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입찰㉛] 기대·우려 교차하는 경기도교육청 스마트기기 사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디지털 전환(DX)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교육 기관에 ‘1인 1스마트기기’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천지일보는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취재하고 교육청의 편파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심층 보도를 기획했다. 제31보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올해 스마트기기 지원 사업에 대해 알아본다. 사업 응찰 문턱 낮아질 조짐 국산·외산 브랜드 최소 8곳 사업 참여 기회 엿보는 중 中 OEM 제품까지 사들여와 사후 관리 불가능 우려 나와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경기도교육청이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의 참가 문턱을 대폭 낮출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많은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게 된 건 공정성 제고 측면에서는 좋은 결과지만 태블릿PC 제조 능력이 없는 사업자들까지 중국 OEM 제품을 사들여 참여를 준비하고 있어서 사업 수행 및 사후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경기도교육청 태블릿PC 사업 수주를 엿보고 있는 사업자는 삼성전자, 레노버(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 포유디지탈, 에이텍, 엠피지오, 텍라스트, 딕클, 아이브릿지닷컴 등 최소 8개에 달한다. 삼성전자,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 포유디지탈을 제외한 나머지는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에 처음 참여하는 사업자들이다. 이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중국 OEM 제품을 구매해 응찰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참여 사업자가 크게 늘어 피 튀기는 전쟁이 예상된다”며 “특히 중소기업이 이렇게 많이 참여하면 마진도 얼마 안 남을 텐데 OEM 제품을 잘못 선택한 사업자가 낙찰되면 서비스도 안 되고 사업이 엉망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제품을 직수입해 사업에 참여하는 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OEM 제품을 들여오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 수행 및 사후 관리 능력에 있다. 이 사업에서는 수주 기업이 스마트기기만 보급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A/S, 기기 보급·교체 등 사후 관리까지 책임져야 한다. 사업자에게 태블릿PC 제품과 부품을 빠르게 수급하고 이를 수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참여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업자는 이 같은 능력이 없다. 삼성전자와 포유디지탈을 제외하고는 태블릿PC를 자체 생산할 수 없다. 이 외에는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단말기를 중국에서 사 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낙찰되면 향후 스마트기기 사업에 더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 같은 선례에는 태블릿PC 기술력이 없는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가 있다. 이 기업은 중국 국영기업인 레노버 제품을 수입해 공급하는 사업자로, 레노버의 제품을 생산하거나 수리할 수 없다.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는 지난해 강원도교육청 1차 사업과 일부 경기도교육청, 올해 상반기에는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수행 사업자로 낙찰됐다. 그 결과 강원도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사후 관리 문제를, 전북교육청에서는 기기 공급·교체 문제를 빚고 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의 올해 스마트기기 규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단가를 지난해보다 대폭 높여 사전 규격서를 배포하기도 했으나 지난해에 이어 ‘대기업 밀어주기’ 의혹이 일자 다시 공정한 기회를 만들겠다고 결정을 유보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사업에서 경기도교육청 중 대부분의 교육지원청은 저장용량 스펙을 128㎇로 정해서 삼성전자와 레노버 둘만 참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때문에 대기업 독무대를 만들어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저장용량이나 해상도 등 일부 규격이 교육용 라인업으로 쓰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고성능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심지어 128㎇를 ‘내장(만) 128㎇’라고 못 박아 SD카드와 내장형 메모리를 합쳐 128㎇ 용량의 제품이 있는 중소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다. 모든 교육지원청이 저장용량을 128㎇로 선정한 것도 아니었다. 일부 교육지원청은 64㎇ 제품을 선정해 사들였다. 이는 학교에서 쓰일 태블릿PC에 128㎇ 용량까지 필요한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 결과 지난해 보급된 단말기 중 90% 이상이 대기업 제품이 됐다. 2021년도 경기도교육청에서 보급한 스마트 단말기 점유율 현황을 보면 국내 대기업인 삼성전자가 75.8%를,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레노버)가 15%를 차지했다. 국내 중소기업 단말기 점유율은 9.2%에 불과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5>] 미얀마 청년단체장 “이만희 HWPL 대표 같은 리더 되고파”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아웅 민 투 마나웅 청년네트워킹 그룹 전무이사 [천지일보=이솜 기자] “전쟁이 일어나면 힘이 없는 청년, 학생들은 많은 희생과 죽임을 당합니다. 이런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한 HWPL의 평화 활동의 시작에는 우리 청년들이 있습니다.” 2019년 9.18 평화 만국회의 제5주년 청년 콘퍼런스에서 아웅 민 투(31) 마나웅 청년네트워킹 그룹 전무이사의 말이다. 3년이 지난 최근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한 민 투 전무이사는 여전히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 HWPL 산하 국제청년평화그룹(IPYG)과 적극 협동 중이었다. 민 투 전무이사가 변함없이 HWPL과 IPYG에 지지를 보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이만희 대표의 목표와 비전이 자리한다. ◆15년 평화 활동 중 만난 IPYG 세계에는 많은 평화 활동가와 각각의 사연이 있지만 민 투 전무이사의 배경은 특별하다. 미얀마에서 태어난 그는 16살 어린 나이에 내전을 겪으며 태국-미얀마 국경의 ‘말라’라는 큰 난민 캠프에 머물게 됐다. 전쟁의 참혹함을 두 눈으로 보게 된 민 투 전무이사는 그 자리에서부터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고 교육도 진행하게 됐다. 민 투 전무이사는 “그곳(난민 캠프)에서 내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됐다”며 “그 때 이후로 나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고 있었고 평화 활동가들이 있기를 고대했다”고 회고했다. 난민캠프는 이후 15년간 평화와 청년을 위해 달려온 민 투 전무이사의 시작이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진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HWPL과 인연을 맺는 것은 당연지사. 2017년 온라인을 통해 HWPL과 IPYG를 알게 된 민 투 전무이사는 미얀마 양곤에서 열린 회의에서 HWPL과 만나고 이들이 ‘진짜’임을 곧 깨달았다. 민 투 전무이사는 “IPYG와 연락한 이후 이 단체가 (평화와 청년을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래서 세계 청년들과 함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목표를 가진 IPYG와 함께 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9년 청년 콘퍼런스 발제에서도 “IPYG의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청년이 가진 가치와 정체성에 대해 깨닫게 됐다”며 “청년들 스스로가 평화의 주체가 되자는 것이 IPYG의 비전인데 2015년부터 미얀마 청년들과 시민들 역시 이 비전에 함께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IPYG와 만난 이듬해 민 투 전무이사의 평화 활동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만희 대표가 미얀마를 방문하면서다. 민 투 전무이사는 “당시 (미얀마에서) 이 대표의 말을 듣고 확실한 답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이루는 HWPL의 활동에 큰 감명을 받아 평화의 손 편지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 서울에서 열린 만국회의 4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민 투 전무이사는 이 대표가 각국의 청년들에게 HWPL과 IPYG와 함께 해 평화의 활동을 할 것을 요청한 데 대해 큰 감명을 받고 청년들을 위한 학교인 ‘플러스 체인지 메이커’를 설립하기도 했다. 민 투 전무이사는 자신이 세운 이 학교에서 IPYG의 평화교육을 진행했다. ◆“만국회의 기념식, 리더들 만나는 최고의 기회” 2019년에도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한 민 투 전무이사는 만국회의 기념식에 대해 “세계의 리더들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이후에도 민 투 전무이사는 IPYG 평화 커리큘럼을 통해 협력하고 미팅과 워크샵 등을 이어가고 있다. 민 투 전무이사는 IPYG와 함께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큰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나는 항상 IPYG와 이들의 활동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HWPL 리더들이 평화를 위해 일하는 방식을 좋아한다”며 “IPYG는 마치 내 집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HWPL의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 10조 38항)’이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답임을 인정했고 DPCW를 유엔에 결의안으로 상정시키기 위해 미얀마에서도 평화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민 투 전무이사는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 10조 38항)’이 유엔 총회 결의안으로 상정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그래서 정말로 이 대표에게 감사하다. 언젠가는 나도 이 대표와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국 불안과 폭력 사태가 이어지는 미얀마에서 민 투 전무이사는 당장에 필요한 평화 활동으로 “서로를 그만 죽이는 것”을 먼저 꼽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국제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모든 사람과 모든 나라는 전쟁, 무력 충돌에 대해 알아야 한다.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나라가 지켜야 할 국제법 제정이다”고 말했다. “저는 제가 함께 일하는 IPYG의 청년 리더가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주립학교뿐 아니라 많은 청년 단체와 함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청년들을 만나 IPYG와 DPCW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HWPL·IPYG 평화 봉사자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현대이야기<14>] 정몽구의 엄격한 ‘품질경영’으로 달라진 현대차의 글로벌 위상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4>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의 품질경영 J.D 파워사 품질 테스트 결과 ‘충격’ 현대자동차 품질평가서 ‘꼴찌’ 차지 자동차 품질강화에 직접 나선 정몽구 품질상황실 설치 및 24시간 운영 고객의 불만사항 일일이 접수 처리 품질목표 관리로 ‘품질패스제’ 시행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1938년 3월 18일 부친 정주영 회장과 모친 변중석 사이의 8남 3녀 중 이남으로 강원도 통천에서 출생했다. 신장이 부친을 닮아 177cm에 75kg의 건장한 체격으로 서울 경복고 재학시절 운동을 좋아해서 과격한 운동인 럭비팀 주장으로 활동했다. 경복고 재학 시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과 동기로 공부만 하던 가냘픈 체구의 친구인 그를 불량서클 학생들로부터 보호했고, 거구에 강골을 자랑하며 팔순 고령인 지금도 어깨가 떡 벌어질 정도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한양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를 1967년 졸업했다. ◆‘갤로퍼 신화’로 부친에게 경영능력 인정받아 정몽구 회장은 1970년 2월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1974년 2월까지 현대자동차 이사로 근무했다. 1977년 현대정공(現 현대모비스)을 설립하고 당시에 다소 생소하지만 SUV의 원조인 4륜구동의 현대 갤로퍼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출시 두 달 만에 33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공전의 히트차가 됐다. 현대 갤로퍼가 단숨에 쌍용자동차의 코란도를 시장에서 앞지르면서 갤로퍼 신화를 일으키자, 부친 정주영 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경영능력을 비로소 인정했다. 갤로퍼는 미쓰비시 자동차의 유명 4WD 모델인 1세대 구형 파제로를 1990년 3월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라이센스로 받아 1991년 9월 16일 갤로퍼(1991~1997)로 모델명을 변경하고 출시했다. 디젤 롱버디를 먼저 선보이고 11월 자동변속기모델, 12월에는 V6 3.0 가솔린 엔진 롱버디와 터보디젤엔진 모델을 연달아 출시했다. 출시 첫해 3000대 판매실적을 올렸고, 1992년에는 2만 4000대를 판매하며 국내 4WD 시장의 52% 시장 점유율을 보였으며, 출시 3년간 10만 여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유라시아 7만㎞를 고장 없이 완주하면서 고객들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았다. 또한 신사업으로 추진한 컨테이너사업은 1981년 1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고, 1983년에는 일본기업을 이기고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그리고 사실상 장자인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자동차 경영을 인계하고자, 정주영 회장이 현대 포니의 명성을 불러일으킨 동생 정세영 회장을 불러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넘겨주라고 지시했다. 정세영 회장은 별다른 불협화음 없이 당시 세계 11위까지 성장한 현대차를 1999년 정몽구 회장에게 미련 없이 넘기고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을 인수했다.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 벤치마킹 정몽구 회장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표방한 ‘품질경영’을 벤치마킹하면서, 향후 현대차는 품질을 향상시켜야 진정한 자동차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98년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J.D 파워사가 평가한 자동차 품질 테스트에서 현대자동차가 품질평가 꼴찌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품질강화에 직접 나섰고, 향후 현대차의 운명은 품질향상에 있다고 굳게 결심하고 자금이 많이 들어가도 좋으니 품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2001년 서울 양재동 신사옥으로 이사한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 지시로 1층 로비에 ‘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을 설치했다. 당시 품질상황실이 24시간 운영되면서 세계 각국 주요 지역에 펴져 있는 자동차 딜러들과 치밀한 에프터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품질과 관련된 고객의 불만사항을 일일이 접수 처리했다. 여기서 수집된 품질정보보고서(QIR)로 작성한 데이터를 생산 현장 임직원들이 100% 정보를 공유하면서 현대차는 점진적인 개선을 해나갔다. 품질회의실과 품질확보실에서는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업계 차종을 모조리 가져다 비교분석했고, 관련 품질회의를 월 평균 2회 이상씩 진행시켰다. 그리고 정몽구 회장이 품질 및 연구개발, 생산담당 임원들을 수시로 소집해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결과로 나온 것이 현대차의 ‘품질패스제’이다. ‘품질패스제’는 정몽구 회장이 확실한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품 개발과 생산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지시한 제도이다. 현대자동차의 대표적 베스트 셀링카인 ‘NF소나타’도 이런 엄격한 품질과정을 통과해서 출시했다. 이외에도 정몽구 회장은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각국의 생산 공장마다 전수검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현대차 제품의 제품 불량을 대대적으로 줄여 가는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성과는 기술혁신과 전사적인 협력사 관리를 통해 가시적으로 가능해졌다. ◆협력업체 기술개발 지원 등 품질개선 앞장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기 전인 1996년 정몽구 회장은 현대종합기획실(삼성의 비서실 기능과 동일)에 ‘현대기술의 날’을 선언하고 ‘현대기술상’을 제정했다. 이와 함께 그룹 차원의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연구개발인재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확대 지원하기 위해 ‘현대기술상’ 수여 대상을 협력회사로까지 확대시켰다. 특히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자동차부품산업재단’을 설립하고, ‘5스타제도’를 도입해 협력업체의 품질개선에 앞장섰다. 이런 시행의 결과로 2004년 J.D파워사가 선정하는 자동차 초기품질지수조사에서 일본 도요타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냈으며, 정몽구 회장은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자동차 부문 세계 최고 CEO로 선정됐다. 2009년에는 미국자동차 매체인 모터트렌드가 선정하는 ‘자동차회사 파워리스트 50’서 6위까지 올랐다. 한때 현대기아차가 미국 등 주요국가에서 리콜(쏘올과 쏘렌토 3만 5000대)과 국내에서 쏘올,쏘렌토, 모하비, K7 등 1만 8272대가 리콜문제로 홍역을 치르지만, 이 원인은 모두가 배선용접 불량으로 실내등이 켜지지 않고 화재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밝혀졌다. 그러면서 기존에 판매된 자동차에 대해 전수 리콜조치를 즉각 실시하고, 소비자 불만을 단숨에 잠재우는 놀라운 순발력과 기치를 발휘하며 경영위기에서 벗어났다. 