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의 둥근 부분을 보주
사방으로 뻗친 꽃잎들은
보주로부터 발산하는 기운

글, 사진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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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1-1) 청자 상감 보주문 병, 높이 30.3㎝,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7.01
ⓒ천지일보 2022.07.01

고려청자에 상감기법으로 표현된 국화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과연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그런 국화일까. 이미 강조해온 것처럼 도자기에서는 현실에서 보는 꽃은 일절 없다고 주장하면서 철저히 증명해왔다. 그렇다면 이른바 고려청자에 보이는 갖가지 국화문은 국화가 아닐 것이다. 

우선 고려 상감청자 병에 보이는 문양을 살펴보기로 한다(도 1-1). 병의 표면 중심부에 한눈에 국화 절지문이 보이지만 국화가 아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보는 많은 꽃들을 두루 관찰해보면 대부분 모두 국화 모양으로 중심의 씨방으로부터 사방으로 꽃잎들이 발산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필자가 좋아하는 개망초꽃이나 달맞이꽃도 그러면 국화라 불러야 하는가(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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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1-1) 개망초꽃(왼쪽)과 달맞이꽃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천지일보 2022.07.01

개망초를 보고 국화라 부르지 않지만 많은 꽃들이 그런 모양이니 모두 국화라고 부를 수 없다. 영화(靈化)된 세계에서는 중심의 둥근 부분을 보주라고 부르고 사방으로 뻗친 꽃잎들은 보주로부터 발산하는 기운이라 말한다. 보주 표현에는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단순한 원일 수도 있고, 작은 보주들이 고려청자 병에서처럼 점을 서너 개를 넣을 수도 있다(도 3-2). 이 단계도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다시 말하면, 중심의 보주로부터 강력한 영기문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데 바로 그 영기문을 형상화시킨 것이 꽃잎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것이 우리가 이른바 국화라고 잘못 알고 있는 꽃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꽃은 이러한 형상을 띠는데 어찌 항상 국화꽃이라고만 부르는가. 고려청자에 표현된 국화라는 것은 일체가 국화가 아니고 보주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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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2) 보주문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7.01

다시 문양의 전체 구성을 살리면 제1영기싹 파상문 모양이 위로 솟구치고 좌우로 보주가 연이어 생겨나고 맨 위에는 봉오리 즉 보주들이 맺히고 있다(도 1-2). 그런데 보주 밖으로 추상적 모양의 녹색 잎 같은 것들이 몇 점들 있는데 이것은 보주에서 다시금 발산하는 기운을 가리킨다. 마치 모란 모양 영화(靈花)와 같은 원리다.

그러므로 국화문도 영화라 불러야 하며 역시 구태여 국화 모양 영화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영화라 부르고 눈으로는 그 여러 가지 모양을 보면 되지 그 영화의 무한한 변주인 갖가지 모양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고 붙일 수도 없다. 말하자면 만병에서 솟구치는 무량한 보주로 이것은 만병으로부터 무량하게 솟구치는 ‘도자기→만병→보주’의 본질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어서 필자의 보편적 이론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 위에 영기문 띠가 있다.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이다. 맨 밑부분에도 영기문 띠가 있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맨 밑부분의 영기문 띠에서 고려청자가 화생하고 이 중간 부분의 영기문 띠에서 그 윗부분이 화생한다. 그 띠 위에 구름이 있는 천공에 선학이 날고 있다. 그런데 구름 모양은 구름이 아니라 영기문이다. 한 번 모두 그려 보세요. 즉 선학이 영기화생하는 역동적 광경이다. 지속적으로 영기화생하는 과정이며 우주의 광대한 광경을 표면에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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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1) 청자 상감 보주문 합, 지름 5.6㎝,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7.01

그다음 작고 납작한 고려청자합을 살펴보자(도 2-1). 상감기법이란 청자라는 바탕 위에 흑백의 흙으로 문양을 파내고 메꾸어 문양을 돋보이게 한 기법으로 잘 보이게 했어도 이 역시 채색분석을 해보아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필자는 채색분석 해보아야 작품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역설해 왔다. 혹시 독자들 가운데 채색분석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보신 분이 계신가요. 아마도 많은 분이 실천하여 작품을 채색분석해 보셨다면 그런 분은 역사상 문양을 원리에 따라 읽어보신 몇 분 안 되는 명예를 차지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역사적으로 보아서 아직 작품을 한 점도 읽은 적이 없는 불행한 경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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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2) 뚜껑 상면 보주문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7.01

