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다 (上)

3월이 시작되었다. 새해가 시작된 지는 이미 두 달이 지났지만 봄을 맞아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각급 학교에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재학생들이 한 학년씩 진급하는 요즘이 진정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디 그 시작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다. 겨우내 쉼 없이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기에, 그리고 인고의 세월을 견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부지런함이 바탕이 되어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에 생각이 미치니 한 시인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평생 따르며 부지런한 삶을 산 편운(片雲) 조병화(趙炳華)다. 1년 24절기 중 첫 시작이 바로 입춘(立春)이다. 말 그대로 봄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입춘이 되어도 여전히 춥다. 특히 올해는 전국이 폭설과 추위 속에서 몸살을 겪으면서 입춘을 맞았다. 이렇듯 추위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맞는 입춘이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머지않아 올 봄에 대해 알려주며 희망을 갖게 해준다. 얼어붙은 땅에는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지만 그 밑에서는 새싹들이 돋아날 준비가 한창이다. 양지 바른 곳에 앉으니 두런두런 그것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입춘을 하루 앞둔 날, 찬바람 속에서도 문득문득 느껴지는 봄바람에 이끌려 경기도 안성의 조병화문학관을 찾았다. 다가올 봄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시인이 기거하며 집필했던 청와헌(聽蛙軒,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조병화 시인이 붙인 이름)에 들어서자 맨 처음 눈에 띈 글씨가 입춘대길(立春大吉)인 것을 보면서 기자의 방문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병화 시인은 가히 봄의 시인이라고 할만하다. 해마다 봄이 되면이라는 그의 대표시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봄과 아무리 떼려 하여도 뗄 수 없는 꿈과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조병화 시인에게 어머니는 아주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는 존재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주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식은 어머니에게서 귀한 가르침을 배우고 이를 평생 마음에 새기며 살게 된다. 조병화 시인의 어머니 진종(陳鍾)여사는 아들에게 꿈을 갖고 부지런하게 살 것을 가르쳤고 아들은 평생 그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교사로 시작하여 교수로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글 쓰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그가 창작시집 53권, 선시집((選詩集) 28권, 시론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화집 5권 등을 비롯하여 총 16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한 것만 보아도 80평생을 얼마나 부지런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 어려운 삶을 온몸으로 헤쳐 온 우리네 어머니기에 저마다 삶의 철학이 있고, 그것은 때로는 원칙이 되고 때로는 교훈이 되어 자식에게로 이어진다. 기자가 어머니에게 들은 말은 바로 해놓고 장담하라였다. 장담(壯談)은 확신을 가지고 아주 자신 있게 하는 말이다. 막연한 것을 놓고 확신 있게 말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어떤 일을 이미 해놓은 상황이라면 확률 100%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미력한 힘을 가진 존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장담이 얼마나 될 것인가? 평생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오신 분이시기에 당신의 자식 역시 그러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조병화 시인에게 어머니는 시작점이자 도착점이었다. 그는 자신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심부름을 하는 존재이기에 그것이 끝나면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또 시인은 나는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에 영혼의 영생(永生)을 믿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시인이 말하는 어머니는 단순히 육친으로서의 어머니가 아니라 신(神)이다. 우리네 삶이란 그분이 내게 준 것을 쓰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할 일이고, 그분이 계시기에 영혼의 영생도 있는 것이다. [김응용 객원기자] ▶ (下) 편으로 이어집니다.