또한 다시 한 번 ‘품질경영’을 강조하며 불량 없고 가치 있는 자동차 생산에 주력했다. ◆품질개선 대표작 ‘현대 제네시스’ 탄생 현대차는 마침내 품질개선의 대표작인 최고급 승용차인 ‘현대 제네시스’를 출시했다. 현대 제네시스는 일관제철소인 현대제철에서 생산하는 자동차 전문용 초고강력 강판이 대거 적용되고 현대자동차 최초로 4륜 구동(H-Trac) 기술을 접목한 것과 방청기능이 한 단계 더 강화된 LF소나타의 듀얼 로어암 등의 채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2014년 J.D파워가 발표한 신차품질조사(IQS, Initial Quality Study)에서 현대자동차가 일반 브랜드부문 20개 브랜드 중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1위에, 기아자동차는 도요타와 근소한 차이로 3위에 선정되는 쾌거는 지난 30년간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몽구 회장의 집념의 결과물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런 결과 현대자동차는 2010년 미국 포드자동차를 제치고, 현대·기아차그룹을 글로벌 누적 판매대수 5위를 기록하는데 이 결과도 정몽구 회장이 강조한 ‘품질경영’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리고 1999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처리 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성공적으로 회생시켰고, 부도 처리된 한보철강을 2004년에 인수한 뒤 사명을 현대제철로 변경하고 글로벌 철강 일괄생산 체제를 구축했으며, 부친 정주영 회장의 숙원사업(쇳물에서 자동차 철강 생산 확대)을 마무리했다. 2011년 4월 유동성 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 모기업 현대건설을 인수해 세계적인 회사로 다시 육성했다. 2009년 9월 기준 현대자동차를 포함 10개 계열사의 자산규모는 14조 400억에 불구했으나, 2018년 기준으로 54개의 계열사와 총 356조 5823억원의 자산과 254조 7976억원 매출액을 달성하며 당시 기준 국내 2위의 재벌기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런 현대기아차의 발전은 미국 포춘지에서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속도위반 딱지를 부여 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2년 6개월 만에 필자가 2022년 7월 유럽출장 중 주차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벤츠, 도요타, 아우디, 폭스바겐 자동차들 틈에 자주 보이는 현대자동차들을 발견하고, 세계 5위의 현대기아차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가슴속 깊이 간직하는 느낌을 누릴 수 있었다. 주야로 노력한 정몽구 회장의 집념이 오늘의 현대·기아차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판단한다. 끝으로 현대·기아자동차가 대폭적인 해외투자로 조만간에 자동차 1위 회사인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세계 1위 자동차회사가 되길 소망해 본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3>] “작은 변화가 큰 평화 만든다… HWPL에 배운 교훈”

[천지일보=이솜 기자] 평화에 관심이 있고, 이를 실천하려고 마음먹는다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을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HWPL은 전 세계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노력하는 단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단체 가운데 HWPL과 같은 규모와 열정을 가진 곳은 흔하지 않다. 나이지리아 오웨리 기술 국립대학교 부총장인 에메카 오구지에(51)도 자연스럽게 HWPL과 손을 잡게 된 교육자다. 이 학교의 화학과 교수이자 비정부기구(NGO)인 국제가족재단(IFF)의 단체장을 겸임하고 있는 에메카 부총장은 “사회의 평화, 정의, 안정을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IFF는 개발도상국과 고통에 놓인 지역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이로 인한 공동체와 지역,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고질적인 빈곤을 해결하려는 단체다. 이처럼 평소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나선 에메카 부총장은 인터넷을 통해 HWPL의 활동을 접하게 됐고 세계평화를 외치는 HWPL의 미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평화교육 통해 사회 임무수행 성취감 느껴” 교육자인 에메카 부총장은 HWPL과의 협력 중 평화교육에도 참여하게 됐다. 에메카 부총장은 “HWPL의 평화교육 프로그램이 사회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나의 역량을 강화하고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교육에 참가한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이는 내가 최근에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중요하게 내린 결정은 그 값을 톡톡히 했다. 에메카 부총장은 곧 평화교육에 빠져들게 됐다. 그는 “(HWPL의) 모든 교육에 참여했다”며 “각 교육 후에 진행되는 문제를 푸는 시간도 즐거웠다. 이런 퀴즈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자체가 나에겐 가치 있는 일이었다. 교육을 받을 때는 사회를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며 얻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교육 프로그램도 에메카 부총장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무엇보다 HWPL과 이만희 대표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에메카 부총장은 “HWPL 아프리카 팀의 노력과 에너지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아프리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졌다”며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 보기에도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HWPL과 이 대표를 매우 진실하고 용기 있는 평화의 사자라고 생각한다”며 “격변하는 세계에서 모두가 평화를 원하지만 사회와 세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념하는 자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동료들도 회원들도 HWPL 평화교육 참여 HWPL의 평화교육에 감명을 받은 에메카 부총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재단 구성원들에게도 평화의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그가 센터장으로 있는 아프리카 미래 에너지 및 전기화학 시스템 우수 센터(ACE-FUELS)에서도 작년 6명이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HWPL의 평화교사로 임명돼 지역 중학교에서 평화 교사로 활동 중이다. IFF 회원들도 평화교육에 참여했다고 에메카 부총장은 전했다. 에메카 부총장은 왜 이렇게 평화교육에 열정적으로 임했을까. 먼저는 그가 평화교육에 참여하며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에메카 부총장은 “평화교육 프로그램은 우리의 행동과 태도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평화교육을 통해) 우리가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과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평화의 사자가 돼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과 재단 회원들이 평화교육을 받은 데 대해 “이는 우리 사회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동료와 회원들이) 전하기 시작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해줬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가 평화를 갈망하는 배경에는 나이지리아의 불안한 안보 상황도 빼놓을 수 없다. 에메카 부총장은 나이지리아의 평화를 위한 우선순위를 묻자 “다양성 안에서 하나 됨이 매우 중요하다”고 꼽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고 분단과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씨가 심기게 하는 행동과 태도를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에메카 부총장이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일까. “제게 평화란 편견과 오해와 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줄 준비가 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린 마음과 진심으로 다양한 생각과 태도를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할 때, 갈등과 오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개개인을 또 모두를 존중합시다.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향한 길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6>] ‘민다나오 평화’ 목도한 필리핀 학교, 앞다퉈 ‘HWPL 평화학교’ 동참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HWPL 평화교육’ 유치원서 고등학교까지 적용[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때가 되면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지구촌에도 평화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장래의 주인이 될 여러분! 다 함께 평화의 사자가 돼 하늘의 뜻과 인류의 소망을 위해 평화의 세계를 함께 이뤄가도록 합시다.” 5천여명의 필리핀 현지 학생들과 교육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가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2016년 1월 25일 1만여명이 재학 중인 필리핀 코타바토 폴리테크닉 시립대학교(CCSPC, 총장 담망 반탈라)에서 열린 ‘HWPL 평화학교 선정식’에 참석했다. 행사 전 학생들은 대한민국 국기와 HWPL 산하 국제청년평화그룹(IPYG)의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흔들며 차량을 타고 학교에 들어서는 이만희 대표와 평화사절단을 맞았다. 환호와 박수 속에 현장은 금새 축제 분위기가 됐다. HWPL의 설립자이자 6.25 참전용사인 이만희 대표는 “전쟁 없는 평화세계를 이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자”면서 직접 세계를 31바퀴나 돌며 전 세계 모든 학생들이 평화를 만들어가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평화교육 사업을 추진했다. 세계 곳곳에 세워진 HWPL 평화학교의 학생들은 평화교육을 통해 생명의 중요성과 가치를 내면화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양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합당하고 평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이 국적과 민족, 종교, 문화, 이념의 차이로 인한 갈등 상황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HWPL 평화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역사회 내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범을 가르치고 평화로운 사고방식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조화로운 공존의 방법을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평화롭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HWPL의 평화교육이 이같이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이유는 말로만 평화를 외치는 것이 아닌 이 대표가 직접 나서서 실현시킨 HWPL의 평화 행보를 교육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대표적으로 이 대표가 직접 중재에 나서 이뤄낸 필리핀 민다나오의 40년 종교 무력 분쟁의 평화적 해결 사례가 있다. 2014년 1월 24일 HWPL 이만희 대표의 중재로 이뤄진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HWPL과 현지 주민들은 평화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평화교육 사업을 기획·진행했다. 그 첫 결실로 2016년 1월 25일 필리핀 코타바토 폴리테크닉 시립대학교(CCSPC)가 필리핀의 고등교육기관 중 최초로 HWPL 평화학교가 됐다. 담망 반탈라 CCSPC 총장은 이듬해인 2017년 9월 18일 평화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 대표에게 표창패를 전달했다. 이 표창패에서 반탈라 총장은 “HWPL 이만희 대표께서 미래에 영원한 업적을 남기시고 세계 평화 건설을 위해 평생 헌신하셨기에 이 표창패를 드립니다”라고 명시했다. 또 “코타바토시 기능 대학은 HWPL의 평화 증진을 위한 노력에 협력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강조했다. 반탈라 총장과의 대담에서 이만희 대표는 “평화는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며, 청년들도 평화의 사자가 돼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에서 반탈라 총장은 로날드 아다맛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HED) 위원을 HWPL에 소개하기도 했다. 아다맛 위원은 이 자리에서 이 대표가 ‘지구촌에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이루어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자’며 시작한 평화운동에 감동해 자신도 필리핀에서 평화의 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4개월 후인 2018년 1월 이만희 대표는 HWPL 평화 사절단과 함께 제26차 세계 평화순방을 위해 필리핀을 방문했다. 이 일정 중 CHED와 HWPL 간의 MOA가 이뤄졌다. 이후 CHED는 같은 해 8월 7일 평화연구 통합 승인에 관한 결의안(제435호-2018호)을 냈고, 이듬해인 2019년 4월 2일 발행된 CHED 행정명령 1호 공문을 통해 관련 고등교육 커리큘럼에 평화교육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행정적인 뒷받침 속에서 필리핀에서의 평화교육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HWPL 평화교육은 CHED가 관장하는 필리핀 고등교육(주립 대학, 전문 대학)을 비롯해 기본 교육 과정(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에 확장 및 적용돼 가고 있다. CHED와 HWPL의 파트너십은 이후 3개의 고등 교육기관과의 MOU가 진행됐고, 29개의 기초 교육과정 학교 현장에서 평화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15건의 MOU와 3건의 MOA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2>] 평화 메신저 나선 언론인 “신념 달라도 HWPL서 하나 된 모습 감명”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팔라 데 파파가이오 편집장 페스투스 이제히 예리 [천지일보=이솜 기자] “HWPL과 이만희 대표가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평화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지금의 위험한 시기에 매우 필요한 평화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HWPL의 평화교육과 세계평화 국제법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온라인 매체 팔라 데 파파가이오(Fala de papagaio)의 설립자이자 편집장인 페스투스 이제히 예리(53)는 평소 평화에 관심이 많았다. 우연히 접하게 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의 활동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세계평화를 위한 페스투스와 HWPL의 협력은 시작됐다. 다음은 지난달 본지가 이메일로 진행한 페스투스와의 인터뷰. ◆“HWPL 행사 특별… 다양한 참석자 한 자리에” 페스투스가 세계 평화에 관심을 가진 데에는 팔라 데 파파가이오의 본사가 있는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의 불안정한 정국 상황도 맞물려있다. 인구 150만~200만명의 전 포르투갈 식민지 기니비사우는 1974년 독립한 이래 네 차례의 군사 쿠데타와 10여 차례의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2014년 이후 기니비사우는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으나 군부의 영향력이 여전히 커 현재 우마로 시소코 엠발로 대통령 정권에서도 지난 2월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쿠데타 당시 정부청사 주변에서 총격전이 발생해 11명이 사망했지만 청사 안에서 내각회의를 주재하던 엠발로 대통령은 무사했고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기니비사우뿐만 아니라 말리, 기니, 차드, 부르키나파소 등 주변국에서도 군사정변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등 불안과 위험이 상존해있다. 이 때문에 페스투스는 자신만의 평화의 정의가 있다. “평화는 전쟁, 갈등, 공동체에서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폭력이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자유 또는 공공의 소란이나 전쟁으로부터의 자유롭고, 조용하고 차분한 마음의 상태, 더 나아가 사람들 사이의 합의와 화합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평화를 갈망해오던 페스투스에게는 HWPL의 평화행사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페스투스는 HWPL의 포럼과 컨퍼런스 등 공식 행사에 온라인으로 수차례 참석했다며 “행사를 통해 항상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동기부여를 받았다”며 “사는 곳과 피부색 그리고 언어에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라는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페스투스는 “HWPL의 평화행사는 다른 행사들과 달리 서로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신념이 있는 종교 지도자들,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며 다르게 보이는 참석자들이 하나 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표했다. 무엇보다 페스투스를 감동 시킨 인물은 이 대표다. 그는 “이 대표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으며 HWPL은 우리 세대가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대표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 당사자들과의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실질적으로 다양한 분쟁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평했다. ◆“HWPL과 이만희 대표의 연설 세상에 전해” 페스투스는 직업이 언론인인 만큼 언론 매체를 통해 평화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데에도 관심이 크다. HWPL과 팔라 데 파파가이오는 MOU를 체결했으며 페스투스는 HWPL 활동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또한 일부 언론행사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스투스는 “(기사를 통해) 이 대표가 주최하는 다양한 평화 컨퍼런스 및 온라인 포럼에 직접 참석하게 돼 영광스러웠다고 전했고 HWPL이 진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구체적인 평화 활동을 펼치는 단체라고 보도했다”며 “평화로운 세상의 중요성과 이를 이루기 위한 교육 활동 그리고 분쟁에 관련된 여러 만남, 단합 등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이 대표의 연설도 전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인으로서 그가 가장 감명 깊었던 HWPL 취재는 지난 1월 24일 HWPL 평화의 날 8주년 행사였다고 한다. 