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천지일보 신년기획|국운] “코로나에 짓눌린 한반도, 올해 숨통 트인다”

2022년 우리나라의 운명은 어떨까. 한반도 운기(運氣)는 역동적이며 희망적이다. 국운 상승기가 시작되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붕괴의 영향으로 경기침체는 올 상반기에도 계속된다. 그러나 상반기에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경구용 치료제들이 국내외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여름 이후 코로나19의 긴 터널에 출구가 보이기 시작하고, 바닥을 친 경기도 상승의 변곡점을 그린다.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비치는 운세다. 2011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금메달 재획득 실패(판정 논란), 2012년 안철수 정치 출마 동시에 대통령 후보 사퇴, 박근혜 후보 대선 승리와 퇴임 예측, 남북 화해 사태와 정상회담, 코로나19 2년간 전쟁, 2020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의 표명과 건강 악화 등을 예측한 언론 인터뷰로 주목받은 역리학자 한가경 미즈아가행복작명연구원장을 만나 올해 국운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2년 운세는 지난해 12월 22일 동지(冬至)부터 이미 시작됐다. 역학적으로 해석하면 임인년은 10천간의 하나로올 상반기를 지배하는 임(壬)은 수(水)다. 큰 강, 호수, 바다 등으로 비유된다. 물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나 넘치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두려운 존재다. 하반기 인(寅)은 12지지의 하나로 물을 빨아올리며 하늘로 뻗어 오르는 큰 나무, 병(丙)화(火) 태양을 생(生)해주고 활력을 주는 장생지(長生地)다. 인체에 유익한 약초로도 풀이한다. 그래서 올해 출생하는 신생아들은 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등에 인연이 많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쉽게 종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목(木) 오행의 지역인 한반도는 무서운 금(金)의 공격을 막아주는 해를 맞아 숨통이 트인다. 임인년의 임은 수(水) 오행의 해고, 인은 봄날 생동감 넘치는 나무뿌리로, 날카로운 금이 물을 만나 녹슬고 무뎌져 올해 우리나라는 지긋지긋한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일부 극복해 나간다. 특히 간편하게 먹으면 치료되는 경구용 치료제와 예방약이 나와 여름부터는 코로나19가 좀 수그러든다. 이 과정에 한국의 우수한 K 바이오 제약산업도 최악의 코로나19 위기 돌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내산 코로나19 치료제는 작년 재작년 이미 벤처기업 실험실에서 청신호를 켰는데 출시가 늦어졌다. 미국 FDA가 공식화한 신약허가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턱없이 임상 테스트 기간이 길고 승인조건도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불행히도 베스트를 뽑는 선거가 되지 못한다. 도덕적으로나 리더십면에서 국민이 납득할만한 최고의 지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투표해줄 만한 지도자감이 없어 최선을 뽑는 선거가 아닌 차악을 뽑는 선거가 된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의 국정쇄신 요구에 부응해서 이노베이션을 추구할 것이다. 새 정부도 전임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치외교경제사회적으로 상당한 도전과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혁신 정부가 돼야 하고, 황무지가 돼 있는 과거의 폐쇄적인 편 가르기 논밭을 갈아엎고 부패하고 묵은 질서를 타파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 정부 역시 반쪽 정부가 되고 말 것이다. 국민 통합에 성공하기에는 쉽지 않다. 새 정부는 구태의연한 좌우이념 대결을 뛰어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출하며 선진강국으로 이끌어야 한다. 유력 후보들의 사주를 봤을 때 윤석열 후보는 태어난 생년월일은 분명하나 생시(生時)가 정확하지 않아 불분명하다. 이재명 후보는 일반에 공개된 생년월일시가 실제와 다르다고 한다. 결국 둘 다 정확한 운세를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윤 후보는 태어난 날이 겨울날의 금(金), 이 후보는 겨울날의 목(木)으로 여겨진다. 모두 차가운 날씨에 태어났고, 태어난 달에 차가운 물이 흘러넘치고 있는 강한 사주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후천적인 대운(大運, 10년 단위 운세)에서 함께 따뜻한 오행의 천운을 만나 함께 욱일승천하고 있다. 그러나 1년 년운을 말하는 세운(歲運)인 임인년에 차가운 물을 만나니 흉하다. 이에 둘 다 임인년에 관재수(官災數)라는 큰 강을 건너야 한다. 다만 대통령 선거일이 임박한 가운데 대권구도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후폭풍 등에 따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해 많이 접근했지만, 끝내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에 달려있다. 임인년은 아니지만, 통일은 거의 임박했다. 북한이 경제난 식량난 등으로 인해 임계점에 다다를 정도로 짐작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미관계에 대해선 일본과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방해로 당분간 미국과의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이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도 지난해 내부적으로 고통을 겪었다. 인생 최대의 고비를 넘겼을 정도로 힘든 한해였을 수 있는데, 체제에 대한 도전이나 건강문제 중 건강문제 가능성이 크다. 2023년 4월까지 고비를 잘 넘기면 말년까지 종신집권이 가능하다.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종전선언 발표를 위한 남북 고위급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미국은 달러화라는 경제 위기가 있었는데, 곡물과 지하자원의 뒷받침으로 극복했다. 그래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운을 보더라도 세계 최고의 패권국가로서 지위를 당분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유지하는 운이지만, 견제를 계속 받는다. 중국 국가의 운세는 소수민족이 독립하려고 해서 중장기적으로 힘이 빠지고 동북, 동남이 쪼개져 시끄러워진다. 아시아 대표 영화강국이던 일본은 계속해서 쇠퇴하는 분위기다. 러시아가 미국과 암암리에 통하는 게 있다. 바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도 동맹상태지만, 중국 견제를 위해서다. 남북한이 언젠가통일이 된다면 러시아와 유라시아 벨트로 만주까지 되찾아올 정도로 강성해질 것이다. 물을 조심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홍수와 수재 등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전쟁도 계속해서 일어나는데 특히 종교전쟁, 분리 독립전쟁이 발생한다. 새로운 감염병이 또 발생한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인 경험이 도움이 돼서 쉽게 물리칠 수 있다. 특히 케이 바이오가 세계적으로 박수받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심각한 수해, 지진, 화산폭발, 지반침하 등 천재지변이 이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해 두 해 동안 바닥을 쳤던 경기는 올해 상승세를 탄다. 국운은 상승세지만, 한번 올라간 부동산 가격이 갑자기 꺼지긴 어려워 안정화는 쉽지 않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서민들의 힘듦은 지속된다. 부익부빈익빈 양극화 현상이 계속되지만 우리 민족의 근면한 성품과 높은 교육열, 광범위한 정보망, 제4차 산업 등 우수한 산업 역군이 있어 경기는 좋아진다. 한류 등을 집중 지원해서 세계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종교계에 대해 일반적으로 불만스러운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통종교라고 하는 종교계가 상업화, 기업화되고 타락해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덕 위의 교회당같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자신의 안에서 절대자를 만나도록 해야 하는데 절대자와 일반 성도를 연결해주는 역할에 불과한 목사, 사제, 승려가 너무 귀족화권력화돼 종교를 사유화하는 길을 걷고 있다. 스님들의 경우 옛날에는 맨발로 탁발하며 힘든 고행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도들이 다려주는 옷을 입고 자가용을 타고 반질반질하다. 불교계에서도 이판승과 사판승이 있다.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보다는 행정 하는 스님이 존경과 대접을 받는다. 교회도 신도들이 큰 교회를 다니려고 하니까 스타마케팅에 주력하기 바쁘다. 종교인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탁발해온 음식을 먹고 참선 수행하는 것이 본분이다. 가톨릭도 마찬가지다. 누가복음10장 38~42절을 보면 마리아의 일이 본연의 사제와 성도의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계가 그동안 좋은 역할도 했지만, 많은 실망을 주고 있다. 지도자부터 기도 생활에 충실하고 신도들에게도 교육해야 한다.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가벼운 일이 아니다. 이웃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같다. 격암유록 등 비기에 따르면 통일되는 날을 용사적구희월(龍蛇赤狗喜月)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용사(龍蛇)년은 진사(辰巳)년을 뜻하고, 적구에 붉은색은 화(火)고, 개 구(狗)자는 술(戌)이니 을사년 병술월에 기쁜 달이 된다는 뜻으로 본다. 60년 주기로 을사년 병술월이 오는데, 일각에서는 이날을 2025년 음력 9월 말로 예상하고 있다. 이날에 앞서 2022~2023년 인묘년에 남북한 경제협력체로 발전되거나, 군대가 동원되는 일 또는 영적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등의 해석이 분분하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진인, 큰 인물이 나와 갈라진 세계의 종교를 통합하게 되거나 남북통일을 이뤄내 세계 열방이 우러러보고 종교문화적으로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인물의 활약으로 어느 진사년에 통합이 돼백의민족이 살아난다고 한다.