하늘에 새겨진 역사 그 진실을 밝히다

▲ 박창범 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 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천문학자 박창범 [글마루=김명화 기자] 우주와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 그는 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 교수다. 박 교수는 그의 전공인 우주론 외에 고천문학 연구로도 정평이 나있다. 우리 역사 속의 천문 기록에 관한 치밀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박 교수는 외세가 왜곡했던 한민족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하늘을 통해 우리 역사를 읽을 수 있다며 이러한 사실을 천문학을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하는 박 교수. 그를 만나 천문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고대 하늘과 우리 역사를 조명해 본다. 고천문학 연구를 시작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역사 문제에 접근하는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 주려고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 역사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단군왕검이 조선을 서기 전 2333년에 세웠을까? 우리는 정말 반만년 역사를 지닌 민족인가? 신라, 고구려, 백제는 정말 삼국사기에 나오는 연도에 세워졌을까? 우리는 정말 북방에서 유래한 민족일까? 한민족을 찬란한 문화민족이라고 자부하는데 실제로 어떤 문화를 내세우고 있는가? 등에 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천문학은 하늘의 역사뿐만 아니라 땅의 역사를 밝히는 데도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합니다. 고대 천문 기록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천체의 운동, 기상학적지질학적 현상 등은 매우 규칙적이기 때문에 오늘날도 그 규칙성에 따라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수천 년이라는 짧은 인류 역사를 놓고 볼 때 자연의 규칙성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지요.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천문 현상을 활용하면 그 현상이 일어난 과거의 시점을 절대적 산출법으로 정확히 추적해낼 수 있습니다. 또 천문 기록에는 단순한 자연 현상뿐 아니라 옛 사람의 자연관, 사상, 종교, 정치관까지 녹아 있기 때문에 천문학적 기록과 유 물을 통해 고대 문화의 탄생과 그 수준, 그리고 전파 경로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땅에 수십 세기 전에 서 있었을 고대인 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대 천문 기록을 연구할 수 있는 역사서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삼국시대의 천문기록이 약 240개가 있습니다. 또한 고려사에는 약 5천 개, 조선왕조실록 에는 약 1만 5천 개의 천문기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식, 월식, 행성들의 이동, 유성의 낙하, 혜성의 출현 등등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빙성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역사서에 기록된 천문 기록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아득한 옛날에 살았던 무지한 사람들이 천체 운동과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대 천문에 관한 실험을 하고 난 후 제 생각이 그릇된 선입관이었다는 점을 알게 됐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일식이 67개, 행성의 움직임이 40개, 혜성의 출현이 65개, 유성과 운석의 떨어짐이 42개, 오로라의 출현 12개 등 240개가 넘는 많은 천문 현상 기록들이 있습니다. 저는 두 역사서에서 1000~2000년 전에 일어났다고 기록한 천문 현상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천체 역학적 계산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시기의 천체 관측들은 대부분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해와 달과 행성의 별자리들에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실제로 일어난 현상과 전체적으로 맞추어 봤는데 이 기록도 천체 현상들이 일어난 연대와 날짜, 그리고 상황까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하고 나서 저는 과학자로서 선입관을 가졌던 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선인들의 문화를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천문학계에서 삼국사기의 천문 기록은 중국 기록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학계에서는 1920년대부터 삼국사기의 일식을 비롯한 여러 천문 현상 기록들을 꾸준히 연구해서 많은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삼국사기의 천문 현상 기록은 중국의 기록을 베낀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삼국 시대 초기 부분이 조작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 과학적 결과가 아니라 부분적 분석으로 도출된 주관적 판단입니다. 저는 삼국사기의 천문 현상 기록이 독자적 관측에 의한 결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반복이 가능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첫 번째로 삼국사기에만 있고 다른 나라의 사서에는 없는 천문 현상 기록을 가려낸 다음, 독자적인 그 기록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검증해 봤습니다. 두 번째로 삼국의 최적 일식 관측지를 찾아 중국 나라들이 기록한 일식 관측지와 비교해 보았는데 분석 결과 매우 다른 위도상으로 각각 떨어져 있었습니다. 결국,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독자적인 실제 관측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라고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는 한반도 지역이 아닌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진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검증한 결과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조사하던 중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 동부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국 대륙 동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과학적 관측을 통해 알게 됐지요.