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맞이한 종교계, 각 종교서 진행하는 종교의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난 2020년 1월 국내 상륙한 이후 세 번째 설을 맞이했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까지 더해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상황을 고려해 종교계에선 가정에서 예식을 드리도록 권하는 추세지만 기도회, 미사, 차례 등 종교행사도 여전히 거행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명절이나 탈상, 기일 등에 가정제례보다 위령 미사(연옥에 있는 이를 위하여 하는 미사)를 우선해 드린다. 2월 1일 설 당일 전국 천주교 성당에서는 합동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오전 710시, 오후 67시 등 네 차례에 걸쳐 봉헌하고, 서초동 성당에서는 오전 6911시 세 번 진행한다. 가정에서 차례를 지낼 때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 제례 예식에 따라 시작 예식, 말씀 예절, 추모 예절, 마침 예식 순으로 진행한다.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고해성사로 마음 또한 정결케 한다. 차례상은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하거나 음식을 차리지 않기도 한다. 상장 예식에 따라 차례상에 촛불 2개와 꽃을 꽂아 놓으며 향을 피워도 된다. 벽에는 십자고상을 걸고 그 밑에 조상 사진을 모신다. 사진이 없으면 이름을 써 붙이기도 한다. 이어 ▲성호 긋기▲성가 부르기▲성서 구절 봉독▲가장의 말씀▲가족을 위한 기도 등을 한다. 이후 차례 음식을 음복하고 성호를 긋는 것으로 차례를 마친다. 불교에서는 차례(茶禮)를 하늘과 조상에 차(茶)를 올리면서 드리는 예(禮)라고 가르친다. 이에 따라 일반 유교식 차례상에 술이 올라가는 것과 달리 불교식 차례에서는 차를 올린다. 상차림은 불교식 가정 제사 기본 지침에 따라 간소하게 하되 육류와 생선은 제외하고 육법공양물에 해당하는 향초꽃차과실밥과 국, 3색 나물, 3색 과실을 준비한다. 차례는 부처님을 모시는 거불의식을 시작으로 영가들에게 음식과 법을 공양하며, 선망 조상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순서로 진행한다. 설 당일 전국 주요 사찰들은 합동 차례를 봉헌한다. 서울 조계사는 오전 811시, 오후 1시에 설 합동 다례재를 봉헌하고, 봉은사는 오전 810시, 오후 2시에 합동 차례를 올린다. 개신교는 십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따라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한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신 후보다 생전에 효를 실천하도록 가르친다. 개신교는 유교나 불교처럼 죽은 혼령에게 제사를 지내진 않지만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을 비는 제사의식의 일종인 추도예배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강화된 상황에서 가정예배도 권장하는 추세다. 전국의 교회들은 지난 30일 새벽 기도회와 예배를 진행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경기도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공원묘지 등지에서 오는 2월 2일까지 오전 11시, 오후 3시에 기도회를 연다. 한편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종교시설은 백신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수용인원의 30%(299명)까지,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할 경우 수용인원 70%까지 참석 가능하다.

