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현배 

옛날 알프스 산맥의 동남쪽 끝에 자그마한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은 기암절벽으로 뒤덮인 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왕은 어질고 현명했고, 백성들은 착하고 부지런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모두가 잘 먹고 잘살았다.

그런데 왕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망상에 빠진 것이다. 왕자는 늘 이런 말을 했다.

“달에 가고 싶어요. 달나라를 여행하고 싶단 말이에요.”

왕자는 자나 깨나 달에 갈 생각에 골몰했다.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를 잡아탈까? 아니야,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구름을 잡아타는 게 나을 거야. 독수리가 내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왕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궁전을 빠져나와 산으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걸으며 진달래꽃을 꺾었다. 진달래꽃을 한데 묶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왕자는 온종일 걸어 올라 산꼭대기 가까이 이르렀다. 산꼭대기에 구름이 걸쳐져 있는데, 구름 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왕자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구름 속에는 방이 있고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두 노인이 앉아 있었다. 왕자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알프스의 경치가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달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왕자는 크게 기뻐하며 이들을 따라 달나라로 가기로 했다.

구름이 달나라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자 왕자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들은 언제 달나라를 떠나셨습니까?”

“한 달 정도 되었어요. 달나라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오래 살 수가 없어요. 달나라에 비해 너무 어둡거든요. 한 달 이상 머물게 되면 달나라 사람들은 병으로 눕고 말아요.”

“달나라가 무척 밝은가 보죠?”

“그럼요. 산이며 들이며 할 것 없이 눈부신 은빛이에요. 워낙 밝아서 땅에서 온 사람들은 눈을 버리기 쉬워요. 달나라에서 한 달 이상 지내게 되면 장님이 된답니다. 그러니까 왕자님도 달나라에서 오래 지내지 마시고 일찌감치 땅으로 돌아가세요.”

세 사람을 태운 구름은 곧 달나라에 도착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왕자는 두 노인과 헤어져 달나라의 궁전으로 갔다. 궁전 앞에는 꽃밭이 있었다. 그런데 꽃들의 빛깔이 한결같이 은백색이었다.

꽃밭에는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궁전의 정원사였다. 정원사는 왕자가 갖고 있던 꽃다발을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있다니…. 공주님이 이 꽃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보아하니 이곳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저희 공주님에게 이 꽃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왕자가 좋다고 하자 정원사는 왕자를 궁전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달나라의 왕과 공주에게 데려다줬다. 왕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왕이 말했다.

“우리나라를 찾아주셔서 고맙소. 우리 궁전에 오래도록 머물러 주시오.”

“임금님, 고맙습니다.”

왕자는 왕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공주에게 진달래 꽃다발을 바쳤다. 공주는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이 꽃이 진달래꽃이라고요? 당신네 나라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있나요? 아, 그 꽃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요. 언젠가 저를 당신네 나라로 데려다주세요. 약속하시는 거죠?”

“약속합니다. 공주님과 같이 아름다운 분이 저희 나라를 찾아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왕자는 달나라에 머물며 공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달나라에 온 지 보름쯤 지났을 때 왕자는 자기 몸에 이상을 느꼈다. 눈이 형편없이 나빠지는 것이다. 그제야 왕자는 달나라로 실어다 준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달나라에서 한 달 이상 지내게 되면 장님이 된다고 했지? 빨리 알프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장님이 된다.’

왕자는 공주에게 알프스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공주는 자기도 왕자를 따라가겠다며 결혼하자고 청했다. 왕자는 너무 기뻐 공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공주! 나랑 같이 알프스로 가서 삽시다. 아름다운 꽃들을 가꾸며 단둘이 행복하게 삽시다.”