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천문 기록이 아닌 기상자료를 추가로 연구했어요. 중국과 한반도의 자연 현상 중 가장 두드러지게 지역적계절적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장마 현상이기 때문에 삼국의 기상 관측지를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기상 자료 연구에서도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국 대륙 동부에 위치해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국사의 내용과 다르지요. 하지만 과학자인 제가 이 결과를 기초로 해서 새로운 역사나 사서 내용의 유래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죠. 저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가 실험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까지만을 찾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자의 능력이자 역사학에 대한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천문학과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천문학을 사랑해 왔습니다. 옛 왕조들은 하늘의 과학, 천문학을 국가의 최고 학문 중의 하나로 중시했지요. 한국의 전통 천문학은 2천년 이상에 걸쳐 남겨진 풍부한 천문 관측 기록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고인돌 시대와 삼국시대의 별자리 지식, 전천 천문도, 현재 세계 최고의 천문 관측대, 조선 초 세종시대의 절정기 등은 한국 전통 천문학의 수준을 예상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아직 개봉되지 않은 많은 유물과 기록이 우리의 진지한 연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영국의 걸출한 과학사학자 조셉 니덤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 이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천문학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모든 민족 중에서 한국인이 모든 종류의 과학적 문제에 대해 여러 세기 동안 가장 큰 관심을 지녀 왔다는 신념이 점점 커지게 됐다며 우리들은 한국에서 만든 놀라운 천문시계에 주목했다. 또 7세기에 세워진 한국 천문대와 근대 한국의 관측기록 중 혜성 그림 등을 소개했다고 말하며 한국 전통 과학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했습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검증한 결과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을 조사하던 중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 동부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 국 대륙 동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과학적 관측을 통해 알게 됐지요.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천문 기록이 아닌 기상 자료를 추가로 연구했어요. 중국과 한반도의 자연 현상 중 가장 두드러지게 지역적계절적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장마 현상이기 때문에 삼국의 기상 관측지를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기상 자료 연구에서도 상대 신라와 백제의 최적 일식 관측지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국 대륙 동에 위치해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국사의 내용과 다르지요. 하지만 과학자인 제가 이 결과를 기초로 해서 새로운 역사나 사서 내용의 유래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죠. 저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가 실험을 한다고 해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까지만을 찾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자의 능력이자 역사학에 대한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한민족의 천문관은 어떠했다고 보십니까? 동양의 선조는 인간과 우주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고 하나로 받아들이는 큰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땅의 거울처럼 여겼지요. 2000년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천문 현상들을 관측했던 선조들의 기록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천문학사 분야를 연구하실 계획이신가요? 저는 10년 넘게 한국 천문학사를 연구해 오면서 우리 선조가 남겨 놓은 수많은 천문 기록들에 매료됐습니다. 고대 천문 기록들이 체계적이고 정확하다는 사실, 관측된 천문 현상 들이 다양하고 방대하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학자들이 한국 천문학사에 관해 연구한 경우가 적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 전공인 우주론 못지않게 이 분야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옛 천문학을 연구하는 일은 우리 문명의 기원과 교류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죠. 앞으로 우리 민족의 천문 자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불어 천문학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천문 과학의 역사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구하며 그 가치는 특별하다고 한다. 별처럼 빛나는 선조들의 정신을 이해하여 오랫동안 묻혀있던 하늘의 역사를 밝힌 천문학자 박창범. 순수하고 진지한 그의 연구가 기반이 돼 보다 많은 역사학자, 천문학자들이 외세가 왜곡했던 우리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스승 유지 받들어 인재 양성에 집중”