페스투스는 “모든 시민사회 대표들이 강제개종 상황을 재검토하고 국제사회의 규범이 된 ‘신앙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해결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페스투스와 같은 언론인의 역할도 크다. 페스투스는 “언론은 위기 상황에서 보다 효과적인 대처를 가능하게 하도록 미리 경보를 울려주고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를 제공한다”며 “사람과 집단 사이의 다리를 만들고 폭력적인 갈등을 예방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의 전달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행동의 동기부여자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이야기<13>] 아산의 정신 깃든 현대차… 세계 5위 자동차회사로 ‘우뚝’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3>아산 정주영 회장의 현대차 鄭회장, 일제때 자동차 수리회사 설립 성실함과 근면성으로 엄청난 부 축적 첫 국산기술로 만든 포니 1976년 출시 기아자동차 인수 후 다양한 차종 보유 정몽구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등재 바이든 방한때 정의선 회장 50분 독대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0년 3월 합자회사 형태의 자동차 수리회사인 아도서비스를 설립해 성실함과 근면성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우연히 발생한 화재로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허공으로 날리게 됐지만, 신용이 높은 정주영 회장에게 또다시 담보 없이 자금을 빌려준 사업가인 오윤근 사장 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정 회장은 세월이 흘러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무자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운행할 수 있는 자동차,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로 순수 국산 기술을 활용해 만든 포니 승용차를 1976년 출시했다. 이는 본격적인 독자개발 한국산 자동차 사업의 시대를 열어가는 계기가 됐다. 포니는 국산 말로 ‘조랑말’이라고 표현되기도 했고, 1차 고객은 주로 택시를 운용하는 택시회사였다. 택시는 1979년 기본요금이 300원 정도였고, 주행 요금은 400미터당 40원 정도로 당시 대중교통인 버스요금이 9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일반 서민들은 급한 일이 아니면 이용이 다소 부담스럽던 시절이었다. 포니의 최대 약점은 에어컨이 미장착 돼 여름에는 승객들이 더위를 참고 타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승차감이 향상되고 에어컨이 장착된 중형차인 2000cc 택시가 운행되면서 포니는 점차 시장에서 사라졌다. ◆최장수 모델 ‘쏘나타’ 8세대까지 출시 그리고 1994년 개발된 소형차인 액센트(Accent)는 6세대인 현재까지 변형 모델을 출시하면서 젊은 세대가 처음 구매하는 차로 인기를 얻었다. 이 차종은 소형차에 맞게 작고 프론트 범퍼 폭이 비교적 넓게 설계돼 컴팩트한 차량의 인상을 줬고, 현대차 특유의 심플한 실내 기능 활용성을 주고 있으며, 적당한 크기의 중앙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쾌적한 영상을 전했다. 특히 직관적인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 계기판을 클러스터에 삽입해 아주 편하게 주행 정보를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특징을 주면서도 손에 잡기 쉬운 도어 인사이드 핸들을 통해 실용적인 실내 인테리어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또한 액센트는 디스크 브레이크를 통해 높은 제동력을 연출하며, 후방카메라 ECM Room Mirror를 통해 사각지대 완벽 커버를 구현시킨 승용차였다. 현대차는 현재 국민차로 불리는 쏘나타 개발 이전에 중형차 고유모델인 스텔라를 개발, 생산 출시했다. 스텔라는 당시 미국 포드와 제휴를 통해 생산하던 코티나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활용하고,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이아로의 디자인과 미쓰비시의 엔진 등이 합쳐져 5년간 개발 끝에 출시됐다. 이 모델은 현재 8세대 쏘나타(SONATA) DN8까지 이어지며 누적 판매 대수가 무려 160만대로 현대차의 최장수 모델이다. 현대차는 1995년 ‘마르샤’를 출시하는데 쏘나타 2세대와 3세대 플랫폼을 공유해 개발했다. 차량 크기는 쏘나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형차인 그랜저의 파워트레인과 옵션이 탑재된 최고급 승용차로서 최고 출력 173마력을 발휘하는 2500cc V6 가솔린 엔진이 채택됐고 오토에어컨, 우드그레인 마감재 등이 적용된 준대형 승용차였다. 그리고 현대차는 1996년 국내 최초의 준중형 RV 차량인 싼타모를 출시했고, 당시 국내에 생소한 7인승 MPV(Multi-Purpose Vehicle)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며 지금의 7인승 RV & SUV 모델의 원조모델로 판매되다가 2002년에 단종됐다. 2001년 테라칸이라는 프레임 바디 기반의 정통 SUV를 출시하고 2500cc 디젤엔진과 에쿠스에 탑재된 3500cc 가솔린엔진이 채택면서 이후 베라쿠르즈, 맥스크루즈 차종 모델로 이어졌으나 현재는 초대형 팰리세이드로 변경돼 판매 중이다. ◆대표 세단 그랜저, 6세대까지 ‘36년 역사’ 현대차는 대형자동차의 원조인 1세대 각 그랜저(1986년 7월~1992년 9월)를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와 합작해 개발 출시했다. 초기는 2000cc에 5단 수동변속만 출시하다가 2400cc에 전자제어식 4단 자동변속기를 채택한 그랜저를 시장에 판매한다. 이어 1989년 9월 164마력 V6 3000cc 그랜저를 출시하는데 이 모델은 6기통 타입 승용차이다. 2세대 그랜저 LX(1992년 9월 18일~1998년 9월)는 뉴그랜저라는 모델로 2000cc, 2400cc, 3000cc급 3종류가 출시되는데 곡선형 타입이며, 실내 공간도 종전보다 커져서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3세대 그랜저 XG(1998년 10월~2005년 8월)는 현대차가 미쓰비시와 협업하지 않고 단독으로 개발 출시했고, 2세대 약점인 프레임리스 도어누수, 미션 변속충격 등 몇 가지의 잔고장 원인을 개선했다. 4세대 그랜저 TG(2005년 5월~2010년 12월)는 에쿠스와 패밀리룩을 이뤘던 XG와는 차별화한 모델로 소나타와 패밀리룩을 형성했다. 본넷 엠블럼이 사라지면서 급이 낮아진 게 아니냐는 논란이 초반에 발생했지만, XG에 비교해 차체와 쾌적한 주행 성능을 높인 장점이 있으며, 곡선 위주의 차체를 디자인해 고객들의 파격적인 인기를 끌면서 판매 대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5세대 그랜저 HG(2011년 13일~2016년 11월)는 당시 판매가격 기본이 3000만원이 넘는 차로 주행 시 부드럽기만 했던 특유의 승차감에 단단함이 가미돼 출시됐다. 6세대 그랜저 IG(2016년 11월 22일~2019년 11월)는 개발기간 만 5년이 걸린 모델로 조금 더 젊고 스포티한 감각과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디자인으로 변경됐고, 벤츠 E클래스나 S90와 비교해 주행 성능이 큰 차이가 안 나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게 출시됐다는 평가를 고객들로부터 받았다. 페이스리프트 돼 출시한 6세대 그랜저 IG(2019년 11월 19일~현재)는 12.3인치 컬러 LCD 클러스터와 터치식 공조 컨트롤러를 전체 트림에 장착했고, 스웨이드 내장재와 뒷좌석 수동커튼 등을 기본사양으로 추가했다. ◆미쓰비시와 공동개발 초대형 승용차 ‘에쿠스’ 현대차는 초대형 승용차인 에쿠스를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해 1999년 4월 28일에 출시했고 2015년 12월까지 생산 판매했다. 에쿠스는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과 천마를 상징하며, 영어로는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독창적인 명품 자동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외수출은 현대차브랜드로만 수출됐고, 수출국에 따라 센터니얼이라는 브랜드도 사용됐다. 차체가 각이 지어져서 1세대 차는 ‘각쿠스’라는 애칭도 불렸다. 2003년 11월 페이스리프트 한 모델이 출시되는데 전면부의 그릴 형상이 완전히 바뀌고 방향지시등이 호박색에서 하얀색으로 변경돼서, 기존의 벌브타입에서 LED 등을 탑재시키어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나게 해줬다. 후면부는 넓은 삼각형 형태의 리어리프트로 변경시키고 번호판을 범퍼에서 트렁크자리로 옮겨 신차느낌을 주게 됐으며, 실내도 최고급 냉난방 통풍시트가 적용됐다. 2015년 2월에 V6 3800cc 람다엔진(JS380)이 추가되면서 V6 3000cc 시그마엔진 차종을 단종시켰고 그해 2월 6일 3300cc 람다엔진이 추가되면서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브로드캐스팅)기능이 채택된 차를 출시하지만 재고 소진 후 단종시켰다. ◆현대차 럭셔리 글로벌 브랜드 ‘제네시스’ 그리고 현대차는 2015년 11월 4일 제네시스(Genesis) 브랜드를 자사의 최고급 독립 브랜드로 발표하고, 독일의 러셀하임, 한국의 현대차 남양연구소, 미국 얼바인에서 설계 및 디자인된 제네시스를 울산공장에서 생산하고 출시했다. 제네시스는 2020년까지 6종의 제품라인업 모델을 출시하면서 에쿠스라고 불리었던 현대차의 플래그쉽 럭셔리 세단은 Genesis Brand란 명칭으로 ‘EQ900’를 2015년 개발 판매했다. 현대차는 지난 10년간 누적시킨 소재와 설계, 시험, 파워트레인, 전자화된 12.3인치 클러스터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가 조합된 자체 기술을 활용해서 2013년 11월 제네시스 2세대 모델인 G80(2016년 7월)을 출시하게 된다. 제네시스 2세대 차종은 탄탄한 차체를 기본으로 동력성능과 안전성, 승차감 및 핸들링, 정숙성, 내구성 등 5대 기본성능과 디자인을 글로벌 명차인 독일 벤츠, 아우디 수준으로 끌어올린 승용차다. 브랜드 명칭을 제네시스로 결정한 이유는 성능,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진보와 혁신을 지속해 대한민국 최고급 승용차의 신기원을 열어 간다는 의미가 있으며, 글로벌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향상된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2018년 1월에 강남 부자들인 고객을 대상으로 강남구 대치동에 독립매장인 ‘제네시스 강남’을 개설하고 수도권 갑부들에 대한 영업을 강화했다. 그리고 후속 모델인 초대형 럭셔리 모델인 G90을 2015년 12월 9일 출시하면서 고객들의 선택 폭을 다양화시켰다. 또한 현대차는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고 더욱 단단해진 승용차 및 SUV 차종을 보유하게 되면서 소형부터, 중형, 대형, 초대형 차종에 이르는 세계 5위권 안에 들어가는 진정한 글러벌 자동차회사로 발전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2020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1939년에 설립된 기구로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성과와 업적을 토대로 자동차산업과 모빌리티 발전에 중대한 역할과 기여를 한 인물을 엄선함)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어 새로 선임된 정의선 회장은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시 단독으로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면담한 바 있다. 현대차가 미국과 약속한 파격적인 투자(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자동차 년 30만대 규모 공장 및 배터리셀 공장 100억불 투자 등)를 통해 이른 시일 내로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이기고 세계 1위 자동차회사로 등극 되기를 앙망한다. (정리 = 유영선 기자)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1>] “이만희 HWPL 대표와 같은 분이 있어 한국은 행운이다”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동티모르 호세 투르꿸 수석 고문[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400년이 넘도록 식민지 생활을 이어가던 나라에서 태어나 8살 때 전쟁을 경험했고 극도의 혼돈 속에서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성장해 현재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한 국가의 내무부 수석 고문으로 활동하는 이가 있다. 바로 동티모르의 호세 투르꿸 수석 고문이다. 그는 2007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돼 동티모르의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호르타를 보좌하기도 했다. 직접 전쟁을 겪었던 만큼 평화에 대한 중요성을 가슴에 새기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투르꿸 수석 고문은 세계적인 민간 평화단체인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의 협력자이기도 하다. 그는 “호세 라모스 호르타의 평화행동은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화해를 낳았고, 이만희 대표와 HWPL의 평화행보는 민다나오의 긴장을 완화했다”면서 “HWPL에 가입하는 것은 평화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투르꿸 수석 고문이 겪었던 전쟁의 아픔과 평화를 이루는 과정을 비롯해 그가 HWPL에 협력하는 이유에 대해 서면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 어두웠던 동티모르의 모습투르꿸 수석 고문에 따르면 동티모르가 현재와 같이 민주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데까지는 많은 희생이 있었다. 동티모르는 1514년부터 1975년까지 4세기가 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1975년 12월 7일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포르투갈-티모르 침공이 있었는데 당시 투르꿸 수석 고문은 8살이었다. 전쟁 속에서 그의 어린시절은 생존이 신조였다. 그는 “오늘날 남수단, 기니비사우, 리비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후 국가의 아이들이 겪는 끔찍한 현실에서 내가 본 것은 어두웠던 그 옛날 우리 동티모르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동티모르는 1999년 8월 30일 유엔 주관의 국제회의와 시민투표를 통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전까지 약 20만명의 희생자들을 발생시키며 24년간의 독립과정을 겪게 됐다. 시민투표를 통해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점령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러나 동티모르는 투표 결과에 불복한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저지른 또 다른 학살을 감수해야 했다. 투르꿸 수석 고문은 당시 동티모르의 상황에 대해 “사회기반의 95%가 무너지면서 동티모르는 거의 석기시대로 돌아간 듯 했다”고 회상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유엔은 2002년 5월 20일 티모르인들을 보호하고 완전한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파견대가 포함된 다국적 동티모르국제군(INTERFET)을 창설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동티모르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번영하고 있으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HWPL로 전세계 평화 네트워크 형성”투르꿸 수석 고문이 이만희 대표와 HWPL에 대해 알게 된 시기는 2018년이다. 그는 이 대표와 HWPL의 평화행보를 접하고 난 뒤 “이만희 대표는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분”이라며 “이 대표의 평화행보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의 공헌은 동티모르에서도 국제적인 평화 노력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 대표와 같은 분이 있다니 한국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HWPL의 평화 활동들과 평화 지지자들은 북한의 군비경쟁과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내전과 붕괴의 위기에서 남아프리카를 안전하게 지켜준 넬슨 만델라와 같은 지도자의 평화 활동처럼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호세 라모스 호르타의 평화 행동은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화해를 낳았고, 이만희 대표와 HWPL의 평화행보는 민다나오의 긴장을 완화했습니다. HWPL에 가입하는 것은 평화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HWPL의 평화활동에 참여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한 투르꿸 수석 고문은 “HWPL은 한국의 성공과 화합, 근면 정신을 대표하는 NGO”라며 HWPL이 추구하는 ‘지구촌 전쟁종식’에 대해서도 “가장 공감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도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HWPL과 협력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에 대해선 “전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지지자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토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며 “전 세계 평화 지지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투르꿸 수석 고문은 HWPL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법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의 유엔 상정을 지지하는 서신을 2019년 9월에 작성한 바 있다. 또한 같은 시기에 HWPL이 주최한 제5주년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참석해 발제하기도 했다. 그는 2022년 온라인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HWPL과의 꾸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 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누구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2007년 동티모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돼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호르타를 보좌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대통령 외교 및 국제관계 고문으로 일했다. 또한 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동티모르가 회원국으로 소속된 서아프리카의 포르투갈어권 국가(CPLP)의 일원으로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서 유엔과 협력해 국가 헌법 질서를 회복하는 팀의 부대표를 맡아 일하기도 했다. 기니비사우는 1974년에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이후 정치적 갈등에 휩싸인 바 있다. 호세 투르꿸 수석고문은 대화와 토론, 회의를 조직하고 기니비사우 전국을 다니며 평화의 일에 적극 참여했다. 또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2014년초 평화적인 선거를 이끌었고 평화 통일 조약의 체결을 도왔다. 그는 이 일로 유엔으로부터 감사장을 수여받았다.

