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손자가 트럭 소리에 자다가 벌떡 일어날 때마다 철렁”
귀촌주민 “경중 안 따진 턱없는 피해보상금… 또 대출해야”
불국사 숙박단지는 경영난… “문의 늘어나지만 아직 어렵다”

[천지일보 경주=김가현 기자] “처음엔 밖에 나가면 죽는 줄로 알고 방에 꼼짝 않고 있었는데, 지진이 나면 가스·전기 차단기 내리고 머리 보호하고 식탁 밑에 있다가 조용해지면 그때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라네.”

지난해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경주 주민은 지진대피 요령에 익숙해 보였다.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마을 쉼터에서 7일 기자와 만난 주민은 마을회관에서 방영한 지진대피 순서를 꼼꼼하게 서로 나눠보고 있었다. 14일 오후 실제 지진대피 훈련을 한다고 기자에게 알렸다.

9.12 지진은 경주 도심을 넘어 지진가방 문화까지 만들며 지진에 무감각했던 한반도를 뒤 흔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지진은 지난해부터 지난 8월까지 1년 동안 총 633회라는 여진을 남겼다.

지진 발생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진앙지인 부지1리 주민은 그날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남초등학교 인근에 사는 최춘봉(79) 할아버지는 “당시 소파에 앉아 있다가 바로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넘어졌다”면서 “지진 때문에 밤에 자다가도 몇 번을 동생네 집에 갔었다”고 회상했다.

▲ 9.12 지진 1년여가 된 지난 7일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김태연(88) 할머니가 아들이 힘들게 보수한 집 외벽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1년 만에 다시 만난 정두현(64)씨는 5살 난 손자가 큰 트럭 소리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할머니 지진 와요’라고 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정씨는 “지진 났을 때 내가 손자를 업었는데, 손자가 유치원에서 지진대피 요령을 배워 와서는 ‘할머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자세히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피해보상금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정씨는 시에서 피해보상금도 바로 안 주고 1차 100만원, 2차 90만원을 우여곡절 끝에 올해 봄에 받았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 “생활에 불편하지 않는 최소한으로 보수했고 그 돈으로 갈라진 벽과 옥상계단, 내려앉은 집은 손도 못 댄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정씨 남편이 담 외벽에 시멘트를 덧발라 보수했다. 꼼짝 않는 거실 미닫이문은 사람을 불러서 나무기둥을 받쳐서 한 사람이 들어가도록 겨우 열었다.

▲ 지진 진앙지인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이명희(56)씨의 집. 담벼락을 보수한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명희(56)씨는 지진피해로 인해 없던 병도 생겼다. 그는 5년 전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1리 마을로 귀촌을 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지었다. 그러던 중 9.12 지진을 겪었고 피해견적만 3000만~4000만원이 나왔지만, 피해보상금은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100만원만 받았다.

이씨는 “재난지역선포에다가 진앙지인데 경중을 따져 피해보상금을 나눠줘야 타당한데, 죄다 100만원씩 주면 끝이냐”고 반문하며 “시내에 사는 어떤 분은 경미하게 벽에 금이 갔는데도 100만원 받아서 횡재했다하고 한다. 시골 사는 사람 민원은 공무원이 무시하고 이거야말로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했다.

부지1리에서 만난 김태연(88) 할머니는 “피해 조사할 때 신청한다고 모두 보상해주는 건 아니라는 분위기에 아예 신청도 못 했다”고 허탈해했다. 김 할머니 아들이 외벽에 시멘을 바르고 담을 비닐로 씌워 일일이 벽돌로 고정해놨다고 한다.

▲ 9.12 지진 1년여를 맞아 다시 찾은 경북 경주시 황남동 일대는 ‘한옥 보존지구’이지만 전통 기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그나마 경제적인 양철 기와로 교체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기자는 또 오래된 한옥이 밀집한 황남동 한옥보존지구를 찾았다. 지진으로 오래된 기와지붕이 떨어지고 붕괴돼 방수천막을 겹겹이 덮어놨던 집은 깨끗한 양철기와로 교체돼 있었다. 전통기와는 값비싼 수공비 등으로 교체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는 김정순(78)씨는 “한 채에 약 450만원, 두 채면 싸게 해도 850만원인데, 두 채도 1가구로 해서 똑같이 190만원을 받았다”며 억울해했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송상남(82)씨는 “비도 새고 어쩔 수 없이 아들이 630만원을 빌려서 방수 처리하고 양철 기와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 9.12 지진 1년여를 맞아 황하코스모스에서 바라본 첨성대와 오릉. 올해 봄부터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는 첨성대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8일 오후엔 경주 관광지역을 살펴봤다. 첨성대 주변 꽃밭과 오릉 앞에선 가족 단위 관광객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자전거 등을 타고 있었다. 첨성대 관리인은 올해 봄부터 주말에는 국내관광객이 꾸준히 많았으며, 주로 대만, 동남아, 중국, 유럽 등의 해외관광객이 찾는다고 했다.

첨성대 주변 상가는 야외에서 커피를 즐기는 여행객들로 관광지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상인 김모(54)씨는 “당시 언론들이 과보도를 해서 지난해 가을 겨울 장사는 못 했지만 올해부터 서서히 회복됐고 이곳 주변상가는 경기가 정상화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경주의 새로운 명소로 뜨는 ‘황남동 골목’은 일명 ‘경주의 경리단길’이라 불리며, 이색카페와 맛집 등이 많아 젊은 연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불국사 숙박단지는 수학여행단체 수용에 맞게 조성된 터라 심각한 경영난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윤선길 경주 불국사숙박협회장은 “올해 봄부터 30여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경주로 왔고 조금씩 문의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며 “지난해 지진 때 전국 430개 학교에서 수학여행이 취소됐고, 유스호스텔 등 숙박업소는 현재 4~5곳이 휴업하거나 폐업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불국사 숙박단지는 지난해 지진피해를 입지 않았고 정부의 조사결과에서도 안전이 입증된 곳”이라고 말했다.

▲ 경주 첨성대로 대구에서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경주시관광과 관계자는 지진이 일어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국외 포함한 일반 관광객은 1061만명으로, 평년 연간 1100만~1200만명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올해부터 국민안전처, 미래부, 원안위, 기상청 등 정부 합동으로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경주지역을 포함한 동남권 주변을 2020년까지 조사하며 전국 주요단층을 단계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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