▲ 혜거스님 ⓒ천지일보(뉴스천지) 제자 혜거스님에게 듣는 스승 탄허스님 [글마루=김지윤 기자] 탄허스님을 기리는 제자가 있다. 지금은 한국의 큰스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스님이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탄허스님의 제자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스승을 기리기 위해 기념박물관을 개관했다. 바로 혜거스님이다. 스님은 서울시 강남구 자곡동에 위치한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에서 이사장을 겸하고 있으면서 스승의 평생 뜻인 인재 양성을 받들고 선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강남구 개포3동에 위치한 금강선원에서 스님을 만나 고승 탄허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탄허스님께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집필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승님은 홀로 불경 75권을 한국어로 번역하셨습니다. 이는 세조 때 신미선사 중심으로 국책사업을 펼쳐 역경한 것보다 무려 10권가량 많은 수죠. 감원(승려가 공부하는 곳)에서 배 우는 책을 다 번역하셨습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본인을 회고하는 책을 쓰실 겨를이 없었죠. 또 쓸 겨를이 있었다고 한들 스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임종 직전까지, 경전을 붙잡고 번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주변에서 책 집필을 권하지 않으셨는지요. 주변에서 권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스님의 성격과 일정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스님은 밤 9시만 되면 주무시고 새벽 1~2시경에 일어나셨습니다. 아침 공양 전까지 일반인이 온종일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끝마치십니다. 공양 이후엔 제자들과 같이 교정 작업을 하셨습니다. 아! 책 집필과 관련해 스승님께 한 가지 약속을 받았는데 바로 불교개론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를 엮지 못한 채 스님은 입적하셨죠.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 도교 등을 통달하셨는데요. 불경만 번역하신 게 아닙니다. 유교 최고의 교재인 주역, 도교에서도 노자의 도덕경, 장자의 남화경을 다 번역하셨습니다. 도덕경이나 남화경은 번역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특히 도덕경은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사실 어려운 글 중 하나입니다. 이를 원전과 주석까지 다 명쾌하게 번역하신 거죠. 번역에만 열중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죠. 화엄경은 경 하나를 가지고 몇 년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해할까 말까입니다. 스승께서 번역한 후로는 승가 과정을 3년 안에 마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스님은 번역하실 때 의역이 아닌 직역을 택하셨어요. 당신의 소견을 하나도 넣지 않고 경의 뜻만을 전달하셨습니다. 원전을 보고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죠. 증산도에서는 탄허스님의 예언을 들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던데요. 증산도뿐만 아니라 근래 스님의 예언이 다시 집중되고 있습니다. 스님은 예언을 위한 예언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주기 위해서 그런 거죠. 가령 주역하면 길흉화복을 점치는 책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주역은 점책이 아니라 소인을 군자로 만드는 것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주역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64괘에서 군자라는 단어가 괘마다 들어 있습니다. 기분 좋은 상황이라고 가정합시다. 소인은 기분이 좋아서 들뜨고 날뛰다가 패가망신으로 가죠. 군자는 그 상황에서 들뜨지 않고 더 살펴서 다음에 좋지 않은 일을 대비하죠. 주역은 이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탄허스님은 도를 통달하신 도인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직 안 되는 게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선 시계처럼 생활하셨죠. 도인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시계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죠. 늘 자신이 하는 일을 장소, 시간을 불문하고 계속해야 합니다. 스님은 사람이 찾아오면 원고를 쓰시다가도 사람을 응대하셔요. 바쁘지 않으셔요. 보통 사람은 자기가 일하고 있는 도중에 사람 찾아오면 바쁘다고 하지 않습니까. 스님은 그렇지 않아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셔서 일을 보시기 때문이죠. 스님은 손님이 해주는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들으셔요. 어린아이처럼 박장대소하시면서 들으셔요. 하지만 손님이 돌아가면 다시 자신의 일과 삶으로 되돌아오십니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는 들었을 그때뿐이지, 법회에서 인용한다든지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으셔요. 법회나 강연에선 오로지 경전으로만 말씀을 전하시죠. 도인은 반경이 넓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활 반경이 넓지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다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도인이 되기 어려워요. 스님한테 뭐든지 여쭤보면 다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야기해주면 그렇게 경청하고 계신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 할 일만 했으니 다른 것을 보지 않았으니까요. 다들 도인을 거룩하고 점잖은 존재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아요. 도인은 오로지 자기 길만 보고 가는 존재입니다. 탄허스님께서는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예. 스님께서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데 최우선 목표로 두셨습니다. 역경 작업도 그 일환에서 비롯된 것이죠. 저희는 그 유지를 받들어 금강선원을 열었습니다. 불교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한자 등을 가르치고 있지요. 기본적인 단계부터 시작합니다. 저의 바람도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오는 것이죠.

