인 사이트에서 소스들을 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북아시아 지역 중 국내만 없다며 디자인 아이콘 대형 포털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일본은 젊은 청년과 은퇴한 교사 등이 자발적으로 디자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국내에도 관련된 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도해력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은 IT 기술이다. 컴퓨터의 기술은 개방화되고 오픈되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실용 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만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기술은 도구일 뿐 추구의 대상이 아니며 인간에 따라 효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의 기술을 이해하며 도해력(그래프를 보고 내용을 유추하는 것)과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며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경우 전두엽을 활용한 추론 문제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입상 문제들도 대부분 답이 없고 각자의 관점을 보고 서술한 다음 말로 설명해 청중을 설득해야 한다며 인공지능 시대 속에서 개인의 사고력을 키워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래의 성장 동력 청년 오늘날은 백세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의 밀레니엄세대와 Z세대는 100세 이상 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현재 대부분 60세까지 하나의 직업을 갖고 남은 생은 자유롭게 지낸다. 수명이 늘어나게 되면 전직을 하거나 그 후에도 시대에 맞는 일을 할 것이다. 이때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 대표는 미래의 성장 동력이 청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그는 인포그래픽 공모전을 통해 젊은 세대와 많은 교류를 나누고 고등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첫 인포그래픽 공모전을 할 때 100건 정도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공모 마감 후 확인해 보니 600건이 등록됐다고 말했다. 공모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이었다. 이 대표는 청년들과의 공통의 관심사를 이끌어 내야한다며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쓰는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어른들과 생각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청년들은 이미지와 영상을 많이 접해 주도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찾는다며 기획능력과 추론능력들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언론사에서 다년간 뉴미디어전략과 콘텐츠 제작 업무를 하며 경력을 쌓았으며 이후 창업의 길로 갔다. 이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데이터시각화 분야였다. 그중 사람들의 눈길을 한 번에 끌 수 있는 인포그래픽을 선택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말로 블록체인기술 등을 설명하면 사람들이 쉽게 인지하기 어렵다며 상황별로 형상화된 묘사를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면 이해가 쉽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신입사원 때부터 계획했던 책을 10여년 만에 썼다. 내용은 인포그래픽 실전 개론서이다. 출판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출간 후 주요 서점 IT 부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현재 그는 인포그래픽 사업을 5년 동안 꾸준히 하며 매년 인포그래픽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강의하고 있다.

[영화人을만나다] 김성훈 감독 “우리 문화의 우아함을 살리고 싶었다”

김성훈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창궐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17 2013년 마이 리틀 히어로로 데뷔해 따뜻한 감동과 웃음을 전했던 김성훈 감독은 공조에서 압도적이고 타격감 넘치는 액션으로 누적관객 수 781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탄탄한 스토리로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김성훈 감독이 조선 시대 야귀(夜鬼)가 창궐했다는 독특한 설정과 비주얼을 담은 창궐로 사극에 처음 도전했다. 지난달 개봉한 창궐은 야귀(夜鬼)가 창궐한 세상, 위기의 조선으로 돌아온 왕자 이청(현빈 분)과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절대악 김자준(장동건 분)의 혈투를 그린 액션블록버스터다. 영화는 야귀떼 속에서 생존을 위해 혈투를 펼치는 인물들의 고군분투와 타격감 넘치는 액션으로 희열을 선사한다. 김성훈 감독은 제가 영화를 봤을 때 잘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했다. 재미있는 영화 만들기 위해서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며 아쉬움은 당연히 있지만 어쨌든 선택했으니 어떻게 보일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공조 때보다 이번에 조금 더 반응이 궁금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음은 김성훈 감독과 일문일답. -조선 시대와 야귀의 만남은 생소한데 어떻게 나오게 됐나. 순전히 궁중을 배경으로 한 크리처물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어떤 크리처가 잘 어울릴까 하다가 좀비와 뱀파이어를 합친 존재가 나오게 됐다. 이 영화는 공조 전부터 기획된 긴 시간 동안 기획된 이야기다. -야귀 그냥 좀비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아니다. 좀비와는 다른 게 많다.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지길 원했다. 야귀는 밤에 활동하는 귀신이라는 뜻이다. 배경을 조선의 왕실로 가져와 우리 문화의 우아함을 살리면 야귀에 대한 이질감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야귀 디자인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머릿속에 이미지들이 있었다. 야귀를 놓고 필요한 설정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밤에 움직이려면 눈이 보이지 않고, 빛에 약하고, 소리에 민감해야 한다. 또 살을 물고, 피를 빤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변이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씩 채워갔다. -한국 좀비 영화하면 부산행이다. 신경 쓰지 않았나. 부산행은 굉장히 성공을 한 영화다. 부산행을 모르는 관객이 없을 정도다. 그걸 피하느냐 안 피하느냐에 대해 고민하는 건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다. 태초에 새로운 게 없듯이 우리가 가진 환경에서 새롭게 만들어내면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하면 괜한 딜레마에 빠진다. 환경과 문화가 다르니까 그 안에서 표현하고 애써 부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창궐을 기획하고 연출하기까지 쉽지 않은 선택인데 하게 된 이유는. 영화를 하기 전에 고민하는데 하고 나서는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창궐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정확하게 어떤 고민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저를 잡아끈 것은 크게 볼 때 몇가지 이미지다. 피범벅이 된 하얀색 옷을 입은 이청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고, 그 밑에선 백성들이 도끼, 낫 등 가지고 있는 무기로 함께 싸우려고 한다. -인정전 세트를 고증보다 1.5배 크게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규모에서 오는 허망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크고 높은데 공간이 되게 건조했으면 했다. 쿠션이나 다른 소품도 놓지 않았다. 밑에서 보면 대단하고 아득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편하고 고독하다. 그 안에서 자리를 둘러싼 욕망은 끈끈하다. 그래서 계단의 칸을 높게 해 올라가기 불편하게 만들었다. 잘 보면 왕이 내려오면서 뒤뚱거린다. -캐릭터별로 무기가 다른 게 보는 재미가 있다.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 각자 실제로 들법한 무기를 상상했다. 재난 상황이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그때 가능한 대응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조선 시대 무관 중 하나인 박종사관은 조선검을 썼고, 여자인 덕희는 힘에서 차이나니 멀리서 쓰는 활을 다룬다. 스님은 들고 다니던 지팡이에 창을 꽂아 야귀와 싸우고, 심마니 설정인 만보에겐 도끼를 손에 쥐여 줬다. -야귀 역을 맡았던 배우들의 이름과 사진을 엔딩크레딧에 올린 이유는. 저는 야귀 역을 맡았던 배우들을 존경한다. 저라면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그들처럼 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고마워서 뭔가 해주고 싶었다. 회식 자리에서 봤는데 되게 오랜만에 민낯을 봤다. 야귀의 배우들이 훌륭한 배우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안했더니 흔쾌히 좋아해 주시더라. 그분들이 한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3~5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 훈련을 거쳐서 했던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