[종교in] 크리스마스는 즐기는 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꼭 기억해야 할 것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산타클로스의 빨간색 의상은 광고 목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 시칠리아 노토(NOTO) 교구의 안토니아 스탈리아노 주교는 성 니콜라오 축일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가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하고 있다며 부모들의 뭇매를 맞았다. 비난이 거세지면서 결국 노토 교구는 스탈리아노 주교를 대신해 어린이들에게 실망을 준 발언에 대해 주교를 대신해 유감을 표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스탈리아노 주교는 이번 논란에 대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진짜와 진짜가 아닌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사실은 성탄절이 더는 기독교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조명과 쇼핑 중간 지점에 있는 성탄절 분위기가 성탄절을 대체 했다고 했다. 사실상 성탄절이 세속적 축제로 변질된 오늘날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성탄절이 더는 기독교인의 것이 아니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성탄절은 사회 전체의 축제가 된 지 오래다. 평소 교회에 기웃도 안 하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크리스마스라고 모여서 술을 마시고,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는다. 예수와관련 없는 호화스러운 트리부터 거리에 울려퍼지는 캐럴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다.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걸 기념하는 날이다. 기독교계는 예수 탄생이 인류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하나님이 구약 선지자들에게 예언한 대로 탄생했고, 하나님의 품에 있었던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죄가 없었지만, 육신을 입고 태어나 하나님이 약속한 예언을 모두 이룬다. 주목할 만한 건 예수의 탄생이다. 성경에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 상태에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전해진다.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태복음 1장 18절) 어떻게 처녀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이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이사야 7장 14절의 예언대로 예수가 태어났음을 보여준다. 예수가 사람의 씨가 아닌 성령의 씨로 출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인 누가복음에는 성령이 마리아를 덮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예수의 탄생과 성장은 순탄치 않았다. 베들레헴의 초라한 말구유에서 태어나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을 떠났으며 또 어린 시절을 나사렛이라 불리는 거지촌에서 한 목수의 아들로 살았다. 예수의 탄생은 비루했으나 여기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어있음을 성경을 통해, 예수가 한 일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서 5장 2절)라는 구약성경(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또 애굽으로 피신하게 되는 상황도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호세아 11장 1절)라는 호세아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예수초림 때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판단했고,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이 외에도 예수는갈릴리에서 사역할 것(이사야 9장 1~2절), 나귀를 탈 것(스가랴 9:9) 등 50개가 넘는 수많은 예언을 이뤘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누가복음 24장 44절) 이 같은 사실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는 하나님을 믿는 근거가 되고 있다. 또 예수의 행적이 스스로가 만든 길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믿음을 더해주는 대목이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의미는 크다. 혈통으로 이어졌던 이스라엘 선민의 자격이 예수의 탄생을 통해 영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누구나 신의 선민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예수는 믿는 백성에게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다시 오겠다는 약속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 서로 사랑하자는 데 성탄의 의미를 더 두고 있다. 특히 예수는 요한복음 14~16장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보낼 대언자 곧 보혜사를 약속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니라(요한복음 14장 26절) 성경의 마지막요한계시록 전장은 예수가 부활 승천 이후 제자 사도요한에게 보여준 장차 이룰 약속이다. 예수가 남긴 약속은 무엇일까.재림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기록한 약속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성탄절이 되길 바란다.

