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급조 자인한 꼴’ 지적 나와

국방장관 만남에 ‘증거인멸’ 주장도

‘총선용 귀국쇼’ 논란 확산될지 주목

(영종도=연합뉴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 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정부 회의 일정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들어서고 있다. 이 대사는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 결정으로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한 지 11일만에 귀국했다. 2024.3.21
(영종도=연합뉴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 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정부 회의 일정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들어서고 있다. 이 대사는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 결정으로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한 지 11일만에 귀국했다. 2024.3.21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해병대 채 상병 순직 관련 수사 외압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지난 21일 귀국한 이유로 내세운 방산 협력 주요 6개국 공관장회의가 당초 예고한 25일 아닌 28일 열렸다.

외교가 안팎에서 이 대사가 귀국한지 일주일 만이자 예고했던 당일보다 사흘 뒤에야 회의가 열리자 그간 회의를 급조했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는데 이를 자인한 꼴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급조된 회의였던지라 이 대사 등 6개국 대사들을 현지 사정 등을 감안하면 동시다발로 불러들이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날 국방부와 외교부, 방위사업청 등이 동시다발로 쏟아낸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이를 엿볼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총선용 귀국쇼’ 논란 등 파장이 확산될지 주목된다.

◆오늘 열린 주요 6개국 공관장회의

외교부에 따르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이종섭 대사 등이 포함된 6개국 공관장회의를 주재하고 한국과 관련국 간 국방·방산 협력 현황과 각국과의 주요 현안과 사업 추진 등 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했다.

이 대사 귀국 일주일 만에 공관장회의가 열린 것인데, 다만 전날 외교장관과 국방장관 등이 방산 관련 내용으로 이 대사를 비롯한 재외공관장들을 개별적으로 접견한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는 보도자료까지 내놨다는 점에서 굳이 또 회의를 가질 필요가 있었느냐는 일각의 비판이 제기된다.

외교부는 전날 오전 이 대사를 포함한 재외공관장들과 외교장관의 접견 사실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조 장관은 지난 22일 이 대사를 접견했다. 그러다가 사흘 뒤인 25일에서야 임훈민 주폴란드 대사, 26일 류제승 주아랍에미리트대사와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각각 접견했고,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주재 대사와 만났다.

국방부도 신원식 장관이 21일 이 대사, 25~27일 5개국 대사들을 만나 당면 현안과 중·장기 국방·방산협력 강화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고, 방위사업청도 석종건 청장이 25~26일 6개국 대사들과 방산수출 관련 면담을 했다고 전했다. 이는 이날 개최된 공관장 회의 관련 공식 업무라 홍보에 나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외교부 등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 대사 등 6개국 대사들의 국방·방산 활동을 담은 보도자료를 한꺼번에 배포한 건 이 대사의 귀국이 공무 때문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등 결국 이 대사 귀국을 위한 급조된 회의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여론용’이라는 분석이다.

◆관계부처 일정 상세 공개 되려 역효과

하지만 이런 세세한 설명이 되려 방산 협력 공관장회의가 급조된 회의였음에 무게를 실어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사의 공무 활동을 강조하려 했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라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면 각기 접견 일정이 달랐던 건 귀국 시점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강조점이다.

일부에선 이종섭 대사를 제외한 5개국 대사들과 장관 간의 연이은 만남도 ‘이 대사 구하기’ 일환으로 급조된 게 아니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첫 단추가 거짓말로 시작되니 거짓이 거짓을 계속해서 양산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 대사는 앞서 지난 10일 호주에 부임해 ‘수사 회피’ 의혹이 일었으나 그냥 뭉개려고 했다가 4.10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11일 만인 21일 돌연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을 이유로 귀국했다. 갑작스럽게 이유를 들이밀다 보니 각국 재외공관장과 조율이 될리 만무했다는 것이다.

이 대사와 국방장관과 외교장관 등과 접견이 21일과 22일이었지만 다른 나머지 대사들과의 회동 시점이 25일인 것을 고려하면 이런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지난 20일 외교부가 관련 보도자료를 내면서 공관장회의를 “25일부터 개최할 예정”이라고 명시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동한 셈이다.