프린트하여 펜으로 투명지를 대고 밑그림을 그린 다음에 시작점을 찾아서 눈으로 파악하기 쉽게 단계적으로 여러 색으로 칠해가면 된다(도 2-2). 중심의 큰 원 안에 마치 연꽃문양 비슷한 문양이 있다. 가장 중심의 작은 붉은 원이 시작점이다. 그리고 사방으로 꽃잎 같은 모양들이 뻗어나가고 있으며 각각 그 안에 작은 보주가 3개씩 있으나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주변에 연이은 보주들로 이어진 둥근 띠가 있다. 마치 수막새 같다. 그 밖으로 학계에서 흔히 부르는 국화당초문이 둥글게 표현되어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당초문이란 용어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당초문이란 문양은 원래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으로 만물생성의 근원을 이룬다.

그 끝마다 둥근 보주에서 기운이 발산하는 형상들이 있다. 보주 영기문이다. 초록색들 점 같은 것은 제1영기싹들의 과감한 변형들이다. 그 둘레에 역시 연이은 보주띠를 이룬 것을 돌리고 그 밖에 역시 파악하기 어려우나 보주문 영기문을 둥글게 돌렸다. 그러므로 잘 살펴보면 중심의 작은 보주로부터 점차적으로 확장해 가는 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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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1) 청자 상감 보주문 합, 지름 9.9㎝,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7.01

그 다음에 비슷한 작고 납작한 합을 한 점 더 살펴보자. 그 뚜껑 윗면에 매우 정교한 갖가지 보주문이 상감으로 표현되어 있다. 매우 아름답다(도 3-1).

위에서 본 문양을 그려서 채색분석해 보면 이 문양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도 3-2). 중심부에 연이은 보주 띠 안에 보주 안에 4개의 작은 보주가 표현되어 있는데 개수는 3개건 4개건 5개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보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방으로 추상적인 잎 같은 모양이 있는데 이 역시 보주로부터 발산하는 기운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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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2) 뚜껑 상면 보주분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07.01

그 밖으로 연장해보면 큰 원형 보주가 그려지는데 이것이 무량보주를 나타낸다. 이 조형은 설명하려면 매우 길므로 훗날을 도모한다. 각각 그 안에 중심의 보주문과 똑같은 것을 배치했다. 그 사이에 작은 보주를 5개씩 배치했다. 그 모든 것을 다시 작은 보주문 띠로 둘렸으며 그 밖에는 연꽃잎 모양들에 역시 3개씩 작은 보주를 부여하여 마치 불상 대좌를 보는 듯하다. 중심으로부터 점점 확장하여 가는 갖가지 보주문의 전개를 보면 마치 이 전체가 압축된 보주의 세계를 웅변하는 듯하다. 놀라운 ‘보주 만다라’다!

그런데 이런 정교하고 복잡하며 아름다운 문양 표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상감기법 덕분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금속기에서 보이는 상감기법을 채용했다고만 말하고 끝이다. 그러나 이런 상감기법이 아니면 이런 복잡하고 정교한 문양이 돋보일 리 만무하므로 고려 장인들은 문양의 중요성을 통감하여 상감기법을 썼다고 말해야 한다.

상감기법은 금속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전칠기에도 있으니 구태여 금속기 예를 들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고려장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은 고려 장인들이 문양의 중요성을 크게 자각하여 흑백의 상감기법으로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양을 돋보이게 하려고 창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단순히 금속의 상감기법을 빌려온 것이 아니다.

고려청자는 천하제일이라 중국에서 찬탄 받았으나 현금의 연구성과는 천하제일이 아니다. 이 연재는 고려청자가 왜 천하제일인지 증명해 가고 있다. 지금까지 30회에 이르고 있다. 고려청자는 기형뿐만 아니라 문양(=영기문)도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문양을 더 뚜렷하게 나타내려고 창조력을 발휘하여 상감기법으로 세계 도자사에서 매우 중대한 국면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송나라가 한국의 고려청자를 모방하지 않은 것은 그 까닭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하나는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다른 또 하나는 자기의 종주국이 변방인 고려의 새로운 창조를 모방할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고려청자의 문양은 모두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영기문으로 맨 밑 부분에서 화생한 기형으로 만병이며 보주임을 이미 증명해 보였으며, 그렇게 해서 화생한 만병 표면에 가득 찬 영기문들은 모두 만병 안에 가득 찬, 영기문들이 만병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광경을 분명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상상을 넘어서는 고차원의 상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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