[2021 한반도 국운] “하반기 코로나19 확산세 주춤… 국내 치료제 나와 세계적 주목”

2021년의 기상도는 어떨까. 60년 주기로 바뀌는 국운으로 볼 때 안타깝게도 매우 흐림이다. 지난해 전 세계를 극심한 공포와 긴장 속으로 몰아넣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각종 재난이 올해도 끈질기게 우리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역리학연구가 한가경 미즈아가행복작명연구원장은 우리나라는 변이(變異)를 거듭하는 수천종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올해 내내 감염에 시달리며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극도로 심화돼 실업, 부도, 폐업, 가정 붕괴, 자살 등이 폭증하는 힘든 한 해가 된다고 예측했다. 다만 이러한 가운데 국내에서 연구개발한 변이 코로나19 치료제와 토종 예방약이 나와 지구촌 코로나19 극복에 도움을 주게 된다고 그는 내다봤다. 그는 IT(정보기술)와 BT(생명공학) 업종은 유망한 벤처연구가들이 연이어 신기술을 생산해내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다고 예측했다. 문재인 정부는 구멍 뚫린 코로나19 방역과 민심에 역행한 공수처 강행 등으로 인해 여론이 악화돼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축(辛丑)년의 신(辛)은 오행(목화토금수) 중금이며 비구름, 보석, 칼 등으로 비유된다. 지난해는 양(陽)인 경(庚)금, 올해는 음(陰)인 신(辛)금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축(丑)년은 소띠의해다. 실제 소라는 동물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올해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선천적인 성격은 지난해와 같이 무인(武人)의 특성을 지닌 강인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많이 태어난다. 이들은 야심만만한 도전정신과 강한 호기심을 지닌다. 냉철하고 현실적이며, 의(義)를 중하게 여기고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돋보인다. 깔끔한 신사숙녀형이지만, 예민하며 너무 고집스럽고 똑부러지는 성격으로 고독을 자초하기도 한다. 또한 신축(辛丑)년의 축(丑)은 토 오행이므로 성실, 순박하고 인정이 많으면서도 다소 고지식하며 완고한 성품을 가진다. 신축년의 신(辛)은 먹구름이다. 2021년은 어두운 구름이 하늘의 해를 가리니 천하가 캄캄해진 형국이다. 신금은 또한 날카로운 칼이기도 하다. 역학적으로 목 오행인 한반도를 예리한 칼날이 치니 온 국민이 도탄에 빠진 듯 힘든 한해가 또 이어진다. 하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히트 낭보와 함께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와 예방약의 국내외 임상 성공 소식이 전해지게 되면서 국내는 물론, 아프리카 등 지구촌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 교착 상태인 북미남북관계는 올 하반기에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주춤하면 숨통이 트여 유라시아고속철도 연결이 추진되는 등 남북교류협력 시대의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계속되는 변종으로 인해 세계적인 코로나19유행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지금 접종을 시작한 백신들이 끝판왕이 될 수는 없다. 말세에는 전 인류를 괴롭히는 역병(疫病)이 창궐한다는 많은 예언들이 있었다. 조선조 남사고 선생 격암유록을 보면 삼년지흉 이년지질 유행온역만국시(三年之凶 二年之疾 流行瘟疫萬國時) 토사지병 천식지질 흑사고혈 무명천질(吐瀉之病 喘息之疾 黑死枯血 無名天疾) 조생모사 십호여일(朝生暮死 十戶餘一)이라고 했다. 경제위기는3년, 전염병이 발생하면 세계적으로 2년씩 유행해 아침에 멀쩡하던 사람이 저녁에 죽고 열 집에 한 집만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이에 올해는 특히 지진과 각종 붕괴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수재(水災), 화재(火災)와 함께 코로나19가아닌 새로운 전염병도 또 발생하게 된다. 2021년이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계층 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1997년과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힘든 경제위기다. 실업, 부도, 폐업, 가정 붕괴, 자살 등이 최악으로 폭증하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집값 폭등, 전세난, 세금폭탄 등으로 도시 빈민들은 삶이 더욱 처참해진다. 주식시장에서는 거품 붕괴 현상으로 악소리가 난다. 그러나 제4차 산업과 6G,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의과학, 인터넷사업 등 IT와 BT산업은 침체된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안고 힘차게 달린다. 오행중 목(木) 기운이 강한 날에 태어난 사람은 관(官)과 재(財)를 손 안에 넣고 제 것으로 부릴 수 있는 한 해다. 올해 재물운, 승진, 합격, 귀인과의 인연 등 행운을 안게 된다. 대신조건은 봄에 태어나 목 기운의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생일이 화 오행이고 전체적으로 왕성한 사주도 올해는 길한 해다. 반면 가을에 태어나고 생일에 차가운 금 기운이 강한 사람은 흉한 일을 만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 당연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감안해야 한다. 특히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방식의 영업을 창업하려면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하원갑자 시대다. 1984년부터 2043년까지 60년간이다. 하극상의 시대, 여성 상위시대며, 극도의 개인주의, 비혼주의비출산주의가 특징이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운 문명이 탄생되고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열려 세계사를 새로 쓰게 된다. 환국 단군조선 은나라 등을 이끌었던 우리 백두산족의 부흥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옛 고토를 회복하고 정치문화종교경제의 꽃을 피우며 전 세계를 이끌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올해 한반도는 새 세상이 열리기 전 캄캄한 어둠속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생일과 사주가 불분명하다. 인터넷 프로필에 공개된 생일로는 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실제는 1년 앞선 날짜인 1952년 1월 24일로 알려졌다. 잡기재관격(雜氣財官格)이라는 특별한 격국의 귀격 명조다. 2007년부터 10년 대운이 들어 보물창고를 활짝 열어젖히는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오판(誤判)에다 레임덕이 가속화돼 정치적위기를 맞는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엄중해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중국인입국 허용 구멍에 이어 과도한 코로나19 불안과 공포로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언급 등으로 헛발질했다. 코로나19 백신 문제, 윤석열쇼크 등에 이어 월성1호기 조기폐쇄결정, 옵티머스라임사태, 청와대의 울산시장개입의혹 등에 관한 시비가 계속된다. 위헌 논란 속에 새로 출범한 공수처와 정권 핵심까지 창끝을 겨누는 비리수사 검찰의 대립, 극심한 경제침체 등으로 민심이 악화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사퇴 요구까지 거론된다. 이 모든 것은 위정자가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아직 여야 서울 시장 선거 후보 윤곽이 다 드러나지 않아 후보자들이 타고난 사주 면면을 비교해볼 수 없다. 다만 분열되지 않으면 야권에 유리한 판세가 될 것이다. 반(反)문(文) 후보 단일화 성공 여부가 변수다. 변종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난으로 세계의 지도자들은 계속 곤욕을 치른다.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지난해부터 관재수가 들었다. 심각한 법적인 분쟁에 시달리는 운세라는 것이다. 그가 이를 극복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가 퇴색될 경우 중국, 일본, 인도 등 일련의 아시아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부상하게 된다. 반면 미국 대선이 외부개입으로 인한 조직적인 부정선거로 밝혀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에 작심하고 나선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두 장기집권 체제 속의 현상유지 운세다. 북한은 경제난이 워낙 심각한 상황이다. 대북제재가 일부 완화되고 남북북미관계가 점차 개선돼도 당분간은 고난의 행군이다. 스가 일본총리의 반한정책은 계속되며, 아베 전 총리는 지난해부터 운세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건강 등에 유의해야 한다. 한 번 연기됐던 도쿄올림픽은 다시 다음해로 미뤄야 한다. 기존의 많은 종교가 하늘의 뜻에 역행하고 있다. 집단이기주의, 탐욕, 상업화, 기업화와 함께 독선적 교리로 본질을 망각한 일부 종교계의 탈선이 볼썽사납다. 임진왜란 때 나라가 망하면 불도(佛道)를 어찌 유지할 수가 있으랴며 승군으로 목숨 바쳐 왜적을 무찌른 서산대사의 참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지난해 모두가 칩거하며 방역에 애쓰고 있는 와중에 마스크도 하지 않고 대면예배 모임을 계속하다 집단발병으로 국민적 분노를 산 곳도 있었다. 올해도 실망스런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종교계를 구원해야 할 판이다. 뼈를 깎는 자기성찰과 반성으로 거듭나야 할 형국이다. 비기(祕記)에 따르면 세계통합의 중심축을 이끌 새 종교지도자가 하원갑자 시대 후반에 동북아에서 출현한다. 도래 시기가 거의 임박했다. 하지만 꼭 올해라는 얘기는 아니다. 작금의 인간성과 영성이 상실된 퇴폐적인 물질만능 시대가 아닌가. 이 참담한 절망의 시대를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영혼승리 시대로 전환시키며, 전 지구촌을 선도할 초유의 진인(眞人)이 이 땅에 출현한다는 예언이 있는 것이다. 그 분은 실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현재 내면적으로 흔들림 없는 본연삼매 수행을 계속하는 중일 것으로 여겨진다. 신앙인들은 순수한 무아(無我)를 지키도록 영적으로 뜨겁게 노력하며 기도해야 한다. 지금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독종 전염병에 맞서 세계가 전쟁 중이다. 범국가적인 에너지를 변종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총집중해야 한다. 이웃나라 대만의 성공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컨트롤타워를 감염병전문가 그룹(TF)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비전문가인 정치인과 행정 관료들이 좌고우면하며 핸들링할 일이 아니다. 또한 서울은 과도한 인구 집중이 문제다. 이로 인해 민초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도시문제를 앓고 있다. 교육과 취업을 위해 너도 나도 지방을 버리고 수도권에만 몰려든다.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졸 취업자를 집중 지원하고 서울 명문 대학의 단과대를 전국으로 1대학, 2대학 등으로 분산 이전하는 등 대범한 도농격차 해소 정책이 나와야 한다. 정치권의 여론조작과 민심왜곡도 개탄스럽다. 거의 망국적인 수준이다. 드루킹 메크로에서 드러난 인터넷 댓글부대를 해체하고 조직적인 댓글범죄를 강력 처벌해 민주주의와 공동체 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2021 한반도 국운] 辛丑年 대한민국 국운은? “코로나19 소멸… 경제 대전환”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앞으로 맞이할 새해의 운세를 보러간다. 사람에게 운세가 있듯 국가도 운이 있다. 이를 국운(國運)이라고 한다. 국운을 보는 이유는 미래에 어떤 환경에 처할 것인지 미리 알게 된다면 이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역학가들은 예측된 흉과 화를 피해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재정립해주며 신년 운세를 예측한다. 이에 본지는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역술인 백운산(78) 한국역술인협회 중앙회장을 만나 올해 국운을 들어봤다. 백운산 회장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역학은 미래의 80%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역학에 대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에 기반한 사주 풀이법으로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점술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상세하게 길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고 구분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백운산 회장은 올해 국운에 대해 2021년 신축년은 잘 풀리는 기운이 들어오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일은 없다며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운세가 좋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백운산 회장은 증조부부터 자신에게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역술 가문의 대를 이어오고 있는 역술인이다. 그는 1987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 대선 당선에 이어 2012년 18대 대선까지 매번 대통령들의 당선을 맞추고, 2002 한일월드컵 대한민국 4강 진출을 예측해 이름을 날렸으며, 각종 프로그램에 출현해 유명세를 탔다. 실제로 백운산 회장의 사무실에는 역대 대통령들과 찍은 사진과 그들로부터 받은 평통자문위원 임명장 등이 증거물처럼 걸려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육십갑자에서 38번째에 해당하는 해다. 육십갑자는 10개의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12개의 지간(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을 차례로 맞춰 쓴 것으로, 갑자년부터 계해년까지 거쳐서 다시 갑자년까지 돌아오는 데에는 꼬박 60년이 걸린다. 우리나라는 축인 동방간의 중간목의 기운이므로 신금(辛金)은 약 한금이 되며 겨울에 얼어있는 흙이 되니 상반기 1월에서 6월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까지는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이 지속된다. 특히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경제, 건강문제와 축산 등에 애로사항이 많게 될 것이다. 소중소기업에도 어려움이 따르겠으나 7월부터 다시 밝은 기운이 들어와 어두운 운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비추니 코로나19가 사라지고, 중소기업에 새로운 활기가 시작될 것이다. 8, 9월에는 국운이 상승해 정치가 안정되고 남북 간의 화합과 남미 미국과의 화합, 극도로 악화된 일본과의 경제문제가 잘될 전망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가축병도 사라지게 된다. 신금과 흙토가 화합되는 시기니 수산업이나 해양업, 증권 부동산에서 희망을 얻게 되는 운기가 된다. 이에 뱀띠 5월생과 소띠 7월생, 닭띠 8월생, 원숭이띠 9월생, 쥐띠 6월생, 용띠 10월생 등 여름에 태어난 띠들이 활기차게 운기가 발복되며 상당히 이로운 일들이 많이 생긴다. 해운업, 목재업, 제조업에 대길, 증권 복권도 대박이 난다. 특히 이 중에서도 뱀띠, 소띠, 닭띠, 원숭이띠, 쥐띠, 용띠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작은 일과 큰일을 성취해 크게 대박 나는 시기로 보여진다. 일각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설을 주장하는데 그런 일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주를 보면 앞으로의 대운이 5년으로, 임기를 무사히 잘 마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권도 큰 흔들림 없이 안정된 시기로 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과 여당에게 항상 참패한 야당의 불화는 올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으로서는 재적위원 과반수가 넘고 경제의 정치 모든 분야에서 발전 발복되며 다시 안정된 생활권으로 간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경찰총장 두 사람 다 작년에 좋은 운세가 아니었고 두 사람 모두 사주가 강해 대립전 등의 일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다 화합되지 않을까 싶다. 서울시장의 당권은 여당이냐 야당이냐 이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신축년은 천간이 금, 지지가 토가되기 때문에 양음과 적선 역학 음향오행으로 본다면 여당이 금으로, 흙속에서 금을 찾아 반석 위에 올리니 역학적으로 여당의 승리로 볼 수 있다. 예전부터 광화문집회는 계속돼왔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또다시 집회는 이루어지겠지만, 큰 사고는 없을 것이다. 이전에 해왔던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우리 한국과는 음양이 잘 맞을 것이다. 미국과의 협력관계는 트럼프 대통령 때보다 많은 도움으로 화합으로 가며 무역 경제 등 모든 것에 만사형통이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더욱 더 화합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협력관계, 경제 도약, 문화 등 모든 것에 큰 이익을 주게 된다. 특히 코로나19가 해결되면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올 연말에 이뤄지게 되며,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무난히 성사된다. 올해는 기독교, 불교 등 모든 종교계가 화합된다. 가면 갈수록 화합하는 운세를 보이고 있다. 소띠의 해인 신축년은 부지런한 해로 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종교계에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된다.