한중전통문화협회, 30일부터 한중문화 교류행사 진행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인 호명스님이 대회장으로 있는 한중전통문화협회가 30일부터 한중문화 교류행사를 진행한다. 제1회 한중전통문화축제 발대식은 30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경기도 양주 청련사에서 개최된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행사의 목적은 2016년 7월 발령된 한한령(限韓令: 한류금지) 이후 상호 민간 교류차원의 관광과 문화 교류 활성화의 필요성 증대다. 국내 개최지는 부산, 경남, 전남, 충북이다. 행사는 아시아 버스킹 공연을 포함한 전통민속음악축제로 진행된다. 공연 방식은 지차체 특성에 맞게 진행된다. 주요 행사로는 ▲체험행사 ▲전시행사 ▲공연관람 ▲선사방문 ▲지역명소방문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됐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행사는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상반기는 중국 노동절 연휴기간인 내년 5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진행된다. 하반기 행사는 중국 국경절 연휴기간인 내년 10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진행된다. 한중전통문화협회는 2019년 10월 경남 하동군의 해외홍보사업으로 중국의 북경환발해여유연맹에 소속 돼있는 문화관광 관련 대표자를 3박 4일 초청해 팬투어를 진행했다. 일정 중 1박 2일은 여수시에서 진행했다. 하동군 팬투어 중 양사오징 장쑤성 우먼야지문화 유한회사 대표는 불교문화 체험을 통해 중국에서 사라진 불교문화가 한국에서 원형보전과 전통이 계승돼 있는 것을 보고 귀국 후 LBN방송과 세계문화연맹 관계자를 초청, 아시아불교음악축제(한중전통문화교류축제)를 한국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하고 협력 각서 체결한 바 있다. 양사오징 대표는 5년 동안 약 10~20만명의 불교신자를 모집해 미국, 캐나다에서 불교음악제를 개최했었다. 이후 2020년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 2021년으로 순연됐다고 추최 측인 설명했다. 한편 한중전통문화협회 조직위원회 중앙회 대회장는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호명스님이며, 부대회장은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 회장, 천년고찰 청련사 주지 상진스님이다. 조직위원장은 조호대 세계문화연맹 총재며, 부조직 위원장은 김종식 세계문화연맹 사무처장 이다. 고문단은 조병인 ㈔한중경제무역촉진협회 회장이며, 사무총장은 김양진 LBN방송 대표다.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천주교 미사보 쓰는 이유?… ‘씨알’ 영웅 함석헌 조명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24회가 19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이날 방송에서 혜원스님은 알면 쓸모 있는 종교상식 알쓸종상으로 천주교에서 여성들이 쓰는 머릿수건 미사보에 대해 알아봤다.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시대를 빛낸 종교인물 50인(시종인) 코너에서 아홉 번째 인물로 씨알(민) 사상가 함석헌(1901~1989) 선생에 대해 조명했다. 한 주간 이슈를 아우르는 종교이슈3 코너에서는 천지일보 이지예 기자가 ▲전광훈 목사 명령에 반(反)문재인 집회 다시 부활 ▲어디까지 추락? 한국교회 신도 또 빠져나갔다 ▲경찰, 3000명 합숙 선교단체 인터콥 압수수색 착수 등의 이슈를 다뤘다. 미사보는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여성 신자들이 쓰는 머릿수건으로, 라틴어로는 벨룸이라고도 한다. 천주교 여성들은 왜 미사보를 쓰고 기도를 하는 것일까? 미사보는 크게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 색으로 나뉘는데, 장례 미사를 제외한 대부분 흰 미사보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머리를 가리는 관행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성경에 구약 시대에도 이런 풍습이 있었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여호와(야훼)의 현존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출3:6 ,열왕19:13)는 기록이 있듯 남자도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여성이 외출하기 위해 입는 큰 외투와도 같이 사용됐다. 그러나 1세기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 여성들이 의복과 분리된 베일을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교회 공식예절 때 사용되게 됐다. 여성 신자들이 머리를 가리는 관습이 시작된 정확한 시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를 공적으로 언급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울은 여성의 머리는 남편을 상징하므로 교회의 공식예절에 참여할 때 여성들의 머리를 가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풍습일 뿐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신앙의 의미는 아니었다. 크게는 그리스도와 맺은 영적인 혼인을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신앙인으로서 소박한 생활과 정숙한 몸가짐, 그리고 깨끗해졌다는 순결함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함석헌(1901~1989) 선생은 씨알(민) 사상가였다. 씨알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많은 보통사람에게 붙인 이름이다. 종교 사상가이자 시인, 그리고 민중운동가였던 그는 1956년부터 본격적인 논설집필에 나서며 사상계를 통해 사회비평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로 자유당 독재정권을 비판하기도 하며 좋은 말 나쁜 말 가리지 않고 쏟아 냈던 그다. 이를 포함한 정권에 반대하는 여러 운동에 적극 가담하면서 옥고도 수차례 치뤄야 했다. 선생은 성서뿐 아니라 동서양의 각 고전을 섭렵해 씨알 사상이라는 비폭력민주평화이념을 확립하는데 이르렀다. 때문에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사회 평론뿐 아니라 도덕경 등의 각종 동양 고전 주해도 행했으며 시를 창작하고 글을 쓰고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상계가 폐간되자 1970년 4월 씨알의 소리를 창간해 민중운동을 전개하고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80년 씨알의 소리역시 정부로부터 일방적인 폐간조치를 당하게 되고 오늘날까지 씨알은 그저 역사 속 깊은 곳에 빛나게 자리하고 있었다.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승복은 왜 회색?… ‘화엄십찰’ 창건 의상대사 조명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22회가 5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이날 방송에서 혜원스님은 알면 쓸모 있는 종교상식 알쓸종상으로 스님들의 옷(승복)이 왜 회색인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시대를 빛낸 종교인물 50인(시종인) 코너에서 여덟 번째 인물로 합천 해인사 창건자의 스승인 의상대사에 대해 조명했다. 