[경제인사이드] 성큼 다가온 전기차 시대… 비중 1% 찍고 판매 확대 가속화

-핵심요약- ◆전기차 시장, 브레이크 없는 성장세 전기차 시장이 브레이크 없는 성장세로 고속 성장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자동차 판매량의 전기차 비중이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1%를 넘어선 1.2%를 기록해 작년 상반기(0.7%)보다 0.5%포인트(p) 올랐다. 자동차 판매 100대 중 1대는 전기차인 셈이다. 6월까지 누적 전기차 보급 대수는 30만대에 육박했으며 확산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업체는 전기차 선봬… 정부는 가격↓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이 올해 하반기 전기차 새 모델들을 쏟아낼 예정이다. 현대차는 아이오닉6를, 기아는 EV6 GT,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EQE 350+’, BMW코리아 ‘i7’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도입을 위해 관련 법규 완화에 나섰다. 구독서비스로 배터리 가격이 빠지면 전기차 가격이 기존보다 저렴해질 전망이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전기차 시장이 브레이크 없는 고속 성장세에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국내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30만대를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에는 전체 자동차 판매 중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1%를 돌파했다. 하반기도 전기차 새 모델들이 대거 출시될 예정으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이며, 정부도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위해 배터리 구독서비스 도입 등에 나서면서 전기차 시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가속화 하는 전기차 판매 3일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은 6만 8528대로 전년 동기(3만 9495대) 대비 73.5% 증가했다. 이를 업체별로 보면 현대차가 3만 1672대로 지난해 동기(1만 5684대) 대비 101.9% 증가해 가장 많았고, 작년 동기(8863대)보다 161.7% 증가해 2만 3192대를 기록한 기아가 뒤를 이었다. 수입 전기차는 올해 상반기 1만 2959대가 팔려 전년 같은 기간(1만 1431대) 대비 13% 늘었다. 수입차 업체 중에선 테슬라가 6746대를 판매해 작년 동기(1만 1629대) 대비 42% 감소했다. 이어 메르세데스 벤츠 1395대, BMW 1238대, 폴스타 936대 등의 순이다. 모델별로 보면 상위 전기차 모델은 아이오닉5가 3만 6740대(12.3%)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포터Ⅱ 3만 3934대(11.4%), 코나 일렉트릭 3만 2341대(10.8%), 테슬라 모델3 2만 6143대(8.7%), 봉고Ⅲ 2만 3404대(7.8%)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상반기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처음으로 1%를 넘어선 1.2%를 기록했다. 1년 전(0.7%)보다 0.5%포인트(p) 올랐다. 자동차 판매 100대 중 1대는 전기차인 셈이다. 비중 1%가 시사하는 바는 주목해볼 만하다. 전기차 판매량이 전체의 1%를 차지하기까지 2012년부터 10여년이 걸렸다. 아울러 기후 위기, 친환경 규제 등으로 경유(디젤)차와 휘발유(가솔린)차 등 내연기관차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반면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는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확산 속도가 더 가속화하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는 29만 8633대로 지난해 상반기(17만 3147대)보다 12만 5486대가 늘어나 72.4%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간 매달 1만대 이상씩 판매된 것으로 이 추세를 볼 때 집계되진 않았지만 이날 기준으로는 이미 누적 30만대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860대에 그쳤던 전기차 보급 대수는 최근 들어 확산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연도별 누적 대수를 보면 2018년 5만 5756대, 2020년 13만 4952대, 2021년 말 23만1443대로 집계됐다. 5만대에서 10만대를 넘어서는 데 2년이 걸렸다면, 10만대에서 20만대를 넘어서는 덴 1년이 걸렸고, 30만대를 넘어서는 덴 6개월여가 걸린 셈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계속해서 새 모델들이 나오고 있으며 2025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수요는 20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내연기관차는 회복되기 굉장히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2017년에 전 세계 자동차 판매가 9700만대를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하락했다가 작년에 반등했지만 8200만대 수준으로 1500만대 차이가 난다”며 “올해도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반기 전기차 쏟아진다 완성차 업체들은 올해 하반기 다양한 전기차를 쏟아낼 예정이다. 먼저 현대차는 지난달 14일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아이오닉6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아이오닉6는 당초 지난달 28일 사전계약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 100%를 받을 수 있도록 가격 조정에 나서면서 이달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6의 가격을 모든 트림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5400만원대부터 시작할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오닉6는 77.4㎾h 배터리가 장착된 롱레인지와 53.0㎾h 배터리가 탑재된 스탠다드 두 가지 모델로 운영되며, 1회 충전으로 주행가능거리는 524㎞다. 전기소비효율(전비)은 6.2㎞/㎾h로 이는 현존하는 전용전기차 중 세계 최고수치다. 후륜에 기본 탑재되는 모터는 최대 출력 168㎾, 최대 토크 350Nm이며 트림에 따라 74㎾ 전륜 모터를 추가해 사륜구동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사륜구동 방식을 선택하면 최대 239㎾ 출력과 605Nm 토크를 기반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h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1초로 역동적인 주행 성능을 체험할 수 있다. 아이오닉6는 9월 출시 예정이며 올해 판매목표는 1만 2000대, 내년 목표는 5만대로 잡았다. 기아는 오는 9월 E-GMP 기반 첫 전용 전기차 EV6의 최상위 트림인 ‘EV6 GT’를 선보일 예정이다. EV6 GT는 최고출력 584마력, 최대토크 75.5㎏·m의 동력성능을 바탕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5초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유럽 WLTP 기준 405㎞다. 수입차 중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가 ‘EQE 350+’와 ‘메르세데스-AMG EQS 53’, BMW코리아 ‘i7’, 아우디코리아 ‘Q4 e-트론’, 폭스바겐코리아 ‘ID.4’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벤츠 EQE 350+는 벤츠 E클래스 기반 전기차로, EQS에 이어 벤츠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개발한 두 번째 모델이다. EQE 350+는 90㎾h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WLTP 기준 660㎞를 달릴 수 있다. 가격은 9000만~1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BMW는 7시리즈 최초의 순수전기차 i7를 선보인다. BMW의 5세대 이드라이브 시스템이 적용된 2개의 전기모터를 장착해 최고출력 544마력을 낸다. 101.7㎾h 고전압 배터리를 장착해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최대 625㎞다. 가격대는 1억 7000만~1억 8000만원대로 전해진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콤팩트 SUV 시장을 정조준 한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각각 브랜드 첫 콤팩트 전기 SUV인 Q4 e-트론, ID.4를 하반기 출시한다. Q4 e-트론과 ID.4는 1회 충전 시 WLTP 기준 520㎞ 수준을 달릴 수 있다. ◆정부,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시대 연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도입에 나섰다.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전기차에서 배터리 가격이 빠지면 전기차 구매 시 기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예를 들면 니로EV의 경우 판매가 4530만원에 보조금 1000만원(국비 700만원+지방비 평균 300만원)과 배터리값 2100만원을 빼면 실제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은 1430만원 수준이 된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달 28일 제2회 국토교통규제개혁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의 국토교통 분야 규제개선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국토부는 연내 자동차등록령을 개정해 배터리 소유자가 자동차 소유자와 다른 경우 그 사실을 등록원부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배터리 구독서비스가 출시될 경우 전기차 구매자가 부담하게 될 초기 구입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짐에 따라 전기차 보급 확산 및 배터리 관련 신산업 육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심판대 오른 사형제] ②존치 주장 “범죄 응징으로 정의 실현”

헌법재판소가 사형제가 위헌인지를 두고 지난 1996년과 2010년에 이어 3번째 심리에 돌입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수십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는 상황이다. 국가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지를 놓고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을 논의했으나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천지일보는 헌재의 공개 변론에서 나온 사형제도의 찬반 논리를 심도 있게 정리해 독자들에게 제공해 21세기에 아직 사형제가 필요할지 고민하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둘째로 사형 존치 측 주장을 소개한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말은 약 기원전 1700년 전 제작된 ‘함무라비 법전’에 기록된 말이다. 타인의 눈을 상하게 했다면 그 사람의 손도 상해야 한다는 식의 조항이 기록돼 있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써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살인 등 흉악한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인의 형량이 낮게 선고됐을 때 인터넷을 뒤덮는 사람들의 분노를 보면, 현대인들 역시 상당수가 죄를 지은 만큼 보복해야 한다는 저 말을 법이 지켜야 할 가장 큰 원칙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형벌, 교화 목적이 전부 아냐” 이렇듯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형벌이 단순히 교화의 목적으로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죄질이 불량한 범죄의 법정형을 더 중하게 규정한 형벌체계는 응보(응징과 보복)적 정의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사형을 규정한 형법 41조를 집행할 이해관계인인 법무부와 그 대리인이 내세우는 사형 목적의 정당성은 ‘타인의 생명을 잔혹하게 해하는 등 인륜에 반하고 공공의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르는 자에 대한 엄중한 제재를 통한 응보적 정의 실현’이다. 즉 현대국가는 사적 제재를 금지하고 있기에 국가가 대신해 범죄인에게 보복함으로써 정의를 세운다는 취지다. 이해관계인 측 참고인으로 헌재 공개 변론에 참석한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의 심각성·흉악성 등을 고려해 형벌도 거기에 맞춰서 무거운 형벌이 가해져야지 사람들이 납득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미 형벌체계 자체가 그렇게 돼 있고, 그것(죄지은 만큼 무거운 벌 받는 것)을 부정하는 순간 오히려 어떤 게 정당한 형벌인지 굉장히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범죄는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극단적인 형벌은 다 없애야 된다고 할 때는 범죄자의 인권만 생각하고 일반 시민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 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형도 효과 없다면 다른 형은 효과 있나”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해 이해관계인 측은 “국민 일반에 대한 심리적 위하를 통해 범죄의 일반 예방 기능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목적의 정당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법에서 말하는 위하력이란 일반인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간주, 무거운 형벌로 위협해 범죄를 예방하려는 힘을 말한다. 사형 폐지 측 의견을 소개할 때 설명한 일반예방효과와 유사한 의미다. 사형을 폐지하자는 측은 사형에 일반예방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해관계인 측은 “가장 강력한 형벌의 위하력도 인정하지 못한다면 형벌의 일반 예방 효과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고 문제 삼는다. 장 교수도 “사형 집행이 안 된 지 25년인데, 위하력이 전혀 없다면 이번 헌법소송이 제기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며 “언제 집행될지 모른다고 하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이런 헌법소송도 제기된 거 아니겠나”고 설명했다. 또 사형 존치 측은 “영국에서는 1965년 사형제 폐지 이후 20년(1966~1985년) 동안의 살인죄가 그 이전 20년 동안에 비해 60%나 증가한 통계가 나왔다. 더욱이 이 기간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의 비율이 72대 28에서 59대 41로 바뀌었다”며 “사형을 당할 가능성이 없어지는 경우에 살인 특히 계획적 살인이 증가하는 신뢰를 이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예방 효과가 없다는 의견을 반박했다. 사형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되더라도 인간의 생존 본능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고려하면 사형이 갖는 위하력을 대체할 수 없다고도 했다. ◆“헌법 37조에 따라 기본권 제한 가능” 헌법 10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의 절대적 가치가 생명이며, 생명을 해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로써 위헌이라는 폐지 측 주장에 대해서 존치 측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헌법 명문에선 절대적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헌법 37조 2항에 의해 법률에 따라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형제가 위헌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존치 측은 “사형제가 가지는 위화력 및 일반 예방을 통한 사회방위 기능이라는 공익의 실현 대상은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 등이며, 나아가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그 공익적 측면이 상당하다”며 “반면 사형제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은 타인의 생명을 잔혹하게 박탈하는 등의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자기 책임에 기초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는 사형을 통해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함으로써 오히려 일반 국민의 생명권을 지킬 수 있기에 생명권 침해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의미다. 사형이 기본권 침해라면, 사형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의 대체 도입 역시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형이 생명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라면 종신형은 신체의 자유를 영원히 박탈한다는 게 장 교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이해관계인 측은 만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아닌 가석방 가능한 무기징역으로 사형을 대체하게 된다면 잔혹한 범죄자가 언젠가는 수많은 시민 주변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인데, 사회방위라는 측면은 물론 국민의 법 감정의 측면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법에 사형제 직접 명시” 헌법이 이미 사형제를 보장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헌법 110조 4항은 ‘비상계엄 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해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를 들어 이해관계인 측은 “우리나라 헌법은 사형제를 직접 명시하고 있고, 아무리 엄격하게 보더라도 사형제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더욱이 이는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경우를 한정한 것이 아니라 사형이 내려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헌법조항”이라고 소개했다. 계속해서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도 입법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즉 법개정 또는 개헌을 통해 사형제를 없애야지,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교도관 기본권 침해? 사형집행이 양심이라면?” 사형을 선고·집행할 법관·교도관이 기본권을 침해받는다는 의견을 두고는 “담당 공무원이 그 공적 지위에 기해 직무행위를 수행하는 것”이라며 “기본권 침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양심을 갖더라도 사형제가 폐지되면 할 수 없게 되고, 이를 기본권 침해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춰 보면 사형 집행이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5>] 필리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기관, HWPL 평화교육 도입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HWPL-CHED 공동 교육 추진 필리핀 2천개 대학·대학교 적용 “학생부터 시작, 전국에 평화 전파”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40년 동안 벌어진 이슬람-가톨릭 간 종교 유혈분쟁이 2014년 1월 24일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의 중재로 종식됐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필리핀에서의 평화문화는 급속도로 확산했다. 