왕자는 달나라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구름을 타고 알프스로 돌아왔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궁전은 발칵 뒤집혔다. ‘달나라 병’에 걸려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왕자가 달나라 공주와 함께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어 주고, 두 사람을 위해 궁전에 신방을 차려 주었다.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꽃밭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두 사람은 하루하루가 기쁘고 즐거웠다. 24시간 함께 붙어 있어도 하루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한 달을 넘기고부터 공주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야위어 갔다. 공주한테는 알프스가 어둠침침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보이는 것은 시커먼 산봉우리뿐이었다. 공주는 몸져눕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달나라 공주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온 나라에 퍼졌고, 이 소식은 알프스로 여행온 달나라 사람을 통해 달나라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달나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에 가서 그 고생이구나. 공주를 달나라로 데려와야겠어.’

달나라 왕은 구름을 타고 알프스로 가서 왕자를 만났다.

“공주를 데려가겠네. 이 땅에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야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공주는 달나라로 가게 되었고, 왕자도 공주를 따라갔다.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져 산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공주는 달나라에 온 지 며칠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야윈 얼굴에 살이 오르고 예전처럼 쾌활해졌다. 그러나 왕자는 날이 갈수록 눈이 나빠졌다. 눈이 침침해서 보이는 것이 흐릿했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빨리 달나라를 떠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장님이 됩니다.”

왕자는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달나라를 떠나 알프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왕자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아내 없는 생활이 너무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왕자는 알프스 산속을 헤매다가 비를 피하려고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는 난쟁이들이 있었다. 난쟁이 나라의 왕은 성격이 활달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왕자는 그와 금세 친해져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까지 알프스 동부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인구도 하늘의 별처럼 많았지요. 그런데 힘센 이웃 나라에서 쳐들어와 우리나라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많은 백성이 죽고 뿔뿔이 흩어졌지요. 저는 살아남은 백성들을 거느리고 여기까지 흘러 들어와 동굴 속에서 살고 있답니다. 동굴 밖으로 나오고 싶지만, 우리가 발붙이고 살 만한 땅이 전혀 없어요. 아무도 우리를 받아 주려고 하지 않거든요.”

난쟁이 왕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제 이야기를 할까요? 저도 기구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왕자는 난쟁이 왕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난쟁이 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달나라 공주를 이곳에서 아무 탈 없이 살게 할 방법이 있는데 내 말을 따르시겠습니까?”

“그, 그게 정말입니까?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 대신 부탁이 있어요. 우리 난쟁이 나라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땅을 조금 떼어주십시오.”

“그 정도야 못 들어드리겠습니까. 제가 아버님께 말씀드려 당장 땅을 구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난쟁이 왕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달나라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지 못하는 것은 달나라에 비해 너무 어둡기 때문이라면서요? 특히 당신의 아내는 시커먼 산봉우리를 견디지 못해 달나라로 되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지 않습니까? 이곳 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을 눈부신 은백색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알프스의 산봉우리가 한두 개가 아닌데, 어떻게 은백색으로 만들겠다는 거지요?”

“그건 염려 마십시오. 우리 난쟁이들은 특별한 재주가 많답니다.”

왕자는 난쟁이 왕을 자기 나라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아버지인 왕에게 난쟁이 왕과의 약속을 설명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난쟁이 왕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산 하나를 통째로 드리지요. 그 안에 보금자리를 꾸미십시오.”

“감사합니다. 저희 난쟁이들은 그 산에 꼭꼭 틀어박혀 살겠습니다. 절대 산 밑으로 내려오지 않겠습니다.”

소원대로 보금자리를 얻은 난쟁이 왕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러고는 일곱 명씩 조를 짜서 백성들을 알프스 산맥의 각 봉우리로 보냈다.

왕자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궁전 근처의 한 봉우리에 가 보았다.

해가 지고 달이 뜨자, 산봉우리로 난쟁이 일곱 사람이 올라왔다. 그들은 빙 둘러서더니, 허공을 향해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다. 왕자가 보기에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왕자는 영문을 몰라 한 난쟁이에게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난쟁이가 손을 멈추고 대답했다.

“달빛에서 실을 뽑아 덮개를 짜고 있는 겁니다.”

“덮개라니요?”