최고의 한국인 故 탄허스님―②

덕으로 다스려야 국민이 따른다 [글마루=김지윤 기자] 대선의 해인 2012년, 새해 벽두부터 전당대회 돈봉투 디도스 테러 등 정치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이후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한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아직 건전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했다. 이는 전 국민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끊임없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계에 올바른 사람이 서길 바라는 것은 전 국민적인 바람이다. 첨단시대이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치계에 국사 탄허스님은 어떻게 조언했을까. 그는 늘 덕치(德治)를 강조했다. 導之以政(도지이정)하고 齊之以刑(제지이형)이면, 民免而無(민면이무)니라. 導之以德(도이지덕)하고 齊之以禮(제지이예)면, 有恥具格(유치구격)이니라 논어 위정(爲政)편의 글귀다. 형법과 정치로만 다스리면 백성이 죄짓는 것은 근근이 면할 수 있지만 그 잘못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과 예로 다스리면 백성이 잘못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개과천선하게 된다는 뜻으로 앞말은 세속 정치를, 뒷말은 성인군자의 정치를 각각 뜻한다. 이는 서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양 고유의 덕(德) 사상에서 비롯된다. 1977년 조선일보가 진행한 신춘대담에서 탄허스님은 올바른 정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동양사상의 정치는 왕도의 정치와 패도(覇道)의 정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왕도의 정치란 성인의 정치를 말하는 것인데 하도 그 덕화(德化)가 커 백성이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까지를 잊어버리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패도의 정치는 백성이 각기 그 처소(處所)를 얻어 다 잘 살기는 하지만, 단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야심이 위정자의 뇌리에 잠재해 있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왕도정치를 학정(學政)종합, 패도정치를 학정분립으로 보고 있다. 즉, 최고의 학문도덕을 가진 성인이 정권을 잡을 때 비로소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논리다. 반대로 학정분립은 최고의 학문과 도덕을 가진 성인이 초야에 묻히고 소인들이 정권을 잡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현명한 위정자를 꿈꾸고, 염원하고 있는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 전, 탄허스님 발언을 다시금 꺼내어 보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이치 깨닫고 앞일 내다봐 최근 해일, 대지진 등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탄허스님의 예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스님이 예고한 예언이 다시금 조명되는 것은 그 내용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자신이 열반하는 일자와 일시(1983년 6월 5일 오후 6시 15분)를 맞혔다는 것이다. 먼저, 그가 남긴 예언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탄허스님은 탄허스님의 속명은 김금택으로 전북 김제 만경에서 유학자 김율제 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3세까지는 정읍의 증산교의 일파 차천자교(車天子敎)에 있는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배웠다. 득도하겠다고 결심한 후 14세 때 충청도 기호학파 최대 유학자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문하 이극종 선생에게 유교를 배웠다. 하지만 진리를 찾고 싶었던 그는 방한암 대선사가 있는 상원사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금택은 새벽 2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반드시 참선을 하고 경전을 읽었다. 이를 입적하기 전까지 49년간 한결같이 했다. 처음 몇 년은 스승 한암선사처럼 참선했으나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한암선사에게 정식으로 승려가 되겠다고 삭발을 했다. 이때 그는 스물둘의 청년이었다. 선사는 제자에게 삼킬 탄(呑) 빌 허(虛), 즉 탄허라는 법명을 하사했다. 탄허스님으로 다시 난 이후 3년간 묵언하면서 번뇌를 떠나는 일, 즉 참선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선(禪)은 앉아서도, 이력이 붙으면 서거나 걸어 다니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경(經)을 택했다. 스승은 제자에게 지식이 있는 자는 경을 배워 중생에게 이익을 주도록 해야 이 세상 업보도 갚는 것이라며 경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선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던 탄허스님은 스승의 가르침을 곱씹으면서 범어, 즉 산스크리트어를 배워 경전의 참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달하게 됐다. 스님은 스승이 중생에게 이익이 되게 하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으로 옮겼다. 그는 불경을 번역하는 역경사업을 지속했다. 이로 인해 불경의 한국화 및 현대화를 이룩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탄허스님의 주요 공적은불경 번역이다. 총 78권을 번역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역경을 진행했던 신미대사(1403~1480)의 역경보다 많은 수다. 진리를 찾기 위해 늘 경전을 들여다보고 통달한 것을 중생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한국계의 큰스님. 그리고 국사로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고 염려한 스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현자를 기다리고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금 되돌아본다.