이는 그 자체로 ‘평화의 사자’들을 양성하는 최고의 교과서가 됐고, 필리핀에서의 HWPL 평화교육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협정 체결 이후 이만희 HWPL 대표는 2018년 1월 23일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로날드 아다맛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HED) 위원과의 만남을 가졌다. CHED는 필리핀 대통령실 직속 국가기관으로 2000개 이상의 고등교육기관(대학·대학교)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이 대표는 로날드 아다맛 위원과 평화교육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큰 힘이 될 중요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이는 고등교육위가 2019년 모든 공·사립 고등교육기관이 다루는 교육과정에서 평화 연구·교육을 제공하도록 명령하는 ‘행정명령 1호’를 발행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각 국·공립대학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 과정 도입이 추진됐고, 주립 대학 및 지방 대학에서의 평화 활동을 확대함으로써 평화 의식 성장을 위한 국가 및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MOA에 따르면 HWPL은 평화를 위한 논의가 가능한 종교 지도자, 정치 지도자, 여성 및 청년 단체들로 이뤄진 플랫폼을 갖고 있다. 전쟁종식과 평화를 위해 정책 입안자, 시민사회 및 언론 간의 네트워크 및 연대도 형성하고 있다. 평화교육의 다양한 교과내용을 개발·검토·확립하는 등 평화교육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 CHED는 필리핀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개발 계획, 정책, 우선권 및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권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에 대한 개발 계획·정책·우선권 및 프로그램을 구성을 권장하며, 행정 및 사법 기관에 연구에 대한 우선권과 프로그램도 추천하고 있다. 또 세계 정상급 학자의 발굴, 국가 건설 및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센터를 지정하고 지원하며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 및 프로그램 개발 보조금, 학자금, 기타 유사한 프로그램처럼 추가적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기준을 개발한다. 이 같은 양 단체의 특성을 고려해 세부적인 역할도 명시했다. HWPL의 역할은 ▲HWPL 평화교육의 기본 교육과정 추천 ▲HWPL 및 CHED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평화교육 프로젝트 및 평화 계획 전 세계적으로 홍보 ▲필리핀에서의 평화교육을 모범 사례로 전 세계 고등교육기관으로 평화교육 실시 확대 ▲평화 및 개발 프로그램을 위한 장거리 교육 제공에 관심이 있는 고등교육기관과의 연계 구축 ▲HWPL의 연례 평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권을 CHED에 제공 ▲뉴스레터, 서신, 전단지 등 평화교육에 관한 HWPL 독서 자료 제공 등이다. CHED는 필리핀의 각 고등교육기관에 적합하도록 HWPL이 제안한 평화교육 커리큘럼을 수정 및 보완하기로 했다. 또 필리핀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이 각각의 커리큘럼에 평화교육에 대한 하나 이상의 과정·과목 제공을 포함하도록 장려하기로 했다. 필리핀의 고등교육기관은 최소 1년에 1번 평화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고, 필리핀 고등교육기관이 평화교육 및 평화 계획을 하도록 촉진키로 했다. 이 대표는 “교육 쪽에 변화해야 할 점은 전쟁을 위한 과학적 무기보다도 평화를 이루는 연구와 지도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평화를 이루는 데 한 동반자가 생겼으니 너무나 반갑고 기쁘다”고 밝혔다. 로날드 아다맛 위원 역시 “CHED와 HWPL은 평화를 함께 촉구하는 동반자”라며 “학생들 사이에서 평화에 대한 촉구가 시작되면 결국 온 지역사회와 전국으로 뻗어 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오늘 맺은 MOA는 정말 알맞은 시기에 대단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를 통해 HWPL의 평화교육을 육성하는 것은 필리핀 교육기관에 영향을 줄 것이고, 평화를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로 필리핀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HWPL과 DHED의 평화교육 MOA 체결이 이뤄진 때는 이만희 대표가 평화순방 26차 시기였다. 이때 이 대표는 20개 이상 분교와 약 7만명의 학생을 보유한 필리핀 내 최대 학교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를 방문해 평화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행사에는 평화의 사자 방문 소식을 듣고 그의 평화 메시지를 듣기 위해 800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청년들도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를 위해서라면 모두 평화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말에 학생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날 로날드 아다맛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 위원장과 엠마누엘 데 구즈만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교 총장은 HWPL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심층취재-입찰㉚] 서울시교육청, 스마트기기 ‘렌탈 사업’ 추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디지털 전환(DX)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교육 기관에 ‘1인 1스마트기기’를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천지일보는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을 취재하고 교육청의 편파 행정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심층 보도를 기획했다. 제30보에서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의 2차 스마트기기 지원 사업인 렌탈 사업에 대해 알아본다. 기기 16만 5000여대 계약 전망 ‘AJ·한국·롯데렌탈’ 참여 유력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서울시교육청이 하반기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을 렌탈(임대) 사업으로 추진한다. 이전에는 교육청이 스마트기기를 직접 구입해 교육 기관에 제공했다면 이제는 렌탈 사업자를 선정해 사용 권한을 교육 기관이 갖고 소유권은 사업자가 갖는 방식으로 바뀐다. 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이 교육청은 이달 말 또는 9월 스마트기기 렌탈 사업 공고를 올린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의 관리적인 측면의 부담을 줄이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목적으로 교육청 내부 검토를 거쳐 렌탈 사업으로 전환하게 됐다”고 밝혔다. 수요 기관이 사용 권한만을 갖게 됐지만 분실·파손에 대한 책임은 사안에 따라 달라질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사용자의 과실인지, 자체적인 결함인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사안별로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고 관리 정책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며 “기본적으로는 고의성이 없는 파손에 대해서는 1차 사업 때 적용했던 방식(수리비의 20% 정도 부담)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 개인의 사정, 취약계층 지원 부분을 고려해 기준을 더 세밀하게 정해서 계약에 넣을 생각”이라며 “그런데도 사각지대에 있는 부분은 학교 내부 위원회를 통해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기기 총수는 16만 5000여대가 될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16만 5000여대, 17만대 이하로 예상한다”며 “기종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행되는 예산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존 사업보다는 예산이 더 많이 들 예정이다. 그는 “이번 사업의 예산을 추경에 넣었는데 전체적인 예산 심의가 의회에서 보류됐다”고 전했다. 참여가 예상되는 사업자로는 AJ렌탈(AJ네트웍스), 한국렌탈, 롯데렌탈 등이다. 이들은 사업에 참여할 준비(컨소시엄 구성 등)를 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두 번째로 큰 변화는 사업의 주 계약자가 렌탈 사업자로 바뀐다는 것이다. 1차 사업에서는 SI 업체인 KT가 계약을 맺고 컨소시엄와 사업 수행 역할을 배분했다면 이번에는 렌탈 사업자가 주 계약자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교육청 사업을 수주한 사업자들을 살펴보면 AJ렌탈은 삼성전자와, 롯데렌탈은 KT와 관련이 있는 사업자”라면서도 “이익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이번 사업에 참여할지 아직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참여 사업자들에게는 목돈이 필요하다. 최소한 교육청 예산의 80% 이상은 유동 자산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렌탈 사업으로 바뀌면 계약 후 일괄 정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만큼이나 교육청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부작용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학교의 관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분실·파손에 대한 부담은 그대로인데 최소 1.3배에서 최대 1.8배까지 사업 수행 필요 예산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30>] “HWPL 이만희 대표의 평화 행보, 함께하는 게 양심적 의무”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북키프로스 유수프 수이즈메즈 근동대학교 교수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서아시아 지중해 동부에 있는 키프로스섬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부에는 국제사회로부터 미인증된 북키프로스가 있다. 키프로스섬 남부에는 키프로스 공화국이 있다. 북키프로스는 1974년 군사 쿠데타 이후 튀르키예(터키)가 개입해 튀르키예군이 승리하면서 1983년 정치적 독립을 선언하고 탄생했다. 작은 섬이 정치적인 이유로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이다. 이곳에서 종교학자로서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 유수프 수이즈메즈 근동대학교 교수이다. 그는 최근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과의 평화를 이루는 사업에 고무돼 있다. HWPL이 평화를 이룰 답으로 추진 중인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의 국제법 제정 캠페인과 종교연합사무실(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의 플랫폼을 접하고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그가 HWPL과 함께한 이유를 서면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평화,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 중 하나” 수이즈메즈 교수는 자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키프로스는 정치적 위기를 경험한 국가 중 하나”라면서 “저는 학자로서 국가와 지역의 평화를 위한 정치적 견해의 기여를 분석하고 평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남키프로스에서 조직된 일부 학술 연구에 참여했다. 세계평화연구소(PRIO)에서 주최한 튀르키예와 그리스 역사 교사 모임이었고, 그는 행정관으로 참여했다. 그는 “그리스 키프로스 쪽의 친구들을 사귀면서 상호 이해를 발전시키고 일반적인 인간의 감수성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수이즈메즈 교수가 HWPL의 평화운동에 관심을 쏟고 지지를 표한 이유는 간단했다. “평화는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인류의 가장 신성한 의무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문화적 차이는 삶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그들을 보호하는 평화로운 방법은 대화의 길을 열어두는 데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HWPL의 활동은 중요하며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가 HWPL의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이자 동기부여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HWPL의 평화활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HWPL이 진행하는 평화 사업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참여하는 것을 ‘양심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언론에서 HWPL과 이만희 대표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이메일로 보낸 초청 메일을 받았지요. HWPL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컨퍼런스였습니다. 참석을 해봤지요. 7개월 동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이만희 대표의 평화를 위한 활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HWPL의 이러한 노력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인도주의적이며 양심적인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위한 행사에 감동 수이즈메즈 교수에게 최근 인상이 깊었던 프로그램은 올해 3월 13일에 진행된 우크라이나 전쟁종식 평화 마라톤 라이브행사였다. 그는 이날 발제를 맡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다양한 문화와 신념을 가진 전문가들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평화로운 길을 열어 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나날이 갈등이 증가하는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행사를 조직하는 것은 인류에게 특히 중요한 봉사였다는 소회이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평화는 인류의 가장 높은 이상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지난 2016년 3월 14일 오후 3시 14분 대한민국 서울에서 선포된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에 주목했다. 그는 “선언문의 주요 목적은 평화의 시대를 위해 오늘날 지구촌이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 즉 인권 정의 자유와 같은 가치를 증진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DPCW는 제1조부터 제7조까지는 무력의 위협이나 사용 금지, 군축, 국제법 존중, 다른 국가들과의 우호 관계를 포함해 세계에서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제8조에서 제10조는 종교의 자유, 시민의 참여, 평화교육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평화운동을 추진하는 HWPL에 대해 “HWPL은 문화 간 상호 이해의 발전, 평화 환경의 보전과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구는 우리의 공동 집이다. 그것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신성한 의무”라면서 “우리 모두는 국가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선의와 소원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 운명은 하나, 전쟁 그치고 평화 이뤄야” 수이즈메즈 교수는 2021년 9월부터 HWPL 종연사 패널로 참석했다. 이후 그는 종교계의 평화 및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개별토론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종연사가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해답이라고 믿으며 종교인사뿐 아닌 정계인사들도 더 많은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모든 종교가 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종교=과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는 삶 전체와 관련된 질문과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종교의 역할에 대해 “본질적으로 종교는 인간의 내면의 평화를 보장하고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조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각각 다른 종교에 속한 전문가들은 그들의 종교적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 인류 공동의 미래 건설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먼저 공통의 가치를 결정하고, 이러한 공통의 가치를 관계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충족시킨 플랫폼이 HWPL 종연사였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HWPL과 함께 종교 평화의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HWPL 종연사가 각 종교의 경서를 중심으로 경서비교토론회를 진행하는 장면은 그에게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그는 종연사 모임과 관련해 “다름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철학을 갖고, 이를 위해 서로 다른 신념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평화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이는 인간의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에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이즈메즈 교수는 지구촌 시민들을 향해서 자국의 평화와 세계평화가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모두는 평화를 확립하고 유지할 책임이 있다”면서 “상호관용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이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을 지원함으로써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HWPL과 같은 단체를 지원하고 평화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함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종연사가 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전하는 무기 기술은 오늘날 전 세계를 위협하는 수준입니다. 국가는 건강과 교육보다 무기에 더 많이 투자합니다. 이것이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체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를 해롭게 하는 이 사회적, 정치적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라는 것을 잊지 않고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내일 전쟁에서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유수프 수이즈메즈 교수는 누구 근동대학교(NEU: Near East University, 튀르키예어 YDÜ: Yakın Doğu Üniversitesi)는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에 위치한 사립 대학이다. NEU의 100% 소유주인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 아투 곤셀(Suat Günsel)에 의해 1988년 북 니코시아서 설립됐다. 이사회 의장은 그의 아들 이르판 곤셀(Irfan Günsel)이다. NEU에는 현재 많은 학부가 있으며 그 중 신학학부가 있다. 총 98개 학과, 4개의 직업 학교와 고등학교 및 4개의 대학원에서 학부 및 대학원 수준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만 50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인 북부 키프로스에서 가장 큰 대학이다. 유수프 수이즈메즈 교수는 신학학부에서 하디스와 하디스의 방법론에 대해 가르친다. 그는 카라데니즈 공과대학 신학부 석사, 앙카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03~2005년까지 동부 지중해 대학에서 교양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북키프로스에서 종교부서를 담당했으며, 지난 2011년부터 근동신학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 중이다.