“산봉우리에 씌울 덮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뭔가 확실히 보였다. 그것은 은백색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으로 짠 덮개였다. 난쟁이들은 덮개를 산봉우리에 씌웠다. 그러자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이 산봉우리뿐 아니라 모든 산봉우리에 덮개를 씌운 모양이었다. 알프스 산맥 전체가 은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왕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내와 평생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왕자가 궁전으로 갔을 때 달나라에서 보낸 사자가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자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지금 공주님이 이름 모를 병으로 앓아누우셔서 왕자님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왕자는 서둘러 달나라로 가서 공주를 만났다. 공주는 왕자를 보자마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병은 왕자를 보지 못해 생긴 상사병이었던 것이다.

“여보, 알프스는 이제 어둠침침하지 않아요. 산봉우리마다 달빛으로 짠 덮개를 씌워 달나라보다 더 환하고 밝아요. 같이 알프스로 돌아갑시다.”

왕자는 공주를 데리고 알프스로 가서 신혼 때처럼 궁전에서 살았다. 창문을 열면 은백색의 산봉우리가 내다보였다. 달나라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공주와 왕자는 서로 사랑하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다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신화 이야기 해설>

오래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사람들에게 달나라 땅을 팔아 온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달나라가 자기 것도 아니면서 버젓이 땅장사를 하다니, 봉이 김 선달 뺨치는 배짱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달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달에도 왕궁이 있고 백성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번 이야기는 달나라에 간 왕자 이야기다. 알프스 산맥의 동남쪽 끝에 있던 작은 나라의 왕자가 달나라 공주와 결혼해 지구와 달나라를 오가며 살았다고 한다.

왕자와 공주가 오래오래 같이 살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지혜로운 난쟁이 왕 덕분에 알프스에서 살게 되었다. <백설공주> 이야기에도 난쟁이가 나오지만, 참 착하고 순수한 난쟁이들이 다.

그런데 난쟁이들이 언제나 착하고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북유럽 신화나 옛이야기에는 난쟁이가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 난쟁이들은 사람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존재해 있던 요정이었다. 이들은 깊은 산속이나 땅속에 숨어 살면서 신들과 어울려 지내고, 마술을 부릴 줄도 알았다. 난쟁이들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도 있고 군대까지 두고 있었다.

난쟁이들은 자기들에게 잘해 주는 사람들은 친절하고 착하게 대했다. 마법으로 보물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들에게 못되게 굴거나 피해 입히는 사람들은 그냥 두지 않았다. 반드시 복수했다. 깊은 산속에 사는 난쟁이들에 비해 땅속에 사는

더 심술궂고 변덕스러웠다. 잔인한 복수도 서슴지 않았다.

옛날 유럽의 궁전에서는 난쟁이들이 많이 살았다. 이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비롯된 풍습이었다. 특히 18~19세기 러시아에서는 궁전에 수많은 난쟁이가 있어 왕이 직접 궁전에서 난쟁이 결혼식을 올려 주기도 했다.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왕자는 집념이 대단하다. 달나라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고 달나라를 여행하겠다는 꿈을 끝내 이루어낸다. 18~19세기에도 과학자들은 달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천체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는 과학자들조차 달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프랑스의 천문학자 플라마리옹은 달의 분화구를 오랫동안 관측하고는 거기서 사람이 재배하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천왕성을 발견했던 영국의 유명한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달뿐 아니라 다른 별들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와서 1969년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함으로써 달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음을 밝혀냈다.

달보다도 알프스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알프스는 로마와 카르타고가 맞서 싸운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최초로 넘었다는 곳이다.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9만 명의 보병과 1만 2천 명의 기병, 그리고 37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었다. 하지만 험한 산세와 갑작스러운 눈사태 등으로 절반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그 뒤에도 알프스는 ‘악마가 사는 곳’으로 소문나 많은 사람이 두려워했다. 그러나 알프스는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등에서 이탈리아까지 유럽 남북을 잇는 고개였다. 특히 중세에 로마로의 순례 여행이 활발해지면서 중요한 길이 되었다. 그리고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많은 외국인이 공부하러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에는 수많은 필사본 책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또한 상업이 발달하면서 알프스는 상인들이 이용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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