최고의 한국인 故 탄허스님―①

[글마루=김지윤 기자] 여느 유명한 스님 또는 지식인과 사뭇 다르다. 오로지 손에 쥔 분필로 판서하며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를 강연한다. 단상엔 장자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불자뿐 아니라 지식인도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일흔에 가까운 큰스님은 쩌렁쩌렁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강연한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명쾌한 설명에 모두 아! 그런 뜻이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중생衆生의 공허함, 성현聖賢의 가르침으로 채우다 유불선儒佛仙 통달해 전국 지식인 몰렸다 故 탄허스님(1913~1983)의 지식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도(道)를 찾고 자신이 들렀던 길을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원문을 그대로 살린 해석집 78권을 내놓는 데 평생 힘썼다. 그래서 법회와 강연엔 불자뿐 아니라 당대 지식인도 함께했다. 더군다나 스님은 강연 자료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입으로 토해낸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 그래서 공부하러 온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다. 남녀노소, 지위를 막론하고 배움에 갈급한 이들이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성현들의 가르침을 내주었다. 공허함을 삼키다(呑虛)라는 법호답게 그는 후배 승려와 중생의 허(虛)한 부분을 성현의 가르침으로 채울 수 있도록 길을 연 셈이다. 삼라만상 품는화엄경과 그 변화를 설명예측하는주역품은 선견자 큰스님의 이력이 독특하다. 분명히 불교의 고승인데 주역을 비롯한 역술, 풍수 도참, 선도교에도 식견이 풍부하다. 아니, 풍부한 식견 이상으로 각 경전과 책을 통달했다. 오죽하면 스님의 주전공이 불경의 정수 화엄경이고 부전공이 주역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큰스님은 이통현(李通玄, 635~730)과 청량국사(淸凉國師, ?~839)의 화엄경 주석을 종합해 대방광불신화엄경합론(大方廣佛新華嚴經合論) 49책을 풀이했다. 계속 언급했듯이 불가를 넘어서 다른 분야에서도 학구적인 면모를 보였다. 선가(禪家)의 입장에서 주역을 풀이한 주역선해(周易禪解) 3권을 펴낸 바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 큰스님이자 사상가로 주목받고 있다. 만물의 현상을 품는 화엄경과 그 현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주역을 모두 지닌 탄허스님. 그는 60~70년대 국사 역할을 했다. 평소 삼라만상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一切唯心造) 부분이 즉 전체, 전체가 즉 부분(一卽多 多卽一)이라는 화엄경을 본체로 하고 앞일을 예측하는 주역을 수단으로 삼아 나라의 미래를 예견했다. 주역을 보는 큰스님 이야기를 더 살펴보자. 탄허스님은 주역의 육효(六爻)를 사용해 점을 치는 육효점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육효점은 점서(占書)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 점으로 공자, 주렴계, 주자, 서경덕, 토정과 같은 학자들과 구루(Guru, 힌두교와 시크교의 지도자)들이 앞일 내다보는 데 활용했던 방법이다. 주역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불가에서 이를 통달한 고승이라. 일반 고승과는 다르다. 신라 말 최치원은 유불선을 아우르는 포함삼교(包涵三敎)를 주장했는데 탄허스님이 이를 계승했다. 