[기자수첩] 온갖 비난을 받아가며 신천지 기사를 쓰는 이유는…

신천지 보도를 하루에도 수십 건씩 접한다. 종교부에 몸을 담은 기자가 보기에 신천지는 흥미로운 종단이다. 무엇보다 기성교단이 욕을 해도 해마다 쑥쑥 크는 비결이 궁금했다. 모두가 신천지를 외면할 때 신천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취재한 결과 남들보다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팩트를 전하고 짚는다. 반면 하루 수십개씩 쏟아지는 신천지 관련 기사 중에는 팩트보단 신천지에 반감을 갖고 쓴 기사들이 적지 않다. 그런 감정적 기사들의 특징은 팩트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래도 영향력 있는 매체들의 기사는 팩트처럼 전달된다. 국민이 거짓말을 사실로 믿게 되니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신천지 관련해 사실을 보도했을 뿐인데 내용이 아닌 보도사실 만으로 신천지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신천지에 대해 이토록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었을까. 기자가 보기엔 신천지 탈퇴자들과 종교계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기성교회 권력자들이다. 요즘 언론에 주로 등장해 신천지에 대한 비방과 비난으로 폭격을 해대는 이들이다. 과연 이들의 말은 100% 객관적일까. 아니라면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물론 이들을 통해 쏟아지는 말 중 일부 팩트가 섞여 있다. 과거 신천지에서 생활을 해봤으니까. 그러나 그 팩트들은 신천지를 탈퇴하면서 절묘하게 그들의 감정 혹은 주장과 뒤섞인 것으로 보인다. 신천지에서 제명을 당했거나 탈퇴한 것을 합리화하기에 신천지는 좋은 대상이다. 신천지가 나쁘고 이상한 곳이라는 주장이 금방 수용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신천지 비방 보도에 등장한 신천지 탈퇴자들은, 현재 신천지 신도가 아니며 신천지 현 신도에 비하면 그 숫자도 극소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과 몇 사람의 주장이 신천지 현 조직 내 분위기를 전하는 일방적인 창구가 됐다는 건 아이러니다. 본체에서 떨어진 파편이나 부스러기를 그 본체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은가. 우리는 낙엽을 보고 나무라고, 부서져버린 의자조각을 의자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그 파편들이 본체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파편만을 보고 본체를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다. 24만 5000명이나 되는 신천지 신도 중 최소 몇 사람의 입장도 보도하지 않는다는 건 언론이 언론의 옷을 입고 국민의 귀와 눈을 가리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천지일보에서 일하면서 늘 강조받는 것이 중도다. 간단히 설명하면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는 것이 언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천지에 관해서도 남들이 욕을 해도, 기자의 양심으로 사실을 사실대로 전하는 것이다. 기자가 전달한 사실이 틀려서 욕을 먹는다면 할 말이 없거니와 사실을 사실대로 전해도 욕을 하는 언론과 기득권의 행태를 보면서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소명감은 오히려 솟구친다. 그래서 오늘도 난 펜을 든다. 신천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된 정보의 홍수에 빠져있는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말이다.

[기자수첩] 신천지 10만 수료식,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했을까?

지난 10일 종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그야말로 사건이다. 그간의 종교계를 뒤흔들만한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 기성교회가 그토록 배척하고 핍박하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예수교회, 총회장 이만희)이 시온기독교선교센터 110기 연합 수료식을 갖고 수료생 10만 3764명을 배출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10만명이라는 숫자는 최근 수년사이 주말마다 광화문 등 집회에서 수십만이 모여 시위를 벌이는 등 잇따른 대규모 집회로 별것 아닌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또 그간 종교계에서도 걸핏하면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면서 수십만에서 수백만이라고 교세를 자랑해 종교단체의 자체 집계 수치는 믿지못할 숫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신천지예수교회가 10만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고 말해도 이를 무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10만명은 질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10만 수료생의 대부분은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6~8개월에 달하는 성경공부 과정을 스스로 마쳤다.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다. 이 과정을 통해 성도들은 성경 66권을 꿰뚫게 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수료생이 될 수는 없었다. 수료를 하기 위해서는 도합 약 300문제에 달하는 시험을 쳐서 90점 이상을 맞아야 했다.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유급이다. 기성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신학대학에서 10만명이 일시에 졸업을 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본 기자는 10여년 사회‧종교계를 아우르며 사회현상도, 종교계 현상도 목격해왔고 여러 종교인들을 통해 그간의 종교계 역사도 들을 수 있었다. 종교‧철학자 들에게서는 흔히 신종교라고 분류되는 여러 종교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도 귀가 닳게 들었다. 그러면서 신천지예수교회도 이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치부하는 소리도 들었다. 신천지예수교회가 매년 2만명씩 성장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심하게는 얼마 되지 않아 자멸할 것이라고 하는 말도 나왔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측은 빗겨나갔다. 없어지기는커녕 폭발이라 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 성장은 사람이 뭔가 주도해서 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만큼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10만 수료식 취재에서 만난 한 목회자는 교계에서 알게 될까 두렵다며 익명을 요구하며 녹음‧보도를 하지 말아달라면서도 10개월만에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쳐서 수료를 한 사람이 10만 여명이라는 건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기성교단의 핍박에 신분을 밝히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만난 신천지예수교회 관계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10개월만에 전도‧추수해서 인쳐서 완전히 수료한 사람이 10만 3764명이고, 아직 센터에 남아 있는 사람도 10만명이 넘는다며 이게 어떻게 사람의 능력이라고 보겠는가. 하나님이 계 12장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냐고 강조했다. 반면 기성교회의 배척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신천지예수교회를 없애야 한다면서 개신교계를 대변하는 매체들을 통해 온갖 증오와 혐오, 비방을 쏟아내고 있다. 흡사 극우 집회에서의 빨갱이 처단 발언과도 같은 모습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반국가 반사회 반종교는 오히려 장로교의 역사와 현재 그들의 행위임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적 행위와 신사참배에, 10년 동안 1만 2000건에 달하는 목회자들의 유죄 판결, 강제개종을 하다가 살인까지 벌인 상황 말이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신앙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알려준다. 예수 제자들의 복음전파 행적이 기록된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온 유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후 겪은 핍박이 기록돼 있다. 이 중 특히 사도행전 5장 38~39절에는 기독교 신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주의해야 할 내용이 나온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를 증거했고, 유대인들은 분노해 죽이려고 모의를 한다. 이때 당시 유대인들이 존경하던 교법사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계한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을 상관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까 하노라라고 조언했다. 역사는 미래를 위한 현재의 거울과 경계다. 성경의 역사도 오늘날 종교계가 거울과 교훈과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 이를 통해 볼 때 신천지예수교회의 10만 수료식이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가 먼저 보여주는 셈이다. 이젠 기성교회가 기득권을 부릴 게 아니라 눈을 뜨고 분별을 해야 할 때까 아닐까.

