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훈장 2등급→1등급 올려야, 생가복원 꼭 필요”일본 천왕에 폭탄 투척, 의거는 실패했으나잠자고 있던 우리의 독립의지를 드높인 쾌거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 하면 31년 동안 인생 쾌락을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 쾌락을 도(圖)키 위해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을 목적하고 상해로 왔습니다.” “나는 영원 쾌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우고 사진을 찍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일제의 탄압과 억압으로 독립항거는 잠잠하고 암
푸른 눈을 가진 구한말의 언론인 배설(한국명, Ernest Thomas Bethell: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 대한매일신보 창간자였던 그는 올해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하게 됐으며 어떤 일을 했는지 짚어보도록 한다.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를 영생케 하여 대한 동포를 구하라.”푸른 눈을 가진 37세의 배설(한국명, Ernest Thomas Bethell: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 1872~1909)은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긴 채 1909년 이국땅에서 유명을
◆‘용의 눈물’과 같은 느낌 다른 느낌드라마 ‘정도전’은 96~98년에 방영된 드라마 ‘용의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은 조선건국을 배경으로 다뤘으나, ‘용의 눈물’은 이성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과 충녕대군으로 연기한 유동근과 안재모가 이번 ‘정도전’에서는 이성계와 이방원을 연기한다. 90년대 후반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용의 눈물’을 시청한 이들이라면 이번 ‘정도전’이 반가울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왜 정도전일까. 21세기에 정도전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일까.강병택 피디는 “정도전은 역사적으
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달이 차면 기울어지는 법. 고려도 그랬다. 원나라에 절절 매던 고려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해 난세 중 난세였다. 그때 정도전이 있었다. 민심이 돌아선 고려에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결심한 그였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감명 깊은 대사가 나온다.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아름다움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주옥같은 대사는 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주인공인 삼봉 정도전(조재현 분)에게 어울리는 말이지 싶다.
고조선은 홍익인간 이념으로 뭉친 하늘나라의 대인들[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삼성궁 건국전에 들어서기 전에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돌계단을 지나면 ‘홍익인간대장군’과 ‘이화세계여장군’이라고 적힌 돌장승을 만난다. 환인 하나님의 아들 환웅이 창조하고자 했던 홍익인간은 어떤 사람이고, 이화세계는 어떤 나라를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먼저 단군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실제 곰과 호랑이를 말함이 아니라 곰족과 범족 즉 ‘사람’으로 보아야 해석이 가능해진다. 한단고기에 나타난 홍익인간의 모습을 엿보면 “사제가 쑥과 마늘을 주면서 ‘너희들
1984년에 민족혼이 샘솟는 우물, 삼성궁을 짓다 환인 하나님, 우편에 아들 환웅, 좌편에 단군을 모시다[천지일보=박미혜 기자]단군에 대한 논란을 마음 한편에 두고 환인, 환웅,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을 찾았다. 삼성궁(三聖宮)은 환인, 환웅, 단군 세 성인을 모시는 성전이란 뜻이다. 삼성궁에 들어서면 사람보다 먼저 크고 작은 돌들이 맞이한다.주차장 뒤로는 거대한 새 모형과 푸른 날개를 지붕삼은 집들이 있는데 솟대가 많은 곳이니 ‘오리’가 아닌가 싶었지만 푸른 학을 상징한다고 했다. 놀이공원
조선을 건국한 단군할아버지, 어디 가셨어요?민족말살정책은 곧 고조선말살정책[천지일보=박미혜 기자] 1920년대 일제는 조선인의 민족정기를 말살하지 않고는 도저히 한반도를 자신들의 영원하고도 온전한 식민지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300년 역사를 가진 일본이 5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의 정신력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그들은 민족말살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은근하면서도 치밀하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날조하기 시작했다. 그 식민사학의 핵심에 바로 한민족 역사의 시작 ‘단군’이 있다. 드라마 속
“알지 못하게, 무관심하게, 부끄럽게”일제의 시나리오대로 역사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지난 5월 온라인상에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교사와 학생의 짧은 대화가 올라와 시선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학생은 “역사는 왜 배워야하나요?”라고 물었고 교사는 꿀밤을 주며 “배워야지”라고만 했다. 학생은 “왜 때리냐”고 항의했고 교사는 “어쭈 이것봐라. 잘 피하는데?”라며 꿀밤세례만 날렸다. 학생은 “왜 자꾸 때려요. 역사는 왜 배우냐고요”라고 항의했고 이에 교사는 “네가 나한테 맞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모든 일에는 조짐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는 그 조짐을 읽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백제는 망하기 1년 전까지도 정복전쟁에 여념이 없었다. 망할 수도 있는 조짐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승승장구의 이면에는 방심과 안일, 자만이라는 감정들이 슬그머니 자리 잡기 시작한다. 연일 승전보를 울리며 빼앗긴 땅을 되찾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급변하고 있는 국제정세를 소홀히 여겼던 것은 아닐까.만약 의자왕이 좀더 몸을 낮추고, 생각을 낮춰서 노련한 김춘추의 외교술을 읽어냈