[현대이야기<12>] 하청 취급한 포드에 ‘독자 모델 개발’로 저력 과시한 정주영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12> 한국자동차산업의 발자취 1967년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설립 당시 미국의 포드와 기술제휴 계약 포드, 기술개발 노하우 전수 안 해줘 정주영, 자신이 건설한 고속도로에 주행할 車 개발·생산할 큰 뜻 품어 비밀리에 독자적인 ‘車 생산’ 준비 자동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설이 나오는데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벽시계에 태엽을 감다가 태엽의 풀어지는 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한 태엽자동차가 오늘날 자동차의 기원이 됐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자동차의 원조는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조셉퀴노가 개발한 증기자동차로 판단되며, 이 차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으로 주행한 차로 알려진다. 그리고 1824년 최초의 전기자동차가 개발됐으나 상용화는 1886년이 돼서야 성공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는 가솔린 내연기관의 개발로 인해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1886년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의 공동 설립자 칼 벤츠가 최초로 가솔린엔진을 탑재시킨 자동차모델인 ‘벤츠 페이턴트 모토바겐’을 개발함으로써 현대 자동차산업의 초석을 놓게 됐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 연 포도의 ‘모델T’ 1894년에 다임러가 아내의 생일날 250cc 회전식 핸들자동차 타입인 가솔린엔진을 장착한 시속 16㎞의 4륜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했다. 독일보다 20여년 늦게 1908년경 미국의 자동차왕국의 황제라고 불리는 헨리 포드가 켄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저렴한 모델인 포드T(통칭 T형 포드) 자동차를 양산하며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개척했고, 이 차종은 1500만대 이상이 판매되면서 가솔린 자동차시장을 열었다. 1921년 뉴욕모터쇼에 클라이슬러 자동차회사는 배기량 3000cc의 6기통 엔진을 적용하고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에어클리너, 교환 가능한 오일필터, 4바퀴 유압브레이크 등을 장착한 획기적인 승용차를 출시했다. 1936년에 독일의 루돌프 디젤은 디젤 엔진을 개발하고 디젤자동차를 최초로 출시했다. 이후 1940년대 독일의 국민들을 위해 만든 국민차 타입의 ‘비틀’이 큰 인기를 끌면서 자동차시장을 주도해갔으며, ‘비틀’은 군용차 타입인 ‘퀴벨바겐’으로 변경하고 2차 세계대전 전쟁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1950년대 들어 세계 시장의 1위로 올라선 미국은 차량이 급속도로 보급되며, 미국 경제를 이끌어 가게 됐다. 1960년대에 연비가 좋은 차를 선호하면서 미니, 피아트500, BMW 이세타, 스바루 등의 자동차가 큰 인기를 끌게 됐다. 1970년대를 맞아서 화려하고 날렵하게 디자인된 자동차인 미국의 포드머스탱, 쉐보레, 카마로, 유럽의 페라리, 람보니, 포르쉐 모델이 출시되자 슈퍼카가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 부호들은 부의 상징으로 이런 차들을 너도나도 구매해 타고 다녔다. 중동전쟁 종전 후 1980년대는 연비가 좋은 작은 크기의 쿠페나 헤치백 스타일의 차량들이 대량으로 출시돼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차를 구입하게 됐다. 이후 자동차산업은 연비절감을 위해 가볍고도 안전성이 높은 자동차가 출시됐다. 최근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가솔린 겸용 자동차와 수소차, 전기차가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사업경쟁이 전 세계국가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첫 독자개발 모델 ‘포니’ 탄생 대한민국에 자동차가 처음으로 도입된 시기는 1903년 고종황제의 의전용 차량으로, 미국공사의 협조로 포드사가 리무진타입으로 제작해서 들어왔다. 또 1911년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부임한 ‘데라우찌’가 순종황제의 전용차와 조선총독부의 관용차로 캐딜락 타입의 다임러 리무진 차 2대를 수입해 업무용으로 타고 다녔다. 국내 자동차 대수는 미비하지만 1918년 212대, 1931년 4331대, 1932년 4800대, 1940년에는 1만대로 늘어갔다. 6.25전쟁 이후 1956년 서울에는 5335대의 자동차가 있었고, 이 중에 승용차는 1439대, 트럭이 1248대, 지프차가 1031대, 버스가 810대 정도로 집계됐다. 2022년 기준으로 보면 자동차 등록대수는 대략 2507만 180대로 가구당 2대 정도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그룹을 창설한 정주영 회장이 1940년 3월경 경기도 경성부 아현정(현 서을 아현동)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설립한 게 오늘날 현대자동차의 근원이며, 1967년 12월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자동차 최강국인 미국의 포드 자동차와 기술제휴를 계약하고, 현대포드 코티나(1968~1971)와 왜건스타일의 현대포드20M(1969~1973), 현대 포드 뉴 코티나(1971~1977)를 생산 판매했다. 하지만 포드는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현대자동차가 자국의 부품을 수입해 하청으로 단순 생산을 하게 만들었고, 실질적인 자동차 개발기술에 대한 노하우 전수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다른 루트로 1973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와 손을 잡고 트랜스미션, 엔진, 후차 축 등에 대한 기술제휴를 하며 자동차를 생산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본인이 주도해 건설한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 7월 7일 개통되면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는 신종어가 탄생됐고, 이를 계기로 고속도로를 주행할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해 세계에 판매하겠다는 원대한 뜻을 안고 있었다. 이 목적을 달성키 위해 독자적인 자동차 모델의 생산을 준비하면서 외부로 정보 노출을 하지 않고 자체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에 걸맞게 영국의 최대 자동차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 부사장으로 근무 중인 조지 턴불을 스카웃했고, 1973년 9월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와 계약했다. 이후 4도어에 일본 미츠비시의 4단 수동변속기와 4기통 1238cc의 새턴 엔진을 탑재한 대한민국 최초 독자개발 모델인 ‘포니(1976~1982)’를 1976년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출시했다. 이후 디자인을 조금 변경시킨 트럭 타입 현대포니 픽업과 현대포니 왜건도 출시했다. 한국 최초로 1976년 7월 에콰도르에 5대의 포니가 수출되면서 현대자동차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포니는 현대자동차라는 브랜드와 한국의 독자개발 자동차라는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한국자동차 역사의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드디어 1974년 7월에는 1억 달러의 공사비를 투자해 연산 5만 6000대 규모의 자동차공장이 울산시에 건설되며 자동차 대량 생산이 본격화됐다. ◆한국 자동차의 태동과 발전과정 현대자동차가 생산되기 이전에 판매된 자동차의 원조는 1955년 8월 국내에서 제작된 첫 국산차인 ‘시발’이다. 이 차는 ‘국제차량공업사’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최무성과 그의 3형제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지프엔진, 변속기 등의 자동차 부속품을 활용했고, 차체는 드럼통을 잘라 수작업으로 망치를 두들겨 펴서 차량을 열악한 환경의 천막공장에서 제작한 게 시초였다. 이 차종은 1955년 10월 경복궁에서 개최된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차로, 시발이라는 모델 명칭은 처음 시작한다는 뜻인 ‘시발점’에서 유래됐다. 이 차의 국산 부품 비율은 50%로 알려졌고, 최고 시속 80㎞ 주행이 가능한 지프타입 자동차로 알려졌다. 이 차종은 1962년까지 판매됐고, 이후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 제휴한 ‘새나라자동차공업㈜’는 자사 차종인 ‘새나라’ 자동차를 생산 판매했다. 대형 상용차 생산의 경우 1954년 ‘하동환 자동차제작소’라고 하는 버스제작 전문회사가 1960년대까지 버스를 대량 생산해 국내에서 버스제조사로 큰 성장을 이뤘다. 1967년 8월에는 베트남으로 버스 20대를 수출하고, 1984년 9월 미국시장에 고속버스를 수출했다. 하동환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1986년 11월 쌍용그룹에 인수돼 1988년 3월 쌍용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고 최대 히트작인 대형승용차 체어맨과 SUV 렉스톤, 뉴카이런, 코란도 등을 생산하다가 경영난으로 대우그룹에 인수됐다. 하지만 대우그룹 부도로 2004년 대우그룹에서 분리됐으며, 2004년 10월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매각됐다. 또다시 2011년 3월 인도의 대표적인 유틸리티 차량 제조회사인 마힌드라&마힌드라(Mahindra&Mahindra Limited)가 쌍용차동차를 인수했고, 2014년 생산된 뉴코란도C는 대한민국 그린카 어워드를 수상했다. 또한 2018년 출시된 소형 SUV인 티볼리가 올해의 SUV로 선정돼 인기리에 판매됐고, 최근 전기차 코란도 E-모션이 출시돼 판매중이다. 이 회사의 2021년 기준 매출액은 2조 4293억원, 당기순이익은 2579억원, 자산총액은 1조8630억원, 자본금은 7492억원, 종업원은 4517명 정도이다. 또한 승용차 시장의 경우 신진공업이 1965년 11월에 새나라자동차공업㈜를 인수하면서 회사명도 ‘신진자동차㈜’로 변경했다. 신진자동차는 일본 도요다자동차와 기술제휴 계약을 통해 ‘코로나’라는 승용차를 생산 판매했다. 당시 ‘코로나’ 차종은 라디오와 히터가 탑재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1964년 호남연고 기업가인 문인환은, 프랑스의 Simca 등과 차관 협정을 맺고 ‘아세아자동차’를 설립해 광주광역시에 자동차공장을 건설하고 1970년부터 ‘피아트124’라고 불리는 1200cc급 소형승용차를 라이선스로 생산 판매했다. 당시 피아트124 차종은 깔끔한 디자인에 뛰어난 품질, 경제성 등을 앞세워서 자동차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피아트와 라이선스 연장계약 문제로 큰 마찰을 빚었고, 이런 이유로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높은 인기도에도 불구하고 3년 만에 차종이 단종됐으며, 그 기간에 피아트124 자동차는 6800여대를 판매했고 현재는 2대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아세아자동차 피아트124는 현대 코티나, 신진 코로나 등과 더불어 1970년대 태동기였던 대한민국 중형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또한 아세아자동차를 인수한 기아산업은 정부정책 권장에 따라 1974년 10월 소형차종인 ‘브리사’를 생산 판매했다. 브리사는 배기량 985cc로 국산엔진을 탑재했고, 1975년 국산화율이 80% 정도로 국산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로 기록되나 독자개발 차종은 아니었다. 현재는 법인이 기아자동차로 흡수됐으나, 자동차 전문가들은 피아트124가 현재 기아가 생산 판매중인 K5의 원조라고도 한다. 여기까지 한국자동차 태동기와 발전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봤다. (정리 = 유영선 기자)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9>] 케냐 언론인 “HWPL, 모든 대륙‧국가 지원 받는 단체 될 것 기대”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루바오 FM 찰스 오두올 운영이사 내년 케냐 대선 앞두고 평화‧인권 문제에 관심 가진 오두올 운영이사 HWPL 홈페이지서 평화 소식 접한 후 지속적 보도‧온라인 행사 참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아프리카의 주요 경제국 중 하나인 케냐는 오는 8월 9일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누가 당선 되든 최근 3년여간 지속된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인한 심각한 식량문제와 경제난은 숙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케냐의 국민들은 생계를 위해 전쟁을 치르듯 살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해답을 인권과 평화의 문제에서 찾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이가 있다. 루바오(Lubao) FM의 찰스 오두올(Charles Oduor) 운영이사이다. 그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보도와 캠페인 활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국민들의 인권과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을 알게 된 후 더욱 적극적으로 평화의 일을 하는 이유다. 본지는 그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론, 평화와 혁명 위한 최고의 도구” “저는 평화와 혁명을 위한 최고의 도구가 언론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구촌이 언론의 자유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함으로써, 공동체가 토론 플랫폼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봅니다. 이 토론 플랫폼을 통해 우려 사항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개선돼 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고도 믿습니다. 평화는 전 세계의 문제이며 우리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전파하기 위해 우리의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해야 합니다.” 오두올 운영이사는 평화로운 국가를 먼저 이뤄야 그 안에서 국민들이 평화를 누리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평화로운 국가와 환경은 성장의 발판이며 발전을 이루고 희망을 바라며 가정을 꾸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모두는 평화를 원하며 이것이 내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HWPL과의 평화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 매체에 종사하는 이로서 누구보다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케냐의 언론 상황은 어떠할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케냐에서 언론은 시민들에게 정보를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대체로 모든 국민들이 정보를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기간 동안 언론은 정치 부분에 있어 편향성 문제에 직면한다. 이것은 케냐 언론이 풀어야 할 큰 과제라는 지적이다. 정치계의 부정 부패를 알리는 데도 케냐 언론 매체가 큰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 규제와 입법자들에 의한 정책 입안 또한 보도가 이뤄지지만, 가해자들이 정부의 주요 인사이다 보니 기소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언론이 부패, GBVS(게임), 10대 임신, 교육에 대한 권리, 안보를 포함한 인권을 위한 투쟁과 실천이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로운 편이라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8년 8월 15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유엔(UN) 아프리카경제위원회(UN ECA)에서 ‘에티오피아 평화 콘퍼런스’가 진행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만희 HWPL 대표는 아프리카 지역에 평 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07.28◆아시아‧인권‧평화 화두로 HWPL과 손잡아 오두올 운영이사는 몇 년 전 HWPL의 홈페이지를 통해 HWPL의 평화 활동을 알게 됐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평화 메시지와 HWPL 회원들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긴 게시글에서 그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은 이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후로 오두올 운영이사는 HWPL뉴스레터를 구독하며 HWPL의 소식을 루바오 FM을 통해 케냐에 전했다. 그는 이러한 보도를 하면서 평화 목표를 향한 HWPL과 자신과의 관계가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발전은 교류로 이어졌다. 그는 2022년 3월 지부 인권세미나 중 발제를 진행했고, 같은 달 3.14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HWPL 기사 8건을 보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의 문화와 인권에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HWPL에서의 활동은 더 큰 시야를 갖게 했다. HWPL을 통해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 등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배우게 됐기 때문이다. 또 그는 온라인 HWPL의 행사를 통해 평화 기념식에서 이만희 대표를 볼 수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오두올 운영이사는 “이만희 대표의 메시지를 통해 희망과 평화로 가득 찬 그의 신념을 알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루바오 FM은 HWPL의 평화 메시지를 플랫폼을 통해 게시하고 있다. 