한 주간 이슈를 아우르는 종교이슈3 코너에서는 천지일보 이지예 기자가 ▲전광훈 목사가 옥중서신에서 나훈아를 끌어들인 이유 ▲수렁 속 한기총, 대표회장 선출 놓고 알력다툼하다 '백지화' ▲英성공회 성직자 390명 아동성착취 유죄 선고 등의 이슈를 다뤘다. 스님이 입는 옷을 분소의(糞掃衣)라고도 부르는데, 한자로는 똥 묻은 헝겊 조각을 주워 모아 지은 옷이라는 의미다. 불가에서 분소의는 탐심을 삼가고 검소함을 닦는다는 뜻으로 입는 법복이다. 긴 헝겊과 짧은 헝겊으로 잘라서 서로 잇대어 깁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옷은 조각의 수에 따라서 몇 조라고 칭한다. 예를 들어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삼의 중에서 하의를 긴 헝겊 한 장과 짧은 헝겊 한 장을 1조로 하여 다섯 조를 합해 5조 가사라고 한다. 법복에서 회색 부분은 장삼이라고 부른다. 삼은 본래 낡고 오래돼 색이 바래서 회색인데, 오늘날에 와서는 회색으로 대신하게 됐다. 어깨에 걸친 붉은색이나 갈색처럼 된 것은 가사라고 부른다. 가사는 괴색이라는 의미로, 괴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색천이라고도 한다. 율장에는 옷감으로써 가치를 없게 해서 보는 사람들이 도둑질할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옷에 색천을 했다고 한다. 의상대사(625~702)는 우리나라 불교인 가운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상가 중 한명으로, 험난한 시대를 계도(啓導)했던 위대한 실천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진평왕 47년(625년)에 경주에서 태어나 선덕여왕 13년(644년)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해 승려가 됐다. 650년 원효대사와 함께 중국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 했으나, 요동에서 첩자로 몰려 사로잡히면서 신라로 되돌아와야 했다. 날이 밝아 원효대사는 한밤의 해골물 한 모금에 도를 깨달아 발걸음을 돌렸고, 의상대사는 홀로 중국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중국 양주에서 유지인(劉至仁)의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 집에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선묘(善妙)로, 부석사에 자리 잡고 있는 선묘각이 바로 이 여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게 중국에 머물게 된 의상대사는 지엄화상의 제자가 된다. 지엄화상은 화엄경의 미묘한 뜻을 가르쳤고, 의상대사는 이치를 깊이 파헤치며 열심을 냈다. 화엄학을 배운지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형상이 매우 기이하게 생긴 신인(神人)이 꿈속에 나타나 네 자신의 깨달은 바를 저술해 사람들에게 베풀어줌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나타나서 총명약(聰明藥) 10여 제를 주고, 세 번째 꿈에 청의동자(靑衣童子)가 나타나 비결을 준 것이다. 이를 전해들은 지엄화상의 명을 받들어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670년 7월 화엄일승법계를 완성했다. 이후 스승 지엄의 열반과 시대적 환경으로 급히 귀국을 해야 했던 의상은 양주에서 받은 편의를 생각해 선묘의 집을 들러 감사인사를 전하고 선창가로 향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선묘는 의상대사를 위해 법복과 여러 집기를 함에 넣어 황급히 해안으로 나갔다. 그러나 의상을 태운 배는 이이 선창을 떠나고 있었다. 이에 그녀는 바다에 몸을 던졌고, 그녀의 원력에 크게 감동한 신은 선묘를 용으로 만들어 선묘의 뜻대로 의상은 마음껏 법을 전할 수 있었다. 의상을 통해 알려진 화엄사상은 빠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고 신라는 전국 곳곳에 화엄종 사찰을 세우게 된다. 의상대사가 세운 10곳의 사찰은 화엄십찰(華嚴十刹)로 불리며 부석사(浮石寺), 비마라사(毘摩羅寺), 해인사(海印寺), 옥천사(玉泉寺), 범어사(梵魚寺), 화엄사(華嚴寺), 보원사(普願寺), 갑사(岬寺), 국신사(國神寺), 청담사(靑潭寺)가 있다.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574돌 한글날 기념… ‘세종대왕’ ‘훈민정음’ 되새기다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22회가 5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이날 방송에서 혜원스님은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알면 쓸모 있는 종교상식 알쓸종상으로 하늘땅사람이라는 뜻의 철학 담긴 한글, 훈민정음의 의미에 대해 살펴봤다.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시대를 빛낸 종교인물 50인(시종인) 코너에서 일곱 번째 인물로 성군이라 불렸던 조선전기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을 조명했다. 한 주간 이슈를 아우르는 종교이슈3 코너에서는 천지일보 이지예 기자가 ▲정부가 보수집회 막자 옥에서도 지원사격 나선 전광훈 목사 ▲교황청 작년 부동산 운영 수입 1353억원 ▲여성 목사를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시선이라는 주제의 이슈를 다뤘다. 훈민정음은 세계문자 가운데 신비로운 문자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한글만이 세계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이 기록돼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잘 알려져 있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기도 하다. 한글이란 1910년대 초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훈민정음에 뜻을 붙여 지은 이름으로, 한이란 크다는 것을 뜻하는데 동방의 큰 글 세계에서 제일가는 으뜸 글이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한글의 가치는 간송 미술간을 세운 전형필 선생의 공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1940년에 안동에서 발견되면서 알 수 있게 됐다. 한글의 가장 큰 특징은 소리와 글자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만든 것이다. 세종은 이 한글이 모두 설음(舌音) 곧 혓소리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글자에 획을 더하거나 포개는 방법으로 유사한 형태의 다른 글자를 만들어냈다. 