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문양은 고차원의 조형
무량한 둥근 점, 대우주 표현
분청자기, 조형언어의 교과서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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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1. 분청사기 접시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도자기에 표현된 국화가 보주임을 몰라도 지구는 자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사고는 멈춘다. 모란이 보주임을 몰라도 태양은 뜨겁게 매일 뜬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차가워진다. 포도송이가 무량보주임을 몰라도 포도 떨기는 탱탱하게 영근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영글지 못하고 희망도 없고 꿈도 없다. 보주를 몰라도 꽃은 핀다. 그러나 사람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보주를 그저 보석이라 알고 있어도 역사는 굴러간다. 그러니 인간의 창조력은 얼어붙으며, 대우주의 기운은 회전하되 순환은 멈춘다. 근원적인 오류가 많으므로 학문과 예술은 퇴보하고 있다. 오류가 일상이 되어서 오류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 분청자기라고 부르자
우선 용어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고유섭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 불렀는데 그 명칭을 줄여서 부른 것이 ‘분청사기(粉靑沙器)’다. 즉 표면을 백토로 분장했고 색상은 회청색이란 뜻이다. 요즘 ‘분청자’라고 부르는 전공자(윤용이 교수)가 있고, 단지 ‘분청’이라고 부르는 분청사기 연구의 권위자(강경숙 교수)도 있어서 용어에 혼란이 있다.

예를 들면 ‘분청자 선각 어문 편병’이라든가, ‘분청상감 초화문 호’ 등처럼 명명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건데 매우 다양한 문양의 표현기법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특색은 “흑회색 태토 표면을 ‘백토분장’한다”는 것이다.

백토분장은 어두운 바탕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문양을 다양하게 표현하려는 의지의 발로이다. 그래서 좀 길지만 <백토분장>이란 용어가 어떨까 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분청사기란 말에서 사기라고 하면 낮추는 어감이 있으므로 <분청자기>라 부르기로 한다.

제37회에서 다룰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실에 가면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분청사기 접시다(도 1-1). 그래서 대개 그냥 지나치기 쉽다. 조선 초기에 다수 베푼 기법인 ‘인화문(印花文)’기법으로 표현된 <꽃을 찍은 문양 접시>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꽃이라 하는 것은 막연한 꽃이다.

지금 도자기 연재에서 세계 도자기 연구사에서 세계의 전공자들이 모두 지나쳤던 문양을 중요시하여 오히려 그 문양들이 주체임을 설파해 왔다. 그래서 문양에서 도자기 형태가 생겨나고 도자기의 개념이 형이상학적인 만병(滿甁)이고 더 나아가 모두 보주(寶珠)임을 증명해왔다.

더 나아가 그릇 안에 가득히 들어있는 만병(滿甁) 안에는 보주에서와같이 바다같이 끝을 모르는 물이 가득 차 있다가 밖으로 넘쳐나서 흐르면서 영기문으로 표현되어 도자기 몸 표면에 가득 표현되어 있음도 증명해 보였다. 그러면 그 분청 인화문 접시에 빼곡히 찍은 꽃이나 둥근 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자기에는 아무 의미 없는 문양은 없다. 그 문양들이 중요한 상징을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고차원의 조형’임을 밝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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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2. 중심부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그 작품을 채색분석해 보자. 그 인화문 접시 중심에 빨간 보주가 있고 사방으로 기운이 뻗어나가고 있다. 그 밖으로 다시 각진 긴 무늬가 넓게 확장하고 있어서 이중으로 보주를 나타낸 셈이다(도 1-2).

지금까지 항상 강조해왔듯이 채색분석이란 방법론으로 분석해 보지 않으면 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필자는 조형예술작품을 세계에서 최초로 읽어낸 학자다. 분청자기 접시는 두 가지 색으로만 나타내고 있어서 채색분석하지 않고는 필자 자신도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색으로 접시의 문양을 분석해 나가 보니 중심의 보주에서 사방으로 확산하여 가는 광경이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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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3. 전체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그런데 그 이중 보주문 밖으로 자디잔 둥근 모양들이 중심으로부터 사방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맨 바깥쪽의 테두리에서 굵은 선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마무리하고 있다(도 1-3). 그 무량한 둥근 점은 아무리 작아도 대우주의 축소판이란 것을, 1년 반 동안 연재를 정독해온 분들은 금방 알아보고 크게 놀라리라. 이런 보주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필자는 심혈을 기울여 왔다.