[기자수첩] ‘신천지 말씀대성회’가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기성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 비난받는 신천지예수교회가 전국 각지에서 말씀대성회를 진행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7일 오후 6시 대전 유성구 ICC호텔에서 열린 말씀대성회를 직접 취재했다. 주최 측 집계 1만여명이 참석한 집회는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인천에 이어 세 번째 하는 행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구름 같은 인파였다. 행사 전부터 사람이 몰려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도 목격됐다. 이는 기자가 그간 기성교회 행사 현장을 취재할 때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일례로 지난 2017년 10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교단장회의가 주최한 교회개혁 500주년-한국교회연합예배에서는 공연 후 예배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교인들의 절반가량이 자리를 떠 주최 측이 곤욕을 치르는 일이 있었다. 이날 목회자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죄를 회개하고, 교회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식전공연 후 반 토막 나버린 참석자들로 인해 이들의 목소리는 대답 없는 메아리로 그치게 됐다. 이 때문에 교인 상당수가 예배 말씀이 아니라 공연 때문에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개신교 행사에서는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알바)까지 동원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달 알바 채용 사이트에는 기독교 기도회 집회 참석자를 구하는 아르바이트(알바) 공고가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공고에는 10월 1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시청역 앞 집회에 참석하면, 시간당 1만원씩 총 2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최 측은 기독교 비주류 종파로 알려져 있는 단체였다. 기자는 카카오톡을 통해 온누리컨설팅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담당자에게 문자를 남겼다. 지원서를 제출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담당자는 곧바로 기독교 기도 성회 참석자로 확정되어 공지합니다라는 장문의 안내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바로 비밀 유지였다. 행사장 및 주변 식당화장실에서 돈 받고 알바로 참석한 것을 비밀로 하고 말조심하라라고 했다. 이어 담당자는 추가로 ▲출석과 종료 후 얼굴 보이는 인증 사진 두 장과 계좌번호 보낼 것 ▲핸드폰 사용 자제할 것 ▲행사예배기도에 협조할 것 ▲종료 전까지 행사 장소 이탈하지 말 것 등을 요청했다. 기도회 당일, 주최 측에 따르면 1만 5000~1만 7000명이 참석했다. 이 중 알바생들이 몇 명이나 동원됐는지 확인은 어려웠지만, 동원 여부는 행사 참여 태도로 구별할 수 있었다. 알바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사복을 입었으며, 교인들은 주최 측이 나눠 준 흰색 티셔츠를 입었다. 또 알바를 목적으로 온 이들은 행사에 호응하지 않았으며, 몇몇 사람들은 행사 도중 대놓고 햄버거를 먹거나 심지어 칼을 꺼내 사과를 깎는 사람들도 보였다.반면 교인들은 손뼉을 치거나 기도할 때 소리를 지르며 방언했다. 알바를 동원해 행사를 치렀지만 용돈 벌이를 위해 온 참석자들은 행사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반면 신천지 말씀대성회에 참석한 참석자들은 특강을 들으려는 의지를 갖고 온 이유 때문일까. 강연에 상당한 집중도를 보였다. 소위 이단 소리를 듣지만 한국 종교계 최대 이슈로 등극한 신천지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방증하는 듯했다. 말씀대성회에서 만난 참석자들은 요한계시록을 막힘없이 연결시켜서 증거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신천지가 이단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직접 와서 말씀을 듣고 판단을 해야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왔다 신천지 총회장님은 이 시대에 나타난 사자다 등 자신이 말씀대성회에서 듣고 느낀 점을 가감없이 말했다. 특히 한 목회자는 일반 제도권의 목회자들이 신천지라 하면 이단이라고 말도 못 내놓게 한다며 근데 와서 보니까 그거 아니다. 이단이 아니다. 성경대로 해석하고 말씀하고 이렇게 하는데 절대 몰라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성교회 목회자, 신학생 등이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의 강연에 큰 공감을 보이며 후속교육을 신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부분에서 한국교회는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이 신천지를 찾는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신천지교회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의 수료생은 신천지를 선택한 이유로 탁월한 말씀, 이치적인 말씀을 꼽았다. 말씀을 알고 싶어하고, 제대로 된 신앙을 하고 싶어 하는 신앙인들의 갈증을 이단 소리를 듣는 신천지가 해소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날로 줄어드는 교세, 지금도 끊이지 않는 목회자들의 범죄율 등으로 이른바 가나안(안나가) 성도가 늘어나고 있는 이때 기독교계는 신천지예수교회를 경계하는 일에 급급할것이 아니라, 먼저는 자신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는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때를 제대로 분변해야 하지 않을까.

[탈동성애 수기③] (요셉-5) “‘말씀 배워가면 동성애 이길 힘 주시겠구나’ 확신”

그래서 교회를 다시 나간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나에게 동성애 속성이 없냐고요? 아니요. 있어요. 여전히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분명히 제가 믿고 확신하는 것은 이것이 점점 나와 상관이 없다는 믿음이 생기고 내가 정말 주님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더 말씀을 배우고 더 주님을 알아가면 주님이 더 나에게 그 동성애의 속성을 이길 힘을 주시겠구나. 처음 교회로 돌아왔을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어요. 과연 내가 평생을 이렇게 참고 살 수 있을까? 그냥 포기하고 다시 동성애 생활을 할까? 그런데 그때마다 주님이 위로해주시고 책망해주시고 돌이킬 수 있는 힘을 주셨어요. 넘어질 때마다 너무 속상 위로해주시는 말씀을 구에요. 죽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주님이 그 힘을 주실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아세요? 그 천국의 기쁨이 얼마나 달콤한 지 나의 그 포기하지 못할 거 같았던 육신의 쾌락을 왜 그렇게 쫓았나 싶을 때가 많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할 때가 많아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나요? 저는 그것을 이해하는 게 제일 힘든 시간들이었어요. 그런데 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냥 오늘 이 순간 주님이 나를 알고, 내가 주님을 알고, 그분을 찬양하고 말씀을 읽을 수 있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미워한다 하더라도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면, 무서울 것이 없고, 슬플 이유가 없어요. 가족 때문에, 친구 때문에, 심지어 교회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하나님을 떠나 버린 분 계세요? 내가 동성애자라는 거 때문에 하나님 떠난 분들 계시죠? 우리 주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세요. 내가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냥 존재가 죄인이었어요. 죄인이기 때문에 다양한 모양의 죄를 지은 거예요. 다른 사람, 나의 어떠함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분이 요구하는 것은 딱 하나거는요. 회개하라, 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제까지 어떤 잘못을 했건 상관없어요. 그냥 그분을 신뢰하고 주님께 나아오세요. 그분이 싫어하는 거 그냥 버리면 돼요. 왜요? 그분을 사랑하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분이 그게 싫다면 그걸 그냥 포기하면 돼요. 자꾸 넘어지고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기 두렵고, 그때마다 회개하세요. 다시 이런 죄에 넘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그럼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우리 주님이 일곱 번에 일흔 번을 용서해주라고 하신 분이에요. 그분은 용서하시기 원하세요. 그분은 오래 참으세요. 영원히 참으시진 않지만 정말 오래 참으세요. 이제 예수님과 함께 살아보실래요? 그러면 새로운 날들이 시작될 거예요. (요셉편 끝)

