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한 지역 교육청이 공문을 통해 드라마를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 공문의 내용은 청소년 불가인 특정 드라마를 보고, 학생들이 드라마 속 게임을 모방하는 일이 학교 현장에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공문을 교육기관이 보낸 사실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보도를 통해서 처음으로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을 안 이들도 많다. 더구나 이런 보도 기사 때문에 오히려 게임이 더 확산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공문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게임의 내용도 간단하게나마 요약해 설명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문제로 삼는 것은 학급을 계급화하면서 친구들을 이용하고 도구화하는 설정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웬만하면 모두 공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제작진은 이런 드라마를 만들었을까? 제작진은 아마도 드라마를 통해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학교 폭력의 실상에 대해서 환기를 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더는 드러나게 학교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더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은밀하게 자행되고 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괴롭힘은 더욱 증가했다. 이 드라마에서 앱을 활용한 게임 방식으로 공식적인 명분을 통해서 괴롭히면서 권능을 취하는 이들을 부각한 배경일 것이다.

또한,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권력과 그 주변에 카르텔을 형성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논파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계급과 계층 그리고 부와 권력이 그대로 피라미드 게임이 만든 학교를 확대 강화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드라마에서는 어렵지만, 희망은 있어 보였다. 전학생인 주인공은 피라미드 게임의 희생자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고민 끝에 그 게임을 없애기로 마음먹는다. 이를 위해 자신이 먼저 희생자 등급에서 벗어나고 하나둘씩 동맹군을 만들어 나간다. 물론 그 과정은 지난(持難)하고 힘겨우며 고도의 전략 대결은 물론 심리 싸움을 구사해야 했다. 결국에 사람들이 누구를 응원할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썩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드라마를 보면 사람은 물론 인간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현실을 너무 낭만적이거나 순수하게 바라보는 인식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피라미드 게임이 고안, 진화했고 그것을 거꾸로 없애려는 주인공의 행태도 설정된다.

물론 세상을 낭만적이고 순수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특히 웹 소설, 웹드라마 그리고 OTT 드라마에는 이런 관점의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러한 설정이 주목을 받는 것은 제도 교육이나 우리 사회의 겉과 실제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구현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극단적이고 희소하다.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내용처럼 이뤄질 가능성은 현실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선 같은 반 친구 가운데 학교 이사장의 딸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더구나 그 딸이 자신의 입지를 이용해서 같은 반 학생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빌런이 될 가능성도 더욱 드물다. 무엇보다 그 딸은 사이코패스 수준이다.

그럼 아예 의미는 없을 것일까. 갈수록 지능화되는 학교 폭력 문제 특히 놀이 형식을 빌려서 이런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은 엄존한다. 교육청의 공문 한 장이 이런 현실에서 어떤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방식이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으며, 이에 공문이 예방적 조치에 관한 관심일 일으켰는지 모른다. 다만, 관심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을 적용하면, 학교 폭력에서 제도 교육이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학교 폭력이 여전한 현실을 단순히 그 안의 개인 특히, 교사만의 한계나 결핍된 인성의 문제로 몰아갈 수도 없다.

해방 이후 국가 정책적으로 사립 학교가 매우 많아진 상황에서 이미 예고된 모순이었다. 즉 국공립학교가 기본이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결국 피라미드 게임을 빚어내고 강화하는 현실이 있다면, 이에 대응해 교육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근본적인 방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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