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맨 앞에서 질주하는 사람이 되레 쫓기는 심경이다. 마라톤을 비롯한 중장거리 달리기에서 특히 그렇다. 선두를 달리며 쫓기는 선수보다 2, 3위로 달려가며 열심히 쫓아가는 선수가 오히려 낫다. 마음도 편해 오히려 경기가 술술 잘 풀린다는 얘기다. 선두를 질주하며 오버페이스하던 선수가 돌연 중도하차해버린다. 그 후 결승점이 가까워지면 2위 그룹의 다크호스가 치고나와 우승한다. 프로골프 시합도 첫날 1위를 기록한 선수가 4라운드 내내 선두를 유지하다 우승트로피를 안는 경우는 많지 않다. 탄핵정국으로 대선시계바늘이 빨라진 탓인가. 대선잠룡들의 호흡이 숨 가쁘다. 운동경기처럼 오버하면 지친다. 럭비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다보면 제 풀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쭈욱 선두를 뺏기지 않고 달리다 승리를 거머쥐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해서일까.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표정이 좀 초조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대선정책 공약부터 서둘러 내놓았다. 대선이 재수(再修)여서 이미 잘 준비돼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이 아직 출발선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무엇에 쫓기듯 급히 출발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그야말로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마크하고 있는 대선주자 아닌가. 권력구조 문제와 개헌문제에서는 여론의 향방을 놓고 눈치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드관련 입장도 오락가락이다. 원래는 재검토·재협상 등 강경론이었다. 그 후 ‘재논의는 어렵다’고 했다가 이제는 ‘합의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미국과 새롭게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바꾸기가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확실한 스탠스를 잡지 못해 입장이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집권 시 ‘남자 박근혜’ ‘제2의 최순실 사태설’까지 비아냥으로 나오고 있다. 선거연령 하향과 관련해서도 “북한도 17세인데 19세는 아주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식 선거를 서방세계의 민주주의와 동격으로 본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 아니라면 경솔한 언급이다. 선거연령을 낮추면 무조건 유리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아전인수(我田引水)다. 광화문 촛불민심은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현재의 여야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것이므로.

오죽하면 구한말 열강들의 각축과 비슷하다는 염려가 나올까. 미·중·일·러에 다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가 포진됐다. 한반도 주변 외교·안보의 격랑이 거세지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이런 상황에 다름 아닌 외교·통일·경제협력 분야에서 남다른 특장(特長)을 드러내면 된다. 이것이 반 전 총장에게 국민이 거는 기대다. 동시에 그의 과제이기도 하다. 경색된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 당선인과도 돈독한 우의를 만들지 못한 채 총장 임기를 마친 그다.

그러나 트럼프 못지않게 의욕적이고 활기 넘치는 노인(?)임에 틀림없다. 그는 세계 지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상외교로 침체에 빠진 경제에 활로를 뚫고 수출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동서남북 거침없는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안부인사를 하고 봉하마을과 팽목항을 찾는가 하면 촛불집회에도 참석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말씀이야 진보적 보수주의 내지 좌우대통합행보라고 하지만 노선이 불명확한 느낌이다. 제3지대행을 하리라 관측됐지만, 기존 정당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잠룡인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보수층 약진도 막아야겠고, 동시에 야권과도 손을 잡아보겠다는 식이다. 민생행보가 왠지 탄탄한 그의 정치적 내공보다는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치우쳤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댓글부대가 코스프레니 무어니 하며 트집잡기식 구설수에까지 올리니 안쓰럽다.

구태의연한 이전투구는 유권자들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국민은 국가의 미래와 비전을 외면한 대증(對症)적 인기영합주의에 불안하다. 상대를 깎아내리며 표밭을 넓혀나가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제 대선후보나 참모들의 빤히 속보이는 언행은 유권자들이 꿰뚫어본다. 대선 후 몇 번이나 배반당했지만 다시는 안 속는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대선주자들이 보다 듬직하고 신뢰할 만한 언행을 보여줘야겠다. 미국대선과 영국 브렉시트에서 보듯 여론조사는 허점투성이다. 근시안적으로 일희일비하며 지지율에만 목매지 말고 좀 더 차분하면서도 소신있는 정책선거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그들 스스로 부메랑처럼 돌아온 언어의 칼날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도록 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