여기다가 하늘, 땅, 사람을 뜻하는 높은 철학까지 담겨있어 세계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한글에 경탄한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만들어 낸 세종대왕의 업적과 한글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성군이라 불리었던 임금 세종대왕은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으며,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조선전기 제4대 왕이다. 그는 끊임없이 신하들과 정책을 논하고 백성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며, 조선시대의 민본주의 정신과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1397년 (태조 6년)에 태종의 셋째아들로 태어난 세종은 1418년 22살의 나이로 태종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비록 왕위를 이을 첫째가 아닌 셋째아들이었지만,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뜻에 따라 극적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세종은 태종이 이룩한 왕권과 정치적 안정 기반을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정치를 펼쳐나갔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만들어 많은 인재를 양성해냈다. 또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를 정비했고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편경 제작, 정간보 창안, 국토의 확장 등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을 이뤄냈다. 집현전을 통해 양성된 인재들은 정치는 물론 사회 경제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된다. 이 중 세종이 남긴 문화유산으로 가장 빛나는 업적은 바로 훈민정음 창제다. 이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훌륭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세종의 업적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보다 신분, 출신 등을 가리지 않고 주요 관직에 임명해 창의적인 정책을 펼치고자 했던 그의 유교 사상과 높은 정신문화에 있다.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조선은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이뤘다.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21회차]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삶과 죽음 조명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21회가 28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이날 방송은 유관순 열사 서거 100주기를 맞아 특집으로 진행됐다. 1920년 9월 28일. 이날은 유관순 열사가 열여덟 어리고 여린 여성의 몸으로 입에 담지 못할 치욕스럽고 잔인한 고문을 이겨내야 했던 100년 전 오늘이다. 그녀는 석방 이틀을 남겨놓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 열사는 1902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신실한 개신교 집안 둘째 딸로 태어났다. 열사라 함은 나라를 위해 절의를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1910년 일제 식민지배 아래 나라 잃은 슬픔마저 자유롭지 못할 때, 유 열사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와 기독교 신앙 속에서 자유와 평등사상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자랐다. 1915년 4월.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으로 편입한 그는 1918년 4월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하게 된다. 유 열사가 살았던 지역은 서양문명이 전래되던 전초기지였고, 충남의 대표적 문물교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유 열사는 많은 외국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 열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자유와 독립, 애국의 중요함을 깨달았고, 그로 인한 깨달음과 믿음 또한 남달랐다. 유 열사의 이 같은 깨달음은 3.1운동으로 꽃피게 된다. 이후 4월 1일 아우네 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헌병대에 잡혀 법정으로 끌려간다. 1919년 5월 9일. 그 때 당시 여성으로써 최고형인 7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법정에서 의자를 집어 던지며 독립의지를 꺾지 않았던 유 열사의 모습은 같은 동지뿐 아니라 일본인들까지 놀라게 했다. 유 열사는 일본의 모든 재판권을 부정하고 판결을 거부한 유일한 여학생으로 남게 된다. 이후 1920년 3월 1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중만세 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고문을 받고 9월 28일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으나, 유 열사의 독립투쟁과 애국정신은 오늘날의 세계 모든 젊은이들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 대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20회차] 역사 속 디아스포라란?… 초대교회 최초 순교 ‘스데반’ 삶 조명