[김덕권의 덕화만발] 궁즉통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궁하면 통한다’는 괘(掛)입니다. 어떤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지요. 원문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헤쳐 나갈 방법이 생기고, 죽어라 하고 어려운 일이 겹쳐오더라도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나 궁극에 도달하면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주역’은 어려운 변화가 생기면 통하는 길이 생기고, 통하면 오래오래 계속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만사는 변화하고 유전하고 반복하고 순환하는 것이 ‘역(易)’의 이치입니다.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하늘과 땅이 서로 교제하기 때문이다’고 ‘주역’에서는 말합니다. 세상일은 한번 성(盛)하면 쇠(衰)하고, 넘어지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이치가 이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오죽할까요?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6일 만에 끝났습니다. 프랑스의 드골정부는 6일 전쟁 이후 바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행기 수출을 금지해버렸습니다. 프랑스로부터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이스라엘의 방위산업과 항공우주 산업이 단번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이지요.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미라지 전투기와 미사일 같은 무기를 구입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스라엘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 위기가 창조적 연구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이 된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결과적으로 항공 산업이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하여 독립적인 생산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프랑스의 금수조치 덕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가혹한 환경이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발전 성숙 시켰다는 ‘도전과 응전의 법칙’을 주장했습니다. 토인비는 외부의 도전 없이 스스로 멸망한 문명으로 고대 ‘마야문명’을 들고 있습니다. 찬란한 태평성대의 문명을 이루었지만, 외부의 적이 없어 평소 편하게 살았던 이들에게 들이닥친 갑작스런 시련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지요. 일본이 수출 금지령의 강도를 높이며 백색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 의존하여 소재 및 부품을 조달하던 한국 업체들은 당장 공급선이 끊겨 여러 가지 문제가 불가피하여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골든 링크(Golden Link)’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사슬에는 가장 값 비싸면서도 가장 약한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골든 링크’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당분간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기술의 사슬’을 강하게 만드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를 경제 강국으로 가는 길을 더욱 넓혀 줄 자극제로 삼는 계기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수십 년간 반도체, 화학, 기계 등의 산업 정밀 부분에서 일본에 의존했던 소재와 부품들을 이제 완전 국산화할 때가 온 것입니다. 궁하면 통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부품 소재가 없으면 개발하고 발전시지 않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익숙한 방식에 길들여진 사람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는 창조적일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비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기업이나 정부는 돈이 많이 들고 국내수요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자체 기술개발 대신 일본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제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어떤 기업들은 ‘한국인은 쉽게 끓는 냄비와 같아서 얼마 안가 식어버리는 근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말을 듣고 열불이 나지 않을 국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고, 경제성장의 결정적 순간을 위해 일본의 우산을 던져 버릴 때가 아닌가요? 일본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결코 우방이 아니지요. 그래서 더욱 기술입국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초과학과 각종 기계부품소재산업의 기술력을 키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독자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는 아낌없는 자금 지원과 세제(稅制)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얼마 전 어린이 집에 다니는 손자 녀석이 “탄성(彈性)이 뭔지 아세요?” 하고 물어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 “꽉 누르면 튀어 오르는 성질이에요.” 그러면서 입고 있던 바지의 고무줄을 잡아당기더니 확 놓아버리면서 “이게 탄성이에요!”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회복 탄력성이 강한 민족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정말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잘못 건드린 것’입니다.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옵니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고, 밤이 지나면 반드시 낮이 오는 법입니다. 지금 나라의 형편이 썰물 같이 황량하다 해도 낙심하고 함부로 나라를 비판하면 안 됩니다. 얼마 전 어떤 여인과 목사, 한 교수가 “일본 아베 수상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뿌리 깊은 친일파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베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은 그만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서 살면 좋겠습니다. 건전한 충고와 훌륭한 의견이 있으면 그것을 제시하고 우리는 똘똘 뭉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힘과 용기와 투지가 솟아올라 이 위기를 극복하고 반드시 밀물이 찰 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급거 일본을 다녀온 후에 사장단회의에서 “긴장은 하되 두려워 말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세로 나아가면 어찌 일본의 아베쯤이야 ‘한 주먹 거리’도 안 될 것입니다. 벌써 일본에서도 ‘한국을 잘못 건드렸다’고 하는 말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궁즉통’입니다. 무슨 일이나 방심하면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 정신 바짝 차리고 이 위기를 극복하면 어떨 까요!

[탈동성애 수기③] (요셉-4) “‘예수님 따르려면 나를 부인하자’ 생각했어요”

그리고 계속 기도를 하는데 내가 죄인인 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정말 죄인이구나. 동성애자로써 음란하게 산 것도 죄고, 아빠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것도 죄고, 거짓말‧시기, 너무 너무 많은 것들이 다 죄구나.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죄라고 느껴진 것이 바로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한 것이 죄라는 것이 깨달아졌어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구나.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구나. 그리고 그렇게 회개라는 것을 하게 되었어요. 그게 회개인 줄도 몰랐어요. 그냥 뭔가 내가 변했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정말 무언가 변했어요. 너무 기쁘고 누군가 함께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성경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성경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읽고는 성경을 닫아버렸거든요. 그리고 이야기했던 것이 하나님, 좀 말이 되게 써 놓으셨어야죠. 내가 원숭이에서 사람이 된 것을 아는데 무슨 창조에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성경의 말씀이 믿어졌어요. 하나님이 정말 세상을 창조하셨구나, 예수님이 정말 날 위해 죽으셨구나. 예수님이 정말 다시 오실 거구나. 매일 성경을 보고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온 가족이 교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그게 2012년 1월 1일 이에요. 그 주일은 제가 잊을 수가 없어요.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그 해부터 너무 많은 기도를 들어주시고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시고, 너무 많은 말씀들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처음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라는 구절을 읽고 너무 기뻤어요. 아! 내가 스스로 고자가 되어버리자! 천국을 갈 수 있다는데, 동성애 버려버리자! 나는 이게 나의 존재요. 삶이기 때문에 버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주님이 버리면 된대요. 그리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시는데, 그래, 예수님 따르려면 나를 부인하자!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다음호에 이어서)

[탈동성애 수기③] (요셉-3) “죽여달라 기도했는데… 아, 내가 살고 싶었구나”

그런데 또 들려왔어요. 제주도로 와라. 목사님이 하신 이야기인가 싶어서 목사님을 쳐다봤지만 목사님은 그냥 설교를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무시했어요. 그런데 또 들렸어요. 제주도로 와라. 이번에는 내가 미친 건가?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삼촌 중에 정신병이 있는 분이 계셨거든요. 그래서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이상한 경험을 무시하고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에서 이상한 오해와 여러 가지 부합적인 사정으로 제가 그만두게 되었어요. 원하지 않게 오해를 받게 되고 너무 억울해서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몇 날 전에 들은 제주도라는 소리가 생각이 나서 혹시 제주도로 내려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아빠에게 앞으로 나는 제주도를 오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다시 제주도로 내려간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다시 그 힘든 가정에 있을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했어요. 그래도 6일만에 제주도로 내려왔어요. 그래야 될 거 같았거든요. 역시나 변한 건 없었어요. 아빠는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했고, 새엄마는 우울증으로 매일 방에만 있었어요. 나는 여전히 동성애자로 매일 음란한 영상을 보면서 살았고요. 머릿속에는 어차피 지옥 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소망 없는 삶이었어요. 하루는 너무 지치니까 방에 늘어와서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죽여달라고 기도를 가끔 했지만 간절하게 무릎 꿇고 죽여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내 방에 들어와서 무릎을 꿇었어요. 기도를 시작하는데, 내 평생에 저는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잘 안 해봤어요. 부모님한테도 할 수 없었고 하나님도 나를 도와주실 수 없는 분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날 무슨 정신인지 하나님 나 좀 도와주세요. 나 좀 살려주세요라고 내가 기도를 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기도는 나를 죽여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게 내 진심이 아니었나 봐요. 내가 내 기도를 듣는데 누가 죽고 싶겠어요,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 내가 살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호에 이어서)

[김덕권의 덕화만발] 급난지붕

김덕권 회장. ⓒ천지일보 2019.7.14 명심보감(明心寶鑑) 제19장 교우편(交友篇)에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급(急)하고 어려울(難)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朋)라는 뜻이지요. 우리 덕화만발 가족 여러분께서는 어디서 벗을 구하시는지요? 저도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친구와 사람들을 사귀어 왔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 많은 사람들도 귀하지만, 덕화만발 가족처럼 소중한 분들은 따로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덕화만발 가족들은 서로 바라는 바가 없고, 생각과 사상이 같으며, 함께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향(指向)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벗의 사귐에 관해 맹자(孟子)의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사귀는 것이다(友也者, 友其德也). 증자(曾子)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자는 글을 통해서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서 어 짐(仁)을 이루는데 도움을 받는다(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그리고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르기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동행하면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을 흠뻑 적시지는 않더라도 때때로 축축함이 있노라. 그러나 무식한 사람과 동행하면 마치 뒷간에 앉은 것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히지 않더라도 때때로 그 냄새를 맡느니라고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평중(晏平仲: ?~BC 500)은 사람과 사귀기를 잘하였으니, 오래되어도 그 벗을 공경하였노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되, 마음 알아주기를 능히 하는 자는 몇이나 되겠는가? 술 마시고 먹고 놀 때,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사이는 천 개가 있으나, 위급하고 어려운 때 도와주는 벗은 하나도 없구나(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으려 하지 말고, 의리 없는 벗은 사귀어서는 안 되느니라(不結子花休要種, 無義之朋不可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시간이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어떻습니까? 정말 옳은 말씀이 아닌가요? 그런데 요즘 현실이 너무나 각박(刻薄)합니다. 그러하기에 이 성현의 말씀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을 때는 후하게 선심 쓰고, 좋은 말을 하며, 간이라도 빼줄 것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그렇게 잘 하던 사람이 막상 우리가 큰 시련을 맞았을 때, 외면한다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까요? 어떤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1년 공백기동안 진실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확실히 재정리가 되는 정말 값진 1년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의 친구들이 주식형제(酒食兄弟)인지,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또한 나도 그들에게 진정한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도반(道伴)과 동지(同志)의 잘못은 밀물에 지워지라고 모래 위에 적는 것입니다. 또한 도반, 동지의 고마움은 비바람에 견디면서 영원히 기억하라고 바위 위에 새깁니다. 또 친구의 눈물은 힘들면 비가 내릴 때 같이 울어주라고 구름에 올려놓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섭섭한 일도 생기고, 고마운 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럼 이와 같이 우리의 만남이 영원히 이어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대개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는 연고이니,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며, 그에 따라 혹 은혜 준 처지에서 나에게 섭섭함을 줄 때에는 의리 없이 상대하는 것 등이요,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준 후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며, 저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나에게 잘못할 때에는 전일에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더 미워하는 마음을 일어내는 것이라, 그러므로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고 도리어 원진(怨瞋)으로 변하여지는 것이니, 그대들은 이 이치를 잘 알아서 유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유념하고 무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무념하여, 서로 사귀는 사이에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게 할지언정 그 인연이 낮은 인연으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할지어다. 이렇게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유념, 무념에 달려있다는 소태산 부처님의 말씀에 공감하시는지요? 제 인생을 돌아보아도 좋은 인연에서 유념할 때 그 사귐이 오래 가고, 무념할 때 오래 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한 번 뒤돌아봅시다. 우리가 인연에 있어서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까? 남에게 은혜를 입고 잊어버렸던 점이나, 은혜 준 처지에서 나에게 섭섭함을 줄 때는 의리 없이 상대한 적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인간관계에 다시는 실패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에서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요? 우리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준 후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며, 저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나에게 잘못할 때에는 전일에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더 미워하는 마음을 일어낸 적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또다시 인간관계에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남에게 은혜를 베푼 후에는 잊어버리고, 반대로 남에게 은혜를 입은 다음에는 꼭 은혜를 갚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면 우리의 인연에 이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우리는 그리 하려 해도 세상이 가만 두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그 얼마나 배신과 불신에 몸을 떨어야 할 일이 그 얼마이었든가요? 그러므로 저는 우리 덕화만발의 도반 동지들만이 진정한 의미의 급난지붕으로 그 신의가 천년만년 영생토록 이어질 것이라 생각해 보네요!