오두올 운영이사는 HWPL이 인도주의적 목적을 위해 지속적으로 평화의 활동을 해온 것처럼 그가 HWPL 관련 콘텐츠를 계속해서 공유하고 홍보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그는 HWPL과 정기적인 라디오 토크쇼를 계획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대선을 앞두고 인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 진전이 있도록 평화 파트너들이 원격으로 대화하며 파트너십을 맺고 해결점을 찾아가길 원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HWPL과 활동하며 가장 공감이 갔던 것으로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약자를 지지하고 법치주의를 지지하고자 하는 HWPL의 의지를 꼽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온라인 비대면 행사로 개최된 3.14 DPCW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운이 좋게 참석하게 됐다”면서 “세계 지도자들이 평화라는 가치 있는 뜻을 위해 모였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HWPL은 모든 대륙과 국가의 지원을 받는 전 세계에 영향력이 있는 단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루바오 FM 찰스 오두올 운영이사는 누구 찰스 오두올이 운영이사로 근무하는 루바오 FM은 케냐 서부의 도시 카카메가의 라디오 방송국이다. FM주파수 102.2MHz에서 영어를 포함한 4개 언어로 방송할 수 있도록 케냐 통신 당국(CA)와 케냐 미디어 위원회(MCK)의 인증을 받았다. 약 10개 이상의 카운티에 지부를 두고 약 500만명의 청취자를 보유하고 있다. 언론매체로서 루바오 FM은 케냐 국민(청취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며 무료로 인도주의적 캠페인도 진행한다. 잘못된 리더십으로 인해 발생되는 분쟁과 갈등, 케냐 북부에서 일어났던 강도로 인해 지역사회 내의 분쟁 해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 젠더 기반의 폭력 증가 등의 사안들을 보도한다. 아울러 고용, 기초교육, 공공자원의 균등 배분 등을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오두올 운영이사는 컴퓨터를 기반으로 정보 및 정보 시스템을 제공하고 이용하는 기술인 ICT와 미디어 전문가 및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루바오 FM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보편적 교육에 대한 접근을 돕고 케냐 어린이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증진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규제기관을 통해 어린이들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찾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심판대 오른 사형제] ①폐지 주장 “기본권 침해에 범죄예방도 못 해”

헌법재판소가 사형제가 위헌인지를 두고 지난 1996년과 2010년에 이어 3번째 심리에 돌입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수십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는 상황이다. 국가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지를 놓고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을 논의했으나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천지일보는 헌재의 공개 변론에서 나온 사형제도의 찬반 논리를 심도 있게 정리해 독자들에게 제공해 21세기에 아직 사형제가 필요할지 고민하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첫째로 사형 폐지 측 주장을 소개한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라면 사형제도 존치는 사회가 완숙함에 이르지 못한 징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1000년 넘게 존속돼 온 불필요하고도 가증스러운 인간 희생을 거부할 만큼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사형제 폐지를 주도한 프랑스 법무장관 로베르 바댕테르는 저서 ‘사형제도에 반하여’를 통해 사형제가 존재하는 국가의 문제점을 이렇게 설파했다. 사형제가 헌법에 반하다는 측 주장의 핵심은 자연으로 주어진 생명은 어떤 이유로도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과 보조참가인 측 대리인은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법 이전에, 국가 이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전제”라고 강조했다. ◆“인간 존엄 규정한 헌법 10조, 생명권 보장”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갖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청구인 측은 바로 이 10조가 근본규범이고, 전체 기본권이 파생되는 최고의 기본권 조항이라고 봤다. 또 헌법 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면서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본질적인 내용’이 생명이며, 이는 헌법 10조에 따라 규제를 받기에 사형제는 위헌이라는 설명이다. ◆“사형, 어떤 범죄 예방효과도 달성 못 해” 사형으로는 어떤 범죄 예방효과도 달성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법에서 범죄 예방은 일반예방과 특별예방 두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일반예방효과란 강력한 처벌조항이 있거나 범인에 대해 실제 형벌이 집행되는 것을 보는 일반 시민이 이를 ‘경고’로 삼아 잠재적으로 범죄를 벌이지 못하게 예방하는 일을 말한다. 특별예방은 범인 자신에게 형벌을 내려 그 범인이 다신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그러나 청구인 측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국의 사형 집행과 범죄 위해력 효과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은 사형을 집행하더라도 살인사건의 발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소개했다. 또 국내 사형 확정자 31명의 생활실태와 특성에 관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범행 당시 사형을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생각 또는 사건으로 인해 받을 처벌에 관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대부분의 사형 확정자들은 사건 당시 술에 취했거나 화가 나서 정신이 없거나 잡힐 생각을 하지 않아 처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형제도 일방예방효과가 있다는 증명책임은 국가에게 있고, 입증이 안 된 기초사실을 합헌 논거로 삼을 수 없고, 국가가 사형제라는 형벌을 통한 생명권 제한의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사건 심판 대상 조항들은 헌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청구인 측은 꼬집었다. 아울러 사형제는 특별예방기능을 처음부터 완전히 포기한 것이라고도 했다.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면 개선·교화의 목적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153개국이 사형 폐지·중단” 전 세계적인 흐름이 사형을 폐지하는 쪽이라는 점도 제시했다. 현재 지구촌에서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21개국에 달한다. 여기에 법적 또는 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총 32개국으로 추산된다. 즉 전 세계 3분의 2가 넘는 153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했거나 집행을 중단한 상황이다. 특히 유럽은 1949년 결성한 유럽평의회 소속 47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했고, 아직 법적으론 사형이 존재하는 러시아조차 2009년 이후엔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청구인 측은 미국 내 주들이 사형을 폐지하는 과정을 소개하며 힘을 보탰다. 이들에 따르면 2015년 8월 25일 사형에 대해 코네티컷 대법원은 “사형이 교정학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증거의 축적, 사형에 자의성이 개입될 가능성, 사형의 집행과 선고과정에 민족적 인종적 사회경제적 편향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사형제도는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또 버지니아주는 2021년 3월 미국 50개주 중 23번째로 사형제를 종식했는데, 버지니아주는 1608년 미국 최초의 사형을 집행한 곳이며 텍사스주 다음으로 많은 사형집행을 하던 주다. 그런 버지니아조차도 사형을 폐지했다는 점에서 이제는 사형의 퇴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게 청구인 측 주장이다. ◆“헌재, 여론에 영향받으면 안 돼”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데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도 펼쳤다. 1995년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헌재는 “여론이 심의와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질 수 있으나 그 자체로 헌법을 해석하고 두려움이나 편의 없이 그 조항을 지키도록 ‘헌법재판소의 정히 부여한 의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의견에 결정권이 있다면 헌법재판이 이뤄질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남아공 헌재의 판단은 국민의 법감정이나 여론을 이유로 해서 사형제도에 대한 위헌 결정이 미뤄지거나 위헌 여부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남아공은 흑인을 대상으로 사형이 차별적으로 선고되고 집행된 어두운 과거사를 갖고 있는 나라”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보복이 목적이 돼선 안 돼” 청구인 측은 현대사회에서 응보(응징과 보복)가 형벌의 목적이 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형벌권은 법질서 유지라는 공적책임에서 도출되는데, 질서유지적 기능과 관련 없는 응보는 형벌의 목적으로서 타당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범행에서 행위자의 생활환경, 범죄자가 속한 사회·경제·문화적 상황 등이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주의 환경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범죄의 책임을 오롯이 범죄자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응보를 형벌의 목적으로 삼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승인하는 범위 안에서 문명적인 내용으로 고안돼야 한다”고 봤다. 이와 관련 최근 미얀마에선 정국을 장악한 군부가 자신들에게 대항했던 민족민주동맹(NLD) 전 의원과 민주화 운동가 등 정치범 4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해 국제사회의 맹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FOCUS│HWPL과 민다나오<4>] 민다나오 주민, 분쟁 40년 만에 함께 걷다… “HWPL 중재”

인류는 그간 하나 되지 못했다. 전쟁도 막을 수 없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으로 인한 아픔·고통·죽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 ‘위 아 원(We are one, 우리는 하나)’을 외치며 전쟁을 종식 짓고 실질적인 평화를 이뤄가는 단체가 있어 주목된다. 본지는 세계적인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과 이만희 HWPL 대표의 평화 행보 가운데 국제사회가 주목한 사건을 사진과 글로 엮어 소개한다. HWPL, 매년 5월 25일 세계평화선언기념 평화걷기대회 진행 필리핀 민다나오 시민들에게도 전파… 자발적 참여 이끌어내 2014년 민다나오 주민·학생 1만 2천명 거리서 ‘평화의 행진’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평화 걷기 대회, 출발!” 2013년 5월 25일 3만여명의 국내외 청년들이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앞에 모였다. 이들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이만희 대표의 힘찬 외침과 함께 전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평화를 촉구하는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다. 이만희 대표는 평화를 바라는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계평화선언문’을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세계 청년과 여성들은 매년 5월 25일에 세계평화선언 기념 평화 걷기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구촌의 주인공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하나가 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것이다. 3만여명이 동참한 이 거대한 움직임은 바다를 건너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며 또 하나의 ‘평화의 기적’을 이뤄냈다. 2014년 1월 24일 HWPL과 민다나오 주립대 학생들, 청년 단체, 종교 지도자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평화 걷기 대회를 진행했다. 이는 평화를 향한 민다나오 시민들의 의지를 보여 주는 계기가 됐다. 필리핀 언론은 이 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평화로운 민다나오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는 민다나오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졌다. 평화협정 이후에도 HWPL은 민다나오 현지의 평화정착을 위해 행진을 지속했다. 민다나오 평화협정 체결 6개월여가 지난 2014년 8월 11일 민다나오 주민 1만 2000명이 잠보앙가시에서 열린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 걷기 대회’에 참여했다. 잠보앙가시는 2013년 9월 이슬람단체와 정부군과의 충돌로 민간인 12명을 포함해 138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이슬람-가톨릭 종교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이슬람-가톨릭 주민들이 함께 평화 걷기 대회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걷기 대회 이후 이만희 대표는 이사벨라 잠보앙가 시장, 눌버트 사하리 따위따위주 주지사 등 정부 인사, 펜다툼 라하 밧자오 원주민 대표, 민간단체 대표, 각 종단 대표와 함께 전쟁을 끝내고 영구적 평화를 이루겠다는 평화협약식을 진행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5년 5월 25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제2주년 세계평화선언 기념 평화 걷기 대회’가 마긴다나오 주 불루안에서 HWPL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지역 내 가톨릭 및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주요 인사를 비롯해 정치인, 군인, 경찰 등 민다나오의 주요 지도자들과 시민까지 30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평화의 메시지를 든 정부 관계자와 MILF 대표단이 함께 평화의 행진에 동참해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한 조화로운 발전 양상을 보여줬다. 2017년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 국가(ISIS) 산하의 마우테 그룹이 마라위 시를 공격해 점령했고, 약 5개월간 정부군과의 교전 끝에 도시를 되찾았지만 1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픔과 고통으로 인해 절망에 빠질만한 상황이었지만, 평화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이들의 열정과 HWPL의 평화 사업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18년 5월 25일 HWPL은 민다나오 마라위 시의 사회적, 정서적 치유를 위한 ‘평화를 위한 연대 걷기’를 진행했다. 민다나오 거리에선 전통의상을 입은 시민들과 청바지를 입고 책가방을 둘러멘 학생, 티셔츠를 입고 깃발을 든 시민들이 질서 있는 모습으로 평화의 행진을 시작했다. 군복을 입고 ‘Peace(평화)’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흥겨운 타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은 차량 위에서 대열을 이끌었고, 그 앞에선 치어리더들이 분홍색 옷을 맞춰 입고 행진했다.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고,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이들도 있었다. 같은 시간, 마라위 시 민다나오 주립 대학교에서도 ‘마라위 평화 연대 걷기’ 행사가 진행됐다. ‘Peace(평화)’ 알파벳 모양의 풍선을 손에 든 청년들이 행진을 진행했고 그 뒤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또 다른 청년들이 대열을 이뤄 행진했다. 히잡을 쓰고 행진에 참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같은 날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시와 코타바토 시에서는 ‘제4주년 세계평화선언 기념 평화 걷기 대회’가 열렸다. ‘We Love PEACE(우리는 평화를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든 시민과 평화를 상징하는 새인 비둘기를 형상화한 피켓을 든 아이들도 걷기 대회에 동참해 평화의 열기를 더했다.

[성경교리비교 139] 요한계시록 12장 ‘용의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던진다’의 참 의미는?

