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성 전 명지전문대 겸임교수/법학박사

바야흐로 총선 시즌이다. 새로운 국회 구성을 위한 제22대 총선이 대통령 임기 2년 차와 맞물리면서 정치적 풍향계는 갈수록 시계 제로다. 매일매일의 지역구 판세분석이 바뀔 정도이니 4월 10일 투표 당일까지 그 어떤 예측도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해야 할 다급한 사정에 처한 양대 정당과 후보들은 온갖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물론 국민 입장에서는 잔칫상 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공약은 국가재정에 기반한다.

정부 재정편성 원칙인 ‘양출제입’은 ‘나가는 것을 헤아려 들어오는 것을 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부가 사용할 곳을 먼저 정하고 그만큼 세금으로 거둔다는 의미를 어렵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공약이라는 잔칫상은 알고 보면 국민의 호주머니로 계산해야 한다는 말이 되니, 도대체 무슨 반찬과 요리로 어떻게 밥상을 차리겠다는 것인지 눈 부릅뜨고 봐야 한다.

여당과 정부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연장과 신설,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 산업은행 지방 이전, 제2 대덕연구단지 조성, 경기 남부권 반도체 고속도로 등 지역거점 도시에 대한 기반시설 확충과 지방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 투자사업의 면면을 보면 현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공약 사업의 하나하나가 오랫동안 지역의 현안이었던 만큼 실현 시기의 문제가 있더라도 정부의 계속성을 고려하면 공약으로서 공론화되었된 점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를 보고 있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가의 보도를 드디어 뽑았다.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이라는 민생회복지원금 명목으로 현금살포카드(이전지출)를 제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이 논평을 하지 못한채 입을 다물고 있다고 하니 그보다 더한 공약이 나올까 봐 우려스럽다.

현금살포 공약은 경제학의 승수이론에 근거를 둔다. 정부가 돈을 풀어서 유효수요를 창출하면 풀려나간 돈의 몇 배에 이르는 경제효과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쉽게 말해 돈을 살포하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한다. 이러한 소득증가분은 전자제품구입이나 외식 등 자연스러운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 그 결과 시장은 활기를 띠고 또 다른 가계의 소득과 소비를 연쇄적으로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 운영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일시적 소득이 증가하면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 입장에서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이 높을수록 한계소비성향이 낮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보다 더 나은 지출을 위해 화폐를 저축한다. 이는 총수요 증가로 연결되어 물가를 상승시켜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금리가 오른다는 뜻이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총수요를 오히려 줄어들게 하는 ‘구축효과’가 발생하여 현금살포 방식의 효과를 상쇄시킨다. 오히려 부동산과 전세 가격 폭등을 야기할 수 있음을 우리는 코로나 국면에서 이미 경험했다. 물론 저소득층은 한층 어려운 경제 상황에 내몰릴 수 있게 된다.

현금살포 공약을 위한 재원 조달을 위해 정부투자 서비스 부문의 축소 또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거나 현 세대에 세금을 올려서 충당할 경우에는 소득효과와 소비효과는 더욱 위축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현금살포 방식인 이전지출의 경우에는 모든 국민에게 뿌릴 것이 아니라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 맞추어서 보다 충분히 두텁게 지원하는 방안이 타당하다는 목소리가 있어 왔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면 일시적 소득이 증가하는 반면에 한계소비성향은 낮아져서 그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금 공급 증가로 인하여 금리상승에 따른 생필품 물가와 주거비용 인상으로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정부사업 확대방식은 정부지출을 통해 인력을 채용하거나 물품을 구매하는 식의 소비형태로 집행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건물, 도로, 철도, 항만 등을 건설하는 투자방식으로도 실현할 수 있다.

정부가 1조원의 토목공사에 투자한다면 이 사업에 참여한 기업의 매출액이 1조원이 되고 매출원가와 영업비용을 통해 노동자 등 시장 참여자에게 분배되어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소득의 증가분은 또다른 투자와 소비로 연계된다. 이러한 연쇄반응에 따른 재정승수효과는 이전지출(현금살포)보다 높게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살포하면 돈의 흐름이 정체하는 구간에서 말썽을 일으킨다. 시장의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일하게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돈이 일하면’ 기업과 사람을 움직이고 유무형의 자본을 형성하며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추가적인 안정된 소득원 확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재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형성된 재원이다. 일부 정치세력이 당장 눈앞에 놓인 실익을 얻고자 쉽게 쓰일 돈이 아니다. 국가 경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돈’으로 활용해야 한다.

‘돈’ 준다고 하고 ‘돈’ 생긴다는데 이를 싫어할 국민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치적 대우를 받는 법이다.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무지하고 부패한 국민은 선거가 끝난 뒤 그에 걸맞게 다스려질 것이다. 정치의 난맥상은 어쩌면 어느새 포퓰리즘에 길들여진 우리 탓에 기인한지도 모른다. 이제는 국민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