보주로부터 사방으로 끝없이 확산하여 가는 형상은 장엄하다. 한갓 그릇으로 인식하고 있으면 이러한 철학적 사색은 불가능하다. 채색분석의 위력을 새삼 절감했다. 무량한 보주 밑그림을 그려서 채색분석 하기를 이틀째, 고요한 밤 8시 넘어 작업을 접으려는데 문득 인화분청 접시가 대우주를 표현한 <만다라>로 느껴졌다! 분청자기를 채색분석하는 까닭은 옛 장인의 의도를 좇으려는 마음에서다. 단지 추체험을 넘어서서 바로 그 장인이 되어 원래 의도를 알려고 함이라. 

작은 둥근 모양들을 보주라고 알면 이렇게 신세계가 펼쳐지지만, 국화문이라거니 인화문이라고 말하면 모든 상징이 사라지고 만다. 조선 초기 분청사기 상감인화문의 둥근 모양들이 보주를 상징한다는 것은 이미 고려청자 연재 제31회, 제32회, 제33회에서 증명했지만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도자기 전공자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전공자들을 탓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의 도자기 전공자들이 모두 함께 오류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도리 없는 일이다. 필자 또한 수십 년 걸려 보주의 실상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선학들의 뒤를 이어 그대로 따랐으리라.

조선왕조(1392~1910년)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통해 왕조가 바뀌고 고려의 불교를 지양하여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통치하려 했다. 세종대왕의 치세(1418~1450년) 때에 모든 민족문화의 제도를 완성하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세종 25년에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하고 세종 28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여 우리가 지금 한글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세종대왕의 위업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으리라. 그런 세종연간에 분청자기 상감인화문 자기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어떤 교수는 분청자기를 고려청자에서 연결고리를 찾으려 하고 있으나 이런 역사적 변혁기의 대세로 볼 때 ‘분청자기 상감인화문 자기’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유교 이념을 밑바탕으로 삼아 성립되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든지 나라가 쇠망하려 할 때는 문화예술도 퇴락해지는 법인데 고려청자는 왕실용으로 출발하여 사대부들도 향유했던 귀족적인 일종의 사치품이기도 해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새 왕조에 어울리는 도자기가 아니었다.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어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급한 때에도 강화도의 고려왕들은 최고급의 고려청자를 즐겼으니 사치품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어찌 고려왕조의 쇠락한 고려청자와 연결시키려 하는가. 새 왕조의 출발에 걸맞지 않다. 분청사기 상감 인화문 그릇들은 도자기의 새 장을 열었다는 것을 채색분석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분청사기의 문양의 놀라운 세계로 들어가 보았다. 작은 보주로만 펼쳐진 작은 접시는 무한한 대우주의 세계였다! 비록 작은 접시지만 매우 당당했다. 그리고 ‘백토분장’했기에 청자나 백자에 비해 훨씬 다양한 표현기법이 가능해졌음을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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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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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1-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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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1-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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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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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1.04

태토와 유약 등 고려청자와 비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고려청자와 달리 전국에서 제작되어 왕실, 관아, 서민도 사용할 수 있었던 조선 고유의 도자 예술이었다. 물론 고려청자의 국화문을 보주문(寶珠文)으로 인식하게 되고, 조선 인화문도 보주문으로 인식하게 되지만, 분청자기의 보주문의 놀라운 표현방법은 고려청자에서와 비교해보면 크게 차원이 달라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고려청자의 합(盒)에서 흔히 보이는 보주문의 몇 가지 예를 추가해서 보여드린다(도 2~도 5). 사람들은 보주의 실상을 알지 못하여 분청자기의 놀라운 상징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조선 <분청자기가 조형언어의 교과서>임을 증명하는데 힘차게 함께 걸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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