정확히 말해 유교의 예(禮), 불 교의 명심(明心), 선교의 양생(養生, 심신 수행)을 섭렵했다. 다양한 가르침을 수용한 그에게 전국 방방곡곡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찾아왔다. 무속인, 한학의 대가, 무술인, 의학인, 정치인, 예술가 등 스님을 찾는 직업군도 가지각색이다. 사람이 사는 법예(禮)-법(法)-정(精) 사람이 사는 법이란 게 굳이 있을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물음이다. 결국 산다는 게 무엇인지 왜 사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일맥상통하다. 탄허스님은 사람이 사는 것, 즉 인생을 예와 법, 정으로 구분한다. 예는 하늘의 이치를 가리킵니다. 이때 세속의 예로 이해하면 곤란해요. 불가에서는 이 같은 삶을 대인군자(大人君子)와 물아양망(物我兩忘)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우주와 자신을 잇는 성인의 경지를 말하죠. 불가에서 법은 물아양망의 경지엔 이르지 못하지만 자신의 이익보다 이타적인 면을 보이면서 세속 법규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사는 사람을 뜻한다. 정은 예와 법을 모르고 오로지 인정(人情)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탄허스님은 이 같은 중생을 천치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속에서 사는 인간 대부분은 천치일까. 괴로워도 길은 길이오 진리는 길(道)로 종종 표현된다. 이와 관련해 제자 향봉스님이 스승에게 길이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환한 길이 바로 보이지. 도(道)의 근본은 바른 것이니까. 도란 진리의 대명사가 아니겠나. 한마디로 길을 가리킨 거야. 길을 걷되 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네. 왜냐하면 길이란 오르막길이든 오솔길이든 내리막길이든 외진 길이든 길은 길이 아니겠나. 그런데 길 밖으로 빠져나가면 진흙덩이와 가시덩굴 속에서 갈팡질팡하게 되겠지. 어둠 속에서 방황하면 얼마나 괴롭겠나. 탈선이란 어느 의미에서도 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길은 또 하나의 생명줄일세. 생명을 아끼려거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꾸준히 걷는 강인한 인내심이 필요하지. 그래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네. 진리를 찾으려거든 지금 걷는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스님의 말에서 잔잔하지만 단호함이 느껴진다. 이어 스님은 도(道)에서 더 나아가 덕(德), 인(仁), 의(義), 예(禮), 법(法)의 상관관계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옛말을 들어 중생에게 알려준다. 사람이 가장 고차원적인 도가 없으면 덕이라도 갖춰야 하고, 덕을 잃으면 인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인이 부족하면 의라도 지켜야 하고 의를 잃으면 예라도 차려야 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엔 도보다 한참 차원이 낮은 예를 눈 씻고 찾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것이 법이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제약을 주는 법은 몽학훈장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진리는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며, 모든 만물은 성장한다. 자연의 순리는 진리다. 이를 거스르는 자연물은 없다. 가장 간단하고 이치적인 순리가 가장 고차원적인 진리인 셈이다. 탄허스님은 누구보다 이를 일찍 습득한 것이다.