21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20회가 진행됐다. 혜원스님은 이날 알면 쓸모 있는 종교상식 알쓸종상으로 기독교 용어인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살폈다.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시대를 빛낸 종교인물 50인(시종인) 코너에서 다섯 번째 인물로 스데반 집사를 조명했다. 한 주간 이슈를 아우르는 종교이슈3 코너에서는 천지일보 이지예 기자가 ▲사회적거리두기와 대면예배 현 상황 ▲서울시의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구상권 청구에 따른 법적 공방 ▲목회자 1000인 선언문 등의 이슈를 다뤘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분산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히브리어는 Galut(갈루트), 유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배라고 하면 우리 역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죄인을 먼 타국이나 섬으로 귀양 보내는 일을 유배라고 한다. 그 죄의 무게만큼 거리의 등급이 있기도 했다. 곧 종교에서 디아스포라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이다. 신앙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향에서 타지로 이주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유대왕국이 패망해 바빌로니아로 유배당한 뒤 이방인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 또는 오늘날 이스라엘 지역 바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나 유대인 공동체를 총칭하기도 한다. 디아스포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각각 멸망당했을 때 처음 발생하게 됐는데 이때 앗수르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도 있었지만 주변 나라로 도피한 자들도 있었다. 성경 속 베드로는 디아스포 유대인들을 흩어진 나그네(벧전 1:1)로 부르는데, 이들은 영원한 고향인 천국을 사모하며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시종인 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이며 이름은 스테파노, 스데반이라고 부른다. 면류관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스데반은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스데반은 12사도들의 명령으로 여러 성도에 의해 선택된 성령이 충만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다. 일찍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인 알렉사드리아에서 교육을 받았던 스데반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동기생이기도 했다. ​어떠한 계기로 그리스도인이 됐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율법을 배울 정도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은 특별했던 것은 사실이다. 12제자를 제외한 초대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제일 처음 순교의 길을 걸어간 스데반. 스데반의 믿음은 빛 된 행실로 아직도 많은 신앙인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다. 스데반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니는 사울이라는 자로 인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공회와 대제사장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씀을 전한 신앙인이었다. 회당에서 스데반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 때에 스데반이 자기 앞에 펼쳐진 영광스러운 광경에 대해 외치자, 그의 말을 들은 자들이 귀를 막고 소리치며 스데반에게 달려들었고 이내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 스데반은 사지로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 저항 없이 저들의 돌에 맞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르기를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했다. 스데반 집사의 희생으로 디아스포로가 된 유대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더욱 많은 제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던 바울도 이 후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는 자가 됐다(사도행전 9장).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19회차] ‘아수라장’이 불교용어라고?… 마더 테레사의 희생

31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19회가 진행됐다. 진행자인 혜원스님은 알면 쓸모 있는 종교상식 알쓸종상 코너로 불교용어인 아수라장에 대해서 살폈다. 이어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시대를 빛낸 종교인물 50인 코너에서 네 번째 인물로 마더 테레사를 조명했다. 이어 종교이슈3 코너에서는 천지일보 강수경 기자가 이번 회차에서는 한국교회 교단총회와 전광훈 목사 이단 논란, 전광훈 목사 서울구치소 재수감,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성결환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한 정교회 수장의 코로나 확진 등의 이슈가 다뤄졌다. 아수라(阿修羅)는 산스크리트어 asur의 음역(音譯)이다. 아소라 아소락 아수륜 등으로 표기하며 추악하다라는 뜻이다. 아수라는 본래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선신(善神)이었는데 후에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惡神)이 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신으로 통한다. 아수라장은 아수라가 불법(佛法)을 없애기 위해 제석(帝釋: 신들의 제왕인 샤크라)과 싸우는 전장(戰場)에서 나온 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등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알바니아 출신의 테레사 수녀는 어린시절을 스코페에서 보낸 뒤 18세에 아일랜드로 건너가 로레타 수녀회에 들어갔다. 그는 인도 국적을 얻어 1950년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세웠으며, 현지 빈민들을 위해 헌신적인 자선활동을 펼쳐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 이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됐다. 2016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성인 추대를 받았다.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18회차] 항일운동의 핵 ‘만해 한용운’… 기도하는데 왜 물이?