[김덕권의 덕화만발] 도모지에 얽힌 슬픈 사연

김덕권 회장. ⓒ천지일보 2019.7.14 순교(殉敎) 무엇일까요? 순교는 어느 종교에서 자신이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하며, 순교한 사람을 순교자(殉敎者)라 부릅니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나 그 종교의 교인에 의해서 성인(聖人)이라고 불리면서 존경받기도 하지요. 천도교에서는 순도(殉道)라고 말합니다. 예수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구약의 선지자들, 예수의 12제자들, 그 외 사도(司徒)들을 순교자라고 합니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불교 순교자인 이차돈(異次頓),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 천도교 탄압으로 순교한 천도교 신자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에 항거하여 순교한 개신교 신자들이 순교자에 해당합니다. 조선 말기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1898)은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문을 틀어막고 안으로는 동학과 천주교를 탄압하고 박해하여 엄청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는 천주교 선교사 12명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당시 천주교인 8000명과 그를 돕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최소 2만명에서 최대 12만명까지 처형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황현(黃玹: 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보면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처형할 때, 마을 장정들로 하여금 마을 마당 한복판에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범인을 묶어 꼼짝을 못하게끔 한다. 그러고서 물에 적신 창호지를 범인의 얼굴에 붙인다. 한 겹 두 겹 붙여나가면 숨을 쉬기가 차츰 차츰 어려워진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죽어가게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 얼굴에 붙이는 종이를 도모지(塗貌紙)라 했습니다. 천주교도들은 아무리 도모지를 얼굴에 붙여도 한 사람도 배교(背敎)를 한다거나 다른 천주교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입도 열지 않았다 합니다. 아무리 해보아도 안 된다라는 뜻의 도무지 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인데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단어가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실제 삶에서 조금만 힘들어도 도무지 안 된다는 말을 쉽게 사용합니다. 도무지라는 말이 순교를 각오한 결의에서 나온 말인 것을 알고 나면 그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목숨을 걸고 해도 안 되는 일이라면 도무지가 맞지만, 그 외에 조금 힘든 일을 가지고 도무지라고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특별히 크리스천들은 마귀(魔鬼)들이 나를 향해 공격할 때 도무지 안 넘어간다며 포기하고 달아나는 역사(役事)가 일어나야 할 것이 아닌지요? 그러니 도무지라는 말은 내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 아니라 마귀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지요.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천주교 박해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병인박해는 정치‧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서양 세력에 대한 대항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박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된 러시아가 자주 두만강을 건너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선의 불안감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일부 천주교도들이 흥선 대원군에게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며, 조선에 와 있는 프랑스 주교 베르뇌와의 면담을 건의하였습니다. 이들은 조약이 맺어지면 포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청(淸)나라에서 천주교를 탄압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국내에서도 천주교를 금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자,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 탄압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병인양요(丙寅洋擾)가 발생하자 탄압이 더욱 강화되었고, 서양 세력과 내통하였다는 혐의로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처형되었든 것이지요. 그럼 원불교의 순교관(殉敎觀)은 무엇일까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대각(大覺)을 이루신 후, 표준제자 9인과 함께 창생(蒼生)을 구원할 서원을 세우시고,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결의로 마지막 기도를 올린 결과 백지에 혈인(血印)이 나타났습니다. 소태산 부처님이 이를 보시고 기도의 정성에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감응한 증거라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니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는 법문을 내리신 것을 법인성사(法認聖事)라고 하고, 이날 8월 21일을 법인절(法認節)이라고 부르며, 원불교 4대경절(四大慶節)의 하나로 모십니다. 소태산 부처님께서는 이 법인성사를 마치시고 구인선진들에게 이런 순교관을 내리셨습니다.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 세계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千辛萬苦)와 함지사지(陷地死地)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라. 그리고 가정 애착과 오욕(五欲)의 경계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 일만 생각한다면 거기에 끌리지 아니 할 것인 즉, 그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 그러면서 법호(法號)와 법명(法名)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전날의 이름은 곧 세속의 이름이요 개인의 사사 이름이었던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죽었다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원불교의 순교관은 사무여한(死無餘限)의 정신입니다. 원불교에 있어 순교의 정신은 다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고, 다시 거듭나서 그 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거듭나야 합니다. 진리의 본질을 향해서 끊임없이 깨어나고, 끊임없이 거듭나야 하는 것이지요. 지난 20세기에 우리 인류는 2억만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나치의 히틀러가 유태인, 장애인, 동성애자, 정치범들을 1천 1백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이 2천만명을, 캄보디아의 폴포트는 인구 800만명 가운데 250만명을 죽였습니다. 집단 광분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기를 만들고 무수한 사람들을 살생했습니다. 적어도 종교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데, 역시 종교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屠戮)했습니다. 이제는 도모지에 얽힌 슬픈 사연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원불교는 이 모든 일을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할 뿐, 결코 실제 순교의 길은 가지 않는 유일한 종교가 아닐 런지요!

[탈동성애 수기③] (요셉-2) “교회 떠나고 허랑방탕한 시간을 보냈어요”

누구도 나를 지옥 간다고 정죄하지 않았고, 교회의 그 누구도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그냥 제가 떠났어요. 어차피 천국을 못 간다고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허랑방탕한 시간을 보냈어요. 교회를 다닐 때는, 그때도 죄를 지었지만 동성애자로 살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때부터는 동성애자도 만나고 그랬어요. 교회를 떠나니 내가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술도 진탕 마셔보고, 게이 클럽이라는 곳도 처음으로 가보고, 찜방이라는 곳도 가보고, 군인 휴가 때 게이 친구들이 저 즐겁게 해준다고 클럽도 데려가서 보여주고 찜방도 보여줬어요. 충격적이면서 쾌락적이었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러다가 결국 나는 지옥으로 가는구나 였어요. 무엇을 해도 완전하게 즐겁지 않았고 무엇을 해도 슬픔이 가득했어요. 나는 지옥을 가기 위해 태어났구나 저의 동성애자 친구들과, 우리는 너무 친해서 가족처럼 지냈어요. 그래서 제가 항상 인생 참 허무하다. 우리도 평범한 남자로서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도 하면 행복하지 않았을까?라고 신세 한탄을 하면 친구들은 동성애자로 태어난 걸 어떻게 하냐? 그냥 즐겨 그들은 저의 투정을 귀찮아했어요. 다들 그 생활을 접고 싶었지만 우리는 원래 그런 존재라고 믿었거든요. 군대를 전역하고 아빠에게 작별을 고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일하는 회사가 기독교 회사였어요. 저는 교회를 떠나기는 했지만 교회가 싫지는 않았어요. 내가 천국을 못 갈 뿐이지 교회가 잘못하는 건 없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회사는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하면 예배를 드리는 게 벌이었어요. 제가 하루는 지각을 해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는 거부감이 없었어요. 목사님의 지루한 설교는 시작되었고 저는 그냥 익숙한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중에 그렇게 사랑하신다면서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으면서 내 인생이 이 모양이에요?라는 불평이 나왔어요. 내 삶이 하나도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 마음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어요. 제주도로 와라. 그 소리는 너무 간결하고 단순했어요. 나는 처음에 누가 나한테 잘못 이야기 한 것인가 생각이 들어서 주위를 살폈지만 다들 자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소리를 무시했어요. (다음호에 이어서)

[김덕권의 덕화만발] 계향(戒香)