“대한민국 첫 FTA국 칠레를 소개합니다”-①

에르난 브란테스(H.E. Hernan Brantes) 주한 칠레 대사 [글마루=송태복 기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독특한 지형과 신비스러운 자연경관을 지닌 나라 칠레(Republic of Chile)는 각종 광물의 천국이다. 북으로는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의 경계에 위치하고 남으로는 남극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겐 지난해 인기 TV 프로그램 구성원들이 칠레를 거쳐 남극을 가려 했다가 칠레 지진으로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남극과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사실이 새삼 알려지기도 했다. 한미 FTA 비준안 통과로 홍역을 치른 지난해를 돌아보며, 우리나라와 첫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 칠레에서 온 에르난 브란테스(H.E. Hernan Brantes) 주한 대사를 만났다. 브란테스 주한 칠레 대사는 한칠레 FTA가 양국 발전에 끼친 긍정적인 성과와 머나먼 나라 칠레의 문화와 관광 명소에 대해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더해 들려줬다. 와인과 천연광물의 천국 브란테스 대사는 한칠레 FTA 후 칠레는 매년 7%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할 만큼 성과를 거뒀지만, 2010년 8.8규모의 강진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됐다며 지진여파를 전했다. 그러나 한칠레 FTA는 칠레와 한국 경제에 근본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칠레에는 구리와 몰리브덴, 레늄, 리튬 등 천연광물이 풍부하다며 한칠레 FTA로 한국은 저렴한 가격에 이들 광물을 매입함으로써 한국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브란테스 대사는 한국에 수출하고 있는 주요 칠레 상품으로 와인과 삼겹살 등을 들었다. 그는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이 칠레산 와인 가격을 턱없이 비싸거나 싼 가격으로 보도해 칠레 와인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며 정정 보도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칠레 와인을 함께 마시며 각종 친교모임을 진행한다며 와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브란테스 대사는 칠레 와인이 유명한 이유로 포도생산에 가장 적합한 칠레 중부지역의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와 큰 일교차를 들었다. 칠레의 와인산업은 16세기 칠레로 이주해온 스페인 사람들이 포도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시작됐으며, 수도 산티아고 부근 센트럴 계곡 주변이 주 생산지가 되고 있다. 칠레도 입시경쟁 치열해요 칠레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눈에 띄었던 내용 중 하나가 낮은 문맹률과 높은 교육열이었다. 2011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칠레는 우리나라를 제치고 사교육과 사립학교 성장률 1위를 차지했다. 칠레의 대학과정은 대부분 6년이며, 입학과 졸업이 쉽지 않아 학사취득 비율은 비교적 낮은 것으로 전해진다. 브란테스 대사는 칠레도 유명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칠레의 높은 교육열을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칠레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처럼 각종 과외를 받느라 바쁘진 않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인의 조급하고 열정적인 성격이 교육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칠레 국민도 급한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닌지 물었다. 브란테스 대사는 칠레 국민은 한국인에 비해 훨씬 여유롭다며 한국인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칠레 국민은 매운 칠리소스를 먹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 지인에게 초대를 받아 갔더니 칠리소스가 듬뿍 든 음식을 줘서 못 먹었다며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브란테스 대사의 자녀 중 한 명은 한국의 모 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의 교육 열기나 교육과 정 등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브란테스 대사는 한국 초등학생들이 너나할 것 없이 악기를 한 가지 이상 다룰 줄 아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며 초등학교에서 전자 칠판을 사용하고 어린 아이까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는 등 첨단 기기가 일반화된 점도 매우 놀랍다고 덧붙였다. 2011 최고 여행지파타고니아 칠레는 길이 약 4300km, 폭은 대략 175km의 특이한 국토 형태로 말미암아 매우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국토 중앙부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남쪽은 눈이 많고 빙하와 호수가 있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이런 독특한 기후와 지형은 칠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브란테스 대사는 추천하고픈 칠레 관광지로 칠레 인구의 1/3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 산티아고를 먼저 꼽았다. 수도 산티아고는 각종 산업과 금융의 중심지이자 항구와 고속도로 철도 경유지로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는 산티아고 추천 이유로 각종 레포츠와 휴양시설이 잘 발달된 점을 들었다. 산티아고에는 각종 경기장과 공공 스포츠클럽이 상당수 있으며, 스키장은 물론 해변 휴양지도 자리하고 있다. 브란테스 대사는 이어 파타고니아를 추천했다. 파타고니아는 안데스 산맥과 대서양 사이 즉,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고원으로 세상의 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옥색 빙하호를 끼고 3개의 봉우리가 어우러진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파이네 탑) 산 군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꼽힌다. 지난해 영국 BBC가 발행한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lonly Planet)은 2011년 최고 여행지(Best in Travel 2011) 10곳 중 하나로 파타고니아를 선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