7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18회가 진행됐다. 진행자인 혜원스님은 알면 쓸모 있는 종교상식 알쓸종상 코너로 민속신앙으로 전해내려온 정화수와 기독교 계통의 성수에 대해서 살폈다. 이어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시대를 빛낸 종교인물 50인 코너에서 세 번째 인물로 만해 한용운을 조명했다. 이어 종교이슈3 코너에서는 천지일보 강수경 기자가 이번 회차에서는 전광훈 목사에 대한 보석 취소 결정, 신천지와 기성교회 코로나19 완치자의 행태의 극명한 대비, 코로나가 불러온 기독교 포비아에 비상 걸린 개신교 등의 이슈를 다뤘다. 정화수의 정확한 뜻은 첫 새벽에 길은 맑고 정한 우물물이다. 그러나 꼭두새벽에 길은 물이라 해서 다른 시간대보다 더 깨끗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서 맑다는 것은 화학적으로 맑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맑음을 뜻한다. 정화수에 앞서 신앙의 대상인 우물이 있어야 하는데, 우물은 예로부터 신령의 집이라는 관념을 지니고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정이 태어났다는 알영정(閼英井), 고려 태조의 할머니 용녀가 은접시로 땅을 파서 만들었다는 개성대정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신령의 집이라는 우물에서 새벽 일찍 길어 올린 정화수는 새벽의 청정한 기운, 고요한 에너지와 같은 맑은 감정을 담고 있다. 조상들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신을 만날 준비를 했다. 정화수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먼저 신령에게 빌 때 신령에게 바치는 공물이라는 의미다. 가장 간소하나 가장 정갈한 공물로써 신령에게 비는 사람이 지닌 치성의 극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때 새벽의 맑음과 짝지어진 정화수의 맑음에 비는 사람의 치성의 맑음이 투영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두 번째는 정화력을 발휘하는 주술물 구실을 한다. 물 자체가 지닌 맑음으로 환경이나 사람, 물건 등의 부정을 물리치거나 막는 힘이 생긴다는 생각이 정화수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난 만해 한용운은 1944년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조국 해방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오직 민족의 독립 앞에 바쳐진 삶을 살았다. 당시 열강의 침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불행한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여건은 그를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게 만들었다. 한용운의 민족운동은 임제종운동, 신간회, 광주학생운동, 창씨개명 거부 등 전방위적으로 나타났다.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한용운은 기독교,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일제 강점기의 혁명적인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3.1운동을 주도한 독립투사 만해는 최남선이 기초한 비교적 우회적이고 소극적이었던 기미독립선언문에 최후의 한 사람, 최후의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발표하라는 공약삼장(公約三章)을 추서해 민족의 독립을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 3.1운동의 방향을 정립시켰다. 또한 그는 만세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돼 재판을 받아 3년간 옥살이를 했고, 옥중에서도 일제의 회유에 흔들지 않았으며 민족대표로서 일제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한용운은 출옥 후인 1922~23년 민립대학 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의 민족운동에 참여했으며, 1926년 근대한국시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님의 침묵을 발간했다. 또 그는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만해는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됐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대한불교 임제종을 창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