그간 외교부는 “재외공관장 회의 일정과 내용은 원칙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 관련 일정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러다가 26일에서야 일부 일정을 공개했는데, 이번처럼 특정 대사들이 귀국해 장관들과 만나는 회의도 처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급조된 회의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시각인 다수인 이유다.

◆이종섭, 나흘 앞서 들어온 배경 있나

문제는 또 있다. 이 대사가 21일 귀국했고 귀국 사유로 든 25일 공관장회의보다는 나흘을 앞서 들어왔다는 것인데 이 기간 한국에 체류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공무 목적으로 귀국하는 공관장이라면 건강검진 등 개인적 사정이나 유관 부처와 협의 일정이 있으면 입국 일자를 며칠 앞당길 수 있다지만, 이 대사의 경우 그 사정이 무엇인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사흘을 더해 일주일 뒤에야 공관장회의가 열린 상황과 맞물려 논란에 불을 지폈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즉답을 피하는 등 말을 아꼈지만, 25일 이전에 이 대사가 국내에서 다른 공무를 수행한다면 공무 귀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그러나 공무 수행 여부를 사후적으로 판단해서 공무 귀국 기간을 산정하는 것은 편의주의적이란 비판이 많다.

더군다나 이 대사의 그간 공개된 일정을 보면 급조된 억지 일정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방산업체 찾아다니는 게 대사 임무냐는 것이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회피가 아니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기기묘묘한 일정을 짜내는 등 이 대사 한 사람을 위해서 관계부처가 총동원된 셈이다.

관계부처가 죽일 맛이라는 전언도 나온다. 어쨌든 이처럼 관계부처가 총동원돼 보도자료를 뿌리는 등 일정 공개로 이 대사 구하기에 나섰지만 역효과가 났다는 시각이 많은 가운데 그렇다면 이 대사가 이렇게 급하게 귀국한 배경에는 어떤 피치 못할 일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 대사가 귀국 당일 신원식 국방장관을 만난 사실을 꼬집었다. 정의당 김종대 전 의원은 ‘시사인’ 유튜브에 출연해 “통상 군사법체계는 일반 사법체계와 달리 국방 수장의 통제하에 있다. 재판 개입은 못하지만 인사나 예산 등으로 통제할 수 있는 등 결국 장관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국민이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인지 군사 재판 분위기가 이 대사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등 이상하게 돌아가자 증거인멸, 즉 말맞추기 등 밀담을 위해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호주 2+2 준비'도 통상 관행과 배치

또한 이 대사가 방산협력 공관장회의 이외에 다른 귀국 사유로 든 한국과 호주의 ‘외교·국방 장관 2+2 회의’ 준비 업무도 통상적 관행과 배치된다는 평가다. 호주에 있어야 할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질타라 이 역시 총선을 위한 가짜 귀국쇼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과 호주는 차기 외교·국방 장관 2+2 회의를 조만간 호주에서 열기 위해 막바지 일정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호주 2+2 회의는 지난 2021년 이후 열리지 않았고 정례회의도 아니다.

당초 양국은 한국에서 지난해 10월 회의를 여는 일정을 최종적으로 잡아뒀다가 중동사태 여파에 따른 호주 측 사정으로 막판 취소했다. 원래 이번엔 호주에서 개최될 순번이었기 때문에 호주에서 여는 방향으로 다시 조율이 이뤄지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종섭 대사의 전문 분야인 국방과 방산 신규사업 발굴 등 (이 대사가 귀국해 협의할) 구체적 사안이 많을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 큰 외교행사가 있을 경우 외교부 본부 등 국내에서는 의제 등을 준비하고, 재외공관에서는 주재국 당국과 협의를 맡는 것이 통상적인 역할 분담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당국자의 언급은 기존 관례와도 맞지 않다는 것인데, 호주에 있는 한국 측 외교 사령탑이 중요 행사를 앞두고 장기간 자리를 비운 셈이어서 현지 당국과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표방하고 있어 호주와의 안보협력인 2+2회의 자체는 은 의미가 있다”면서 “그럼 재외공관장인데 호주 측과 협의하고 조율해야지 여기 왜 와 있는 것이냐”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2+2회의 관련해 아직까지 일자 장소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것 없이 감감무소식”이라며 “일각에선 없는 회의를 준비하러 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생겨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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