성경은 인류에게 가장 많이 보급된 베스트셀러지만 완독률이 가장 낮은 책으로도 꼽힌다. ‘천국과 구원의 길’이 제시된 신서(神書)이자 언약서로 일컬어지는 성경은 신학자마다 해석이 달라 그 뜻을 알기 어렵다. 각기 다른 해석은 교단분열과 이단시비의 빌미가 되면서 교단끼리 배타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원인이 돼 왔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되면서 교인들 스스로 다양한 교회 설교를 비교해 보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본지는 이런 흐름에 맞춰 편견 없이 성경의 교리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온라인에 공개된 설교 및 성경 강해 영상 중 기성교단과 코로나19 이후 관심이 증폭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교리를 주제별로 비교 정리했다. 해당 교단 관계자의 성경 해석을 최대한 가감없이 정리했으며 옳고 그름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거짓 목자가 하늘 소속 성도 1/3 육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요한계시록은 배도-멸망-구원의 순리로 이루어진다(살후2:1~3). 먼저 계시록 성취 곧 주 재림 때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곱별 일곱 사자가 출현한다. 이 일곱 사자가 있는 일곱 금 촛대 장막은 곧 계시록의 사건이 성취되는 현장이며 이곳에 대해 계시록 13장에서는 하늘 곧 장막이라 했고, 계시록 12장에서는 해달별을 입은 여자가 있는 하늘이라고 했다. 성경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하늘이라고 한다. 이 하늘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계신 영계의 하늘과, 육계의 장막이 있다. 저 불신 사회와 세상에 속한 교회들을 땅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 속한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기 때문에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별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이 일곱별 일곱 사자가 있는 이 장막도 하늘이 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이 땅 곧 육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 되겠다. 하늘 장막의 일곱 사자는 예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되고, 이곳에 사단의 거짓 목자인 멸망자들이 들어온다. 사단의 무리에게 미혹 받은 배도한 일곱별에게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편지를 보내시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편지를 받고도 회개치 않았고 계시록 6장에서 이방의 굴 산 바위 틈 곧 이방 목자와 그 교단으로 쫓겨나게 된다. 결국, 이들은 계시록 8·9장에서 멸망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희생과 죽임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다. 이 하늘 장막 선민을 멸망시킨 멸망자들은 누구일까.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온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이라 했으며 오늘 본문인 계시록 12장에서는 하늘의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큰 붉은 용이라고 했다. 이 용은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꿰는 자다. 이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붉은 용에게는 꼬리가 있다. 그렇다면 용에게 속한 일곱 머리와 열 뿔, 꼬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진짜 용이 있고 용에게 머리와 뿔 꼬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는 선견자인 목자를, 그리고 이사야 9장을 보니 뿔은 머리인 목자에게 속한 권세자를, 꼬리는 용에게 속한 거짓 선지자를 말한다. 따라서 일곱 머리 열 뿔의 존재는 용에게 속한 우두머리 일곱과 그에게 속한 거짓 목자 10명을 말하는 것이 되겠다. 그러므로 용의 꼬리로 인해 하늘 별 1/3이 하늘에서 땅으로 던져진다는 것은 사단 소속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의 교법과 교리 즉 비진리로 하늘 장막 선민 1/3을 하나님 소속에서 육체뿐인 이방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또 계시록 9장에서는 멸망자의 무리 곧 사단의 마병대가 나오는데 이 마병대의 모습을 보면 그 말들의 머리가 사자 같고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며 꼬리는 뱀과 같은데 꼬리에 머리가 있다고 한다. 실제 이러한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과 탄 자는 사단에게 속한 영과 육체를 말한다. 그리고 ‘말꼬리에 머리가 있다’는 말은 거짓 선지자들의 머리 된 목자 곧 주관자가 있다는 뜻이 되겠다. 그렇다면 계시록 12장의 꼬리와 계시록 9장의 꼬리는 어떻게 다를까. 계시록 12장의 꼬리는 용의 꼬리이며 계시록 9장의 꼬리는 말의 꼬리다. 계시록 12장 꼬리는 용의 꼬리가 하늘 장막의 성도 1/3을 땅으로 돌아가게 한 반면, 계시록 9장에서는 말의 꼬리에 머리가 있어 그 말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1/3을 죽인다고 했다. 이는 그들의 교법과 교리 곧 비진리로 장막 성도 1/3의 영을 해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하늘 장막이 멸망자들에게 짓밟히고 있을 때 이들과 하나 되지 않고 싸워 이긴 자가 출현하게 된다. 이 이긴 자는 계시록 12장에서 해달별을 입은 여자가 낳은 아이로 하늘 장막에 들어온 사단의 무리인 멸망자들과 싸워 이기게 된다. 그가 용의 무리와 싸워 이기므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계시록 2~3장에 12가지 복을 받게 되는데 생명의 양식인 감추었던 만나와 심판권인 흰돌, 만국을 다스릴 철장 권세 곧 치리권 등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이긴 자가 용과 싸워 이긴 후 있어지는 일은 무엇일까. 계시록 12장 10절을 보니 이김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능력과 구원이 있게 된다고 하셨다. 만국을 사로잡은 용과 싸워 이김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게 되고 이긴 자는 추수하고 인쳐서 영원한 하나님의 새 나라 새 민족 신천지 12지파를 창설하게 된다. 계시록 12장의 용의 꼬리가 하늘 별 1/3을 땅에 던진다는 말씀은 용에게 속한 거짓 목자들이 하늘 장막의 성도 1/3을 육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이 돠겠다. 기성교단/ 장로교단 “마귀가 천사를 타락시키는 것 용이 삼키려는 아이는 예수님” 용의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던진다는 것은 사단이 천사의 1/3을 끌어다가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용이 삼키려는 아이는 예수님이다. - 한기총 소속 장로교 A목사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HWPL 재조명&인터뷰 <28>]“종교 화합과 평화, HWPL 종연사 경서비교토론회가 답”

천지일보는 앞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의 세계평화순방 1차~31차를 조명하고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의 세부 조항을 살폈다. 또 DPCW 지지활동을 비롯해 종교대통합·평화교육·청년평화운동 등 HWPL 핵심사업을 분야별로 집중조명했다. 이번호부터는 HWPL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각국 인사를 통해 ‘HWPL 평화운동’ 지지 이유를 들어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한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우리 모두는 정치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유엔 평화유지군 연방이사회 부의장과 태국 종교간평화위원회 고문을 역임한 사딧 쿠마르(Sathit Kumar) 라마크리쉬나베단타연합 대표의 말이다. 그는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위해 태국에서 일해왔다. 그는 2015년 태국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 이만희) 종교연합사무실(종연사) 패널로 섭외돼 현재까지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나이로 76세인 쿠마르 대표는 젊은 시절을 경영계에서 보냈고, 현재도 ㈜사이어미즈 경영책임자를 맡고 있다. 하지만 그가 관심이 있는 분야는 종교다. 그는 힌두교 단체 라마크리쉬나베단타연합(Remakrishana Vedanta Association of Thialand)의 대표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슈리 라마크리샤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종교 간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설립됐다. 사딧 쿠마르 대표는 태국 당국의 종교부서에서 22년 이상 일해왔다. 태국 힌두교 신앙을 대표하는 종교 간 대화와 관련해 국가‧지역 및 국제적 기반에서 마련된 종교 간 회의에 참석해왔다. 그는 산스크리트 학술 협회 설립 멤버였으며 태국 남부종교간평화의회 고문과 탐마삿대학교 인도학술센터 고문을 맡았다. 인도 태국 상공협회 전무이사와 인도 네팔 상업의회 전무이사, 힌두교 지식발전 위원회 고문을 지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HWPL과 인연을 맺으며 직함이 하나 더 늘었다. 그는 HWPL 홍보대사가 됐다. 한국에서 열린 9.18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는 온오프라인으로 6회나 참석했다. 지난 2019년에는 동남아시아 평화포럼에 참석했고, 부산경남동부 대륙 종교평화 캠프에 참석했다. 태국 방콕 종연사에서는 초대 패널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는 힌두교 대표 발제자로 참여해오고 있으며, 경서를 근거로 하는 종연사의 목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딧 쿠마르 라마크리쉬나베단타연합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 2016년 9월 16일 9.18 평화 만국회의 2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종교세션 콘퍼런스에 참석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2.07.25◆종연사에 매력 느낀 태국 힌두교 지도자 그는 종교 간 대화 모임이 많지만, HWPL의 종연사는 경서를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으며 이 방법이 옳다고 여겨서 누구보다 종연사 모임에 열성을 내고 있다. 또 종연사 참석 인사들에게 종연사의 목적과 취지를 설명해줄 정도로 공감하고 있다. 그는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에 대해 “모든 경서는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존중하도록 가르치고, 어떤 경서든 서로 싸우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분쟁은 단지 비참한 슬픔과 고통과 파괴를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또 힌두교에서는 모든 개개인의 영혼은 잠재적으로 신성하며,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서 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는 정치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쿠마르 대표는 다른 종교 간 교류 모임과 종연사 모임이 갖는 차이를 ‘경서’라고 콕 짚었다. “제가 종연사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매 모임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경서에 근거하고 인용해 답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제 경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 모임은 제가 제 종교의 경서에 대해 더 읽고 배우도록 독려를 해줍니다.” 종연사에서는 참석 패널들이 답변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경서에 근거해 답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일테면 음식을 주제로 발제를 할 때 패널들은 자신의 경서에서 말하는 음식의 내용을 찾아야 한다. 먹어도 되는 음식,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 피해야 할 음식, 그 음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 등이다. 경서 어느 페이지 어느 구절에 나오는지를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HWPL은 각 주제들을 통해 제가 제 경전으로 돌아가서 자세한 내용을 읽고 알아볼 시간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가서 경전을 읽어야 했습니다. 일상으로 하는 신앙생활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경서로 가서 그것이 어디에 써져 있고, 어떻게 써져 있는지를 알아내야 했습니다.” 힌두교에는 적어도 1240권의 책이 있다. 쿠마르 대표는 자신이 제시하는 경서의 내용을 알게 하기 위해 경서의 근거를 확실히 해야 했다. 청중들이 종연사 모임에서 쿠마르 대표의 발제를 듣고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HWPL의 평화활동, 돈보다 가치 있어” 쿠마르 대표는 HWPL과 인연이 닿고 평화의 일에 공감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열린 9.18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도 수차례 참석했다. HWPL 캄보디아 행사에 참석해 이만희 대표를 만나 유대감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HWPL의 평화 행보에 대해 “매우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이라며 “모두가 매우 열심히 일했고, 특히 HWPL은 일을 하면서 국가나 단체에 돈을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만희 HWPL 대표와 회원들의 사랑과, 그들의 존경심, 내면의 감정 등 이유로 자신도 보수를 바라지 않고 함께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마음으로 자주 모이고 논의를 하면서 먼 나라라도 간다는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면 모임을 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일하는 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태국에서 일하는 HWPL 회원 로라씨와 아직도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같은 마음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HWPL의 평화 활동이 더욱 성장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몇 년 간 HWPL은 여러 영역에서 많은 평화 활동들을 넓혀왔다”면서 “그 이유는 청년과 여성 등 모든 영역에서 함께 했고 이 힘든 시기에 전역에 걸쳐 영향력 있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이 대표와 그의 팀이 이끌어오고 있는 모든 평화계획과 활동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기에 차후 몇 년간 적어도 3~5개의 회의(종연사 모임)가 지역적, 국내외적으로 있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종연사 모임과 청년, 여성 모임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평화를 가져오는 활동에 있어서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DPCW 태국어로 번역해 보급 또 그는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PCW)’을 태국어로 번역해 관련 부서에 배포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그는 “HWPL은 항상 좋은 일을 해왔고, 저는 DPCW가 (국제법으로) 승인되고 수용되면, 법안이 실행돼 모든 관련자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DPCW가 태국어로 번역이 돼 태국인들이 이 법이 무엇인지, DPCW의 조항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리고 종교에 대해 8·9·10 조항 또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을 향해 “국제적인 문제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DPCW를 채택해 세계에 평화가 있어지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DPCW가 태국에 채택되길 바란다고 희망하며 “만약 이 조항들이 유엔연합에 채택 된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는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며 “전쟁은 비참함,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난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어떤 형태의 전쟁도 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전쟁은 고통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며 “몇몇은 전쟁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다. 우리가 표면적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없지만, DPCW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을 때 다른 문제들 또한 해결된다는 말에 정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구촌 시민들을 향해서는 “마음에 의가 있을 때 성품에 아름다움이 있고, 성품에 아름다움이 있어야 가정에 화목이 있고, 가정에 화목이 있을 때 나라에 질서가 있으며 나라에 질서가 있어야 세계에 평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든 생명은 신성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죽일 수도 없고 죽여서도 안 된다”면서 “폭력이 없을 때에 우리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이슈포커스] “국가적 혈액수급 위기에 도움”… 다시보는 신천지 단체헌혈

국내 1호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 신천지예수교회가 공여한 혈장이 활용됐다는 점이 알려졌다. 이에 신천지의 또 다른 ‘선행’인 헌혈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신천지는 혈장공여뿐 아니라 역대 단일규모 최대인 단체헌혈을 진행해 국민에 귀감이 됐다. 본지는 신천지에서 진행한 단체헌혈의 의미와 우리사회에 준 영향과 더불어 혈장공여 등 민관협력을 통해 탄생한 국산 1호 백신의 개발 과정과 의미에 대해 조명했다. 혈액 부족 사태 해결 목표로 신천지예수교회 헌혈 캠페인 16일 만에 ‘1만 8819명’ 참여 역대급기록 남긴 신천지교회 3일분에 그쳤던 혈액 보유량 헌혈 후 5.9일분으로 급상승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혈액 사정이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혈액 보유량이 적어도 5일분은 유지가 돼야 하는데 지난 5월 코로나19로 인해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줄면서 3일분으로까지 떨어졌었습니다. 그때 신천지 교회에서 단체헌혈을 진행해주셨고 혈액 사정이 많이 나아지게 됐습니다.” - 혈액원 관계자 헌혈 캠페인을 시작한 지 단 16일 만에 ‘1만 8819명’이 동참한 역대급 기록을 남긴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예수교회, 대표 이만희)의 단체헌혈에 대해 혈액원 관계자는 2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대한민국의 혈액 부족 사태를 해결하자’는 목표로 시작된 신천지예수교회의 단체헌혈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을 이뤄냈다. 1만 8천여명의 신도들이 헌혈한 규모는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에서 하루 평균 사용하는 사용량의 3배가 넘는 혈액량이다. 이는 올해 초부터 지속된 국가적인 혈액 수급난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3일분에 그쳤던 국내 혈액 보유량은 적정 보유량(5일분)을 넘어서 5.9일분으로 급상승했다. 신천지는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위기에 빠진 순간 대규모 단체 혈장공여로 백신 개발·연구는 물론 변이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에 도움을 줬고, 코로나19 장기화로 국가적인 혈액수급난이 벌어지자 이같이 단체헌혈과 헌혈증 기증에 나서 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이만희 총회장 “타의 모범돼야” 헌혈 참여 독려 “코로나19 종식에 종교인이 가장 앞서 실천하고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 이만희 총회장은 신천지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종교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신도들에게 헌혈 캠페인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신천지예수교회는 국가적인 혈액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4일까지 약 2주간 단체헌혈에 나섰다. 당초 예상했던 인원 6천명을 훌쩍 넘어 1만 8819명의 신도가 단체헌혈을 완료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약 2주간이라는 단기간에 한 단체에서 이처럼 많은 인원이 헌혈한 사례는 오로지 신천지밖에 없다. 이번 헌혈은 혈액보유량 3.5일분에 해당한다. 혈액보유량 1일분은 전국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일평균 혈액량으로 약 5029개분에 해당한다. 신천지예수교회가 단체헌혈을 마친 후 국내 혈액 보유량은 5.9일분으로 급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헌혈증서 3만장’ 기증하며 ‘사랑’ 실천 신천지예수교회는 헌혈뿐 아니라 혈액을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헌혈증까지 기증하며 사랑을 실천했다. 이렇게 모인 헌혈증은 무려 3만 1528장에 달했다. 이뿐 아니라 1억 1280만원 상당의 헌혈기부권도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기증했다. 신천지예수교회는 지난 5월 9일 서울 강남구 서울남부혈액원에서 헌혈증서 및 헌혈기부권 전달식을 가졌다. 혈액관리본부는 기증받은 헌혈증서를 수술 또는 치료과정에서 수혈을 받은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 경감을 위해 사용하고, 헌혈기부권 또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기부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조남선 혈액관리본부장은 “신천지예수교회가 단체헌혈에 나서줘서 혈액수급에 있어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3일 만에 6천명을 달성하고도 이어서 참여해줘서 놀랐다”고 말했다. ◆‘헌혈 공로’ 대한적십자사 회장 표창 수상 코로나19 혈액수급 비상상황에서 대규모 헌혈과 헌혈증 기증으로 국민에게 귀감이 된 신천지예수교회는 ‘세계 헌혈자의 날’을 맞은 지난 6월 14일 ‘적십자 인도주의운동에 적극 참여해 민간의 생명보호를 위한 혈액 사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공로’로 대한적십자사 회장 표창을 수상했다.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헌혈자들의 숭고한 정신에 감사함을 표한다”며 “정부 및 관계기관과 협력해 헌혈자들이 보람과 긍지를 갖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가 차원에서 예우하는 계기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최단기간 최다헌혈’로 한국기록원 인증 신천지예수교회는 이번 헌혈로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며 한국기록원 인증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게 됐다. 지난 6월 16일 신천지예수교회는 단체헌혈로 ‘단일기관 최단기간 최다인원’이라는 한국기록원 인증을 획득했다. 또한 3만 2324장(지난달 9일 이후 추가 기증된 헌혈증 포함)의 헌혈증을 기부하면서 ‘최다 헌혈증 기부’ 기록도 세웠다. 한국기록원은 인증을 위해 신천지예수교회로부터 헌혈증 사본과 명단, 기부증서 등을 제출받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사실확인을 거쳐 공식 최고기록 인증을 확정했다. 신천지예수교회 관계자는 “전국 신천지 신도가 혈액 국가수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나선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기억할 수 있어 뜻깊다. 무엇보다 생명나눔에 대한 신도님들의 고귀한 마음이 있었기에 최단기간 최다헌혈이라는 기록이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곳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