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준식 교수. (제공: 고려대학교)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뇌의 해마는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을 기억하는데 필수적인 뇌 영역이다. 해마에 있는 각 세포가 환경에 있는 특정위치를 암호화하기 때문에, ‘장소 세포’라고 일컫는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내 몸안의 GPS, 장소세포(place cell)에 대한 매커니즘을 규명했다.

고려대학교(총장 염재호) 문과대학 심리학과 트리스탕 제이유(Tristan Geiller, 박사과정) 및 최준식 교수팀은 KU-KIST 학연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병권) 뇌과학연구소 세바스천 로이어 박사(Sebastien Royer)팀과 공동으로 공간과 사건·상황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장소 세포의 매커니즘을 규명했다.

해마(hippocampus)라는 뇌의 부위에서 발견된 장소세포(place cell)는 장소를 인지하고 자기좌표를 파악하여 길 찾기에 도움을 주는 신경세포로 동물과 인간이 어떤 특정한 위치에 있는 경우만 발화하기 때문에 공간 좌표를 부호화한다고 알려진 신경세포다. 해마의 장소세포에 관한 연구는 2014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행동인지신경과학 분야의 첨단 주제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지금까지의 연구들이 모든 장소 세포가 같은 방식으로 공간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한다는 학설에 반해, 장소세포는 공간적 정보와 비공간적(감각적) 정보를 집적하는 두 종류로 분명히 구분되며, 이들이 해마상의 해부학적 구조를 따라 상·하층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실험 쥐가 거칠거나 부드러운 바닥 혹은 튀어나온 돌기 등 다양한 촉각 단서가 부착된 트레드밀을 걷게 하면서 뇌의 신경활동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실험 쥐의 해마에 정교한 반도체 기판으로 이뤄진 미세전극(실리콘 프로브)을 삽입해 수십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장소세포의 활동을 동시에 기록했다.

기록된 장소 세포들은 트레드밀 상에서의 위치를 부호화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장소세포는 기존의 장소세포 이론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트레드 밀 상의 특정 위치에서 발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두 번째 유형의 장소세포는 트레드밀상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어느 특정 촉각단서에 의존적으로 발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예를 들어 튀어나온 돌기 형상의 촉각단서를 중심으로 발화하는 장소세포의 경우, 그 촉각 단서를 제거하자마자 발화가 사라졌고 반대로, 트레드밀의 다른 위치에 똑같은 촉각 단서를 부착하기만 하면 즉시 유사한 발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 장소세포들의 발화 방식은 다양한 실험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관찰됐다.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두 종류의 장소세포들이 해마의 같은 영역에서 서로 다른 층(layers)을 따라 배열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의 장소 세포 관련 연구들은 해마의 영역에 따른 수평적 분포에 집중하였으나, 본 연구진은 같은 영역에서 깊이에 따른 수직적 분포를 기능적으로 구분했다.

최준식 고려대 교수는 “공간상에서의 위치가 해마 신경회로에서 표상되는 방식을 규명함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상들, 추상적 개념 등이 부호화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한발 다가섰으며, 궁극적으로 기억이나 정보저장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회로를 대치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 개발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뇌손상 환자들을 위한 인공신경회로의 개발, 자연지능과 결합이 가능한 인공지능 시스템 등 다양한 응용이 기대된다”고 연구 의의에 대해 말했다.

이번 연구는 KIST와 휴먼프런티어 사이언스 프로그램 및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의 뇌원천 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졌으며, 연구결과는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Nature Communications) 20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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