나제동맹을 저버리고 왕을 죽인 원수를 갚고, 한강을 회복하는 일은 백제왕들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과제였다. 그러니 성왕 이후 87년이 지나 즉위한 의자왕 역시 왕이 되자마자 줄기차게 신라를 공격했다. 끊임없는 정복전쟁이 가능했을 만큼 안정적인 국정 운영도 뒷받침되어줬다. 의자왕 당시의 국력은 정림사지 5층 석탑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탑의 탑신 기단부를 자세히 보면 당나라 소정방이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쓴 전승기념문인 ‘大唐平濟國碑銘(대당평제국비명)’이 빼곡히 새겨있다. 그 가운데 백제의 인구가 5도독 37주 250현 24
백제의 끝을 이야기하기 전에 백제의 시작부터 짚고 가자. 한강에서 시작한 백제가 왜 백마강 유역까지 내려가게 됐던 것인지 말이다. 백제는 도읍지의 위치에 따라 한성백제 493년 (BC18년~AD475년), 웅진백제 63년(AD475년~ AD538년), 사비백제122년(AD538년~AD660년)으로 나뉜다.초기 백제는 한강유역을 끼고 있는 한성 곧 지금의 서울에 수도를 두고 한반도의 가장 풍요로운 지역을 차지하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4세기 근초고왕의 맹활약을 통해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이룩하며 고대 국가의 면모를 갖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불러보자 삼천궁녀를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계백장군 삼척검은 임 사랑도 끊었구나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불러보자 삼천궁녀를『백마강』가사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고구려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알에서 나온 혁거세만주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 신라장군 이사부백결선생 떡방아 삼천궁녀 의자왕황산벌의 계백
‘의자왕이 삼천궁녀와 함께 향락에 빠져 나라가 망했다’ 이 한 줄의 말로 백제 역사를 갈음한다면, 그것이 백제에 대한 기억의 전부라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정사에 힘써야 할 왕이 여색에 사로잡혀 흥청망청이라…. 망하는 것이 당연하지. 하지만 백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나라. 700년 문화강국의 백제가 무슨 연유로 일순간 멸망했는지 역사의 파편들을 따라 재조명해본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 땡볕 더위 8월 중순, 답사 일행은 사비 백제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산정상도 마다하지 않고 올랐다
3·1정신구국운동범국민연합 김동환 상임총재천도교 전 교령 삼일절은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되찾기 위하여, 온 겨레가 하나로 뭉쳐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던 날을 기리는 정부의 4대 국경일 중 하나이다.만세를 부르다가 수많은 인명을 빼앗겼던 이 날은 역사적으로 오직 한번 있었던 중대한 날로 온 세계를 놀라게 했다.그 용감한 한민족의 행동을 통하여 일본 외교의 허위성이 드러났고 한민족은 생명을 받쳐가며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참전국들이 가진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선언’에서
1910년 조선왕실의 중심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가 꽂혔다. 그 이후 조선의 국기 ‘태극기’는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9년이 지나 다시 꺼내들고 원 없이 흔들어댔던 날. 그 날 함성의 요체인 기미독립선언문의 가치를 찾아 나선다. 할 말 다 하는 감성 자극 선언문양심에 호소하여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글[글마루=박혜옥 기자] 해마다 3월이 되면 3.1운동 기념행사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자유를 당연한 듯 여기며 살다가도 일제강점기 시절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나면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 지금의 자유는 순국선열
“슬픈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네”근엄한 궐에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어 오가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어처구니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다. 바야흐로 1910년 8월 29일 한·일강제병합 조약이 발효되던 날이다. 근정전을 배경 삼아 일장기가 버젓이 올라갔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글마루=김지윤 기자] 1년 가운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3월이다. 본격적으로 생명의 기운을 돋우는 봄의 알림에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겨울의 냄새가 난다. 바람 내음이 꽤 봄다워졌지만 말이다.
[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이순신, 권율, 곽재우는 알아도 1592년 8월 18일 금산성 전투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절했던 중봉조헌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는 스승이었던 율곡 이이와 함께 문묘에 배향된 동국 18현 중 한 분이다. 중봉은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그래서 공부할 때는 전심(專心)으로 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무리 밖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도 홀로 단정히 앉아 글을 읽었다. 또 친모가 중봉 나이 10살에 돌아가시고 이후 계모가 아무리 그에게 까다롭게 굴어도 그
[글마루=글마루] 도시는 열광하고 있었다. 잡음으로 끊기는 라디오와 동네에 몇 안 되는, 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우리나라 선수가 거머쥐었다는 뉴스에 흥분하고 있었다. 일본 선수들의 독무대 동양타이틀에서 미들급 챔피언 가이즈 후미오를 6회 만에 KO시키고 여유 있게 링에 기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매료시켜 버렸다. 그는 아마전적 88전 87승 1패, 프로 전적 49전 45승(16KO) 2무 2패의 위대한 기록을 세운 김기수 선수이다. 그가 대한민국에 첫 프로 동양챔피언 벨트를 선사했다. 하지만 동양챔피언은 시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