김덕권 회장. ⓒ천지일보 2019.7.22 지난 16일,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정두언 전 의원의 타계 소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습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생전 마지막 방송에서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 한일 관계의 바람직한 지향점을 짚고 떠났습니다. 그야말로 보수의 품격을 남김 없이 보여준 정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한미 FTA 당시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망했나? 미국이 재개정을 하자고 했다. 지나가면서 반성하는 기회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치를 향한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치가 차분하게 논의돼야 하는데 무조건 반대하다 보면 나쁜 일이 생긴다며 한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수‧진보 서로 비판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참으로 우리 사회는 오만(傲慢)과 편견(偏見) 지나치게 팽배하는 것 같습니다. 오만은 방자하고 잘난 체하여 건방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를 말하지요. 이런 오만과 편견이 우리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항상 투덜거리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보기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배움이 부족하고 무례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계속되자 급기야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눈빛마저 불쾌하고 기분 나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청년이 길에서 마을에 유명한 철학자를 만났습니다. 이 철학자는 평소 인품과 학식이 높아서 청년이 유일하게 불만을 품지 않고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청년은 여느 때처럼 철학자에게 다가가 마을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비열하고 천박한 사람이 싫습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추레한 심성을 가진 사람은 숨기려 해도 겉으로 다 드러나는 법이지요. 저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천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년은 구체적인 험담의 대상을 찾아 주변을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한 젊은이의 모습이 보였고, 그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저 한심하게 보이는 사람을 보세요. 삐딱하게 서 있는 모습이 얼마나 예의가 없습니까? 지저분한 옷차림만 봐도 남을 위한 배려 심은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을에 이런 사람들뿐이니 제가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하겠습니까? 그러자 철학자가 청년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기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거울이이라네. 저 사람은 바로 거울에 비친 자네라네. 어떻습니까? 미움이 가득한 눈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미움으로만 보이는 법입니다. 그 미움이 다른 것들을 보는 시선을 감추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고집이 가득 찬 편견은 눈가리개 보다 더 사람의 눈을 캄캄하게 가려버립니다. 편견과 미움으로 눈을 가려 버리면, 편견과 미움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 38장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난다가 찾아와 향기에 대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저는 혼자 숲에서 명상을 하다가 문득 이런 것을 생각했습니다. 모든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냄새를 풍기지 못합니다. 뿌리에서 나는 향기나, 줄기에서 나는 향기나, 꽃에서 나는 향기는 다만 바람을 따라서 냄새를 풍길 뿐입니다. 그렇다면 혹 바람을 따라서도 풍기고 바람을 거슬러서도 풍기고, 바람이 불거나 불지 않거나 바람에 상관없이 풍기는 향기는 없을까요? 아난다야, 네 말대로 뿌리의 향기나 줄기의 향기나 꽃의 향기는 바람을 따라 향기를 풍기지만, 바람을 거슬러서는 향기를 풍기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서도 풍긴다. 그것은 이런 향기다. 어느 마을에 착한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그들은 진실한 법을 성취하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며,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으며, 술 마시고 실수를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보면 누구든지 어느 곳에 사는 아무개는 계율이 청정하고 진실한 법을 성취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다. 이 향기는 바람을 따라서도 풍기고 거슬러서도 풍기며, 바람이 불거나 불지 않거나 관계없이 풍기는 것이다. 대산(大山) 종사님은 수도인의 몸과 마음에서 향기가 풍겨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계율이 청정한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를 대산종사는 계향(戒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도 아난존자와 부처님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세존이시여! 계(戒)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난아, 계를 지키게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후회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니라. 만일 계를 잘 지키면 후회할 일이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후회함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아난아, 후회함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일이니라.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해, 계문을 지키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계문은 개인에 있어서는 악행을 끊고 선행을 하여 세세생생 고를 여의고 낙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에 있어서는 무질서의 근원을 없애 평화의 사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계문을 지키는 것은 내면의 힘이 결여된 소극적 자유에서 내 마음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인과의 법칙에 어긋나지도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며, 주변에 은혜가 생산되는 적극적 자유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계문은 하지 말라고 하며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못하게 함으로써 내면의 힘을 키우는 일입니다. 정두언 전 의원도 생전에 보수의 향기를 내 뿜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을 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정 전 의원의 완전한 해탈 천도를 축원하며, 계율을 잘 지켜 계향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요!

[탈동성애 수기③] (요셉-1) “빨리 천국가려고 죽여달라 기도했어요”

어려서부터, 내 의식이 있는 나이부터 남자의 육체를 탐했어요.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애써 부인해봤지만 나는 늘 남자의 육체를 탐했어요. 저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교회를 갔어요. 그때 온 가족이 함께 갔는데 이유는 앞으로 잘 살자는 마음으로 갔대요. 근데 그 이후로 저랑 누나만 교회를 다니다가 나중에는 저만 교회를 다녔어요. 저는 그때 성경도 몰랐고 그냥 예수님 믿으면 천국을 간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저의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냥 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너무 행복했어요. 아, 예수님 믿으면 천국을 갈 수 있겠구나. 그 소망이 나의 교회에 가는 이유였어요.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많이 힘들었나 봐요. 자살을 시도했어요. 그때 내 생각에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을 간다고 하니까 빨리 죽어서 천국으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쉽게 죽지 않아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고, 그러면 죽여달라고 하자고 생각을 바꾸고 그때부터 죽여달라는 기도를 시작했어요. 매일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죽여달라고 기도했어요. 아니면 우리 아빠가 교회를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면 살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6년 정도 기도했는데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런 이유들이 내가 교회를 포기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어요. 나는 천국을 가니까요. 20살 어느 날,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죄에 대해서 듣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죄가 어떤 것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거짓 말도 있었고, 술 취하는 것도 있었고, 자위하는 것도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우스운 점은 그런 것들을 저는 죄라고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 정도는 사람이 다 하는 건데 말도 안 된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동성애가 죄라고 나오는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동성애가 왜 죄야?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그 순간 드는 생각은 나는 죄인이구나. 그러면 나는 지옥으로 가야 되는구나 그리고 나는 교회를 떠났어요. 어차피 나는 천국을 못 갈 사람이라는 결론이 난 거예요. 죄인은 천국을 갈 수 없다. 방법이 없어 보였고 6살때부터 느낀 이 동성애라는 감정을 나는 부인할 수 없었어요. 그게 내 존재였거든요. (다음호에 이어서)

[탈동성애 수기②] (명훈) “동성애, 주님이 함께하시면 승리”

어린 시절 제게 남성이란 존재는 왠지 모르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저는 여성이 지닌 특유의 부드러움과 상냥함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남자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모순덩어리입니다. 중학생 시절 저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해요. 저는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워요. 저는 절대 동성애자로 살지 않을 거예요. 수없이 기도하고 회개했지만, 무언가에 흘린 것처럼 그것이 더럽다고 느끼면서도 음란물을 끊을 수 없었던 청소년 시절의 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님 앞에, 그리고 미래의 나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절대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으로 남자를 짝사랑하던 20대 초반의 나는 위선자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해결할 수 없어 참 많이 울었고 우울해하며 무기력했습니다. 나에겐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만, 남들에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들이 부러웠습니다. 이 세상에 나만 비정상적인 사람인 것 같아 외롭고 두려웠습니다. 내 인생은 저주받았다고, 수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내가 이렇게 됐을까 하며 누군가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듯 슬프고 비참할 때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한 고통과 수치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합니다. 나의 슬픔과 수치가 어쩌면 기쁨과 소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저에게 죽도록 뿌리 뽑고 싶은 동성애라는 쓴 뿌리가 없었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세상에서의 성공과 즐거움만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쓴 뿌리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알아가고 있는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나의 존재는 너무도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하실 때 분명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 순간 저는 주님 앞에 또 다짐합니다. 어쩌면 세상 끝날까지 이 싸움이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끝까지 싸워 이길 것이라고. 이것은 제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의지와 뜻이 있을 때 나의 하나님이 기꺼이 도우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여기 이곳에 나와 같은 싸움을 하는 많은 청년이 있습니다. 당신도 이 기쁨의 여정, 가장 좋은 길로 함께 걸어가지 않을래요? 나는 이제 어디선가 혼자 힘들어하고 있을 형제들을 도울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 제공: 홀리라이프 -

[김덕권의 덕화만발] 잘나도 나, 못나도 나

김덕권 회장. ⓒ천지일보 2019.7.14 잘나도 나, 못나도 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안의 그 어떤 모습을 사랑할 것인가요? 우리가 사랑해야 할 나의 모습은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되고 싶은 미래의 나까지 포함해 모두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음을 주장했지요. 융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의 정신영역을 집단무의식이라 칭하며 이 개념을 원형이론과 결합시킴으로써 종교심리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융의 이론 중에 페르소나(Persona)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통상적으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융은 자신의 한 단면인 페르소나를 자아(自我)와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원형의 자아인 있는 그대로의 나(I am)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평생 물어온 질문이고,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질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4월 15일에,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페르소나를 발표해 또다시 빌보드 메인차트 1위에 등극했다고 합니다. 이 나는 누구인가?가 방탄소년단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신곡 페르소나의 첫 소절에 거침없는 랩을 쏟아냅니다. 이 곡 페르소나는 카를 융의 이론 영혼의 지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곡을 들어보니 하도 랩의 속도가 빨라 저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2018년 9월 24일 유엔총회 무대에서 연설에 나섰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리더 RM은 사람들이 BTS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실수하고 단점이 있지만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며,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그건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7분간 이어진 진솔한 연설에 참석자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지요. 그림자가 없는 불빛은 없습니다. 불빛만을 나의 참모습이라고 사랑한다면, 나의 다른 모습인 그림자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산(鼎山) 종사께서는 법어(法語) 근실편(勤實編)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려한 제 뿔만을 사랑하고 잘못 생긴 제 다리는 미워하던 사슴이 포수에게 쫓기어 숲속을 헤쳐 나올 때, 저를 살려 준 것은 잘못 생겼으되 잘 뛰어준 다리였고, 저를 죽일 번하게 한 것은 화려하되 숲에 거리끼기만 하던 뿔이었다. 잘 나도 나고, 못나도 나임을 지적하신 말씀이 아닌가요? 이 세상에 완전한 영혼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불완전한 영혼도 사랑함으로서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포용적인 것이 바로 일원상의 진리입니다. 일원(一圓)은 우주 만유의 본원(本源)입니다. 그리고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本性)입니다. 또한 대소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生滅去來)에 변함이 없는 자리입니다. 또 선악업보(善惡業報)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이지요. 그리고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고,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十方三界)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일원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조화(造化)가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많은 진리를 하나로 표현한 것이 곧 일원상(一圓相)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원은 이름 없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일원상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원은 바로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으로 유무를 총섭(總攝)하고 삼세를 관통하는 것이지요. 또한 일원은 곧 진리의 당체(當體)이며, 일원상은 진리의 펼쳐진 모습(相)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 속성을 한 번 살펴 봅니다. 첫째, 일원은 변(變)‧불변(不變)을 표현합니다. 일원의 진리는 변하는 자리에서 보면 계속 변합니다. 그러나 불변의 자리에서 보면 항존(恒存) 불변인 것입니다. 둘째, 일원은 공(空)‧원(圓)‧정(正)입니다. 공이란 무념 행(無念行)이고, 원이란 무착 행(無着行)이며, 정은 중도 행(中道行)으로서 실천하는 행위표준을 말합니다. 셋째, 일원은 도(道)와 덕(德)입니다. 도란 떳떳이 행할 수 있는 길이며, 덕은 도를 행하고 나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합니다. 넷째, 일원은 이(理)와 사(事)입니다. 이는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를 이름이요, 사는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와 사는 우주와 인간 전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일원은 동(動)과 정(靜)을 나타냅니다. 이는 진리의 근본모습입니다. 움직이는 측면에서 보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나, 정의 측면에서 보면 여여자연(如如自然)하여 고정불변한 것이지요. 잘나도 나, 못나도 나입니다. 이렇게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우리 잠시 힘들고, 조금 못났다고 실망하면 안 됩니다. 힘들면 좋은 날도 올 것이고, 못나면 잘난 모습도 보일 날이 있지 않겠는지요!

