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총격 참사 배후 공방
러 “범인들 우크라 도주 계획”
우크라 반발 “비난 돌리려 해”
美, 러에 IS 테러 가능성 경고

23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100명 이상이 숨진 러시아 모스크바의 테러 사건의 배후를 두고 국제사회가 갈라질 조짐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하면서 미국 등 서방은 IS의 범행이라고 판단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2년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테러 공격에 대한 첫 공개 논평에서 IS가 공격을 자행했다는 주장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 테러 사건의 범인을 모두 체포했다며 이들이 우크라이나로 도주할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서 범인들을 자국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창구를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도 무장괴한들을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서 체포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직접적으로 지목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측에 배후가 있으며 이를 조사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암시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준비했다는 창구나 우크라이나가 배후라는 다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텔레그램 성명 영상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배후로 우크라이나가 거론된 데 대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24.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텔레그램 성명 영상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배후로 우크라이나가 거론된 데 대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3.24.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주장을 부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푸틴과 다른 깡패들이 비난을 돌리려는 전형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IS가 배후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IS 모두 이번 범행을 저지를 동기가 있지만 증거만 놓고 보자면 IS 배후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이번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한 곳은 IS 중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이다.

한 미국 당국자는 이날 워싱턴 포스트(WP)에 “미국은 IS의 주장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간 ISIS-K는 아프간, 체첸, 시리아 내전 등에 개입한 러시아에 불만을 품어왔으며 2000년대 벌어진 주요 테러의 배후들도 IS 계열의 극단주의 단체나 코카서스 지역의 체첸 민족주의자들이 지목돼왔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야당과 IS에 대항하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함으로써 시리아 내전의 판도를 바꿨다.

ISIS-K는 이날 테러 당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공개했다. 90초 남짓의 영상에는 해당 공연장에서 한 테러범이 다른 총격범에게 신호를 보내고 총격을 가하는 장면이 담겼다. 또 ISIS-K는 이날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총격범 4명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앞서 러시아 정부에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다고도 밝혔다. 백악관은 이날 미국 정부가 이달 초 러시아와 모스크바에서 계획된 공격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으며 지난 7일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은 미국인들에게 공개 권고문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대사관이 권고문을 발표하기 몇 시간 전 FSB도 IS의 모스크바 회당 공격을 저지했다고 밝혔다.

배후에 대한 주장이 갈리자 서방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방어하는 양상이다.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IS가 주장한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으며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를 겨냥해 “이번 공격이 폭력과 침략을 확대하는 구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FSB가 체포한 범인들 조사에 나서면서 당분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을 중심으로 모스크바 테러의 배후 공방이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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