[김덕권의 덕화만발] 최고의 고난

원불교문인협회 김덕권 회장.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아플수록 마음을 더욱 강하게 다져야 합니다. 그것이 위기에서 자기 몸을 건져냅니다. 그런데 어디 아픔이 한 두 가지일까요? 암(癌)에 걸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도 있고, 생활고로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악의 고난 속에서도 위대한 역사적 작품은 탄생합니다. 주문왕(周文王: BC 1152~BC 1056)은 은(殷)나라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주역(周易)을 만들었고, 공자(孔子)는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춘추(春秋)를 썼습니다. 그리고 굴원(屈原 : BC 343?~289?)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자 이소경(離騷經)을 지었습니다. 좌구명(左丘明: BC 770~BC 476)은 한쪽 눈이 실명되고 나서부터 국어(國語)를 쓰기 시작했지요. 또한 손무(孫武: BC 545?~BC 470?)는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고 나서 손자병법을 완성했으며, 여불위(呂不韋: ?~BC 235)는 촉(蜀)나라로 귀양 갔기 때문에 여람(呂覽) 즉,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 : BC 145~BC 85?) 역시 치욕스런 궁형(宮刑)을 받고 나서 위대한 사기(史記)를 완성시킬 수 있었고, 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귀양 가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한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이와 같이 인류 최대의 역사적 작품들은 한 결 같이 최악의 고난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고난과 역경은 신이 내린 인생 최대의 축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은 일 년 동안 비가 내리는 날이 열흘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연평균 강수량이 해안에는 13㎜, 단층애(斷層崖) 부근은 50㎜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입니다. 새벽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고, 한낮의 미친 듯한 열기가 춤을 출 때는 섭씨 40도, 지표면의 온도는 70도까지 올라가는 죽음의 땅입니다. 수천만 년 동안 이런 급격한 온도차로 인해, 나무는 물론 바위까지 가루가 된 나미브 사막을 원주민들은 아무것도 없는 땅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엄지손톱 크기의 거저리라는 딱정벌레는 이 혹독한 나미브 사막에서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곤충은 해가 뜨기 전에 모래 밖으로 나와서 300m가량의 모래언덕 정상을 매일 올라갑니다. 작은 딱정벌레에게 300m는 사람으로 치면 에베레스트의 두 배나 되는 높이입니다.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간 거저리는 경사면의 가장 높은 끝에 다다르면,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물구나무를 서서 등을 활짝 폅니다. 이렇게 몸을 아래로 숙이고 몸을 펼치면, 등에 있는 돌기(突起)에 안개의 수증기가 조금씩 달라붙어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커진 물방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곤충의 등을 타고 흘러 내려오면 마침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나미브 사막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작은 딱정벌레에게도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어진 환경이 너무도 열악한 탓만 하고, 이만큼 했으면 최선을 다한 거라고 쉽게 포기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갖가지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경우라도, 우리는 분명히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지혜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모든 집착을 여의면 가능한 것입니다.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살아가는데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타인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모든 중생에게 베풀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죽더라도 진리와 불보살(佛菩薩)의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져 고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됩니다. 나라는 것에 집착하면 언제까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살아가는데 대한 그 어떤 두려움도 없게 됩니다. 그 어떤 공포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가 소멸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두려움을 감당할 내가 없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지요? 나에 대한 집착이 없으므로 남의 도움도 칭찬도 바랄 것이 없고, 그나마 잠시 내게로 온 소유 또한 모두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 때, 내 것 네 것 하는 소유의 울타리는 사라집니다. 그리하면 비로소 이 세상 전체가 다 내 것이요, 나와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에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주만유가 나요, 이 세계가 그대로 나인데 어찌 두려움이 생길까요?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죽고 사는 내가 없습니다. 설사 우리 몸이 죽더라도 나라는 집착을 떠난 사람은 내가 불보살이기 때문에 언제나 진리의 가피(加被)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소멸시킨 사람에게 더 이상 악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 우주가 그대로 부처요, 내가 가는 그 모든 곳이 그대로 보살의 땅이며 정토(淨土)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나를 버린 이에게 더 이상 두려움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재색명리(財色名利)를 앞에 놓고 무심(無心)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심이란 아무런 생각과 감정이 없고. 세속적 욕망 가치판단에서 벗어난 마음의 상태를 일컫습니다. 마음이 없으니 생각도 없고, 느낌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일에 차별과 구별도 없습니다. 선함도 악함도, 좋고 싫고의 경계도 없습니다. 그저 허공처럼 텅 빈 마음입니다. 이렇게 수도인(修道人)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사(生死)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며, 죄복(罪福)의 이치를 알아서 죄 복을 임의(任意)로 하자는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 최고의 고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착을 여의고 마음의 자유를 얻어 고난과 고통쯤은 벗어나면 어떨 까요!

[탈동성애 수기①] (상우 下) “동성애, 예수 통해 해결 가능한 죄 ”

(지난호에 이어서) 그 후로 4년 반이라는 세월이 지나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은 제게 비밀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셨고,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주셨습니다. 아주 큰 위기의 순간도 있었고, 정말 많은 실수 속에 깎여져 가며 지금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영상감독인 저는 자연스레 교회에서 진행하던 동성애 사역과 관련된 영상을 만들게 되었고, 이를 위해 많은 행사와 일들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퀴어축제에 관람자로 참여하던 제가 이제는 그때와는 다른 입장으로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며 반동성애, 극단적 반동성애, 탈동성애, 퀴어 진영을 넘나들며 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디에도 속해 있으며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묘한 감정에 휘말렸습니다. 20대 중반 정도의 친구들이 퀴어 페스티벌의 본부 쪽에서 무리를 형성하고 트럭 위에서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제게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겪으면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퀴어 축제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가 반동성애운동을 펼치며 내건 문구들이었습니다. 죄에서 영혼을 구하려는 그분들의 처절한 절규도 이해가 갔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너무도 거칠고 아픈 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 보았고, 퀴어 축제에 대응해 우리가 해야 할 고민들에 대해 제가 느낀 것들을 문서와 영상으로 정리해봤고, 목사님은 그것들을 적극 수용해 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제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란 자만도 있었지만, 목사님과 함께하며 배운 것들을 단순히 저의 기능으로 풀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약함과 실패가 예수 안에서는 자랑이 될 수 있는 놀라운 신비를 체험한 저는 교회와 목사님을 돕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들은 다른 교회에 자랑하거나 보여주려는 메시지도 아니고,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기도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는 나와 같은 고민을 겪는 한 영혼을 위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행사를 매년 기획 중에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가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밖에는 해결 될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죄들 중 하나일뿐이라는 것 또한 확신합니다. 무엇이 부끄럽습니까? 수많은 죄 가운데 내 과거가 어찌 되었던 그것으로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일만큼 자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게 육체의 가시 같은 이 죄의 문제가 있으므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매일 내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제게 간증이고 감사입니다. 저는 이 비밀스러운 기쁨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그랬듯이 제 간증이 누군가에게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 제공: 홀리라이프 -

[탈동성애 수기①] (상우 中) “동성애 극복 간증 보면서 작은 소망”

(지난호에 이어서) 저는 제 결심과는 다르게 이끌리는 육체의 속성에 차라리 떳떳하게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매번 혼란을 겪었습니다. 일상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다가도 밤만 되면 밀려오는 유혹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죄 속으로 빠져들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죄에 빠지면 사람은 위축되고 공격성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던 가족들을 만나도 불편하고 주눅들고 오히려 그분들께 분노가 표출되는 저를 보며 상반되는 마음과 행동에 무척 괴로웠습니다. 당시에 저는 괴로울 때마다 해외의 동성애 극복 간증을 찾아보며 아주 작은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죄에 빠진 후에도 허탈함을 달래려 약할 때 강함 되시네의 작곡자이자 탈동성애자인 데니스 저니건의 간증 등을 보며 어떤 위로를 받으며 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한국인이면서. 그리고 목사님이 어떻게 저런 고백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 동성애가 대세로 떠오르는 이 판국에 사실은 좀 부담스러우면서도, 불편한 외침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하기로는 4년 전 연말, 죄에 허덕이던 저는 이제는 이 분을 한번 만나봐야 할 때라고 직감했습니다. 도저히 괴로움이 가시지 않을 때, 지푸라기를 잡는 것 같은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생각보다 매우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었고 그날 저녁, 곧바로 상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 만남은 생각보다 편한 마음이었습니다. 이 분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졌던 분이라는 것이 큰 위안이었던 거 같습니다. 예전엔 동성애자 세계라는 소수에 발을 들이며 위안을 얻었다면, 이제는 그보다도 더 소수인 탈동성애자라는 그룹을 만난다는 것이 무언가 흥미롭기까지 했습니다. 목사님은 고린도전서 6장 9~11절 말씀을 펼치며, 제 이 생활이 계속된다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란 것을 명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왜 전 이 말씀을 보지 못했었을까요? 아니 깨닫지 못했었을까요? 제가 스스로의 죄를 은밀하게 꽁꽁 싸매고 있던 것과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한 구절의 말씀이었지만, 제가 머뭇거리던 부분에 성경이 명확히 어떠한 말을 하고 있는지 가르침을 받았던 그 순간 동성애 문제로 항상 혼란을 겪던 저의 불안한 자아가 깨침을 얻었던 거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분을 통해서 말씀으로 저에게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다음호에 이어서) - 제공: 홀리라이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